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22페이지 본문 하단에 실린 각주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무한히 긴 삶에 대한 욕구는 무한한 인식에 대한 욕구이기도 하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소설 『모든 인간은 죽는다』의 주인공은 불사不死의 삶이라는 가능성 앞에서 주저하는데, 그때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와 같은 삶이 무한한 배움을 가능하게 하리라는 사실이다. 실로, 무한히 오래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와, 그 언어들로 전승되고 기록된 인류가 쌓아 올린 지식 전체를 배울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종합하여 단 한 권의 최종적인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 책은 전 세계의 도서관을 합친 것과 맞먹을 것이며, 우주와 자기 자신을 향한 인류의 기나긴 탐구의 여정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이는 절대정신이 자신의 기원이자 목표로 귀환함을, 그리하여 거대한 자연사적·세계사적 원운동을 완성함을 의미한다. (p.22)


















찾아보니 국내에도 번역된 책이다. 보부아르는 '제2의 성'으로만 알고 있다가 이렇게 소설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불사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 나도 자주 생각해왔다. 내가 불사의 삶을 생각한건 단순하게도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종종 사람들에게 죽음이 두렵고 그래서 불사의 삶을 원하노라, 고 말하면 이내 '아프고 병들면서 살아있는 건 고통이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럴때면 나 역시 고민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불사의 삶이란 것은 구체적으로 떠올려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늙고 병들지 않은 채로 영원히 사는 삶을 의미했던 것 같다. 가능성 없는 일이다. 그러나 죽음이 두려운 건 언제나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죽지 않을 수 있다면 뭐든 할 것 같은 마음이 된다.


보부아르와 이 하찮은 나 따위...의 생각은 바로 여기서 갈린다. 내가 영원히 살기를 바란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라는 이유 말고는 딱히 없다. 그러니까 계속 살아서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쌓고..하는 것에 대한건 없다는 거다. 단순히 죽기 두렵다 →영원히 살고싶다로 이어졌을 뿐. 그러나 보부아르는 불사의 삶이 무한한 배움의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단하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오래 살아서 오래 공부하다보면 결국은 최종적으로 모든게 담긴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라니.. 너무나 대단하지 않은가. 내가 얼마나 하찮은 쪼꼬미 인간인지를 보부아르를 보며 깨닫는다.



이런 보부아르로부터 영감을 받은걸까. 나는 불사의 삶으로부터 무한한 배움의 가능성을 보게됐다는 보부아르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자 마자, 크- '블레이크 라이블리' 주연의 《아델라인:멈춰진 시간》이란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속에서 주인공 아델라인은 큰 사고를 당했는데, 그 사고 후에 늙지 않은 채로 그 모습 그대로 계속 살게 된다. 그녀에게는 어린 딸이 있는데 시간이 흘러 그녀의 딸이 할머니가 되도록 그녀는 여전히 젊은 모습을 유지하게 되는 것. 그렇게 오래 살아오면서 현재,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나 데이트중이다. 영화는 그런 현재를 중점적으로 보여주면서 진행되는데, 아아, 그녀가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뭘했을까? 외국어를 익혔다!! 그래서 포르투갈어도 막 해! 와, 저게 가능하겠구나, 저게 가능하겠어. 오래 살면서 그녀가 계속 젊으니 그녀는 외국어를 공부한거다. 너무 멋지지 않은가. 오래산다고 다 그렇게 살 순 없을텐데, 이거야말로 아델라인이 선택한 아주 멋진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델라인이 해를 거듭해 살아오면서 외국어를 익혔다면, 보부아르가 말한 것처럼 무한한 배움에 대한 것도 가능성 있지 않을까. 그러나 젊음을 유지하는게 더 유리할 것 같다. 나이 들어 책읽고 공부하니 예전같지 않아서, 젊을 때 막 듣고 보고 배우는 게 너무 중요할 것 같은 거다. 외국어를 이것저것 하게 된다면 내 능력치가 커지는 것일테고, 그렇다면...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가 만약 지금 한 500년쯤 살고 있으면서 외국어 여러개를 마스터했다면 지금쯤은 미국에 가서 마리 루티 강의도 들어보고 뭐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내가 500년을 살면서 열심히 외국어를 공부하느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린 것이지만...


아무튼 무한한 삶에서 무한한 배움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보부아르님이 진짜 대단하다... 나는 그런 생각 안해봤어.. 나는 역시 쪼꼬미 인간이야..쭈구리다.....


영화 아델라인을 보고 썼던 페이퍼는 여기 ☞ https://blog.aladin.co.kr/fallen77/9661834



이 책, 《사람, 장소, 환대》는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나를 건드리는 부분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사실 가장 먼저 나를 건드리는 문장은 ''공공장소에("대낮의 햇빛 아래")'라는 문장이었다.



그림자는 물론 몸과 다르다. 하지만 몸이 아니면서도 몸의 일부인 것처럼 몸을 따라다니며 몸의 연기를 돕는 물건들이 많이 있다. 가발이나 지팡이나 틀니처럼 말이다. 이런 소품들은 개인에게 신체적인 완전성을 부여하며 그가 공공장소에("대낮의 햇빛 아래") 오점 없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게 해준다. 사실 일상의 연극은 언제나 분장을 요구하기 때문에, 자연적인 몸과 인공적 부속물(또는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몸과 인공적 부속물들을 필요로 하는 불완전한 몸)을 구별하려는 시도는 부질없는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나체의 전시가 금지되어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말해주듯, 순수한 몸 그 자체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p.17-18)



위의 구절에서 공공장소에, 대낮의 햇빛 아래 라는 문장만이 나에게 확 볼드체로 형광펜 쳐져서 들어온 것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숨겨진 존재가 되어야 했던 때가 있을 것이다. 때로는 그보다 많이. 마찬가지로 내가 누군가를 숨겨야 했던 때도 있을 것이고. 나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숨겨진 것, 숨겨야 하는 것, '들키면 안되는 것'에 대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그건 나 자신에 대해 쪽팔린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만나면서 내 존재를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내가 좋다는 이유로 계속 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수시로 생각해야 했고, 은유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얘기하자면 '대낮에' , '공공장소에서' 나를 만나기를 꺼려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존재는 그에게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나 역시 상대를 그런식으로 대한 적이 있다. '대낮에' , '공공장소에' 그를 드러내는 걸 피하려고 했던 순간들이 내게도 있었다. 대낮에, 햇빛 아래서 만날 수 있지만 어둠을 선택하는 것과, 어둠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다르다. 나는 누군가 나를 햇빛 아래서 만나기보다는 어둠에서만 만나려고 해서 상심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 때의 나를 내 인생에서 도려내고 싶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그 당시에도 그걸 못견뎌했다. 심심풀이 땅콩이 된 것 같은, 그러니까 김현경의 이 책에서 말한것처럼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 같은 그 느낌이 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했다. 그건 아프다기 보다는 상하고 다치는 거였다. 다시는 그런 상황 속으로 나를 몰아넣지 않겠다고 수십번 다짐을 했던 시간이 내게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런 기미가 보이면 나는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내가 살면서 굳게 결심하고 끝까지 가져가자고 다짐한 게 있다면, 그건 '내가 나 자신한테 쪽팔리게 살지말자'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햇빛 아래가 아닌 어둠에서만 불러내려 한다면, 나는 그 사람의 손을 놓을 것이다. 내가 나에게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그것은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나 역시 누군가를 그렇게 대하려고 했던 시간들에 대해서도 내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떠올린다. 누가 나를 어둠속에서만 불러내려 했을 때 절망했던 것처럼, 내가 누군가를 어둠속에만 불러내려 했을 때, 나 역시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우리가 숨지 않는 것, 대낮의 햇빛 아래에, 공공장소에서도 웃으면서 활짝 만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오늘은 어둠에서, 라고 조건을 붙여 만나도 행복할 터였다. 저 볼드체의 문장은 순식간에 나를 과거의 여러시간으로 데려다놓았고 그래서 나로 하여금 아아, 불후의 명곡, <Color Of The Night>를 찾아 듣게 했다. 다시 들어도 로렌 크리스티의 목소리는 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사람 가슴을 후벼판다.






