모멘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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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친구와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좋지 않은 과거가 있음을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지금 너는 나를 친구로서 괜찮게 여기고 있지만, 만약 내가 과거에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걸 알게 되면 나를 싫어하게 될거라고, 나에게 실망을 할거라고. 나는 구십구프로 그렇게 확신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그것에 대해 얘기하지 못했다. 그 일은 그 시절의 내 친구들만이 알 뿐이고, 그 친구들은 그때 그것이 옳지 못했음을 알면서도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주었다. 그때 당신에 내게 이야기 했다한들 나는 내 선택을 밀고나갔을테니까. 그리고, 그것이 내 선택이었으니까. 메신저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는 '그 모든 과거의 순간이 지금의 너를 만들었다'고 얘기를 해주었고, 그 때, 나는 어쩌면 내가 과거에 저질렀던 혹은 나에게 일어났던 좋지 않은 일들이 지금 나를 만든거라면, 그래, 여전히 그것들은 내게 상처이고 죄책감이지만 그나마 아픈 마음은 조금 줄어들어도 좋지 않겠는가, 했다.



처음부터 나랑 삐걱거리는 이 소설은 뒷부분의 이런 구절이 없었다면 별을 두 개밖에 주지 못했을 것이다.


구겐하임미술관, 페라리 전시장, 5성급 호텔들. 도시는 이렇게 될 수 있다. 골격은 그대로라도 한때의 모습을 허물처럼 벗어던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인간도 겉모습을 바꿀 수 있다. 살을 빼고, 근육을 키울 수 있다. 아니, 그 반대로 살을 찌울 수도 있다. 옷으로 자기 이미지를 표현할 수도 있다. 부를 나타낼 수도 있고, 자신감을 나타낼 수도 있다. 인간도 도시처럼 겉모습을 싹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을 존재하게 만든 과거의 이야기를 바꿀 수는 없다. 복잡한 인생의 순간순간이 수없이 모여 이루어진 이야기. 즐거움과 두려움, 의욕가 무기력, 빛과 어둠.

그동안 살면서 겪은 일들이 모여 존재하는 게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 모두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결핍된 것, 간절히 바랐지만 결코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것, 전혀 바라지 않았지만 결국 가지게 된 것, 찾아내고 잃어버린 것. 그 모두를. (pp.572-573)



우리는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알람시간에 맞춰 일어날 것인가 더 잘것인가, 버스를 탈것인가 지하철을 탈것인가, 부터 회사를 계속 다닐것인가 그만둘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내 마음을 고백할 것인가 숨길것인가, 이 연애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도 물론. 그 순간들의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어떤 것들에 아파하고 어떤 것들에 행복해하는 내가. 술과 고기를 먹고 싱글이며 회사원이고 책을 읽는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내밀하게 보자면 강압적인 걸 싫어하고, 타인의 사적인 영역에 함부로 다가가는 걸 싫어하는 나는, 지금까지의 내 선택이 만든것이었다. 이 삶은, 내가 선택한 것이다.



『빅 픽쳐』, 『위험한 관계』 다음으로 이 『모멘트』를 읽었는데, 어째 갈수록 별로인지 모르겠다. 이 책은 특히나 더글라스 케네디의 최근작이라고 하는데, 이게 최근작이라면 앞으로의 작품은 안봐도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 왜 최근작이 제일 별로인걸까.. 


'이 여자는 아픔을 안다. 하지만 겉으로는 기죽지 않은 모습을 보이려 한다.' (p.117)



이런식으로 처음 본 사람에 대해 모든걸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부분이 계속 툭툭 튀어나오는데, 눈빛이나 말투를 처음 접하고 뭘 그렇게 사람을 잘 보는지, 원, 좀 기가찼다. 난 자고로 '너같은 타입은 내가 잘 알지' 하는 건 질색팔색이라. 여태 내가 읽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캐릭터중 제일 흥미가 떨어지고 오히려 반감조차 생기는 인물이었다. 


끝까지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은 진짜 별로였을텐데,그동안의 작가의 책들에서 그랬던것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소한-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감정들에 대해 잊지 않고 이야기해주고 있어서 조금 나아졌다. 슬쩍, 눈물이 나기도 했으니까.



