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역사 1>을 다 읽었다. 총 네 권중에서 가장 얇은 책이니 앞으로 2-4권을 완독할 생각을 하면 앞이 깜깜하다. 게다가 1권도 읽었다고 볼 수도 없다. 글을 아직 모르는 아이들이 알고 쓰는게 아니라 글자를 보고 그리듯, 나 역시 이 글자를 '보는' 것에 그친 것 같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도대체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는 것.


나는 책을 읽으면서 종종 누군가에게 그 책에 대해 얘기해주는 상황을 머릿속에 그린다. 책의 줄거리기이도 하고, 그 책을 읽고난 감상이기도 하며, 그 책 속의 상황이기도 하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데 으윽, 너무 고통스러워 너라면 어떨 것 같아? 라고 묻는다거나, 그건 작가가 너무 욕심이 많아 지나치게 이것저것 끼워넣은 것 같아, 라는 식의 감상이기도 하다. 이것은 나의 독후활동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내가 읽은 것을 이렇게 알라딘에 쓰면서 그리고 누군가에게 얘기하면서도 그 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기 때문에 이런 독서 후 활동이야말로 독서를 더 즐겁게 만들어준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런데,


내가 그 책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얘기를 할 수가 없다. 만약 친구가 내게 요즘 무슨 책 읽어? 라고 물었을 때 내가 '성의 역사 읽어' 라고 답하고, '오 그 책 재미있어? 어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잘조잘 책에 대해 얘기하는 대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상대에게 얘기할 수 있으려면, 내가 무엇보다 그 내용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아는척을 하려고 해도 설명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아는 척은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거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내 것이 아닌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부질 없다. 성의 역사에 있어서라면 이 책속의 무엇도 내 것이 되질 않았다.



길고 지루하기로 하자면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따를 책이 없겠지만, 그 책을 읽는 것은 그래도 가능하며 또 그 책에 쓰인 말이 성의 역사 만큼 모르겠는 것들로 채워진 것도 아니다. 보부아르는 그 긴 책을 쓰면서 자기가 그동안 읽어온 책들을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쓴다. 쉽게 말해 예를 드는 거다. 자 봐,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했는데 그건 이래서 문제지, 이건 이 작가가 놀랍게도 이런 감각을 가지고 있어, 라고 할 수 있게끔 이야기를 끌어 오는 거다. 그 이야기는 자신의 것이 아닌,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이었지만, 어쨌든 보부아르는 이야기를 그 안에 끌고 온다. 그러니 나는 보부아르의 주장을 들으면서 이야기와 결합할 수 있다.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프로이트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직 그의 개론서를 두 권 읽은게 전부이지만 프로이트 읽기가 재미있었던 것은, 그 안에 프로이트가 만난 환자들의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연은 그 사람 고유의 이야기이고, 그것이 책 속에서 내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한 근거가 대고 예가 된다. 정신분석학에 사용되는 용어 자체는 내게 낯선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들을 이해하는 것이 내게는 어렵지 않았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사연, 즉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간 소설을 숱하게 읽어온 나로써는 사실, 정신분석학이든 사회학이든 여성학이든, 전문적 용어에 대해 알지 못했을 뿐, 개념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터였다. 정신분석학, 사회학, 여성학, 심리학, 인문학 등등, '학'이 붙는 책들은 주장이나 논리, 이론에 사연을 가져온다면, 소설은 이야기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고, 사람들이 소설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소설에는 재미있는 이야기 뒤에 다 들어있다. 한 사람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회적 배경과 그 심리, 그리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떤 것이 더 나은 선택일까 고민하는 순간까지, 소설이 주는 이야기는 단순히 이야기의 재미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모든 학문이 다 들어있는 거다. 다만, 전문적 용어만 쏙 빠져있을 뿐이다. 말이 길었는데,



푸코의 성의 역사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 문장 자체가 지나치게 길거나 도대체 무슨 말이지 모르겠는 문장들이 수두룩해도, 그것들을 꾸며주는 혹은 덧대주는 이야기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읽기 힘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낯선 단어들과 낯선 문장들이 쉼없이 이어진다. 아주 많은 문장들을 두 번 이상씩 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말인지를 잘 모르겠는거다. 집어던지고 싶은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이 책이 이번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라 그럴 수가 없었다. 와 진짜 같이 읽는 거 아니었으면 열 장도 못읽고 던져버렸을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꾸역꾸역 다 읽었다.



그렇게 읽다가 '고백'에 대한 부분을 만난다.


지난 금요일이었다. 고백에 대한 부분을 읽고 고백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푸코의 의지와는 달랐겠지만, 나는 폭력으로써의 고백에 대해 생각했다. 자, 푸코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자.


어쨌든 판단 기준의 관례와 비교해서, 전통의 권위에 의해 부여되는 보증과 비교해서, 증언뿐만 아니라 관찰과 입증의 세밀한 방법과 비교해서도 고백은 서양에서 진실을 생산하기 위한 가장 높이 평가되는 기술의 하나가 되었으며, 그때부터 우리는 고백이 유별나게 행해지는 사회에서 살게 되었다. 고백의 효과는 사법, 의학, 교육, 가족관계, 애정관계, 가장 일상적인 영역, 가장 엄숙한 의례로 멀리 퍼져 나갔고, 누구나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고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고백하고 자신의 과거와 몽상을 고백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고백하고 자신의 질병과 빈곤을 고백하고, 누구나 가장 말하기 어려운 것을 최대로 정확하게 말하려고 열심이고, 누구나 자신의 부모, 교육자, 의사, 사랑하는 사람에게 공개적으로나 사적으로 고백하며, 다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고백은 기쁨과 괴로움 속에서 자기 자신만이 볼 수 있을 뿐인 글로 쓰이기도 한다. 누구나 고백한다. 아니 누구나 고백을 강요당한다. (p.71)



고백은 대체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달라는 일이다. 고백했기 때문에 애정이 성사되고 고백했기 때문에 용서를 받을 수도 있으며 고백했기 때문에 마음의 짐을 덜기도 한다. 또한 고백했기 때문에 당신과 내가 더 가까워지기도 한다. 고백이라는 것은 그 속성상, 처음부터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당신과 내가 처음 봤을 때, 알지도 못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조금 더 잘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당신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었을 때, 그럴 때 하는 것이 고백이다. 푸코는 '누구나 고백을 강요당한다'라고 했는데, 그 말도 역시 맞다. 우리는 때때로 상대에게 고백을 강요하기도 한다. 범죄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사적인 관계에서도 그런 일들은 빈번히 일어난다.


고백은 당신과 나를 좀더 내밀하고 가까운 사이가 되게 하는데 일조하는데, 자신에 대해 먼저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친구도 내가 먼저 무언가를 얘기하면 이내 자기 얘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아, 이 친구의 말을 듣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하는거구나, 라는 것을 그 친구를 보며 깨닫곤 했었다. 이 친구는 말수가 적고 자신을 드러내는 걸 꺼려하는 친구지만, 그러나 내가 '말해말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이랬어' 라고 말하면, '아 그래, 내게도 그런 일이 있어' 라고 하면서 자신의 얘기를 꺼내는 거다. 그렇게 나에 대해 그 친구가 알아가고 그 친구에 대해 내가 알아가면서 우리는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 사귄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연인이 어떤 일을 내게 얘기한 적이 있었고, 나는 그 때 내가 지금 당장 물리적으로 그의 옆에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속상했었다. 그가 내게 '지금 네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 라고 말한 건 아니지만, 그 때만큼는 내가 옆에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고백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은밀한 바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고백은 여지없이 분명한 폭력이다. 나는 듣기 싫은 말을 강제로 들어야 했던 시간들이 있었고, 그것이 너무 괴로웠다. 알고 싶지 않았는데 알게된 일에 대해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 생각해도 대체 왜 내게 그걸 말해서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할까 몸부림치지만, 결론은 하나다. 그 얘기를 내게 했던 당사자들은 그 자신이 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중에는 죄에 대한 것도 있었다. 가해에 대한 것이 있었고 피해에 대한 것이 있었다. 상대는 내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내게 무거운, 아주 무거운 일이 되었다. 들으면서도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고 그 후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걸 얘기하던 그 당시 그 사람의 눈빛 같은 것들이 여전히 떠올라 괴롭다. 왜 내게 그걸 얘기했을까. 장담컨대, 내게 그 얘기를 하고난 후 당사자들은 자신의 짐을 어느 정도 덜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덜어진 짐의 무게는 고스란히 내게로 와 더해졌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런 것들을 듣게 한게 나는 소름끼치도록 싫다. 왜 내게 그걸 떠넘겼을까. 왜 자신의 짐을 덜자고 내게 더했나.



지난 금요일은 내내 고백에 대해 생각했고 그러자 자연스레 신해철의 노래 <고백>이 생각났다. 폭력으로써의 고백에 대해 생각했으면서도, 그러나 <고백>이 생각났다. 금요일은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여서 폭발할 것 같은 날이었고, 저녁에 술약속이 있었던 터라, 이런 기분으로 술마시면 나 미치겠다 싶어 나를 안정시켜야겠다 싶었다.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할 예정이었던 나는 일단 편의점에 들러 컨디션을 샀다. 오늘은 이런 기분으로 마시면 취할테니 조금이라도 준비하자, 하고 컨디션을 친구것까지 사서 준비했다. 그리고 친구가 도착하기 전까지 잠시라도 내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키기 위해 나는 <고백> 을 재생시켰다.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친구가 오기 전에 내 기분을 낫게 해야 한다. 스트레스로부터 그리고 연달아 떠오른 폭력으로써의 고백으로부터 나는 빠져나와야 했다.