로렌 크리스티도 대낮에 그를 만나지 못하고 숨어서 만나야 했나부다... 크-



You and I moving in the dark

Bodies close but souls apart

Shadowed smiles(그림자!!)

And secrets are unrevealed

I need to know the way you feel


I'll bive you everything I am

And everything I want to be

I'll put it in your hands

If you could open up to me

Oh cna't we ever get beyond this wall


Cause all I want is just once

te see you in the light

But you hide behind

the color of the night


I can't go on running from the past

Love has turned away this mask

And now like clouds, like rain

I'm drowning and I blame it all on you

I'm lost, God save me



가사가 더 있지만 이쯤하겠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 갓 세이브미~ 에서 울고, 내가 원하는 건 한번이라도 너를 밝은 곳에서 보는 것이라는 말에 운다. 울자. 이 아침 울자..가을은 원래 울라고 있는 거다.... 울자. 크라이, 크라이... 나한테 밤에만 전화하지마... 내가 밤에만 픽업더폰 하게 하지마..... 그런건 이제 다 끝났어...........








You call me at night and I pick up the phone.....

over it


밤에만 전화하는 남자 닥치라고 하자.....수화기를 들지마!!




사람에 대해 얘기하면서 태아,군인,사형수에 대해 언급할 때도 번번이 복잡한 마음이 되었지만, 2장에서 외국인에 대해 언급할 때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사람이라는 말은 사회 안에 자기 자리가 있다는 말과 같다. (p.64)



여행객으로, 관광객으로 찾아가는 외국과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외국에 대해서, 그 낯선 사회 안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기 위해 분투해야 할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어딘가의 누군가에게는 자기 자리를 찾는 일이 힘겨워야 할까.



조건부의 환대 역시 환대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환대가 언제라도 철회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환대되지 않은 게 아닐까? (p.25-26)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에게 나만큼은 철회되지 않을, 무조건적인 환대를 해주는 사람이고 싶다. 나에게 당신은 언제나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조건 따위 없다고, 대낮에 햇빛 아래에서 언제든 볼 수 있다고.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당신도, 그리고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애쓰는 모든 사람들도.



좋은 책이다. 자꾸자꾸 페이지에 눈길을 멈추게 되는 책이다. 아직 75쪽까지밖에 못읽었지만 그렇다.

오래전에 누군가가 내게 어떤 책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 책 나는 지루했지만 네가 읽어준다면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사는동안 달콤한 말 참 많이도 들었지..다 끝나버렸지만. 어쨌든 이 책은 내가 환대하는 이에게 읽어주고 싶은 책이다. 매일매일 읽어주고 결국 한 권 다 읽어내고 싶은 그런 책. 읽어주다가 어떤 문장들에서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을 것 같다. 사람이라는 말은 사회 안에 자기 자리가 있다는 말과 같대, 정말 그렇지? 사회 안에 내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 너무 외로웠잖아? 같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겠지.



그럼 이만..



이 책 읽는 동안 '너멀 퓨워'의 《공간 침입자》를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드워킨은 낙태에 대한 처벌이 곧 태아가 사람임을 함축하지 않는다면서, 완고한 낙태반대론자라도 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 낙태에 찬성한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만일 태아가 사람이라면, 이는 강간에 의해 잉태된 사람은 살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셈이다(로널드 드워킨, 『생명의 지배영역』, 박경신·김지미 옮김, 이화여자대학교 생명의료법연구소, 2008., p.104). - P32

유교적 가부장 사회에서 기혼 여성은 친족이 없는kinless존재라는 점에서 노예와 비슷하다. 조선 시대에 기혼 여성에게 적용되었던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말은 여자들이 혼인과 동시에 부계 친족 집단에서 영구히 성원권을 상실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출가한 여자는 부모의 제사에 참여할 수 없고, 재산을 물려받을 수도 없다. 그리고 친정 일에 관심을 가져서도 안 된다(출가외인이라는 표현은 여자가 친정 일에 개입하려 할 때 이를 저지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시집에서 쫓겨나도 친정으로 돌아올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친정에 대해서 ‘외인外人,‘ 즉 아웃사이더가 되었다고 해서, 그녀가 남편의 친족 집단에서 그에 상응하는 자리를 얻은 것은 아니다. (아래 계속) - P37

그녀는 시집의 족보에 이름이 오르지도 않고, 제사에 참여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두 집단 중 어느 쪽에서도 성원권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시집살이가 종살이와 비슷하게 체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친족이 없다는 것은 자기를 위해 나서줄 제삼자가 없다는 것이다. 출가한 여자는 원래 자기가 속해 있던 친족 집단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그녀의 운명은 이제 전적으로 시집 식구의 손에 달려있다. 하지만 그녀와 노예의 공통점은 여기까지이다. 노예는 아무 명예도 갖지 않지만, 그녀에게는 명예가 중요하다. 또 그녀는 아들을 낳음으로써 시집과 혈연으로 이어지게 되며, 권력을 행사할 기회를 갖는다. - P37

『순수와 위험』에서 더글러스는 더러움을 자리place에 대한 관념과 연결시켰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발은 그 자체로는 더럽지 않지만 식탁 위에 두기에는 더럽다. 음식이 그 자체로 더러운 건 아니지만, 밥그릇을 침실에 두거나 음식을 옷에 흘리면 더럽다. 마찬가지로 목욕 도구를 옷장에 두거나 옷을 의자에 걸어두는 것, 집 밖에서 쓰는 물건을 실내에 두는 것, 위층의 물건을 아래층에 두는 것, 겉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속옷이 나와 있는 것 등은 더럽다." Mary Douglas, Purity and Danger, New York:Routledge, 2002. pp.44~45 - P73

실제로는 여성의 사회적 성원권을 부정하면서도, 으먕론에 의거하여 여성과 남성에게 대칭적이고 상호보완적인 위치를 부여하는 성리학적 세계관이 좋은 예이다. 공간적인 차원에서 이 세계관은 여성에게 안을, 남성에게 밖을 할당한다. 그러면서 여성이 집 밖을 마음대로 나다니는 것을 금기시한다. 하지만 여성의 자리가 집 안이라는 말이 곧 집이 여성에게 속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성은 공적으로 성원권이 없기 때문에 사적인 공간을 가질 수도 없다. 다만 남성의 사적 공간인 집에 그의 소유물의 일부로서 속해 있을 뿐이다.
(···)
이 이데올로기적 구별의 핵심적 기능은 여자가 자기 집을 갖는 것-자기 이름으로 된 재산과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 것-을 막는 데 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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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10-21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깊이 읽고 많이 느끼시는 다락방님!! 전 조금 뒤의 우정 파트를 읽고 있어요. 이 책은 갈 수록 더 좋아요. 무조건 적인 환대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렵니다 클킁

다락방 2020-10-22 08:47   좋아요 1 | URL
아아, 우정 파트라니, 너무 기대돼요! 우정 파트 읽고 싶어요! 열심히 읽어야겠어요.
북플 보니까 공쟝쟝님 이 책 완독했던데, 고생했습니다. 꺅 >.<

공쟝쟝 2020-10-22 12:15   좋아요 0 | URL
뒤로갈 수록 그나마 잘 넘어가서 ㅋㅋㅋ 으히히 팔로팔로미
 
초콜릿
















프로이트에 따르면, 일반적인 경우에 나르시시즘은 발달의 한 단계로 간주될 수 있는데, 결국 자신에 대한 사랑은 다른 대상에게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지적하는 것처럼 이러한 사랑은 보통 부모 중 한명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자기애를 다른 사람에게로 전이시키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원래의 건강한 나르시시즘이 심각한 정신 질환을 초래하게 되고, 이는 정신병의 발달 과정을 따라 진행된다.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된 정신병의 징후들에는 자기 자신만이 중요하다는 망상, 정신분열증, 환각, 늘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편집증적 감정이 있다. 가장 심각한 경우에 환자는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 자신의 정신 바깥에 누군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그에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p.164-165)




