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만 있는 일상이 잔인한 것처럼, 열심히 여행하는 순간만이 가득한 여행도 잔인한 것이었다.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했다. 포르투의 비 오는 일요일, 우리의 선택은 그날을 '일요일답게' 보내는 것이었다. 마트에 들어가서 볶음밥을 포장했다. 궁금했던 과자를 샀다. 할아버지가 장바구니에 담는 와인을 우리도 담았다. 이것저것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침대에 앉아 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예능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봤다. 낮술을 마셨고, 낮잠을 잤다. 보란 듯이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우리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네, 라며 낄낄거렸다. (p.83)

















저자는 아주 많은 여행을 혼자서 했고 또 아주 많은 여행을 남편과 둘이 했다. 여행이란 게 잘 맞는 파트너를 찾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남편과 함께할 수 있다니, 정말 운이 좋구나, 싶었다. 게다가 남편과 함께 하면서 저렇게 먼 여행지에서 발 동동 굴러가며 관광에 열중하지 않고 낮잠을 늘어지게 잘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좋은가. 저자가 한 달쯤 휴가를 낼 수 있는 직장에 다닌다는 게 일단 제일 부러웠고, 그 다음엔 남편이 여행의 좋은 파트너라는 것이 부러웠다.


나 역시 여행에서 분주하게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이것도 경험하고..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스타일이 아니다. 남들이 다 좋다는 관광지나 음식점에 가고 싶어하질 않는다. 그런데는 안봐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 가고 싶은 데에 가고 싶다. 움직이고 싶은 시간에 움직이고 싶다. 내게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므로, 바빠서는 안되었다.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길지 않은 날들중에라도 굳이 낮술 마시고 게으름도 피우고, 거기가 아무리 먼 곳이어도 침대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내 여행친구는 나랑 식성이 맞았으면 좋겠고, 나처럼 그냥 멍때리는 시간도 의미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고, 나처럼 그냥 하릴없이 막 걷는 걸 좋아했으면 좋겠다. 빡센 여행이 아니라 여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크- 그 먼 포르투에서 마트에 가 장을 보고 와인을 사서 낮술을 마시고 낮잠을 자고 시간을 낭비하다니!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크- 좋구먼... 낮술도 좋고 낮잠도 좋다. 작년 여름에 열흘간 집이 아닌 곳에서 생활하면서 늦게 일어나 티브이 실컷 보다가 어슬렁어슬렁 나가서 점심 먹고 들어와서 또 침대에 누워 낮잠 자다가 일어나서 저녁 먹으러 나갔던.... 게으름도 생각난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게을러도 되나'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의 저자도 아니나다를까, 불안감을 갖게 된다.




해가 저물자 어김없이 불안함이 밀려왔다. '정말 이래도 되나, 이럴 거면 왜 여기까지 왔나.' 죄책감까지 뒤엉켰다. 애써 그런 생각들을 버리려 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내가 또 나를 못살게 굴고 있었다. (p.83)



하하하하하. 게으름 피우고 싶다고 하고서는, 정작 게으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내가 이래도 될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생기다니, 사람은 넘나 웃긴 것. 그런데 내가 그러고 있다. 이렇게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해도 되나 싶어서 오후엔 올림픽공원을 걸으러 나가기도 했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아, 이렇게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강박있는 나여....


그래도 이번 여름휴가 때는 슬렁슬렁 천천히 다녀볼 생각이다. 맛있는 거나 실컷 먹고 와야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과 달리, 그때는 클림트에 열성이었다. 꼭 그의 금빛 그림을 보고 싶었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클림트의 <The Kiss> 앞에 서면 그 누구와라도 키스를 하고 싶어질 거야." 그 그림이 있는 오스트리아 빈은 내 여행 일저의 한가운데 있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때쯤이면 남자친구가 생겼을 거야. 그 남자랑 키스하지 뭐." 미술관 기행을 떠난 김에 남자친구까지 사귀고, 클림트의 <The Kiss>앞에서 첫키스를 하겠다는 꿈을 나는 꾸고 있었다. 호기롭게도. 스물한 살이었으니까.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으니까. 역시나 남자친구는 그렇게 쉽게 생기는 존재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그 그림을 현지에서 친구가 된 한국인 여자 여덟 명과 같이 보았다. (p.119-122)




하하하하하. 사람은 누구나 꿈꾸는 게 있는걸까.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반드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갈 것이고, 거기서 키스할 것이다' 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바를 언제나 입밖으로 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물아홉이 되어 뉴욕에 간다고 했을 때 '가고 싶다더니 정말로 가네'라는 말을 사람들로부터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서 키스를 하지는 못했다. 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면, 누군가 나를 보고 반하고 나도 반해서 뾰로롱~ 하고 키스를 할 줄 알았는데, 진짜, 아무도, 그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더라. 그냥...갔다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익스트림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키스를 했다는데, 그래서 뉴욕이 아름다웠다는데, 왜 나는! 나는!!!! 그래서!!