이 모든 일들에 대해 내가 폭력이라고 생각한 건, 그 고백의 성격들 탓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상대에 대한 내 애정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였다. 만약 같은 말을 다른 사람이 했다면? 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니, 내 반응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중 한 고백은 내가 사랑했던 그 누구도 하지 않을 짓이었기에 도저히 교차할 수 없었다.



쉽게 사랑이라 말하고 쉽게 돌아서곤 했었지
나에겐 사랑이란 말은 그저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어

처음 너를 본 순간부터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
내 삶의 끝까지 가져 갈 단 한번의 사랑이 내게 왔음을
내말을 들어봐

이제 난 다시는 거짓 사랑을 얘기하지 않아
아주 오랫동안 기다린 사랑을 이제 난 찾았어

이제 난 다시는 헛된 사랑을 얘기하지 않아
많은 세월에 바래져도 언제나 난 너를 사랑해



친구가 도착했고 나는 친구에게 컨디션을 건넸다. 자, 우리 이거 마시고 시작하자. 친구는 웃었고 나는 컨디션을 앞으로 내밀며 친구의 컨디션과 건배했다.



푸코의 문장이(혹은 번역가의 문장이) 도대체 뭔말인지 잘 모르겠어서 아주 많은 것들이 헷갈린다. 뭐 어쩌라는거야, 이러라는 거야 저러라는 거야, 하면서 헷갈린 거다. 그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이다가, <제5장 죽음의 권리와 생명에 대한 권력>에서부터 재미있어졌다. 오, 군주의 생살여탈권에 대한 것이었는데, 오오, 흥미롭다.



군주는 정당하게 전쟁을 벌이고 신민에게 국가의 방위에 참여할 것을 요구할 수 있고, "직접적으로 신민의 죽음읠 꾀하지"않으면서 합법적으로 "신민의 목숨을 좌지우지할"권한을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군주는 신민에 대해 "간접적"생살여탈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만일 군주에게 항거하고 군주의 법을 위반하는 자가 신민의 한 사람이라면, 군주는 그의 생명에 대해 직접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징벌의 명목으로 군주는 그를 죽이게 된다. 이렇게 이해된 생살여탈권은 더 이상 절대적 특권이 아니다. 이런 생살여탈권은 군주의 보호와 고유한 존속을 조건으로 갖는다. (p.154)



물론 그렇다고 이 5장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한 건 아니지만, 요건 재미있어서 나중에 5장은 다시 읽어봐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권력은 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육체"와 "인구"의 연결 지점에서 성은 죽음의 위협보다는 오히려 생명의 관리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권력의 중심적 표적이 된다.
피는 오랫동안 권력의 메커니즘, 권력의 발현, 권력의 관례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p.167)



그리고는 '사드의 작품에서 피는 줄곧 쾌락을 따라 흐른다'(p.169)고 사드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으으..나는 사드 안읽었지만 싫은데, 하는데, 으앗, 너무 싫은 바타유가 나와..



정반대의 극단에서 우리는 그 동일한 19세기 말부터 성생활의 주제를 법, 상징적 질서, 주권의 체계에 재편입시키기 위한 이론적 노력을 추적할 수 있다. 일상의 성생활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확고한 의도가 있는 그러한 권력 메커니즘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돌이킬 수 없이 확산적인 성격을 (그것도 정신분석의 탄생부터, 다시 말해서 정신분석이 유전적 퇴화의 신경-정신의학과 단절하면서부터) 의심한 것은 정신 분석이나 적어도 정신분석에 있었을 수 있는 가장 초지일관한 것의 정치적 영광이다. 법, 즉 혼인관계, 금지된 혈족관계, 아버지-군주의 법을 성생활에 원리로 부여하려는, 요컨대 욕마을 중심으로 옛 권력의 영역 전체를 불러들이려는 프로이트의 (아마 그와 동시대적인 인종차별의 광범위한 대두에 대한 반발로 인한) 노력은 이로부터 유래한다. 정신분석이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파시즘과 대립하는 입장이었던 것은 이러한 노력 덕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분석의 입장은 분명히 역사적 상황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법, 즉 혼인관계, 금지된 혈족관계, 아버지-군주의 법을 성생활에 원리로 부여하려는, 요컨대 욕망을 중심으로 옛 권력의 영역 전체를 불러들이려는 프로이트의 (아마 그와 동시대적인 인종차별의 광범위한 대두에 대한 반발로 인한) 법, 죽음, 피, 주권의 심급에 따라 성적인 것의 영역을 사유하는 것은 사드와 바타이유에 대한 참조가 어떠하건, 그들에게 요구되는 "전복"의 담보가 무엇이건, 결국 역사적 "후방-선회"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성생활의 장치와 동시대적인 권력의 기술로부터 성생활의 장치를 사유해야 한다. (p.170-171)




나는 위의 문장을 아무리 읽고 또 읽어봐도 그래서 사드와 바타이유가 어쨌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들의 그 피를 부르는 성에 관한 것은 그들의 의도가 어떠했건 진보적이지 못하다는 것인가. 그들이 뭘 어쨌건간에 우리는 별개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인가.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어. 그렇지만 내가 사드를 싫어하고 바타유를 싫어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안다. 사드는 사실 읽어본 적 없으니 '모르면서 싫어한다'고 하는게 맞는 말일테고, 으으 바타유 진짜 졸 싫다. 바타유 너무 유명해서 내가 그의 작품을 어디 한 번 읽어볼까, 했던게 《눈 이야기》이다.
















이 책 읽다가 37페이지에서 포기했다. 거기에 대해 쓴 명품 페이퍼는 여기 ☞ https://blog.aladin.co.kr/fallen77/9424234


저 페이퍼에서도 얘기하지만, 여기에서는 섹스하면서 오줌 싸는 얘기가 나온다. 상대와 자기의 몸에 오줌을 싸면서 쳐발쳐발하는게 나오고, 단체로 섹스하면서도 그렇게 하는데, 나는 일단 그 부분에서 오줌 냄새 너무 나서 싫었고, 게다가 장농에 들어가서도 오줌 싼다 그래서 흠씬 두들겨패고 싶었다. 오줌 이불빨래 안해본 바타유 되시겠다. 지가 빨래하는 거 아니라고 그렇게 여기저기 오줌 싸대면 하아- 일하는 사람에게 왜 그런 고통 안겨주지요? 나는 푸코의 성의 역사에 바타유 나오는 순간, 오줌 빨래 니가 해라... 하는 마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눈 이야기에 실린 책날개의 작가 소개를 살펴보자.


1897년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의 소도시 비용에서 태어나, 매독 환자에 맹인인 아버지와 우울증을 동반한 정신착란에 시달리는 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한때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성직자의 삶을 꿈꾸기도 했지만, 파리 국립고문서학교에 진학하여 파리 국립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1962년 오를레앙 도서관장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 사서로 일했다. 그러면서도 '사드의 적자'라 불릴 만큼 매음굴을 전전하며 에로티슴 소설을 썼고, 니체의 무신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헤겔의 종교철학에 심취하여 <도퀴망> <크리티크>등 당대 사상계를 주도한 잡지를 주재하기도 했다.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종교, 정치, 문학, 예술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집필 활동을 펼쳤다. -<눈 이야기> 책날개의 작가소개 中



이 책의 뒷표지에는 수전 손택도 바타유를 좋아한다고 했는데(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 나는 그래서 뭔가 있을 줄 알았지. 이불 빨래 안하고 오줌 싸는 사람들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런 바타유에 대해서라면 나는 얼마후, 아아, 드워킨 님의 글에서 만나게 된다. 안드레아 드워킨 만세다! 드워킨이 바타유를 지적할 때, 나는 내가 바타유를 싫어하는 게 나의 본능적인 감각이라는 것을 알았고, 살면서 습득한 경험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바타유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매춘은, 여자의 태도의 논리적인 귀결이다. 여자가 매력적인 한 남자의 욕망의 먹이가 된다. 여자가 순결을 지키겠다고 결심을 단단히 햇으므로, 완전히 남자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면, 문제는 어느 정도의 금액에, 어떠한 상황에서 여자가 굴할 것이냐이다. 만약 조건이 이루어진다면, 여자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성의 대상으로 내놓는다. 매춘은 다만 경제적 요소를 강하게 지니고 있을 뿐이다. (바타유의 단언, p.237)








안드레아 드워킨의 이 책에서도 수전 손택이 언급된다. 수전 손택을 비롯한 많은 사상가들이 바타유의 글을 심오하다고 했다는 거다. 드워킨은 바타유의 <안구담>이란 책에 대해 언급하는데(고추를 빨고 오줌을 싸고 발기되는 걸 보기 위해 목졸라 죽이고, 안구를 빼서 항문에 넣고..), 드워킨의 포르노그래피를 읽고 쓴 명품 페이퍼는 여기 ☞ https://blog.aladin.co.kr/fallen77/11398382




으 싫다... 그의 문학을 심오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마음속에 그것을 '오 심오하다!' 느껴서 그런걸까? 글쎄, 모든게 취향의 문제라지만, 난 잘 모르겠네?




여성학 책들을 읽다보면 매번 모든 책이 백프로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태어나 살아온 삶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라,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들이 머릿속에 팍팍 들어오는 건 아니라는 거다. 그러나 일단 읽고 60프로 정도만 이해한 채로 있어도, 그렇게 읽었던 경험과 60프로가 나에게 남아 있어서, 훗날 다른 책을 읽다가 갑자기 팍 떠오르면서 그 전에 60프로 이해되던 것이 갑자기 75프로가 되기도 한다. 앗, 그 때 그 책에서 말한게 바로 이거였구나! 하고. 또한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네? 라고 했다가도 다른 책을 읽다가 퍼뜩, 아, 혹시 이게 그 뜻이었나? 하고 찾아보면 또 이해가 될 때가 있다. 이런것들이야말로 독서근육일 것이다. 근육이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푸코의 책을 내가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책(이야기가 없는!!)을 읽는 근육이 내게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푸코의 책을 4권까지 어떻게든 억지로 읽어낸다면, 지금의 5프로 이해가 15프로가 되고 70프로가 되는 날도 올것이다. 물론 계속 독서를 한다는 전제하에 그렇다. 다른 책들을 또 읽고 읽다보면, 앗 그 때 푸코가 한 말이 이건가? 하고 다시 들춰보게 될 날도 오겠지. 그런날을 기다리며 나는 이제 2권을 시작하겠다. 아, 며칠 좀 쉰 다음에....