여러차례 언급했지만, 나는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해, 너에 대한 내 사랑이 너무 커." 라고 말하면서 상대에게 집착하고,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토커가 되어버리는 사람들이야말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비대한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상대가 없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일 수 없고, 상대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게 이해가 안되고, 상대가 내게 헤어짐을 말한 것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상대의 존재를 무시하고 자기 자신만을, 자기 자신의 기분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태도다. 자기 자신이 너무 소중하고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자기 자신이 아픈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헤어진 연인에게 들러붙고, 집착하고, 그러다 상대의 주변인들에게까지 접근하고, 어떻게든 연결되려고 별별 수작을 다하면서, 그러나 자기는 그것이 상대에 대한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거다. 그건 자기 자신을 사랑해서 돌아버린 것에 다름 아니다. 상대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거다. 그사람이 집중하는 건 '내가 사랑하는 상대' 가 아니라 '너를 이토록 사랑하는 나'인 것이다. 이런 나를 감히 떠나? 이런 나를 배신해? 이런 내가 싫어? 이런 나를 거절해? 는 결국 연인에 대한 폭력의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타인과 관계맺기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타인을 위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기분이고 자신의 마음인데,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배려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괴롭다고, 싫다고, 아니라고 말해도 돌아서지 않는건,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서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리안 모리아티'가 자신의 소설 《당신이 내게 최면을 걸었나요?》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당신이 계속 전화를 걸었을 때, 패트릭은 어떤 기분이었을 것 같아요?'

"당신이 갑자기 나타나면 패트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패트릭은 그날 밤 두려웠을까요?"

이상한 건, 지난 3년 동안 나는 패트릭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정작 패트릭이 어땠을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거야.

"폭력을 휘두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육체적인 폭력만 폭력인 건 아니에요. 당신은 패트릭을 무기력하게 만든 거예요."

"무기력하게 만들다뇨? 나는 패트릭을 사랑했어요. 그저 다시 함께하기를 바란 것뿐이에요."

"다시 생각해봐요, 사스키아."

내 정신과 의사는 나를 어디로든 달아나지 못하게 했어. 마치 나를 거울 앞에 세워놓고는, 내가 자꾸 외면하고 다른 곳을 보려고 할 때마다 내 어깨를 붙잡고 다시 거울 앞으로 돌려놓는 것처럼 느껴졌어. 내가 손으로 눈을 가릴 때마다 그녀는 내 손을 부드럽게 잡고 내 옆에 가지런히 내려놓는 거야. 마침내 나 스스로 거울을 들여다 볼 수밖에 없게 말이야. (p.621)



'나'를 너무 사랑해서 '너만 생각했다'는 것이 '너에 대한 사랑'인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타인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배려할 줄 모르는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스토커가 되고 헤어지자는 연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된다.




이 책, 《프로이트 콤플렉스》를 읽다 보면 정신분석학에서 사용하는 기본적 어휘에 대해 알게된다. 물론 우리가 그런 기본 어휘를 반드시 이 책으로만 습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책에서, 뉴스에서, 영화에서, 일상에서 들어 알고 있는 단어들일거다. '전이'나 '역전이'란 단어 역시 마찬가지. 이 책에서 처음 본 건 아니고 또 어떤 것인지 모르는 바도 아니었지만, 이 책에서는 본문에 언급되는 단어를 다시 한 번 짚어 설명을 해준다.



전이transference 강력한 감정, 특별히 성적인 감정, 그러니까 원래 다른 사람을 향해 있던 강렬한 사랑과 증오의 감정이 분석 과정 중에 의사에게로 이동하는 상황을 말한다. 처음에 이는 분석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문제 같았다. 의사에 대한 증오나 사랑은 환자와 의사의 공동치료 작업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곧 전이가 정신분석의 중심적인 도구가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환자들은 그들이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들을 분석자와의 관계 속에서 실연하게 되는데, 처음에 그들은 자신이 이전의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지만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분석자를 향한 이러한 반응을 분석하고 재구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분석이 이상적으로 수행되면 환자들은 분석자를 향한 반응들을, 그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원래 대상(종종 이 대상들은 환자들의 부모가 된다.)에게로 다시 이동시키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정신분석 과정에서 "환자들의 병의 원인이나 동기들(물론 사악한 동기들까지 포함해서)이 환기되고 환자들로 하여금 이를 의식하게 만듦으로써분석의 목적들이 설명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전이 관계는 끊임없이 해체된다. 정신분석학의 가장 큰 장애물처럼 보였던 전이는, 만야 ㄱ그것의 존재가 매번 확인되고 환자에게 설명될 수 있다면, 분석을 수행하는 데 가장 강력한 협력자로 고려될 수 있다."(Freud 1905a :159) 실제로 전이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분석은 적절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 (p.83)



이론을 달달 외우고 암기하는 것은 때로 무섭다. 그 이론으로만 적용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다보면 젊은 여성환자가 프로이트에게 짜증을 내고 이제 상담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그 때 프로이트는 그것이 환자의 전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환자가 성인남자로부터 받은 학대를 프로이트에게 푼다고 생각하는 거다. 2020년에 이 책을 읽는 나로서는, 하아, 그냥 프로이트가 하도 내 말을 들어쳐먹질 않아서 빡친것 같은데...라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어. 내가 상담하러 갔는데 자꾸 '너는 이래서 이래', '너는 그런거라니까' 라고 뭔가 자꾸 어긋나는 말 하는 것 같으면 빡이 오잖아요, 누구나... 아무튼 그렇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다가 상담해주는 의사에게 감정이 생기는 것은, 환자에게는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여기까지 오게 됐을 때는 내 감정을 어떻게 풀어야할지 또 누구에게 말해야할지 몰라서 이르게 된것일텐데, 의사는 내 말을 잘 들어주고 거기에 대해 대꾸를 해주려고 하니까. 그런 상황에서 성적인 혹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찾아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이가 환자가 분석자에게 생기는 감정이라면, 분석자 역시 환자에게 감정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것을 '역전이counter-transference'라고 한다. 나는 이 '역전이'에 대해서라면 '섀넌 도허티'가 주연한 영화 《블라인드 폴드》가 퍼뜩 떠오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성인이라고 뻥치고 친구들과 비디오가게에서 빌려다 본 야한 영화인데, 섀넌 도허티가 야한 거 찍었다고 해서... <베벌리힐스 90210> 의 주연이 야한 영화를... 해서 보았던 영화였다. 정확하진 않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줄거리는, 섀넌 도허티가 남편과의 성관계에서 만족을 통 느끼질 못해 정신과를 찾아가 상담을 한다는 거다. 상담을 받고 남편하고 다시 섹스를 해도 통 좋아지질 않았는데, 당시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있었고, 섀넌 도허티는 큰 자극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연쇄살인법 역할놀이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남편은 연쇄살인범 역할을 맡고 섀년 도허티의 눈을 가리고 침대에 묶어놓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섹스를 시도하는데, 이에 아내인 섀넌 도허티는 모처럼 흥분하게 되는거다. 아무도 이 영화 찾아서 볼 것 같지 않아 결말까지 얘기하자면, 그러나 남편은 아내가 멈추라고 할 때에도 멈추지 않았고... 실제로 바깥의 연쇄살인범은 남편이었다는 충격적인(!) 스토리... 정말 연쇄살인범에게 연쇄살인범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던 것. 정신과 의사는 자기 병실에 있다가 앗, 이런 저런 내용을 종합해보니 그녀의 남편이 연쇄살인범 같은데? 이런거 알게 되어서 어쨌든 구출해내는 내용인데, 그 남편과의 일 전인지 후인지 이 정신과 닥터는 환자에 대한 욕망을 참지 못하고 그녀를 병원 책상에 .....

그리고 영화에서는 이렇게 역전이로 환자와 섹스를 하게된 의사를 결국 그녀의 삶 전체를 구하는 구원자로 만들었던 것 같다.

이게 내가 고3때 본 영화니까 벌써 얼마전이야.... 이런 내용을 나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거 적다보니 다시 보고 싶은데 구할 방법은 없겠지. 넷플 같은데에 이런게 올라와 있을 리 없겠지....





