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주의 부분을 먼저 정리하고 갔어야 하는데 앨리슨 재거 얘기를 하고 싶어 사회주의 먼저 가져온다.

이 책의 3장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다.

2장 <급진주의 페미니즘> 읽으면서 역시 나는 급진주의 쪽이구나, 생각하면서 그러나 사회주의에 대해 기대를 가지고 읽어보았다. 저자 서문에서 요약한 바로는 나는 어쩌면 사회주의 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사회주의까지 읽어본 결과, 어느 주의에 가깝냐 하는 것은 내가 중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성매매와 성착취, 성적 대상화와 포르노에 가장 관심이 큰만큼, 거기에 대해 가장 크게 분노하는 급진주의에 마음이 더 갈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급진주의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고, 일단 사회주의.


마르크스 주의 페미니즘과 그것을 좀 더 개선한 것으로 보이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대해서라면, 마르크스를 읽고 아는 것이 당연히 더 쉬울 것이다. 이 부분 읽으면서 이미 마르크스와 철학에 대해 많이 공부한 멤버는 이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자본, 계급, 유물론 등에 대한 개념을 알고 있다면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더 쉬울 터. 게다가 자본, 계급, 유물론에 대한 개념을 이미 알고 있다면 이미 거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뜻할텐데, 관심이 있는 쪽으로 마음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애초에 내가 관심을 갖는 분야에 대해서 우리는 더 파고들어가고 더 알고 싶어하니까.


각 주의마다 주요 학자들이 등장한다. 급진주의 문화 페미니즘에서 캐서린 매키넌과 안드레아 드워킨의 포르노 반대관점을 끌고온 것처럼,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도 역시 여러명의 학자를 얘기하는데, 나는 그중 '앨리슨 재거'에 동그라미를 쳤다. 다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자본주의와 계급이 여성 억압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면, 앨리슨 재거는 '그렇지만 가부장제도 가져와야 해!'라고 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여성들을 노동자로서 억압하지만 가부장제는 여성들을 여성으로서 억압하는데, 이 억압은 여성의 활동은 물론이고 여성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성은 심지어 일을 하지 않을 때에도 항상 여성이다. -p.155



으앗. 이런 부분은 정말 너무 짜릿하지 않은가. 굉장히 명철하다는 것이 뽝- 오잖아?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키워드는 '소외'라고 한다면, 앨리슨 재거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생산품에서 소외되는 것처럼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서 소외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들도 단순히 여성으로 간주될 때 자신이 전형적으로 만들어 내는 '생산품'인 그들의 몸에서 소외될 수 있다. 여성들은 단지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다이어트하고 운동하고 옷을 입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주로 남성들의 즐거움을 위하여 몸매를 가꾸고 장식한다. 게다가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혹은 누구에 의해 사용될 것인지에 대해 최종적으로나 전체적으로 발언권이 없다. 왜냐하면 남성의 시선에서 성희롱 혹은 강간에 이르는 행위들을 통하여 여성의 신체는 갑작스럽게 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자지로 임금 노동자들이 자신의 신체를 사물, 즉 노동력이 추출되는 단순한 기계처럼 느끼기 시작하면서 점차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당하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여성들도 점차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될 수 있다. 겨드랑이 털을 면도하고, 허벅지 살을 빼고, 가슴을 보강하며, 손톱을 칠하고, 머리 염색을 하는 등 신체를 열심히 가꾸는 정도에 따라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가 하나의 대상물 또는 상품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많은 임금 노동자들이 고용주의 칭찬과 보상을 놓고 서로 경쟁하듯이, 수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의 칭찬과 보상을 놓고 서로 경쟁한다. -p.156



다양한 주장과 다양한 학자들에 대해 다루다 보니 이렇게 어느 학자에 대해 언급을 해도 충분히 길게 다루지 못한다. 앨리슨 재거에 대해 나는 너무 궁금해졌다. 좀 더 읽고 싶다,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된 것. 그래서 앨리슨 재거의 책을 검색해보았다.
















1999년의 이미지도 안뜨는 옛날 책과 위의 링크한 책, 《여성주의 철학 1,2》권이 검색된다. 여성주의 철학이라니, 제목부터 되게 재미없게 생겼지만, 표지만 봐도 교과서 같고 흥미를 전혀 끌지 못하지만, 그러나 앨리슨 재거라니... 앨리슨 재거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너무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다. 그런데...



2005년도에 나온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전.

이 책의 상태는..괜찮을까?

다른 책들과 달리 절판되지 않은 건 다행스럽지만, 그렇지만...색이 바래고 낡지 않았을까.

읽고 싶은데 너무 낡은 책이 올까봐 겁나..

그래서 1권만 살까... 생각하고 있다.

1권만 일단 받아보고..괜찮으면 2권도 살까?

이런 고민을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1,2권 있으면 두 권 다 사서 깔맞춤 해야되지 않느냐고 내게 말했다.

그치..깔맞춤 너무 중요하지..그런데 너무 낡은 거 두 권 올까봐 겁이나..

서점 가서 직접 보고 싶은데 이 책이 오프라인 서점에 깔려 있을지도 모르겠고 더더군다나 지금 같은 때 서점을 갈 수가 없어.

그러므로 나는 삽니다, 1권을... 앨리슨 재거, 당신은 왜 나로 하여금 당신을 궁금해하게 만들었나요? 네?




자유주의, 급진주의, 사회주의까지 읽었는데, 이 모든 것들을 읽으면서 노트에 딱딱 정리해주면 매우 좋을 것 같다. 형광펜으로 밑줄 그어가며 읽고 있는데, 나중에 다시 밑줄 그은 부분 훑어보면서 제대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봐야겠다. 지금은.. 너무 다이어리에 휘갈겼어..작가들의 이름만.........



이제 미국의 유색인종 페미니즘에 대해 읽을 차례다. 아마도 우리가 얼마전에 읽었던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부분들이 많이 등장하겠지.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을 이미 여러 권의 페미니즘 책들을 읽은 후에 읽어주니 매우 좋다. 자기가 알아서 다 정리해주고 있어. 유용하구먼.



자, 열심히 읽고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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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9-1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트로 정리하고 있는데 썩 마음에 들진 않네요. 저도 사람들 이름만 나열... 마음이 급해서리.
일이 쌓여서 사회주의 도입까지 읽고 손놓고 있는데... 영차영차. 다락방님 글보니 얼른 읽어야겠다 싶습니다.

다락방 2020-09-10 10:44   좋아요 1 | URL
저도 사람 이름만 나열해놔서 이래가지고선 안되겠다 싶더라고요. 중요한 쟁점이라든가 키워드 같은 것들을 같이 정리하고 싶어졌어요. 한번씩 쓰면서 정리하면 더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을까...