성에 관해 말하도록 부추기는 모든 선동이 성의 비밀을 깨뜨리려고 하건, 말하는 방식 자체에 의해 성의 비밀이 막연히 지속되건 성의 비밀은 아마, 그 모든 선동의 자리를 결정하는 기본적 실체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그 모든 선동의 매커니즘 자체에 속하는 주제, 즉 성에 관해 말하라는 요구를 구체화 하는 방식, 성에 관한 담론의 한없는 확산적 유통에 불가결한 허구이다. 근대 사회에 고유한 것은 근대 사회가 성을 어둠 속에 머물도록 운명지었다는 점이 아니라, 근대 사회가 성을 ‘그‘비밀로 내세움으로써 언제나 성에 관해 말할 운명이었다는 점이다. - P44

어른과 어린이의 분리, 부모의 침실과 아이들의 침실 사이에 확립된 양극 구조(이 양극 구조는 19세기 동안 민간 주거가 대대적으로 건설될 때 철칙이 되었다), 사내아이와 계집아이의 상대적 격리, 세심한 육아(育兒)의 엄격한 수칙[어머니의 수유(授乳), 위생], 어린이의 성생활에 대한 부단한 관심, 추정된 수음의 위험, 사춘기에 부여되는 중요성, 보모에게 암시되는 감시 방법, 훈계, 비밀과 두려움, 필요를 인정받음과 동시에 꺼려지는 하인의 존재, 이 모든 것으로 인해 가족은 가장 작은 규모로 축소된 형태까지도 단편적이고 유동적인 다수의 성생활로 포화된 복잡한 조직망이 된다. - P57

어쨌든 판단 기준의 관례와 비교해서, 전통의 권위에 의해 부여되는 보증과 비교해서, 증언뿐만 아니라 관찰과 입증의 세밀한 방법과 비교해서도 고백은 서양에서 진실을 생산하기 위한 가장 높이 평가되는 기술의 하나가 되었으며, 그때부터 우리는 고백이 유별나게 행해지는 사회에서 살게 되었다. 고백의 효과는 사법, 의학, 교육, 가족관계, 애정관계, 가장 일상적인 영역, 가장 엄숙한 의례로 멀리 퍼져 나갔고, 누구나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고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고백하고 자신의 과거와 몽상을 고백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고백하고 자신의 질병과 빈곤을 고백하고, 누구나 가장 말하기 어려운 것을 최대로 정확하게 말하려고 열심이고, 누구나 자신의 부모, 교육자, 의사, 사랑하는 사람에게 공개적으로나 사적으로 고백하며, 다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고백은 기쁨과 괴로움 속에서 자기 자신만이 볼 수 있을 뿐인 글로 쓰이기도 한다. 누구나 고백한다. 아니 누구나 고백을 강요당한다 - P71

권력은 손에 넣거나 빼앗거나 공유하는 것도 아니고, 간직하거나 멀어지게끔 내버려두는 것도 아니다. 권력은 무수한 지점으로부터, 불평등하고 유동적인 관계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행사된다.
권력관계는 다른 유형의 관계[경제 과정, 지인(知人)관계, 육체 관계]에 대해 외재성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유형의 관계에 내재하고, 거기에서 새겨나는 분할, 불펻등, 불균형의 직접적 결과이고, 역으로 이러한 차별화의 내부적 조건이고, 단순한 금지나 추방의 역할에 힘입어 상부구조의 위치를 점하는 것이 아니라 작용하는 거기에서 직접적으로 생산적 역할을 맡는다. - P110

대개의 경우에는 유동적이고 과도적인 저항지점들이 문젯거리로 떠오르면서, 사회의 여기저기에 균열이 생기고 통일성이 무너지고 재편성이 초래되고 개인에게 자국이 나고 개인이 재단되고 개조되며 개인의 마음속에, 개인의 육체와 영혼에 축소할 수 없는 영역이 그려진다. - P112

권력관계에서 성생활은 가장 은밀한 요소가 아니라 가장 많은 활동에 이용될 수 있고 가장 다양한 전략에 대해 거점 또는 연결 지점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장 큰 도구성(道具性)을 갖추고 있는 요소의 하나이다. - P120

‘여성 육체의 히스테리화‘, 이것은 여성의 육체가 완전히 성생활로 포화된 육체로서 분석되고, 이를테면 자격을 부여받거나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하고, 여성의 육체에 고유한 병리학의 영향 아래 여성의 육체가 의료 실천의 영역에 통합되며, 끝으로 여성의 육체가 (여성의 육체에 의해 일정한 다산성을 보장받게 되어 있는)사회체, (여성의 육체가 실질적이고 기능적인 요소이게 되어 있는)가족 공간, (여성의 육체가 낳고, 교육하는 동안 내내 지속하는 생명-도덕적 책임 때문에 보호해야 하는)어린이의 삶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삼중의 관계이다. 가령 어머니는 "신경질적인 여자"라는 부정적 이미지에 힘입어, 이 히스테리화의 가장 가시적인 형태가 된다. - P121

로마의 가부장은 노예와 자식에게 생명을 "베풀었고" 노예와 자식으로부터 생며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 P153

군주는 정당하게 전쟁을 벌이고 신민에게 국가의 방위에 참여할 것을 요구할 수 있고, "직접적으로 신민의 죽음읠 꾀하지"않으면서 합법적으로 "신민의 목숨을 좌지우지할"권한을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군주는 신민에 대해 "간접적"생살여탈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만일 군주에게 항거하고 군주의 법을 위반하는 자가 신민의 한 사람이라면, 군주는 그의 생명에 대해 직접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징벌의 명목으로 군주는 그를 죽이게 된다. 이렇게 이해된 생살여탈권은 더 이상 절대적 특권이 아니다. 이런 생살여탈권은 군주의 보호와 고유한 존속을 조건으로 갖는다. - P154

살아가는 행위는 더 이상 죽음의 우연과 숙명성 속에서 때대로 떠오를 뿐인 그 접근 불가능한 기반이 아니라, 지식의 통제와 권력의 개입이 이루어지는 영역으로 일정 부분 넘어가는 것이 된다. - P162

일반적으로 "육체"와 "인구"의 연결 지점에서 성은 죽음의 위협보다는 오히려 생명의 관리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권력의 중심적 표적이 된다.
피는 오랫동안 권력의 메커니즘, 권력의 발현, 권력의 관례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 P167

일상의 성생활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확고한 의도가 있는 그러한 권력 메커니즘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돌이킬 수 없이 확산적인 성격을 (그것도 정신분석의 탄생부터, 다시 말해서 정신분석이 유전적 퇴화의 신경-정신의학과 단절하면서부터) 의심한 것은 정신 분석이나 적어도 정신분석에 있었을 수 있는 가장 초지일관한 것의 정치적 영광이다. - P170

"성의" 관념은 사람들로 하여금 권력을 "권력"으로 만드는 것으로부터 눈을 도렬 권력을 단지 법과 금기로서만 사유할 수 있게 해준다. 성, 우리의 눈에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 심급, 우리가 보기에 우리의 현재 모습 전체 아래 감춰져 있는 듯한 이 비밀, 내보이는 권력과 감추는 의미에 의해 우리를 현혹하고 우리의 현재 모습을 알게 해달라는, 우리를 규정하는 것을 밝혀 달라는 우리의 요구를 받는 이 지점, 성은 아마 성생활이ㅡ 장치와 이 장치의 작동에 필요하게 된 관념적인 지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P177

성은 권력이 육체, 육체의 물질성, 육체의 힘, 육체의 에너지, 육체의 감각, 육체의 쾌락을 장악함으로써 조직하는 성생활의 장치에서 가장 사변적이고 자아 관념적이며 가장 내면적인 요소이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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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11-17 10: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푸코 이 대머리가 맘고생을 시켰군요.... 그치만 알지? 푸코 읽자고 한 건 다락방님이야 ㅎㅎㅎㅎㅎ

음, 이 개념을 이렇게 버무리는 게 완전히 푸코의 뜻과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럴 수는 있어요.

‘권력‘이라는 걸 단순히 누군가 다른 누군가를 억압하고 원치 않는 일을 하게 하거나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보면 안 된다는 게 이 책에서 푸코가 하는 큰 주장 중 하나거든요.

권력은 동사고, ‘지식‘을 만든다거나 ‘담론‘의 물꼬를 어느 방향으로 돌리려는 시도 자체가 하나의 권력행위라고 볼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권력이란 이런 것이라고 정의하거나 주장하는 것 자체 역시 하나의 권력행위라고 볼 수 있지요. 좀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이야기해보면, 이 책에서 푸코가 성의 ‘억압 가설‘을 비판하는 이유 중 하나는, 권력이란 억압행위라고 정의하는 순간 억압 이외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권력의 다른 양상을 숨김으로써 자체로 어떤 권력을 유지하고 지지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는 점이거든요? 그러니까 ‘권력은 억압한다‘는 말 자체가 권력행동이라는 거죠.

