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 - 시오리코 씨와 끝없는 무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7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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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힘이 세고 어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주기도 하며 한 사람의 자존감을 바닥에서 끌어올려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또 그렇게 믿는다. 휘청거리는 약한 마음을 지탱해주는 것 역시 사랑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 중에 하나일 것이다. 고서점에서 고서를 다루는 일을 하는 여자가, 책을 읽지 못하는 남자와 사랑을 하게 되면서, 어쩌면 스르륵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르는 사랑을 단단하게 붙잡는 것이, 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의 핵심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난 시리즈를 다 읽어왔다면 알겠지만, 고서점 주인인 '시오리코' 씨는 엄마인 '지에코' 씨와 사이가 안좋다. 지에코가 시오리코의 어린 시절에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갔고, 그 일로 인해 시오리코는 엄마를 원망하는데, 엄마가 고서적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비듯이, 어쩌면 자신도 언젠가는 그렇게 다 내버려두고 훌쩍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그녀에게는 있다. 그래서 혹여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어쩌나, 하는 것이 그녀의 두려움인데, 시오리코의 애인인 '다이스케'는 이에 '니가 떠나고 싶다면 나 역시 같이 가면 되지 않느냐'고 이 시리즈의 5권에서 얘기한 바 있다. 이미 그 때 나는 한차례 이 사랑의 용감함에 대해서 감탄한 바 있다. 혼자 두려워하고 고민하는 것보다는 함께 고민하는 것이 더 나은 해결방법을 찾는 길이라는 것을, 그 때 배웠던 것이다.


이번 시리즈에서도 고서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셰익스피어의 전집에 관한 것인데, 아주 오래전에 발행된 책에 대해 추적하고 또 거기에 얽힌 사연들을 짐작하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시오리코 씨는 예의 책에 대한 지식을 뽐낸다. 아니,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렇지, 책의 발행 년도와 역사, 작가의 출생과 사망까지, 그리고 책 속에 나오는 대사까지 모두 달달달 외우는 건 좀..무리한 설정이 아닌가. 아무리 고서를 좋아해도 그럴 수가 있나... 천재라면 가능한 것인가... 내가 못하니까 남도 못한다고 생각하는건가.... 이래서 사람이 남의 입장이 되어봐야 해. 자, 천재의 집장이 되어보자. 세상에 존재하는 책들의 출판년도와, 작가의 출생과 사망 시기와, 작품목록과, 각 작품속에서의 대사를 나는 외울 수 있는가? 두구두구둥- 있다! 나는 천재니까!


음..천재가 잠깐 되어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각설하고,

이번 셰익스피어의 전작품이 실린 고서는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경매에 나오게 되고 이에 시오리코씨는 자신과 별로 사이가 좋지는 않은 엄마 '지에코'와 경쟁하게 생겼다. 서점을 담보로 삼아 대출을 받아서까지 이 책의 경매에 나서게 되는데, 이 굵직한 축을 놓고 틈틈이 셰익스피의 작품 속의 대사가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등장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혹은 서점에 대한 이야기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소소한 기쁨이 아닐까. 

이 과정에서 지에코는 시오리코에게 고서에 대한 사연과 이야기들을 짐작하고 알아볼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고서를 감정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과 함께 고서를 찾아 전세계를 다니는 것이 어떤가를 생각하게되고, 그러다보니 당연히 착한것 같긴 하지만 아무런 능력도 없는 다이스케 가 별로 마음에 들질 않는다. 지에코는 시오리코도 모르게 다이스케를 찾아가서는 '너란 남자는 능력있는 나의 딸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돼, 니가 아무리 내 딸을 사랑한다지만 너가 내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지?'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이에 다이스케 는 휘청인다. 지에코의 말이 틀린 게 없으니까. 시오리코는 고서에 대해 전문가이고 앞으로 그 능력을 더 키울 수도 있고 그렇게 쭉 뻗어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텐데, 책도 읽지 못하는 스스로가 과연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그녀의 옆에 있는 게 그녀에게 도움이 될것인가.... 다이스케는 조만간 시오리코에게 청혼할 생각이었지만, 고민하게 된다. 


휘청휘청.

흔들흔들.



나는 그 순간 다이스케가 되었다. 사랑은 나를 가득 채워주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만, 그러다가 이렇게 현실의 벽에 부딪쳤을 때,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는 그다지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상대에게 한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럴 때 누구나 휘청거리가 되지 않나. '이런 부족한 내가 그의 옆에서 괜찮을까' 라는 마음 같은 거, 생기게 되는 거 아닌가 말이다. 내가 가진 어떤 약점들로 인해 혹여라도 상대의 앞길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상대를 더 고생시키고 상대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 나는 다이스케가 되어서 같이 휘청였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떠나야 하는가...그게 진정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길은 아닌가...



