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살 사춘기 소녀 '에비'와 '리지'는 이웃해사는 단짝이다. 학교도 같이 다니지만 서로의 집에서 같이 자기도 한다. 서로에 대해서 속속들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친한 사이이다. 이 소설은 사춘기 소녀들의 성적 호기심과 욕망에 대해 드러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시점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에비에게는 하염없는 애정과 갈망을 품은 동네 아저씨가 있고 그 아저씨는 매일 밤마다 에비의 집 앞에서 에비의 방 창문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운다. 이 다음의 우울한 이야기들이 상상된다면, 맞다. 그러므로 얘기하지 않겠다. 그리고 에비의 단짝친구 리지. 리지는... 하아- 에비의 아버지를 갈망한다. 아버지란 말이 너무 나이 들어보이나..에비의 아빠를 갈망한다....................................................참...읽기 조마조마한 소설인데, 심지어 짜증까지 났었다. 문장이 뭐라고 해야하나..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해야하나. 그러니까 계속 읽을까 말까를 고민하게 한 문장이 앞 쪽에 떠억, 하니 나타나는데, 바로 이런 문장이다.



축구공을 50미터나 찰 수 있고 딸들을 위해 공주풍 화장대를 만들며 폴러스케이트장이나 볼링장에 우리를 데려가는 베버 씨. 그에게서는 언제나 상쾌한 공기와 라임 향, 크리스마스 육두구(향신료로 쓰이는 나무 열매)냄새가 동시에 났다. 우리에게는 평생 '남자'를 의미했던 냄새이다. 베버 씨, 그는 거기에 있었다. 나는 그를 내다보기 위해 목을 길게 내빼지 않았던 때를 기억할 수 없다. 계속해서 베버 씨의 말을 조금이라도 더 듣기를 기다리면서, 그가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순간에 목말라하면서. (p.10)



....응? 나는 그를 내다보기 위해 목을 길게 내빼지 않았던 때를 기억할 수 없다?? 이게 무슨 말이지?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 앞의 문장들과 그 뒤의 문장들을 보면, 그러니까 요지는, 베버 씨를 보기 위해 항상 목을 길게 내뺐다는 건데, '기억할 수 없다'로 끝나?? 내빼지 '않았던 때'?? 부정이니까, 이중부정으로 ... 진짜 수차례 읽은 다음에야 저 문장이 '그를 보기 위해 늘 목을 길게 내뺐다'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진짜......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 저 문장을 또 읽어봤는데, 여전히 참..뷁스러운 문장이다.....휴.........저런 문장을 써둔 건, 원서에도 이중부정이 나와서일 것 같은데, 아, 진짜.....그만두자.




그건그렇고,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중에 '한희정'과 함께 부른 <그대는 어디에>라는 곡이 있다. 오늘은 문득 그 노래가 생각났다. 


눈물은 보이지 말기
그저 웃으며 짧게 안녕이라고
멋있게 영화처럼 담담히 
우리도 그렇게 끝내자

주말이 조금 심심해졌고
그래서일까 친구들을 자주 만나고
챙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생겼고
요즘엔 나 이렇게 지내

생각이 날 때 그대 생각이 날 때
어떻게 하는지 난 몰라
애써 아무렇지 않게 마음은 담대하게
그 다음은 어디서부터 어떡해야 하니

환하게 웃던 미소 밝게 빛나던 눈빛
사랑한다 속삭이던 그댄 어디에
사랑하냐고 수없이도 확인했었던
여렸던 그댄 지금 어디에

웃기도 잘 했었고 눈물도 많았었던
사랑이 전부였었던 그댄 어디에
같이 가자며 발걸음을 함께 하자며
나란히 발 맞추던 그댄 지금 어디에



정확히 저 부분. 챙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생겼고.......


챙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생겼고

챙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생겼고

챙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생겼고


.

.

.

.

.

.

.

.

.



그렇다. 내게도 챙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생겼다. 사실 집에 있어도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데, 이런 내가 그 드라마가 방송할 시간이 되면 텔레비전 앞에 가서 앉는다. 오 마이 갓.. 그렇다고 본방사수!! 같은 건 아니고, 왜냐하면 토요일에도 술마시느라 안봤으니까... 그 시간에 집에 있으면 보자, 인데, 어쨌든 챙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생긴 것이다. 아하하하하하하하. 이 드라마가 참 좋은 게,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안재욱과 소유진이 성숙한 연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고 서로의 생활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유진은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하고, 전남편에게는 화를 내고 소리지르고 욕을 하지만, 남자친구 앞에서는 설레이고 좋고 막 그런 여자다. 누가 자신에게 뭐라고 할 때 무조건 잘못했다라고 하지도 않고 기죽지도 않고 당당하게 대응한다. 경우 없는 여자에게는 '뭐 이런 싸가지 없는 게 다있냐'고 말하고, 안재욱의 장모에게는 '우리가 뭐 불륜이라도 하냐'고 맞선다. 크- 좋은 캐릭터다. 게다가 어제는 소유진과 안재욱이 같이 밥을 먹는 식당에서 옆테이블 여자들이 저들은 불륜인가보다고 쑤군거리자 '우리 불륜 아니다' 라고 말하고는 '왜들 그렇게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나는 그 대사가 좋더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기준만 가지고 덮어놓고 욕하는 사람들이 들었어야 할 대사다. 

뭣보다 안재욱이 정말 좋은 남자친구다.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행복하고 기분 좋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게 뭐가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 심지어 여자친구가 애인이 생기면 하고 싶다고 했던 위시리스트를 하도 많이 들여다봐서 외우기까지 했다. 소유진이 보이기 싫어했던 모습까지 다 보았는데도, 그는 '나는 남자친구니 내 앞에서 그런 모습 보여도 된다'고 말한다. 여자친구에게 높임말을 쓰고, 자주 손을 잡고, 자주 함께 웃는다. 열심히 일했으니 열심히 연애합시다, 라고도 말한다. 이 드라마 상에서 츤데레 역을 맡고 있는 골프선수가 많은 여자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보일 수 있다는 걸 아는데, 나는 안재욱 캐릭터가 좋다. 너무너무너무좋다. 울트라캡숑나이스짱이다. 모름지기 남자친구라면 안재욱 같았으면 좋겠다. 안재욱 럽 ♡ 어른의 사랑... 좋아......





주말에는 조카들이 놀러왔었다. 동생네 부부가 볼 일이 있어 토요일 하루를 꼬박 조카들과 보내야했는데, 내 방에 반지를 놓아둔 케이스를 본 일곱살 조카가 그 케이스를 들고 오더니 내게 건네며 말했다.


저와 결혼해주시겠습니까?


하아..조카야.. ㅜㅜ 

너는 대체 왜..왜...왜... ㅜㅜ


드라마 그만 봐 ㅠㅠㅠ


그리고는 "이모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지?" 라고 하니 "나!"라고 한다. "그럼 이모가 두번째로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지?" 라고 하니 "(   )"라고 답한다. 우와, "어떻게 알았어?" 했더니 아아, 일곱살 아이가, 이러는 거다.


"내가 이모를 왜 모르냐. 아주 잘알지."


일곱살 조카가 나를 잘안다!!!!!!!!!!!!!!!!!!!!!!!!!!!!


