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와 수잔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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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초반 흡입력이 대단하다. 그나마 수잔이 책을 읽다가 중단하고 일상으로 돌아올 때, 그때야 비로소 나도 함께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가능해진다. 독서에 재미를 잃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으로 다시 흥미를 갖게 될거라고 장담한다. 그 흡입력이 끝까지 지속되는 건 아니지만 이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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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영화에선 토니가 너무 찌질 섬뜩 한남으로 나온대서 보지않았는데 책은 좀 덜한가요? 톰 포드의 문제인거신지...
장르는 너무 제 스타일이라 혹했거든요ㅠㅠ 다락방님 이거 다읽으시면 꼭 자세한 후기 남겨주세요😍

다락방 2017-02-20 17:26   좋아요 1 | URL
롸님, 저 이거 다 읽었어요. 다 읽고 백자평 쓴거고요 ㅎㅎ
책에서도 토니는 좀 찌질해요.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찌질해요. -_-
책의 초반 흡입력은 대단한데 그게 끝까지 이어지진 않고요. 어쩌면 토니 안의 찌질함, 나약함을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뭐 그런 이야기를 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끝에 가서는 힘이 빠지더라고요. 초반의 그 어마어마한 재미남을 끝까지 유지하지는 못해요. 지금 제 주변에 두 명이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둘다 멈출 수가 없다고 했지만, 한 명은 중간을 넘겨가면서는 점점 별로가 되어간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토니 별로에요 -_-

2017-02-20 18:39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 흥분해서 읽고 계신 중이라는 말로 오독했네요 ㅋㅋ 하긴 다 안읽으셨는데 백자평 쓰셨을 리가ㅠㅠ
다락방님은 계속 토니 별로라고 하시는데 왠지 더 읽고싶어져요ㅋㅋㅋ 책 읽고 제안의 찌질함도 돌아보겠습니다🤔

다락방 2017-02-21 09:39   좋아요 1 | URL
롸님도 읽고 어땠는지 꼭 알려주세요!
분명한 건, 초반에 진짜 엄청나게 빨아들인다는 거예요. 책 읽는데 방해하는 모든 것들에 짜증이 날만큼요! ㅎㅎ
 
동사의 맛 -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 한국어 품사 교양서 시리즈 1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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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치다

깁다



바늘과 실이 있다. 실을 바늘귀에 꿰고 옷감을 꿰맨다. 굵고 큰 바늘에 굵은 실을 꿰고 두꺼운 헝겊을 맞댄 뒤 이불 홑청을 호듯 듬성듬성 꿰매기도 하고, 가늘고 작은 바늘에 가는 실을 꿰고 바짓단을 접은 뒤 바늘땀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꿰매기도 한다. 옷감을 이어 붙인 뒤 바지 안쪽에 세로로 난 바늘땀처럼 안쪽에서 마치 용수철을 꿰듯 감아 꿰매기도 하고, 해진 자리에 다른 옷감을 대고 꿰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천 사이에 솜을 넣고 죽죽 줄이 가게 박음질하드 ㅅ꿰맬 때도 있다. 순서대로 쓰면 시치고, 공그르고, 감치고, 깁고, 누빈 것이다. 시치는 일은 시침질, 공그르는 일은 공그르기, 감치는 일은 감침질, 깁는 일은 기움질, 누비는 일은 누비질이라고 한다. 

바늘과 실이 지난 자리엔 바늘땀과 함께 이렇듯 낱말도 남는다. 하물며 사람이 지난 자리야. 시친 듯 지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친 듯 지난 사람도 있고, 공그른 듯 지나는가 하면 기운 듯 지나기도 하며, 때로는 온통 누비고 다니는 사람도 있으리라.

드물지만 바늘과 실이 사람 몸을 지난 자리도 있다.

어머니의 가슴과 왼쪽 종아리에는 각각 스무 땀과 서른 땀의 꿰맨 자국이 남아 있다. 꽉 막힌 관상 동맥 대신 다리의 혈관을 떼어 내 심장에 연결한 흔적이다.