집에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이 한 권 더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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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6-28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엔 <모멘트> 다 읽으신거예요?
아... 저도 일단은 꾹 참고 <소년을 위로해줘> 끝까지 읽으려고 하는데 마음처럼 책장이 안 넘어가네요.
초반부에는 책장 넘어가는게 아쉬울 정도로 좋고, 재미있었는데 이젠 책장 한 장 넘어가는게 천근만근이니.. 원.

다락방 2012-06-29 11:31   좋아요 0 | URL
네, 다 읽고나니 괜찮긴 했어요. 그렇지만 제가 좋아할 수는 없는 작품이에요. [파리 5구의 여인]은 어떨지 읽어봐야겠어요. [소년을 위로해줘]는 제가 안읽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은희경의 작품은 그간 제가 읽은것들은 아주 잘 넘어갔거든요. [비밀과 거짓말]만 빼구요. 그건 진짜 안넘어가더라구요.

달사르 2012-06-28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친구들 멋진데요. 막 참견하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묵묵히 입 다물어주는 것. 이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을 거 같은데..
내 선택으로 이루어진 나. 어떤 철학이 느껴지는 제목입니다. 저도 종종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라 오늘 포스팅에 무척 공감이 가요.

다락방 2012-06-29 11:33   좋아요 0 | URL
참견하고 싶은 정도가 아니라 절 뜯어 말리고 싶었을거에요.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아무도 아직까지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지 않더라구요. 그게 저한테 치명적이란 걸 알고있는거죠. 그러고보면 다들 그런것 같아요. 다들 어떤 비밀이 있고, 그것에 대해서 알고 있어도 침묵을 지켜주고. 이건 일종의 우리 사이의 룰 같은것 같아요.

제 선택으로 이루어진 삶이라서 저는 지금 사실 크게 불만이 없는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달사르님!!

Kir 2012-06-29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더글라스 케네디 책 중에서『빅 픽쳐』, 『위험한 관계』,『모멘트』까지 읽은 다음 보류 상태에요.
『위험한 관계』 주인공이 너무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끝까지 참고 읽느라 고생했어요.

다락방 2012-06-29 18:05   좋아요 0 | URL
저는 대체적으로 책 속의 주인공들을 싫어하지는 않는것 같다고 스스로 생각하는데, 『모멘트』의 주인공은 너무 싫었어요. 아...진짜...아 싫어싫어....그리고 그 책속에서 자꾸만 진실한 사랑 운운하는 것도 완전 거북하더라구요. 이건 진정한 사랑이야, 라고 자기들끼리 그러는것도 짜증나는데 주변 사람들까지 당신들은 진짜 사랑이야, 이러니까 너무 강압적으로 느껴져서 -_-
 
신영무역 키즈약밤 1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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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서에서 시키는대로 잘 굽기만 하면 아침이나 밤이나 맛있고 배부른 흡족한 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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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2-06-2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은 참 여러가지를 구입하시는군요. 전혀 관심없던 것들까지 장바구니에 넣고 싶게 만들어요. 근데 판매완료!

다락방 2012-06-28 10:08   좋아요 0 | URL
이거 맛있고 배불러요 팝님. 움화화화핫

가연 2012-06-28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은 위의 리얼 인절미라고 적어둔 글을 보고.. 저는 보통 디폴트로 목록보기나 요약보기로 많이 보기에.. 아, 이제 알라딘에서 리얼 인절미도 파는구나, 아까 보니깐 약밤도 팔던데, 후덜덜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있죠. 그런데 알라딘에서 정말 인절미도 팔까요?? 궁금하지만 검색은 안해보렵니다ㅎ

다락방 2012-06-28 11:19   좋아요 0 | URL
인절미는 떡이고 유통기한이 무척 짧으니 아마도 안팔겠지, 하면서도 가연님 대신 제가 검색하는 수고를 좀 했습니다. 역시나, 인절미는 팔지 않네요. 하하하하하.

방금 회사동료로부터 들었는데 밤이 살 엄청 찐다네요. 하아- 미친듯이 먹었는데...orz
 
뉴욕은 언제나 사랑중
그리핀 던 감독, 우마 서먼 외 출연 / 플래니스 엔터테인먼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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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속의 여자는 박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고 라디오를 통해 현실적인 사랑(real love)에 대해 강의한다. 그녀의 이론은 그 방송을 듣는 모든 여성들에게 절대진리이며, 그래서 그들은 그녀를 우상화한다. 그녀는 청취자들과 전화 상담을 해주기도 하는데, 그 상담을 한 여성들은 모두 그녀를 자신의 은인이라 말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녀의 조언대로 행동한다.


