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3월의 도서는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입니다. 그동안 같이 읽기 해오셨던 분들이라면 3월도서를 이미(!) 준비하셨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직 안하신분들은 빨리빨리 하세요. 이 책은 매우 어려워보이므로 좀 일찍 시작해야 할듯합니다. 자, 여러분, 고고!! 함께 읽어요!!



아울러 2월의 도서를 함께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 2월 도서도 아주 주옥같은 글들이 나왔으니 다들 찾아 읽으시기 바랍니다. 아이고, 이분들, 막 뭐랄까, 독서력도 좋아지고 필력도 좋아지고 막 그러고 있어요. 혹시라도 지금 같이 읽기에 참여하지 않으시지만 같이읽기 도서중 읽고 싶은게 있으시다면, 읽으면서 과거 같이읽기 참여했던 분들의 글을 찾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미리미리 준비해야 마음 편한 분들을 위해 4월~6월 도서 안내합니다.



4월, 베티 프리단, 《여성성의 신화》

















5월,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
















6월, 마리아 미즈 & 반다나 시바, 《에코 페미니즘》


















참여방법은 해당 도서 읽으시고 글을 한 편 이상씩(가급적 자주!) 써주시면 됩니다.


[책 제목] 글 제목


이렇게 써주시면 됩니다.



자, 3월도 열심히 읽어봅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라니, 벌써부터 가슴이 탁- 막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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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3-02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리 사두었고.. 책상 위에 살포시 둔 상태로.. 곧 시작.. 하기로 ㅎㅎ;;

다락방 2020-03-02 12:49   좋아요 1 | URL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으으 저는 이걸 읽기도 전에 겁부터 나요. 어렵겠죠? ㅜㅜ

블랙겟타 2020-03-02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부지런한 다락방님 ^^ 이제 막 사고 있는데 이 글을 발견했네요. 미미..리 시작해야겠죠? ㅎㅎ

다락방 2020-03-02 18:05   좋아요 2 | URL
사실 저도 일찍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아직... 책장에서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03-02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리미리 준비해야 마음 편하분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확실히 아는 두 분 있거든요.
ㅂㅇ님과 ㅂㄹㄱㅌ님이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디선가 많이 뵌듯한 그런 분들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20-03-02 18:46   좋아요 1 | URL
초성인데도 뭔가..흐릿하게 보이는 건 저의 착각이겠죠? (・-・)

단발머리 2020-03-02 18:55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네에~ 너무 흐릿하면 100원짜리 동전으로 살살 긁어주시면 잘 보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3-03 07:51   좋아요 2 | URL
저는 개인적으로 미리미리 준비하는 분들을 매우 좋아하는 편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0-03-03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 2월 책도 안 읽었어요 ㅜㅜ 2월 책 읽고 3월 책 읽도록 할게요. 2월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3월 책 구입 먼저 하러 ^^

다락방 2020-03-03 11:54   좋아요 1 | URL
아아, 그러면 너무 순차적으로 밀리지 않을까요? 3월이니까 3월책 먼저 읽고 2월 책 읽으시면 어때요? 아아 그러나 물론, 수연님의 결정이 수연님에게는 최선입니다!!

수이 2020-03-03 12:39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이 3월 책 진짜 어려워! 하셔서 막 불안해서 ㅋㅋㅋ 그럼 두 권 다 동시에 읽어볼게요. 정신 차렸으니_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또 패스하면서 읽으면 되니까.

nonagir 2020-03-04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읽기 모임이네요! 응원합니다:)

다락방 2020-03-04 17:06   좋아요 1 | URL
ㅎㅎ 감사합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대학 교수가 되고 싶었다. 언제나 지적인 사람들을 동경해왔는데, 어린 내가 생각했을 때 지적인 사람의 완성된 형태가 바로 대학교수가 아닌가. 대학교수라고 하면 바로 똑똑하고 지적인 사람, 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교수가 되기 위해서, 그러니까 지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 오랜 시간을 들여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됐을 때 쯤에는 교수라는 꿈을 쉽게 포기했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 노력하는 것도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래, 교수는 내 길이 아니야, 교수를 하는 사람은 타고나는 거야, 나는 아니야..


이렇게 포기했으면서도 사실 너무 오래된 꿈이라 그런건지 계속 저기 배꼽 근처 어긴가에 남아있는가 보았다. 이 책, 《보이지 않는 가슴》의 저자 '낸시 폴브레'는 매사추세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데, 책 틈틈이 교수로서의 일화가 언급될 때마다 너무 부러운거다. 별 얘기도 아니었다. 그저 교수로 일하면서 강의실에 학생들이 정원보다 많이 들어와 의자가 모자란 얘기를 한다거나,  학생들과 함께 뭔가를 논의해보자 얘기를 했다는,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들일 뿐인데. 그런데 나는 그게 너무 부러웠다. 다시 또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든다. 아, 나도 하고 싶다. 나도 교수가 되어서 학생들을 만나고 학생들에게 내가 아는 것들을 가르쳐주고 또 학생들과 함께 얘기하면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찾아드는 거다. 누군가 나에게 '직업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같은 거 너무 말하고 싶다. '낸시 폴브레'는 경제학과 교수인데 호주국립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사회정치이론 프로그램 객원교수이기도 하단다. 세계은행 자문의원이기도 하고, 뭐가 맡은 게 많아...


게다가 옮긴이의 말을 읽노라니, 옮긴이 윤자영 도 메사추세츠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낸시 폴브레 교수랑 공부중이란다. 아아... 내가 되고 싶었지만 굉장히 쉽게 포기했던 교수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어...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정신차리자.



















어제 퇴근 후 집에 가서 밥을 먹고는 이 책을 들고 침대에 들어가 앉았다. 조금 읽다가 [낭만닥터 김사부2]를 볼 예정이었다. 주말에 조카에게 가면 김사부 얘기를 할 수 있을테지. 그 때까지 한시간 반동안 이 책의 남은 부분을 다 읽자, 오늘 다 끝내버리자,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잠이 쏟아졌다. 안돼 읽어야해, 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보지만, 잠이 쏟아지고 쏟아지고 계속 쏟아져서... 아, 모르겠다. 나는 책을 던지고 자버린 것이다. 책 안녕, 김사부 안녕, 나는 자겠네... 그리고 자버렸어. 밥 먹고 금방 자버리니 소화가 될 틈이 있나.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밥 생각이 없는 거다. 그래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네?)






