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1883년 '우생학'(eugenics)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우생학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골턴은 다윈과 맬서스의 사상을 결합하여 인종의 질적 저하를 막기 위해 '선택적 육종'을 하자고 주장했다. '적자'는 더 많이 낳아야 하고 '부적자'는 덜 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합과 부적합은 영국 중산층의 가치기준으로 판정되었다. 골턴의 관심은 사람들의 유전적 자질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사회연구에서 통계를 장려했으며 유전적 자질을 측정하는 등급체계도 도입했다. 우생학에 통계적 방법을 적용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이론에 '과학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수학적 과정과 통계야말로 과학적 객관성의 증거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골턴은 흑인들에게 지적인 면에서 백인들보다 두 단계 낮은 등급을 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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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자들의 목표는 사람들의 인종적 자질을 일람표로 만들어서 우수한 인종의 번식을 늘리고 열등한 인종의 번식은 줄이자는 것이었다. (p.309-310)



우생학, 그러니까 우수한 인종의 번식을 선택해서 늘리자라는 주장에 대한 글을 읽노라니, 오래전에 본 영화 《스피시즈》가 바로 떠올랐다.















지금 이렇게 링크 올리려고 보니 2,3편도 있네?

내 기억을 확실히 하고 쓰기 위해 1편을 다시 보려고 했더니 넷플릭스에도 없고 네이버에도 다운로드가 안된다. 하는수없이 오래전 기억에 의지해서 쓰자면,


그러니까 여기에는 외계종이 나온다. 처음에 어떻게 외계종이 이 지구의 연구실에 들어와있게 된건지 모르겠지만, 아니, 실험으로 만들어진건가, 어쨌든 소녀였다가 금세 자라서 성인여성이 된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성인여성이 된 외계종은 번식을 해야 하는거다. 연구실을 탈출해 번식하기 위한 짝을 찾는데, 워낙에 출중한 얼굴과 몸매라서 남자들이 들러붙고, 그녀도 번식을 원하니 성관계를 가지려고 하지만, 가까이에서 성인인간남자를 마주한 순간 외 외계생명체는 그와 관계를 갖지 않고 죽여버린다. 아, 모르겠다. 검색해서 줄거리 가져오자.





그러니까 '씰'이 그 외계 생명체 주인공이구나. 가져온 줄거리에는 '맘에 안드는 남자'를 살해하는 걸로 나오지만, 씰은 섹스를 하려고 생각한 상대 남자가 어떤 열등한 점을 가지고 있는지 바로 파악이 가능했다. 병을 가지고 있다든가 하면 그 남자와 섹스하기를 거부하는거다. 우수한 종을 찾아 섹스를 하려고 하는 것. (아, 다시 보고싶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거다. 이걸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까 내가 섹스를 하려고 한 이 남자가 치명적인 병(영화에서는 성병이었던 것 같다)을 가지고 있는건 아닌지, 폭력성을 가진건 아닌지, 그러니까 일종의 '열등한' 면에 대해 내가 섹스 전에 파악이 가능하다면 좋겠다, 했던것. 순전히 나 하나만 놓고 봤을 때 나는 그게 미리 파악이 가능한 씰이 부러웠던 거다. 그거 어떻게 알지, 뭐 보고 알지? 나도 알고 싶은데?



흑인들의 등급이 백인보다 낮다, 백인이 우수하니 백인을 더 태어나게 하고 열등한 인종을 덜 태어나게 하자,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또 실천에 옮기려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니 확실히 '와 이런 놈들을 봐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하면서, 스피시즈를 보고 씰을 부러워했던 내가 떠오른거다. 내가 원한 것도 그러나 결국은 우생학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같았던 게 아닌가? 내가 바란 것도 그거 아니었어?

결국 우생학 연구소도 생기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나같은 사람들이 존재했으며 다수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1880년에 태어났다면, 그 때를 살았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그나저나 스피시즈 다시 한번 보고싶은데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네..


스피시즈 생각이 났다고 하지만, 이 책은 읽는 내내 국내 예능 프로그램인 [정글의 법칙]이 떠오른다. 어쩔 수 없이 그렇다.


여튼, 464페이지까지 읽었다.





과학자들은 스스로에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다른 어쩐 존재에게도 해서는 안된다. - P120

새로운 과학은 우리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우리가 육체를 가졌음을, 우리가 어머니 대지에 의존하고 있음을, 그리고 우리가 여성에게서 태어났고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 P121

우리의 감각은 지식의 원천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모든 인간행복의 원천이다. - P121

현대인들-현대 남성들-을 위한 제 3의 공간은 여성, 엄밀히 말해서 여성의 육체이다. 여성의 육체는 대다수 남성의 욕망이 투사되는 스크린이다. - P240

오늘날 폭력과 욕망, 동경과 환상 간의 관련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포르노그래피이다. 포느로그래피는 남성들에게 여성의 육체에 대한 이미지 혹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각조각 나뉜 육체의 선택된 일부를 보여준다. 그들의 욕망은 현실의 살아 있는 여성은 물론 아니고 한 사람의 여성 전부도 아닌 이 조각들에 집중되어 있다. 동시에 이들 이미지는 이 육체와 남성의 관계를 특징짓는 폭력을 반영한다. 폭력과 욕망을 들이미는 이러한 포르노그래피적인 시선이 수많은 상업광고, 쏟아지는 잡지와 비디오와 텔레비전, 영화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경제성장은 포르노그래피적 시선에 기댄 이러한 종류의 광고에 점점 더 의존하는 것 같다. 자연에 대한 동경과 마찬가지로 해체되고 벌거벗은 여성의 육체에 대한 이 열망 역시 전적으로 소비주의적인 것이다. - P242

유럽과 일본, 미국 남성들이 매춘관광에 끌리는 이유는 대체로 그들이 경험할 수 있는 남녀 간의 주종관계와 권력 때문인 듯하다. 심리학자 버티 라차(Betti Latza)는 태국에서 섹스관광을 즐기는 독일남성을 연구했다. 그녀는 남성들이 태국 ‘연인‘에게 자신의 숙소를 청소하게 하고 하루종일 밥을 차리게 하며 노예처럼 봉사하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섹스는 둘째 문제이고 남성들이 진짜 즐기는 것은 이들 여성에 대한 절대권력이다. - P243

지중해의 해변을 찾는 유럽인 관광객들은 해변을 파괴한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언덕과 전원으로 달리는 자동차 운전자들은 바로 이런 풍경을 파괴하고 있으며, 그들이 오염 되지 않은 자연을 보기를 원했던 숲은 자동차 배기가스로 파괴된다. 태국에 섹스관광을 간 남자들은 그곳 여성들을 파괴하며 그들을 매춘부(prostitutes)로 만들고 AIDS에 감염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동경 이전에 파괴가 있었고, 낭만화 이전에 폭력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 P257