그 방송이 재미있고 통쾌하다면 열광하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자신의 사랑과 결혼에 대해 누군가의 조언대로 따른다는 게 내게는 꽤 당혹스럽게 느껴졌는데, 그러나 생각해보니 일단 그녀의 조언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와 상담을 원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사랑이나 연애 혹은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게 아닌가. 그런 상황에 누군가의 한마디 말은 당연히 힘을 갖게 될것이다. 물론, 결정하는 건 스스로의 몫이고. 


나는 연애나 사랑을 그리고 결혼을 지침대로 하려고 하는게 영 못마땅한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리고 연애서 등의 책을 읽고 자신을 그 안에 대입하는게 그게 말이 되나? 거기에서 말하는대로 행동하는게 사랑이고 또 거기에서 말하는대로 행동한다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게, 그게 좀 웃기지 않나? 사람은 다 제각각인데. 내가 선택한 사랑을 하고 그러다 설사 연애에 실패한다한들, 그것은 그 다음 연애나 사랑을 위한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뭐, 여튼




남자는 며칠 후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약혼녀가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확신을 갖지 못한채 상담하는 라디오방송을 청취하게 되고 그 결혼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에게 복수하기로 한다. 너의 한마디 말에 누군가의 인생이 뒤바뀌어 버렸다, 그러니 너의 인생도 한 번 그렇게 되어봐라, 하는 마음으로. 




영화속의 남자는 충분히 사랑할만한 캐릭터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 영화는 로맨스라기 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의 여자는 리얼 러브를 부르짖지만 이 영화는 리얼과는 좀 거리가 멀달까. 게다가 정말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임신해서 배가 나와있는 여자의 미소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은 식상하다. 이게 어른들 가지고 만든 영화인가 싶다. '은희경'은 『태연한 인생』에서 요셉의 말을 빌어 패턴화된 삶에 묻어가지 말라고 했거늘! 결혼과 임신은 결국 사랑의 궁극적 목표이며 최종 목적지인가. 그것이 행복한 삶인가. 


사랑에 빠지면 그동안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고 그동안의 내가 알던 모든 이론을 부숴버리는 것은 그래,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좀 막 만들어진 것 같다. 나는 로맨스를 보고 싶었는데 이 영화는 판타지와 동화를 보여준다. 후아- 난...이 좋은 배우들이 왜 이영화에 모두 함께 출연했는지 좀 의문이다. 



볼 거라고는 인물들 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뉴욕의 풍경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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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앙드레 드 리쇼 지음, 이재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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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힐듯 찾아온 사랑, 숨막힐듯 찾아오는 죽음. 바로 그곳에 존재하는 고통의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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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토록 관능적인 포도
    from 마지막 키스 2012-06-24 22:55 
    그녀 역시 포도를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토의 포도송이는 즙도 많고 알이 매우 빽빽하게 붙어 있어서 도대체 어떻게 떼어 먹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테레즈는 그 포도송이를 보며 강건한 가을 신의 털 무성한 성기를 떠올렸다. 포도송이는 하루 종일 파리 떼가 달려들고 햇빛에 수분이 말라서 쪼글쪼글해졌다. 두 사람은 강력한 매력을 뿜어내는 그 포도송이에 자칫 빠져들어서는 안 되며, 맛을 볼 경우 이성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p.89)
 
 
비로그인 2012-06-24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락방님 읽으셨네요!!! 저도 곧 읽을 거에요! (두근두근~)

다락방 2012-06-25 11:06   좋아요 0 | URL
이 책 정말 아름다워요, 수다쟁이님. 두근두근에 대한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줄 겁니다.

하루 2012-06-24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비슷한 책 흐름을 요즘 보여주시는데요 :)

다락방 2012-06-25 11:06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혹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새엄마 찬양] 읽어보셨어요? 이 책은 그 책을 자꾸 떠오르게 해요.