같은 맥락에서, 이 책에 대해서 아무것도 설명할 수가 없다는 다락방님의 말 역시 일종의 ‘설명‘ 행위잖아요. 그 말씀은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 책의 내용을 좔좔좔 설명해주는 것만큼이나 어떤 영향을 미칠 거고, 또한 동시에 다락방이라는 사람의 어떤 일면에 대한 설명도 되지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이 페이퍼는 이대로, 되게 많은 것을 말해주는 양질의 페이퍼라는 뜻입니다.
수고하셨어용^-^

다락방 2020-11-17 10:35   좋아요 3 | URL
삶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저는 스승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스승이 있다면 아는 것에 있어서 속도도 빠르고 또 깊이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푸코에 있어서는 진짜 스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네 권이나 되는데 두달 안에 읽어야하니 개론서 건너뛰자, 했는데, 개론서 한두권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푸코는 누가 좀 이끌어주는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푸코의 성의 역사를 읽고 이런(?) 페이퍼를 쓴다는 것은 쇼님 말대로 푸코의 뜻과는 일치하지 않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 알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이렇게밖에 쓸 수가 없었어 ㅠㅠ 왜냐하면 이렇게라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쓰지 못할테니까...
이게 1권 다 읽어가니까 뭔가 어렴풋하게 짐작 되고 그러는데 그래서 뒤를 더 읽어봐야겠다 생각되기도 해요. 페이퍼에도 언급했지만 생살여탈권 부분 재미있더라고요. 물론 이조차도 반복해 읽어야겠지만요.

아무튼 개론서 또 살거야, 나. 누구도 날 막을 순 없어!!

푸코 제가 읽자고 한 거 너무나 잘 압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미치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누구도 원망할 수가 없어, 내가 나를 원망해야 한다!! 만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얼렁 페이퍼 써줘요, 쇼님. 내 이해를 도와줘!

단발머리 2020-11-17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메고 있는 저에게 이 페이퍼와 댓글들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다락방 2020-11-17 11:41   좋아요 0 | URL
다 읽어도 여전히 헤매입니다, 단발머리님. 이 페이퍼가 제가 쓸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ㅠㅠ

공쟝쟝 2020-11-18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여차저차 읽어낸 그대 대단! ^^ 언급하신 바타유는 정말 🤢 부글부글... 아 성의 역사 빨리 읽(어버리)고 싶다... 심호흡중.. 사실 저도 이해 못할까봐 입문서들만 뒤적이는 중이야요 ㅋㅋ

다락방 2020-11-18 07:58   좋아요 1 | URL
1권은 어떻게든 읽어내긴 했는데 이제 남은 것들은 어쩌나 싶어요. 후딱 읽어버리고 싶은데 무슨 말인지 모르니 걍 펼쳐보기도 싫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아 인생 뭘까요?

공쟝쟝 2020-11-18 08:15   좋아요 2 | URL
똑똑이들을 보며 똑똑해지는 과정?? 빨리 좀더 똑똑해져서 푸코 따위 비웃어버리자. 흥

scott 2020-11-19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 작가 천재 인가봐요. 잭에 이야기로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다가 나중에 올리브와 함께 했던 (자잘하게 스치고 지나갔던 인연들)이들에 삶에 마지막 행복한 순간을 슬라이드 영상처럼 끼워 넣었어요.

다락방 2020-11-19 10:27   좋아요 1 | URL
으흐흐흐흐. 푸코 페이퍼에 달린 댓글이지만 찰떡같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말씀 하신다는 걸 알아 듣습니다 ㅋㅋㅋㅋㅋ
저 오늘 출근길에 <단속>한 편 읽었는데, 왜이렇게 좋아요, 스콧님? 저도 정확히 천재라고 생각했어요. 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소설 천재다, 소설 천재! 저도 소설 천재라고 생각하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습니다. 너무 좋아요 ㅠㅠ 한 편 읽고 너무 좋아서 연달아 읽기보다 하루에 하나씩만 읽을까 싶고 마음을 정하지를 못하겠어요. 너무 좋아요, 스콧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앞서 11,12월은 푸코의 성의 역사를 읽는다고 알렸는데요, 4권 역시 성의 역사의 시리즈인바, 4권까지 함께 읽기로 하겠습니다. 두 달동안 성의 역사 1-4권을 읽는 일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고 그걸 알라딘에서 계속 지켜보게 된다면, 아마도 우리는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푸코가 저도 처음인데요, 본격적으로 푸코 들어가기에 앞서 개론서 읽어보실 분들은, 아직 저도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 책을 안내합니다. 저도 일단 푸코 시작 전에 이 책을 한 번 볼까 합니다. 그러면 사야 할 책이 몇 권이여...
















아무튼 여러분, 푸코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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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1-02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난달 사.장.환 숙제(^^)를 다하고 다락방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왔어요 ^^ 다락방님 덕분에 좋은 책도 일고 많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 가능하면 계속 참여하고 싶은데, 푸코님......아쉽지만 못할 것 같아요 ㅠㅠ 집에 있는 푸코님의 다른 ‘감시와 처벌‘ 으로 개인적으로 달려보겠습니다! ㅋㅋ

다락방 2020-11-02 10:40   좋아요 0 | URL
네네, 한님. 푸코는 좀 힘들겠지요? 저도 양도 많고 어려울 것 같아 이번 책이 완독 가능할까 싶습니다. 하는데까지 해보려고요. 한님도 감시와 처벌 개인적으로 달리시는 거 응원합니다!
1월 육식의 성정치는 어떠세요? 가능하면, 같이 해요, han22598 님! :)

han22598 2020-11-03 00:04   좋아요 0 | URL
올해의 마지막 프로젝트. 푸코 읽기 응원합니다! 저는 푸코를 들을 때마다 항상 동시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코푸시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월 육식의 성정치.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참여합니다! 감사해요. 다락방님!

다락방 2020-11-03 16:17   좋아요 1 | URL
저는 푸코 너무 어렵고 읽기 싫을 것 같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른 육식의 성정치 읽을 1월이 왔으면 좋겠어요 ㅎㅎ
(이렇게 쓰면서 코푸라고 쓸 뻔했어요 ㅋㅋㅋㅋㅋ)
 
















'맹정현'의 《프로이트 패러다임》은 프로이트를 더 잘 읽게 도와주기 위해 쓴 책이다. 잘 읽도록 돕기 위해 프로이트의 글들을 시기별, 패러다임-인식이나 생각이 만들어질 수 있는 틀-별로 나누어 강연하듯 쓴 책인데, 우리가 프로이트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꿈의 해석은 첫번째 패러다임에 속한다. 히스테리와 무의식이 바로 이 패러다임의 상징적 단어.


나는 아직 프로이트의 저서를 읽어본 적이 없고 그가 꿈의 해석을 썼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그 책을 앞으로 읽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꿈을 매우 자주 꾸고 또 선명하게 기억하곤 하기 때문에 특별한 꿈을 꾼 날, 아 이건 뭔가 뜻이 있는 것 같다 라고 생각되는 날이면 네이버에 꿈해몽을 검색해보긴 하지만, 아시아의 대한민국에서 2020년에 꾼 꿈에 대해 프로이트가 무언가 잘 말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이 책의 첫번째 패러다임 부분을 읽으면서 이런 구절을 만나게 된다.




사건의 표상이나 기억이 정신에 불쾌감을 만들어낼 때, 정신이 그러한 불쾌감 앞에서 다양한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가령 히스테리의 경우에는 기억이 불쾌한 정동을 유발할 때, 그 기억을 억눌러버립니다. 그런데 기억이 억압되면서 기억과 정동이 쪼개진다는 겁니다. 즉, 기억은 억눌리지만 정동은 그대로 남아 있는 거죠. 기억은 억압되어 무의식이 되지만, 불쾌한 정동은 그대로 남아서 혼자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그 정동이 억압된 기억과 연관성이 있는 어떤 다른 표상, 특히 육체의 어떤 표상에 달라붙어버릴 때 뭐가 발생할까요? 히스테리 증상이 발생합니다. 여기에는 애초의 사건에 대한 기억이 억압되면서 그 대신 육체의 수준에서의 어떤 표상이 정동과 결합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p.72-73)



기억이 억압된다고 해서 그 때 느꼈던 나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감정은 여전히 내게 남아 내 안에서 혼자 돌아다닌다. 그러다 직접적으로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해도 어떤 일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내 안에 돌아다니던 그 불쾌한 감정은 그 사건과 만나 폭발해버린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이런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주디스 허먼'이 《트라우마》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잊고 살려고 해도 어떤 외부의 사건들이 나의 기억을 건드려 나로 하여금 재경험을 하게 만들 때가 있는데, 재경험을 맞닥뜨리고 고통스러워 하는 바로 그 때 히스테리가 나타나는 것이로구나 했다. 프로이트가 환자들을 만나고 사건들을 접하고 이런 분석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거 아닌가. 그런 한편 나는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이트가 그리고 맹정현이 작정하고 다락방을 위로하자 쓴 글은 전혀 아니겠지만, 기억이 억압되어 해소되지 못한 내 감정이 내 안을 떠돌고 있다는 걸 인식하자 나를 달래주고 싶어지는 거다. 내가 지금은 지금을 이렇게 살고 있어도 어떤 감정들이 해소되지 못한 채 내 안에 있겠구나, 하고 나를 들여다보게 되는 거다.