오, 그리고 아버지. 프로이트는 아버지에 대해 얘기한다. 심지어 종교와 아버지...


프로이트는 종교적 신념이 인류에게 보호를 약속하는 동시에 처벌 가능성으로 인류를 위협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이론화시킨다. 그에 따르면, 종교는 사실 소망을 충족시켜 주는 환상이다. 이성에 기초한 합리적 사회에서 종교는 미신으로 간주되어 버려져야 마땅하지만, 프로이트가 보기에 종교가 미신으로 간주되어 조만간 포기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인류는 미신들, 그러니까 종교가 약속하는 절대적 가치들을 뜻하는 미신들에 지나칠 정도로 의존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 느꼈던 무력함 때문에 인간은 종교에 의존하게 된다고 주장하는데, 아이에게 최초로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되는 부모는 종교의 차원에서 안식처를 제공하는 동시에 처벌을 내리는 신으로 재창조된다. 늘 그랬던 것처럼 프로이트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p.199-200)



이 '종교'와 '아버지', 그 강력한 존재에 대해서라면, 얼마전에 읽은 '안정혜'의 《비혼주의자 마리아》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책 속에서 기독교 신자인 여자들은 '왜 우리에겐 아버지가 그렇게 많으며,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기를 힘들어 하는가'에 대해 얘기한다. 하나님 아버지, 친아버지, 영적인 아버지의 트라이앵글.






















나는 잘 모르겠다. 주양육자도 대부분 엄마고, 자식이 무언가 잘못되면 무조건 엄마 탓을 하면서, 그러나 중요한 건 왜 아버지라고 하는걸까...



마지막으로 프로이트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남근' 그리고 남근에 대한 해석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일전에 한 유명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서 기차와 터널을 남근과 질의 은유라고 성적 흥분을 느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터널 질, 기차 남근" 관련 기사




2000년에 출간되고 2010년에 국내에 번역된 이 책에서, 파멜라 투르슈웰은 정확히 바로 저 은유에 대해 짚고 넘어간다.



정신분석학이 모든 것을 궁극적으로 성적 욕망과 연관 짓는다는 생각은, 정신분석학과 관련된 일반적인 (그리고 잘못된) 가정 중 하나이다. 이런 가정에 따른다면 프로이트주의자는 사람들이 성과 관련 없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순간에도, 실제로는 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어떤 환자가 소파에 누워 지난밤 꿈에 터널을 지나가는 기차가 등장했다고 말하면, 정신분석자는 흰색의 긴 수염을 어루만지며 "흠, 기차는 남근을 상징하고 터널은 여성의 질을 상징하므로 당신은 당신 어머니와 성관계를 갖는 판타지가 있는 것입니다."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정신분석학을 비웃는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장면이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엉터리 분석'이라 불렀을 이런 패러디 같은 예 또한 분석 장면과 관련하여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 준다. (p.23)



헤헤..프로이트가 길쭉한건 남근이라고 그러니까 기차 남근 헤헤... 나는 프로이트적 정신분석학을 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헤헤헤...이러고 있을 거 생각하니까 너모 기가차.. 으휴....

그 해석을 프로이트 님이 싫어하십니다...




내가 이 페이퍼를 쓰면서 지금 또(!) 깨달았는데, 정말 소설 읽기는 매우 중요하다. 소설을 읽는 것은 매우 재미있으면서 동시에 유익한 일이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서 언급한 나르시시즘에 관한 것, 그러니까 스토커에 관한 것도, 리안 모리아티가 자신의 소설에서 언급하지 않나. 프로이트를 비롯한 다른 정신분석학자나 심리상담사 선생님들이 이론적으로 얘기하고 해석해주는 것들을, 소설가들은 소설을 통해서 한 편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여러분, 소설을 읽으세요!! 소설이 짱입니다!! 소설은 참말로 대단하단 말이야? 그 안에 다 있다, 한 편의 이야기와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모두... 샤라라랑-




코로나 시대가 되고부터는 아마도 나의 저 내면 깊숙한 곳의 욕망과 일치하여 벌어진 일이겠지만, 주말에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는 것이 작은 기쁨이 되었다. 딱히 어떤 요리를 하겠다는 큰 포부는 없지마는... 텔레비젼 보다가 쉬운 요리가 나오면, 오오, 저거 주말에 해볼까? 나도 자신있는 요리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하게 되는 것.

엊그제는 퇴근해 밥을 먹고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다가 <삼시 세끼>에서 차승원이 '김치 수제비'만드는 것을 보았는데, 와, 엄청 맛있겠다. 게다가 별로 어려운 것도 없어보여. 사실 수제비는 내가 되게 싫어하는 메뉴인데(그 덩어리 밀가루. 윽!!), 얇게 만들어서 저 김치 육수랑 먹으면 끝내줄 것 같단 생각이 드는거다. 김치가 맛있으면 김치 수제비야 뭐 그냥 맛있겠지만, 차승원은 거기에 고춧가루도 좀 넣고 오뎅도 넣고 해가지고 뭔가 진한 국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도 저렇게 해봐야지! 기대 잔뜩 되어가지고, 언제나 그렇듯이 아빠와 엄마에게 예고했다.


"이번 일요일 점심엔 내가 김치수제비 해줄테니까 딱 기다려!"


어제 퇴근하고 가니 아빠는 내게 '나는 기다림이 있어서 행복해' 라고 말씀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면서 덧붙이시기를 일요일 너의 수제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개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빠 배터지게 먹게 해줄게. 잔뜩 해가지고!!" 했더니,


"조금만 해..맛없게 할텐데.."


네???????

그럴거면, 왜 기대한다 하셨나요, 아버지...



아무튼 일요일에 시도해서 성공하면, 추석 때 불렀던 친구1, 친구2 불러서 조만간 다시 대접할거다. 내가 영혼의 소울푸드로 만들어주겠어. 움화화화화화화화핫. 벌써부터 김치수제비 먹을 생각에 땀이 난다... 소주랑 먹으면 진짜 개꿀이겠지.....




라고 프로이트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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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0-1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이트의 전이, 역전이의 실례가 다락방님이 예전에 읽었던 소설, 예전에 보았던 영화에 진짜 딱! 똑같이 존재하고 있네요!
신기해요!!! 이런 글을 공짜로 읽어도 되나요? ㅠㅠ (공짜로 읽는 나.... ㅠㅠ)

프로이트 아직도 진도가 많이 나가지 않아서 예습의 의미로 읽는데, 참 재미있네요. 마무리의 김치수제비가 화룡점정이고, 그리고 사진이.......... 이야~~엄지척입니다!

다락방 2020-10-15 11:54   좋아요 0 | URL
저는 막연히 프로이트 어려울 거라 짐작해서 좀 두려웠는데요, 제가 그간 소설책을 많이 읽어뒀기 때문에 프로이트 읽기가 좀 수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재미있게 잘 읽히더라고요. 특히나 프로이트가 젊은 여성환자들과 불화할 때는 더 재미있어요. 저는 프로이트에게 빡치는 그 환자가 됩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2020년을 살고 있기 때문이겠죠.
저는 아무튼 소설을 더 열심히 읽겠습니다. 지금 소설을 예전보다 덜 읽어서 초조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젠가 단발머리님 초대해 김치수제비 끝내주게 끓여서 대접하고 싶습니다. 독립해야지...(뒤돌아 터벅터벅 걸어간다..)

syo 2020-10-15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영감님은 세워놓고 대각선으로 보니까 더 녹록지 않게 생겼다는 느낌이다.... 별로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10-15 18:12   좋아요 0 | URL
흐음.. 눕힐걸 그랬나요? 🙄

공쟝쟝 2020-10-15 2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페이퍼다🤯 이렇게 엮어서 쓰고도 마지막은 김치수제비야!!!!
이렇게 지적이고 감성적이며 맛있는 음식까지 들어있는 페이퍼를 쓰려면 소설을 읽어야 합니다, 여러분!!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10-16 07:44   좋아요 1 | URL
소설을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그렇다고 제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건 아니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근데 나 프로이트 페이퍼에 재능 있나봐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공쟝쟝 2020-10-16 07:5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알고보니 그토록 싫어하던 프로이트는, 글쓰기 영감의 보고!!! 자, 전이 역전이 다음번엔 투사! 방어기제! 가죠! 맞춤 소설 추천츄천😣

다락방 2020-10-16 08:54   좋아요 1 | URL
좋아한다고 다 잘맞는 것도 아니고 싫어한다고 다 안맞는 것도 아니듯이 프로이트... 저랑 나름 잘 맞는 사람이었나봐요.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엄청 틱틱대면서 베프 먹었을지도 몰라. 또 모르지, 내가 집으로 불러서 김치수제비 해줬을지도..그러면서 ‘야 판타지 같은 개소리하지마‘ 라고 하는거야..소주 따라주면서....
 
