네살 조카는 남자아이인데, 와, 얘는 애초에 태어나기를 애교를 장착하고 태어난 것 같다. 쳐다보기만 해도 방긋방긋 웃고, 자신이 웃는 걸 사람들이 예뻐라 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너 이거 왜그랬어?' 하고 물으면 대답이 바로 이렇게 나온다. '응, 이모가 좋아서.'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얜 뭐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예쁜 대화들이 오고가서 사랑이 가득 넘쳤다로 끝나면 훈훈했겠지만,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얘네들 빨리 자기네 집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사랑한다고해서 늘상 붙어있는 건 답이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피곤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거리감, 거리감이 중요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특히나 나같은 사람은 사랑할수록 거리를 둬야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야 사랑이 쑥쑥 자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점심까지 먹고 간다 그래서 당황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점심으로 김밥 잘라서 또 우동하고 함께 네 살 조카 먹여주는데 잘도 받아먹는 게 진짜 이뻤다. 어휴, 계속계속 먹이고 싶어. 나는 내가 먹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이 잘 먹는 걸 보는 것도 너무나 좋다. 특히나 내가 사랑하는 존재라면 더더욱. 네 살 조카가 내가 떠주는 밥을 잘 받아먹는 걸 보는데 진짜 너무 좋았다. 행!복! 




며칠전에 인증서를 갱신했는데 특수기호를 넣어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런데 그 뒤로 자꾸만 인증서암호가 틀렸다는 메세지를 보게 된다. 여전히 특수기호 없는 번호를 넣기 때문이었다. 틀렸다는 메세지를 보고나서야 아, 특수기호, 하고는 다시 쳐넣는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자연스레 손에 익게 될 것이고, 그렇게 새로운 비밀번호를 누를 수 있게 되겠지만, 아직은 새로운 비밀번호가 낯설기만하다. 좀처럼 손에 익질 않는다. 인증서 만기 같은 거 없이, 갱신 같은 거 없이, 비밀번호 변경 같은 거 없이, 그냥 살 순 없는걸까.



지난주에는 사주를 보러 다녀왔다. 사주를 봐주신 분은 내 사주들을 풀이하시면서 '각인'이란 단어를 쓰셨다. 오..각인이라니! 제이콥이 르네즈미에게 각인되었었는데...이 분, 트와일라잇 시리즈 보신걸까? 제이콥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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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2016-05-16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엔 거리가 필요하다는말, 절대 공감합니다 :)

다락방 2016-05-16 16:16   좋아요 0 | URL
그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

비연 2016-05-16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톤 프로젝트의 저 노래. 너무 좋죠. 듣고 있으면 정말 빨려들 듯한...
저도 드라마 잘 안 보는데, 노희경 작가의 ˝디마프˝ 를 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다락방 2016-05-16 17:34   좋아요 0 | URL
저는 저 노래보다는 <이화동>을 좋아해요. 들으면 진짜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능 ㅋㅋ 그 노래랑 <눈을 뜨면>이요. 어휴, 그냥 술 취하고 들으면 진짜 쥐약이에요.

안재욱 캐릭터에 빨려들어가고 소유진과 연애하는 걸 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한 번 보고나니 자꾸 보게 되네요. 히힛.

머큐리 2016-05-17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즐겨 보고 있는 드라마에요...ㅎㅎ

다락방 2016-05-17 15:57   좋아요 0 | URL
오오 머큐리님도 보신단 말입니까? 소유진과 안재욱 커플 좋지요? 힛.

2016-05-17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7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8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8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9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9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 이 책을 요즘 읽는 중인데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여자들이 남자에 의해서 잔인하게 살해당하는데, 그 잔인한 장면이 너무 끔찍해서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녀들이 너무나 '좋은', '괜찮은' 사람들이라걸 알기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 이런 말은 물론 잘못된 말이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죽음이 가슴 아프지 않냐'라는 되물음이 올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진짜 이렇게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칼에 찔려 난도질을 당하면서,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할 어린 아이들을 걱정하고, 막 낙태한 미성년자가 지금 이 자리를 떠나 안전한지를 확인하고, 칼에 찔린 개 때문에 운다. 이 여자들이 자기가 당하게 될 고통 앞에, 내가 죽어서 어쩌나, 를 생각하기보다, 다른 이들의 안전을 걱정하고 염려한다. 그리고 다른이들이 당한 고통 때문에 운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그녀들이 그렇게 한다. 피를 철철 흘리고 죽어가는 와중에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고 머리가 멍해지면서도, 그녀들은 그렇게 한다. 아, 너무나 눈물이 난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연민과 공감과 애정과 예의를 가진 여자들을, 남자는 잔인하게 죽인다.


이 책의 절반정도를 넘겨 읽었는데, 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그녀는 하고 싶은 말들을 정교하게 잘 해내고 있다. 남자들은 항상 여자들을 죽여왔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잔인한 죽음 앞에 무방비하게 놓여진 그녀들이 얼마나 한 명 한 명 괜찮은 사람이었는지를, 그리고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까지를, 사소한듯 하지만 사소하지 않게 중요한 메세지들을 꼭꼭 잘도 박아두었다. 살인자는 여자들을 죽일 때마다 그녀들을 죽이는 이유가 그녀들이 '빛나서'라고 말하는데, 정말 그랬다. 그녀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빛나는 여자들이었다. 삶을 열심히 살고자 했고, 그래서 치열하게 살고 있었고, 애정과 공감과 배려를 갖춘 자들이었던 거다. 



후.. 여자주인공 커비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을만큼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개를 안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걷는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개를 그 곳에 두고 오는 게 아니라,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자신의 개를 안고 걷는다. 어휴.. 진짜 읽다보면 사람은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기 직전의 개가 자신의 주인을 살해하려는 남자를 공격하는 것에도 놀랐지만, 대체 이 사람들은, 뭔가, 어쩌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인가 싶어진다. 아..사람은 뭘까? 인간은...도대체 뭘까? 너무나 괜찮은 인간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고, 아니 존재 했었다고 계속 말하고 있어서 펑펑 울고 싶어진다. 





빌어먹을 항상, 여자들은 살해당한다고.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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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1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1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몬스터 2016-05-11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은 공감지수라고 해야하나? Empathy level이 참 높으신듯해요. 주위에 좋으신 분들이 참 많으실 듯 합니다

다락방 2016-05-11 23:07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오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여럿이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제 공감능력 때문인가 봅니다. 몬스터님 댓글 덕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힛
:)
 

"넌 정말이지 낭비가 심해, 아론." 페기가 내게 말했다.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았다.

"내가 뭐라고?"

"다른 사람은 누가 가까이 다가오면 반가워할 거야. 너는 그 여자의 속셈을 알아보느라 분주하지."

내가 말했다. "어떤 여자의 속셈을 말하는 거야?"

"넌 그것조차 보지 못해. 알아차리지도 못한다고. 넌 그 여자가 낭비되도록 내버려 두지."

"누가 낭비되게 내버려 둔다는 거냐고? 지금 루이스 얘기를 하는 거야?" 내가 물었다. (pp.264-265)

















토요일에 일자산에 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빠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산에 갔다며.

응.

아카시아 꽃 많이 피었지?

못봤는데? 냄새도 안나던데?

아빠 친구가 일자산 갔다가 아카시아꽃 많이 피었다고 사진 찍어 보내줬던데?

아 나는 너무 앞만 보고 갔나? 못봤어.

아니 어떻게 그걸 못봐?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곰곰 생각해봐도 내가 아카시아 나무를, 꽃을 본 기억이 없다. 어떻게 그랬을까? 피지 않아서 못본걸까, 피었는데도 못본걸까? 아무리아무리 떠올려봐도 아카시아 나무가 기억에 없다. 


