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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활들 - 내 나라를 떠나 사는 것의 새로움과 외로움에 대하여 ㅣ 들시리즈 5
이보현 지음 / 꿈꾸는인생 / 2022년 7월
평점 :
저자 이보현은 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책은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의 글임을 밝히고 있다. 여행지로서의 타국이 아닌, 생활자로서의 타국울 겪어냈다. 이방인으로서 독일에서 살다가 또 미국에서도 살아야했던 이야기들이 책 안에 담겨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는데, 나는 언제나 여행자이긴 했지만, 해외 생활에 대해서라면 생활자의 글을 훨씬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이방인으로서 살아냈던 삶은 당사자에게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깊게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보현의 이 책이 아주 좋았다는 거다.
이보현은 독일로 유학을 간다. 독일로 공부하러 가는 딸에게 이보현의 엄마는 "훨훨 날아가라. 너는 훨훨 날아라. 엄마가 날 수 있게 다 해줄게." (p.32) 라고 말씀하신다. 이 부분을 읽는데 코끝이 찡해지고 이보현의 엄마에게 내가 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딸이 꿈을 펼치게 도와주려는 엄마라니. 실제로 이보현은 독일에서 공부를 하면서 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은 걸로 보인다.
영어만 잘 해도 될거라는 친구의 말을 믿고 떠났건만, 독일에 도착해서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힘들었고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독일어가 느는 것 같지도 않앗다. 이에 선배에게 언어에 대한 고군분투를 토로하자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자, 내 휴대폰은 모든 기능이 독일어로 쓰여 있어. 넌? 넌 아닐 걸? 내 말이 맞지?"
고개를 끄덕이자 선배는 이어서 훈수 같은 조언을 이어갔다.
"난 젓가락 안써. 넌 아마 쓸 거야. 이제부터 쓰지 마. 난 포크만 쓴다. 이게 무지 우습게 들리고 내가 머저리처럼 보일지도 몰라. 내가 하는 말은 이거야. 네 몸속에 있는 한국적인 모든 걸 버려야 해. 언어는 그렇게 배우는 거야." -p.90
사실 책을 읽는 독자로서의 나, 제삼자의 나로서는 그렇다고 굳이 젓가락질까지 안할 이유가... 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핸드폰 기능을 죄다 독일어로 바꿔놨다는 건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오래전에 나도 영어로 바꾼 적이 있었는데, 하루도 못가 바로 한국어로 변경했더랬다. 이렇게 하면 영어가 늘려나,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그랬었는데 스트레스만 잔뜩 받고 불편해서 금세 다시 한국어로 바꾼거다. 아마 그 때 불편하고 스트레스 받는 걸 감당했더라면 내 영어가 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차피 한국에 살았으니 딱히 뭐 별 다를게 없었을 수도.. 그러나 이 팁은 유용하다. 꼭 내가 핸드폰 메뉴를 다 해당 언어로 바꾸는게 아니어도, 그러니까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것들을 대하는 자세부터 바꿔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거니 말이다. 내가 해외생활을 하게 될 때, 이 선배의 조언은 내게도 아주 유익할 것 같다. 물론, 자신은 없다.. 난 핸드폰 기능.. 안바꿀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
사실 내가 이 페이퍼를 쓰고자 했던건, 저자 이보현이 겪었던 어떤 일 때문이다. 물론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느니만큼 인종차별도 경험했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인종차별보다 같은 국적의 사람들에게 사기(?)당했던 게 제일 힘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학생활에서 집 구하기가 큰 이슈가 될 정도로 어려웠던 때에 이보현은 예상했던 월세를 초과한 방 두개짜리 집을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어쩔 수 없이 초과된 금액도 부모님에게 받아가며 이사를 한다. 한국에서 놀러온 후배가 그 방에서 한동안 머물면서 저자에게 호스트로 제격이라며 남는 방을 유학생에게 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이보현은 한국에 온 초기의 유학생을 구해보도록 하자고 생각한다. 초기 유학생이라면 한국인 생활자와 같이 지내는 게 힘이 되기도 할터이니 말이다. 그러다 1년을 머물고 싶다는 한국여핵생'들'의 연락을 받았다 한다. 두 명이 방 하나 사용한다는게 좀 신경 쓰이긴 했지만, 망설이다가 생활비는 예민한 부분이니 받아들이자고 생각하고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맞이한다. 초기의 생활에 대해 조언도 해주면서 지냈는데, 어느날 이보현은 우편물을 확인하다가 '3차 경고장'을 보게 된다.