부족민 살해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보들리에 으하면 1971년 수많은 독일인을 포함한 백인정착민들이 구아야키(Guayaki)전리품으로 집을 장식하려고 수많은 구아야키 인디언을 죽였다고 한다. 브라질과 꼴럼비아에서도 목축농장을 만들려는 백인들이 그 지대에 살던 원주민을 총과 독약, 다이너마이트를 동원하여 몰살했다고 전해진다.
대개의 경우 이 살인자들은 누구도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했습니다"라고 한 살인자는 말한다. "정부에서 처벌하거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으리란 걸 알았기 때문에 인디언들을 죽였어요." - P263

우리가 자연에게 저지른 일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저지른 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가부장적 폭력에 대한 역사적 경험이 있고, 이 경험에도 불구하고 생존지식을 지니고 있기에,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이 점을 덜 잊어버린다. 그리고 바로 여성-그리고 몇몇 남성-들이 생존기반의 파괴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ㅐ롭고 현실적이며 대안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 P281

재생산기술은 여성들이 그것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자본과 과학이 그들의 성장과 진보의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개발된 것이다. - P299

반다나: 삶에서 지키고 싶은 가장 중요한 세가지를 꼽으라면 무엇을 들겠습니까?

차문데이: 우리의 자유와 숲과 식량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우린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난뱅이죠. 우리가 먹을 식량을 스스로 생산한다면 우리는 부자입니다. 우리는 사업가나 정부가 주는 일자리 필요없어요. 스스로 먹고살 수 있습니다. - 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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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6-22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64!

다락방 2020-06-22 11:41   좋아요 0 | URL
점심시간에 끝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비연님! 후훗

비연 2020-06-22 11:42   좋아요 0 | URL
😱

바람돌이 2020-06-22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북플에 이 책에 대한 리뷰 등등이 많이 올라오네요. 이러면 또 살코기 ㅂㅁㅂ보관함에 일단 넣어둡니다. ^^
그리고 우수한 종인지 미리 아는거 저는 싫어요. 마음과 조건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씸 많으므로요. ㅎㅎ

다락방 2020-06-22 14:03   좋아요 0 | URL
아, [에코페미니즘]은 알라딘 내에서 몇몇 분들과 함께하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6월 해당도서입니다. 이거 읽으면서 글 쓰는게 함께 읽는 사람들의 미션이라서요, 6월 한달동안 그 멤버들의 글이 자주 올라올겁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후훗.
 














[에코페미니즘]은 '마리아 미스'와 '반다나 시바' 의 공저이다. 저자들이 돌아가며 한 장씩을 맡아 이야기하고 있는데, <2장 환원주의와 재생:과학의 위기>는 반다나 시바의 글이다.


보통 책을 읽다가 어려운 단어나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고 해서 그때마다 번번이 다 사전을 찾아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주석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 언제나 주석을 읽지는 않는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중간에 그 흐름이 끊기는게 싫고, 모르는 단어라고 해도 문맥상 대략적으로 뜻 짐작이 가능할 때도 있어 대체적으로는 흐름을 끊지 않고 페이지를 넘기는 편이다. 꼭 찾아봐야 할 때는 그 단어를 모르고서 도무지 책의 내용이 파악도 이해도 되지 않을 때인데, 반다나 시바가 말한 '환원주의'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환원주의, 를 이 책에서 반다나 시바의 말로 처음 접하고서는 대충 넘어가려고 했다. 명확히 설명할 수 없으면 제대로 아는것도 아닌데도 나는 환원주의는 뭐 환원주의겠지, 하고 그냥 넘기려 했던 거다. 그러나 환원주의는 계속 등장하고 나는 이걸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채로 이 장을 이어나가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환원, 이라고 하면 원상태로 돌린다는 걸 의미하는게 아닌가? 환원주의는 원상태로 돌리는 걸 의미하는 거 아냐? 그런데 이런 식으로만 짐작했다가 책 내용이 영 파악이 안되는거다. 나는 우선, 내가 아는 환원이 그 환원이 맞는지 검색해 보았다. 네이버 어학사전에서는 '본디의 상태로 다시 돌아감'이라고 되어있다. 그러니 내가 환원에 대해 알고 있는 뜻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환원주의가 뭔가, 왜 환원이란 단어의 뜻을 아는데 환원주의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인가. 나는 환원주의를 넣고 검색해본다.



reductionism ,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상()이나 개념을 단일 레벨의 더 기본적인 요소로부터 설명하려는 입장. [네이버 지식백과] 환원주의 [reductionism, 還元主義] (두산백과)



환원주의에 대한 네이버 지식백과의 '요약'은 위와 같다. 요약만 읽으면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도 모르겠네? 나는 요약 밑의 상세설명을 읽기 시작한다.


특히 과학철학에서는 관찰이 불가능한 이론적 개념이나 법칙을 직접적으로 관찰이 가능한 경험명제()의 집합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실증주의적() 경향을 가리킨다. E.마하와 R.아베나리우스 등의 경험비판론, M.슐리크와 R.카르나프 등의 논리실증주의가 그 전형()이다.

전자가 감각적 경험에 대한 ‘사실적 환원’을 지향한 데 반하여 후자는 관찰명제()에 대한 ‘언어적 환원’을 지향한다는 차이는 있으나, 다같이 반형이상학()의 입장에서는 노선을 같이한다. 후자는 다시 관찰명제의 기술()에 감각여건언어(sense-datum language)를 취하느냐 사물언어(thing language)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현상주의()와 물리주의()로 갈라진다.

또 생물학에서는 생명현상이 물리학 및 화학의 이론이나 법칙에 의하여 해명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세워 생기론()에 대립한다. 환원주의는 심리학상의 행동주의나 사회과학상의 방법론적 개체주의()를 가지고 통일과학의 이상을 추구했으나, 그 주장에는 여러 가지 곤란한 점이 지적되어 실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환원주의 [reductionism, 還元主義] (두산백과)




...............네?.................뭐라고요?...................아니 어째 사전을 읽을수록 더 미궁에 빠지는가, 나여.

환원주의를 알기 위해서 나는 실증주의를 알아야 하는 것인가. 알지 못하는 단어를 찾기 위해 사전을 펼쳤는데 그 단어의 설명을 위해 알지 못하는 단어가 수두룩 빽빽하게 나오면 그 때는 대체 어쩌란 말인가.