저도 유색인종 부분 읽어야 하는데 다른책도 읽고 싶어서 오늘 퇴근길에 뭘 읽게될지 모르겠네요.
영차영차. 같이 열심히 갑시다, 비연님!

단발머리 2020-09-10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백소영의 <페미니즘과 기독교적 맥락들>을 읽을 때였어요. 그 책은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책인데, 페미니즘 역사를 쭈욱 살펴주거든요. 제가 그 책 읽을 때, 자유주의 페미니즘 읽으면, 어머, 나 이쪽이야, 그러고요. (제가 전업주부니까 현재 제 위치와 비슷한 면이 있죠) 급진주의 페미니즘 파트 읽으면, 어머, 나 여기네, 여기야. 이러고요. 사회주의 페미니즘 읽는데 야, 이거다, 이거. 이러면서 갈피를 못 잡았던 제가 떠오릅니다.
정희진 선생님께서 여러 글에서 여러 번, 페미니즘을 무슨 무슨 주의로 이렇게 나누지 말라 하셨잖아요(무슨 책인지 제목 알면 뽀대날텐데... 모르겠네요, 그 책 제목을요) 입장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돼요. 저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성매매나 포르노에 대해 그렇게 상반된 의견으로 그렇게 야무지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혁명이 가능하기까지 어떤 방식이 가장 효과적일까,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연대하는 방법이 과연 존재할까... 좀 고민을 했더랬습니다.

전, 오늘 내일은 진도 쉬거든요. 어서어서 가소서. 금방 따라가리^^
참, 앨리슨 재거 책 오면 인증샷 부탁드려요!!

다락방 2020-09-10 17:39   좋아요 0 | URL
제가 안그래도 페미니즘 역사를 쭈욱 살펴주는 책이 읽고 싶어서 단발머리님의 조언대로 그 책을 샀는데, 역시나 안읽고 쌓아두고 있... 하아..나란 인간...........오늘 책 사려던거 안사야겠어요. 나는 책 살 자격 따위 없는 인간이얏!!

저도 만약 지금이 아니라 몇 년전에 읽었다면 자유주의에 대해서도 맞아 맞아 바로 이거야 했을 것 같은데, 지금 이 책을 읽으니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제가 진작에 저리 치운 것 같아요. 급진으로 오는 순간 자유주의랑 함께 갈 수 없는 것 같아요. 너무 상반되어 버리는 지점들이 있어서...
그렇지만 정희진 쌤 말대로 무슨 주의로 나누지 말라는 것에도 동의함니다. 읽다보면 어느쪽에 가깝다 혹은 어느쪽을 지지한다 하더라도 백프로 온전히 다 일치하진 않더라고요. 사안에 따라서 동의하는 것들을 체크하다 보면 저는 급진쪽에 체크가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정리합니다.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연대라... 잘 모르겠네요. 정말 그런 방법이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성평등을 지지한다고 해도 사안마다 분명히 다른 관점을 갖게 되는데 말예요. 왜 읽으면 읽을수록 더 어려운거에요, 단발머리님? 왜 읽으면 읽을수록 갈 길이 먼 것 같나요, 단발머리님? 왜죠?


저는 오늘 독서를 쉬려고 합니다. 내일은 쉴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은 쉬겠습니다. 피곤해... 소주도 마셔야 되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10-0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했다! 앨리슨 재거!!!!! 제가 베스트5에 올리면서 어디서 봤는 데? 했던 페이퍼가 다락방님 페이퍼였다리요..
 















여성주의 관련 책들을 읽어오면서 한 번쯤 그 흐름에 대해 정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흐름의 정리를 내가 하는 것은 내 역량 밖의 일일 것 같아 누가 대신 해줬으면 했는데, '로즈마리 퍼트넘 통'과 ' 티나 프르난디스 보츠'가 해줬네. 그렇다면 그들의 노고가 담긴 책을 나는 읽는 것으로써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로 끝나면 너무나 간결한 해피엔딩이겠지만, 이 책은 그렇게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읽기 전에 마련해두고 책을 한 번 휙- 훑어보면서 아아, 뭔가 논문인가..읽을 수 있을 것인가 했는데, 어떤 스토리보다는 역사, 개요에 관한 참고서같은 책이라서 수월하게 읽어낼 수가 없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멤버 한 명은 노트를 꺼내놓고 읽어야 한다고 했는데, 나 역시 다이어리를 꺼내서 메모를 하면서 읽고 있다. 


그동안 읽어왔던 여성주의 책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책도 서문,서문,서문으로 시작한다. 그중에는 역자인 '김동진'의 서문이 있는데, 그 서문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독자들도 이 책에 실린 다양한 페미니즘 관점 중 가장 좋아하는 관점 혹은 페미니스트를 한 명쯤은 만날 수 있기 바랍니다. -역사서문중, 김동진


저 구절을 읽는데 어떤 기대감이 생겼다. 이 책을 다 읽은 사람들과 너는 어느쪽에 제일 마음이 가? 어디를 지지하는 것 같아? 라는 물음과 대답을 교환하다보면 아주 재미있고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은거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급진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페미니즘, 미국의 유생인종 페미니즘, 전세계 유색인종 페미니즘, 정신분석 페미니즘, 돌봄 중심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 실존주의 페미니즘, 제3의 물결 페미니즘과 퀴어 페미니즘 등이 차례대로 나와있는데, 현재 제1장 자유주의 페미니즘까지 읽기를 마친 후에 이 책을 읽는 것은 내 생각보다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어떤것인지, 누가 어떤 걸 주장하면서 흘러갔는지도 보여주고 또 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비판도 들려준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아 그러했군, 하면서 읽게 되었다면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음 역시 맞는 말이야, 하게 되는 거다. 그런식으로 읽다 보면 결국 나는 어느 지점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대표는 '베티 프리던'이 있다. 가정주부들의 '이름 없는 문제'를 지적하고 언급했던 페미니스트, 그 유명한 [여성성의 신화]를 쓴 페미니스트. 그 책을 우리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에서 함께 읽기도 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나도 아쉬운 점을 적어두기도 했었다. 그러나 베티 프리던이 그 당시에 그런 책을 쓸 수 있었다는 것 자체는 우리가 환영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전에 모짜르트의 천재성을 보여줬던 영화 [아마데우스] 에서 아주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더랬다. 궁중 작곡가인 '살리에리'가 작곡을 하나 하고는 뿌듯해하며 모짜르트에게 들려주는거다. 이거봐, 내가 작곡했어 좋지? 하는데, 모짜르트가 그걸 들어보더니 음 좋긴 한데, 그걸 이렇게 하면 어때? 하면서 거기에 살을 붙여가지고 더 근사한 곡으로 만들어버리는 거다. 한 번 듣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를 머릿속에서 파바박 생각해서 살을 붙이는 것은 모짜르트가 천재라는 것에 확신을 더해주는 일화일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곡'이 우선해야 했다. 살리에리가 만들어둔 곡이기 때문에 모짜르트는 거기에 살을 붙일 수 있었다. 애시당초 그 곡에 대해서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은 살리에리다. 그리고 그 유를 더 근사한 유로 만들어 버린게 모짜르트고. 아, 물론 모짜르트는 천재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작곡가이긴 하지만 말이다.