레와 2012-06-25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점이 다섯개!!
이 책은 표지가 인상적이여서 눈여겨 보고 있었어요.^^

다락방 2012-06-25 11:06   좋아요 0 | URL
올해 만난 가장 좋은책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

레와 2012-06-25 13:20   좋아요 0 | URL
와우!

moonnight 2012-06-25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프랑스(맞죠?;) 여인과 독일군 포로의 사랑이라니. '고통'스럽긴 하겠어요. 슬프다. ㅠ_ㅠ

다락방 2012-06-25 18:02   좋아요 0 | URL
네, 그런 의미로도 고통스럽고 다른 의미로도 고통스럽습니다, 문나잇님. 하아-

2012-07-01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04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평화 발자국 9
김수박 지음 / 보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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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렌지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불을 켜두었을 때 조카가 그 근처로 가면 나는 조카에게 거기는 뜨거우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한다. 길을 걷다가 뒤에서 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옆에 있던 사람에게 물러서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반드시 그들을 뜨겁게 사랑해서는 아니다. 그들이 다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고, 나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이 삶을 단 한 번 밖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태안으로 내려가 오염된 바닷가를 깨끗이 만들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저 먼 아프리카로 날아가 굶주린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기도 한다.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게 아니다. 우리가 '그냥' 아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내가 살고 있으니까. 우리는 혼자 살지 않으니까. 우리는 함께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동네 꼬마도 알고 나도 아는 걸 멍청한 삼성은 모른다.

 

화장을 하면 안 된다, 뛰면 안 된다, 세 명 이상 모여 있으면 안 된다, 무스나 스프레이를 사용하면 안 된다, 손톱을 기르거나 매니큐어 바르면 안 된다.

 

제품을 위한 교육인 거죠.

안전 수직은 교육 받은 적이 없어요. (p.36)

 

멍청한 삼성은 화학물질과 오염된 공기로 가득한 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안전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직원들이 건강을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좀 더 많은 제품을 생상할 수 있는 방법만을 가르칠 뿐이다. 몰라서 그랬을 거다. 알면서도 그랬다면, 그건, 할 짓이 아니잖아.

 

 

 

삼성한테 화가 나는건 비단 이 때문만은 아니다. 삼성은 직원을 그리고 직원의 가족을 무시했다. 생산직에 근무해서 암에 걸린 직원이 부자이고 많이 배운 사람이었다면, 그리고 가족들도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사람이었다면 -그랬다면 그 일을 하려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때도 사표 쓰기를 종용하고 산재가 아니라고 떼를 쓰며 바깥으로 말을 내지 말라고 했을까? 나는 알지만 너는 여기까지는 모를거야, 설마 그런걸 알겠어? 설마 그렇게까지 하진 않겠지, 하는 사람에 대한 무시가 그들에게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삼성이 실수했다. 지금은 매스컴을 장악해서 민주화운동을 빨갱이들의 데모라고 설득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니란 말이다. 이것도 모르는 건 아닐테지, 설마. 무언가 잘못된 것 같으면 그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걸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거기에 대해 주변으로 퍼뜨려줄 사람들이 생겼고, 그들을 도와줄 매체도 생겼다. 그러니까 삼성은 더이상 사람들을 무시하지 못한다. 그 짓은 끝장났다. 이제는,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를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처음 그것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지금까지 오는 과정이 힘겨웠지만, 이제는 그들의 힘이 되어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삼성이 망하면 나라도 망할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기업도 그렇지만 나라도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삼성이란 기업이 '망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무식한 삼성이 이제는 상식을 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윗대가리부터 교육을 받아야 한다. 백혈병 걸린 직원에게 찾아가 사표쓰기를 종용한 과장은 자의로 그랬을까? 그것이 기업의 이념이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에서부터 상식 교육을 똑바로 받아야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삼성이 제발, 부디, '정상적인' 기업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스크루지 영감은 자신이 가진 돈을 잃는 것이 가장 무서운 줄 알았다가 꿈을 꾸고 나서야 가장 무서운 건 자신의 무덤앞에 아무도 찾아와주는 이가 없다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삼성이 가장 무서워해야 하는 건 자신들의 기업 가치가 내려가는 일이 아니고 잠재적인 고객이 불매를 선언해서 매출이 하락하는 것이 아니다. 삼성이 가장 무서워해야 하는 건,

 

귀사에 입사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건 그만큼 삼성이 '그들이 데리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했는지를 보여주는 거니까. 그만큼 생생한 증거는 없다.