오만년전에 '홍정욱'의 [7막 7장]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생때 미국으로 공부하러 갈 때 홍정욱이 가져간 건 영영사전 한권 뿐이라고 했다. 영한사전이 아니라 영영사전. 모르는 영어 단어를 찾아보면 영어로 써있어서 그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사전을 뒤적여야 하고 역시 또다시 사전을 펼쳐야 하는 반복의 연속이었다고. 이 과정을 거친 사람이라 그는 하버드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 같고, 나는 환원주의 찾다가 실증주의 나오고 개체주의 행동주의 통일과학.... 해버리는 바람에 더이상 찾기를 포기하기 때문에 대학원을 갈 수 없는 사람이구나. 나는 환원주의에 대해서는 이해를 포기한 채로 이 책을 읽어야 하겠구나, 아 어이없어, 반다나 시바 너무 박사님이라서 다른 사람들이 환원주의 모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미처 인지하지 못한것일까. 환원주의가 이 책의 초반부터 나 너무 괴롭히네, 엉엉 울고 싶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 하였는데, 아아, 아니다, 환원주의는 내가 더이상의 뜻을 찾기를 포기하고 다시 책으로 돌아갔을 때, 그 책안에서 다 설명되어지고 있었다. 흑흑. 자, 우리, 환원주의에 대해 이해해보도록 하자. 여러분 이해 준비 완료?



개별 기업과 경제의 분화된 부문들은 사적 소유이든 국가소유이든 자체의 효율성과 이익만을 생각하며, 모든 기업과 모든 부문은 사회적ㆍ환경적 비용이 극대화되는 현실에는 눈감은 채 이윤의 극대화라는 척도로만 효율성을 측정한다. 이 효율성의 논리를 제공해온 것이 환원주의이다. 착취와 수탈을 통해 이윤을 발생시키는 자원체계의 특성만이 고려되며, 생태계의 과정을 안정시키지만 상업적 이윤을 낳지 않는 특성은 무시되고 결국 파괴된다.

상업적인 자본주의는 전문화된 상품생산에 기반을 두며, 따라서 생산의 획일성과 자연자원의 단일기능적 활용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환원주의는 복잡한 생태계를 단일 구성요소로, 단일 구성요소를 단일 기능으로 환원한다. 나아가 이것은 단일 기능, 단일 구성요소의 착취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생태계를 조작하도록 한다. 환원주의적 패러다임에서 숲은 상업적인 목재로, 목재는 펄프와 제지업을 위한 섬유소로 환원된다. 그리하여 숲, 토지와 유전(遺傳)자원들은 펄프의 생산을 증가시키도록 조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은 전체적인 생산성만 증가시킨다면 그것이 숲의 수분 보유량을 줄이건 숲공동체를 이루는 생명체의 다양성을 파괴하건 상관없이 과학적으로 합법화된다. 그렇게 해서 '과학적인' 산림관리와 산림 '개발'은 살아 있는 다양한 생태계를 파괴한다. 이와같은 방식으로 자연의 유기적 과정과 리듬과 재생력을 파괴하는 변형을 수반하기 때문에 환원주의 과학은 점증하는 환경재난의 뿌리가 된다. -p.83-84


숲은 상업적인 목재로, 목재는 펄프와 제지업을 위한 섬유소로 환원되고 그리하여 자연이 인공적 생산을 증가시키도록 조작되는 것. 이렇게 예를 들어주니 오오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나저나 여성학 책 읽을 때도 그렇고 무슨 ~주의 이런거 너무 많아서 읽기 너무 힘들다. 세상에 수많은 그 주의들을 다 알 수도 없고 이럴 때마다 사전 찾아야하니 책읽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다. 어휴... 아무튼 환원주의 때문에 80쪽쯤에서 머리 터지게 고민했는데, 이 책이 총 524페이지의 책이고, 나는 고작 이십프로 읽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는데 앞으로 남은 부분에서는 어떤 용어들이 나를 또 후려칠까.... 그래도 읽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현재 125 페이지까지 읽었다. 


감사하게도 아직 일요일 오후가 남아있고 아쉽게도 고작 일요일 오후밖에 남아 있질 않다. 나는 오늘 이 책을 얼마나 더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뭔가 로맨스 소설 읽고 싶어졌는데 집에 가진 로맨스 소설이 없는 것 같아..주군의 여인 읽을까...낯선살냄새를 다시.....?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가 지금 책장에 없어. 회사에 있다 ㅠㅠ 안읽은 책 책장에 이렇게나 많은데 지금 딱히 읽고 싶은 책이 없어서...책 또사야 하나? 아, 지난주에도 책이 왔다.





아무튼 책장 앞으로 가서 뭔가 다른 책을 골라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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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0-06-15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홍정욱의 [7막7장] 읽었을 때, 언급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저도 한때는 영영사전으로 단어 찾고, 거기서 모르는 단어 나오면 또 찾고,
또 거기서 모르는 단어 나오면 또 찾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단어만 찾았던 기억도 나구요.
결국 거금 주고 샀던 옥스포드 영영사전은 몇 달 쓰지도 않고 어딘가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기억도 나구요.

‘~주의‘ 라는 단어를 포함해 많이 배우신 학자들이 주로 쓰는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소통되는 뜻이나 사전에 나온 뜻이 아닌 경우들이 많죠.
그럴 때에는 자신이 정의한 뜻을 잘 설명해주면 좋을텐데, 의외로 그런 경우는 별로 못 봤어요.
그리고 분명 번역의 한계도 있을 것이구요.
학술서적의 경우, 원서를 읽는 것이 번역본을 읽는 것보다 뜻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다락방 2020-06-16 10:40   좋아요 0 | URL
역시 외국어를 좋아하는 감은빛님 답군요!
저도 영영사전 샀는데 단어를 찾기보다는 그냥 한 번 펼쳐서 보는 용으로 샀어요. 지금도 잘 꽂혀 있답니다. 제가 영영사전을 가지고 있다는게 너무 좋아요. 지적 허영심.....

원서를 읽는게 학술서적 뿐만 아니라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좋을 것이고, 그래서 제가 방통대 영문과에 편입하였었지만, 아아 역시 학교공부를 나는 따라갈 수가 없어, 나랑 맞지 않는다, 노력과 거리가 멀다, 하고는 한학기 다니고 자퇴했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6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는 '마리아 미스'와 '반다나 시바'의 책, 《에코페미니즘》입니다. '마리아 미스'라면 이미 3월에 만난 책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로 몇몇 멤버들에게 거대한 충격을 주었는데요, 그 마리아 미스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존 멤버들은 자동 참가고요,

참가하실 분들은 참가한다고 댓글 적어주신 뒤에 해당 책을 해당 기간 안에 완독하시고 틈틈이 글을 적어주셔야 합니다.

해당도서에 대한 참가글을 적을 때는 말머리에 제목으로 [에코페미니즘] 붙이는 거 잊지 말아주세요!


참가하고 완독했다고 해서 어떤 상품이나 수료증 같은 건 전혀 없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완독했다는 기쁨 그리고 성취감..은 얻어가실 수 있습니다.