다이스케는 여기서 실수를 한다. 이 때, 혼자 고민하고 결론 내리기 보다는 시오리코와 상의를 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5권에서 시오리코의 고민을 듣고 다이스케가 '같이 가면 되죠!'라고 말했을 때처럼, 다이스케가 고민을 시오리코에게 얘기했다면 시오리코가 어떤 대답을 들려주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다이스케는 말하지 않았고, 시오리코는 다음날 엄마로부터 이 얘기를 전해 듣게 된다. 그녀는 다이스케가 지금 어떤 마음일지 걱정돼 후다닥 다이스케에게 간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말한다.




"……날 봐요."

거친 숨소리 사이로, 시오리코 씨가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그저께 카페에서 내가 했던 행동이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

"어머니가 뭐라고 했죠?"

그래. 오늘 그녀는 어머니를 만나기로 했다. 우리 집에 불쑥 찾아왔던 이야기도 본인에게 직접 들었으리라.

"네. 어제……."

"잊어버려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서로의 입술이 가볍게 맞닿았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아니면 아무하고도 사귀지 않을 거예요. 다른 어떤 남자도 나에겐 아무 가치가 없어요……. 당신을 사랑하는 내가 나예요."

순간 안개가 걷히듯 머릿속이 맑아졌다. (p.268-269)



그렇다. 그런 것이다. 사랑은 나 혼자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상대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상대와 고민을 나누다보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의외로 간단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면 내가 떠나야 할까'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을 때 상대는 더 단단한 사랑으로 나를 지켜주고 있다. 이 사랑을 지켜내고 있다.



1권부터 7권 완결에 이르기까지 매 권마다 고서당 이란 제목에 걸맞게 고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시오리코 씨가 고서에 얽힌 사연을 얘기하는 것은 소소한 재미를 가져다 주었지만, 이렇듯 시오리코 씨와 다이스케 의 사랑이 점점 더 단단해지는 걸 지켜보는 건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결국 7권 완결에 이르렀을 때, 이거봐, 결국은 사랑 이야기네, 했다. 그리고 그게 무척 좋았다. 점점 더 단단해지는 연인을 본다는 건 무척 행복한 일이니까. 


시리즈는 7권으로 끝나지만 고서를 탐험하는 건 아마도 끝이 없을테고, 그렇다면 시오리코는 계속 고서당에서 고서를 매입하고 또 팔면서 일상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더 많은 더 오래된 고서를 찾아 나서게 될지도 모르고. 그것이 그녀 삶의 중요한 기둥일 것이다. (노동 is very important!) 그렇지만 사랑만으로 살 수 없듯이 노동만으로도 살 수 없다. 고서를 다루는 것이 그녀의 노동이기에 앞서 그녀가 사랑하는 일이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삶속에서 다이스케와 함께한다면 그 삶은 더욱 단단해지지 않을까. 



결국은 사랑이야기이다.






"우리 집……너무 엉망이죠?"
"네?"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지 도통 가믄할 수가 없었다.
"이, 이런 식으로 말하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건 알지만……어머니는 그 모양이고, 외할아버지라는 사람도 멀쩡하다고는……. 다이스케 구능ㄴ 이런 복잡한 집안에서 자란 내가 싫어지지는 않았을까 해서……."
"그럴 일 없어요."
의도했던 것보다 어조가 강해졌다. 시오리코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싫어질 일 없습니다. 어머니나 외할아버지 일은 시오리코 씨와 전혀 상관없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 집안도 멀쩡하지는 않고요."
내 외할머니는 불륜을 저질러 아이까지 낳았다. 사정은 다르지만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일인 건 마찬가지였다. 정도야 다르겠지만, 어느 집이나 나름대로 사정은 있을 거싱다. 대놓고 말하지 않는 것뿐이지.
"우리 집안 일 때문에 내가 싫어졌어요?"
시오리코 씨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됐어요. 모두 옛날 일이고, 현재 진행되는 일도 아니니까. 앞으로 우리가 잘하면 돼요." (p.61-62)

"다양한 요소가 뒤섞여 있지만, 일단 희극으로 분류되는 작품이에요.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에는 법칙이 있어서, 비극이나 역사극 같은 내용이 심각한 작품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썼죠. 이 「베니스의 상인」도 그 법칙을 따랐지만 다른 희극은 해당되지 않아요." (p.72)