샌드위치 왜케 쪼꼬미야. 햄치즈프렌치토스트도 샀다... ♡ (두 개 다 내꺼!)



출근하는 길에 어제 못다읽은 책을 집어들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데 아 진짜 너무 좋아. 집중 캡 잘돼. 아아...역시 지하철에서의 독서가 짱이다, 최고야. 특히 아침 출근 시간의 지하철, 그 안에서의 독서는 효율 백만배다. 아아,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차오르면서, 이렇게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면, 나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교수... 라는 생각을 하다가, 아아, 됐다, 포기해, 자꾸 쳐다보지마...하였던 것이다.



자, 어쨌든 이 책을 다 읽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쉽지도 않았다. '돌봄 경제학'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책이니 당연히 돌봄 노동에 대해 얘기할 거라고 생각했고, 책의 처음은 그렇게 생각한대로 시작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서 아이들의 교육 문제,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 그리고 국가에서 국민들에게 해야할 복지에 대한 부분으로 막 이야기가 진행되는 거다. 단순히 아이를 양육하고 노인을 돌보는 것에 대한 얘기가 아니구나, 이야기는 어디만큼 확장되는걸까 궁금했다. 물론 돌봄 노동에 대한 게 단순히 개인의 문제, 또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국가의 복지 차원까지 나아가 누진세 , 기업의 고용해고 까지 얘기하다니, 이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되는걸까. 그리고 결국 낸시 폴브레가 하고 싶은 말을 나는 이렇게 알게 된다. 국가의 복지를 얘기하고 기업의 인원감축을 얘기한 건, 당연하게도, 다 이유가 있었다.



아이가 있는 가정은 작은 복지 국가와 같다. 소득 이외의 일들을 우선시하고, 자녀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시간과 돈의 측면에서 소득에 대해 높은 세율을 감내한다. 감원을 풍자한 글들 가운데 『뉴요커』에 로버트 설리번이 쓴 단편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아빠가 보낸 편지"라는 단편인데, 아버지가 식탁에 가족들을 불러 앉혀 놓고 식구를 줄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시간제로 돌리면 음식과 우유 소비가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내 생각에 네 어머니도 17세인 너는 옛날만큼 귀여운 애가 아니라고 인정할 거야"). 시어머니의 위치는 단지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간부인 아버지의 봉급은 올라간다.

증대된 자본 이동은 가정생활의 의무를 갉아먹고 있듯이 시민이 해야 할 의무를 갉아먹고 있다.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다국적 기업이 왜 이 나라에 남아 세금을 내면서 인간의 능력과 자질을 배양하겠는가? 습관의 힘과 낡은 충성심 때문에 한동안은 이 나라에 머무를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경쟁의 법칙은 기업 국가처럼 새로운 기회를 이용하는 데 먼저 뛰어든 기업이 단기적인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주에서 승리할 것임을 시사한다. (p.276)




세금을 걷어서 아이들의 교육에 투자하고 근무시간을 줄여 부모 모두가 돌봄노동에 같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면 결국 그 아이들이 자라서 기업의 근로자가 되고 돌봄노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굳이 낸시 폴브레의 책을 읽지 않더라도 당연한 것이 아니던가.


단순히 GDP의 지수 만으로 그 나라가 잘 사는 나라인지, 살기 좋은 나라인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낸시 폴브레는 얘기한다. 그 GDP 안에는 돌봄노동이 포함되어 있지도 않고, 거기에 당연한듯 따라오는 인간 감정의 가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런것 없이 과연 살기 좋은 나라 라는 것은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인가.




국가 간의 경제 경쟁력을 비교하는 데 전적으로 GDP 에만 의존하는 것은 너그럽게 봐 준다고 해도 유치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장난감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가 이긴다는 뜻 아니겠는가? 철학적 논쟁에 개입하는 것보다는 장난감 숫자를 세는 일이 더 쉽겠지만 그건 변명이 될 수 없다. 다같이 성숙해질 필요가 있으며 경제 복지 지표MEW 에 무엇이 들어가는 것이 좋을지 결정해야만 한다.

현재의 GDP 지수는 실제로는 해를 끼치는 것들에조차 긍정적인 경제 가치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대량으로 유출된 기름을 청소하는 데 돈을 썼다면 GDP 는 상승한다. 기름을 뒤집어쓰고 죽은 가마우지나 물개는 아무 '가치'가 없으므로 GDP 를 감소시키는 걸로 간주하지 않지만, 기름으로 범벅이 된 해안을 청소하기 위해 고용된 노동자들의 임금은 GDP에 산입된다. 홍수나 태풍이 집과 건물을 파괴할 때 돈으로 평가한 가치가 손실되었다고 한다. 자원의 감가상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해가 수질이나 공기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기후의 변화를 야기하면 가치의 손실이라고 계산하지 않는다. 일차적으로 자연 자원에는 가치를 부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된 삼나무가 캘리포니아 원시 우림에서 잘려 나갈 때는 생산된 통나무가 팔린 액수만큼 GDP 가 증가한다. 나무 자체에 체화되어 있는 자연 자원이나 생태학적으로 나무들에 의존하고 있던 식물과 동물 종들의 가치의 손실은 전혀 감안하지 않는다. '생산되지 않은'것들로 간주된다. 우리는 어머니 자연을 우리 자신의 어머니처럼 당연시한다. (p.110-111)





언제나 그렇듯 좋은 책읽기였다. 경제학 공부를 하거나 경제학에 관심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나보다 더 재미있게 읽고 또 가져갈 것들도 더 많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역시나 경제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가르치고 글을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 밑에서 열심히 배우고 따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좋았고. 나는 비록 교수도 될 수 없고 그저 책만 읽을 뿐이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읽으면서 배워나가는 건 너무 좋다. 이 책에서 읽은 게 저 책과도 연결되고 또 저 책에서 읽은 게 이 책과도 연결되는 지점을 찾을 때마다 짜릿해진다. 독서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교수는 될 수 없지만 단단해지기는 하겠지. 그렇게 생각한다.