그럼 이만...


6월에 만나요, 여러분!



덧) 마침 이런 기사가 있어 가져왔어요.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반다나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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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5-28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책이라, 페이지수의 압박은 있으나 (500페이지가 넘는다죠..;;) 찬찬히 읽어볼 생각이에요.
완독의 기쁨. 이건 함께 누릴 때 더 커지는 것 같다는. 저도 슬슬 시작해봐야겠어요.. (선행의 바람..ㅎㅎ)

수이 2020-05-28 09:15   좋아요 0 | URL
선행한 자가 이렇게 또 크나큰 파동을 불러 일으키고...... 크크크

다락방 2020-05-28 14:03   좋아요 0 | URL
아놔 이사람들... 선행에 불붙어버렸다. 불지핀 자 누구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0-05-28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 읽으러 쓩~~ 저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읽고 진짜 망치로 머리가 깨지는 듯한 그런 울림을 받아서 에코 페미니즘 진짜 기대가 커요. 두근두근_ 이제 선행하러 가야지

단발머리 2020-05-28 09:24   좋아요 0 | URL
선행금지! 선행금지!
수연님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다락방 2020-05-28 14:03   좋아요 0 | URL
수연님 책장에 페미니즘 책들을 차곡차곡 채워봅시다. 후훗.
 
















미국에서 사는 내내 … 흑인여성은 한편으로는 인종에 대한 충성심과 다른 한편 여성으로서 느끼는 연대감 사이에서 분열을 느낀다.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를 분열시키고 자신을 억압하는 편을 드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녀들은 거의 언제나 여성보다는 흑인인종을 선택했다. 인종의 편을 들면서 여성으로서 자신들의 자아와 온전한 인간성을 희생한 것이다. (McKay 1992, 277-78) -p.221




집단적으로 이성애자 흑인여성은 유독 흑인 레즈비어니즘에 대해 이상스레 침묵해 왔다. 바바라 스미스는 설득력 있는 한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이성애 특권은 흑인여성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인종이나 성에 따른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우리들 거의 모두가 계급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동성애자가 아니라서 똑바른 처지'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Smith 1982b, 171). 백인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으로서 자신이 겪은 피해를 규명하면서도 인종차별주의로 부여되는 특권을 무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흑인남성이 인종차별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성차별주의를 별로 반대하지 않았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성애 흑인여성도 인종억압, 젠더억압을 인식하면서도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에게 고통을 가할 수 있다. p.223-224




인종단결을 초점으로 보면, 힐은 증언대에 서서 학대를 일삼는 흑인남성에 대한 흑인 "가족의 비밀"을 누설한 셈이다. 많은 흑인남성과 흑인여성이 보기에, 힐은 "더러운 세탁물"을 공공연히 방송에 내보냄으로써 흑인으로서 그녀의 주장이 지닌 진정성을 떨어뜨렸다. 어떤 사람은 토마스가 성희롱을 했다고 하더라도 힐은 흑인남성에 대한 연대심을 갖고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문화비평가 리사 존스는 흑인들이 흔하게 보인 반응을 이렇게 지적한다. "텔레비젼에 나온 힐의 얼굴보다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이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말한다고 보상받는 것이 아니다. 성희롱을 당한 여성은 이중적 피해자가 되며 목소리를 내는 비판적 흑인여성은 여전히 흑인인종의 배신자로 낙인찍힌다."(Jones 1994, 120) -p.224




국민학교(그렇다,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6학년 때 다니던 교회에서 어린이예배 반주자를 1년간 했었다. 중학교 2학년까지 나는 꽤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나름 큰 규모의 교회였고, 무슨 행사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떤 행사를 할 때는 어른 예배 반주자와 함께 행사 반주자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맡은 건 피아노였고 어른 반주자가 맡은건 전자 오르간이었다. 그 뒤로는 공중 목용탕을 가도 아는척 하는 어른 분들이 꽤 많았다. 그전부터 반주자여서 또래 아이들에 비해 나를 아는 아이가 많은 편이었는데, 이젠 동네 어른들도 나를 아는거였다. 인생 뭘까.. 아, 그런데 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반주자였던 만큼 성가대 연습에도 계속 나가 성가연습의 반주를 해야했다. 일요일 오후 예배가 끝나면 남아서 성가대 연습을 해야했는데, 성가대 지휘를 맡은 남자 집사님은 본인이 극본을 써서 어린이 연극을 만들 정도의 '나름의'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아이들을 성추행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성추행'이라는 용어를 붙여 부를 수 있는건지도 몰랐다. 어쨌든 국민학교 아이들의 볼에 자꾸 뽀뽀를 하는거였다. 아이들은 당연히 싫어했고.

그 날도 마찬가지. 연습에 앞서 가장 앞에 앉았던 4학년 여자아이에게 집사님은 뽀뽀를 했다. 그 여자아이는 그게 너무 싫어서 하지말라고 소리를 지르고 볼을 닦으며 울었다. 나는 피아노 의자에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나 그 아이의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끌고 나와 아이의 손에 가방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집에 가."


아이는 가방을 들고 울면서 집에 갔고, 나는 다시 피아노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그 날 연습이 끝나고 집사님은 나를 불러 앉혀놓고 더럽게 혼냈다. 싸가지 없다고, 버릇 없다고, 예뻐서 그런건데 그걸 애를 돌려보내냐고. 나는 거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울었다. 엉엉 울었다. 콧물까지 날 정도로 엉엉 울었다. 그런 후에 바로 집에 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나는 반주자였고, 다음주 예배 반주를 위해 항상 남자 전도사님을 만나 다음주 찬송을 의논하고 가야했다. 그렇게 울면서 전도사님께 가서 다음주 찬송을 골라달라 했다. 전도사님은 너 왜 우냐고 말을 해보라고 했지만, 나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그 일을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했고 교회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오늘 이 일을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한다고 뭐가 달라졌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가 지나 성가대 지휘자인 집사님은 학년별로 상담을 하겠다고 했다. 6학년은 나를 포함해 세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때 집사님께 '아이들 예뻐한다고 그런식으로 표현하지 마시라'고 말했다. 집사님은 알겠다고 하셨다.



나는 중2때까지 교회를 다니다가 그 뒤로 다니지 않고 있다. 교회를 꼴도 보기가 싫어졌다.