 

 

삼성이 이대로 계속 멍청하게 굴면 여기서 그리고 다른 어딘가에서 사람들은 삼성이 멍청하다고 알릴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이미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 책속에서 황유미씨의 아버지는 기자들에게 얘기했고 그리고 이 책의 작가는 이렇게 책으로 얘기한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리뷰로 얘기할 것이고, 이 사실을 아는 자들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시간은 좀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만, 삼성의 반도체 공장에는 일하려는 자들이 없어질 것이다. 암에 걸려 죽을까봐, 가 아니라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니까.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니까.

 

 

 

삼성아.

 

상식을 키우자. 모르면 배우자. 예의를 기르자. 그것도 모르면 배우자. 오만을 버리자. 그리고 제발, 정상적인 기업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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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들
    from 마지막 키스 2012-06-22 13:01 
    며칠전에 서점에 갔는데 박민규의 『더블』중 B 권이 낱권으로 풀려있었다. 마침 작년이었나, 이 중에 어느 단편을 좋다고 추천했던 친구가 생각나 책을 집어들고 목차를 살폈다. 그 단편의 제목이 두 글자였던 건 기억났지만 어떤 제목인지를 몰라서 목차를 보면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봐도 눈에 띄는 제목이 없는거다. 그래서 A 권을 보려고 했는데 B 권은 쌓여있지만 A 권은 없었다. 아무리 B 권을 들춰내고 들춰내도 그 밑에 A 권은 없었다. 어쨌
 
 
카스피 2012-06-2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성에 입사하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요,동네 자랑이 된 요즘 삼성에 입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것 같습니다.아마 삼성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온 국민들이 삼성 물건 안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제 삼성은 워낙 글로벌 공룡기업이 되어 국민들의 진정어린 말에도 이미 귀를 닫아 버린것 같습니다.

다락방 2012-06-22 09:18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카스피님. 삼성에 입사하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고 동네 자랑이 되어버린 건 맞지만, 그런 현상이 조금쯤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제 또래들 중에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제 후배중에는 삼성 SDI 에 입사해서 2년간 근무하다가 그만 둔 녀석도 있고요. 오히려 삼성 물건 안 사겠다는건 더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삼성 물건은 너무 광범위하게 많이 퍼져있어서 불매가 성공적으로 될 것 같지도 않고, 또 국내에서 모두가 불매를 해도 수출하는 물량도 상당하니까요. 그러나 수출하는 물량 자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직원을 구할 수 없는게 더 무서울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신이랑 더이상 함께 일하지 않겠어요'라는 말이 '니네 물건 안사'보다 더 무서울 것 같아요. 그쪽이 더 현실 가능성이 있을 것 같고 말입니다. 물론, 지금은 청년 실업시대라 이조차도 아주 먼 일이 되겠지만 말이죠.

아무개 2012-06-22 09:53   좋아요 0 | URL
삼성 물건 불매, 삼성 입사 거부와 이건희 일가를 심판하는 일중 어느것이 더 빠를까요. 기업 삼성 자체가 나쁜것이 아니라 그 기업의 수장이 잘못 된 것이겠죠.

다락방 2012-06-22 09:57   좋아요 0 | URL
삼성 '불매'는 제가 생각하기에 좀 위험하게 느껴져요. 기업에 대한 시위 방법으로는 불매가 가장 효과가 빠른 그리고 정확하겠지만, 이 불매는 '너네가 망해봐야 정신차리지'의 의도가 좀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요. 잘못했으면 벌을 받는건 당연하지만, 삼성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덩달아 피해를 입을 것 같아서 말이죠. 그들에게는 죄가 없는데요. 불매가 조심스러운 이유에요.

삼성 입사 거부도 제가 생각하기에 불매보다 더 효과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렇게 현실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먹고 살아야 하는데, 어디라도 돈을 준다고 하면 가게 되지 않을까요? 설사 삼성을 최후의 보루로 놓는다고 해도 최후의 보루를 꺼내들어야 할 때가 오기는 하니까.. 끙.

이건희 일가를 심판하는건 역대 전적으로 보건데 이 나라에선 불가한것 같아요. 에휴..

2012-06-28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04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