베티 프리던이 자신의 사상과 책으로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는 것 역시 베티 프리던의 작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 이런 생각이 있어,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야, 라고 세상에 내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건 이런 점에서 잘못되었어', '그보다는 이런 식으로 나아가야 했지'라고 덧붙일 수 있었다. 결국 처음부터 완벽한 방법을 내보일 순 없지만, 서서히 우리는 좀 더 나은 것을 향해 힘을 모을 수 있게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잘못된 것일지라도 무언가가 존재해야 한다. 베티 프리던은 그 당시에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사람이었고, 후에 사람들은 거기에 살을 붙이고 있다.

비판과 비난을 가득 받을지언정 일단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은 그 성과를 인정해줘야 마땅하다.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는 내가 급진주의 페미니즘에 가장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자유주의 페미니즘 밖에 읽질 못해서 확신할 순 없지만, 저자 서문에서의 짤막한 개요들을 읽다보니 나는 어쩌면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더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그 모든 페미니즘들에 대하여 차근차근 다 읽다보면 내가 어느 쪽에 가까운지 좀 더 분명해지리라. 




페미니즘에 대해서 이 공간에 여러차례 얘기하곤 했지만, 나랑 같은 페미니즘을 지향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내게 남을 순 없다. 마찬가지로 나랑 다른 페미니즘을 지향한다고 해서 내가 내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현재 나와 다정하게 지내는 사람들 중에도 내가 지향하는 페미니즘을 페미니즘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나랑 바라보는 바가 같았으나 내가 딱히 친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페미니스트는 완벽한 인간, 흠없는 인간이란 뜻이 아닌데,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는 순간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여러가지를 덧씌우고 억압하고 제약하고 그리고 또 기대를 한다. 너는 페미니스트니까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줘야지, 라는 식의 억압도 존재하고 너는 페미니스트라면서 거기서 왜 그렇게 행동해? 라는 제약도 들어온다. 나는 이 모든 사건들을 수차례 마주하면서 아프고 고통스럽기도 했다. 갈등과 번민도 있었지만 정말 끔찍하고 싫은 기억도 있다. 어떤 순간들의 선택에는 후회하고 또 어떤 순간들의 선택에는 내가 잘했다고 쓰다듬게도 되는데, 최종적으로 지금은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을 보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가자고 다짐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인정 자체에 대해 아무런 욕망도 갖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페미니스트가 되는 건 아니니까. 설사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말을 들어도 아 임 오케이. 페미니스트라는 정체화나 타인의 인정같은 게 내게 중요치 않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그보다는 내가 보는 방향을 향해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참고서 같은 책을 읽는 것은 매우 힘겨운 시간이 되겠지만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또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기대되고 친구들과도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될지 궁금하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읽기는 마쳤고(그렇다고 모든 걸 다 습득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음은 급진주의 페미니즘 차례다. 그렇지만 오늘은 자유주의 까지만 읽고 마쳐야지. 머리도 좀 쉬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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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06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생각을 하나의 이즘으로 묶는 것 자체가 무리죠. 가장 진보적인 사상을 가졌던 사람이 자기 집에서는 가장 억압적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말이죠. 결국 어떤 사람이든 생각의 층위는 다양하고 무슨 이즘이라는건 그것의 대표흐름만을 표현할뿐인듯싶어요. 그래도 그런 분류가 필요한건 그속에서 내가 동의하는 생각 그리고 삶의 방향들을 더 쉽게 찾아낼수 있는 길잡이정도로러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어려운 책은 읽기 싫어서 그냥 다락방님을 비롯한 다른분들의 글을 눈팅하는것만으로 만족하고 있네요. ^^;;

다락방 2020-09-07 07:40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바람돌이님.
어제 이 책의 2장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읽는데, 그걸 읽으면서도 또 제가 백프로 급진주의와 같다고 생각하지도 않게 되었거든요. 앞으로 남은 장들을 읽으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바라보며 나아가는게 다른 사람들과 언제나 일치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세상은 워낙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살고 또 처한 상황도 역시 다르니까요.
바람돌이님, 책을 읽으면 너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면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고 쓴 글을 읽는 것도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면 ‘그 책이 정말 이렇게 말했나‘ 라는 의심이든 ‘그 책에서 이런 좋은 말을 하다니!‘라는 궁금증이든 어떻게든 책으로 다가설 수도 있게 될테고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는 것은 그대로 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

syo 2020-09-06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에요... 모차르트는 살리에리가 좋은 곡을 만들지 않았어도 바로 더 좋은 곡을 내놓을 수 있었을 거예요.... 물론 그렇게 만든 곡은 살리에리의 곡을 바탕으로 한 곡과 전혀 다른 곡일 테지만, 오히려 처음부터 모차르트가 만들어서 훨씬 더 좋은 곡일 확률도 없지 않아요.

천재와 수재의 차이는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천재 좋겠어-_ㅠ

다락방 2020-09-07 07:42   좋아요 1 | URL
맞아요, 모짜르트는 너무나 쉽게(영화여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살리에리의 곡을 변형시켰어요. 그건 그 사람의 재능의 극히 작은 일부일 뿐, 애시당초 무에서 유를 창조한 곡이 살리에리가 만든 곡보다 훨씬 많고 성공했죠. 천재는... 뭐랄까.. 제가 감히 뭐 어떻게 흉내내볼 수도 없는 저어어어어어어어기 어디쯤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천재로 산다는 건 어떤걸까요? 어쨌든 지금 내 삶과는 다르겠죠.... 이건 아닐거야, 이건....... 하하하하하.

공쟝쟝 2020-09-08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빨리 읽고 싶다...!!!...

다락방 2020-09-08 08:27   좋아요 1 | URL
저도 그 다음장도 빨리 읽고 싶은데 어제는 다른 책 읽느라 멀리했네요 ㅎㅎ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2020년 9월~ 2021년 1월 도서 공유합니다.


9월은 '로즈마리 퍼트넘 통'과 '티나 페르난디스 보츠'의 《페미니즘:교차하는 관점들》
















10월은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 & '파멜라 투르슈웰'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콤플렉스》총 두 권입니다.
















11월~12월은 '시몬 드 보부아르' 의 《제2의 성》. 이 책은 멤버들이 재독하는 책입니다. 이 책 읽기를 매번 마음먹다 포기하셨던 분들은 이 때 같이 시도해보세요. 멤버들의 페이퍼가 족족 올라올 겁니다. (번역은 동서가 낫다고 합니다)
















2021년 1월은 원래 제가 쉬자고 했건만....뭐하러 쉬나......하는 생각에 쭉 밀고 나가기로 했습니다.