몇해전 일이다. 아마 이 일은 전에도 언급한 적 있을지 모르겠는데, 회사 내에서 임원1이 여직원의 볼에 뽀뽀를 했다. 다른 부서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나는 보지 못했는데 내 귀에 그 일이 들려왔다. 나는 그 부서의 여자과장에게 '그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임원에게 얘기를 하라'고 했지만, 여자과장은 '그건 당사자가 거절을 똑바로 했으면 될 일이다'라는 답을 들었다. 나는 다른 부서에서 일어난 일이라 내가 나서는게 오지랖일것 같아 그 부서에 말한 거였는데, 안되겠다 싶었다. 나는 그 부서로 가 더 높은 임원실에 들어가 임원2를 만났다. 그리고 가해자임원과 직급있는 여자들 다 불러달라 말했다. 임원2는 놀라서 너 왜그러냐고 하며 다 불러모았다. 나는 거기서 말했다. 오늘 가해자임원이 여직원을 성추행하는 일이 일어났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는 이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약속을 반드시 받아야겠다, 만약 이 일이 또 일어난다면 나는 바로 보쓰에게 가 얘기해 저 임원의 직업을 잃게할 것이다, 고 말했다. 임원2는 놀라서 가해자임원에게 사실이냐 물었고, 가해자 임원은 죄송하다고 다시는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그간 가해자 임원의 이런 성추행은 계속 있어왔고, 그때마다 여직원들이 '하지마세요'라고 했지만, 가해자 임원은 '장난이다'라고 했던 터다. 그렇다면 그 '장난'을 왜, 남자 직원에게는 하지 않는가. 왜 그 '장난'은 보쓰의 딸에게는 하지 않는가?


시간이 흐른 후 피해자는 나에게 말했다. 나를 원망했노라고. 괜히 내가 그 일을 얘기해서 자기는 계속 사무실에서 일해야 하는데 분위기 불편해졌다고. 한참 후에야 '만약 그때 그걸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당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되긴 했지만, 처음엔 자신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려 분위기를 흐린 것에 대해 나를 원망했노라고, 피해자는 내게 말했다. 그때 내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를 기억한다. 이 일은 아직까지도 내게 혼란으로 남아 있다. 나는 성추행 피해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일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걸까? 이 일은 오지랖이었던 걸까?? 그리고, 그 일이 공론화되어 사무실 분위기가 흐려지고 어색해졌다면, 그건 그 일을 공론화한 내 잘못인걸까? 애초에 성추행을 하는 가해자가 없었다면, 가해자가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면 사무실 분위기는 계속 좋지 않았을까? 나는 좋은 사무실 분위기를 위해 입을 닥쳐야 했고, 피해자는 계속 피해를 당해야 했을까? 계속 좋은 분위기의 사무실에서 일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피해를 가져가면서 얻는 평화란, 평화일까?



이런 일은 이렇게 주변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최근에 일어난 부산시장 오거돈의 일도 마찬가지. 피해자는 혹시라도 며칠 후에 있을 선거에 영향을 줄까봐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는 것에 대해 참아야 했다. 한 여성이 성폭행의 피해자가 됐다는 건, 일단 '대의'를 위해서라면 닥쳐야 할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성폭행의 피해는 그렇게 뒤로 미뤄도 되는 것인가?


SNS 에서 레즈비언 여성이 고추 달린 트랜스 남성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공론화 했다가 뭇매를 맞은 일도 있었다. '트랜스젠더 혐오자'로 낙인 찍힌 피해자는, 그 일을 왜 공론화해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나쁜 인식을 주느냐고 공격받았다. 이 사건에서 압박을 받고 사라져야 했던건 피해 여성이었다. 성폭행 피해자는 이 여성이었는데, 사라지는 것 역시 피해자의 몫이었다. 퀴어, 성소수자에 대한 나쁜 인식을 바깥으로 드러내면 안되는데, 피해자가 그걸 드러내버렸기 때문이다. 조직의 안위와 이미지를 위해 성폭행 피해자는 역시 성폭행 피해 사실에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여성이 당한 성폭행 피해는 이렇게 늘 뒤로 미뤄도 되는 것인가? 좀 참았다가 나중으로 미뤄야할 것인가?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언급한다. 여성이 인권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나올 수밖에 없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여성의 대표성 그리고 성매매와 포르노까지 모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을 내가 여자로 태어나 살아오며 익히 보아왔던 또 경험했던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간 여성주의책을 읽어왔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걸까?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흑인 집단 내에서 흑인여성이 흑인남성에게 성폭행 당할 경우 그것을 공론화하는 것에 대한 압박 그리고 갈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백인남성이 흑인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흑인남성이 흑인여성을 강간하는 것도 빈번하게 발생했던 일이다. 그러나 흑인남성이 흑인여성에 대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흑인여성이 입밖에 내어서는 안된다는 무언의 압박이 발생한다. 우리는 인종이 같고, 그러므로 한 가족인데 그것을 입밖에 내서 되겠느냐는 것. 흑인여성을 강간하는 건 백인남성, 흑인남성, 모두에게 있는 일인데 그러나 그런 일을 저지르는 건 백인남성으로만 드러나야 했다. 내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쉬쉬해야 하는 것. 여성의 성폭행 피해는 이렇게 '조직을 위해' 그리고 '대의를 위해' 감춰져야 하고, 뒤로 미뤄야 하고, 참아야 하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도대체 언제 피해를 당한 일을 공론화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가. 가해자에게 도대체 언제 정당한 처벌이 내려지게 되는가. 왜 여성은 어느 집단에 어떤 식으로 속해도 뒤로 밀쳐지게 되는가. 진보 집단 내에서도, 성소수자 집단 내에서도, 인종 집단 내에서도, 회사라는 집단 내에서도, 왜 여성은 뒤로 물러서야 하는가.




흑인여성들은 알고 있었다. 흑인 남성들도 백인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을 '여성으로서' 괴롭힌다는 것을. 흑인여성들에게 있었던, 그러니까 나에게도 없고 백인여성들에게도 없었던 '다른 표현'은 '블루스'라는 음악 장르였다. 블루스라는 음악 장르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옛날부터 흑인 여성들에게 그런 식의 작용을 하는건지 몰랐던 터라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좋고 짜릿했다. 이 책장을 넘기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흑인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일들은, 인종적인 면에서는 나랑 달랐을지언정 '여성으로서'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흑인여성은 인종으로도 젠더로도 가장 '나중'인 집단이었다. 그러니 '패트리샤 힐 콜린스'가 대부분 흑인 여성들의 입을 빌어 인용문을 가져오는 것은 당위성을 갖는다. 내가 <알쓸신잡>이란 프로그램에 남성 패널들만 나오는 걸 싫어했던 이유와 통한다. 남성들에게만 발언하게 하면 그 후에 인용되는 것도 남성들의 발언이다.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흑인여성들의 말, 흑인 여성들의 책, 흑인 여성들의 노래를 가져와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말한다.