일요일에 다시 일자산엘 갔다. 아카시아 나무에 꽃이 피었다고 했지? 하고 산에 오르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아, 내가 어떻게 이것들을 못보고 지나쳤을까 싶었다. 아카시아가 지천이었다. 여기저기 온통 아카시아나무였고 꽃이었다. 달큰한 냄새까지 났다. 아카시아 껌, 그 냄새다, 했다. 게다가 윙윙 들리는 벌들의 소리. 머리 위로 벌들이 아주 많이 날고 있었다. 자주 볼 수 있는 평범한 꿀벌부터 엄지손가락만한 큰 벌까지. 진짜 벌천지(!) 였다. 혹여라도 벌이 내게 달려들까봐 쪼그라들 정도로 벌이 많았고, 시선 닿는 곳마다 아카시아 꽃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걸 못보고 갔던거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대체 나는 뭘 보고 간거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갔길래 산을 온통 가득 채운 아카시아나무를 못보고 지나친거지? 한두그루도 아니었는데?



그러자 '앤 타일러'의 책 속 문장이 생각났다. 나는 아카시아를 낭비되도록 두었구나, 싶어서. 이렇게 보란듯이 피어서 자기 향을 피워내고 있는데, 그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다니, 아카시아는 자신의 역할을 최대한 성실히 해내고 있었는데, 나는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자신의 몫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내가 몰랐다. 내가 아카시아 나무를 낭비하고 있었다. 아카시아 꽃을 낭비한 채로 두었던 거구나.


어쩌면 아카시아 나무에 대한 것만은 아닐 거다. 나는 아주 많은 것들을 모르는 채로 지나치고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어도 모르는 채로 그렇게 스쳐지나갈 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주 많은 것들을,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을 낭비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누군가가 나를 낭비하고 있는 채로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넌 그 여자가 낭비되도록 내버려 두지, 라는 페기의 말이 자꾸만, 자꾸만 생각난다. 




연휴동안 슬픈 일을 겪었던 친구가 아침에 내게 글을 써달라고 했다. 내게 위로 받고 싶다고 했다. 나를 좋아한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 친구는 나를 낭비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달라고 말하다니. 내가 글을 쓰는 게 지금의 친구에게 좋은 일이라면, 나는 그 일을 할 수 있다. 아울러 다른 친구에게도 얘기하고 싶었다. 주말에 내가 그 친구에게 말했던 것처럼, 나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을 찾고, 손을 내밀수 있는 만큼 내밀었으면 좋겠다. 나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을 낭비되게 두지 말고, 자신의 슬픔의 무게를 덜어내는 데 한껏 이용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우리가 소중한 사람에게 낭비되지 않아야 한다. 




토요일 밤늦게 본 『아이가 다섯』은 무척 좋았다. 어떤 식으로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고 성장한 성숙한 남자와 여자가 연애를 하고 있다. 안재욱은 재혼할 생각이 없다면 나쁜 놈입니까, 라고 물었고, 소유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도 아이들 때문에 재혼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우리의 상황은 다른 연인들과 다르니까, 라며 안재욱의 말을 이해했다. 안재욱은 아이들이 다 크면, 그런데도 우리가 계속 같은 마음이면 그때 함께 살자고 말했다. 소유진의 막내가 어려서 막내가 스무살이 되려면 14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자, 안재욱은 자신이 기다리겠다며, 그때까지 좋은 남자친구가 되어줄게요, 했다. 와- 이 둘의 대화가 너무 좋았다. 이해해요, 기다릴게요, 좋은 남자친구가 되어줄게요, 라는 모든 말들이 다 좋았다. 게다가 섣불리 영원을 맹세하는 것도 아니고, 그때에도 우리가 여전히 같은 마음이라면, 이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14년 후면 쉰이 될텐데, 많이 늙겠네, 라는 얘기를 하면서 소유진은 일본 출장 갔을 때 먹으면 7년씩 젊어 진다는 달걀 얘기를 꺼낸다. 우리가 같이 살게 될 때, 그때 거기가서 그 달걀을 두 개씩 먹고 14년 젊어지자고, 그리고 함께 살자고. 전경린의 「부인내실의 철학」이 한 구절이 이와 같다.
















"......당신은 아이들이 언제 다 자란다고 생각해요?"

"열여덟 살. 둘 다 열여덟 살을 넘기면 다 키운 거야......"
"나보다는 당신이 늦겠네요."
"나를 기다려줄 거야?"
희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나 기다려줄 거야?"
"당신이 지금이라고 할 때까지. 얼마든지...... 당신 아는 사람들이 다 죽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 다 죽고 이 세상에 우리 둘만 남을 때까지......"
"당신의 말은 늘 나를 놀라게 해. 당신 몸처럼."
기윤은 희우의 뒷목덜미에 입을 맞춘다.
"그때가 되면 우리 북해도로 여행을 가요. 그곳엔 하나 먹을 때마다 7년 젊어지는 검은 계란이 있대요."
"하하. 그런 이상한 계란이 있다고?"
"틀림없이 있어요. 7년씩 젊어진다는 검은 계란이."
"정말?"
"정말이라니까요. 북해도에 눈이 있는 만큼이나, 온천이 있는 만큼이나 확실히 있어요. 우리 그곳에 가면 검은 계란을 똑같이 두 개씩만 먹어요. 그리고 함께 20년만 더 살아요."(전경린, 부인내실의 철학 中)



아이가 다섯의 드라마 작가는 이 소설을 읽고 저런 대사를 써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랬을 것 같다.....음... 어쨌든,


이 남자와 이 여자는 참 성숙한 사랑을 하는구나, 싶었다. 내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다면, 드라마속의 골프선수 사랑을 재미있게 봤을것 같은데, 그 사랑이 더 눈에 들어왔을 것 같은데, 지금은 확실히 조곤조곤하고 다정하게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귀기울여주는 쪽에 마음이 끌린다. 멋지다. 안재욱이 드라마상에서 젠틀해서 너무나 좋다. 게다가 소유진이야말로 매력이 터지는데, 사내연애를 숨기고 있는 그들앞에 차대리가 팀장님인 안재욱을 좋아한다고 소유진에게 말한 것이다. 팀장님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자기는 천천히 팀장님에게 다가갈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회사 일로 모든 부서원들이 안재욱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할 때, 소유진에게 '내가 조수석에 앉게 도와줘요' 라고 말한다. 그러나 차대리가 안재욱 차의 조수석 문을 열었을 때, 거기에는 이미 소유진이 타고 있었다. 내게는 이 장면이 아주 놀라웠다. 소유진이 괜히 착한척 하면서 뒷자리에 앉았다면 그건 그대로 서운할 사람이 생겼을 거다. 안재욱은 안재욱대로, 그리고 양보한 소유진은 소유진대로. 그러나 소유진은 자신이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멋져! 크.