1월, '캐럴 J. 아담스'의 《육식의 성정치》



















이상입니다.


2021년에는 같이 읽는 책 틈틈이 철학분야 책이 더해질 겁니다. 그럼 여러분 모두 안녕~

공부하자~~ 공부합시다!!!!! 빨빨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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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8-2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들의 면면이 아주 후덜덜하네요. 고로 기대가 아주 크다고 합니다.
진격의 ㄷㄹㅂㄴ! ㄷㄷㄷ 화이팅! 🤗

다락방 2020-08-27 09:38   좋아요 0 | URL
머릿속에 항상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생각 뿐입니다. 덕분에 언제나 좋은 책들을 가져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전 진짜 좀 짱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20-08-27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알찬 책 리스트이자, 벌써부터 부담감이 백배 상승하는 리스트..ㅎㅎㅎㅎ
하지만 하나씩 읽어갈 생각에 가슴이 둑은둑은하기도.
1월을 넘어가자고 할 때부터 믿지는 않았으나 막상, 이렇게, 멋진 책 한권을 딱 선정해주시니..
바로... 보관함에 푱. 다음달(흠? 며칠 안 남았잖아..ㅜ)에 사야지.. 눈누~

다락방 2020-08-27 11:50   좋아요 1 | URL
이렇게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여러분들과 함께 해서 너무 즐겁습니다. 쉬지 말고 갑시다, 쉬지 말고.
뭐하러 쉬나.. 생각하면서 책 딱! 선정하는 저란 사람과 멋지게 함께 갑시다. (셀프 칭찬)
갑시다, 가요. 뽜이팅!

수이 2020-08-2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월 뭐 하러 쉬나_ 여기 이 포인트 너무 좋아서 보자마자 얏호 소리 질렀지요. 9월 책 오늘 구입 고고씽.
ㄷㄷㄷ ㄲ ㄱㅇㅅㅈ! 어제 주문 오늘 주문 내일 주문 매일매일 간절하게 기원하나니.

다락방 2020-08-27 13:36   좋아요 0 | URL
이분들 초성게임에 재미붙이셨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빨리 육식의 성정치 사고 싶어 미치겠어요! 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20-09-0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철학이라니..!! 기쁘네요..(정말? ㅋㅋ)
지식이 느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립니다.

다락방 2020-09-04 08:01   좋아요 1 | URL
철학이라니. 기쁘지요? (정말? ㅋㅋ)

자, 우리 앞으로도 함께 열심히 읽어나가도록 합시다! 빠샤!
 














<4장 성의 산업화>은 매춘 시장을 다룬다. 매춘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나라. 한국에 대한 꼭지가 따로 나올 만큼, 매춘 시장에 있어서라면 한국이 빠질 수 없지. 여성학 책을 읽다보면 매춘에 대해 언급할 때 언제나 한국은 빠지지 않고 나온다. 일본군에게 위안부로 납치된 여성들에 대해 다루다가 결국 매춘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대한민국에 대한 얘기를, 이 책에서도 역시 하고 있다.



처음에는 일본군, 나중에는 미 점령군을 위해 조성된 한국의 매춘은 후에 한국에 주둔한 미군을 위한 군대 매춘으로 변했고, 그 다음에는 일본인 사업가들을 위한 섹스 관광으로 발전했다. (p.169)


성매매가 합법화가 된다는 것, 성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것도 위반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성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것이 다른 상품들을 판매하는 것과 같다는 것은, 그것이 가격 경쟁에도 뛰어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작년이었나, 동네에 꽈배기를 파는 작은 매장이 생겼는데 꽈배기가 단가도 낮은데 저 매장의 임대료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남걱정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 꽈배기 가게가 또 새로 생겼다. 요즘 대세는 꽈배기인가 보다, 하는데 먼저 생긴 가게에서 꽈배기 세 개에 아메리카노를 끼워 셋트로 이벤트를 시작했다. 단 돈 3천원이면 꽈배기 세 개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먹을 수 있는 거다.



성매매가 합법화가 되면 가격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 성을 사도 되고 그래서 구매하는 것도 감추지 않는 일이 된다면, 더 많은 공급이 생기고 더 많은 공급은 더 낮은 가격을 필연적으로 부르게 된다. 이 책의 3장에서 캐슬린 배리는


남자가 섹스를 하기 위해 여자의 몸을 살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p.159



물었었다. 그러나 살 수 있다고 되어버리니까, 상품에 따라 다른 가격이 매겨지는 일이 일어난다. 다른 것도 아닌 여성의 몸에, 여성의 성에.




타이 북쪽에 있는 인구 25만의 도시 치앙마이에는 1991년에 약 3천 명의 매춘 여성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매춘업소에서 여성들은 새장 속에 한 줄로 앉아서 선택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색깔별로 정해진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노란색은 4달러, 파란색 8달러, 붉은 색은 12달러, 투명한 것은 20달러." -p.186




매춘과 성 산업이 타이의 경제 기반을 크게 확장시켜 온 반면, 매매되어 온 외국 여성들로 인해 지역 매매춘은 위협받았는데, 이 외국 여성들은 낮은 가격을 부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기존 성 산업의 가격 하락을 초래하였다. 이 현상은 상당히 확산되고 있고, 여성 몸의 시장 판매에서 경쟁을 위해 전통적인 노동 시장에서 여성을 사온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p.188-189



성매매의 화살을 여자에게 집중하면 그것은 여자의 자유의지냐 강제이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거 니가 선택한거잖아, 너는 납치당한 거니까 좀 안됐네? 라는 제삼자의 쓸데없는 가치판단이 적용된다. 성매매 여성에 대해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판단하게 된다. 여자에게 도덕적 굴레를 씌우는 것은 이 사회의 전통이고 매우 익숙하니까. 그러나 위에 언급한 것처럼 캐슬린 배리가 했듯 화살을 남자에게 집중하면 우리는 한가지 답밖에 할 수가 없다. 남자가 섹스를 하기 위해 여자의 몸을 살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그 누가, 당연히 '있다'고 답을 하겠는가. 애초에 있지 않은 권리를 줘버렸기 때문에 화살이 여자에게 향한다. 남자에게 화살을 향하는 순간 너무나 명백한 답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왜 매매춘을 가능하게 해서 대한민국은, 타이는, 필리핀은, 미국과 유럽은 여자의 성을 경쟁하듯 후려쳐 싼 가격에 내놓는가.

왜 여성의 성이 군인들에 의해 착취 당해야 하고 외화 벌이용으로 착취 당해야 하는걸까.

여성이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상품으로 후려쳐질 때, 거기에는 후려치는 남성 개인만 있는 게 아니라 그걸 뒷받침하는 정부가 있다.



