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오후의 아내
유정선 지음 / 벨아모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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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되는 말들. 기가 막힐 정도로 말이 안된다. 이 책에서 세상은 똥이여....
재미있고 에로틱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건가. 내가 쓰는 게 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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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2017-05-15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써주세요 꼭

다락방 2017-05-15 11:08   좋아요 0 | URL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oonnight 2017-05-15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쓰시면 재미와 수준을 모두 보장하리라 믿습니다. 써주세요!^^

다락방 2017-05-15 12:15   좋아요 0 | URL
아아. 한 번 써봐야 할까요..... (고민고민)

레와 2017-05-15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시도(여러가지면에서)를 해볼수 있지 않을까요? ㅎㅎ

써줘요. 다락방!!

다락방 2017-05-15 15:03   좋아요 0 | URL
다양한 시도...음...그렇군요...음....좋은 아이디어야...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혜윰 2017-05-16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리뷰는 서민적이며 해학적이고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동시에 미래지향적(다락방표 에로스 기대)이네요 ㅋㅋㅋㅋ 나 오늘 이런 식으로만 댓글 쓸 건가봐요 ㅎㅎ

다락방 2017-05-16 18:5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신한 댓글 스타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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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린디 웨스트'는 자신의 책,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에서 '어떤 면에서 보면 페미니즘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아가는 기나긴 과정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라고 말한 바 있다. 나 역시 이문장에 동의하는 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를 '사랑'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을,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깨달았다. 그것을 미워한다고 표현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혹독하게 깨달았달까.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생각하고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최대한 수용범위를 넓혀 상대를 받아들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 스스로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생각하고, 그래서 여태 많은 사람들-특히 '남자'란 성별을 가진 사람들'-을, '어?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사랑해왔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내게는 '건드려서는 안될' 부분, '허락할 수 없는' 부분이 생겨버렸고, 그걸 건드린 사람에 대해서라면 아쉽게도 등을 돌리고 말았다. 내가 그토록 사랑한 사람인데, 하고 수시로 상대를 그리워하지만, 그러나 '그는 내게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는 거였어' 하며, 상황을 떠올리고 다시 고개를 젓는다. 그러니 린디 웨스트의 말처럼, 페미니즘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일 것이다.



이 과정을 이다혜 기자 역시 거쳤던 것 같고,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다혜 기자와 내가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든 것을 깨닫고, 또 우리의 연배가 비슷하며, 우리가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고 그동안의 자신의 말과 행동을 뼈저리게 반성한다는 것 역시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페미니짐은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나를 미워한다는 걸 깨닫는 과정임과 동시에, 내가 얼마나 과거에 무지했는지, 또 지금도 여전히 어느 면에서 부족한지를 자꾸 들여다보려 노력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잘못된 말과 행동들을 했었는지 돌아보며 가슴 아파하는 그 과정을, 이다혜 기자 역시 겪어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알고난 뒤에는 알기 전과 같을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몰랐던 때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내가 보는 세상, 즉 내가 보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개그 프로그램,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책까지, 내 모든 시선은 그전과 같을 수가 없다. 이다혜 기자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니만큼, 어떤 책에서 무엇이 불편했는지, 자신이 그동안 사랑해온 책들이 어떤 시선을 가졌는지, 그리고 지금 자신이 읽는 책들이 어떤지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읽기를 함께 하고 싶으며 또 깊이 응원하게 된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 내가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 좋다고 생각했던 책들을 지금 '다시' 읽게 되면, 그렇다면 어떤 다른 감상을 갖게 될까. 하나의 책이 읽을 때마다 다른 감상을 준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페미니즘을 알기 전과 후에 그 감상은 결을 달리하지 않나. 나는 그래서 예전에 읽었던 좋았던 책을 다시 만났을 때 크게 실망하거나 화가 나진 않을까 걱정되어 다시 펼쳐보지 말자, 고 생각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존 쿳시의 추락을 읽으면 나는 이제 어떤걸 느끼게 될까?). 물론, 그 다른 감상이 기대되어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 있고(어슐리 르귄의 책이 그렇다).