정신분석학의 답변 중 하나는 정동은 억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 것이죠. 억압된 것은 오히려 그러한 정동을 불러일으켰던 관념, 기억, 흔적입니다. 그러한 기억과 내가 화해하지 못하면 당연히 그것이 불러일으켰던 정동은 완전히 해소될 수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또한 언제든 나를 뒤집어놓을 수 있습니다. (p.94)



일전에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며 눈물을 보인 적이 있었는데, 그건 언제나 어느 때나 꺼낼때마다 눈물 나는 얘기였다. 친구가 내 마음을 알아주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면서, 그러나 더 얘기하면 내가 펑펑 울 것 같아 그만하자고 했는데, 그 때 친구가 내게 "너 그거 얘기해야 돼, 그렇게 안으로만 갖고 있으면 안돼"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친구는 정신분석과 심리학을 공부한 친구였고 또 강의도 하는 친구였는데, 그래서 내가 그렇게 자꾸 울까봐 안으로 삼키는 것에 대해서, 그 정동이 내 안에서 돌아다닐 걸 알아서 그런거겠구나 싶었다. 또한 며칠 전에 친구가 내게 한 말도 떠올랐다. 나의 어떤 이야기를 들었던 그 친구는 내게 "지금의 너가 그냥 된 게 아니구나, 너 많이 애썼겠구나" 했더랬다. 그 친구 역시 정신분석을 공부했던 친구였는데, 그들 모두는 공통적으로 표현되지 못한, 표출되지 못한 감정은 기어코 내 안에 머물러서 수시로 다른 사건들과 부딪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겠구나 싶었다.


내 친구들... 럽 ♡



그리고 이렇게 뜻밖의 위로를 받으면서 드디어 나는 꿈의 해석에 다가간다. 아니지, 꿈에 다가간다. 저 옛날에 태어났던 유럽의 백인 남자가 아시아의 지금을 살고 있는 여자 꿈에 대해 뭘 알겠어? 했다가, 나는 이런 문장을 보게 되는 거다.



꿈은 보편적인 것이 표현되는 장이 아니라 꿈꾼 사람, 그 사람만의 특수한 무언가가 표현되는 장입니다. 꿈을 해석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참조할 필요는 없는 거죠. 꿈의 해석은 그 꿈을 꾼 사람의 경험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꿈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꿈을 다시 꿈꾼 사람의 경험과 연상 속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꿈을 해석하기 위해 참조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닙니다. (p.99)



너무 당연한 말인데 이 문장을 읽는 동안에는 이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몇해전에 내가 꾼 꿈에 대해 친구에게 말했을 때, 그 때 친구가 너는 그 꿈을 어떻게 생각하는데? 왜 꿨다고 생각해? 라고 내게 물어 나는 이러이러해서 꾼 것 같아~ 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친구는 '네가 꾼 꿈은 네가 생각하는 해몽이 맞을거야' 했었는데, 나의 꿈은 내 삶으로부터 그리고 내 욕망이나 억압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일테다.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나는 맹정현의 저 99쪽 문장을 보고 맞아, 그렇지! 내 꿈은 보편적일 수 없지, 내 것이지! 하게 되는 거다. 그렇다면 사실, 내가 꿈해몽을 네이버에서 찾아보는 것도... 당연히 정확할 수 없을테고. 물론 어떤 상징성들은 있을 것이다. 뱀은 돈이라든지... 하는 것. (  ")



꿈작업이 원하는 것은 할 말을 하고 싶다는 겁니다. 다만 의식의 검열이 있기 때문에 할 말을 있는 그대로는 할 수가 없는 것이죠. 요컨대 한편으로는 할 말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의식의 검열을 피하겠다는 것이죠. 무슨 말이냐면, 꿈은 그 꿈을 꾼 사람의 의식과의 관계 속에서만, 검열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p.100)



하아.. 나는 내 자신을 안아주고 싶다. 내가 나를 쓰다듬고 싶고 내가 나를 포옹하고 싶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정말 애쓰는 시간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 그토록 많은 꿈을 꾸었을까. 왜 그렇게 못다한 말들이 많을까. 왜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걸까. 삶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고 또 실제로 해결해가는 게 많은 사람이 바로 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들은 있지.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고 관계는 나 혼자만 지켜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꿈이 만들어진 원동력은 무엇일까? 증상이 만들어진 원동력은 정동, 즉 불쾌감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건의 표상이 만들어낸 불쾌감이죠. 그렇다면 꿈은 왜 만들어질까요? 불쾌감 때문도 아니고 불안 때문도 아니죠. 바로 여기서 프로이트는 한 걸음 더 내디디게 되는데, 그는 꿈의 원동력이 어떤 욕망에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욕망일까요? 낮에 바랐는데 이루어지지 않은 욕망이죠. 여기서 이루어지지 않은 욕망이라면 다양한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외적인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던 욕망도 이에 속할 수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인 상황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욕망입니다. 심리적인 갈등으로 인해서 이루어지지 않은 욕망, 바로 억압된 욕망, 무의식적인 욕망입니다. 앞서 꿈을 의식의 검열을 피해서 의식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표현된 말이라고 했는데, 결국 꿈의 내용이란 의식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표현되는 욕망인 것입니다. (p.104-105)



오래전에 한 친구는 내게 꿈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만약 A 라는 사람의 꿈을 꾼다면, 그건 그 A가 나를 생각해서라고.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었더랬다. 물론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인걸 알면서도. 어쩌면 신비한 우주의 힘 혹은 영적인 힘..그게 뭐든, 그런 일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가 만약 당신의 꿈에 나온다면, 그건 내가 지난 밤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찾아간....이라고 하지만 내가 다른 이의 꿈에 찾아간 기억이 내게는 없다. 그러나 자는 동안 영혼은 무슨 짓을 한 게 아닐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 혹은 그리워하는 이의 꿈을 꿀 때마다 친구의 그 말을 떠올리곤 했었다. 그렇지만 ..... 낮에 바랐는데 이루어지지 않은 욕망, 이라는 쪽이 더 타당하게 들린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자, 내가 최근에 꾼 꿈들이 생각나면서... 내가 너무 가여워지기 시작했다.



이게, 내 욕망 때문이었어?

이게, 낮에 내가 바랐지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거야?



내 욕망이 도대체 왜때문에 길을 잃어. 그것은 나의 심리적, 내적 갈등 때문이었지... 가여워. 나 가여워. 가엽고 또 가엽다. 이루어지지 않은 욕망 어떡해. 이거 언제 이루어져.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 그런 꿈을 꿀 거 아냐. 나 어떡해. 나 가여워서 어떡해.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ㅠㅠ



그래서!

꿈의 해석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프로이트가 꿈에 대해 그리고 꿈의 해석에 대해 하는 말들이 매우 궁금해졌다. 그렇게 나는 꿈의 해석을 검색해본다.

















뭐가..많아? 참 .. 많네?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네? @.@ 걍 다 사서 다 읽어? 어느 세월에...



아무튼 나는 꿈의 해석을 읽어볼 것이며 내 꿈을 해석해보도록 하겠다. 물론 그래봤자 이루어지지 않은 나의 욕망만 수두룩하게 나오겠지만..내 욕망 불쌍하네... 욕망아,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갈비 먹을래? 내 욕망..... 내가 미안해..... 해소해주지도 못하고 ㅠㅠ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꿈에 나왔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미안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갈비 2인분 혼자 다 먹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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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0-2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페이퍼 너무 좋네요.

전 이 책 힘들었거든요. 이게 뭐여 하면서요. 다락방님은, 제게는 너무나도 먼 단어와 단어들 사이에서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차린 듯 해요. 프로이트 읽기가 우리한테 이런 기쁨을 주네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나오는 공감의 기쁨.
궁금한 거는, 자신의 꿈을 자신이 분석하는게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뭐랄까요. 짧은 제 생각으로는, 무의식의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추적하는데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친구들도 도움이 될테고요. 또 프로이트를 잘 아는 친구들을 잘 후원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석을 맡겨보심도 괜찮을 거 같네요.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이 떠오릅니다. 이니셜로 말하지 않아도 다락방님 아실 테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들에게 프로이트를 읽혀요. 막막 읽혀요!!!!!

다락방 2020-10-29 17: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전문가가 들어주고 해석해준다면 훨씬 더 좋을거라는 생각을 해요. 그렇지만 아예 저를 모르는 타인이어야지 우리의 친구들이라면... 제가 너무나 부끄러워서 또 얼굴 시뻘개지지 않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가 한 얼굴 시뻘검 하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젠가는 저도 전문가를 만나 제 안에 돌아다니는 이 감정, 어쩌지를 못하고 있는 이 감정에 대해 터뜨리고 그 감정을 다스리고 갈 길을 찾아줘야 할 것 같아요. 제 인생이 그 시간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전까지는 일단 프로이트 할배를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읽어본다면 아마 안읽었을 때보다 조금 더 제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프로이트 읽기를 잘한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공쟝쟝 2020-10-29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꿈을 해석하는 다락방님만의 글을 읽을 생각을 하니, 설렘의 눈물이 차오릅니다.. 아.. 뚜벅뚜벅 자신을 알아가는 여성이란, 얼마나 멋진가..

다락방 2020-10-30 07:47   좋아요 0 | URL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나누는 이 모든 과정이 결국은 나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어요. 자신을 알아가는 그 길에 우리 함께합시다, 쟝쟝님!! 뽜샤!!
 















지금으로부터 한 십오년전쯤이었을 것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그 당시 부장은(현재는 퇴사한 상태) 결혼하지 않은 남자사람이었는데, 사무실에서 곧잘 담배를 피곤 했었다. 그리고는 침도 뱉었었지..참 더럽고 더럽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은 담배에 얽힌 자신의 일화를 자랑스레 얘기했더랬다. 자신이 젊었던 시절, 길에서 담배피는 여자를 보고(길이었는지 술집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처음 보는 여자이지만 싸대기를 날렸다는 것. 그 얘길 듣고 있던 직원들은 모두 여자였는데, 그 얘기를 자랑스레 하는 그를 보노라니.....그게 뭐 그렇게 자랑스러울 일일까? 그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그 일에 대해서 언제든 자랑처럼 얘기할 수 있는가보았다. 그 일은 그의 자랑이었다. 내가 진짜 몇 번이고 누누이 얘기하지만 무엇을 욕으로 하느냐와 무엇을 자랑거리로 삼느냐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담배 피는 여자의 싸대기를 날렸지, 를 이십년이 지나도 자랑거리로 삼는 남자사람이라니...