"사람 몸을 이렇게 누더기처럼 만들어 놓고, 의사들은 참……." 하면서 어머니는 고개를 젓는다. 목숨을 건졌는데 그깟 바늘땀이 대수냐고 나는 무심히 대꾸해 버리지만,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히기도 하다. 남이 입을 옷을 짓느라 평생 바느질을 해 온 양반이, 누군가 당신 몸에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 아닌가.

어머니 몸에 남은 바늘땀을 보고 "바느질 솜씨가 영 형편없네." 하고 내가 짓궂게 놀리면 "그러엄, 이게 누더기처럼 기운 거지 무슨 바느질이니. 이렇게 해 가지고는 밥 먹고 살기 힘들어야." 하며 어머니는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깔깔 웃는다.

'감치다'는 '감쳐, 감치니, 감치는, 감친, 감칠, 감쳤다'로, '깁다'는 '기워, 기우니, 깁는, 기운, 기울, 기웠다'로 쓴다. (p.36-37)




총 302페이지의 책인데 62페이지까지만 읽고 쓰는 리뷰임을 먼저 밝힌다. 대체적으로 책을 읽을 때 앞부분이 좋아도 뒤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보아왔으므로 이만큼만 읽고 리뷰를 쓰는 건 지양하는 편인데, 이 책에 대해서라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확신이 든다. 제목 그대로 동사에 대해 마치 국어사전을 펼치듯 설명해 놓았는데, 거기에 대해 저자는 에세이와 또 (본인이 쓴)소설(이라기 보다는 가상의 이야기라고 해야할까-그는 도서관에서 만난 남자 얘기를 자주 풀어놓는다)로써 예를 든다. 동사의 뜻과 활용을 이렇게 맛깔스럽게 풀어놓다니, 이 책은 책장에 반드시 꽂아두고, 동사를 찾아보고 싶을 때 국어사전보다 먼저 꺼내들어야 할, 그런 책이다. 동사의 '맛'이라는 제목은 어찌나 적절한지! 다루는 동사마다 감칠맛나는 글을 덧붙여 두었는데, '감치다'와 '깁다' 편의 저 이야기는 특히나 좋았다. 어머니와의 대화가 완전 생생하지 않은가. 

이것은 사전이면서 동시에 에세이이며 소설이다! 게다가 글을 진짜 지독하게 잘썼어!! 아름다워!!



책 뒷편에 '서평가 로쟈 이현우'가 '바라건대 한국어의 모든 맛을 다시 일깨워 주기를!' 라고 추천사를 썼는데, 완전 공감한다. 나 역시 김정선이 한국어의 모든 맛을 다시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여러분, 이 책 진짜 좋다. 읽자. 그리고 책장에 꽂아두자. 동사의 활용이 헷갈릴 때 펴들면 유익할 것이고, 잔잔하고 차분하며 아름다운 글을 읽고 싶을 때 펴들면 또 그대로 만족할 것이다. 진짜 질투나게 글 잘 쓴다.



부르르(질투에 떨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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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7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02-07 14:02   좋아요 0 | URL
아 저 아닙니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이란 닉네임을 쓰는 다른분 인듯 합니다.

이진 2017-02-0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만난 남자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왜 같이 소개를 안 해주셨나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7-02-07 14:28   좋아요 1 | URL
소이진님, 안녕?

동사 하나하나에 대해서 짧은 에피소드들이 나오는데, 거기에 종종 도서관에서 만난 남자와의 대화가 들어가 있어요. 소이진님, 이 책 꼭 읽어보세요. 소이진님은 꼭 읽어보셔야 해요. 글 쓰는 분이시라, 이거 진짜 도움 많이 될 거예요!