일부 흑인여성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여러 억압에 수반되는 성정치를 비판했지만, 흑인과 백인의 남성성을 둘러싼 지배적인 관념을 수용하는 흑인남성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던 흑인여성은 극소수였다(Wallace 1978). 1992년에 애니타 힐이 클래런스 토마스의 성회롱을 공개석상에서 고발했던 기념비적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흑인여성이 오랫동안 흑인 남성에게 "변화"를 요구해 온 통로는 블루스 전통이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흑인여성은 블루스를 통해서 흑인남성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괜찮은 여자, 괜찮은 남자>라는 노래에서 아레타 프랭클린(1967)은 여성은 장난감이 아니라 남자와 똑같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인간이라는 서저너 트루스의 주장을 내세운다. "남자들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녀는 여성을 이용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식으로 남자임을 "증명"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프랭클린은 남자가 함께 있는 한, 그의 존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그녀의 입장은 분명하다. 만약 그가 "긴 밤을 함께 보낼 괜찮은 여자"를 찾는다면, 그도 역시 "긴 밤을 함께 보낼 괜찮은 남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프랭클린은 지배적인 성정치에서 말하는 "괜찮은 남자"가 되기 위해서 "남자들 세상"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라고 촉구한다. 흑인여성을 존중하고 "긴 밤을 함께 보낼 남자"라면, 관계에 충실하고 경제적으로 탄탄하고 성적으로 적극적인 남성이라면, "괜찮은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p.269




사실 블루스를 잘 알지 못해서 이 책속에 인용되는 노래들도 내가 아는 노래들이 없다. 흑인여성 가수라고 했을 때 나는 비욘세밖에 떠오르질 않네. 이 책속에 인용되는 가수들에 대해서 어떤 가수들은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사실 노래는 잘 모른다.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도 이 책속에서 언급되는데, 스파이크 리 감독 영화중에 [정글 피버]를 보았었고, 당연히 영화속 장면이 떠올랐다. 흑인 남주가 백인 여주랑 사랑에 빠졌는데, 백인 여주의 아버지는 그 사실에 크게 노여워하며 혁대로 딸을 때리는 거다. 내가 이걸 아주 오래전에 보았는데 그 장면이 너무 인상깊었다. 내가 그렇게나 놀랐던 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해 내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지금은 든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아는 흑인 여성의 영혼 담긴 노래라고는 'harlem blues'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역시 '스파이크 리'감독의 영화이고 내가 이 영화를 보진 않았기 때문에(굿 다운로드가 되지 않는 작품이다 ㅠㅠ), 이 노래가 어떤 상황에서 불려진 건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그런데 내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하는 노래다. 이 노래만 반복해 듣기도 정말이지 여러번 했더랬다.






노래 너무 좋지 않나요? 목소리가 정말이지... ㅠㅠ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총 520 페이지의 책이고 나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269쪽까지 읽었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멤버들 중 한 명은 이미 완독했고, 한 명은 300 페이지 넘겨서를 읽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번 달에는 모두가 완독하기를 목표로 달리고 있는데, 이 책 완독 가능할것 같다. 너무 재미있다! 이걸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건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정말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겠어서 막 뭔가 흑흑 ㅠㅠ 하는 기분이 되어버리는 거다. 진짜 책 읽는 거 너무 좋다. 진짜 좋아. 여러분 책을 읽자. 너무 좋아요. 책 읽는 거 책 사는 거 너무 좋아서 오늘 나 책 겁나 많이 올거다. 어제 많이 샀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책 만세다 진짜로. 회사 임원이 내가 항상 책 들고 다니는 거 보고 '책 많이 읽는 여자 싫어'라고 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책 많이 읽는 여자 싫어하는 남자가 진짜 재수없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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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5-21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23-224쪽의 인용문은 저도 어제밤에 생각했던 부분이에요. 페이퍼를 짧게 썼는데 마무리가 맘에 안 들어 아직도 생각중이고요. 흑인 공동체를 위해 흑인남성의 성폭력에 침묵을 강요당했던 흑인여성들의 괴로움을 누가 알아줄까요ㅠㅠ

그나저나 다락방님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결같네요! 어린 다락방님도 멋지지만 임원집합시키는 다락방님도 멋져요! 😍

다락방 2020-05-21 15:18   좋아요 0 | URL
왜 여성의 성폭력 피해는 공동체를 위해 감추고 미뤄두고 참아야 하는 것이 될까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발언이 그렇게 막혔을까요. 그런면에서 보면 설치고 떠들고 말하는 걸 그토록이나 싫어하는 것과 다 연결되는 것 같죠? 그래서 우리는 더 설치고 떠들고 말해야 하는것 같아요. 더 설치고 떠들고 말하려면 열심히 읽고 생각해야 할테고요.

어릴때부터 숱하게 성추행하는 놈들을 봐왔습니다, 단발머리님. 그때는 그게 성추행인지도 몰랐지만, 그런 놈들이 아주 많았어요, 아주, 아주요. 하아- 너무 엿같은 세상이네요 ㅠㅠ 제가 직장생활하면서 남자들한테, 그것도 저보다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 남자들한테 그러지말라고 일일이 가르쳐야 하는건가요? 남자들 왜이렇게 모자란가요? 다 머저리 등신들이에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비연 2020-05-21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수많은 성추행 속에서 느꼈던 감정이란.... 다락방님 페이퍼 보니 다시 떠오르며 화가 치밀..
저도 곧 관련 페이퍼를 써야겠다 싶네요...ㅜ
흑인여성은 ‘흑인‘이면서 ‘여성‘이라는 위치 때문에 정말 여러가지 통제장치와 이데올로기와 정치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합니다. 그들이 이제까지 해온 역사에 경의를 표하게 되구요. 이 책 재미있습니다. 글자 사이가 빡빡해서.. (편집은 좀..) 처음엔 아구야 했는데 읽을수록 읽고 싶어지는 책이에요. 냐하하.

회사 임원이 내가 항상 책 들고 다니는 거 보고 ‘책 많이 읽는 여자 싫어‘라고 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책 많이 읽는 여자 싫어하는 남자가 진짜 재수없다... --> 그리고 이 대목, 이백퍼 천퍼 동감입니다. 그 뒤통수에다 대고 얘기하고 싶네요. 책 좀 읽어라 짜샤.

다락방 2020-05-21 15:21   좋아요 2 | URL
성추행 피해도 피해지만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는 시도들도 너무 참담하죠. 피해자의 입을 막는 사회라는 걸 알기 때문에 성범죄가 그간 계속 일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는 사람들도 결국 성폭행이 일어나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이고, 그게 바로 강간문화인거죠.
저도 제목에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라니, 뭔가 멀고 어렵게만 느껴졌었는데 막상 읽으니까 너무 재미있어요, 비연님. 언제나 그랬지만, 이 책도 역시 읽기를 잘한 것 같아요. 저는 2020년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들 중에서 현재까지는 이 책이 제일 재미있고 좋아요!