여성학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듣는등, 여성학에 대해 관심있게 공부하다보면 반드시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프로이트를 깐다. 그는 남성을 '남근이 있는' 사람으로 기준화시키고 여성은 남근이 '없는'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에게 상담을 받으러 오는 많은 여성들이 어릴적 성학대를 받았다는 걸 인지해 잘 진행해나가다가 그 사례가 너무 많아 그걸 성적 욕망으로 돌려버렸다는 얘기를, 나는 프로이트 관련 책보다는 프로이트를 까는 여성학 책들에서 먼저 접했다.


알지 못하고 욕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쉽다. 그러나 제대로 까기 위해서라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프로이트가 실제로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무엇을 연구하는지를 안다면 여성주의자들이 왜 까는지도 더 잘 알게 될것이었다. 설사 프로이트의 주장이 틀렸다한들, 그가 주장한 바를 토대로 그 뒤의 주장들과 연구들이 나온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작이 있었기 때문에 그 뒤에 수정이나 추가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라면 프로이트가 한 일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말을 해야 잘못된 걸 알 수 있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진지 다른사람들에게 보여야 혹여라도 잘못된 걸 누군가 짚어줄 수가 있다. 나 혼자만 속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고칠 수 없을 것이다.


자, 그렇게 나는 '파멜라 투르슈웰'이라는 '영어과 강사'가 쓴 프로이트를 읽는다. 프로이트를 읽는다기 보다는 프로이트에게 다가가는 방법 정도가 맞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1856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네 살 때 오스트리아 빈으로 옮겨 공부하고 직업을 갖게 되는데, 그곳에서 신경질환을 앓고 있는 여성들을 상담하기 시작한다.



프로이트가 처음 치료했던 환자들은 신경 관련 질환을 앓고 있던 빈의 중상류 계층 여성들(남성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지만)이었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는 신경성 질환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신경성 질환은 진단이 어려웠을 뿐 아니라 여성이라는 성性 과 현대 도시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와 긴밀하게 관련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당시 신경증 환자의 수가 눈에 띌 정도로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에 주목한 영국의 한 주석가에 따르면, "신경증과 연관된 문제들은 처음에 여성들에게서 발견되었다. 1890년대에 사람들은 매일 신경증 환자와 신경 쇠약자, 히스테리 환자들을 목격했다. …… 모든 대도시에는 신경 전문의들이 넘쳐났고, 그들의 사무실은 환자들로 가득찼다."(Showalter 1985:121) 19세기 동안 신경증은 그 범주를 정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 때문에 육체적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병은 일단 신경성 질환으로 명명되는 경우가 잦았다. -p.43



'육체적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병'이 여성들에게 훨씬 더 많이 일어났고, 그것 때문에 프로이트를 찾은 여성환자가 많았다는 것인데, 이 부분을 읽다보니 여러가지가 떠올랐다.


일단은 '베티 프리단'이 말한 이름 붙일수 없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문제를 느낀 여성들은 결혼 생활이나 자기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여성들은 자기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엌 바닥에 윤을 내면서 불가사의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도대체 자기는 어떻게 된 여성이란 말인가? 그런 여성은 자기 불만을 인정하는 행동을 너무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같은 불만을 지니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었다. 남편에게 말해보려고 애썼지만 남편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조차도 정말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15년 넘게 미국 여성들은 섹스보다 이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훨씬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들조차 이런 증상에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많은 여성들이 그랬듯이 정신과 의사에게 도움을 구하러 간 어느 여성은 "무척 수치스러워요" 또는 "전 절망적일 정도로 신경질적이에요"라고 말했다. 교외의 어느 정신과 의사는 불안해하며 말했다. "요새 여자들이 뭐가 문제인지 통 모르겠어요. 우연찮게도 환자가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겠어요. 성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것도 알겠는데……." 그러나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여성들은 대체로 정신과 의사에게 가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었다. "정말 문제될 게 없어. 아무 문제도 없단 말이야."

1959년 4월의 어느 날 아침, 나는 뉴욕에서 15마일 떨어진 교외의 새 주택가에서 주부 네 명과 커피를 마시다가 아이가 넷 있는 엄마가 절망적인 어조로 조용히 '그 문제'를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 나머지 부인들은 그가 남편이나 아이들 또는 가정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내 알아차렸다. 그 자리에 있던 여성들은 자신들이 모두 똑같은 문제, 설명할 수도 없는 그 문제를 같이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갑작스레 깨달았다. 그들은 주저하면서도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아이들을 보육원에서 데려와서 낮잠을 재운 두 명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순수한 안도감에 울음을 터뜨렸다. -《여성성의 신화》, 베티 프리단 지음, p.67-68





베티 프리단은 1950-60년대에 걸쳐 많은 여성들이 앓고 있는 이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 때문에 여성성의 신화라는 책을 집필하게 되었는데, 프로이트가 빈에서 중상류 계층 여성들의 신경질환을 상담해주던 때와는 몇십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시간이 흘러 베티 프리단이 깨달은 문제를 그 당시 프로이트가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프로이트는 여자가 아니니까. 자신이 원하는대로 공부할 수 있었고 살 수 있었던, 가사노동을 제공 받았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 육체적 원인이 분명치 않은 신경질환이라고 상담을 시작했지만,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찾는 것에 대해서는 원인 파악하는게 베티 프리단과 관점, 입장 자체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지적으로 굉장히 성숙한 아이었으므로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 프랑스어, 히브리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에 능통했고 또 의학도 공부했다고 했지만, 육체정 증상이 없는 여성들의 질환에 대해서는, 외국어를 수십개 한다고 잘 접근하는 걸 보장하는 건 아닐것이기 때문이다. 베티 프리단은 여성이었으며, 그들의 문제를 그리고 고통을 눈 앞에서 보는 사람이었다.



두번째는, 여성이 앓고 있는 육체적 증상에 대해서 그간 의학계가 연구하지 '않은' 것들이 여성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에 그것을 신경성 질환이라 부르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비평가들은 히스테리든, 신체화든, 스트레스로 인한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이든 심인성 질환이라는 개념에 오진의 위험이 크게 내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논쟁은 영국 정신과 의사 엘리엇 슬레이터 Eliot Slater 가 1965년에 쓴 사설에서 한 경고다. 히스테리 진단을 너무 자주 내리는 의사는 자신이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의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경고했다. 슬레이터 본인을 포함한 런던 국립병원에서 1950년대에 히스테리를 진단받은 환자 85명을 추적한 결과, 9년 후 환자의 60%이상이 뇌종양과 뇌전증 같은 기질성 신경계 질환을 진단받은 것이다. 이 중 열두 명은 사망했다. "히스테리 진단은 무지를 위장하려는 것에 불과하며, 풍성한 임상 오류의 원천이다. 사실 착각일 뿐만 아니라 유혹이기도 하다."라고 슬레이터는 결론 내렸다.-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마야 뒤센베리, P120