이십대 중반에 내게는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같이 근무하던 다른 여직원이 내게 그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도와달라고. 그래서 회식자리에서 그에게 고백할거니 그를 불러달라 말했을 때, 나는 가서 친절하게 잠깐 나가보라고 말했다. 그때 그 여직원은 그에게 '너를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그 남자는 '다른 여자를 좋아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녀에게 거절을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상심한 그녀를 위로했는데, 아아 그때의 내가 너무나 바보같다. 소유진으로 치자면 조수석을 양보한 셈이다. 으윽. 그래놓고 나는 또 얼마나 마음 아파했었나. 병신... 나는 그때 그녀에게 '나도 그남자 좋아해!'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녀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그에게 다가섰어야 했는데..모지리 모지리 모지리.. 나는 그때 왜!! 그녀에게 그를 내 마음대로 양보한걸까. 왜 착한척 했을까... 어휴 바보같다 진짜... 그랑 사귀지 못해서 바보같은 게 아니라 시도조차 하지 않고 뒤로 물러난 내가 바보같다는 거다. 소유진이 그러했듯 자신감을 갖고 내 감정을 숨기지 말했어야 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당시 친했던 형과 술을 마셨는데, 시간이 지났고 서로의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렸으니 말했었다. 형, 내가 그 때 그 친구를 좋아했었어요, 라고. 그때 형이 말했다. 왜 진작 말 안했냐, 걔도 너 좋아했는데, 라고. 둘이 담배 피다가 그가 말했었다고 했다. 나를 좋아한다고. 아니 이 병신은 왜 또 이대로 지 감정을 숨겼을까...뭐, 안될라고 그런 거겠지. 결과적으로 그와 어떻게 되지 않았던 것은 잘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의 내가 됐을 수 있었던 걸테니. 그를 만나서 좋다고 고백하고 사귀었다면, 사람일은 모르는거지만, 혹시 그와 결혼이라도 했다면, 아... 내가 그랬다면 삼십대에 사랑했던 남자를 만나지 못했을테니.. 과거에 바보였던 게 다행이었던 것 같다... 음....





혼자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결국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혼자라고 생각한다. 내 곁에 있으면서 내가 누군가와 싸울 때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내 편인 사람이 24시간 365일 내 곁에 붙어있을 수는 없다. 그러니 나는 그 사람이 없을 때 싸우지 못해 얻어터지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나 스스로도 누군가와 싸울만큼 강해져야 한다. 여행도 마찬가지. 지금 내게 너무나 좋은 여행친구가 있지만, 언제까지나 이 친구와 함께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운이 좋게도 그동안은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이 일치했고 시간을 같이 낼 수 있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러란 법은 없다. 우리가 시간이 맞지 않고 가고 싶은 곳이 일치하지 않을 때 내가 여행을 포기하기 보다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내가 갈 수 있으려면, 내가 혼자서 여행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뭐가 됐든 나는 혼자서도 뭐든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 스스로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사랑하고 더 많이 돌아다녀서 내가 할 수있는 것들을 해내면서 살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한다.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다 할 수 있도록, 혼자서도 부족한 게 없을 수 있도록. 누구 때문에 혹은 누가 없어서 포기하는 일들이 생기기보다는 혼자서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를 낭비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당신도 당신을, 그리고 나를,

낭비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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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2016-05-10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내 맘.

소유진 얘기도.

다락방님의 서로를 낭비했던 그 예전 얘기도.

절절히 다가오는...


다락방 2016-05-11 09:12   좋아요 0 | URL
아 얼룩말님... 이 글이 절절하게 다가온다면, 얼룩말님은 지금 어떤 시간을 보내고 계신겁니까. ㅜㅜ
 
사랑은 타이밍인가봐요.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여자는 잠시 여행차 들렀던 이탈리아에 집을 구입하게 되고 그곳으로 옮겨와 살게 된다. 다 망가진 오래된 집을 수리하고 고쳐 자기가 살만한 자기만의 집으로 만들면서, 그녀에게는 소망이 생긴다. 자신의 집에서 근사한 결혼식이 열리는 것, 새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 그녀는 남편과 이혼했고 또 친구들과도 떨어져 이곳으로 혼자 온 터라 그녀가 바라는 바가 당장은 현실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탈리아에서 잠깐 끌리는 남자를 만났지만 그와 어긋나 헤어졌으므로. 


그러나 그녀가 이탈리아에 적응해 살면서 이웃들과 교류하게 되고, 어찌하다 보니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집 수리 일을 도와줬던 청년의 결혼식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였던 레즈비언 커플이 헤어져 그 중에 임신한 여자쪽이 그녀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되고, 그곳에서 아이를 낳는다. 결혼식이 열리는 것, 새 생명을 보는 것. 이 두 가지 소원의 당사자가 그녀 자신이 되지는 못했지만, 결국 그녀는 원했던 바를 다 이루게 되는 것이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그러나 근접하게. 


결국 사람은 자신이 뜻하는 바대로 살게 되는 것 같다. 간절히 원한다면 그쪽 방향을 보고 걷게 되어 있으므로, 그 목적지에 도착하지는 못한다 해도 근처까지는 갈 수 있는 거다. 아예 엉뚱한 데로 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갑자기, 뜬금없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나는 늘 내 알라딘 장바구니 비워주는 사람을 원해왔다. 갖고 싶은 책을 말해봐, 라고 해서 내가 말하면 다다다닥 사주는 사람을. 이건, 뭔가 멋지잖아? 그런데 오늘,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

새벽에 친구로부터 받은 쪽지에는 갖고 싶은 책 몇 권 골라봐라, 라고 적혀있었고, 나는 겸손을 모르는 채로 내 보관함에 있던 책 여러권을 건네며 '이중에서 알아서 선택해줘'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란 녀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친구는 나를 너무나 잘아는 나머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토스트 책은 꼭 줄게' 라고 했고, 그렇게 슝- 내게 선물이 도착했다.




아 졸많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토스트 책도 있고!! 꺅 >.<

















아니 나는 무슨 생일도 아닌데 이렇게 책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나 신나는 것!! 진짜 좋아 죽겠다. 이 친구는 가끔 내게 간식박스도 커다랗게 보내주고, 그 안에 내가 먹어보지 못했던 초콜렛들도 넣어준다. 히죽히죽. 그리고 이렇게 가끔 내 장바구니를 털어줘.... 책 뭐 갖고 싶어? 묻고는 막 보내준다. 멋져! 나는 늘 바라왔던 사람을 이미 친구로 가지고 있는 거였어. 행복해. 멋져. 짜릿해!! 아 졸 행복해서 미칠것 같다. 히죽히죽. 


이만큼만해도 나는 오늘 충분히 많이 웃었는데(지금도 웃고있다), 이 친구가 선물을 보내며 준 메세지를 보고 완전 핵빵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마우면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눈물이 난다 너무 웃겨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여태 받은 선물메세지들 중에서 최고로 강력한 메세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내가 여태 살면서 오빠 라는 호칭을 써본적이 별로 없어서 ㅋㅋㅋ 이 호칭을 보는 순간 그냥 현웃터짐 ㅋㅋㅋㅋㅋ 육성터짐 ㅋㅋㅋㅋ 이걸 막 사람들한테 말하고 같이 웃고 싶어서 미치겠다. 그래서 나를 알고 이 친구를 아는 다른 친구에게 이 얘기를 해줬더니 이친구도 푸하하하 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러니까 내가 오빠란 호칭은 사촌 오빠들한테나 써왔지 잘 안써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색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뭐 꼭 진짜 부르겠다는 게 아니라 ㅋㅋㅋㅋㅋㅋㅋㅋ부르는 상상하니까 너무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일전에도 내가 페이퍼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대학교1학년때 편의점 알바할 때, 같이 근무하던 남자알바가 군대를 가게 됐는데, 우리가 잘가라 이러면서 같이 술도 마셨는데, 어쨌든 군대에 가서는 울집에 전화를 해가지고는 '락방이 좀 바꿔주세요' 한 거다. 이 전화를 울아빠가 받아서 '자네는 누군가' 라고 했고, '락방이랑 같이 일한 오빤데요'라고 남자알바가 말했더니 울 아빠가 '나는 자네를 낳은적이 없는데 자네가 왜 우리 락방이 오빤가' 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오빠가 나중에 편의점에 전화해서 '니네 아빠 장난아니시더라'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생각나는구먼. 어쨌든 나는 '오빠' 대신 '형'을 쓰거나 '~씨'를 쓰거나 '~님'을 쓰거나 했는데,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사람이라고 '오빠'라고 할 생각은 안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선물메세지에 대한 답장으로 



오빠!