책 읽는 여자 싫다고 말하는 건 저는 말하는 순간 진짜 부끄러울 것 같아요. 자기 얼굴에 침뱉기죠. 어휴, 하긴 쪽팔림을 모르니까 저런 말을 하는 거겠죠. 어휴 부끄러.. 왜 부끄러움은 제몫인가요...

우리 남은 부분도 열심히 읽어요! 같이 읽으니까 정말 좋아요, 비연님!

공쟝쟝 2020-05-29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물같은 페이퍼(!)
저두 지금 생각하면 성추행이었던 어린시절 기억들이 많아요.. 그딴식(!)으로 예뻐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걸 진짜 예뻐한다고 (하나도 그렇게 생각 안했겠지만 지들 사회생활 잘하려고)오히려 집사놈 역성들어 분란 조장 어쩌도 한 어른들 역겹네요..(치를 떤다)
진짜 그런 어른 되지 말아야지!!!!!
그나저나 다락방님은 어렸을 때 부터 책임감이 남다르셨네요. (울면서 반주를 마저 하러 갔다고요??) 패미니즘 독서모임을 이끄는 사람에 걸맞는 책임감이예요 우흐흐흐흐

다락방 2020-05-29 07:46   좋아요 0 | URL
예쁘니까 이러는게 당연한 거라고 자신들의 성추행,성희롱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한 어른들이 너무 싫어요, 쟝쟝님.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아동들은 그 상황에서 ‘어른말이 맞겠지‘, ‘이 사람이 틀리지 않겠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저도 어릴적에 성추행 당할 때 아닌것 같아서 반항하다가 예뻐서 그러는거라는 말에 ‘가만 있어야 되겠다‘ 라고 ..아 그만 쓰자 숨이 막히네요. ㅠㅠ 또 나온다 재경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책임감은 정말 중요하잖아요, 쟝쟝님. 어른이 책임감을 가졌다면 아이들을 존중했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지 꼴리는대로 성추행 하는게 아니라요. 범죄자 새끼들 진짜 ㅠㅠ
 















저기 있는 저 남자 분은 여성은 마차에 탈 때 도움을 받아야 하며 구덩이에서 나올 때도 남자가 들어 올려 주어야 하고 모든 곳에서 가장 좋은 곳을 차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내가 마차를 타거나 진창을 지나야 할 때 도와주지 않으며 아무도 내게 가장 좋은 곳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나를 보십시오! 이 팔을 보십시오! 나는 어느 남자보다도 더 많이 쟁기를 끌었고 씨를 뿌렸으며 곡물을 거두어 곳간에 넣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나는 남성과 똑같이 일할 수 있고, 충분한 음식이 있다면 남자만큼이나 많이 먹고, 채찍질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나는 열세 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이 아이들 모두가 노예로 팔려나가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내가 어머니로서 슬픔에 겨워 울 때 주님 말고는 아무도 제 슬픈 울음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Loewenberg and Bogin 1976, 253) -p.44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은 딱히 머리가 좋지 않아도 가능하다. 물론, 머리가 좋으면 더 잘받겠지만. 외우라는 부분을 달달달 외워서 정답이 무어냐, 물어보면 정답에 동그라미 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쉽진 않더라도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더 많은 정답을 맞힌 사람은 시험 점수가 높고, 그 사람은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지게 되고, 그리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전공을 선택하고, 역시나 교수님의 설명을 잘 듣고 교과서를 달달 외워서 높은 학점을 받고 졸업해서 보란듯이 사회의 좋은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했던 학생은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가 되어 높은 연봉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사회는, 그렇게 살아도 되게끔, 아니 그렇게 살아야 잘 살게끔 설계되어 있다.


얼마전 읽었던 '마야 뒤센베리'의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에서는 의사들이 여성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많은 사례들이 나온다. 그들이 호소하는 고통과 증상은 의사들이 그동안 알고 있던 것과 달랐기 때문에, 여성환자들은 '머릿속으로 아픈' 사람이 되어서 돌려보내진다. 그 의사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의사들이,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은 여성환자들의 증상에 대해 몰랐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평범한 의사들이 같은 반응을 보일것이다. 그러니 여성환자들은 첫번째 의사를 찾아갔다 돌아오고 두번째 의사를 찾아갔다 돌아오고 세번째 의사를 찾아갔다 돌아오고...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일테다.


이럴 때 의사에게 필요한 건 '이건 무얼까'일것이다. 어? 내가 알던 것과 다른데 어디에서 뭐가 다른걸까, 그렇다면 알려지지 않은 무엇이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은 아픈것일까, 하는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사고다. 그게 있었다면 많은 여성환자들은 더 많이 생존했을 것이다.


얼마전에는 SNS에서 누군가의 비판의 말에 '나 사회학 전공했고 석사과정이다' 라면서 자신의 말이 틀릴 리가 없다는 증거로 자신의 학력을 가져오는 것을 보았다. '사회학을 전공했고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남자'는,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살아온 사람보다 과연 여성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는가? 페미니즘에 대해 '사회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기' 때문에, 더 잘 아는가?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교과서에 있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석사가 되고 박사가 되는데 도움은 될지언정, '깨어있는' '열린' 사람이 되는 걸 보장하지는 못한다.



위의 인용에서 '남자들은 여자들을 대우해줘야 한다고 하는데 흑인인 나는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여자가 아니냐'라는 당연한 물음을 던지는 사람은 '읽고 쓰는 법을 결코 배운 적이 없는 노예'이다. 나는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의문을 갖고 원인을 파악하려고 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 이걸 하는 사람이 깨어있는 사람이고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결국 사회가 바뀌는데 하나라도 더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읽고 쓰는 법을 결코 배운 적이 없는 이 노예신분의 흑인여성이 '니네가 말한 대로라면, 나는 여성이 아닌거잖아?'라고 의문을 갖고 던지는 데에서 너무 짜릿했다. 그러면서 안타까웠다. 이렇게 모두가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의문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회의 명제에 대해서 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스스로 깨달아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런데 만약 교육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여자가 아니란 말이냐, 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 사람의 세계는 이미 확장되어 있고 또 이미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만약 읽고 쓰기를 배운다면, 교육받는다면, 그렇다면 이 사람의 세계는 대체 얼마만큼이나 확장될까. 너무 기대가 되지 않는가. 그렇게 넓어질 세계가, 갖게될 의문이, 그래서 저항하게 될 그 잠재력이 무서워서, 남성중심 사회는 그리고 백인중심 사회는, 흑인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인종분리정책으로 흑인 여성도 교육을 아예 받지 못하는 건 아니었으나, 백인들이 받는 교육과는 달랐다. 이들이 유모로 규정되어지고 노예로 살아가는 대신 백인 남성과 같은 교육을 받았다면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스스로 보고 의문을 가지는 눈을 가진 사람이 교육을 받는다면 대체 이 세상은 얼마나 휘청거릴까.