실제로 2000년에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실린 논문은 심장마비 증상으로 미국 응급실 열 곳에 실려 온 수천 명의 환자 기록을 분석해서 오진으로 퇴원당환 환자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 추정에 따르면 매년 미국에서 오진받은 심장마비 환자가 최소 1만1천 명이라고 한다. 55세 이하의 여성은 다른 환자들에 비해 집으로 돌려보내질 확률이 7배나 높았다. 오진의 결과는 대단히 심각했다. 집으로 돌아간 환자의 사망률이 두 배나 높았기 때문이다.-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마야 뒤센베리,P165



이는 심장마비의 증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증상은 교과서를 벗어나 더 다양하게 나타난다. 남성 연구를 통해 도출된 대표적인 증상은 극심한 가슴 통증과 왼쪽 팔을 타고 흐르는 통증으로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나이 지긋한 과체중인 백인 남성이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의자에 털썩 쓰러지듯 앉는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할리우드 심장마비‘로 알려지면서 문화적인 인식 속에 스며들었다. 이 상황은 의학 교과서에도 수십 년 동안 그대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여성, 특히 폐경 전 여성이라면 심장마비가 왔을 때 ‘비전형적인 증상‘을 더 많이 보이며, 증상이 며칠에서 몇 주 동안 이어지기도 한다. 목, 목구멍, 어깨, 등 위쪽의 통증이나 체한 증상, 숨이 차는 증상, 메스꺼움이나 구토, 발한, 불안감, 눈앞이 깜깜해지는 증상, 어지럼증, 일상적이지 않은 피로감이나 불면증을 들 수 있다.-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마야 뒤센베리,P171



이 역시 프로이트가 신경성 질환으로 환자들을 진찰했을 때로부터 몇십년 뒤의 일이다. 프로이트를 비롯한 당시의 다른 정신과 의사들이 신경성 질환이라 명명했던 것들은, 물론 그 당시에 사람들이 '그것은 여성들의 능력을 억압한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에서 비롯됐어' 라고 말하지도 못했고, '여성들의 신체적 증상으로 아무도 병이나 약을 연구하지 않았어' 하지 않았지만, 그러니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야 '그것은 이런 것일 수 있었다' 한 것이었지만, 그러니까 내 말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팠고 앓았으되, 제대로 된 치료나 상담을 받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나름대로 상담하고 연구하고 분석하고 치료하고자 했지만, 그러나 거기에서 얼마나 많은 '제대로 치료받은' 사람이 있었을까, 라고 하면.. 그의 분석은 분석 자체로 의미가 있었으되 실제의 치료와는 좀 거리가 있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아직 내가 프로이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읽고 있는 책에 실린 사례를 보면 딱히 막 치료를 잘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게 필요하다. 무엇이 문제인줄 알아야 해결할 수 있는데, 그것 자체가 어긋나있던 게 아닌가 싶은 거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환자들이 어린 시절과 관련하여 드러내는 기억들은 자주 때 이른 성적 경험들, 곧 아버지나 아버지를 대신할 만한 인물에 의한 성적 공격과 같은 것을 수반한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이라 부르게 되는 것은, 그의 생각에 일어난 두 가지 중요한 변화, 즉 이론적 차원과 실제 치료 기술적 차원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이론적인 차원에서 그는 환자들이 어려서 경험했다고 하는 성적 학대 이야기가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판타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환자들의 이야기가 모두 꼭 판타지였던 것은 아니지만, 판타지일 수도 있었다. 프로이트가 유혹 이론을 거부하는 과정과 관련된 최근의 논쟁은 마지막 장에서 다시 논의될 것이다.) -p.59



신경질환을 앓고 프로이트를 찾아오는 사람들중에는 어릴 때 성적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을 제대로 원인분석했지만, 이내 그 수가 많아 프로이트는 '판타지'로 방향을 바꾼다. 이에 대해서는 주디스 허먼이 자신의 책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히스테리아에 관한 모든 사례의 밑바탕에서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지나치게 이른 성적 경험'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 발생은 아동기 초기에 일어난 것이고, 수십 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방해하고 있지만, 정신분석을 통하여 밝혀질 수 있다." -《트라우마》, 주디스 루이스 허먼,  p.36




1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서,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아의 기원에 놓인 외상 이론을 비공식적으로 거부하였다. 프로이트의 대응은 그의 가설이 담고 있는 급진적인 사회적 함의에 스스로 계속 불편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히스테리아는 여성에게 너무 흔한 것이었고, 만약 그의 환자들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의 이론이 정확하다면, "아동에 대한 도착 행위"라고 말한 것은 만연해 있는 무엇이 되어 버린다. 그가 처음 히스테리아 연구를 시작한 파리의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이 개업의로 일하고 있는 빈의 존경받는 부르주아 가족들 사이에서도 아동 학대가 빈발한다고 결론지어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절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딜레마에 빠진 프로이트는 여성 환자에게 귀 기울이기를 그만두었다. -《트라우마》, 주디스 루이스 허먼, p.36-37


십대의 도라는 아버지의 정교한 성적 술책의 볼모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실제적으로 도라를 성적 장난감으로 친구들에게 제공하였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도라의 분노와 모욕감을 수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러한 착취 상황이 그녀의 욕망의 충족인 것처럼, 그녀의 에로틱한 흥분을 탐색하려고 하였다. 프로이트가 어떤 행위를 복수로 해석하자, 도라는 치료를 그만두었다. 《트라우마》, 주디스 루이스 허먼, p.37



주디스 허먼과 파멜라 투르슈웰은 같은 프로이트를 읽고 접근하는 방향이나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둘은 같은 사람이 아니니까. 파멜라 투르슈웰은 '판타지일 수도 있었다'고 프로이트에게 좀 더 가까이 서있는 것 같다. 그러나 주디스 허먼은 가차없게 내치는 느낌. 판타지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주디스 허먼이 하는 말쪽에 좀 더 마음이 기운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도라는 치료를 그만두었는데 -마침 이 책에서도 도라 부분을 읽고 있다-, 정말 프로이트에게 제대로 치료받고 비로소 안정적인 삶을 살게된 사람이 있기는 한걸까? 내가 프로이트를 앞으로 좀 더 읽어보면 그런 사례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게 될까? 프로이트를 읽는 건 분명 의미가 있고 또 내가 이 시점에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의 치료에 대해서라면 좀...


어쨌든 내가 주디스 허먼을 더 신뢰하고 그쪽으로 마음이 더 기우는 것은, 며칠전부터 '조르쥬 비가렐로'의 《강간의 역사》를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앙시앵 레짐 시대의 강간의 역사로부터 시작되는데, 미성년자 강간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아주 많은 수의 강간 피해자들이 10대 미만이었다. 이 책에는10세 미만의 강간 피해 아동에 대한 사례가 끊임없이 나온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강간범들이 희생자의 나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과 어린아이들을 '자발적으로' 결정하고 유혹을 할 수 있는 행위자로, 음란한 행위에 도오하는 '논리적인' 상대자로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1769년 5세 여아를 강간한 죄로 교수형에 처해진 르몽은 희생자가 "그짓을 훤히 알고 있었으며 직업여성들과 같은 언사를 쓰는 방탕한 아이"였다고 거듭 주장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변호한다. 강간범은 언제나, 어린아니들이 그 미숙함 때문에 법적 보호를 바독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쪽에서 먼저 성인을 유혹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 《강간의 역사》, 조르쥬 비가렐로, p.46



5세 아이가 그 짓을 훤히 알고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말이 안되지만, 설사 주변 환경으로 인해 그 짓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아이와 실제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거기에 대한 반성 없이 나를 유혹한 다섯살 꼬마가 음탕해! 라고 하는 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해지는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당시의 프랑스는 강간범에 대한 처벌이 약했다. 오히려 사회질서를 해치는 노상 강도에 대한 처벌이 더 강했다. 강간에 대해서라면 반항하는 여성에게 '서로 좋자고 이러는데 왜 반항하느냐'고 윽박지를 수 있는 시대였던 것이다.