"자네는 평범한 사람이야. 살다 보면 언젠가 그 아가씨는 자네를 떠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뭐?"
부담을 주려는 것도, 조롱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시다는 편안하게 서서 똑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 아가씨가 선택한 건 자네야. 그걸로 충분하잖아. 내가 보기에 자네는 번듯한 청년이고, 그 아가씨는 좀 많이 이상해. 자네라는 번듯한 청년이 그 괴짜 아가씨를 선택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거야. 자신을 가져. 중요한 건 마음의 준비야. 남은 인생이 어떻게 굴러 갈지는 아무도 몰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다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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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09-20 1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성도 군복무를 해야한다는 것은 니들도 고생을 하보라는 변태심리가 아니라 그것이 국민의 기본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병역의 의무를 꼭 군대에 가서 수행하지 않더라도 공익요원이나 대체복무 또는 병역세 부과 등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여성들사이에서는 그에 대한 진지한 논의조차 없었었지 않나요? 여성들 스스로가 사회적 약자를 자처하면서 여성으로서 누릴 수있는 이점(특권)에는 약삭 빠르면서도 국민으로서 당연한 의무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과연 페미니즘에는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군요

다락방 2017-09-20 11:52   좋아요 4 | URL
ㅎㅎ 이하라님 댓글 읽으니 ‘젠더 이슈로 논쟁이 벌어지면 그게 어떤 문제든 상관없이 군대 이야기가 나온다‘는 이 시사인 글의 도입부 생각나네요. 아까 글샘님도 리뷰에 댓글에서 언급하셨듯이, 서민 교수님을 비롯한 페미니스트들은 군대 얘기 페미니즘 책에서 저마다 다 하고 있어요. 저는 이해시키거나 설득시킬 의지나
마음이 지금 1도 없고요, 이하라님도 여기저기 군대 댓글 달고 다니시기 보다는 페미니즘 도서를 읽어보시는 게 이하라님을 위해서도 또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도 도움이 될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하라 2017-09-20 11:53   좋아요 0 | URL
여기저기 군대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제가 댓글을 단 원문은 읽어보신겁니까? 다들 군복무를 논점으로 삼고 있기에 댓글이 병역의 의무를 피해갈 수 없었을뿐입니다 그 보다 더 심한건 여성들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더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 얼마전 맘충이라는 특정층의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을 남성들이 만들었다는 글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억측과 피해의식이 요즘 여성들의 의식을 대변하는듯해 씁쓸합니다

다락방 2017-09-20 12:00   좋아요 2 | URL
저도 이하라님의 댓글이 참 씁쓸합니다....

syo 2017-09-20 12:15   좋아요 4 | URL
하하, 듣고 보니 며칠 전 스치듯 봤던 그 말도 안되는 댓글이 이하라님 작품이셨군요. ˝한국 남성의 내면에 모성이 신화처럼 아로새겨져 있어서˝ 맘충 같은 단어를 만들어낼수 없을거라는. 그 말씀이 근거가 된다고는 1도 생각하지 않자만, 이하라님 말씀대로 그 단어를 남자가 만든게 아니라고 쳐도, 이하라님이 말씀하신 그 ˝모성이라는 신화˝는 맘충이라는 말을 만들 수 없을 정도로는 신성하지만, 이미.만들어져 있는 맘충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만큼 신성하지는 않나봐요? 아니면, 이번에도 같은 논리로 남자들은 그 말을 쓰지 않는다고 말하실건가요? 혐오표현을 직접 만들지 않았으면, 사용하는데도 면죄가 되나요? 아니면 여성이 만들었으니, 만든 여성을 먼저 단죄하기 전에는 남성을 탓하면 안되는건가요? 폭행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을 찾아내 벌하기 전까지는 폭행을 실제로 행한 사람을 벌할 수 없는 건가요? 실제로 입은 피해를 증언하는 사람들에게 어째서 억측과 피해의식이라고 함부로 말씀하십니까.

모성의 신화에 대해서 남자인 저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데요? 제 동의와 상관없이 심층심리는 그런 거고 단지 제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 뿐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만약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다면, 여성들 또한 이하라님께 이하라님의 의식은 국민의 기본의무를 말하지만 이하라님의 동의와 상관없이 ˝내면˝은 사실 니들도 고생을 해보라는 뜻이다- 라고 단정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이하라 2017-09-20 12:57   좋아요 2 | URL
모성에 대한 신화 때문에 남성 이 만들지 않았을것이다는 말은 제가 생각해도 억측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꼭 남성이 만들었다는 딱 그만큼의 억측이겠죠 그리고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걸 옹호하는 입장이 아닙니다 다만 저나 제 주위에서는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맘충이란 단어 자체를 안지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병역의 의무를 대체할 방법들이 있으니 그런 논의라도 해보아야 한다는 입장이지 니들도 고생해 보라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성이 누려야할 권리는 페미니즘을 논하기전부터 당연히 누려야 마땅하지 이것이 사회적 사안으로까지 확대되는 상황이 더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외치는 딱 그만큼만 자신들의 의무도 고려하는 것이 좋지않을까 생각했을뿐입니다 그런 생각이다보니 여성의 권리나 피해의식이 묻어나는 글에 댓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를 낳아주신 분도 여성이고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도 여성이란 것을 늘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남녀를 이분법적으로 나눠 본다한더라도 일방적인 피해의식만을 두둔하지 못하기에 보시기에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여성의 기본의무 문제는 앞으로 이야기하지 말아야 겠군요 딸이 태어나면 당당히 자신의 권리에 대한 주장만큼이나 의무에 대해서도 깨어있기를 바라는데 그건 그냥 제 가정에서나 말해야겠네요 제 댓글들이 많이 보기 거슬린다면 앞으로 여성문제가 담긴 글들에는 댓글을 달지않겠습니다