라고 보내놓고 계속 웃고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오늘이 너무 좋아 너무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이 오빠(!!)한테 이런 페이퍼 써도 되냐고 물었더니 이 오빠(!!)가 된다고 하면서 '충격이 컸나보네' 라고 한다. 아 너무 웃겨서 눈물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좋은 하루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 오빠 덕이에요 ♡

오빠 짱짱맨 ♡





(아..너무나 어색한 것.....)


(아..이런 사소한 페이퍼에도 언급할 책이 있고 연결시켜 얘기할 수 있다니, 나는 진짜 대단한 것 같다. 졸멋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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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16-05-04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 짜ㅡ 락방이님은 넘 멋찌고 웃기심 ㅎㅎㅎ

다락방 2016-05-04 11:44   좋아요 0 | URL
그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생각해도 저는 멋지고 웃긴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이소오 2016-05-04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오빠!하시길래 `어머, 저요?`하고 들어왔더니 다른 좋은 오빠가 계셨군요
ㅋㅋ 웃다 가요 ~~
오빠덕에 기분좋은 하루되시길 ^^

다락방 2016-05-04 11:4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시이소오님 근데 저보다 오빠 맞긴 하십니까? 제가 누나일 것 같지 않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더 나이 많을 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네, 좋은 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시이소오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우히힛

시이소오 2016-05-04 11:5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간혹 올리신 사진에서 피부의 결을 보아 제가 `오빠`라고 확신합니다...... 설마 보톡스 아니죠? 덕분에 낄낄거리다 가요^^

다락방 2016-05-04 11:57   좋아요 0 | URL
아....................그거슨...뽀샵 어플입니다 ㅠㅠ 제 피부가 아닙니다 ㅠㅠ 뽀샵이 저지른 짓의 결과입니다 ㅠㅠㅠ

blanca 2016-05-04 12:32   좋아요 1 | URL
어머, 전 시이소오님이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ㅋㅋ 남자였어요?

다락방 2016-05-04 13:57   좋아요 0 | URL
저도 여자분인줄로만 알고 있었다가 얼마전에 글에서 `누나`라는 호칭을 봤던가, 그래서, 아, 남자분이셨구나, 했습니다. ㅎㅎㅎㅎㅎ

가넷 2016-05-04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런데 전 오빠라는 말이 왜 이렇게 어색한지 들을 일도 잘 없기는 하지만 가끔 들을때면 소오름이...^^;;

다락방 2016-05-04 11:49   좋아요 0 | URL
저도 겁나 어색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마 육성으로 `오빠` 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막 몸이 베베 꼬여요. ㅋㅋㅋㅋㅋ

건조기후 2016-05-04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겸손을 모르는 채로 ㅋㅋㅋㅋㅋ 그런 상황에 왜 겸손을 알아야 합니까 ㅎㅎㅎㅎㅎ
책 장바구니 털어주는 남자라니! 지금까지 들어본 온갖 멋진 남자 중에 진짜 최고로 짱이네요!

다락방 2016-05-04 11:49   좋아요 1 | URL
진짜 장난 아니죠! 최고 멋진 남자 맞아요.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사람임. 이런 남자사람이 내 친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다 제가 멋져서 가능한 거 아니겠습니까.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난척이 안멈춰져요 ㅠㅠ

heima 2016-05-04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덕분에 유쾌한 점심시간이에요! 락방님 최고 ㅋㅋ

다락방 2016-05-04 11:50   좋아요 0 | URL
헤이마님도 유쾌하셨다니 좋구먼요! 우히히히히. 저는 쫌 최고이긴 한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16-05-04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좋겠다, 다락방은, 오빠 있어서 ㅋㅋ 무엇보다 장바구니를 비워주는 오빠라니 이건 완전 센스만점이네요. 나는 책 좀 그만 사라는 오빠 있어요.--;;

다락방 2016-05-04 13:58   좋아요 0 | URL
진짜 짱이죠! 장바구니 비워주는 오빠가 진짜 멋진 오빠 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에서 최고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한 두 권도 아니고. 이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갑자기 그 노래 생각나요. 가수 이름은 모르겠지만, 이런 가사가 나오는 노래에요.

넌 내꺼중에 최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6-05-04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품 내역만 보고도 두근거리네요. 리얼로 받은 다락방님 심정이 이해가 되어요. 더 웃으셔도 되겠어요(^o^)/

다락방 2016-05-04 13:58   좋아요 0 | URL
그치요? 정말 신나는 하루입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제가 날아갈 것 같긴 하지만(응??) 너무나 신나고 아름다운 하루인 것입니다. 이런 오빠라면 오빠라고 충분히 불러줄 수 있어요!! >.<

건조기후 2016-05-0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의 선택에 토스트 책이랑 오빠! 올라와있는 거 너무 웃겨요 다락방님 ㅎㅎㅎㅎㅎ 아 웃겨. 웃겨. ㅋㅋㅋ

다락방 2016-05-04 13:5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토스트 책이랑 오빠를 알라디너의 선택에 올릴 수 있는 건 저 밖에 없을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만세!!!!!!!!!!!!!!!

세실 2016-05-04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졸 멋지다!!!!!! 나두 그런 오빠 있었음 좋겠어요. 울 신랑? 음.......없었던 일로^^

다락방 2016-05-04 15:58   좋아요 0 | URL
짱이죠!!!!!!!!!!!!!!!!!! ㅋㅋㅋ 이게 다 제가 가진 복입니다. 으하하하핫
덕분에 신나는 하루가 되었어요. 히힛.

앤의다락방 2016-05-0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으앙~~~!!!!전 어제 제 손으로 장바구니를 비웠지요! 하하핫!

다락방 2016-05-08 15:50   좋아요 0 | URL
살다보면 예기치 못한 기쁨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 때가 바로 그때였던 것 같아요. 으핫. 저는 좋은 사람들과 좋게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핫.

알케 2016-05-0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르시길래 왔는데 ..ㅋ

다락방 2016-05-08 15:50   좋아요 0 | URL
아 오셨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태우스 2016-05-08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멋진 오빠네요. 저는 왜 그생각을 못했을까요 다락방님한테 그렇게 은혜를 많이 입고서..ㅠㅠ

다락방 2016-05-08 22:49   좋아요 0 | URL
어휴, 무슨 말씀이세요, 마태우스님. 마태우스님은 지금도 제게 정말 너무나 잘해주고 계신데요. 제가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마태우스님을 만난 건 제게 행운이에요!! >.<
 

어제 드라마 『아이가 다섯』에서는 남주인 '안재욱'이 여주인 '소유진'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 나왔다. 안재욱은 집 마당으로 나와 소유진에게 전화를 걸었고 소유진은 자신의 방에서 전화를 받다가 '당신 노래 잘한다던데 지금 좀 불러달라'고 말했다. 안재욱은 그래서 수화기 너머로 '젝스키스'의 <커플>을 나름의 발라드 버전으로 불러주었다. 소유진은 수화기 너머에서 연인의 노래를 들으며 행복해했다. 안재욱이 노래를 불러주던 장면을 그의 장모가 우연히 보게된다. 이 지극히 사적인 장면을.