또 갈거다. 흥!!



여행을 다니면서 '다시 가보고 싶다', '또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곳이 뉴욕과 리스본이었다. 아, 싱가폴에서 마지막에 들렀던 서점이 있는 작은 마을도! 이 책, 《모든 요일의 여행》을 읽노라면, 저자의 포르투갈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특히나 리스본에 다시 가고 싶어진다. 읽는 내내 아, 시간 내서 어떻게든 리스본에 다시 다녀와야겠어, 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다시 가고 싶다. 여행 막바지에야 발견했던 그 좁은 골목 사이사이의 음식점들, 그곳들도 다시 가보고 싶고, 숙소를 나오는 순간 펼쳐진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도 다시 보고 싶다. 리스본에 갔었을 당시에도 '여기 너무 좋아, 여기서 살고 싶어, 나 여기서 살까' 라고 하자, 같이갔던 친구가 '놀러오기 너무 힘들어서 안돼' 라고 했다. 비행기 타고 진짜 오래 가야해서. '그러면 중간에 만나면 되잖아' 라고 내가 답하긴 했는데, 크- 리스본, 너무나 다시 가고 싶네. 내년 여름 휴가에 포르투갈을 다시 갈까... 다른 가고 싶은 데도 많은데, 이 책 읽었더니 리스본 생각 너무 나네.....







아, 나는 어쩌다 이렇게 자꾸만 먼 데를 찾는 사람이 되었을까. 왜 자꾸만 이렇게 먼 데를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분명 젊은 시절의 나는 이렇지 않았었는데... '뉴욕에 가고 싶다' 라는 생각만 했었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왜 가장 좋아하는 티비 프로그램이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되었을까.... 왜 그걸 보면서 술마시고 다음 여행지를 고민하는 일이 큰 즐거움이 되었을까.


지난 번에 사주를 보러 갔을 때, 내가 외국에서 살기도 하냐고 물어봤더랬다. 어릴 적부터 영어권 나라에서 몇 년간 살아보고 싶어서 물어본건데, 그 분이 대답해주시길, 가서 정착은 하지 않고, 자꾸 나간다고 했다. 자꾸 나갔다가 들어온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 맞네 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자꾸 나가려고 하고 그리고 나갔다가는 이내 들어온다고. 아...그것은 직딩이 준 운명 같은 것인가... 그러면서, 가고 싶을 때마다 가라고 했다. 여행에서 되게 좋은 기운 받고 돌아오는 사람이라며.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도 가고 싶으면 그냥 계속 가는 걸로... 할부는................끊이지 않겠구나. 인생은 여행과 할부로 이루어진 것인가?



그나저나 영어 공부 한다고 책 사놓은지 2주 째인데 그냥 사무실에 받은 그대로 있다. 이대로 2년 갈듯.... 역시 나에게 공부란.... 먼 것인가........



어제는 진짜 출근부터 퇴근까지 외근을 포함해서 빡시게 일했고 땀도 많이 흘렸다. 치과에 가서 치료도 받느라 카드를 또 할부를 긁어놔서 멘붕이 오기도 했고. 너무 지쳐서 집에 가서 치즈를 안주 삼아 데낄라를 마셨는데(응?), 뭔가 되게 몸에 좋은 거 먹고 싶은 기분이다. 점심엔 동료와 설렁탕 먹으러 가자고 말해놓았다. 뽀얀 국물에 소금도 안치고 먹으면 아주 맛있는데, 나는 설렁탕 대신 떡만두국을 주문할 예정이다. 그러면 공기밥도 나와가지고 양이 많다. 뽀얀 국에 밥 말아서 떡이랑 만두랑 다 먹어야지. 이걸로도 좀 부족한 느낌이야, 저녁에는 삼계탕을 먹으러 갈까... 그렇게 먹어줘야 어제의 지친 내가 좀 달래지지 않을까.....


아, 몸에 좋은 거 진짜 엄청나게 먹고 싶다. 많이많이. 아주 많이.