이다혜 기자의 이 책을 읽어보니 나와 비슷한 후회, 나와 비슷한 깨달음, 나와 비슷한 슬픔을 겪어왔는데, 그렇다면 아마도 나와 비슷한 걱정을 가지고 있진 않을까. 계기는 모두 달랐지만 나와 비슷한 시기에 페미니스트를 선언하며 페미니즘 속으로 들어간 많은 사람들이 이다혜 기자의 이 책을 읽으면 모두들 저마다의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우리가 그간 생각하고 느낀 것을 정리해준 책이라 보면 이 책에 대한 적합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는 참으로 딱 맞는 제목이라 하겠다. 그러나,



내용과 별개로 책 한 권을 두고 적잖이 실망하기도 했다. 일단 사이즈가 너무 작다. 내가 생각한 노멀한 책의 사이즈보다 작고, 책을 넘겨보면 행간도 넓고 글자도 크다. 그래서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글자가 적다. 빠른 시간 내에 후딱 읽힌다. 후딱 읽히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아니, 이 정도 분량으로 내다니 좀 너무하잖아?? 하는 기분이 되어버리는 거다. 이정도 분량으로 내기 보다는, 이 정도 분량에 곱하기 3은 해서 책 한권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그런 기분. 그 점이 실망스러워서 별은 3.5로 주고 싶은데, 아아, 알라딘에는 별점 반 개가 표시 되지 않으므로, 후하게 넷을 주기로 한다.


사이즈를 비교하고 있는 책은 마침 내 책상 위에 놓여있던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 이다.







마지막으로, '가스라이팅'의 유래를 알게 된 건 이 책을 읽고난 후의 가장 큰 수확이다.




조지 큐커 감독이 연출한 <가스등>(1944)의 주인공 폴라(잉그리드 버그먼)는 유명한 성악가의 조카로, 그로부터 큰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녀다. 그레고리(샤를 부아예)는 폴라의 유산을 노리고 접근한 뒤 집에 숨겨진 보석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레고리가 다락방을 뒤지기 위해 불을 켜면 그 때문에 폴라의 방에 있는 가스등 불빛이 흐릿해진다. 폴라가 그레고리에게 이유 없이 흐릿해지는 가스등에 대해 말을 꺼내면, 그레고리는 그녀가 미쳤기 때문에 환각을 본다고 말한다. 남편에게서 히스테리와 신경쇠약을 지속적으로 지적받은 폴라는 실제로도 무기력증에 빠진다.

로빈 스턴은 『가스등 이펙트』라는 책에서 이런 심리를 분석한 적 있는데, '가스라이팅' 혹은 '가스등 이펙트'는 상대를 심리적으로 조종하는 가해자와의 관계를 다룬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인정받고자 하는 소방이 잘못된 상대를 만나 빚는 비극으로, 일과 관련해서는 지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조차 자신을 하찮게 취급하는 배우자나 애인, 직장 상사나 부모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영화 <가스등>에 비유해 설명한다. 나의 의견을 기분으로 받아들이는 상대와 대화하기란 쉽지 않다. 큰 그림을 보지 그래? 생리 중이야? 왜 그렇게 예민해? 남들은 괜찮다는데. 대화를 꺼냈다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대화를 접어본 적 있다면,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의 두려움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일차적이고 궁극적인 해결책은 그런 상대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이성적인 비판을 가장한, 반복적이고 집요한 공격을 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지 않도록 조심하라. 만난 뒤 집에 돌아오면서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비판하는 시간을 길게 갖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기분이 어디서 비롯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 당신의 판단을 오랫동안 불신하지 않았는지.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당신이 끌려 다녀온 건 아닌지.

가스라이팅의 가장 대단한 부분이라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보통 상황 조작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분명히 어두워지는 가스등을 정신적인 불안정 때문이라고 몰아가는 식이다. (p.256-258)



덧붙이자면, '분명히 어두워지는 가스등을 정신적인 불안정 때문이라고 몰아가는 식'이라는 문장을 읽노라니,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영원히 사랑해》가 생각난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같은, 세상 달콤한 책을 쓴 작가가, 글쎄, 《영원히 사랑해》같은 책도 썼다니깐?