아무개 2017-02-07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임호부님 글 참 좋죠?
저는 소설의 첫 문장을 읽고 있는데 왠지 소설 준비중이신게
아닐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ㅎㅎ

다락방 2017-02-07 14:36   좋아요 0 | URL
글 정말 질투나게 잘 쓰시더라고요.
게다가 단어에 대해서도 이렇게 잘 알고 계시니, 이런 분이 소설을 쓰신다면 어떤 소설을 쓰실지 너무나 기대 됩니다. ㅎㅎ
소설의 첫문장도 좋은가요? 저도 봐야겠어요.
이 분이 [이모부의 서재]내신 후로 그냥 줄기차게 쭉쭉 책을 뽑으시네요.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ㅎㅎ
그렇지만 이 분에겐 기본기가 너무 탄탄해서...
정말 질투나고 기죽어요ㅠㅠ

2017-02-08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8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8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심야 2017-02-16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옹 그렇군요!! 다락방님께서 질투까지 나실 정도면 정말 얼마나 글을 잘 쓰시는건지 궁금하네요!! 갑자기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군요!! 장바구니에 넣어둬야겠어요 ㅎㅎ

다락방 2017-02-17 09:41   좋아요 0 | URL
심야님, 에피소드나 예문 자체도 가만가만 좋고요 동사에 대해 정리도 잘 되어 있습니다. 읽으시면 후회하지 않으실거예요! >.<
 
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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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는 십 년 전부터 꽃에 새롭게 눈을 떠, 우리 집 꽃도 그가 장식한다. 들꽃을 취급하는 꽃가게 주인과 친해지는 바람에, 자기 방식대로 자유롭게 꽃을 꽂는다. 그런데 의외로 감각이 좋다. 내가 말하자니 뭣하지만, 때로는 '우와!' 싶을 정도로 꽃들의 조화가 아름답다. 수반이나 꽃병 같은 것드은 내가 전에 취미로 모은 것이지만……. (p.167)




저자는 자신의 남편을 '반려'라 칭하며 시종일관 건조한 시선을 유지한다. 어느정도의 거리도 느껴지고 또 담백한데, 저렇게 꽃에 대해 관심을 가진 자신의 반려에 대해 칭찬한 게 이 책을 통틀어서 가장 친근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내가 만약 결혼이나 동거를 하게 된다면, 나도 나와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렇게 건조한 시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들 부부는 삼십년 이상을 함께 살았는데, 그렇다면 함께 사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일텐데, 이렇게 글로 쓸 때는 건조함을 유지하는 게 신기하고 좋아 보였다.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난 이렇게까지 건조하진 못할 것 같아. 


자연스레 신형철이 자신의 책에서 낯뜨거운 감사를 했던 게 떠올랐다. 내가 그 부분 때문에 그 책을 안샀고 신형철에 대한 관심을 끊었더랬지... 



자신의 반려에 대한 건조한 시선이 독특했지만 이 책 자체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고 재미있지도 않다. 각자가 자신의 몫을 잘 살아야 한다는 걸 일찍부터 깨달은 사람의 이야기이고 또 그런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인상적이었지만, 확실히 제목이 제일 근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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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7-02-06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느낀 그 지점이 겹쳐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나친 칭찬, 헌사는 왠지 저도 거부감이...그냥 요새는 왠지 건조하고 좀 담백한 글들이 좋아지더라고요.

다락방 2017-02-07 08:34   좋아요 0 | URL
네, 그간 신형철을 좋아했었는데 자신의 책을 마치 청첩장인듯 쓴 걸 보고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자신의 책이고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 하는거지만 어휴, 제 취향은 아니더라고요. 그런참에 이 책의 저자는 어찌나 건조하던지. 그 건조함이 나쁘지 않았던게, 건조하다고 해서 그들 사이가 심드렁하거나 무심한 사이는 아닌걸로 보였거든요. 긴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또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서로 얘기한 거라서 그렇게 서로에 대한 신뢰로 함께 오래 살아온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반려‘라 표현하며 건조하다니, 참 좋더라고요.
 