syo 2017-09-20 13:13   좋아요 1 | URL
여성의 복무 문제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이하라님의 의견 자체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선행해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댓글이 달린 글에 충분히 드러나 있는)을 등한시한 채 지금 당장 복무해라 그게 의무다, 아니면 지금 부당한 이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있었는데, 그것이 이하라님께 표출된 것 같습니다. 제가 나댄 부분도, 부당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 점은 사과드립니다.

댓글을 달거나 말거나 하시는 것은 이하라님의 자유입니다. 제게 꼴보기 싫으니 앞으로 댓글을 달지 마라는 말씀을 드릴 권리가 어딨겠습니까. 그저 의견이 충돌한 것이고, 이 충돌이 이하라님과 저 사이에 의미있는 합의점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만 명확해진 것뿐이지요. 알라딘에서는 항상 그렇더라구요. 그걸 다른 분들은 가 아시니까 다들 마음 좋게 하하하 하고 싸움이 안 되는 댓글 달고 마는데, 어디나 syo같은 희한한 놈이 하나씩 있습니다. 에이, 재수 없었네, 하고 덮어버리시길 권합니다. 제 댓글들이 보기 거슬리신다면 제가 앞으로 이하라님의 댓글에 댓글을 달지 않겠습니다^^

이하라 2017-09-20 13:23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syo님 말씀대로 의견충돌이지요 전혀 거슬리지않습니다 앞으로도 다시 뵈어요^^

雨香 2017-09-20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종의 보상심리, 피해의식이 이성을 능가하는 것 같습니다. 실상 군대내에서도 국방의 의무 보다는 잡일, 갑질피해, 위계에 의한 폭력(육체적 폭력은 아니더라도)이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하니까요. 제대로 된 군대, 국방의 의무에만 충실한 군대라면 피해의식이 덜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소한 한국군 출신과 카투사 출신과의 군대에 대한 기억과 군대에 대한 피해의식은 거의 정반대니까요.

근본적으로는 40여년이 넘게 북한보다 많은 국방비를 쓰고, 지금은 30배나 넘는 국방비를 쓰는데, 아직도 징병제를 고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가는 것만이 국방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만들어진 허상도 벗어나야 할 착각중에 하나고요.

(어제 배달된 시사인 챙겼는데, 읽어봐야 겠습니다.)

다락방 2017-09-20 14:01   좋아요 4 | URL
네, 저 역시 군대에 대해 가장 먼저 논의되어야 할 것은 군대내의 인권 감수성과 또 제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군대에 다녀온 이들이 저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말하는데, 그걸 개선할 논의보다 여성의 병역의무에 대한 걸 논하다니, 대체 어디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가 싶어요. 궁극적인 답일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는 모병제가 되어야 하지 않나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모병제 역시도 합리적인 답이라고 확신할 순 없겠지만 저로서는 그것보다 더 나은 답을 아직은 모르겠더라고요. 처우를 개선하고 모병제로 바뀌는 것이 지금보다 더 나은 군대를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고요. 군대라는 게 본래의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 인간이 지낼만한 곳이라면, 그리고 모병제라면, 그때는 가고 싶은 사람이 가서 하고자 했던 바를 할 수 있는 곳이 되겠지요. 우선시 되어야 하는 건 군대라는 곳의 환경과 제도의 개선인데, 아주 많은 남자들이 ‘페미니즘 주장할거면 여자도 군대가!!‘만 부르짖고 있네요.

다락방 2017-09-20 14:08   좋아요 2 | URL
아, 우향님.
위의 글은 어제 배달된 시사인이 아니라 지난주에 배달된 시사인에 있습니다.
지난 주에 배달된 걸 제가 오늘 뜯었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다하다 시사인도 밀리는 1人)

雨香 2017-09-20 14:35   좋아요 0 | URL
아.. 네 ^^ 저 표지 이군요. 저는 뜯기만 한 것 같습니다. ㅋㅋ

2017-09-20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0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Nebula 2017-09-25 0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갈IN다운 글이네요
구독햇던돈으로 치킨한마리 더사먹을걸
남자가 바라는게 여성징병이 아니라 돌봄과 성적서비스를 제공하는 2등시민으로 남길 바란다?
아주 대단한 ‘문화평론가‘께서 헛소리를 해도 그럴싸하게 해놔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뻔했네요
 
엄마는 페미니스트 -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 쏜살 문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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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잘룸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 하지만 네가 내 제안을 모두 따른다고 해도 치잘룸이 네 바람과는 다르게 자랄 수 있다는 점 잊지 마. 산다는 게 항상 뜻대로 되지는 않잖니. 중요한 건 네가 노력한다는 거야. 