또 덧붙이자면, 내 기분이 나쁘거나 내가 화가 나 있을 때 상대로부터 '생리중이야?' 라는 말을 듣는 것만큼 빡치는 게 없다. 내 기분을 '생리중이기 때문'이라고 탓해버리면, 내 화는 불필요하며 부조리하며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게 아닌가. 나는 화가 나야할 상황이라서, 기분이 나쁜 상황에 맞닥뜨려서 기분이 나쁜 거다. 내가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지금 생리중이라 예민해졌나' 돌아볼 순 있지만, 자기에게 화냈다고 섣부르게 '생리중이야?' 라고 묻는 건, 무조건 참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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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7-05-2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받아보고 가격에 깜놀. 가성비랄까.. 너무한듯.

다락방 2017-05-22 11:0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좀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었어요. --;;
 
위대한 개츠비 (양장) - 개정증보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직 읽지 않았으므로 제 별은 공정하지 않음을 미리 밝힙니다)

역자가 자신의 번역물에 대해 페이퍼,리뷰,백자평을 통해 반복적으로,계속해서 별 넷에서 별 다섯의 평점을 주기는..있긔없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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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4-2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moonnight 2017-04-21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헐..2ㅠㅠ;;

단발머리 2017-04-21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헐ㅠㅠ 3

시이소오 2017-04-21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정서씨는 정서와 정신에 심각한 장애가 있는듯 합니다.
그러려니 하시길. 관심주지 맙시다.
 
나 여기 있어요 - 봄처럼 찾아온 마법 같은 사랑 이야기
클레리 아비 지음, 이세진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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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을테고 그중에는 내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관계의 시작도 있을 터이다. 이 책에서처럼 이미 혼수상태인 여자를 처음 맞닥뜨리고 나서 시작되는 사랑도 있을 것이고. 남자의 입장에선 혼수상태인 여자를 처음 만났지만, 혼수상태에서 청각만 살아 있는 여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병실에 우연히 들어온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음성과 목소리-모르는 여자에게 하는 이야기-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설정 자체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러나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포장한 것도 사실이다. 영화를 읽는 내내, 혼수상태의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혼 상태-, '마크 레비'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개정판 제목은 '천국 같은')》이 생각났어야 이 말랑한 로맨스에 내가 빠져들 수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페도르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가 자꾸만 생각났다. 즉, 공감보다는 짜증이 더 컸다는 거다. 



우리는 실체가 없는 대상과 충분히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에미'와 '레오'처럼 이메일로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하고, 영화 《her》처럼 목소리로 사랑에 빠지는 것도 가능하다. 폰팅으로 데이트를 하던 시절도 누군가에겐 있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나는 눈 앞에 있는 대상, 재스민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누워있는 여자에게 사랑이 생겨난다고 해서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병실에 들어가서 그녀의 침대에 눕고, 아무리 '두 시간 정도는 호흡이 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제멋대로 호흡장치를 떼내는 것을, 사랑의 연장선상과 과정의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낭만을 치덕치덕 발라대느라 상대의 의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이 책이 로맨스가 될 수 있었던 건, 다행스럽게도, 누워서 청각만 살아 있는 여자 역시 자신의 병실에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남자를 좋아하고, 기다리고, 사랑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건 책을 읽어 여자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인데, 여자 역시 사랑이 싹트고 있었으므로 이게 괜찮아질까? 글쎄? 여자는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내 옆에 누워요' 라고 말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는데? 그러니 여자의 사랑 역시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남자가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행해지는 이 모든 일들은 낭만으로 포장되어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여자가 아무것도 못한다. 아무것도 못해서 누워있고 눈도 뜨지 못하고 기계에 의지해 숨만 쉬고 있다. 그런데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서, 기존에 사랑을 나누던 사이도 아닌데, 거기에 자꾸 가고 침대에 누워서 자??? 