여성혐오, 그 후 - 우리가 만난 비체들
이현재 지음 / 들녘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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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모든 남성들이 젠더관계의 이데올로기적 인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면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남성이라는 단어 앞에 '여성을 혐오하는' 이라는 수사를 붙여 혐오 집단을 제한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 책을 읽는 남성 독자가 있다면, 나는 스스로 질문하라고 권하고 싶다. 여성의 자율성과 권리를 인정한다고 말하면서도 당신은 대학 내 압도적인 남성 전임교수 비율을 조정하거나, 여성에게 부과되는 양육과 돌봄의 책무를 시정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거나,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거나, 여성노동의 저임금화를 극복할 물질적 토대를 고민하는 일을 방기하거나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제도적 물질적 변화를 강구하기보다 그러한 변화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말하기 방법이 잘못되었다거나, 폭력적이라는 점만을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남녀평등의 수사학을 쓰면서도, 페미니즘 연구 환경의 척박함을 개선하기보다 인용할 만한 수준을 가진 여성 철학자가 없다거나, 여성에서 출발하는 이론이 모두 파시즘적이라고 공격하고 있다면, 당신은 인정의 수사학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사용하는 여성혐오 집단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 p.101-102)

고백하건대 심경이 복잡해진 것은 남성들만이 아니었다. 일부 여성들, 아니 오랫동안 여성철학을 연구해온 내 마음도 복잡해졌다. 메갈리안이 하나의 통일된 집단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메갈리안들이듯, 여성도 여성들이며 페미니스트도 페미니스트들이기 때문이다. (p.10)

그러던 내가 이제 글을 쓰기로 했다. ‘결국, 난 꼰대였던 거야‘라는 좌절에서 ‘그래, 이왕이면 제대로 꼰대질 하자‘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그동안 궁리해온 페미니즘 철학과 이를 가능하게 해준 페미니즘의 계보들을 인용하는 가운데 내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들리지도 않은 채 소거될지라도 내 언어를 입 밖으로 꺼내보기로 했다.
내가 이러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비체abject‘라는 개념을 재고하게 되면서였다. 다시 보니 ‘비a-체object‘, 즉 어떤 규정된 대상이 아니라는 말은 참 유용한 언어였다. 어떤 존재를 무엇이다(A) 라고 규정하기 않고, 무엇이 아니다(~A)라고 말하는 방식은 그 존재를 어떤 경계에 가두기보다 그 여분의 공간, 경계의 열림에 위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페미니즘의 역사는 남성이 정해놓은 위치를 벗어나 경계를 넘나들었던 여성들, 항상 흐르고 있기에 개념적으로 잡힐 수 없는 ‘비-체‘가 되었던 여성들에 의해 쓰인 것이었다. 그녀들이 비판받거나 마년사냥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기존의 언어나 질서로는 파악되지 않는 ‘알 수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p.12-13)

여기서 함께 아파함, 타자에 대한 연민, 즉 동정심에 주목해 보자. 기존의 도덕과 법에서 동정심은 매우 커다란 역할을 해왔다. 가령 "동정심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이나 전지구적 차원의 정의를 위한 해외 원조와 같은 노력을 뒷받침하는 중심적 지주가 될 수 있으며, 취약한 집단이 겪고 있는 억압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동정심이 불평등을 전제로 하는 감정이라는 데 있다.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에게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그들보다 우월하거나 혹은 그들의 수준은 우리의 수준보다 낮다는 믿음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워하는 자는 고통을 이겨내거나 고통받고 있지 않은 내가 도와줘야 하는 불쌍한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길리건과 위긴스는 동정이 사랑과 별 상관 없는 말이라고 한다. 오히려 누군가를 동정한다는 것은 그/녀를 진정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동정은 대상에 대한 나의 우월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p.96-97)

공감은 자아와 타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공감은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정서적 결합관계인 것이다.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우월이나 열등과 같은 불평등이 아니라 서로가 처한 사회적 상황과 경험이 잠정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사람들은 공감 안에서 서로의 다름에 주목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공감은 내가 타인의 삶에 참여participate하는 태도이다. 공감은 타자를 "판단하거나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진정으로 누군가의 감정을 함께 느낀다는 것은 "그의 곁에with"서 나와 다른 그의 상황과 감정을 함께 경험한다는 의미이지, 그와 동일하게 느낀다거나 그의 옆에서 거리를 두며 그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공감을 통해 나는 나와는 다른 타자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p.131-132)