그리고 항상 네 직감을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믿어. 아이에 대한 사랑이 너의 길잡이가 되어 줄 테니까. (p.14)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자신의 친구 '이제아웰레'에게 한, '네 직감을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믿어'에 동의한다. 나 역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아 그 때 괜히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게 아니구나' 할 때가 종종 있었으니까. 대화중이나 행동중에 '어?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었다면, 돌이켜봤을 때 그건 아닌 게 맞더라. 어째서 그런지에 대해 바로 그 순간 낱낱이 짚어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닌 것 같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은 있고, 그 느낌은 대체적으로 맞다. 우리는 우리 안의 도덕에 어긋나는 것들을 잡아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친구에게 한말, 네 직감을 믿으라는 말은, 충분히 그러해도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조카가 두 명있다. 지금 현재 여덟살 여자아이와 다섯살 남자아이이다. 이모가 꼴페미인만큼, 조카들을 페미니즘 장착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이모이고, 매시간 아이들과 붙어 있는 게 아니다. 설사 내가 매시간 아이들과 붙어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도, 매순간까지 함께할 순 없다. 아이는 학교나 유치원에 갈 것이고, 친구들과 노는 시간도 있을 것이도, 텔레비젼을 보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순간에 조카들이 보게 되는 사람들과 그 대화들이 내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과 같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이모가 하는 말과 텔레비젼 속에서 하는 말이 다르다는 걸 알게될 것이고, 자라나는 과정에서 그 모든 이야기들중 어떤것들을 취하거나 혹은 버릴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내 조카들이 내 바람과는 다르게 자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내 바람대로 자라는 것이 아이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보장도 없고. 어떤 것이 옳다는 것에 대해 강한 확신으로 아이에게 말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지만,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충분히 필요하다 보여진다. 차별이, 비하가,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가 해서는 안되는 것임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말해주는 건 충분히 해도 되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페미니즘은, 조카가 있는 내게 반드시 필요한 절실한 것이 되었다. 나는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 있는 학교에서, 그리고 앞으로 직장에서, 거리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차별과 비하, 혐오, 괴롭힘에 노출되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떤 어른도 아이를 모든 상처로부터 막아줄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궁극적인 나아갈 길은, 설사 상처받는 일에 맞닥뜨려도 극복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일테다. 페미니즘은 혐오와 비하, 차별을 없애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만, 그것들로부터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네 고통이 네 잘못이 아님을 말해주는 데에도 페미니즘이 당당히 버티고 서있다. 


얘야, 네가 반드시 머리를 기를 필요도 없고, 괴롭힘에 묵묵히 참을 필요도 없어 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리고 네가 괴로운 것이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도 충분히 중요하니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우리가 멈춰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얼마나 명료한 해결책이며 완벽한 방법이란 말인가. 우리가 멈춰야 한다. 




책은 얇고 가볍다. 한 손을 쫙 편 사이즈이고 장수도 적고 심지어 그림까지 있다. 그러니 나같은 이미 헬페미인 사람들이 굳이 읽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내 경우에도 이 책을 읽고서는 큰 감흥이 없었다. 나는 이것보다 더한 것이 필요해... 이정도는 이제 내 가려운 데를 긁어주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은 내 아이들에게 내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어떤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시 되어야 할까, 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맞춤한 책일테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페미니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할텐데, 이 책에는 아주 기초적인 가르침들이 나와있으니까. 


이렇게 기초적인 걸 굳이 알려주기까지 해야하나, 싶지만,

이렇게 기초적인 게 어떤 이들에게는 전혀 기초적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 행동이 어떠해야할지를 다잡을 수 있는 데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란 어른들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하곤 하는데, 책 읽으라고 백 번 말하는 것보다는 책 읽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테고, 가사일은 가족이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이천번 말하는 것보다는 모두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나은 방법일 테니까. 