자, 여러분 3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는,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입니다. 같이 읽어봅시다, 여러분. 아 그런데 어려울 것 같아서 쪼그라든다.. 그래도 읽지 않는 것보다는 읽는 게 낫다는 걸 확신한다.


















어째서 감원 대상이 될 위험이 없는 사람들은 ‘감원‘이 경제에 건전한 영향을 미친다며 입에 마르게 칭찬하는 것일까? 자신은 공동선을 위해 해고당해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안심하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러셀 베이커, 『뉴욕 타임스』, "시장이라는 신" 칼럼 中 - P275

인공유산 반대 운동에서 보이는 극단적인 수사들은 여성이 태어날 아이의 욕구보다 자신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결정을 하는 데 대한 분노가 바탕이 되고 있다. - P279

보수주의 남성들은 책임에 대한 대가로 지도자의 지위를 요구하고 있음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책임을 지는 대신, 여성에게 양자택일의 선택권을 준다. "나에게 권위를 주면 당신을 돌봐 줄 것이다. 내 권위를 빼앗으면 너와 아이는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 P279

근대 사회주의의 기원은 보통 로버트 오웬의 추종자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세기 초 영국 공장 지배인이면서 자수성가한 자본가로서 아동 노동 금지 투쟁을 이끈 사람이다. 오웬과 그 추종자들은 사람들이 공공선을 얻기 위해 협동해야 한다고 믿었다. 동료 시민을 형제자매로 일컬으며 자매도 형제와 같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우파와 좌파 양쪽에서 조롱을 받았지만, 그들은 단지 국가 계획 경제에 의존했다는 이유로 사회주의자로 이름 붙여진 사람들뿐 아니라 소위 자본주의 경제의 진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마르크스 이전의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의 가장 두드러진 약점은 의도만 좋으면 결과도 좋을 것이라는 순진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과 함께 실질적인 이론을 겸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P287

마르크스는 여성이 노동자의 기본적인 생활요구를 만족시키고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데 쏟아 붓는 시간과 노력을 사회적인 측면이 아닌 자연적인 것으로 보았다. - P288

교회를 경멸하기로 유명했던 마르크스는 한때 종교를 이 땅의 정의를 천국의 보상으로 대체해 버린 ‘대중의 아편‘으로 보기도 했다. - P289

다른 사람의 욕구를 이해한다고 너무나 자신하는 조직은 그 욕구를 충족기시킬 가능성이 별로 없을 거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양 극단의 선택 말고는 다른 선택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 세상에 화가 나서 나는 조직을 나와버렸다. - P291

이윤 극대화의 압력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몇몇 제도에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병원이 환자의 권리와 돌봄의 질보다 다른 것을 우선시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학교가 오직 시험 점수만 중시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양로원이 비용을 삭감하기 위해 우리 부모를 홀대하기를 원치 않는다. - P300

여성주의자들은 가족 정책에 대해, 전통적으로 양분된 태도를 취해 왔는데 양쪽 입장 모두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가족 노동을 지지하는 정책은 종종 여성을 가정에 묶어 놓기 위해 입안된다.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에게 유급 휴가를 제공하는 것이 그 예다. 다른 한편 여성을 집밖으로 끌어내는 정책은 전통적으로 비시장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해 왔다. 시장 노동을 하는 조건으로 공적 부조를 제공하는 정책이 그런 예다. 가족의 돌봄 노동을 보상하고 동시에 성 평등을 촉진할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남녀가 모두 시장 노동과 가족 노동을 결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남성의 돌봄 노동에 대한 능력과 여성의 개인적 성취를 위한 능력을 함께 개발하는 새로운 노동 분업을 지향한다. - P306

여성은 때로는 재생산 의무를 방기해 저출산을 야기한 이기적 여성으로 또는 이기적 가족주의와 모성의 화신인 학부모로 비난받는다. 전자는 돌봄 노동을 완전히 회피 또는 포기한 집단이며, 후자는 돌봄 노동을 과잉 공급하고 있는 집단으로 불 시 있다. 그러나 두 집단은 돌봄의 의무를 개인과 가족에게 맡기는 사회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양극단일 뿐이다. 개인과 가족이 태어날 또는 태어난 아이의 경제적 복지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면, 아예 아이를 안 낳기로 하거나 아이의 경제적 기회와 미래를 위해 내 아이에게만 지나치칠 정도로 부모의 자원을 투입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개인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자녀의 경제적 복지가 부모에게 달려 있는 사회가 문제인 것이다. -옮긴이의 말 中 - P343

모든 어린이들이 적절한 돌봄을 받고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받는 것은 개인 간 부의 격차를 완화하는 해결책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옮긴이의 말 中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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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6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6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20-02-26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곧..ㅎㅎ 3월 책은 표지부터가 도전의식(?)을 일으키는... 흠냐. 좀 일찍 시작해야 하나 하고 있슴다..ㅜ

다락방 2020-02-26 15:51   좋아요 0 | URL
저도 3월 책은 좀 일찍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좀 일찍 시작해도 오래 걸릴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제 우리 표지만 봐도 느낌 알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쫄려요 ㅋㅋㅋㅋㅋ

카스피 2020-02-27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척중에 포항공대 교수님이 있으셨어요.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마 서울대를 졸업하고 포항공대 교수를 하셨던 분으로 친척들 사이에서는 수재로 유명하셨떤것 같아요.학창시절에도 열심히 공부를 하셨지만 교수가 된 후에도 정말 열심히 연구를 하겼다고 하던데 그 떄문인지 몰라도 젊은 나이에 대학교내에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아무튼 교수라는 직업이 밖에서는 방학기간도 길고 편해 보이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가 보더군요ㅜ.ㅜ
 

