가령 누군가 고통스러워할 때, 나의 경험에 비추어 그/녀를 판단하기보다 그/녀가 처한 상황이나 조건, 경험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가운데 그/녀의 고통에 참여한다면, 나는 이를 통해 경험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다. 타자의 차이를 경험하는 공감은 타자 속에서 자신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동감과는 대조적이다. 자아와 타자가 서로 다르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공감은 타자의 곁에서 타자의 경험에 참여하는 가운데 타자의 다름을 경험한다. 따라서 공감은 경험의 확장 속에서 자아 자체를 변화 시킨다.
마지막으로 공감은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관계, 즉 "상호감응responsiveness to each other"하는 관계이다. (p.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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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2-05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경험에 비추어 가 아니라 상대가 처한 상황 등에 관심을 기울여 상대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 공감이군요. 많은 생각 하고 갑니다.

블라디보스톡은 좋았나요?^^

다락방 2017-02-06 08:20   좋아요 0 | URL
동정이나 동감과는 다른, 상대와 같은 위치에 서고자 하는 마음인 것 같아서 참 좋더라고요. 역시 공감이 살 길이기구나 싶었어요. 그러고보면 많은 문제들이 공감하지 못해 일어난 일인 것 같고요.

블라디보스톡은 막 좋았던 건 아니고요 ㅎㅎㅎ 가서 추위를 제대로(!!) 느끼고 왔습니다. 볼 찢어질 것 같은 순간들은 어찌나 많던지요.. 하하하하하. 저는 러시아 찬바람 맞으러 다녀왔다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

아무개 2017-02-06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저도 딱 저 부분 강조해서 발췌했었는데요!!!

공감이 중요하죠. 그럼요 그럼. ‘독서공감‘ 처럼요 *^^*

내일이 첫강의시간인데 뭔가 긴장됩니다.
한개도 못알아 먹을꺼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ㅡ..ㅡ

다락방 2017-02-06 08:18   좋아요 0 | URL
책 내용이 좋긴 했는데 되게 학술적인 논문의 느낌이라 저는 만족스럽진 않았어요. 이렇게 안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더 쉽게 어떻게 안될까? 라고 어제 책장을 덮고 고민하다가, 역시 내가 쓰자...라고 생각하다가...음 그렇지만 공부가 부족해, 갈 길이 멀다... 했어요. 아하하하하.

저는 내일 강의 신청 안했어요. 사실 안들을 생각이긴 한데, 아직까지 확 결정한 건 아닌것 같고... 하아- 몰라요. 어쨌든 잘 다녀와요!

아무개 2017-02-06 08:26   좋아요 0 | URL
저는 바로 그 학술적인 논문 느낌이라서 좋았거든요.
입문서 보다는 조금더 깊이 있게 하지만 그리 어렵지 않은 수준.
아마도 각자가 책에서 기대하는 바가 달라서 그런듯요.

넵. 근데 첫 강의부터 쥬디스 버틀러 라니 크흡.


다락방 2017-02-06 08:33   좋아요 1 | URL
저는 제가 듣지 않는 것에 대해 뭔가 스스로 변명을 만들고 있어요. ㅎㅎㅎ 2월달에 둘째주와 넷째주에 많이 늦을테니 안듣는게 낫다...라고 스스로 합리화 ㅋㅋㅋㅋㅋ 듣고 싶은데 정말 피곤하더라고요 ㅠㅠ 저는 봄이나 여름에 또 하면 그 때 노려보려고요.

이현재 선생님은 강의에서도 말씀하셨었는데, 본인이 온건파 페미니스트였다고 해요(책에도 나오지요?). 그런데 온건파로 있다보니 아무도 그 말을 안들어주는 것 같아서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요. 쎄게 주장해야 그나마 들어주는 척이라도 한다고... 이 책이 뭔가 확 새롭다기 보다는 기존의 우리가 알고 있던 흐름을 잘 정리해준 것 같은데, 메갈리안과 워마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게 아니라서 뭔가 든든하고 좋더라고요. 게다가 이 분 강의가 저는 제일 좋았어요. 본인이 열정과 흥미를 갖고 계시고 잔뜩 흥분한 채로 설명하셔서 참 좋더라고요.