가사와 육아는 성 중립적이어야 하고, 우리는 여자가 ‘만능‘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바깥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부모들을 지원하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해. (p.20)

육아를 동등하게 분담해. ‘동등하게‘가 무얼 의미하는가는 물론 너희 두 사람에게 달렸어. 서로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똑같이 주의를 기울이면서 맞춰 나가야 할 거야. 말 그대로 50대 50으로 나눈다든가, 매일 점수를 기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만약 육아를 동등하게 분담했다면 저절로 알 수 있을 거야. 네가 화가 나지 않을 테니까. 진정한 평등이 있는 곳에는 분노가 존재하지 않아. (p.23)

치잘룸이 책을 사랑하도록 가르쳐. 가장 좋은 방법은 본을 보이는 거야. 네가 책 읽는 모습을 아이가 본다면 독서가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설사 치잘룸이 학교를 다니지 않고 책만 읽는다 하더라도 단언컨대 제도권 교육을 받은 아이보다 훨씬 더 박식할 거야. 책은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의문을 품도록, 자기표현을 하도록, 자기가 되고 싶은 게 무엇이든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줄 거야. 요리사든, 과학자든, 가수든 독서를 통해 배우는 기술은 누구에게나 도움이 돼. (p.44)

치잘룸이 이런 남자들에게 의구심을 갖도록 가르쳐. 여성이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때가 아니라 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할 때만 공감할 수 있는 남자들. 강간에 대해 얘기할 때 매번 ‘내 딸이나 아내나 여동생이었다면‘ 같은 말을 하는 남자들. 이런 남자들이 피해자가 남성일 경우에는 굳이 자신의 형이나 아들이라고 상상하지 않아도 공감을 잘하지. (p.49)

그토록 많은 여자애들이 ‘머리‘하면 고통을 떠올리는 이유 중 하나는 어른들이 ‘너무 바짝 당긴‘, ‘두피를 상하게 하는‘, ‘두통을 일으키는‘ 종류의 단정함에 순응하기로 결심하기 때문이야.

우리가 멈춰야 해. (p.76)

사회규범의 근거가 정말로 생물학이라면 아이는 아빠보다 엄마에게 속한 것으로 봐야지. 왜냐하면 아이가 태어났을 때 생물학적으로-이론의 여지 없이-확신할 수 있는 부모는 엄마 쪽이잖아. 엄마가 애 아빠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빠일 거라고 추측하는 거고. (p.82)

아이에게 자신의 기준이나 경험을 절대 일반화하지 말라고 가르쳐. 그 애의 기준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라고 가르쳐. 그 애에게 필요한 겸손은 ‘차이는 정상적인 것이라는 깨달음‘ 뿐이야.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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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17-10-19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을 한 백권정도 사서 딸가진 엄마들에게 마구 나눠주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일단 한권 더 사서 친한 친구에게 줬답니다. 너무나 기초적이지만 옆에 두고 읽으면 좋을 거 같아요.

다락방 2017-10-19 17:24   좋아요 1 | URL
저는 읽고 제 여동생에게 주었어요. 여동생은 딸도 아들도 가진 엄마이니, 여동생의 페미니즘이 딸과 아들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여동생에게는 제가 페미니즘을 전달하고요. 후훗.
 
철학 하는 여자가 강하다 - 능력 있는 현대 여성은 왜 무기력한가
레베카 라인하르트 지음, 장혜경 옮김 / 이마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그것을 더 알고 싶어질수록 다른 것들에 대한 앎의 욕망도 더 커졌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고, 말을 하고, 생각을 나누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칠수록, 언어란 것에 대해 궁금해졌고 종국에는 내가 알아야 할 것은 철학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학문은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겠구나, 하는 것도 최근에야 깨달았다. 나에게 그것의 시작이 페미니즘이었지만, 누가 어떤 다른 공부를 시작한다 해도 결국 우리는 만났을 것이다. 학문은 연결된 것이니까. 내가 언어학을, 사회학을, 정치학을, 경제학을 그리고 철학을 좀 더 잘 알게 된다면 페미니즘에 대한 시야도 좀 더 넓어지고 사고도 확장될 것이라는 게 눈에 보였다. 만약 누군가가(혹은 내가) 언어학을 먼저 공부하게 됐다면 혹은 경제학에 먼저 관심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그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 파고 들어가다가 결국 페미니즘을 만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이 학문으로 분류되든 그렇지 않든, 결국은 모르는 상태에서는 '공부'해야 하는 것이었고, 공부는 하면할수록 얼마나 모르는 게 많은지 세상에 얼마나 알아야 하는 게 많은지를 알게 되는 것이니까.