내가 열여섯 살 생일을 맞은 여름, 어머니는 취약 계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헤드 스타트류의 프로그램에서 교사 보조로 일하는 자리를 알아봐 주셨다. 학생 가운데 어니 로드리게스라는 여섯 살짜리 아이한테서 지독한 냄새가 났는데 심한 악취 때문에 아이들의 놀림을 받기까지 했다. 겉으로는 개끗하게 보였지만 자세히 검사하자 냄새의 원천이 드러났다. 양쪽 귀에서 진득하고 노리끼리한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어 한마디 못하고 차도 없고 복지 혜택을 받고 있지도 않고 의료 보험도 없는 아이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었다. 나는 우리 가족 주치의인 프랭크 마틴에게 전화를 걸어 공짜로 어니를 진찰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닥터 마틴은 역시 의사였던 삼촌 톰과 절친한 친구로서(1970년대 TV드라마에 나온) 닥터 마르크스 웰비처럼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정말 좋은 가족 주치의였다. 그는 어니를 봐 주었고 염증을 없애는 항생제도 무료로 넉넉히 처방해 주었다. 그 다음 그는 어니를 삼촌과 같은 병원에서 일하던 이비인후과 전문의에게 데려가라고 했다. 그 전문의는 어니의 양쪽 고막이 파열되어 속귀마저 감염될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염증은 재발할 위험이 있는데 염증이 재발하면 속귀의 뼈를 점점 갉아먹을 거라고 했다. 결국 청각을 완전히 상실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유일한 치료는 피부를 갖다 붙이는 수술을 해서 고막을 재건하는 것이다. 비용은 3천 달러가 들 것이라고 했다.

그 전문의는 어니에게 수술을 해 줄 수 없다고 하면서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삼촌 톰은 몇 주 걸려 해결책을 마련해 왔다. 그는 시립 병원에 순회차 와 있는 실력 있고 맘 좋은 의사를 알고 있었다. 나는 그가 응급실에 있을 때를 골라 어니를 거기로 데려갔고 그는 파열된 고막을 수술해 주고 필요한 만큼 병원에 머물 수 있게 해 주었다. 양쪽 귀를 고쳐 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였다. 수술 뒤 한쪽 귀에 밴드를 붙인 어니는 꼭 한쪽 귀가 축 늘어진 미키 마우스 같았다. (p.184)





어제는 엄마랑 <낭만닥터 김사부>를 보았다. 나는 존재도 모르던 드라마였는데 조카가 요즘 이거에 푹 빠졌단다. 게다가 이건 시즌2란다. 1은 언제한겨... 아무튼 어제 채널을 돌리다가 김사부가 한다는 걸 알게 되어 '조금 보다가 들어가서 책 읽어야지' 했는데, 13~14부 연속 방송에 텔레비젼 앞에 앉았던 시간이 제법 길었다. 이게 드라마의 나쁜점이야. 한 번 앉아서 보면 계속 앉아있게 한다. 흐미..


내가 본 회차에서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 한쪽 다리가 잘린 채로 응급실에 실려온 남자가 나왔다. 잘린 다리를 가져왔지만, 환자는 수술을 거부한다. 수술을 한 뒤에도 예전처럼 다리를 사용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괴사가 올 수도 있고, 또 설사 수술을 한다고 해도 그 뒤에 치료를 계속 해야할텐데, 자기에겐 그 비용이 없다는 거였다. 한쪽 다리가 없는 채로 살아가겠다고. 이에 김사부는 그에게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아들 앞에서 살아가는 의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며 호통을 치고, 이에 환자와 환자의 아내, 환자의 아들까지 모두 울고, 어쨌든 그렇게 수술을 하게 된다.


이 환자가 다쳤던 공장에서는 뒤늦게야 직원이 도착한다. 임원으로 보이는 그는 환자의 아내에게 산재처리를 하지말자며, 공상처리를 권유한다. 마침 이 장면을 듣고 보게된 김사부는 사람이 다쳤는데 이제야 겨우 와보고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꼬득여 공상치료를 하게 하냐, 라며 나무란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이사람 말 다 개소리니까 듣지 말고 반드시 산재처리를 하라'고 이른다. 산재처리하면 회사가 보험율이 높아져서 안해주려고 하는데 만에 하나라도 앞으로 혹여라도 부작용이 생긴다거나 치료를 받게될 때 환자에게는 산재처리된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거였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장기적인 치료비는 무시하지 못할 금액일 것이다. 나였거나 혹은 내가 보호자였다면 망설임의 여지없이 수술을 선택했겠지만, 그러나 앞으로 살아갈걸 생각한다면 수술을 결정하지 않는 환자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나는 그보다 훨씬 간단한 수술임에도 수술 후에 계속 병원을 가줘야 했으니까. 아마 다리를 자르고 수술을 한 환자는 앞으로도 병원에 방문할 일이 훨씬 더 많아지겠지. 병원비도 계속 대야할 것이고 또 병원에 가는 만큼 일을 하지 못하니 벌어들이는 것도 적어질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환자의 마음은 이해할 수밖에 없다. 다리 없이 살고 싶은 마음은 그 환자라고 있겠는가. 그러나 그 편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병원은 무료봉사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 '낸시 폴브레'가 위에 언급한 것처럼, 고막이 아픈 아이를 치료해주지 않겠다고 한 의사에 대해서 글쎄, 무작정 욕할 수 있을까. 그가 선의를 베풀어주길 바라지만, 우리는 과연 타인에게 선의를 얼마만큼이나 기대할 수 있을까.

'영어 한마디 못하고 차도 없고 복지 헤택을 받고 있지도 않고 의료 보험도 없는' 사람에게 아이의 다친 귀는 차라리 그 원인을 모르고 싶은 것이었을 거다. 알면 고쳐야 하고 고치는 데는 비용이 들고, 그러나 돈은 없으니까. 낸시 폴브레는 다행히 한쪽 귀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었지만, 이런 일은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병원에서는 같은 시간에 돈을 내는 환자를 치료해주고자 하겠지. 우리는 순간순간 고민과 갈등속에 살고 있다. 낸시 폴브레도, 그리고 아이 어머니도, 그리고 책을 읽는 독자인 나도, '누군가가 이 어린아이를 좀 고쳐줬으면' 하지만, 내 마음대로 세상일이 되는 것이던가.