한국의 경우를 좀 더 보자.


















일국의 정신문화를 책임지는 자리라고 볼 수 있는 문교부 장관이 감히 매매춘을 애국적 행위로 장려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건 당시 대한민국이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병영 국가‘ 체제였다는 걸 웅변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은 매매춘 여성들에게 안보 교육을 포함하여 자신들이 국가 경제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가에 대한 교양 교육을 시행하여 외국인에게 최대한 서비스를 하도록 독려하였다. 그 교육 내용은 "일제강점기 정신대를 독려하였던 독려사와 너무 흡사하여 ‘신판 정신대 결단식‘ 같았다." (민경자, 한국매춘여성운동사)
물론 박 정권의 그러한 매매춘 장려 정책은 ‘수출 정책‘의 일환이었다. 방종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부는 외채의 압박을 줄이고 무역 적자 폭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자원을 국내에서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 그것은 바로 관광산업의 개발이었으며, 이를 핑계로 외화 획득의 원천은 이제 기생 관광의 루트를 통해 부분 해소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관광산업의 정책적 육성은 짧은 시일에 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용이한 방법으로 통용될 수 있었고, 많은 관광산업 유형 가운데에서도 기생 관광은 자금의 회전과 비축이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파급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때 아닌 기생 문화의 복원. ……1970년대 한국 관광산업의 본질은 바로 이렇게 사라진 전통문화 가운데 성을 수단으로 하는 ‘원색의 소재‘를 통해 그 치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도 하필 일본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신종 매춘으로 관광 기생업이란 명칭이 보편화된 것이다. -강준만,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p.87-88



무역 적자 폭을 해소하기 위핸 자원을 국내에서 발견해서, 그게 여성의 섹스여서, 많이 기쁘셨어요? 쉽게 돈 벌어서 부자 되셨어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매매춘 여성들을 애국자라고 치켜세웠으면 이왕 매매춘의 국책 사업화를 시도한 김에 그들이 큰 돈이라도 벌 수 있게끔 보호 장치까지 만들어줬어야 했을 게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 남성을 상대로 갖은 수모와 모욕을 당해가며 번 수입임에도 관광 기생에게 돌아오는 ‘화대‘는 여행사 커미션, 호텔 통과세, 밴드 악사비, 요정 종업원 팁, 버스 운전사 급료, 요정 지배인 몫, 접대 화대, 마담에 대한 사례, 호텔 객실 담당 팁, 교통비 등의 무수한 중간 착취자에 의해 거의 착취당하고 손에 쥐는 것은 생계비도 될까 말까 한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총수입의 80퍼센트를 중간 착취당했으며, 정부는 화대 착취 구조를 묵인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에 대해 박종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70년대 국가가 이렇게까지 해서 정책의 전환을 의도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국내에서 외국인들이 많은 돈을 쓰고 가게 하자는 기묘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뿐, 진정으로 기존의 매춘 여성들이나 빈곤 여성들을 끌어안아 범사회적으로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조성해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70년대 기생 관광 문화를 즐긴 주 고객들이 일본인이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해방 공간 속에서마저 단절되지 않고 존속된 과거 일제 공창 문화의 잔재와 이를 ㅅ스스로 척결하지 못했던 우리 자신들의 사회 의식적,실천적 한계를 반증하는 것이었다. 전도된 성 문화를 강화시키고 기생의 사회적 수요를 팽창시킨 한국의 관광정책은 결국 기생 관광을 일본에 역수출하는 새로운 현상까지 야기시킨다." - 강준만,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p.89-90)



분명하고 확실한 건, 매춘을 하는 여성이 결코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매춘이 여성 스스로의 자존감이나 자존심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부를 축적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레이첼 모랜'이 자신의 책에서 말했듯이, 여성의 몸을 이용해서 남성의 돈이 또다른 남성에게로 흘러간다.

한국이 여성을 이용해 벌어들인 외화는 과연 누구에게 축적되었는가. 그 돈은 성매매 여성들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쓰였는가.


리영희는 다음과 같이 개탄한다.
"정부나 국가가 그 여성 국민에게 통행금지 면책특권을 주면서까지 외국인 사나이들을 끌어들이는 정책은 딸을 바치고 그 대가로 부자가 되는 아비와 얼마나 도덕적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돈으로 국민이 얼마나 부해지며 국가가 얼마나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와 국민의 도덕적 타락, 비인간화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서는 경제 발전을 못 한다는 말일까. 그렇게까지 해서 외국인을 끌어들이고 외화를 벌어야 할까.…… 이 통에 10여 년을 지켜 내려오던 ‘4·19의 4월‘이었던 달이 금년에는 갑자기 ‘관광의 4월‘로 탈바꿈했다. 어제도 오늘도 신문에는 일본의 무슨 재벌, 무슨 사장이 서울과 지방의 어디 어디에 몇 층의 호텔 건설을 약속했다는 기사가 자랑스럽게 보도되는 것을 읽으면서 나는 우울해지는 것이다." - 강준만,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p.94



강간은 피해자를 고통스럽게 하고 괴롭게 한다. 이 책에서도 몇 번 언급되지만 피해자의 영혼을 갈갈이 찢어버리고 나라는 인간 하나를 철저하게 분해시켜버리고 만다. 그런 나 자신을 추스르는 것만해도 없는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하는데, 전쟁 중의 베트남에서 십대 소녀가 가족의 명예를 생각해야 했다. 게다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아닌데도 결혼할 가망이 없어서 매춘 여성으로 발을 들이고 만다. 세상은 여성들에게 대체 어떤 삶을 살라 말하고 있는 것인가.

강간은 매춘과 다른가?  나는 강간과 매춘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베트남에서 매매춘은 전쟁중에 벌어졌던 베트남 여성에 대한 성 착취 중 하나였을 뿐이다. 전쟁중에 남성들은 대규모 강간을 통해서 그들의 적을 모욕했다. 아시아의 전통 사회에서는 여성이 강간을 당하면, 대개 자신의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거나 결혼을 할 수 없게 된다. 리 라이 헤이슬립은 전쟁중에 베트남 중부의 한 농촌 마을에 살고 있던 십대 소녀였다. 처음에는 베트공이, 그 다음에는 미군의 지원을 받는 남베트남공화국 군이 매일 마을에서 밀고 밀리는 가운데 그녀는 양편 군인들 모두에게서 강간을 당했다. 베트남전중에는 강간당한 여성들이 특히 불명예스럽게 여겨졌다. 그들이 강간당한 것은 가문과 마을, 지역 전체에 먹칠을 하는 것이었다. 매춘은 헤이슬립과 같이 '결혼할 가망이 없는' 여성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길이었다. 전시의 성 산업은 성폭력과 강간이라는 군사 전략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강간당한 여성은 군사 전략의 피해자였지만 매매춘의 유일한 공급원이기도 했다. 미국이 많은 군인을 베트남에 쏟아 붓자 매매춘 시장의 수요가 급증하였던 것이다.