아무개님, 공부 화이팅!!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요?
김연지 지음 / 처음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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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이별한 지 며칠 안됐을때였다. 여전히 마음이 아팠고 헤어지자고 말을 했던 내 자신이 좀 부끄러웠고 또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 남아있을 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택시를 탔다.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택시 기사님께 애인하고 헤어져서 슬프다고 얘기를 했다. 이 위기를 넘겼어야 했는데 나는 넘기지 못해 헤어지자고 말했고, 그래서 그게 몹시 미안하다고. 그 날 나를 처음 본 기사님은 내게 '아가씨가 그 사람을 좋아한 만큼은 딱 그 만큼이었던 거예요" 라고 하셨더랬다. 나 역시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낯선 사람으로부터, 그간의 내 사정과 성격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듣는 그 말은 당시의 꽤 큰 위로가 되었다. 맞아,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은 딱 이만큼이었던 거야. 나는 스스로를 더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김연지'라는 저자에게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데이트하는 어플 을 통해 뉴욕에 사는 남자를 알게 된 저자는, 일년반 동안 그와 연락을 유지하면서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그가 있는 뉴욕으로 그를 보기 위해 슝- 날아간다는 게 큰 줄거리다. 연락을 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 친해지고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또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여느 연인들처럼 싸우고는 '다시는 연락하지마!'를 반복하기도 하고, 그렇게 싸우다가 '사랑해' 한마디에 풀리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연인. 물론, 그들이 아직 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은 보통의 연인과 아주 크게 다른 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엇갈린다. 여자가 화가 나 데이트하는 어플을 지우고 있다가 다시 설치해보니 그로부터 연락이 와있었고, 그 사이에 그는 한국에 나흘간 머무르면서 마지막 날 네 얼굴 잠깐 볼까 연락했었다, 라고 했다. 그러나 연락이 안돼 만나지 못해 돌아가야 했고, 그를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여자는 결국 3개월간 뉴욕에 머무르고자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지만, 남자는 그 기간동안 시애틀로 출장 가있다가 바로 한국으로 휴가를 간다고 했다. 열네시간을 날아 뉴욕까지 갔지만 여자는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그와 함께 가보고 싶었던 여자는 혼자 술을 마시고 외로움에 흐느끼기도 하지만, 뉴욕의 생활에 차츰 적응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공부에 대한 욕망도 샘솟는다. 많은 것들이 여자를 자극하는 가운데 남자를 이곳에서 만나지 못할거란 생각으로 계속 괴로워하긴 하지만, 긍정적인 그녀의 성격은 이렇게라도 뉴욕에 올 수 있게 해준 그에게 감사한다.



사랑은 내밀한 것이고 연애 역시 둘만의 것이라, 제삼자가 알지 못하는 둘 만의 은밀한 사연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기정 사실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그 연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부질없다. 여자도 책의 말미에 자신이 남자를 더 많이 좋아했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하긴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남자가 이 여자를 많이 좋아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남자는 여자가 화나고 토라졌을 때 전화선을 통해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여자를 달래주고 여자를 순간 구름 위로 올려놓기는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만큼은 딱 그만큼, 그러니까 나흘간 한국에 갔을 때 마지막날 '잠깐 만나볼까' 하고 연락하는 딱 그만큼이었던 것 같다. 여자가 열네시간을 날아 뉴욕에 온다고 하지만, 자신의 출장과 휴가 스케쥴을 변경할 순 없는, 딱 그만큼. 이렇게 열정적이고 뜨겁고 게다가 뉴욕에서는 아주 많은 낯선사람들로부터 예쁘다, 근사하다, 모델이 되어달라 등등의 찬사를 듣는 여자가, 자신에게 움직이는 데에는 좀 망설이는 남자를 마냥 좋아하는 것은 좀 무모해 보였지만, 사랑이란 게 어디 이성으로 되는 것인가. 그러나 사랑 그리고 이별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그 과정에서 배우고 깨닫는 게 있다. 여자는 남자를 보려는 목적으로 뉴욕에 갔지만, 뉴욕에서 많은 자극을 받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정한다. 결국 뉴욕이란 곳에 다시 가고 싶게하고 또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좋은 동기가 '사랑'이었다. 이런 여자라면 앞으로 무얼 하고 또 누굴 만나도 쭉쭉 뻗어나가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것은 과연 사랑일까, 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소설,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서 에미와 레오는 많은 감정을 나눈다. 상대로부터 이메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컴퓨터만 쳐다본다. 영화 《her》에서는 심지어 실체가 없는 프로그램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가 나온다. 사랑이 주는 설레임과 두근거림, 그리고 사랑이 주는 서운함과 고통까지도 그들은 모두 느낀다. 그렇지만 그들이 만나고나면?