『비즈니스 위크』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는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복지에 대해 "매달 정부에서 돈이 나온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아는 것은 아이에게 나쁘다. 아이의 자기 존중감이나 자긍심을 파괴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유족 보험금이나 생명 보험금으로 사는 가정에서 자라는 것도 아이에게 나쁜가? 아니면 조부모가 개설한 신탁금 계좌에서 매달 지급되는 돈으로 사는 것도 아이에게 나쁜가? 대중 잡지나 TV쇼는 다달이 지급되는 돈을 부끄러워하는 젊은 중산층 유족이나 부자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가?  (p.172)



어떤 경제학자들은 한부모에게 지급되는 복지수당에 대해 그것이 결코 좋지 않은 제도라고 말한다. 위의 인용문처럼 아이들의 자존감을 파괴한다는 거다. 아이들에게 일해서 돈을 버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러나 한부모 가정에서 혼자 사는 엄마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 살아가는 것은 어렵다. 결코 쉽지가 않다. 복지수당은 나라에서 주는 것이고, 그것은 세금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어떤 경제학자들은 혹은 어떤 부자들은 그렇게 부자들의 돈을 가져가서 가난한 사람과 나눠쓰는 게 '그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하는 거다.

학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대체적으로 비슷한 교육을 받게 하고자 가난한 학교가 요구를 하면 부자 학교는 왜 우리가 그래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게 과연 누구를 위해 좋은것인지.



그들은 부자 학교에서 가난한 학교로 재정을 재분배하겠다는, 일명 로빈후드 플랜을 시행하겠다고 공표한 텍사스의 학교 재정 체계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팸플릿은 기금을 내면 세금으로 학교 재원을 충당하는 것과 달리 알라모하이츠 학교에만 전적으로 돈이 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일을 오해하길 원치 않습니다." 하고 기금의 회장은 설명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빼앗긴 것을 충당하려는 것뿐입니다." 이에 대해 어떤 해석과 판단을 내려야 할지는, 누가 '우리인지'와 무엇이 '우리'가 가졌던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지갑을 열지 않았다. (p.194-195)



낸시 폴브레는 자신이 다녔던 모교로부터 팸플릿을 받는다. 오로지 자기학교만을 위한 기금을 모집하겠다는 거였다. 그것이 '우리'를 위한 것이니까. 낸시 폴브레는 이에 지갑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낸시 폴브레가 한 말이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누가 '우리인지'와 무엇이 '우리'가 가졌던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이것이 '결과적으로 누구를 위한'것인가에 닿는 것이라 본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단순히 지금의 현상을 보기보다는, 자, 그렇다면 내가 내리는 이 결정은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그 결과는 누구에게 좋을 것인가, 하는 것. 그건 낸시 폴브레가 지적한대로 내가 누구를 '우리'라고 생각하는지에 달렸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속해있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가진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낸시 폴브레에게 자신의 학교만을 위한 기금을 모집하겠다는 팸플릿을 보낸 학교가 어떤 나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우리' 학교 좋은 학교 되게 도와줘, 였으니까. 그러나 낸시 폴브레가 그 팸플릿을 받고 생각한 자신은 그 '우리'에 속하지 않았다. 낸시 폴브레가 생각하는 '우리'는 다른 우리였다. 그렇다면 낸시 폴브레는 팸플릿의 말에 따를 수가 없다.

어쩌면 많은 학부모들 그리고 많은 졸업생들이 '내가 다닌 학교를 위한 일'이라며 '정말 잘하는 거지', '옳은 선택이야' 라고 기금을 기꺼이 낼 수도 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악하다'고 뭐라고 할순 없을 것이고.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그것이 선함이라고, 그것이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기에 내린 결정이니까.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다들 '악한 결정을 해야지' 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자신의 기준에서 더 나은 방향, 더 옳은 결정, 더 선한 것을 위한 결정을 내리지. 그러나 모두에게 선한 게 과연 있기나 한가. 또한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지금의 내가 내리는 선한 결정이, 아니,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결정이, 정말 선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더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결국 이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어떤 것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면, '자, 나의 이 결정은 결국 어떤 결과를 불러올 것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일반적으로 부유층 가정은 자기 아이가 주요한 수헤자이기만 하면 좋은 학교를 세우는 데 세금을 많이 내고 싶어 한다. 학교 제도에 인종과 계급이 통합되지 못하게 만드는 법적 장애를 줄여 나가면서 대신 경제적 장애를 설치하려는 노력이 부활하고 있다. 바우처(무료 수강권)를 통해 기존의 공립학교를 사립화하려는 열망과 더불어 사립학교로 들어가는 자원이 점차 증가하고 있음은 '남의 아이'에게는 돈 쓰기를 회피하려는 노력을 반영한다. 가난 속에서 자란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은 특히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 문제는 앞장에서 논의된 내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p.195-196)




좋은 학교를 만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낸 기금이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며 좋아할 수 있다. 역시 이 학교에 투자하기를 잘했다고, 이렇게나 보람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낸시 폴브레가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하나의 좋은 학교를 더 좋은 학교로 만드는 게 아니었다. 가난한 아이들, 교육의 질이 낮은 곳에 있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 낸시 폴브레가 원하는 것이었다. 좋은 학교, 부자학교를 더 부자학교로 만들어 계급을 발생시키는 게 아니라, 교육의 질이 낮은 곳의 아이들에게 더 재정적으로 도움을 줘서 결국은 이동네의 교육과 저 동네의 교육의 수준을 비슷하게 맞추는 일. 낸시 폴브레가 옳다고 생각하는 건 그것이었고, 그건 부자학교에 기금을 내지 않게끔 했다.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최선의 결과를 바라며 선택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내가 내리는 결정, 내가 옳다고 생각해 내린 결정이 모두에게 선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끝까지 가져가야 할 갈등이 아닐까.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말을 가져오지도 않고 모두에게 선하지도 않다.