남성이 돈을 주고 매춘 여성을 살 때, 자신의 부인에게는 비밀이라는 점, 종교가 이를 금지한다는 점, 그리고 불법이라는 점이 남성들을 유혹한다. 군대 매춘의 또 다른 재미는 의심할 바 없이 마을과 가족을 강탈당한 다른 인종의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시키는 데 있다. -p.170



이제 절반 읽었다. 캐슬린 배리는 남은 절반에서 어떤 얘기를 할까. 무엇보다 끝맺는 말은 어떻게 할까. 그것은 희망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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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0-08-20 09: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글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과거 인신매매식으로 행해졌던 성매매는 현재 한국의 경우 거대 금융기업으로 변했다 봅니다. 즉 현재의 경우 대다수 매춘은 과거 납치나 강제로 되는 형태가 아닌거죠. 성매매 논쟁 중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이 과연 노동이냐 아니냐입니다.(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노동(연령이나 몸매 그리고 특수한 조건에 따라 제한되기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논쟁을 떠나 성매매는 과거에도 있어왔고, 현재도 있으며 뿌리가 뽑히지 않는다는 것이죠.

전 성매매 자체를 강간으로 규정하는건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건 쌍방의 합의인데, 모든 성매매가 구매자의 일방적인 폭력과 압력에 의했다고 할 순 없기 때문이죠. 성매매 자체를 강간과 동일선상에서 보는건 지나치게 성보수주의적 입장이라 봅니다.

확실한건 없애려는 노력에도 성매매가 사라지지 않았고, 오랜 시간 있어왔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그 억압적인 이슬람에서도 대대적인 탄압을 했지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뭐 성매매 자체를 동의하고 동의하지 않고를 떠나 소위 페미언냐들이 현실적인 문제를 넘 못봅니다. 예를 들면 오피스텔의 경우 손놈들의 휘두르는 폭력과 행패가 심한데, 단순히 부도덕을 내세우며 성매매 그 자체를 없애려고만 합니다. 오히려 성매매 그 자체보단 성매매를 하기 위한 과정에서 구매자가 종자자에게 물리적으로 인격적으로 행하는 폭력을 처벌하는게 더 중요하다 봅니다. 단순히 성매매 자체를 그렇게 볼 것이 아니라.

또한 노르딕 모델도 공개적 성매매를 때려잡은 것이지 소위 오피스텔류의 성매매 산업은 더 증가했습니다. 즉 기존의 탄압 방식으로는 성매매를 절대 없앨 수 없다는 것이죠. 이제는 성매매가 왜 사라질 수 없는지를 보고, 그 종사자들의 기본적인 생활권과 생명권을 보장해줘야 할 때입니다.

다락방 2020-08-20 10:06   좋아요 5 | URL
페미언냐들이 현실적인 문제를 못본다고 생각한다니, 김남기님은 페미언냐들을 제대로 모르네요. 어떤 페미언냐들을 만나보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페미니스트 들이야말로 성매매의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장이 갈리긴 하지만 성매매가 노동이냐 아니냐 논쟁도 나온거고요. 저는 성매매가 노동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애초에 사서는 안되는 것을 사겠다고 덤벼든 거니까요.
또한 그 문제를 들여다보고 세상으로 꺼내놓는 것도 다 페미니스트들이 한 일입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고요.

성매매를 강간으로 보는건 지나치게 성보수주의 입장이라 하시면 김남기님은 성자유주의자신가요? 성자유주의가 과연 누구에게 어떤 자유를 주는지도 봐야할 것이고요, 성매매에 놓인 여성이 그것이 쌍방 합의가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은 과연 누구와의 어떤 합의인가요? 네 몸 사고 내 돈 줄게, 내 몸 주고 네 돈 다오, 라고 했으면 그것은 쌍방 합의이며 아름다운 거래일까요? 애초에 그 여성은 왜 성매매를 하게 됐을까요? 그것이 그녀의 순수한 선택이었을까요? 만약 그녀가 유복한 집에 태어나 먹을것 걱정없이 살았다면 그 선택지를 받아들게 됐을까요? 그걸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또 돈을 받아들고 성을 팔 수밖에 없었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가해진 또다른 억압이 아닌가요?


제가 위의 글에서 인용한 베트남 십대 소녀의 경우 강간을 당하지 않았다면 성매매 여성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성매매 여성이라는 길밖에 남지 않았고, 성매매 여성이 된 후에는 구매자와 돈으로 거래를 하였겠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합의와 선택입니까?

김남기님, 페미니스트들은 성매매가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성매매를 없애려는 게 아닙니다. 성매매 안에서 성착취가 빈번히 일어나고 또 생명까지도 위험해지기 때문에 없애려고 하는겁니다. 성매매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어찌 모른다 하십니까. 여성주의 책 읽으면 그런 사례가 무수히 나와요. 성매매 여성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 신고도 못하고 신고를 해도 가해자가 처벌 받지 않는 상황이 무수히 일어나고요,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든 성매매를 인생에서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 다른 길에 대해 알려주려고 합니다. 이 책은 과거에 왜 쓰여졌을까요?

누군가 현실을 모른다고 비난하려고 할 때는 본인이 뭘 모르는지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syo 2020-08-20 10:34   좋아요 6 | URL
남기님의 말씀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과거에도 있었고 뿌리가 뽑히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논리가 아닙니다. 노예제가 사라지기 전까지 노예제는 ‘과거에도 있어왔고 현재도 있으며 뿌리가 뽑히지 않는‘ 제도였겠지요.

현재 있다는 이유로 앞으로도 그것이 계속 있을 거라 전제하고, 그 전제에 근거해 극복의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존재하고 심지어 만연한 사회에서 사회주의라는 대안을 꿈꾸는 남기님의 평소 급진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입니다. 자본주의를 극복해보려 했던 역사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로 ‘현존‘한다는 이유로, 사회주의적 어젠다를 자본주의의 영역 안에 포섭시켜 결국 자본의 영속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자고 하면, 남기님은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실 수 있으세요?