'페도르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에서 남자는 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래서 여자의 집에 몰래 따라가 여자가 샤워하는 틈을 타 여자의 방에 몰래 침입해 그녀의 머리핀 하나를 가지고 나온다. 그러다가 샤워가 끝난 여자와 마주쳐 여자를 겁먹게 한다. 그 여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고 그는 그녀의 간병인이 되는데, 그녀의 머리를 잘라주고 손톱을 다듬어주고 몸을 닦아주고 생리대를 갈아주는 모든 일을 도맡아 하며, 생전에 그녀가 좋아했던 무성영화를 보고 와서는 의식 없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얘기해준다. 왜냐하면, 그녀를 사랑하니까. 그리고는 그녀와 결혼할거라 친구에게 말하며, 급기야 그녀를 임신시키고 만다. 이게 남자가 모두 '사랑해서' 한 일이다. 여자는 자신의 의견을 한 마디도 전달한 적이 없는데.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무성영화 얘기를 해준다해도, 여자가 그걸 바랐는지 바라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그 대상은 일전에 자신의 방에 몰래 침입했던 남성이었다. 그녀가 허락한 적 없는데 남자는 그녀와 결혼할거라 말하고, 그녀가 허락한 적 없는데 남자는 그녀를 임신시킨다. 그녀도 혼수상태에서 이 모든 과정에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고 허락하는 마음이 되었을지, 물론 모른다.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입 밖에 낸 적이 없고(낼 수 없었고!), 그러므로 남자는 '들은' 적이 없는데, 그런데 '우리는 서로 사랑해' 라면서 임신을 시켜?



자꾸 이 영화가 이 책을 읽는데 겹쳐져서, 나는 작가가 쳐발쳐발한 낭만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는 거다. 나는 낭만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설사 상대 역시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한들, 그 사실을 들은 적이 없으면서, 허락을 받은 적이 없으면서 제멋대로 자신의 사랑을 '실행'에 옮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게 이 소설의 낭만이 통하지 않는 이유다. 




아버지는 이제 화가 단단히 난 것 같다. "혼수 상태에 빠져도 다 들을 수 있고말고. 하지만 자명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엘자는 본인의 선택으로 우리를 떠나가는 거야."

"엘자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본인 선택으로 이렇게 됐다고 하실 수 있어요?" (p.251)




생명 연장장치를 떼어내기로 결심한 가족들에게 남자가 나서서 반대를 하는 장면이다. 엘자는 청각이 있었고, 속으로 물론 자신이 죽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므로 남자가 '엘자가 선택한 게 아니다'라고 한 말은 아주 '정확한' 말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그가, 그녀가 한 번도 선택한 적이 없는 '침대에 함께 눕기'를 계속해왔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당신, 이렇게나 잘 알고 있으면서 당신이 한 건 뭔데? 하고 반문하고 싶달까. 




이 책속에 그려진 '친구' 관계 만큼은 좋았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친구가 주인공들에게 있었다. 주인공들의 삶은 그래서 하루를 더 살게 되고 또 연장이 되고 할 수 있었다. 친구, 좋네.. 하는 생각을 책을 읽다 여러번 했다. 그러나 그것이 주인공들의 연애에 이르지는 못했다. 자기들이 좋다는 데 내가 뭐랄 수 있을까마는, 내가 읽고 싶은 연애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니다.




아, 그리고 꼭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런 얘기, 아무리 친하고 다정하고 좋아하는 사이라고 해도 막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너도 빨리 가족이 생기면 좋겠어." (p.150)



일전에 한 친구가 내게 '너도 빨리 연애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하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아니 ... 내가 '비연애' 상태라고 해서 왜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내 연애를, 내 결혼을 니가 바라지 않아도 된다. 


할 말이 없다. 늘 이렇다. 이래서 쥘리앵을 제일 친한 친구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1년 만에 처음으로 눈물이 왈칵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눈물을 보일 수는 없다. 하물며 이 자리에선.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술집에서 질질 짤 수 있나. 수요일 저녁이란 말이다.
"그만 나갈까." 쥘리앵이 말한다.
"뭐?"
"너 울음 터질까봐."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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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2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7-04-12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거리를 읽고 바로 [그녀에게]가 딱 떠올랐는데.. 역시.

전 패스!

다락방 2017-04-12 17:17   좋아요 0 | URL
친구에게 빌려 읽었는데 친구도 읽고 영 찜찜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녀에게 계속 생각나서 즐겁지 않은 독서였어요. -.-

2017-04-12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3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룩말 2017-04-1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미친년 ˝ 이란 말이 자동으로 나왔어요. 그 친구. 지금도 친구예요??^^

연애와 행복이 무슨 상관이죠? 저와 제 옆에 있는 그 분은 서로 ˝사랑해˝ ˝사랑해˝는 수만번 하지만, 제가 ˝ 행복해? ˝라고 물으면 ˝ 아니 ˝ 라고 대답하는 요즘입니다. 그 분의 ˝행복해?˝라는 질문에 저는 ˝참담해˝라는 대답이 나오더군요.