'경고장'이라는 말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1,2차를 받은 적이 없는데 '3차'경고라는 말이 더욱 납득하기 어려웠다. 곧장 뜯어보니, 내 이름으로 등록된 인터넷으로 음원과 영화를 불법 다운로드 및 업로드를 했고, 1,2차 경고에 응하지 않아 3차 경고를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합의금은 5만 유로(한화로 6,500만원) 이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10만 유로(1억 3천만원)를 제시할 거란 경고가 담겨 있었다. 옆방 학생들에게 물었다. 혹시 이 편지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한 학생이 울면서 얘기했다. 독일어를 배우고 싶어서 음원과 영화를 다운 받았고, 독일어를 몰라 자동 업로드를 했다는 것이었다. 1,2차 경고장은 무서워서 숨겼다고다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두려웠을 상황이 이해도 되어 해결책부터 찾자며 우는 학생을 진정시켰다. -p.104
이 부분에서 진짜 너무나 화가 치밀었다. 1,2차 경고장을 무서워서 숨겼다니, 와 진짜 너무 화가 나는거다. 만약 그 때 숨기지 않았다면 일은 더 쉽게 더 적은 비용으로 해결될 수도 있었을텐데, 도대체 왜 그걸 숨기나. 몰라서, 아무것도 몰라서 의욕만 앞서 자동 업로드며 불법 다운로드며 를 받았다고 하자. 실수를 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것이 문제라는게 밝혀지면 바로 즉시 해결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1차 경고장 받고 아이고 이게 무슨일이야, 하고 저자에게 보여주면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되었어, 너무 미안해, 이 일을 해결하는데 당연히 최선을 다할게, 를 했었어야지, 무서워서 숨기다니, 그리고 울다니. 와 너무 싫은 사람의 전형이다. 너무 싫다.
저자는 다음날 학교를 가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여주고 변호사를 선임하고 함께 변호사 상담을 받기로 두학생들과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변호사 사무실에 그 학생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에 답도 하지 않는거다. 하는수없이 저자 혼자 상담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두 학생의 신발이 모조리 사라진 것을 저자는 알게 됐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그 날 이후로 나의 유학 생활은 무너지기 시작했다'(p.104)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내 앞에 6천5백만원의 문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그게 내가 저지른 문제가 아닌데, 그런데 그 해결을 내가 혼자 해야 하다니. 저자는 변호사 선임비용부터 시작해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수천 유로를 지불하고, 두 학기를 반납하고 편두통에 시달리고 아무것도 먹을 수도 없고 먹고 나면 토하기 일쑤인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은 넉 달만에 마무리 되었다고. 그리고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가족들에게 말하다가 대성통곡 할까봐 말도 못했다고 한다. 이국에서 홀로 이 문제를 감당하고 해결하려는 동안 얼마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그 두 학생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나는 그 두 학생들의 그 뒤가 궁금했다.