성매재 자체를 강간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고, 가장 중요한 건 쌍방의 합의라는 것은 남기님의 견해이고, 그것에 대해서는 제가 비난도 비판도 할 것은 아니지만, 성매매가 있어왔고 지금도 있다는 사실이 그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남기님의 말씀 속에 성 착취의 대상이 되는 개인은 없군요. 사용하신 ‘탄압‘이라는 비중립적 용어는 남기님이 이 주제에 대해 가지신 생각의 어떤 경사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라는 말씀을 하실만큼 이 주제가 남기님께 ‘현실‘인지도 한번 되묻고 싶습니다.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면 섹슈얼리티를 매춘화하는 과정이 여성 개인의 자기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좀 더 잘 아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비전공자 치고는 맑시즘 관련해서 적지 않게 읽었지만, 소외와 물화의 메커니즘으로 이해해도 저자의 주장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NamGiKim 2020-08-20 11:56   좋아요 4 | URL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한 사라질 수 없다 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구조적으로 사라질 수 없다 보았기에 왜 사라질 수 없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네 제가 평소에 보이는 모습들과는 달랐을지도 모르겠네요. 성매매에 대한 입장은 논외로 치더라도 현재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있다 보지 않습니다. 단순히 구매자와 종사자를 처벌하는 형태로 말입니다. 즉 그건 대안이 될 수 없다 봤고요. 따라서 단순히 행위자에 대한 비인간화 보단 그런 구조를 만든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겠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성매매 비범죄화 요구는 차별과 천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면 지지해야 마땅하다. “성노동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소외된 집단이다. 많은 나라에서 성노동자는 강간, 구타, 인신매매, 갈취, 각종 건강보험에서 배제되는 등의 차별, 강제퇴거 등 수많은 인권침해 위협을 받고 있다. …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성노동을 선택한 이들을 처벌하고 형법을 적용하거나 경찰을 동원해서 이들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다.“

최종적으로 없어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선 불가능이고, 현재의 불법화 방식으로도 못한다는 것.

(책은 나중에 읽어보겠습니다.)
 














8월의 같이읽기 도서인 《섹슈얼리티의 매춘화》는 정말이지 너무 재미있고 흥미롭다. 짜릿하기까지 해서 어떤 페이지에는 벅찰 정도로 밑줄을 많이 긋게 된다. 1장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2장 성적 권력을 지나면, 3장은 내가 들어본 적 없는 이름, 혹은 들어봤어도 잊었던 이름인 '조세핀 버틀러'에 대해 언급한다. 이 책의 저자인 캐슬린 배리는 저항의 첫 번째 물결이 '조세핀 버틀러'라고 보았고, 3장 전체를 조세핀 버틀러가 한 운동과 그 의의(부작용도 있었다)에 대해 할애하고 있다. 캐슬린 배리는 조세핀 버틀러에 대해 꼭 얘기하고 싶어했다.


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조세핀 버틀러를 들어본 적이 없고 들었다 해도 기억에 없는데, 이렇게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그리고 기억하지도 못하는 여성운동가는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게 됐다. 캐슬린 배리도 20년간 연구하고 운동하면서 이 책을 써냈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여성의 권리를 위해 애썼던 여성학자들, 여성운동가들이 존재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묵직해진다. 캐슬린 배리는 아마 내가 지금 캐슬린 배리에게 느끼는 이 감정을 조세핀 버틀러에게 느꼈던 것 같다.


조세핀 버틀러는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제도화된 매춘과 싸운' 사람이다. 매춘 여성 구제를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이고.


1798년 의사 두 사람이 파리의 매춘부를 검진한 뒤 성병 감염 사실을 경찰에게 보고하는 임무를 맡았다. 1802년에는 진료소가 생겨났고, 경찰은 모든 매춘부들을 등록하기 시작했으며, 일 주일에 두 번씩 의무적인 검진을 하도록 요구했다. 1871년 비엔나에 있는 국제의학협회(International Medical Congress)에서 전세계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매춘 관리를 위한 국제법이 상정되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이 법 체게는 국가가 매춘을 지원하는 형태의 관리로 발전했다. (p.123)



매춘 관리법이 생겨나면서 매춘은 합법화 되고, 매춘이 합법화 되면서 미성년자를 유인하거나 성인 여자를 납치해 성매매에 끌어들이는 일이 생겨났다.



관리를 통해서, 국가 행정 기관이 매매춘 지역의 매춘을 허가하는 것은 세 가지 지속적인 효과를 낳았다. ① 매춘을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것으로 다루게 되었고, ②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학대와 여성 매매를 은폐하였으며, ③ '강제적' 매춘과 '자발적' 매춘 사이의 새로운 구별을 만들어 냈다. (p.124)



합법화된 매춘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응할 수 없었다. 버틀러는 합법화된 매춘에 반대했다. 개인적으로 학대당하는 매춘 여성들을 자신의 집에서 돌보아주기도 했으며 외적으로 캠페인을 벌여 실상을 알리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강제적 매춘과 자발적 매춘을 구별해버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긴 했지만, 버틀러는 매춘을 합법화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결국 여성에 대한 폭력에 다름아니기에 국가와 남자에게 정화를 요구한거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애써도 사람들이 실상을 들여다보려 하지도 않고 운동이 크게 확산되지도 않아, 그녀는 자신과 뜻을 같이한다는 남자들의 힘을 빌린다.


그중에 다이어라는 남자는 종교,사회적 문제에 대한 책을 출판하는 사람이었는데, 버틀러와 뜻을 같이한다며 실상을 알리는데 함께하겠다고 한다. 버틀러의 말이 사실인지, 정말 세상이 그렇게 국제적으로 미성년자를 유인해 매춘에 끌어들이는지 확인한 후 그걸 책으로 쓰는 과정에서 다이어는 피해자를 만났고 피해자는 다이어가 그녀의 탈출을 도와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는 대신 당국에 신고했고 그녀의 탈출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경찰은 대충 조사하고 모든게 정상이라고 말했다.



다이어가 탈출하고 싶다고 말하는 여성들을 자유롭게 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경찰이 업소에 전하도록 함으로써 그 여성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주목해 보아야 할 일이다. 남성이 매매춘 관리에 반대하는 캠페인, 특히 구제 사업과 조사 연구에 참여했을 때, 이들은 피해자들의 운명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자신들은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 정의로운 영웅심에 지배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강제된' 매춘과 '자유로운' 매춘을 구분하는 것은 온정주의에서 드러나는 남성들의 영웅 심리를 조장한다. (p.139)



언론인 스테드(W. T. Stead)는 어떠한가. 버틀러는 스테드의 작품과 신문이 존경을 받고 있었기에 그의 캠페인 참여를 받아들였다. 힘있는 언론인이 캠페인에 참여해 도와준다면 그녀의 운동이 더 힘이 실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과정에서 미성년자 피해자와 성인 여성 피해자를 만들어낸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그대로 반복하는 과정을 거친 거다. 스테드라는 저 남자의 뜻은 글쎄 처음에는 버틀러와 함께 했을지 모르겠으나 결국 매춘여성을 구해주는 스스로에게 도취된 것 같다. 피해자를 구제한다면서 피해자를 만드는 것이 대체 무슨 막짓이란 말인가.