이 일은 비단 그 사람만의 무용담은 아니었다. 아마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일화가 아닐까. 왜, 그 유명한 드라마 [모래시계]였나, 거기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왔던 것 같다. 드라마에서는 고현정이 그 일에 빡쳐서 그 남자랑 맞장 뜨는 걸로 끝났던 것 같지만... (기억 불분명)


내가 이 얘기를 왜 했냐면, 김현경 역시 그 일에 대해 언급하기 때문이다.



공공장소에서, 공원이나 카페나 기차역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시민권을 가진 거주자들뿐 아니라 잠시 머무는 이방인들에게도 열려 있는 공간에서, 여성은 오랫동안(어쩌면 한번도) 남성과 동등한 정도로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였다. 여성은 인도의 달리트처럼 또는 민권운동이 시작되기 전 미국의 흑인들처럼 어떤 구역이나 건물에 출입이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옷차림이나 행동거지와 관련된 다양한 금기를 통해 더욱 미묘한 통제를 받았다. 여성이 길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규칙이 그러한 예이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는 무수히 쏟아지는 노골적인 비난의 시선을 각오해야 했고, 심지어 모르는 남자에게 뺨을 맞더라도 항변할 수 없었다. 그 시절의 남자들은 남자라는 것만으로도 자기에게 모르는 여자의 일탈을 훈계할 자격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슬람 국가에서 남자라면 누구든 히잡을 쓴 여자 아무에게나 다가가서 "히잡을 똑바로 써!" 라고 야단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영화 「페르세폴리스」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히잡을 쓴다는 것은 단지 신체의 일부를 가린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이런 식으로 모욕당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1980년 대의 우리는 히잡을 쓰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모욕당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히잡을 쓴 여인들과 비슷했다. -p.290



위의 인용문은 이 책의 끝에 실린 부록 <장소에 대한 두 개의 메모>의 일부분이다. 본문도 좋지만 이렇게 부록으로 여성의 장소, 환대, 위치에 대해 써둔 게 너무 좋다.



우리는 남자들과 똑같이 공부했고, 학위와 자격증을 땄고, 직업을 얻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일이냐 가정이냐' 따위의, 남자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아닌 문제 앞에서 고민하지 않는가? 더 이상 우리에게 차림새나 행동거지를 보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담배를 피우고, 염색을 하고, 피어싱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성폭행을 두려워하며 밤거리를 걷지 않는가?

나는 여성의 지위 향상을 너무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여성과 성공하지 못한 여성의 차이는 성공한 흑인과 성공하지 못한 흑인의 차이와 비슷하다. 그들은 결국 여성이며, 흑인인 것이다. 성폭행 당하는 여성의 수가 백인우월주의자에게 습격당하는 흑인의 수보다 더 많다는 점에서, 여성은 흑인보다 못한 처지라고 할 수도 있다. KKK단의 린치가 인간의 공격 본능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처럼, 성폭행은 남성의 성욕으로 설명될 수 없다. 성폭행은 남성 지배 사회가 조장하고 묵인하는 일종의 의례이며, 린치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에게 '교훈'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환대는 여전히 조건적이다. 여성은 어디서나 모욕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으며, 멋진 옷과 가방도, 자격증도, 명패와 직함도 완전한 보호막이 되어주진 못한다. 여성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이등 시민이다. 흑인 변호사나 흑인 교수 심지어 흑인 대통령의 존재가 전체 흑인의 지위를 판단하는 데 별다른 영향을 줄 수 없듯이, 몇몇 성공한 여성이 있다고 해서 이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성은 자리를 위한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환대의 권리-환대받을 권리와 환대할 권리-는 그러므로 당분간 우리의 어젠다를 구성할 것이다. -p.293-294



부록이지만, 이 여성에게 조건적인 환대에 대한 글은 '너멀 퓨워'의 《공간침입자》의 구절들과 통한다.















[지리학자] 도린 매시(Doreen Massey)는 젠더 범주에 따른 공간/시간을 연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9살인가 10살 무렵의 일인데 지금도 가끔 떠오른 꽤 선명한 장면이 있다. 당시 맨체스터 외곽에 살던 내게 ‘시내로 나가는 일‘은 비교적 큰일이었다. 이층버스에 올라타 반시간 정도를 가야 했다. 시내로 나가는 길에 머지강의 넓고 얕은 계곡을 건넜고, 내 기억으로 차갑고 안개 낀 먼 곳에까지 축축한 진흙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맨체스터 지역 전체 모든 곳이 축구경기장과 럭비경기장으로 나눠져 있었고, 시내로 나가는 토요일마다 그 방대한 공간이 공을 쫓는 수많은 아이로 가득 찬 광경을 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많은 수였다(버스 꼭대기에 앉아 있으며서 마치 로리(Laurence Lowry;1887-~1996)의 거대하고 활기찬 그림을 보는 듯했는데, 로리가 그린 것보다는 좀 더 밝은 빛깔의 옷을 입은 아이들, 빨간 스타킹을 신은 그들의 다리가 보였다).
이 모든 것을 매우 정확히 기억한다. 혼란스럽고 약간 사려 깊은 어린아이의 눈에도 분명하게 각인된 또 하나의 사실은, 바로 넓은 머지강 평야 전체가 완전히 남자아이들에게만 주어졌다는 점이다. 나는 그 경기장들에 가지 않았다. 그곳은 또 다른 금지된 세계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오늘 내가 공간 침입자라는 생각과 약간의 긴장감을 품은 채 이 축구경기장 계단석에 서 있다. 나는 이것을 무척 좋아한다(Massey196: 185). - 《공간침입자》, 너멀 퓨워, p.21-22



린다 맥도웰(Linda McDowell)은 19세기 영국에 출현한 도시 생활에 주목했다.

여성들이 거리에 등장한 것만으로도 그들은 해석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치 않은 성적 관심에 자주 노출되었다. 이를테면 후기 빅토리아 시대 케임브리지에서 초창기 여학생들은 공적 영역에 나갈 때면 도시의 많은 ‘방종한‘ 여성과 자신들을 구별짓기 위해 장갑과 모자를 착용하는 것이 의무였다(1996: 154)

이러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번번이 경계선을 넘어섰고, 그들의 움직임을 제약하려 했지만 결국에는 그들이 새롭게 정의해낸 영역과 장소들에 진입했다(Wilson 1992) - 《공간침입자》, 너멀 퓨워,p.50-51



여성은 국가와 조금 다른 관계를 맺고 이는 시민적인 것과 가족적인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자연과 이성의 분리와 연관된다. 여성은 가족과 자연의 상(像)으로서 시민 영역의 자리에 놓인다. 신체혐오증이-일반적으로 암묵적인 남성 개인의-정치를 지배하는 한편 국가의 신체성은 여성 이미지를 (개인 차원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의) 일가권속을 돌보는 이나 방관자로 내세운다. 국가의 강한 어머니, 국가의 용감한 보호자이자 돌보는 이라는 것이다. 여성은 모성, 땅, 정의와 연계된 제한된 범위의 여성성 안에서만 인정받는다. -《공간침입자》, 너멀 퓨워, p.54




재차 언급하지만 위의 부분은 부록으로 실려있는 것이다. 이 책은 비단 여성의 조건적 환대뿐만 아니라, 머물 곳을 찾지 못한, 사회의 환대를 받지 못한 혹은 조건적 환대에 기댈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여러 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조건적 환대속에서 사람이 왜 늘 사람일 수 없는지 주장하는 김현경의 글을 읽는데,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들이 있었다.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 나는 그것에 대해서 개인의 복수심으로 그를 처벌하고 싶어하지 않았는가. 또한 외국인에 대해서, 난민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환대가 나에게 있었던가, 하면 아니었던 거다.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내가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지도 않을테고 그럴 수도 없겠지만, 나는 여전히 복수에 치중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사회 계약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었다. 이 계약속에서만이 사람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이려면 환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읽는 것은 앞으로 내가 어떤 가치판단을 할 때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김현경의 말처럼 무조건 환대속의 주인공은 아니다.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것들이 분명 있었고, 그리고 내가 나이가 많고 회사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데이트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 있으며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나는 나 이후의 여성들이 무조건적인 환대 속에서 사회에 당당히, 남자들과 동등하기 위치하기를 바라지만, 그런 시간이 더디게 올 것 같아 두렵다. 예전에 비하면 여자들의 위치가 달라졌다 해도, 여전히 조건적인 환대에 머물러 있는 게 사실이니까.


자신이 있을 자리를 아직 찾지 못한, 여전히 찾는 중인 사람들을 생각하노라니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특히나 태어난 곳이 아닌 장소에서 머무르기를 결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터였다. 낯선 땅에서야말로 조건적인 환대 속에서 매일매일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길 결정하는 삶은 그 사람을 얼마나 주저앉힐까. 주저앉지 않으려면 얼마나 많이 힘을 내야할까. 김현경은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이 책에서 줄곧 얘기하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바르게 살아보자 힘이 나기 보다는 내내 나는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느라 마음이 쓰였다.