아마 도망가서 다른 방을 찾았겠지. 아니면 유학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갔을까? 독일어를 완벽하게 익혔을까? 학교는 무사히 다녔을까? 직업을 얻었을까? 그 모든 과정에서 이 일이 그들을 얼마만큼 괴롭혔을까? 밤에 잠은 잘 잘까? 자신들이 저지른 짓이 얼마나 크게 타인을 괴롭혔는지 제대로 자각은 하고 있을까? 그러나 자각하고 있다면 애초에 일이 그렇게 크게 되도록 방치하지도 않았겠지. 미안해할까? 죄책감을 가질까? 아니면, 어휴 좆될뻔했다, 하고 도망친 걸 다행으로 생각할까? 나는 그 학생들이 너무나 밉다. 그런 사고방식과 생활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어떻게 둘다 도망갈 수 있을까? 역시 끼리끼리는 과학인걸까? 한 명이 그런 일을 벌이고 무서워, 라고 말한다해도 다른 한 명은 그래도 우리는 솔직하게 말하고 해결방법을 찾아야 해, 라고 했어야 되는거 아닐까? 도망가자, 라고 하니 그래 도망가자 했던걸까? 지금 어딘가에서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이 일에 대해 가끔 생각할까? 그 초기 유학생들은 지금쯤 어떤 어른이 되어있을까?
이보현은 이 일을 언급하며 '일이 해결된 이후에도 오랜 시간 고통으로 남아있었다'(p.101)고 얘기한다. 이 일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때의 배신감, 막막함 그리고 고통까지. 이국에서 겪었던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행동. 물론 이보현은 독일에서 지내면서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행복한 기억들도 당연히 가지고 있다. 그렇다해도 좋았던 일들이 이 일을 까맣게 지워버릴 순 없을 것 같다. 당사자가 아닌 나도 이렇게 화가 나고 속상한데 당사자는 정말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는 무엇보다 무섭다고 숨기고 울었던 그 학생들의 행동이 너무나 싫다. 숨기고 울고 그러다 숨어버리고. 이게 진짜 뭔가. 너무, 너무 싫다. 정말이지 너무 싫다. 그 시간들을 버텨낸 이보현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학생들은 지금이라도 이보현을 찾아가서 정식으로 사과했으면 좋겠다. 정식으로 사과하고 그 때 이보현이 겪었던 시간에 대한 손해배상까지 포함해서 물질적 피해까지 죄다 보상했으면 좋겠다. 그래봤자 그 때의 괴로운 시간이 모두 사라지는건 아니겠지만. 숨기고 울고 도망가는 그 태도, 정말이지 너무 싫다. 그때는 어린 유학생이어서 그랬어요, 라고 하지 마라. 저자 역시 몇 년 앞서 유학가있었던 젊은이었다. 너희에게 무서운 일, 저자에게도 무섭고, 너희에게 울고싶은 일 저자에게도 울고 싶으며, 너희에게 도망가고 싶은 일, 저자에게도 도망가고 싶은 일이었다. 무섭다고 숨고 울고 도망가면 결국 인생 자체에 해결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채로 계속해서 불안한 생활을 맞이하게 될거다. 부디, 제발 지금은 거기에 대해 큰 잘못을 느끼고 죄책감 갖고 똑바로 살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휴..
나는 언제나 여행자였다. 며칠 안되는 시간들은 나에게 '이방인'이라는 것보다는 '여행자'라는 타이틀을 주었는데, 여행자로서의 이국, 외국이란 대부분 매력적인 곳이다. 그러나 이방인으로서, 생활자로서 살아간다면 그곳은 결코 만만치 않은 공간이 될것이고 모국에서 생활했다면 겪지 않아도 됐을 일들을 겪어야 하는 상황으로 데려다놓는다. 나는 이방인으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이방인의 삶이란 것에 대해 평소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로 살고 있지만, 이렇게 이방인이 쓴 책들을 읽으면서 그들의 어떤 괴로움, 어떤 고통들에 대해 알게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괴리감, 외로움, 고통들에 대해 알아가는 일은 인간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을 결과적으로 더 낫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책을, 잘 읽었다. 저자와 저자의 가족들이 지금 머무는 한국에서 평안한 삶을 이어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