조세핀은 자신의 운동을 확립하기 위해서 온정주의적인 남자와 정치적인 연대를 모색하는 전술상의 과오를 범했다. 필연적으로 이것은 그녀가 반대해왔던 순결 운동가들을 자신의 깃발 아래로 끌어 모으게 되었다. 그녀가 그들과 어느 정도의 신념을 공유했을지는 몰라도, 그들의 정치적인 목표는 그녀와 명백히 달랐다. 그들은 영웅처럼 행동했고, 사회적으로 주목받기를 원했으며, 여성과 소녀는 남자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화시켰다. 그들은 여성의 의존성을 강화시켰고 여성의 조건으로서 순결을 강조하였다. (p.145)




나는 순수하고 명징하게 조세핀의 뜻에 함께하는 남자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여성들이 여성을 위해 연대할 때, 순수하게 진심으로 그 연대에 뜻을 함께하는 남자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이지, 실제로 많은 남성들은 자신의 영웅심에 도취된다. 설사 처음엔 순수하게 제도화된 매춘에 반대한다는 뜻을 가지고 참여했을지언정, 어느순간 그들의 그 뜻은 '제도화된 매춘에 반대하는 나를 봐!'가 되어버리고 만다. 다른 부분들에서도 영웅심리가 작동하겠지만, 특히나 이 매춘에 대해서라면 남자들은 그 영웅심리를 도무지 어쩌지를 못하겠는가보다. 그들은 매춘여성 구원서사에 등장해 반드시 그 영웅이 되고자 하지 않나.




자, 매춘여성을 구해주고자 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면도날》을 볼까? 우리의 백남 '서머싯 몸'은 얘기한다.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나쁘진 않을 거야.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매춘부하고 결혼한 친구들이 있지. 한 명은 스페인 사람이고 두 명은 동양 사람인데, 전부들 아내를 현모양처로 바꿔놨다구.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 줬으니 고마워서라도 잘하겠지. 게다가 남자를 만족시키는 방법까지 잘 알고 있으니까." (p.343)



매춘부와 결혼해 현모양처로 바꾸는 것은 이토록 선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여자라고 할 순 없지. 존경받는 사람들 중에서도 술을 좋아하고 아무하고나 자는 사람도 많아. 물론 좋은 습관이라고는 할 수 없지.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처럼 말이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군. 난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는 사람, 혹은 불친절한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하거든." (p.341)



매춘부가 그렇게 나쁜 건 아니라니까? 나쁜 여자라고 할 수 없지. 그렇지만 현모양처로 거듭날 수 있어. 빠샤!!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남자들의 영웅심리. 약한 여자를 구원해주고 영웅이 되어 이름을 떨치자는 그 영웅 심리. 애초에 그 여자들의 성을 사고자 한 것도 남자고, 성을 사겠다고 납치하고 유인한 것도 남자다. 게다가 아내가 있든 없든 여자들 찾아가서 성을 사는 것도 남자고, 자기들이 성을 사놓고서는 매춘부를 매춘부라 험담하는 것도 남자다. 지들이 몰아넣은 구멍에서 설사 꺼내줬다한들, 그게 그렇게 자랑할만한 일인가. 아주 놀고들 있다.





매춘 여성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아니 꼭 매춘 여성에 대한게 아니어도, 여성주의 모든 부분에 걸쳐 결국 언어에 대해 궁금해진다. 자유라는 것은 그 단어가 품은 뜻이 긍정적이기에, 자유라 이름 붙이면 반박의 여지를 없애버리는 효과가 있다. 선택도 마찬가지. 성적 자유의지라는 것은, 결국 누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매춘을 선택한다는 것은 역시 또 누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자유와 선택이라는 능동적인 단어가 정말 능동으로 쓰이는가. 그것의 뜻에 갇혀 오히려 억압받지 않는가.


나는 언어가, 그 언어가 가진 힘이 궁금하다. 더 많이 알고 싶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언어는 항상 그래 왔듯이 이런 특징을 아주 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너는 우리를 선하게 만들어 주어야 하고, 그렇게 지켜 주어야 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너를 위해 기도할 시간이(하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에 네가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만 해. 우리의 일상을 편하게 만들어 주고,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야만 해. …… 어떻게 해서든 너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고, 종국에는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야만 해. 어떻게 하는지 알지! 우리는 너에게 그걸 맡기겠어. 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해." 내가 만약 남자였다면 자신의 영혼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도덕적·영적 책임을 여자에게 맡기는 것을 부끄러워했을 것입니다. (조세핀 버틀러, p.129)




상류 계급 여성들은 남성들의 부와 지위 때문에 매춘을 했다는 혐의를 거의 받지 않는다. 마차를 타고 거리를 다니는 숙녀들은 괴롭힘당할 아무 위험도 없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 여성은 어떠한가? 노동자 계급 남자의 딸, 누이, 아내들이 밤에 외출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험난한 세상에서 아버지, 어머니, 친구 들을 잃게 되었거나, 그들과 멀리 떨어진 채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가려는 소녀들은 어떤가? (조세핀 버틀러) - P134

매춘 경험과 관련하여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은 섹스를 거래될 수 있는 것으로 환원시킨다는 문제이다. 제삼자의 개입은 여성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인데, 버틀러는 매매춘에서 제삼자인 포주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바라‘과 ‘강제된‘ 매매춘의 구분을 강조했다. 일단 매춘이 이런 식으로 구별되면 ‘강제적‘매춘에 반대하는 캠페인은 제삼자에 의해 강요되지 않은 매춘을 암묵적으로 용인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버틀러는 매매춘을 용인한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새로운 캠페인의 기본적인 약점이다. - P148

남자가 섹스를 하기 위해 여자의 몸을 살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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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8-19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이 가요. 가치 중립적인 언어는 없는것같아요. 또 절대선으로 여겨질 언어도 마찬가지고요.

다락방 2020-08-19 14:51   좋아요 0 | URL
단어 그 자체가 선한 단어라 할지라도 맥락에 놓고 보면 억압의 수단일 수 있더라고요. 그런걸 보면 모든 학문, 모든 지식은 결국 다 연결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언어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또다른 학문을 여러모로 뒷받침 해줄 것 같아요. 세상에 알아야할 건 대체 얼마나 많은 걸까요..

단발머리 2020-08-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정리를 잘해 주셔서 따라 읽기 좋을 것 같아요. 남성들의 선의가 어떤 식으로 변해가는지, 저도 관찰해 봐야겠어요.
제가 진도가 지지부진해서 이런 말하기 참 부끄럽지만, 이 책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좋은 책을 우리가 같이 읽고 있네요.

다락방 2020-08-19 16:49   좋아요 0 | URL
큰일났어요. 벌써 완독한 분이 계신데 저는 아직 159 라서... 물론 저보다 느린 분들도 계시지만.....
좋은 책인건 분명합니다. 속도가 더디지만 읽는 건 참 신나는 일이에요. 단발머리님도 부지런히 읽으시고 좋은 글 많이 많이 써주세요! 빠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