사랑의 포로는 사회 정책이라는 쇠창살 뒤에도 있다. 1990년대에 엄청난 에너지를 들인 복지 개혁을 생각해 보자. 어머니들은 임금 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무책임하다는 공격을 받았다(이에 대해서는 5장에서 자세히 얘기할 것이다). 이 논쟁에서 전반적으로 간과되었던 부분은 빈곤속에서 살고 있는 어머니들 대부분은 아버지들에게 아이 양육권을 넘겨주거나 딴 집으로 입양시키거나 고아원에 데려다 놓기만 하면 바로 훨씬 좋은 경제 여건에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빈곤 여성에게 돌아가는 공적 부조의 아돌 일인당 비용은 고아원에서 쓰는 아동 일인당 비용의 10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가난한 엄마들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과 같이 있고 싶기 때문에 아이를 버리겠다는 위협을 좀처럼 하지 않는 것이다. - P77

사회적 관심이라는 개념은 서방 세계의 연대라는 오래된 개념과 흡사하다. 이것은 가치 있는 대의명분에 사람들이 다 함께 모일 수 있는 좋은 것을 말한다. 나는 좀 우습기는 하지만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연대가 표현된 방식이 너무 좋다. 거대하고 못생기고 구원받을 수 없이 못된 벌레가 외게에서 침입하겠다고 위협하자 파국으로 가던 결혼 관계가 회복되고 인종 갈등이 극복되고 적에 대항하여 무용수, 주정꾼, 모범생, 전사들이 성공적으로 단결한다는 이야기다. - P123

직접적 도움이 필요한 노인을 돌볼 책임을 어떻게 할당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형제들은 종종 어머니나 아버지를 위해 누가 무엇을 할지를 두고 싸우곤 한다. 여기서도 착한 자녀의 딜레마가 있다. 자발적으로 먼저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은 영원히 그 일에 묶여 버릴지 모른다. - P72

그러나 미덕은 항상 보상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 P73

19세기 프러시아 법은 얼마나 오래 모유를 수유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가 남성에게 있다고 정해 두기까지 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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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2-24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침부터 부지런히(?) 읽고 있어요. 의료보험과 복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락방님 글 읽으면서 생각하니 더 가깝게 느껴지네요.
선한 의도와 선하지 않은 결말,이라는 제목도 아주 근사하고 좋아요.
좋은 글, 좋은 사유 잘 읽고 갑니다^^

다락방 2020-02-24 14:06   좋아요 0 | URL
저 너무 다른책 읽고 싶은데 ㅋㅋ 2월이 얼마 안남아서 안돼, 이걸 읽어라! 하고 오늘도 들고 나왔습니다. 낸시 폴브레는 아주 따뜻한 마음의 경제학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우리가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하면서 이렇게 경제학자들도 만나게 되잖아요? 경제의 원리를 이해하고 또 전망하는 걸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여성 경제학자들은 거기에 따뜻한 마음까지 가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을 두루 살피는 눈이랄까요.
일전에 서프러제트 읽을 때 여성의 참정권을 원한 이유중의 하나가, 남자들이 보지 못하는 곳까지 여자들은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나요. 가난한 아이들,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해서까지 신경을 쓰고 그것에 대한 제도를 만들고자 하니 여자들의 참정권이 꼭 필요했다고요. 낸시 폴브레의 이 책을 읽으면서도 더 깊은 곳까지 더 꼼꼼하게 살피는 경제학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뭔가 명징하게 확 잡히는 구절들만 있는 건 아니라서, 역시나 두 번 세 번 읽는 문장들도 존재하지만,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에요.


우리는 모두 자신이 내리는 결정이 더 옳은 결정이라고, 더 선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나중에 가서야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하면서 나쁜 결말을 맞닥뜨리고 후회하는 일들도 많고요. 의도가 선하다고 결과가 선한 건 아니라는 생각을 요즘엔 참 많이 해요.
 
















지난 20년간 미국에서는 여성주의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이 일어났다. 그들은 여자들이 점점 더 이기적이 되고 있음을 우려했다. 그러한 보수주의자들 중 하나인 러시 림보는 여자들이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는 생각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여성의 일은 "인류가 지속되는 데 꼭 필요한 가치들을 지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지 길더는 여성성이 아름다운 것은 "인간을 교화하는"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앨런 블룸도 남자가 목표를 성취하는 책임을 지고 여자가 보살피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미국인의 정신은 끝이 났다고 한탄했다. 사실 그 부담의 차원을 깨닫기 전까지는 참 황송한 말씀이다. 문명화는 전적으로 여자만의 책임은 아니니까. (p.45)




세상은 여자를 욕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경우든 끌고오고 어떠한 시대든 끌고온다. '예전에 비하면 여자들 대우가 지금 훨씬 나아졌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예 잘못된 비교를 하고 있다. '예전'의 여자들을 끌고 오려면 그 비교대상은 '예전'의 남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전의 여자들에 비해 여자들의 대우가 나아진 걸 지금 가져오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여자들이 점점 더 이기적이 되고 있다는 위의 인용문도 마찬가지. 여자들이 점점 더 이기적이 되어가는 동안, 그렇다면 남자들은 점점 더 이타적이 되어갔는가? 한 유튜버는 오늘 '여자들만 모이면 문제가 터진다'는 뉘앙스의 방송을 했던데, 그렇다면 '남자들만 모이면' 아무 이상이 없는 아름다운 공간인가? 불법촬영물을 돌려보고 성매매 공모를 하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 시켜서 품평하는 게 바로 '남자들만' 모였을 때 일어나는 일이 아니던가?



선한 사회는 궁극적으로 모두가 바라는 바겠지만, 여자는 특히 더 이타적이어야 하는가? 여자가 남자들만큼 이기적이면 안되는가? 남자는 이기적이어도 되고 여자는 그러면 안되는가? 왜 남자와 사회는 여자에게 '더 선하기를', '더 이타적이기를' 기대하는가. 선한 사회로 가기 위한 책임은 여자에게만 있는건가?