그러자 이십대 중반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간혹 회사의 비상구 계단을 찾는데, 그때도 회사의 비상구 계단에 가고 싶어 빼꼼 문을 열었던 거다. 그런데 거기엔 이미 나보다 먼저 울 회사 남자동료인 L 이 와있었다. 내게서 등돌리고 있었으므로 그는 나를 보지 못했는데, 그는 수화기 상으로 상대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였다. 


나는 너무 놀라서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문을 살짝 닫고 나왔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당사자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너무나 사적인 장면이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내가 아는 동료 L 은 누군가에게 노래를 불러줄만한 사람으로 상상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사실 동료로 만나거나 친구로 만난 사람이 연인으로서는 어떤 모습일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는 내게 그저 느리고 답답한 동료였는데 연인에게는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이었던 거다. 우리는 그 사람과 사귀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의 연인일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십대 중반에 내가 사귀었던 남자는 주변인들로부터 싸가지 없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었다. 말투가 틱틱거리기 때문이고 도무지 다정한 말투를 쓰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조차도 처음 그에 대한 인상은 재수없다는 게 먼저였다. 말을 왜 저따위로 한담, 하면서. 말투 기분나쁘다고 말해야겠어, 라고 벼르던 참에 어쩐지 나도 모르게 그와 연인이 되어있었고, 연인인 그는 틱틱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말을 어찌나 잘듣는지, 나는 뿌듯하기까지 했더랬다. 나보다 나이도 훌쩍 많은 남자가, 성격도 나쁜 남자가, 내가 하라는대로 다 한다는 뿌듯함. 나한테 어쩌다 쌀쌀맞은 말투로 말할라치면 그저 나는 '너 지금 나한테 쌀쌀맞게 말하는거냐'는 표정으로 놀라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그는 이내 다정해졌다. 그의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다는 게 너무 짜릿했다. 


시간이 지나 나는 그 직장을 관뒀고, 그때 상대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L 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노래를 불러주던 그 상대와 결혼할걸까, 라고 혼자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극중에서 소유진은 아이가 셋이고 안재욱은 아이가 둘이다. 한쪽은 이혼으로 그리고 한쪽은 사별로 각자의 배우자를 잃어 둘다 싱글인 상태인데, 아마도 이 둘이 나중엔 함께 살기 때문에 제목이 '아이가 다섯'이 된 게 아닐까 싶다. 뭐,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추측이다. 그런데 어제 내가 본 마지막 장면에서는 안재욱이 소유진에게 '나는 재혼생각이 없는데, 그렇다면 당신에게 나쁜 놈입니까' 라고 묻는다. 소유진은 자신이 다시 연애를 한다면 하고 싶다고 생각한 위시리스트를 만들어두었었는데, 그걸 연인이 된 안재욱에게 건네면서 맨 마지막 한줄을 찢는다. 그때 그 한줄에는 '함께 행복하게 살기'라고 적혀있었다. 자신의 처지와 또 안재욱의 처지를 아는 이상 결혼을, 그러니까 재혼을 바라는 게 어렵다는 걸 알고 있고, 그래서 혹여라도 그게 부담이 될까, 안재욱에게 건네기 전에 찢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소유진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라는 소원을 갖고 있었다. 안재욱은 현재 처갓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고, 그런 상황이니만큼 자신이 재혼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관계가 더 깊어지기 전에 '나는 재혼생각이 없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자신의 연인에게 그 생각을 알린다. 


내가 1인1피자에다 내가 만든 알리오올리오 스파게티, 거기에 와인을 곁들여 보다말다 보다말다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유진도 그 상황을 '알고는' 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한 줄을 건네지 못한 것이었고. 그러나 '알고있다'고 해도 정작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서운했을 거다. 안다고 해서 다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니까. 본인이 재혼 생각이 없었다 해도 상대로부터 그 말을 듣는 건 또 다른 거니까. 서운하지만 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래 그렇지, 하면서.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서 관계가 더 깊어지고 마음도 더 깊어지면, 결국 안재욱의 마음도 바뀌지 않을까? 함께 살고 싶은 걸로? 








어제는 일어나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게 됐다. 이게 뭔 특집인지 몰라도 연속방송을 해주길래, 연속해서 세 편을 내리보았다. 교회를 갔다가 집에 돌아온 엄마는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보시고는 '너 내가 나갈때부터 이거 계속 보고있는 거냐' 하셨고, 나는 '응' 했다. '야, 너 밥은 안먹고 이거 보고 있는거냐?' 하셨고 나는 '밥은 먹었어' 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뭘하든 밥은 먹는 거니깐요. 어쨌든,


당시에 꼬박 챙겨보진 않았어도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였는데, 지금와 다시 보니 허술한 부분이 많다. 대사도 그렇고. 게다가 그 때는 완벽해보였던 삼식이가, 다시 보니 그냥 .... 한국남자더라. 삼순이 데꾸 무작정 화장실 들어가서 기습키스를 하는 것도, 어릴 때라면 두근거리며 봤을 것 같은데 하나도 안멋졌다. 게다가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여주겠다'며 오천만원짜리 수표를 찢을때는, 그 허세와 유치함, 멍청함에 뒤통수를 세게 갈겨주고 싶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 라고. 내가 그를 사랑했다면 그 순간 정나미가 떨어졌을 듯. 그래서 삼순이도 그를 포기했지만..... 음... 그런데, 삼식이가 삼순이를 안아주는 장면이 너무 좋았다. 계속계속 생각났다.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포옹은 힘이 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삼순이는 삼식이를 잊겠다며 한라산 등반을 한다. 비가 세차게 오는데도 굳이 한라산에 오른다. 자기만의 의식이다. 나라면 비 오는 한라산에 오르지 않겠지만, 어쨌든 삼순이는 그렇게 삼식이를 잊고 싶었다. 그래서 정상에 올라 그 비가 오는데 세차게 부르짖는다.



삼식아 이제 너랑은 진짜 쫑이다!!



뭐, 그렇게 말한다고 정말 마음이 깨끗하게 쫑으로 가겠느냐마는, 어쨌든 그녀는 그녀만의 의식을 치른다. 그런데 그 곳에, 삼식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비가 오는데, 삼식이가, 한라산 정상에서 삼순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식이가 삼순이를 찾아 한라산에 왔다. 삼순이는 한라산에서 삼식이를 볼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를 잊으려고 갔지만, 그 곳에서 삼식이를 본다. 여기까지만 보고 내가 일자산을 가는 바람에 그 뒷편들을 보지 못했는데, 그 뒤가 어떻게 되더라... 어쨌든, 한라산에서 만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삼식아, 내가 나의 일정을 알려줄테니 베트남에, 뉴욕에, 마이애미에, 벨기에에 먼저 가서 나를 기다려주지 않겠니?







아, 다른 얘긴데, 『아이가 다섯』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 존대를 한다. 직장에서는 남자가 팀장이고 여자가 대리인데도 하대하지 않는다. 사적으로는 연인관계인데도 서로 존대한다. 이거 너무나 좋다.


그러니까 이 페이퍼의 결론은, 

내가 주말 내내 텔레비전 앞에서 살았다는 거다.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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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2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03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5-02 1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재욱, 소유진 드라마 이야기 읽다가 생각났어요.
프렌즈의 에피소드, 기억이 당연히 안 나죠~~ 거기에 이런게 나오더라구요.