다락방 2017-04-13 09:48   좋아요 0 | URL
그 친구는 지금도 친구입니다. 그 당시에 니 기준을 나에게 적용하지 말라고 말했고요. 훗. 자기 딴에는 선의로 한 말이고 제가 한 말을 알아들었어요.
그나저나 얼룩말님, 옆에 누가 계시군요! 일상속에서도 행복을 찾고 또 서로에게서 행복을 찾으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다정하게 지내시길 바랄게요. 옆에 누군가 있다는 거 참 안정적인 기분을 줘요.
:)

moonnight 2017-04-13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읽지 않기로 합니다. ^^ 저도 영화 ‘그녀에게‘가 끔찍했어요ㅠㅠ;

다락방 2017-04-14 08:45   좋아요 0 | URL
네, 저는 그 영화가 정말 끔찍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영화더라고요. 휴우-
 
아이 없는 완전한 삶
엘런 L. 워커 지음, 공보경 옮김 / 푸른숲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작년 여름이었나, 출근 길에 임신한 여자를 마주쳤다. 나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여자였는데, 갑자기, 아, 나는 이제 임신을 원한다고 해도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비혼'이었던 것, 그리고 임신과 출산, 육아에 맞닥뜨리지 않은 것 모두가 나의 선택이었고, 그래서 나는 지금의 모습으로 살 수 있었지만, 이제와 내가 출산과 육아를 선택한다고 해도 그 가능성은 십년 전, 이십년 전에 비해 훨씬 낮아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몸의 많은 기능들이 노화를 가리키고 있고, 아마도 십 년내에 완경에 이르지 않을까. 나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매순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시간을 돌린다 해도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할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설사 원한다 해도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이 책, [아이 없는 완전한 삶]에서는 이미 알고 있던 얘기들이 수차례 나오는데, 그렇다 해도 분명 의미있는 얘기들이었다. 어떤 이야기들은 알고 있다 해도 간혹 새롭게 인지할 필요가 있으니까. 이를테면 아이를 원하고 그래서 출산을 한다는 것, 그것은 부부 사이에 한 쪽만 원한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아이를 낳는 것은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와 재정적인 것들이 오로지 나를 위해 쓰는 것과 멀어졌음을 뜻한다. 단순히 '낳을까'로 얘기해서 결정해서도 안되는 일이며, 나와 배우자 둘 사이에 한 쪽만 원해서 낳는다는 것 역시 불안함과 불행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출산과 육아는 매우 힘들고 둘이 함께 힘을 쏟아야 그 삶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인데, 그러므로 반드시 나와 배우자 둘 모두 아이를 원하는 상황에서 아이 낳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둘 다 원한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해도 분명 충분한 대화 끝에 결정해야 할 일이다.


아이가 없는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는데, 그들 중에는 분명 자신이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너무나 원했음에도 아이를 갖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누군가는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해 낙태를 햇지만 돌이켜보니 그 순간이 너무나 후회가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혹여라도 비혼인 상태에서 임신을 하게 된다면 백프로 낙태를 할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출산과 육아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면서 나는 그 길로 뛰어들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순간에는, 수단으로써 아이를 갖게 됐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이미 헤어진 연인과 나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든 그와 연결된 끈이 우리 사이에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던 거다. 그러나 이건 이별의 아픔으로 인해 '생각' 했던 거지, 혹여라도 이별 후에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와 연결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출산을 선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출산과 육아가 내가 감당하기에 큰 일이기도 하거니와, 아이에게 단순히 수단으로써 생명을 부여할 순 없는 일이니까.