재차 말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철학이라는 것으로 따라가지 않나 싶었다. 그렇게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대학시절 관심도 없던 철학을, 성인이 되어서도 나와는 무관하다 생각했던 철학을 만나고 싶었고, 그 숱한, '이름만 들어본' 철학자들의 이론서를 먼저 읽는 것보다는, 개념을 먼저 잡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마침, 맞춤하게 이 책이 눈 앞에 똭- 보이는 게 아닌가. 좋다, 철학을 공부하기에 앞서, 철학하는 여자가 강하다고 말하는 이 책을 읽어보자. 이것은 내가 접근해야 할 철학에 대한 가장 좋은 입문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거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고, 결과적으로 나는 이 책에 실망했다. 이 책은 내가 생각한 '철학에 대한 입문서'가 아니었다. 이것은 오히려 '자기계발서'에 가까웠다. 아니, 자기계발서다. 조금더 상세히 분류하자면, '여성에게 맞춤한 자기계발서'쯤이 될텐데, 그렇다 해서 이 책이 무용하냐 하면, 그건 또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우리가, 특히 여성들이, 우리를 가둔 굴레를 벗어던지자고 시종일관 얘기한다. 우리가 그렇게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 강조한다. 그러니까, 너무 당연한 얘기다. 우리는 훌륭한 일꾼이면서 동시에 어진 엄마이고 다정한 아내의 역할을 모두 다 갖출 수 없다. 그런 역할들을 모두 다 수행하려고 하느라 잠잘 시간마저 부족한데, 이것은 과연 우리가 '당연히' 가져가야 할 역할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거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좀 더 당당해져야 하고, 거부할 수 있어야 하고, 남자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지 않아야 하고, 힘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얌전하거나 착하지 말자고, 겸손하지 말자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분명,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딱히 속시원한 느낌이 아닐까'를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유의미한 책일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세상과 고정관념에 맞서게 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내게는 이 책이 필요가 없다는 데에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바를 충분히 알겠고, 저자의 뜻에 충분히 동의하지만, 나는, 이 잘난 나는!!! 이미 저자가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그 지점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으음, 이 책은 의미 있지만 내게 필요친 않은 책이군,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절반도 채 읽기 전에 이 책을 덮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세상은 넓고 읽어야 할 책 또는 읽고 싶은 책은 쌓여있는데, 굳이 필요없는 책을 읽으면서 이 유한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싶은 나의 마음, 나의 이 애절한 마음은, 책장을 덮는데 반대했고, 철학자라는 저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자고 결심하게 되었던 거다. 처음 내가 이 책에 기대한 바대로 이 책은 내게 '맞춤한' 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얘기하면서(우리가 권력을 가지자!! 충분히 가질 수 있어!!), 계속해서 철학자들을 소환해낸다. 이 철학자는 이런 말을 했어, 이 철학자는 저런 말을 했지, 하면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나는 한나 아렌트가 궁금해졌다.




궁금해지는 게 많다는 게 나는 좋다. 궁금한 게 많다면 그 궁금함을 모두 해소할 수는 없지만,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테고, 그건 공부로 이어지는 것일테니까. 책은 모든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답은 결코 될 수 없지만, 어떻게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이 책은 딱히 내게 필요한 책은 아니었지만, 다른 철학책을 또 읽어보자, 결심하게 되었다. 




지난 주말에는 창원까지, 페미니즘 철학 강의를 들으러 다녀왔다. 강의를 들었더니 칸트와 들뢰즈에 대해 빠샥하게 알게 되었다.... 라고 하면 너무나 아름다운 결론이겠지만, 나는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게 되어버렸고,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강의를 들으러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런데 다들 앉아서 조금이라도 더 들으려고,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하며 열중했다. 질문도 뭘 알아야 할 수 있는 건데, 나는 지식이 1도 없으니 질문도 못하겠더라. 공부를 하면할수록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는 가에 대해 깨닫게 된다. 




철학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왜 우리는 이렇게 지내는가.

인생은 무엇인가.

그들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왜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인가.



이 모든 근본적인 질문은 결국 철학이다. 우리는 계속 묻고 답을 해야하고 그것을 멈추지 말아야한다. 나는 지치지 않고 게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체력이 딸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더러 받기도 해서, 아아, 이래서 어른들이 공부도 다 때가 있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그치만, 무릇 공부란 멈춰서는 안되는 것이야. 열정적으로 공부해서 후다다닥 앞으로 가면 좋겠지만, 그러다가 지쳐서 널브러지면 오히려 뒤로 가게 되어버린다. 꾸준히 가야겠다.



학창시절 나는 공부를 못했지만, 특출나게 점수가 높은 과목은 있었다. 나는 이게 바로 공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인가보다, 오늘 생각했다. 모든 학문이 연결되어있다는 결론에 이르자, 그래서 전교1등 아이들이 전과목을 다 잘했구나 싶어지는 거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든 분야에 보통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것처럼, 그들은 외국어에도 능통한 것처럼, 무엇을 알고자 하는 욕망과 그것을 채워주는 지식이란 것은 결국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고 응용한 게 아닐까. 나는 너무 늦된 아이였어....그랬던거야.....





마지막으로 별점에 대한 고민을 한다...철학적으로..