피비가 마이크와 동거를 하기로 합니다.
같이 있다가 마이크가 나 빨래하러 집에 가야돼~ 하면서 텔레비전 보다 일어서니까 피비가 아... 네가 간다니 싫다. 마이크가 나도 싫어. 그래도 가야 돼. 그럼, 가지마. 엉? 가지 마? 그래, 가지 마. 그래, 우리 같이 살면 안 가도 되겠네. (정확한 건 아니구요, 대충 이런 뜻) 그래서 동거를 하기로 합니다.

친구들은 결혼은 언제할 거냐며 피비에게 바람을 넣고, 피비는 결혼은 무슨.... 아니야~~ 하면서도 은근 기대를 갖게 되죠.
친구들이랑 짐 옮기면서 말이죠. 자연스럽게, 그냥 자연스럽게 나중에 결혼할 수도 있고~~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마이크가 정색을 하며 말합니다.
혹시, 네가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말하는데, 나는 결혼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어.
난 앞으로 결혼은 안 할 거야, 절대로.
그러니까 피비가 그래 알았어. 나도 그래. 결혼하겠다, 뭐 그런 생각은 없어.
그래도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또 혹시...
그러니까 마이크가, 아니... 내 생각은 절대 변하지 않아. 절대.

친구들은 짐을 다 옮겼는데, 낑끼대며 무거운 소파를 옮겼는데, 피비는 마이크와 살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같이 살면 결혼할수도, 싫어지면 헤어질 수도 있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는 같이 살고 싶지 않아.
마이크가 말합니다. 네 생각이 변할 수도 있잖아.
피비가 말합니다. 네 생각은 변할 것 같니?
마이크가 말합니다. 아니.
피비가 말합니다. 그럼 나도 아니야.

소유진은 서운하지만 안재욱을 배려해 맨 마지막 줄을 잘라냈고
피비는 그래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마이크와 헤어지더라구요.
피비가 참.... 대단하다... 대본이 참 좋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 이 댓글도 참 기네요. 이걸 오늘 내 페이퍼로 해줘요~~ ㅎㅎ


다락방 2016-05-03 09:49   좋아요 0 | URL
이것이 댓글이든 페이퍼이든 참 좋네요. 사람일은 모르는건데 `내 생각은 절대 변하지 않아`는 말이 안되는 것 같아요. 어쨌든 현재는 고집인거죠. 피비가 말한것처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 같이 사는 건 되게 부질없고 무의미한 것 같아요. 뭐가 됐든 한 번 해보가, 가는데까지 가보자, 했어야 그들 사이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건데 말이지요.

피비가 정말 대단하네요. 거기에서 같이 살지 않겠다, 선언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같이 살기로 결심했었다면 일단 엄청 좋아한거잖아요. 그런데 `이 놈하고 더는 안되겠구나` 하고 좋았을 때 잘라낸거잖아요. 어휴... 대단하다 ㅠㅠ


마지막 줄을 잘라낸 소유진의 마음도 알겠고, 더 마음이 깊어지기 전에 `재혼 생각 없다`고 말한 안재욱의 마음도 알겠어요. 다 알겠는데, 저는 최근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배려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제대로` 배려하는 게 아니라고요. 배려만 하다가 돌아서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사랑한다면 배려도 중요하지만 내 욕심을 말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배려만 하다가 남남되기가 더 쉬운 것 같아요...

네꼬 2016-05-0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주말 = 엘리멘트리 (<-넷플릭스여서 광고가 없다는 게 함정....)

다락방 2016-05-03 09:50   좋아요 0 | URL
엘리멘트리는 무엇인가, 검색해보았더니 미드로군요. 저는 현빈과 안재욱의 시간들... ㅎㅎ

꿈꾸는섬 2016-05-0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 TV앞에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도 어제 안재욱이 소유진에게 노래불러주는 거 봤어요.
연애할때는 그런 게 좋은건가봐요. 저도 연애할때 수화기너머 불러주던 노래소리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함께 살면서 그런 낭만은 이제 없어졌어요.ㅜㅜ

다락방 2016-05-03 09:52   좋아요 0 | URL
티비 앞에 앉으면 안되는 게, 한 번 앉으면 계속 앉아있게 돼요. 저는 제가 삼순이 세 편을 볼 줄은 정말 몰랐네요. 일자산 갈 거 아니었으면 끝까지 다 봤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어휴 사람을 그냥 바보로 만들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계속 앉아 있어요, 하염없이.... 하하하하하

연애할 때는 다 좋죠. 노래 불러주는 것도 좋고, 밥 먹는 것도 좋고, 웃는 것도 좋고... 연애니까 그런가봐요.

유월 2016-05-0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통수을 갈겨주고 싶을때쯤 삼순이가 쌍욕을 날려주는게 그 드리마의 매력이었죠 :)

다락방 2016-05-03 09:53   좋아요 0 | URL
확실히 삼순이는 삼식이에 비해서 나았어요. 삼식이는 과거의 연인을 제대로 정리도 못한채로 갈팡질팡하면서 새로운 사람에게 하염없이 흔들렸죠. 그건 둘 다에게 못할 짓인데 말예요. ㅜㅜ

건조기후 2016-05-03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브로큰 잉글리쉬의 그 줄리앙이 [연인]에 나오는 거 알았어요? ㅎㅎㅎ 필모그래피 보니까 연인 각본에도 참여하고 동생역으로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동생은 무슨 동생 제인 마치한테 동생이 있었나 하고 연인 다시 봤어요 ㅋ 처음엔 우는 얼굴이라 몰라봤는데 나중에 보니 그대로더라고요.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6-05-04 08:32   좋아요 0 | URL
아니 건조기후님도 이 영화를 보신겁니까! ㅎㅎㅎㅎ
멜빌 푸포가 연인에 나왔었다니, 건조기후님 얘기 듣고 검색해보니 오, 그렇군요! 연인은 하도 오래전에 봐서 진짜 기억도 안나요. 거기서 동생이라니...
저 지금 멜빌 푸포 필모그래피 검색하고 [로렌스 애니웨이]에 주연으로 나왔다는 거 보고서는 이거 다운 받으려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 남자 너무 좋아요. 줄리앙 좋음 ㅠㅠ 목욕탕 씬 기억나요, 건조기후님? 안고서 계속 뽀뽀해주잖아요. 애정표현을 안하고는 못견디는 남자 같아요. 좋음 ㅠㅠ

건조기후 2016-05-04 11:3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예전에 이 영화 얘기하셨을 때 봤는 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 본 거 같아서 주말에 다운받아 봤어요. 안 본 게 맞더라고요 ㅎㅎㅎ 줄리앙 멋있어요 ㅜㅜㅜㅜ 처음에 작업걸 때는 느끼하고 유치했는데 연애하는 모습은 참 따뜻하고 포근하고.. 어휴. 좋더라고요. 저도 보고 너무 좋아서 다른 영화도 보려고 하는데 보고 싶은 게 다운 안 되는 게 많네요 이런 ㅜ

다락방 2016-05-04 11:4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로맨스 영화 보고 싶었는데 다운 안되는 게 너무 많아요. 그래서 로렌스 애니웨이 보려고요. 이건 다운 되더라고요. 처음에 작업걸 때는 저는 훅 가겠더라고요. 되게 뭐라그래야하지, 세잖아요, 강하게 훅- 들어온달까. 그래서 꼼짝없이 끌려가게 만드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강한 남성 이미지. 제가 강한 남성을 또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또 막 알고보면 다정하고 ㅋㅋㅋㅋㅋ 그렇게 강하게 매혹적으로 훅 들어와서는 욕실에서 계속 뽀뽀해주는데 진짜 짱멋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연애랑 섹스 끊었는데(응?) 그 장면 보니까 끊지 말아야겠다고..의지가 흐물흐물 약해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조기후 2016-05-04 12:0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는 당신이 이상형이라면서 꼬실 때 아우 제발 그런 말 좀 하지마 라고 소리지를 뻔했어요 ㅎㅎㅎㅎㅎ 근데 그 때 진짜 멋있긴 했어요 목이 훅 파인 티셔츠에 모자 ㅜㅜㅜㅜㅜ

다락방 2016-05-04 12:10   좋아요 0 | URL
아 이렇게 얘기하다보니까 또 보고싶네요. 그리고 이 남자 나오는 로맨스 영화 또 보고 싶어요. 이 남자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또 다정한 모습을 잔뜩 보여주는 그런 영화요.