문명화는 전적으로 여자만의 책임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전적으로 여자의 책임으로 돌리려고만 한다. 여자들은 친절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가 여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여자들은 주변을 불편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사회가 여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성추행을 당하고 있어도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돌려서 거부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아이를 낳으면 전적으로 책임져서 돌봐야 하고 부모님이 아프면 여자가 돌봐야한다. 그것이 사회가 여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남자들을 기죽이면 안되고, 남자들 위로 올라서려고 하면 안되고, 싸가지없게 말하면 안된다. 남자에게 헤어지자고 말하면 안되고, 섹스할 때는 언제나 만족한듯한 연기를 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가 여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아이의 양육을 남자도 같이 해야 한다고 했더니, 싫은 걸 '싫어'라고 말했더니, 이제 여자들은 이기적이 된다. 그리고 여자들이 이기적인 세상이 되니 세상이 선할리가 없다. 세상이 망가지고 있다. 여자들이 이기적이라서. 마치 선한 사회에서 선한 남자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여자들이 이기적인 바람에 세상이 뒤집어졌다는 식이다. 그런식으로 여자를 혐오한다. 세상을 망친 게 이기적인 여자들인것처럼.


문명화는 전적으로 여자만의 책임이 아니다. 사실 강간문화는 남자들의 책임이 아니던가.



좆까라 그래, 진짜..





오늘날 가부장적 강제는 더는 인정받을 수 없다. 다른 한편 순수한 이기적 개인주의는 추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 최소한의 이타주의가 없이는 사회를 재생산할 수 없다. 서로를 돌보는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 책임이 무엇이며 어떻게 강제되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본성이나 자비로운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보상과 처벌이 아마 필요할 것이다. 친절이라는 젖은 마르지 않는 샘에서 자연적으로 솟아 나오는 것도 아니고,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서 생산되는 것도 아니다. (p.53)




그러나, 여전히,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욕을 먹어도, 여자들은 착하다. 친절이라는 젖은 마르지 않는 샘에서 자연적으로 솟아 나오는 것이 아닌데도, 여자들은 착하다. 못되게 굴려고 해도, 이기적이 되려고 해도, 남자들에 비하면 어림도 없다.






주말에 영화 [버즈 오브 프레이]를 봤다. 전편을 보지 않았지만 이 영화의 시작에서 할리 퀸이 '조커'의 여자친구 였음을 말해준다. 박사학위까지 받고 정신과 의사였던 할리 퀸이 조커를 만나 기행(?)을 일삼다가 조커와 헤어지고난 후부터가 이 영화의 시작이다. 나는 이 간단 요약을 보는데 너무 하드코어라 힘들었다. 조커랑 사귄다는 게 일단 너무 싫었고, 이 여자가 박사학위까지 있는데도 이런 삶의 형태를 갖춘게 너무 속상하고 술과 약물과 제정신 아님.. 같은게 너무 힘들어서 아아, 이것은 내 타입의 영화가 아니다... ㅠㅠ 하고 괴로워하였던 것이다. 제가 이래봬도 바르고 건강하고 규칙적인 삶을 지향합니다... 하아-



그러나 영화는 중간 이후부터 확 달라지기 시작했다. 술을 먹이고 납치하려던 납치범들로부터 할리 퀸을 구해내는 여자가 나오면서 부터랄까.



나쁜 놈들의 다이아몬드를 훔친 덕에 소녀 '카산드라'는 현상금이 걸린 채로 수배된다. 할리 퀸은 자신이 살기 위해 이 소녀를 잡아오려고 했었다. 자신이 믿었던 식당 주인이 자신을 밀고한 걸 알고 역시 세상엔 믿을 놈 하나 없구나, 세상은 똥이야, 나도 나만 챙기면서 살겠어, 하면서 그 소녀를 나쁜놈들에게 넘기려고 하는거다. 친절은 마르지 않는 샘에서 그저 샘솟는 게 아니기에,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아마 바로 넘겼을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할리 퀸은 이제 소녀를 보호하기로 한다. 그리고 여기에 각자의 이유로 다른 여자들이 함께한다. 경찰이었고, 가수이며 운전기사였고, 석궁 킬러였던 여자들이 할리 퀸과 함께 이 소녀를 보호하는 거다. 한 명은 소녀에게 저기 숨어있으라 하고, 또 한 명은 싸움판이 벌어지는 통에 소녀에게 작은 장난감을 건네주며 '이걸 꼭 쥐고있어'라고 한다. 싸우다말고 이들은 '카산드라 어디있지?'하고 카산드라가 무사한지 살핀다.



소녀 하나를 보호하기 위해 이 여자들이 힘을 합쳐 싸우는 장면은 정말 좋았다. 할리 퀸은 소녀에게 '네가 날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고 고백한다. 소녀를 보호하기 위한 이 여성들의 연대는 얼마나 근사한지!!




경찰이었던 여자는 언제나 자신의 공을 가로챘던 남자 때문에 이번에도 실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오랜시간 경찰로 일하며 버텨왔지만 역시 견고한 남성의 무리, 성취를 앗아가는 남성의 무리틈에서 이제 그만두기로 한다. 그리고 이 여자들은 모여서 자경단을 결성해버려. 세상 멋지다!!




세상이 똥같이 되는 게 여성들이 이기적이 되어서가 아니다. 이기적인 세상 가운데에 여전히 친절을 베풀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나마 이정도 선한 세상으로 유지되는 거다. 문명화는 전적으로 여자의 책임이 아닌데, 여자들은 선한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나는 소녀를 보호하는 이 여성연대를 사랑하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소녀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많은 경우에 여자들이 지금보다 더 못되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2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시작했다.