나는 여태까지 선택적으로 비혼의 상태가 되었지만, 앞으로는 이 비혼 역시 선택보다는 어쩔 수 없이 이르게 될 확률이 크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로 하고 있다. 나는 이성애자이고 그러므로 연애나 결혼을 할 때는 남자와 하게 될텐데, 대부분의 내 나이 또래 성인 남자가 자신의 아이를 낳고 싶어하고,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을 터, 만약 나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는 이미 그전에 나의 임신 가능성이 낮음을 그에게 알려줘야 할테고, 그러나 상대가 아이를 너무나 원한다면, 세이 굿바이,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상대방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은데, 상대 역시 마찬가지로,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를 포기할 순 없을테니까. 



나는 내가 비혼이어서, 출산을 선택하지 않아서, 한마디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했으므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주일의 5일은 출근하여 일하는 삶을 살지만, 그 시간을 제외한 아주 많은 시간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별 제약없이 살고 있다. 내가 버는 돈을 오로지 나를 위해서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 내 시간 역시 오로지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게 가능하고. 나는 내가 먹고 싶을 때 언제는 술을 마실 수 있고, 내가 가고 싶을 때 들로 산으로 놀러갈 수 있다. 집에서 쉬다가도 후다닥 영화를 보러 나갈 수 있고, 내가 자고 싶을 때 자는 것 역시 가능하다. 나는 내가 이런 삶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없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런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해주는데 이런 당연한 얘기를 읽으면서도 그동안의 나의 선택과 또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선택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으니, 이 책은 그 자체로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렇지만 뒤로 가면 좀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주장들이 몇 차례 나오는데,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선택인만큼 그 사람들에게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에게 아이들 복지를 위한 세금을 내게 하는 것을 저자는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지구에 인구가 많은 게 문제인데, 인구를 더 늘리지 않는 자기들이 오히려 세금감면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고 있던데, 이 점에 있어서는 좀 당황스러웠다. '아이들' 인데, 이 땅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한 복지인데, 그것이 아이를 낳은 사람에게만 부담지워서 될 일인가? 나는 내 세금이 아이들을 위해서 쓰여지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 한편 저자는 자신이 가진 돈으로 누군가를 후원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먼 친척의 학비에 보탬을 주고 동네 식당의 종업원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뭘 어떻게 주는 지 아는 것과, 세금으로 내서 아이들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 저자에겐 좀 다른 것이었는가 보다. 



나는 비혼인 상태에서 아이들을 위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여러차례 보아왔다. 그리고 나 역시 이 세상이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비혼이고, 아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은 생각을 한다. 내가 아이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딱 이만큼인 것 같다. 출산과 육아까지는 역시 내가 감당할 몫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데, 뭐,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앞으로 내가 누구를 만나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지금은 또 아무것도 알 수가 없지.



동시에 두가지를 선택할 수 없으니 아마도 완전한 삶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선택한 길이 완전한 삶이라고 믿고 가야할 것이다. 




옳은 길도 틀린 길도 없다. 그저 여러 갈래의 다른 길이 있을 뿐이다. 아이가 없다면 택할 수도 있는 몇 가지 길을 부모가 됐다면 포기해야 한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주변 상황 때문에 혹은 생물학적인 조건으로 부모가 될 수 없었다면, 인생의 다른 목적을 찾아 즐겁게 살면 된다. 우리의 사명은 각자 내린 결정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풍요롭고 알차게 살아가는 것이다. (p.270-271)





"제퍼스 박사의 책(난 멀쩡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아)을 읽고 나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부모 노릇에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게 정상이고, 부모 노릇을 하다 보면 수많은 희생과 불쾌한 순간들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요. 제일 안타까운 건, 다들 제게 엄마가 되는 것은 굉장한 성취감을 얻는 일이라고만 했지, 한번 부모가 되면 무를 수 없다는 사실 같은 부정적인 얘기는 해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p.73)

내가 지금처럼 엄마가 아닌 삶을 살게 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우연이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서 결정하진 않았기에 나이 마흔을 넘기도록 이 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믿을 만하고 편리한 피임 방법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된 듯도 하다. 피임약 덕분에 임신할 준비가 되는 날까지 아이에 대한 고민을 최대한 미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고, 어느새 다른 길을 선택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사십 대 중반에야 내 아이를 가질 기회의 문이 거의 닫혀가고 있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p.74-75)