'장소'를 갖지 못한 사람들, 즉 자신들이 속한 곳이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 또는 그들이 머물러도 좋은 자리, 점유할 수 있는 위치를 이 세계 안에서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p.283



모든 장소에 속한다는 말은 어느 장소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말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올해는 이 나라에서 일하고 내년에는 저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 오늘은 이 도시에서 아침을 맞고 내일은 저 도시에서 밤을 맞는 사람은 아마 세계화 시대에 자본이 원하는 인간형이겠지만, 우리가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은 아니다. 현실의 인간은 그처럼 가볍게 삶의 근거지를 바꿀 수 없다. 그는 가는 곳마다 기억의 무거운 짐을 끌고 다녀야 하는데,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갈 때마다 이 짐은 점점 불어나기 때문이다. 쉽게 떠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쉽게 잊을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과거를 억지로 잊고 애착을 끊음으로써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해도 정체성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의도적인 망각과 인간관계의 급격한 재편성은 자아가 불연속적이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한 장소를 떠나는 것은 그 장소에 속한 다른 모든 사람들을 떠나는 것이며, 우리의 자아를 구성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뿐 아니라 우리를 기억하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장소'의 의미에 천찬하근 것은 이 모든 이유들에서이다. -p.285-287



기억의 무거운 짐, 불어나는 짐, 잊을 수있는 인간, 정체성의 변화, 의도적 망각, 인간관계의 급격한 재편성, 불연속적 자아, 다른 사람들의 우리에 대한 기억.. 이란 단어들을 나란히 읽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나는 여성으로서 무조건적인 환대를 받는 사람이 이 사회에서는 아직 아니지만, 그러나 분명 내가 단단하게 위치한 장소도 존재한다. 나는 불완전한 사람이며 완전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안정적 장소를 제공해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나란히 놓인 단어들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런 단어들 옆에 내가 무조건적인 환대를 붙여준다면, 내가 장소가 되고 공간이 되고 그렇게 내 안에서 당신이 사람으로 존재하는 일이 가능해질 거라는 생각. 사회 자체가 불안정하고 불완전해서 여전히 누군가를 배제하고 환대하지 못하고 있고, 그럼에도 존재하는 것이 이 세상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체가 불완전하게 환대받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환대함으로 맞물리며 존재의 고통을 덜 수 있는게 아닐까. 나는 나 자체로 불안정한 땅을 딛고 서있고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가끔은 어깨에 힘을 주고 밀치거나 한쪽 발 먼저 들이밀어야 하지만, 또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는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라고 한 손을 크게 안으로 향할 수 있을 것이다. 들어와, 당신에게 무조건적인 환대를 내가 줄게, 어디에서도 받아보지도 못한 그런 환대를.



좋은 책을 읽었는데 왜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나보다 다른 사람 때문에 더 슬퍼진다. 나 역시 온전히 환대받는 구성원이 되지도 못하면서, 그러나 환대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어딘가에서 내쳐지는 사람들 때문에 너무 슬프다.



프로이트 패러다임 읽으러 가야겠다. 프로이트 졸라 까면서 힘내야지.









이 가상의 대화는 ‘모두가 죽는 것보다 한 사람만 죽는게 낫다‘는 공리주의적 계산법의 모순을 폭로한다(고 나는 믿는다). ‘낫다‘는 것은 누구에게 그렇다는 뜻인가? 희생자는 희생이 결정된 순간부터 더 이상 ‘우리‘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말은 결국 ‘죽지 않기로 결정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죽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의미이다. 죽기로 결정된 사람에게 이 말은 완전히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사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공리주의적 계산법의 용도는 희생자들을 설득시키는 것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양심을 위로하는 데 있는 것 같다. - P275

베카리아는 오히려 범죄에 대한 처벌이 사회계약의 틀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범죄자는 사회의 바깥에서 사회와 적대하면서 무한한 복수의 가능성에 노출되는 게 아니라, 사회 안에 있으면서 그 자신도 동의하는 규칙에 따라 정해진 만큼만 처벌받는 것이다. 베카리아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 사형에 반대한다. 사형은 범죄자를 사회 바깥으로 내몰고 사회의 적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사회의 적이라면, 그는 더 이상 사회의 규칙을 따를 필요가 없어진다. 그의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의 힘은 그에게 미치지 못하고 그의 앞에서 멈추어 선다. 그는 법의 바깥에 있으므로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다. 따라서 사형은 더이상 형벌이 아니다. 그것은 순수한 폭력일 뿐이다. 베카리아의 다음과 같은 말은 사형이 내포하는 역설을 정확히 지적한다. "사형은 어떤 의미에서도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시민에 대한 국가의 전쟁이다." - P234

나는 베카리아의 사형폐지론이 사회의 구성원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 통찰의 빛이 18세기 이래 지금까지 사법 개혁을 둘러싼 모든 논의의 지평선을 밝히고 있다고 믿는다. 법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환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환대란 타자를 도덕적 공동체로 초대하는 행위이다. 환대에 의하여 타자는 비로소 도덕적인 것 안으로 들어오며, 도덕적인 언어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규범이나 제도가 아니라 바로 환대이다. - P242

사회는 개인에게 복수하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은 유사한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함이지, 사회가 피해자를 대신하여 가해자에게 복수하기 위함이 아니다. - P230

절대 공동체에 대한 환상은 이처럼 ‘개인이냐 공동체냐‘라는 잘못된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이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벽을 없애는 것-문자 그대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공동체에 대한 옹호는 사생활 침해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쉽게 전락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과 공동체는 결코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며, 공동체 정신을 추구하는 것과 사생활의 자유를 갖는 것 사이에는 본디 아무 모순도 없다. 개인에게 자리/장소를 마련해주고 그의 영토에 울타리를 둘러주는 것이 바로 공동체의 역할인 까닭이다. - P202

사외 안에 자리/장소가 없는 사람, 사회의 바깥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나서줄 제삼자를 갖지 못했기에, 사적 관계 안에서도 자신의 자리/장소를 지킬 수 없다. - P203

"가난한 노동자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익명의 기부자"라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말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찌르고 있다. 이는 증여의 논리가 환대의 논리와 전혀 다른 것임을 의미한다. 환대 역시 주는 행위이지만, 이 줌은 증여로 계산되지 않는다. 환대란 주는 힘을 주는 것이며, 받는 사람을 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 P196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는 또 하나의 방법은 효도나 돌봄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강조하면서 가족에게 짐을 떠넘기는 것이다. 조금 전에 생활보호 대상자를 애완동물에 비유했지만, 한국에서는 애완동물이 될 자격조차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폐지를 주워 팔면서 혼자 사는 노인이 장성한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초생활수급권을 얻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사례를 조명할 때 언론은 이 장성한 자녀에게 실제로 부양 능력이 있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만일 부양 느역이 있는데도 노인을 모시지 않는 거라면, 그 자녀는 ‘인륜을 저버렸다‘는 비난을 받는다. 요컨대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도덕과 풍습이라는 것이다. ‘시스템의 한계‘가 논의되는 것은 자녀 역시 막노동을 하거나 몸져 누워 있는 등 극단적인 빈곤 상태에 처해 있을 때뿐이다. - P184

가부장제의 문제점은 피부양자-비대표자가 부양자-대표자에게 쉽게 인격적으로 종속된다는 것이다. 체사레 베카리아는 가족을 구성단위로 하는 국가에서는 자녀들이 가장의 전횡 아래 있기 때문에 온전한 의미에서 시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한 사외에 10만 명의 사람이 있다고 하자. 혹은 가장을 포함한 5명으로 구성된 가족이 2만 단위가 있다고 하자. 만약 그 사회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거기에는 10만의 시민이 있고, 노예는 한 명도 없다. 그러나 그 사회가 가족으로 구성된 결사체인 경우라면 그 사회에는 2만의 시민과 8만의 노예가 존재하는 셈이다." - P184

아렌트는 기독교적 사랑의 진정성을 의심하였다. "기독교인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각각의 사람이 오직 기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적, 그리고 심지어 죄인조차도 사랑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실제로 사랑받는 사람은 이웃이 아니다-그것은 사랑 그 자체이다" 아렌트의 신랄한 지적에 따르면, 기독교적 사랑은 타자에게 모든 것을 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자에게 무관심하며 어떤 의미에서 타자를 이용한다. 타자에 대한 그 같은 헌신 밑에 있는 것은 증여를 통해 자아의 결핍을 메우려는 욕망이다. - P175

걸인에게 예의 바르게 적선을 하는 방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걸인으로서는 거기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굴욕이기 때문이다. 그를 그 자리에 버려둠으로써 사회는 이미 그를 모욕하고 있다.
걸인의 존재는 현대 사회의 구성 원리에 내재하는 모순을 폭로한다. 현대 사회는 우리가 구조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사장이든 말단 사원이든, 부자이든 가난하든- 사람으로서 서로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 구조적인 위치가 남들에게 구걸을 해서 먹고살아 가야 하는 위치라면, 그는 사람으로서도 결코 다른 사람들과 동등할 수 없다. - P173

자선은 되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므로, 그 안에 이미 상대방의 명예에 대한 평가절하가 들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선을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 P172

바버라 콜로로소는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때 갈등 중재 위원회를 열어 가해자와 피해자를 억지로 화해시키는 관행을 비판하면서, "괴롭힘은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경멸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해소되어야 할 갈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괴롭히는 아이들은 어른들 앞에서 귀여운 척하고, 후회하는 척한다. 이것은 각본을 바꾼 새로운 연극일 뿐이다. 괴롭힘당하는 아이들은 어떤 휴식도, 지원도 얻지 못하며, 괴롭히는 아이 역시 진정한 공감이나 사회친화적인 행도을 배우지 못한다. 괴롭히는 아이는 보복의 기회를 노릴 것이고, 표적이 된 아이는 보복이 두려워 진술을 번복할 것이다. 괴롭힘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Babara Coloroso, The Bully, the Bullied and the Bystander, New York:Harper, 2008. p.111) - P167

제도가 사람을 모욕할 때 그것은 모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신분주의든 아니든, 이런 관행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동일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 P165

의례적 평등의 실현은 경칭의 인플레이션을 수반하곤 한다. 몇 해 전 뉴욕에 갔을 때 길에서 핫도그를 파는 남자에게 손님들이 ‘써sir‘라는 경칭을 붙이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한국의 경우, 마트의 계산원이나 중환자를 돌보는 간병인들이 ‘여사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평등의 제스처에는 현실적인 불평등을 은폐하는 효과도 있다. 간병인들을 ‘여사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조건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영화 「카트」에서는 부당 해고에 맞서 싸우던 계산원들이 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여사님‘ 대신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이들 사이에 싹튼 연대의식과 현실에 대한 각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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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0-27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읽으면서 두 가지 감정이 복잡하더라구요. 하나는 환대 받지 못하는 대상으로서의 여성에 대해 말할 때 그게 뭔지 너무 잘 알겠는 거에요. 저는 이쪽과 저쪽에서 이루어지는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저평가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이 가진 힘에 대해서는 인정받아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두 다 알고 있는 일상의 작은 면면을 약간은 평범하게 그리고 무심하게 그려냈다는 거요. 그렇게 건조한 톤으로 말했는데도 그 책이 불러일으킨 그 커다란 반항과 폭풍에 대해서두요. 이 책도 너무 힘을 쏟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상태로 약간은 덤덤하게 그런 면을 지적했다는 게 너무 대단하다고 여겨지고요.