앙시앵 레짐 시대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빈에서 신경성 질환을 상담하던 프로이트가 살던 시대와는 거리와 시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차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오래전부터 남자들은 어린 아이들을-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이웃집 아저씨가, 삼촌이- 강간해왔다. 심지어 앙시앵 레짐 시대에는 아버지로부터 강간당한 꼬마를 함께 처벌했다. 더러운 물이 옮겨졌다고. 이런 압박들은 여성들에게 그대로 남을텐데 -강간당한 나도 더러운거구나..- 그렇게 시간을 거쳐오며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고나서도 그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해 상담을 찾아가게 되기까지 그렇게나 시간이 걸렸던 것이 아닌가. 앙시앵 레짐 시대에 강간당한 꼬마들이 성인이 되어 프로이트를 찾은 건 아니지만, 그 다음 세대의 여성들과 그 다음 세대의 여성들은 '나는 괴롭다', '나는 이것으로부터 낫고 싶다'고 찾게된 게 아닐까 싶은 거다.


그런 사람들을 프로이트는 제대로 상담했었고 제대로 접근했었으나, 그런데 그런 사례가 너무 많았다. 어릴 때 성학대가 있었군, 너무 이른 나이에 성적 경험을 했군, 아버지나 아버지를 대체한 자들이 그리했군, 이라고 접근했으나 그걸 판타지로 돌려버리는 것은, 역시나 그가 그 시대의 유럽 남성이어서 그랬던 것이다. 비단 그당시의 그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한국의 남성들도 여성들의 성추행, 성폭행 경험에 대해 얘기를 들으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본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게 그렇게 많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다. 그러나 여자들끼리 모여서 얘기하면 정말로 대부분이 그런 경험이 있다. 피해자가 되었던 때가, 아이었을 때 그리고 청소년이었을 때, 성인이 되었을 때도 여자라는 신체적 조건 때문에 남자들로부터 추행과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다. 아주 많이 말하여지지 못하고 감추고 있던 것들이, 누군가 이런 적이 있노라고 털어놓기 시작하면 갑자기 다들 쏟아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판타지'라고 명명하는 것에 심한 거부감이 든다. 온몸으로 거부하고 싶다. 판타지라니, 나도 그게 판타지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이고 실재이다.




그래서 300쪽도 안되는 어렵지 않은 프로이트 개론서를 읽는 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읽다가 수시로 내가 읽었던 다른 책들을 찾아보아야 했으니까. 계속 읽고 더 읽고 더 읽다보면 아마도 더 할말이 많아지겠지. 책의 뒷표지에는 '프로이트에 찬성하는가?'라는 질문이 있는데, 찬성과 반대를 넘어서서 프로이트를 읽고 알아두는 것은 분명 유용할것이다. 그래서 또 프로이트를 주문했다. 사실 프로이트를 주문했다기보다는, 프로이트에게 접근하는 법을 주문했다는 게 맞는 것이지만.





















요즘은 사는 것에 즐거움도 의욕도 없다. 이런 시기가 곧 지나겠지, 라고 그저 흘려보내는 중이다. 시간이 가는 건 너무 안타깝고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동료가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발라 주었다. 커피를 내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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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10-13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작하셨군요! 글 좋습니다^^

다락방 2020-10-13 10:51   좋아요 1 | URL
얇은데 속도는 잘 안나네요 ㅠㅠ
저는 사람,장소, 환대보다 이 책을 먼저 시작합니다. 이거 빨리 읽어야 사.장.환. 도 읽을텐데, 초조합니다. 으하핫

비연 2020-10-13 12:52   좋아요 0 | URL
사.장.환을 읽다가 잠시 홀딩 중인데 얼른 읽어야겠어요 ㅎㅎ
프로이트도 읽어야 하고.. 으윽. 초조하네요 정말 ㅜ

다락방 2020-10-13 13:34   좋아요 0 | URL
시간이 왜이렇게 빠른건가요, 비연님 ㅜㅜ

2020-10-13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3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20-10-13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마어마하다!! 잘 썼다!! 역시....

다락방 2020-10-14 07:33   좋아요 0 | URL
무슨... 길기만 한 글이죠....

수이 2020-10-14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 말씀 맞아요, 새삼 감탄했어요, 다락방님이 더 좋아진 글입니다.

다락방 2020-10-14 09:32   좋아요 0 | URL
아이고 말씀 감사합니다 ㅠㅠ

공쟝쟝 2020-10-15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번 동감해요. 그 많은 추행을 여성의 판타지라고 생각해버린 건 프로이트가 여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베티프리단의 이름붙일 수 없는 문제가 신경증 환자와 비슷하다는 지적 역시 매우 고개를 끄덕입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어떻고 저떻고 보다는 ‘우리가 조금 더 집중해서 이야기 나눠야 할 부분’ 치유되고자 했던, 문제를 문제로만 병을 병으로만 남기고 싶지 않았던 내담자 - 환자들- 그녀들의 치유 의지를 다락방님이 읽어내신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다시 시작해야겠지요.
당대의 환자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열심히 고민해서 낫게하고자, 정신분석을 내놓은 (비록 유럽남이었으나) 프로이트에게 고맙습니다. 이상하게 꼬아 듣긴 했어도 진지하게 들으려는 의지가 없었다면, 그의 이론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겠죠. 가야할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기 위해 편견없이 책장를 펼치는 것. 저도 슬슬 따라갈게요! (찡긋-)

다락방 2020-10-16 08:57   좋아요 0 | URL
정신분석을 내놓은 건 정말 유의미한 일이죠. 필요한 일이었고요.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분명 발판을 마련한 것이니, 그 점은 높이 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길이라도 일단 들어서야 수정해서라도 앞으로 가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이크 이 길이 아니구나 하고 돌아갈 수라도 있으니, 다른 길이라도 찾아볼 수 있으니, 일단 길을 쫙 펼쳐놔준건 좋은 일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저도 프로이트 더 읽어보려고요. 이 할아버지가 ㅋㅋㅋ 읽으면 읽을수록 내 안의 영감 끄집어내 책 나오게 하고 소설 나오게 하고 난리터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랑 의외로 궁합 맞는 할아버지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곧 사장환 시작하겠습니다. 빠샤-
 

10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 공유합니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

'파멜라 투르슈웰'의 《프로이트 콤플렉스》


두권입니다. 해당하는 두 권을 다 읽는 것이 10월의 목표입니다.


11,12월 도서는 보부아르의 제2의성 재독을 하려하였으나, 아마도 다른책으로 바뀔 것 같습니다. 확정되면 안내하겠습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우리.. 푸코 읽을 것 같다? 움화화화핫.


참여하실 분은 말머리로 책 제목 붙이시고 읽으시면서 글 쓰시면 됩니다.

물론, 참여하신다고 상품이나 상금이나 어떤... 그 뭣이냐.....뭐 .. 이익은 전혀 없고요.

이 책을 읽었다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은 찾아올 수 있겠네요.

10월에는 사람,장소,환대와 프로이트 콤플렉스가 서재 내에 자주 노출될 예정입니다.

참고하세요.



자, 10월도 열심히 읽어봅시다. 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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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9-2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샤!

다락방 2020-09-29 15:14   좋아요 0 | URL
홧팅!!

막시무스 2020-09-2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주의 책읽기의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열독을 응원합니다!ㅎ

다락방 2020-09-29 15:14   좋아요 1 | URL
응원 감사합니다, 막시무스님. 연휴 잘 보내세요! :)

수이 2020-09-29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월에도 아자아자!

다락방 2020-09-29 15:14   좋아요 1 | URL
열심히 달려봅시다. 우리의 목표(쉿!)를 향하여!!

han22598 2020-10-01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이트는 이북이 없어서 안될 것 같고, 김현경 책은 저도 같이 읽고 싶어요 ^^

다락방 2020-10-02 11:48   좋아요 0 | URL
환영합니다, han22598님. 같이 읽어요! 같이 읽으면서 다른 분들은 어떤 글들을 쓰시는지도 보신다면, 읽기에 더 힘이 들어갈거에요. 아무쪼록 좋은 경험 되시기를 바랍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0-10-12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경 책이 여성주의와 맞닿아 있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한편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연장선상에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연관성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락방 2020-10-13 08:11   좋아요 1 | URL
저도 아직 책을 읽지 않아 내용은 모르고 있는데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하는 멤버중 한 명이 여성주의 추천도서 목록중에서 한 권 제안한거고 그게 이 책입니다. 이 책을 검색해 들어가면 여성학으로 분류는 되어있지 않지만, ‘장소‘ 그리고 ‘환대‘라는 것에서 여성주의랑 닿는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
 















각 사상들에 대해 정리를 하고 싶지만 그럴 깜냥은 안되고 누군가 정리해준다면 좋겠다고 늘 기다리던 차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몇년간 강의를 따라다니면서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흩어졌던 조각들이 이 책으로 하여금 정리될 수 있었다. 물론, 더 제대로 머릿속에 자리잡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러번 읽어야할 것 같지만 말이다.