자녀 양육이 지금껏 해온 가장 보람된 일이라는 의견을 고집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으면 중요한 경험의 기회를 놓친다는 편견이 이 사회에 단단히 자리잡았다. 부모들은 아이 없는 친구들에게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견해를 서슴없이 피력한다. 나는 늘 들어온 얘끼라서 그런 말을 들어도 내 인생이 무의미하다거나 핵심 가치를 놓쳤다는 기분이 들지 않지만, 가끔 감상에 젖을 때면 잠시 내 선택이 후회되기도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말을 남들에게 무심히 내뱉는 부모들은 그런 견해가 아직 자녀를 가질지 말지 결정하지 못한 젊은이드레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르는 듯하다. 자녀를 둘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은 아이를 안 낳으면 인생에서 중대한 무언가를 놓치게 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만약 아이를 기르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는 누가, 언제, 말해줄 것인가? (p.95-96)

"마흔두 살 때 내 안에서 째깍거리는 생체 시계를 인식하게 되면서 잠시 두려웠던 적이 있어요. 마흔다섯 살에 이 느낌이 다시 오더라고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음을 알게 된 탓인지 슬펐어요. 하지만 이내 내 삶의 방식을 확신했고 행복했어요. 아이를 바라지 않았고 아이가 필요한 적도 없었고요. 아이를 정말 원했다면 입양을 했을 겁니다. 슬픔을 느꼈던 이유는 그저 내가 늙어가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거예요." (p.85-86)

어쩌다 실수로 부모가 되었거나, 둘 중 한 명은 아이를 원치 않았는데 부모가 되었거나, 부모가 되고 싶은지 그렇지 않은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부모가 된 경우 결혼 생활이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가족계획을 이미 했거나 둘 다 부모가 되고 싶어 할 경우에는 아이를 출산한 후에도 결혼 생활의 만족도가 그대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높아졌다. 이는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자녀 출산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임을 의미한다.
이는 아이가 없는 부부들도 마찬가지다. 둘 다 자녀를 원치 않는다면 높은 수준의 행복감을 유지하며 살 수 있지만, 한 사람은 아이를 원하고 한 사람은 원치 않는다면 결혼 생활을 원만하게 해나가기 어렵다. (p.182-183)

"내가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 남자를 사귈 때 큰 영향을 주더라고요. 내가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중에 결혼할 때쯤엔 마음을 바꾸리라 기대했던 남자들도 있었어요. 결국 내 마음이 요지부동임을 알고는 나를 찼죠." (p.186)

아이를 양육하는 데 돈이 많이 들긴 하지만, 이는 당사자가 임신 전에 미리 고려했어야 할 사항이다. 자신이 선택한 생활 방식에 대한 재정 책임은 자신이 져야 마땅하다.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든, 반려 동물을 집에 들이든, 집을 사든, 아기를 낳든 마찬가지다. 부모가 됐다고 해서 자녀의 어린이집 비용까지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부담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 (p,23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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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7-04-08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선택한 길이 완전한 삶이라고 믿고 가야한다는 말에 끄덕입니다. 다르다가 틀리다가 아닌, 내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뿐입니다.^^