또 하나는. 만약 이 작가가 환대받지 못한 대상으로서의 ‘여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객관적‘이라고 평가받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래서, ‘여성‘이라는 존재가 단일한 집단으로서 환대받지 못 했다,라고 언급하는 게, 사실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계속 논문을 쓰고 살아가야할 학자라면 더더욱이요. 참, 용기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랑스럽고, 또 고맙기도 하구요.

저도 오후에는 [프로이트 패러다임] 읽어야합니다. 오늘이 10월 27일이라고 하대요 ㅎㅎㅎ

다락방 2020-10-27 13:29   좋아요 0 | URL
확실히 읽으면서 가장 쉽게 확 오는 부분은 여성에 대한 조건적 환대의 부분이었어요. 부록으로 써두긴 했지만 어찌나 확 다가오는지, 역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입장에 대해서 더 잘 받아들이구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언급해주어 무엇보다 고마웠고요. 이렇게 멋지고 근사한 책이 제대로 할 말을 하면서 꼭 해야할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싶어 좋더라고요. 단발머리님 염려대로 그러나 여성에 대한 언급 때문에 책이 저평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대체적으로 여성의 불리한 점에 대한 언급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치우친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중립기어 딱 박고 보라고, 마치 본인들은 객관적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요. 하늘아래 객관적인 사람이란 없거늘, 어디서 자신이 중립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요...

단발머리님 말씀대로, 용기 있는 저자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이렇게 명징하게 현실에 대한 분석과 또 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정도 용기를 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거란 생각도 들어요. 가야할 길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당연해지는 용기랄까요. 아무튼 이런 글을 써주어 너무 감사하고 또 응원합니다.

언급한 책중에서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꼭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어쩐지 좀 덜 자란 저를 성숙하게 도와줄 수 있는 책일 것 같아서요.

10월 27일이고, 저는 오후에 읽을 수 없는데, 아아, 프로이트 패러다임... 아직 펼치지도 않았어요. 어쩌지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뽀샤버려야 하는데!!!!!

단발머리 2020-10-27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다락방님!! 손글씨 진짜 짱입니다! 하트뿅뿅!!😍

다락방 2020-10-27 13:25   좋아요 0 | URL
다이어리가 별로 좋은게 아니라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알라딘 굿즈) 글씨가 영 잘 나오질 않아요. 만년필로는 제법 글씨가 잘써지는데 말입니다. 엣헴-

유부만두 2020-10-27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명이인 김현경 작가의 소설 <담배 피우는 여자>라는 소설이 생각나고요. 옛날 소설이라 많이 갑갑했던 기억이 나요.

다락방 2020-10-27 15:20   좋아요 0 | URL
유부만두님 김형경 소설가와 헷갈리신 것 같아요. 새들은 제이름을 부르며 운다, 그 작가 말씀하시는거죠? 김형경 작가입니다. 요즘은 심리 관련 책을 더 많이 쓰시는 것 같지만... 저 김형경 소설 몇 권 읽었는데, 대학시절 운동권하면서 같은 운동권내 남학생에게 강간 당한 여자가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결국 그 강간남과 결혼하는 걸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답답한 현실에 대해 읽었던 게 생각나요. 그 소설이 근데 어떤 거였는지 모르겠네요. [새들은 제이름을 부르며 운다] 였는지 [성에] 였는지,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이었는지...

유부만두 2020-10-27 15:28   좋아요 0 | URL
맞다;;; 김형경 작가에요. 답답한 상황의 주인공에 아주 힘들었어요.

2020-10-27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28 0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twoshot 2020-10-27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글씨가 이정도면 다락방글꼴 하나 만들어야 되는거 아닌가요? 😳 너무 감동하여 백년만에 댓글 남겨 봅니다

다락방 2020-10-28 08:14   좋아요 0 | URL
다락방글꼴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투샷님, 백년만에 나타나셔서 너무 기분 최상 만들어주시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쩌면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좋아죽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그러면 손글씨 또올려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10-2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선 장소, 고향을 떠나온. 물론 이역만리가 아니라 지방에서 도시로 온 것이 제 삶이지만 저도 이 구절에서 눈이 머물렀어요. 외롭고 낯설어서, 취약해진 채로, 환대인양 하는 관계들에 답싹 붙잡혀 결국에는 괴로워하던.. 그런 관계들 만남들이 생각나네요. 여전히 저는 제 자리를 만들어내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지만, 겨우 비집어 앉은 이 공간을 나눠쓰는 것에 인색하지 않을 환대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인간이 되어 보겠습니다!! 우리존재 화이팅! ㅎㅎ

다락방 2020-10-30 09:55   좋아요 0 | URL
쟝님, 정말 그랬겠어요.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려고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게다가 지금도 자리를 만들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니 더 그렇고요. 우리는 결국 머무를 곳을 계속 찾아가면서 삶을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어요. 여기인가 혹은 저기인가 고민하면서 말이지요. 머물던 곳을 떠나온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곳에 정착한다는 것은, 여기에서 김현경이 말한것처럼 기억과 사람들을 새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사는 일은 누구에게도 쉽진 않을테고요. 누구에게나 무조건적 환대는 저 역시 불가할 것 같지만, 그렇지만 아끼는 사람들에게만큼은 열린 마음으로 환대하면서 지내다보면 머무를 공간은 조금씩 넓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존재 화이팅입니다!
 

2020년 11월부터 2021년 2월까지의 책 리스트 공유합니다.


11월, 12월은 두 달에 걸쳐 푸코의 책을 읽겠습니다. 《성의 역사 1-3》
















두 달에 걸쳐 읽어주시면 됩니다. 읽다가 생각나는 것들을 그때마다 기록해 주시고요. 그러면 다른 같이 읽는 분들에게도 힘이 됩니다... 여성주의 책을 읽다보니 푸코의 성의 역사를 읽고나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겠더라고요. 2021년의 더 풍부한 여성학 독서를 위해 푸코의 성의 역사를 읽자, 여러분...



2021년 1월은 캐럴 J. 아담스 의 《육식의 성정치》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부러 이 책 읽기를 뒤로 미룬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네,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 읽어봅시다.

















2021년 2월은 '캐롤 페이트먼'의 《여자들의 무질서》입니다.

















자, 함께 열심히 읽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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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0-27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푸코 가는 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분들 페이퍼 읽는 재미에 기대서 같이 가보렵니다.
열심히 읽어볼께요! (하려니 [프로이트 패러다임] 반이 남았네요 ㅠㅠㅠㅠ)

다락방 2020-10-27 12:57   좋아요 0 | URL
저 프로이트 패러다임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10월 27일이에요. 어떡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 우리 다음 두달간 푸코 갑시다. 빠샤!

유부만두 2020-10-27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것이 온 느낌이에요.

다락방 2020-10-27 12:56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그 느낌을 따라갑시다!! ㅎㅎ

수이 2020-10-27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근구근_ 책을 갖추도록 하겠습니다!

다락방 2020-10-27 12:56   좋아요 0 | URL
저도, 2,3 권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2020-10-27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10-27 12:56   좋아요 2 | URL
참여하신다니, 환영합니다!!

네, 자신의 알라딘 서재 블로그에 글을 쓰시면 됩니다. 정해진 룰은 없고요, 11,12월 두 달에 걸쳐 성의 역사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들을 그저 자유롭게 기록하시면 됩니다. 두달 동안 다른 몇몇 분들도 자신의 서재에 성의 역사 링크하고 페이퍼나 리뷰 혹은 밑줄긋기나 구매자평을 작성하실 거에요. 다른 분들이 읽고 쓰는 걸 보면 저도 완독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같이 읽을 때 참여하신다면 아마 완독으로 가기가 혼자일 때 보다 수월할거라 생각됩니다. 엇서오세요!! ^_________^

2020-10-27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10-27 13:24   좋아요 0 | URL
이번 기회에 푸코의 성의 역사 함께 뿌셔버려욧!!

건조기후 2020-10-28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이렇게 점점 벽은 높아져만 가고... 그래도 시작은 해봐야겠죠? 불끈!

다락방 2020-10-28 16:36   좋아요 1 | URL
건저기후님, 힘내요! 뽜샤!

블랙겟타 2020-10-31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면서 성의 역사 1권을 우선 샀어요!!
당연히(?) 땡스투 하면서요. :D

다락방 2020-11-02 08:55   좋아요 1 | URL
땡스투는 사랑입니다. 전권 모두 부탁드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0-11-0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락방님 성의 역사 4권까지 나왔던데요, 왜 우리는 3권까지만 읽어요? (궁금해서 소심하게 손 들고 물어봄;;;)

다락방 2020-11-02 08:56   좋아요 1 | URL
여러분의 의견을 묻다가 걍 제가 결정했습니다. 4권까지 읽는 걸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페이퍼 다시 작성했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핳하하하. 저는 수연님의 1등을 조심스레 점쳐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