나는 이 책에 대해 별을 셋을 줄것인가 넷을 줄것인가...그러니까 사실 읽으면서는 셋이다!! 했는데, 나는 내 자신의 주된 인물이니 내가 읽은 그대로 평을 해야하긴 할것인데, 그런데 이 저자가 틀린 말 한 거 하나 없고 다른 사람들에겐 유의미한 내용일 것이니까 조금 더 줘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최종 결론은 3.5가 되었는데, 알라딘엔 반점짜리가 없으니까...셋이나 넷 둘 사이에 결정해야 할 것인데, 그렇다면 셋을 줄것이냐 넷을 줄것이야.... 하다가 그래, 올림을 하자, 하고는 별을 넷을 주기로 지금 막 나와 내가 쇼부를 쳤다.


삶은 이렇게 질문의 연속이다. 늘 질문하고 늘 답을 구하면서 인간은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이 생에서는 엄마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직장에서 행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인생의 남자가 딴 여자의 품으로 달려갈 수도 있다(그러지마...딴 여자의 품으로 가지마.......돌아와, 짜샤.........). 하지만 그것이 곧 우리가 무언가를 놓쳤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성급하게 땅에서 뽑아 버리는 바람에 말라빠진 식물을 보며 화를 낼 동안 다른 식물들이 조용히 소리 없이 싹을 틔운다. (p.57)





쉽게 반말을 하거나 상대의 반말을 용인하지 마라. 당신은 성인이다. 특히 직장이라는 무대에서 튀어나오는 반말은 쉽게 용인해서는 안된다. 반말은 친밀함을 넌지시 암시하지만 그 친밀함은 대부분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당신에게 은근 슬쩍 반말을 던지거나 당신을 별명으로 부르는 상사는 그 반말 의식을 악용하려는 사람이다. 이럴땐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정확한 발음으로 상대의 이름과 직위를 호명해야 한다. 그럼 권력은 당신 편이 될 것이다. (p.98)

유독 철학과에선 지위가 높은 여성을 만나기 힘들다. 철학과 여대생들은 대학 시절부터 제대로 대우를 못 받고 무시당하기 일쑤이며 재능없는 인간 취급을 당한다. 철학이란 것이 남자들만 가진 희귀한 재능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오랜 시간 방에 틀어박혀 혼자서 비환원주의적 유물론이나 포스트 형이상학의
자유 개념을 연구하여 자식 대신 상을 타고도 남을 만한 우수한 글을 쓴 여성은
‘정상이 아니다‘. 틀림없이 ‘미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의 글을 남자 동료가
쓴 글보다 더 나쁘게 평가하며 그녀의 말을 히스테리컬하다고 낙인찍거나, 더
나아가 아예 입을 못 열게 만든다. 그런 경험, 그 비슷한 경험들 탓에 많은 여성
학자들은 교수 자리를 아예 처음부터 꿈도 꾸지 않는다. (p.14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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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4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4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7-08-2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철학책 좀 보니까 철학 그거 뭐 별거 없더라구요. 한 300000년 정도 공부하면 싸그리 정복할 수 있겠던데요? 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

다락방 2017-08-24 13:24   좋아요 0 | URL
ㅎㅎ 그정도 공부하면 정복 가능하단 말이죠? 오케바뤼 알겠어요. 일단 영생을 얻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 제가 철학 공부하는데 선배님 도움 좀 받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지도 부탁드려요. (꾸벅)

syo 2017-08-24 13:27   좋아요 0 | URL
네, 그렇다면 제가 1년정도 먼저 시작했으니 299999년은 우리 함께 달려볼까요??ㅠㅠㅠㅠㅠ

다락방 2017-08-24 13:30   좋아요 0 | URL
흑흑 그래요 ㅠㅠ 그 머나먼 길, 쇼님과 함께라면 흑흑 외롭지 않겠지요 흑흑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 함께 달려봐요..아니, 난 좀 걸으면 안될까요? (글썽)

syo 2017-08-24 13:37   좋아요 0 | URL
걸으셔도 되요. 뭐 한 백년 살다 가는 인생 600000년 걸리나 300000년 걸리나 큰 차이 있겠어요? 쉬엄쉬엄 갑시다, 막걸리나 마시면서.

다락방 2017-08-24 13:39   좋아요 0 | URL
음... 비도 오는데......막걸리 얘기를 하니.........몹시 흔들리는군요.
오늘 저녁에 막걸리를 마실까 말까 마실까 말까...................................................

아아 역시 삶은 고민의 연속이여..................

비연 2017-08-2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나 아렌트가 궁금합니다...

다락방 2017-08-24 14:18   좋아요 0 | URL
세상은 궁금한 것 투성이죠.... 제가 혹여 공부하게 된다면 페이퍼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불끈!!
 
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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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탄생으로써의 복수, 삶으로써의 응징!!
책장을 덮고 한템포 쉰 다음에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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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7-08-2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오늘부터 100자평도 하시는 겁니까?? 저처럼 치매방지용으로??ㅎ

다락방 2017-08-22 10:59   좋아요 1 | URL
그니까요. 이거 필요해요. 안그러면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읽었다면 어땠었는지 기억이 1도 안나서 말이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