다락방 2017-04-10 10:2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제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현재를 즐기고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한편, 다른 사람의 선택에 있어서 제가 어떻게든 평가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합니다. 누가 저를 자기 기준대로 평가하는 거 저도 싫으니까요. 보슬비님, 우리 선택을 믿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2017-04-09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0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을 향해서 2017-05-14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보육학을 전공하다가 (원래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고 피아노 만들기 이런거에 재능이 있었기에 선택했죠) 실습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학을 떼고는 그 후로 결혼을 하고는 남편도 그렇고 저도 아이들 원하지 않아서 안 갖고 둘이 살아도 괜찮아 라고 생각했었죠. 근데 그래도 남들 해보는건 해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더 나이 먹기 전에 갖자 라고 생각하고. 그 생각에는 나이가 들면 갖고 싶어도 못 갖을테니까 와 함께 사회적인 통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었던 것도 작용을 했어요. 만약 우리 부부가 이 세상에 홀로 존재했다면 안 갖았을지도 모르겠으니까요. 암튼 불행인지 감사한 일인지 모르지만 결혼하고 5년 후 남편과 상의 후 임신을 계획했는데 아이가 생겼어요. 잘 낳아서 키우고 있는데,
굳이 안 낳아도 되겠다 란 생각이 든다는거죠
아이를 키운다는건 돈은 둘째치고라도 (전 아이를 풍족하게 잘 키워야한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정말 힘든 일이예요 못할 짓이죠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컨트롤 해야하고 읽고 싶은 책 하루종일 보고싶은데 못하고 ㅜㅜ 번거롭고 귀찮게 할 때가 참 많죠
결혼이야 이게 아니다 싶음 이혼 하면 되는데 아이 낳은건 이건 좀 아니지 싶은데 다시 뱃 속으로 집어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거든요 그리고 아예 안 낳았음 모를까 첫째 외로울까봐 둘째도 생각하게 되고
주변에서도 둘째 낳아야지, 키울 때 같이 키워야지 터울지면 더 힘들다느니 어쩌구 저쩌구
전 제게 다시 한번의 인생이 온다면 결혼도 안하고 아기도 안 낳고 연애만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입니다
남들이 뭐뭐 해야지 말하는건...... 뭐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제 삶에 꼭 정답이 될 수는 없다는거
사람은 다 다르잖아요 그 사람에겐 자식 낳고 키우는 일이 행복이고 기쁨일 수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도 있는 거그든요
저도 물론 제 자식이니까 뭔가 뿌듯하고 예쁠 때도 있고 기특하고 귀여울 때도 있죠 여태껏 살아오면서 느껴보지 못한 행복도 느끼고
그렇지만 그건 일부분일 뿐이예요 힘들고 짜증나고 화나고 울고싶을 때가 더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살면서 꼭 이래야 된다 는건 없는 것 같아요
더 나이 들기 전에 결혼하애된다 아이를 낳아야한다 많을수록 좋다 하나는 외롭다 최소한 둘은 낳아야지
요런 말들이요

나이가 먹어가면서 행복의 기준은 철저히 자기만족인 것 같아요 보여지는, 절대적인 행복이 아니라. 물론 우린 더불어 살아가니까 그런것도 완전히 무시하고 살 순 없겠지만요
그 속에서 흔들리고 휘둘리지 않을 만큼 내 자신을 잘 알고 사랑해야겠어요 우리 모두는!

마음껏 행복하세요!!!
전 이미 낳았으니 어떻해서든 제 선택에 책임지고 살아야겠죠...... 휴......

다락방 2017-05-15 08:51   좋아요 0 | URL
꿈을 향해서 님.
긴 댓글 감사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자신이 선택을 해야하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하겠죠.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갈 수 없으니, 저는 제 선택으로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이제는 아이를 낳고 싶다고 결정해도 낳을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그래서 가끔은 걱정스럽습니다. 혹여라도 내일, 내년, 3년 뒤에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땐 어떡하지? 하고 말예요. 그때는 낳고 싶다고 원하고 선택해도 이룰 수 있지가 않으니까요. 그래서 매 순간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신중한다해도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은 남기 마련인 것 같아요.

여동생의 출산과 육아를 보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를 절감했어요. 저는 단지 가끔 만나는데도 그랬어요. 이걸 매일한다면 정말 사는 게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물론, 아이와 함께 보내면서 얻는 행복 역시 저는 포기하는 게 되겠지요. 말씀하신대로 절대적인 행복은 없으니,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것의 결과 안에서 행복을 최대한 누리고 느끼며 살아야 할 것 같아요.

꿈을 향해서님은 다시 태어나면 자유를 선택하겠다 하시지만, 만약 지금 또 그대로 아이를 낳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면,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되지 않았을까요? 제가 그렇듯이 말예요. 어쩌면 나도 더 젊었을 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지금쯤 아이 다 키워놓고 여유를 즐겨야 했던 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걸요.

꿈을 향해서님, 꿈을 향해서님은 님의 선택에 있어서 그리고 저는 저의 선택에 있어서, 그 안에서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도록 합시다.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게 있는것처럼, 잃는 게 있다면 얻는 것도 있을테니까요.

솔직한 댓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꿈을 향해서 님.

꿈을 향해서 2017-05-15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다락방님 말대로 내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미련이 없는 인생은 없을테니까요 맞아요 맞아! 화이팅해보아요! 저도 댓글 감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