읽기전에 내가 가장 크게 지지할 수 있는 건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아닐까, 짐작했는데 역시 그랬다. 그러나 자유주의부터 마지막의 제3의 물결까지, 내가 온 마음으로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백프로 지지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가장 많은 부분은 급진주의에 그리고 또 어떤 부분은 사회주의에 어떤 부분은 에코페미니즘에 동의했다. 정신분석 페미니즘 읽을 때는 이것이 페미니즘과는 좀 멀다고 생각했고(나는 프로이트가 너무 성에 편집증적인 것 같아서 영...), 가장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것, 지지를 딱히 보내게 되지 않는 건, 마지막의 제 3의물결 페미니즘, 퀴어 페미니즘 이었다. 이성애에 대한 전복적 시선은 유의미하지만, 내 경우에는 언제나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여성 대부분 그리고 여성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그들을 위해 가장 나은게 무얼까, 라고 했을 때 제3의 물결과 퀴어페미니즘이 딱히 그들의 자유를 위해, 비성적대상화를 위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질 않았다.


일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가장 크게 관심을 두는 게 무엇인지, 가장 크게 개선하고 싶은게 무엇인지에 따라 지지하는 사상에 대해서도 당연히 차이가 생길 것이다. 나는 여성과 아이들을 향한 성폭력과 성적대상화에 가장 큰 관심이 있고 가장 먼저 없애고 싶다. 여기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다보면 결국은 급진주의 문화 페미니즘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페미니즘에 대해 좀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숱하게 강의를 따라다니고 숱한 책들을 읽고 생각하면서 결국 나는 이렇게 되었다.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것,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결코 완벽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것, 남성과 동등한 기회 및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평등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딱히 선하고 정의롭고 어떤 일에서나 옳은 선택을 한다는 것이 결합되진 않는다. 인간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불완전했고 부조리했는데, 페미니즘을 알고 접한다고 해서 딱히 완벽하게 조리있는 인간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개인적 특성, 그 사람이 인간으로 가졌던 특성은, 페미니즘을 알기 전이나 후에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게으른 사람은 여전히 게으르고, 뒷담화 하는 사람은 여전히 뒷담화 하고, 집착하는 사람은 여전히 집착한다. 징징대는 사람은 여전히 징징대고,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약속을 잘 지키지 않으며, 거짓말 하는 사람은 여전히 거짓말 한다. 여기에서 했던 말 저기로 옮기고, 저기에서 했던 말 여기와서 옮기는 입 가벼움도 페미니즘을 접한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을 뿐, 결코 완벽해지지도 않고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 페미니스트에게 그들이 완전한 애정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페미니즘을 접하기 전에도 여성과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들을 괴롭히는 게 너무 싫었고, 그 상대들이 대부분 남자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런 성향이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좀 더 강화되고 또 원인을 분석하고 현상을 제대로 보게하는데 도움이 된건 사실이지만,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해보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나라는 인간 자체가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된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입이 가볍고, 말 전하는 걸 좋아하고, 사적인 비밀을 쉽게 폭로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을 싫어한다.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는 것도 싫고 집착하는 사람을 보는 것도 끔찍하며 치대는 인간도 싫다. 내가 페미니스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가졌던 성향이고,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도 변함없는 나의 성향이다. 나를 괴롭히는 인간들은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내가 페미니스트였을 때도 그리고 그 전에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싫어하고 또 새롭게 나를 싫어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나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내가 하는 다소 과격한 주장들에도 여전히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또 새롭게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을 보고 그렇게 된것이다. 나는 기존의 나이고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는 페미니즘을 아는 변함없는 나이다. 나는 누군가로부터 어떤 인간이기를 인정받고 싶어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보든 말든 니 마음대로 해라, 나를 싫어하려면 그 역시 네 멋대로 해라, 나는 너의 인정도 관심도 필요없다.


나는 내가 내리는 결정들이 여성과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것이기를 원하고, 그걸 생각하다보면 결국 급진주의 페미니스트가 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짓밟게 하는 계기가 된다.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너는 페미니스트잖아' 라면서 이상한 방식으로 다양하게 나를 괴롭힌다. 내가 무시할 수 있는 성차별주의자들이라면 상관없는데, 그렇지 않은 인간들이 그걸 이용하려고 들때면 몹시 괴로워진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와 이수정 이 롤모델이 되어버린 것 같다. 스스로 여성주의자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 거기에 대해서는 딱히 큰 관심을 주려하지 않는 사람. 그러나 가는 길이, 하는 행동이 다른 여성들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 그 존재 자체로 열심히 공부하고 행동하겠다는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사상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책을 읽는건 매우 유익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시대적으로 정리한 책을 좀 더 보고 싶다.

언제나 그렇듯이 좋은 독서였다.

이번달에도 어김없이 기한 안에 완독했다. 졸라 멋져... 셀프 쓰담으로 페이퍼를 마친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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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1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1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0-09-21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날이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듯 해요. 체계가 없는 독서를 하면서도 굳이 체계를 세워 읽어야만 길이 있는 건 아닐거야_ 그런 고집을 피우면서 살았는데 여성주의를 함께 읽으면서부터 체계를 세워 구체적인 독서를 하고싶다는 마음이 강해지고 있어요. 두꺼워서 늦게 읽기 시작해서 바들바들 떨었는데 좋은 책인지라 집중도 있게 쑥쑥 잘 읽혔어요. 고마워요, 다락방님. 덕분에 힘을 받는 느낌인지라. 점심 맛나게 드시고 10월 도서로 만나요 두근두근.

다락방 2020-09-21 12:41   좋아요 0 | URL
다른 책들도 그렇겠지만 페미니즘 책들은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차곡차곡 내 안에 쌓이는 것 같아요. 그건 결국 다른 페미니즘 도서들을 읽을 때 튀어나오더라고요. 읽는 그 당시에 바로 즉각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할지라도, 다른 페미니즘 도서를 읽으면서 ‘아 그 때 그 책이 말한 게 이거였겠구나!‘ 불현듯 깨달음이 오고 그래요. 그 순간순간들이 짜릿하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서 내 것이 되는것 같아요. 이번 도서처럼 정리가 잘 된 책은 읽으면서도 좋지만 몇 번 더 재독하는게 좋을것 같고 또 일단 한 번 읽어서 아는 이상 다른 도서들을 읽을 때, 아 그 책에서 뭐라했더라, 하고 찾아볼 수도 있을것 같아 책장에 꽂아둬야 할 것 같아요.

이번책 중에 정신분석 페미니즘 읽으면서 프로이트가 너무 싫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애기들한테도 성적인 걸로만 생각하게 만들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 이런 변태새끼가..라는 생각했는데, 우리 10월에 프로이트 입문서 읽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10월 도서로 그리고 글로 만납시다, 수연님.

2020-09-22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09-23 08:20   좋아요 1 | URL
ㅎㅎ 잘난척 되게 꼴불견으로 보일 수 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잘난척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더 잘난척하는 다락방이 되도록 하겟습니다. 그러니까 님도 열심히 힘내서 잘난척 하면서 살자. 내 안에 어떤 잘남이 있는지 자꾸 들여다보고 입밖으로 꺼내요. 내가 꺼내면 남들도 아, 저거 쟤 잘남이구나, 한다. 우리의 잘난척 삶을 위하여, 화이팅!!

2020-09-23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