그건 단순히 잘생기고 못생기고의 문제가 아니다. 포온세엑스로 알게 됐던 남자와 여자가 만나게 되는 영화 《나의 PS파트너》에서 둘은 어쩌다보니 상대가 지성이고 상대가 김아중이었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다고 해서 내 사랑이 더 굳건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메일로, 문자메세지로, 통화로 서로에게 사랑을 느꼈다고 해도 만나서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만났는데 이 사람이 술에 취해 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때는 지켰던 예의를 보이고 나서는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에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습관, 냄새, 버릇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고, 전화 상으로 '사랑해'라고 수없이 속삭였지만 쩝쩝거리면서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정이 떨어질 수도 있다. 물론 만나서 더 좋을 수도 있다. 나 역시 만나서 좋지 않았던 경우가 있었고 더 좋았던 경우가 있었는데, 만나서 훅 갔을 때는 정말이지, 상대가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멀었는데도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더랬다. 이처럼 만나서는 아주 많은 '다른' 경우의 수가 생긴다. 사랑한다는 말은 흔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물론 '나는 지금 이순간 사랑을 느끼고 이걸 그대로 표현할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된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사랑한다는 말에 책임을 지고 싶은 사람이고, 이 사람과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단순히 문자로, 목소리로 사랑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다른 면들을 보지도 않은 채로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여자는, 책 속의 묘사로 보건데, 똑똑하고, 사랑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이고. 나는 여자에게 어떤 조언도 해줄 수 없고 또한 조언할 위치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또 각자의 사랑을 한다. 이 책은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는 굵직한 줄기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거기에 붙은 많은 가지들은 뉴욕 여행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타이틀에도 <여행 에세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이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뉴욕을 좋아한다. 게다가 책 속 주인공처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많이 들어있는 책이었지만, 그런데 이 책이 좋지는 않다.


이 책은 여행에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그녀의 '미스터 프린스턴'에 대한 사랑 고백이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던 순간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고백이랄까. 읽다가 중간에 '이 책이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잠깐 궁금했다. 저자는 이 원고를 들고는 출판사로 찾아간걸까?



음, 남자는 딱 그만큼만 좋아했던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한 것처럼 이 책은 딱 이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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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2-01 0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놔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계속 등록하려는데 ‘광고,도박,음란성 글은 게시가 안된다‘고 에러 뜨길래

데이트앱→데이트하는 어플
폰섹스→포온세엑스

로 부득이하게 수정하였음을 밝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러니까 등록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양이라디오 2017-02-01 18:38   좋아요 1 | URL
광고, 도박, 음란성 글은 자제해주세요ㅋㅋ

다락방 2017-02-02 08:11   좋아요 0 | URL
네 주의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와같다면 2017-02-01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기억.. 끊없는 자책과 후회..

‘그 사람을 좋아한 만큼은 딱 그 만큼이었던 거예요‘ 딱 그만큼..
비로서 숨이 쉬어지고 위로가 됩니다

다락방 2017-02-02 08:11   좋아요 1 | URL
위로가 된다니 다행입니다, 나와같다면님.
딱 그만큼인 정도가 끝나면 또다른 관계, 또다른 감정이, 또다른 방식으로 시작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숨 잘 쉬고 삽시다, 나와같다면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