그런데 마지막에 약간 불안하기도 했어요. `나랑 한잔 더할래요?` 라고 묻잖아요. `당신은 비행기를 놓치겠지만` 이라고 말하면서요. 이 남자는 이 여자를 정말 좋아하는데, 좋아하긴 하는데, `지금 이 순간` 이라는 게 너무 강하게 느껴지는 거에요. 좀 더 미래를 얘기해줘도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욕실에서도 폭풍뽀뽀해주면서 `다른 여자가 좋아지면 헤어질 수도 있지` 라고 말하는 게 서운하더라고요. 맞는 말인데, 그래도, 뭐랄까 좀... ㅠㅠ 그렇게 다정하게 애정표현을 쉬지 못하면서 너무 현실적인 말을 했달까요. 그래서 이 남자 너무 좋긴한데 여자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의 이미지 보다는 `순간적이고 강렬한 사랑`을 할 것 같은 이미지에요. 그건 그대로 좋지만, 그래도 ㅠㅠ

건조기후 2016-05-04 12:47   좋아요 0 | URL
음 근데 저는 조금 다르게 보였어요. 지하철에서 여자를 보고 몇 마디 나누는 동안 표정이 약간 굳어 있잖아요. 그리고 막 초조하게 다리를 떨고 있는 모습이 잡혀요. 저는 그 다리 떠는 장면이 되게 좋더라고요. 처음부터 순간적인 낭만으로만 생각했다면 감정에만 충실하면 되는 거고 고민같은 것도 하지 않았을텐데, 남자는 그렇게 다리를 떨면서 앞으로 이 여자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있었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마도 결과적으로는 순간적인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오래도록 운명같은 연인으로 살 수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순간을 즐기자는 마인드는 아닌 것 같았어요..

다락방님이랑 나는 왜 다 반대죠? ㅎㅎㅎ 다른 여자가 좋아지면 헤어질 수도 있다는 말도 저는 그래서 더 좋더라고요. 오히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당신밖에 없어 영원히 당신뿐이야 그랬으면 제발 그런 말 하지말라고 진짜 소리쳤을지도 몰라요 ㅎㅎ 그렇게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도 남자는 파리에서 여자의 전화를 기다렸어요. 그런 말을 들었으면서도 여자는 남자를 찾기 위해 파리로 떠났고요. 그렇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잊지 못 하고 결국 이어지는 게 진짜잖아요.. ^^

다락방 2016-05-04 13:55   좋아요 0 | URL
크- 저 그 다리 떠는 장면 진짜 좋아해요. 남자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여자를 딱 만나고 긴장하고 초조해하는 게 다 드러나는 장면이잖아요. 저는 그 마지막장면을 전체적으로 너무나 좋아해요. 그리고 건조기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부터 `너만 영원히 사랑해` 같은 건 사실 너무 상투적이고 말도 안되는 소리고요. 저였어도 만약 `너만 영원히 사랑해`라고 한다면 `니가 지금이나 그렇지 사람 일 모르는거다` 라고 반응했을 거에요. 근데 이게 또 막상 직접적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를 들으면 되게 서운하더라고요. 다 알고 맞는 말임에도 말이에요. 그래서 참 제 마음을 저도 잘 모르겠는거죠. 왜 며칠전에 제가 [아이가 다섯] 페이퍼 썼잖아요. 거기에서 소유진도 알고 있거든요. 우리에게 재혼이 힘들거다, 이 부분은 조심해야 한다, 이거 다 알고 있었지만 막상 안재욱으로부터 `나는 재혼생각 없어요` 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너무 아픈 거죠. 그런 거에요. 알고, 맞는데, 그렇다고 내 기분까지 `응 그 말이 맞지!`이러면서 좋아지는 건 아니라는 거죠.

지하철에서의 줄리앙의 모습은 저는 정말 솔직해서 좋았어요. 우연히 만나게 된거잖아요. 예기치 못한 곳에서요.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당황한 걸로 보였거든요. 물론 좋아했던 사람이고 연락을 기다렸던 사람이니 만나서 좋은 것도 있고 떨리는 것 초조한 것도 있었겠지만, 그것 말고도 약간 신경질적인 당황스러움도 좀 있었던 걸로 보였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초조하게 막 고민하다가, 머릿속이 막 돌아가다가 가방가지고 여자 손 잡고 내릴 때는 이미 `어떻게 해야할까`에서의 답이 내려진거겠죠. 그 순간 제가 노라였다면 저 역시 기꺼이 비행기를 놓치는 쪽을 택했을 거에요. 이렇게 좋은 남자 다시 만나기 힘들테니까요. 그깟 비행기가 대숩니까...

흑흑 너무 좋아요 ㅠㅠ

건조기후 2016-05-04 15:35   좋아요 0 | URL
며칠 전에 쓰신 아이가 다섯 페이퍼가 지금 열심히 댓글 달고 있는 이 페이퍼네요 ㅎㅎㅎ
네 다락방님 말씀처럼 그런 마음도 알겠는데 제가 취향이 약간 달라서 그런가봐요. 저는 그렇게 다 아는 이야기 굳이 말로 하는 게 때로는 더 애틋해서 좋을 때가 있더라고요.
저도 마지막이 정말 좋았어요. 앞으로 어떤 관계가 될 지 알 수도 없는 남자를 보기 위해 미국에서 프랑스까지 가는 건, 그럴 수는 있지만 쉬운 일도 아니고 좀 비현실적인 일인데, 남자의 반응이 표정이 몸짓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그런 비현실적인 상황이 확 와닿더라고요..
좋네요. 영화가 좀 밍밍한 것 같으면서도 잔잔하니 좋아요.

다락방 2016-05-04 15:40   좋아요 0 | URL
이 페이퍼가 그 페이퍼였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아요. 미국에서 프랑스까지 좋아하는 남자를 찾아 간다는 게 일단 흔하지 않은데, 그것도 `서로 좋아하고 사귀는 연인사이다`라는 확신도 없이 무작정 가는 거잖아요. 그러니 가서는 그 사이에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거나 상황이 다른 식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데 그렇게 훌쩍 떠나는 게 비현실적인듯 하면서도 또 없을 것 같진 않은 일이에요. 저도 언젠가는 그래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음..

그런데 가서 전화번호를 잃어버리다니, 아아, 얼마나 날벼락같은 일입니까. 내가 여기까지 왜 왔는데...그래서 전화번호 잃어버리고 호텔 냉장고에 있던 술 꺼내서 마시고 멘붕에 빠져 퍼져있던 노라가 완전 절절하게 이해돼요.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전화번호가 없어, 나는, 이제, 어쩌지, 나는, 어째야하지.. 라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이 영화의 가장 큰 비현실성은 남자주인공의 외모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무슨 우연히 만나서 사랑에 빠졌는데 그 남자가 키도 크고 잘생기고 연하이고 나를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