주어진대로의 세상을 사는 것보다, 그 안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짚어내고 지적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매력을 느낀다. 결국은 그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흑인여성은 명백하게 타자화 되어 대표성을 갖는다. '유모', '복지수당 어머니'가 흑인 여성에게 부여된 이미지였다면, '흑인 숙녀' 역시 마찬가지. 흑인 여성들이 교육 받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기존과 다른 신분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역시나 그런 여성들은 후려쳐진다. 세상은 밑바닥에서 주는 거나 받아 먹으며 굽신거려야 된다고 생각하는 약자가 꿈틀거리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자 한다.



흑인숙녀 이미지는 또한 가모장 명제의 여러 측면과 닮아있다. 즉, 흑인숙녀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직종에서 일을 하느라 남자를 만나거나 돌볼 시간이 없거나 남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린 여성이다. 그녀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남성들과 경쟁하면서 이러한 경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여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진다. 고등교육을 받은 흑인숙녀는 자기주장을 너무 강하게 펼친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들과 결혼하려는 남성이 없다고들 한다. (P.149)




메갈을 메퇘지라고 칭하는 것도,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못생긴 여자들이라는 것도, 흑인숙녀에 덧씌워진 이미지와 맥을 같이한다. 세상이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는데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여성의 최고가치는 외모가 되었다. 거기에 휩쓸리느라 굶어가며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하는데 시간을 쏟는다. 남성에게 예쁘게, 섹시하게 보이는 것이 최고 가치인 것처럼 한목소리로 외쳐왔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여자들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폄하하려고 애를 쓴다. 자기 주장을 하는 여자들에 대해서 못생겨서, 뚱뚱해서,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라고 공격한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물론, 어쩌면, 아직도, 저런 공격에 휘청거리며 더 예쁘기 위해서, 더 사랑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여성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하려는 남성이 없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더이상 공격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아니다. 여성들은 남성과 연애하지 않아도, 남성에게 예쁘게 보이지 않아도, 남성과 결.혼.하.지.않.아.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오히려 그 편이 더 행복할 확률이 높기도 하고.



이 책은 1990년에 초판이 나오고 2000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이 책에는 그래서 초판과 개정판의 서문이 다 실려있는데, 저런 공격, 그러니까 '너 그렇게 자기 주장 강하면 남자들이 너랑 결혼 안해줘'라는 걸로 공격하는게 너무 웃겼다. 그렇다고 다 옛날일이라고 할 수도 없는게, 일전에도 내가 뉴욕에 이민간 남자로부터 '너 그렇게 생각 많이 하면 시집 못가'라는 말을 직접 듣지 않았는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불과 몇 년전의 일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시집 못간다고 협박하면 내가


'아이쿠 이런. 큰일났네. 내가 시집을 못간다니. 이를 어쩌면 좋아. 아 죽고싶다. 어떻게 해야 시집가지? 나는 머저리야, 빨리 시집갈 수 있는 여성으로 탈바꿈하자.'


뭐 이럴 줄 알았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너 그렇게 공부 많이 하면, 책 많이 읽으면, 생각 많이 하면, 똑똑하면' 시집 못가, 를 협박으로 쓰는 새끼도 웃기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 여자랑 연애도 결혼도 안하겠다는 남자는 너무 진짜... 부끄럽다. 쪽팔린 줄 알아야 돼.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쪽팔리지 않게 사는게 가장 중요하다. 아니 세상에 교육받은 여자랑 결혼 안해, 자기 주장 강한 여자랑 연애 안해, 이러는 건 지가 등신이라고 인증하는 거 아닌가.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어떤 사람과 만나는지로도 보여지는 것이다.




아무튼 여자들이 계속 계속 더 공부하고 더 생각했으면 좋겠다. 남자랑 결혼 안해도 삶에 있어서 아무 지장 없으니께롱.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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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5-19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 그렇게 공부 많이 하면, 책 많이 읽으면, 생각 많이 하면, 똑똑하면‘ 시집 못가, 를 협박으로 쓰는 새끼도 웃기고.... ㅠㅠ 아 이 아침 막 화나네요, 이 생각 저 생각 들어서. ㅜ

예전엔 정말 이런 말 하는 사람 많았죠. 사실 지금도 제 친구가 딸 대학 갈 때가 되니 시어머니가 여자애를 뭘 대학을 보내냐고 해서 거의 거품물고 쓰러질 뻔 한 일이 있었던 걸 보면... 여전히 많이 배운 여성에 대한 편견은 남아 있는 듯. 그래서 더 공부하고 더 생각하고 더 대화하고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진심.

여성의 최종 목적은 ‘시집‘ (전 이 단어도 무지하게 싫어하는데..ㅜ) 이라고 생각하는 것. 좋은 남자 만나 애 낳고 가사일 하며 가정을 잘 돌보는 것‘만‘이 진정한 여자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여성에게 이런 한계를 ‘지맘대로들‘ 짓고는 평가해대는 사람들에게 분노가 치밀어요.


다락방 2020-05-19 09:15   좋아요 1 | URL
네, 제가 직접 들었다니까요. 그것도 동갑의 남자로부터. ‘너 그렇게 생각 많이 하면 시집 못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처구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안간다 새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같은 놈 만날까봐 안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집 못가는 게 뭐 큰일이라고 그걸 협박으로 쓰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오히려 여성들이 나서서 더 비혼을 주장하고 더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그딴 거 협박으로 쓰지 못하게.

다락방 2020-05-19 10:43   좋아요 1 | URL
아, 비연님. 그리고 저도 ‘시집가다‘는 표현 진짜 싫어요 ㅋㅋ 너무 모욕적이에요. 기분 나빠 -.-

블랙겟타 2020-07-11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류 경제학에서도 교육을 많이 받아 기술능력이 높은 사람이 임금을 많이 받아야한다는 논리는 예전부터 상식처럼 통용되는 이론인데요.
그런데 성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꼭 학력만이 작용되는 건 아닌 거 같더라구요.. 교육을 많이 받은 양성 간에도 차이가 있으니깐요. 미국의 경우는 학력이 비슷함에도 인종이 또다른 벽으로 작용될 것이라 보구요. 게다가 이 책은 흑인이면서 여성에 대해 쓴 책이니..

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은 그 지식에 대해 겸손해야지 그 지식을 과시하거나 맹목적으로 믿으면 안된다고 생각이 들어요.
저만 보더라도 경제학 아직도 잘 모르잖아요.. (음... 이건 겸손이 아니라 진짜 모르는 거긴 한데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