경제학자 대다수는 정직과 신뢰 같은 사회 규범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시장이 잘 돌아가게 하는 것이 그런 규범이기 때문이다. 규범 없이는, 족쇄를 풀고 나온 자기 이익 추구는 기만과 강탈을 일으킬 것이다. 자고로 목을 베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사람과는 거래가 쉬운 법이다. 보이지 않는 악수가 보이지 않는 손을 돕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정직과 신뢰를 공고히 하는 사랑, 존중, 돌봄은 어떤가? 경제학자들은 이타주의 같은 감정은 인정하나 애덤 스미스가 도덕 감정에 대해 그랬듯 그것을 이미 주어진 것으로 다룬다. 큰 실수가 아닐 수 없다. - P19

어느 때든 비용과 이익을 고려하기 마련이고, 선택의 결과는 누가 비용을 지불하고 누가 이득을 누리는가에 맞물려 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따르는 비용을 일방적으로 부담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자식을 많이 낳는 것에 대해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 나아가 여성이 양육 전문가가 될수록 여성은 남성에게 더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아버지들은 대체로 각족을 돌보는 데 따르는 책임과 더불어 권력을 획득한다. 생물학적인 차이에서 생기는 노동 분업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통제의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한 통제는 평등 사회가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의 손을 들어준다. - P34

경제학자 대부분을 포함한 보수적인 사회 사상가들은 여성은 본래 아동 양육에 적합한 존재이며 따라서 병자나 노약자를 돌보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찌 됐건 특화는 효율성을 높인다. 그러나 특화는 또한 인간의 능력과 자질의 게발과 협상력 행사에 영향을 미친다. 단기적으로 보면 한 국가가 설탕과 바나나만 생산하고 다른 한 구가가 컴퓨터와 총만 생산하는 것이 효율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설탕과 바나나만 생산하는 국가는 국경을 지킥나 고유의 기술을 발전시킬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 같은 논리는 아이를 기르고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만 하는 사람한테도 적용될 것이다. - P34

경제적 의존은 여성의 복지를 그들의 아버지와 남편의 복지에 달려 있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여성은 다른 사람의 필요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개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부인당한 사람들은 자신이 분리된 개인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 P35

물론 누군가를 강제로 사랑하게 할 수는 없다. 종속은 항상 양질의 돌봄을 낳는 것이 아니다. 종속은 긴장, 분노, 격노마저 일으킬 수 있다. - P35

인간은 공통의 유전 형질을 공유한다. 직계 친족에 대한 이타주의는 그보다 덜 가까운 타인에 대한 이타주의를 장려한다. 우리는 종종 자식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는 짝에 대해 이타적이게 된다. 자식뿐만 아니라 형제자매, 사촌, 조카도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으며 그들이 다시 자식을 갖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의 유전자와 결합될 것이다. 친족 중심의 이타주의는 미래에 대한 관심을 강화한다.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직계 친족뿐만 아니라 미래에 살게 될 다른 사람들에 대해 걱정하게 만든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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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2-10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된 여자에 대한 생각이라는 건 사람들에게 아주 고정화된 건 같아요.
나쁜 남자,가 츤데레로 미화되는데, 나쁜 여자는, 그냥 못된 년이니까요.
여성에 대한 이타심의 강요,라고 제 책에도 메모해 두려구요.

다락방 2020-02-10 14:12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는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위에 인용한 문장들로만 봐도 맞는말만 하고 있어서 말이지요.
여성을 이기적이라 욕하기는 아주 쉽고 그리고 한 명이 이기적인 년이 되는 이상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속도가 빠르죠. 그리고 그 이기적인 년들 때문에 될 것도 안된다, 라는 생각도 그렇고요. 저는 이 모든게 여성혐오라고 생각합니다. 으 너무 끔찍해요 진짜 ㅠㅠ

2020-02-10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20-02-11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읽기 시작했군요! 저도 지금 매일 조금씩 읽고 있나이다. 재밌더라구요^^

다락방 2020-02-11 12:02   좋아요 0 | URL
1월의 책보다 읽기에 수월하지요? 저는 경제학자가 썼다는 게 너무 좋아요. 그냥 여성 경제학자의 존재를 아는 게 기뻐요. 으흐흣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2월 도서는 '낸시 폴브레'의 《보이지 않는 가슴》입니다. 자, 부지런히 함께 갑시다.

2월 짧아요!!



**1월도서 완독하고 글도 써주신 분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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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1-31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월 하루 남았어요! (5장 낑낑... 담달에 일찍 시작해야지 결심) 참 2월 윤달이네요?! 29일까지 있어요! ^^

다락방 2020-01-31 11:11   좋아요 0 | URL
네, 1월 아직 다 안갔고 또 넘겨서 읽으셔도 됩니다. ㅎㅎ
2월 도서는 1월 도서보다 좀 쉽지 않을까, 라고 아직 읽기도 전에 생각해봅니다만, 읽어봐야 알 수 있겠지요.
힘내세요, 유부만두님. 뽜샤!

수이 2020-01-31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내일부터 바지런히 읽어보려고 해요 다락방님! 1월 도서 넘 어려웠는데 다시 꼭 읽어보고싶어요.

다락방 2020-01-31 11:11   좋아요 0 | URL
1월 도서 저도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도 3,4장은 아주 씐나게 읽었어요. 후훗.
2월 도서는 덜어렵지 않을까 기대하는데 어떨지 모르겠어요.
자, 힘내서 2월도 같이 읽읍시다!

단발머리 2020-01-31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월 읽기 준비하고 있어요. 먼저 읽으신 분이 어렵다, 안 어렵다 알려주심 어때요? ㅎㅎ
전 1월책 일찍 시작했다가 완전 좌절.... 나만 어려운 거야 ㅠㅠ 이랬거든요.

비연 2020-02-01 12:41   좋아요 0 | URL
전 1월 책 이제 거의 막바지.. 2월 첫 주말은 1월 책에 쏟고 (흑흑) 담주부터 2월책 미리 시작...
좀 기다렸다 읽을까? 라는 마음도 생기네요 ㅎㅎㅎㅎ 누가 알려주면 각오라도 ~

다락방 2020-02-02 15:18   좋아요 0 | URL
2월이 29일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중순 지나서 시작해야지 했다가 그보다는 좀 빨리 시작해야겟다 싶고요. 누가 먼저 시작하려나요. 겟타님이 하실까... 비연님이실까... ㅋㅋㅋㅋㅋ 아마도 위에 수연님 댓글 보면 수연님이 가장 먼저 시작하실지도 모르겠어요. 후훗.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