누가 그렇게 기특한 조언을 한 걸까. 어쩌다 내가 그렇게 기특하게 그 조언을 받아들인 걸까. 첫 번째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내게 누군가가 말했다. "여행의 테마를 정해. 음시이든 뭐든." 그 조언을 앞에 두고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무엇에 기꺼이 돈을 쓰고 싶은 사람일까.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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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1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22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6-07-2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싶어졌어요^^ 여행지에서 게으름 부리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죄책감 느끼는구나 해서 안심합니다. 호호^^;

다락방 2016-07-22 09:16   좋아요 0 | URL
여행지에서의 게으름은 한편 사치인 것 같잖아요. 그런 사치가 정말 너무 좋은거에요! 그러다가 죄책감 느끼고..어이구, 인간이란...
책 좋았어요. 여행과 일상에 대한 애정이 자꾸 드러나는 글이었어요. 헤헷 :)

blanca 2016-07-21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럽다... 흑..저는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 너무 너무 가고 싶어요..

다락방 2016-07-22 09:17   좋아요 0 | URL
저는 마이애미랑 벨기에 가고 싶어요. 벨기에 가서 홍합찜!! 너무 벅고 싶고요. 최근에 걸어서 세계속으로 보고는 프랑스 안시 라는 작은 마을도 가보고 싶어졌어요. 너무 예쁘더라고요! 흣.

2016-07-21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22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6-07-2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스위스에서 한달만 살아보고 싶어요. 방 하나 구해서 게으름을 피울대로 피우고 여기저기 허둥대며 돌아다니고 싶어요.....

다락방 2016-07-22 09:20   좋아요 0 | URL
저는 뉴욕에서도 살아보고 싶고요, 리스본에서도 살아보고 싶어요. 싱가포르의 작은 마을(이름이 기억 안나요 ㅠㅠ)에서도 한달간 살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살면서 그런 날이 올까요? 먼 데서 게으름피며 살아보는 일이요.

비연 2016-07-21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 가고 싶네요. 유유자적.. 가서 책읽고 자고 놀고 먹고... 아 그러고 싶어요...ㅜ

다락방 2016-07-22 09:21   좋아요 0 | URL
크- 저는 다음 주말에 떠납니다, 비연님.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많이 먹고 실컷 걷다 오겠습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2016-07-22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07-22 09:25   좋아요 0 | URL
저만 못했군요. 엉엉 ㅠㅠ

2016-07-22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07-22 09:26   좋아요 0 | URL
저도 보약 한 재 먹을까... 요즘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다 종합비타민으로 퉁쳤지만...

건조기후 2016-07-2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런 느릿한 여행이 좋아요. 여기저기 의무적으로 찍고 다니는 건 여행 아니라 또다른 노동같고. 그런 여행은 이야기듣는 것도 지루하더라고요ㅡ,ㅡ

다락방 2016-07-22 13:42   좋아요 0 | URL
자기만의 여행 스타일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자기만의 여행스타일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더 불편하기도 할거고요. 느긋한 여행이 좋습니다. 흐흣. 재촉하지 않는 여행이요.

야홍이 2016-07-25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앙시 완전 추천합니다. 작년에 스위스 출장때 스위스에 방을 못구해서 안시에서 몇일 묵었는데 ~~ 정말 너무나 환상이었어요 이런곳이 있구나 싶을정도로 아름답고 풍광이 기냥 아주 너무 좋았어요 ~~ 밤엔 더더욱 아름다웠요 거기서 찍은 사진을 볼때마다 그곳이 그리워지네요 ~ 그때는 혼자였는데 다음엔 둘이서 가고싶은곳입니다. ~~ 완전 추천 !!

다락방 2016-07-26 10:40   좋아요 0 | URL
크- 역시 좋군요! 제가 걸어서 세계속으로 에서 봤을 때 진짜 너무나 예쁘더라고요. 작고요. 그래서 며칠간 여유롭게 머무를 수 있겠구나, 머무르는 내내 참 행복하겠구나 싶었어요. 역시!! 항공편 좀 알아봐야겠네요. ㅋㅋㅋㅋ 지금 당장 갈 건 아니고 아마 당분간도 못가겠지만 ㅠㅠ
 


이 책을 읽다보니 문득 회의가 들었다. 정작 읽어야할 사람은 안읽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만 자꾸 읽는 게 아닌가... 하고. 게다가 사람은 쉽게 바뀌지도 않아서, 책을 읽는다고 해서 '아 그동안 내가 몰랐던 게 이렇게나 많았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결국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고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하고, 지금의 상황이 불평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만이 계속 관심갖는 게 아닌가 싶고... 


그렇지만, 내 남동생도 지금 자기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칭하는 경지에 이르렀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게다가 나랑 개그프로 보면서 여성혐오 심하다는 말도 하고 있고-때로는 개그니까 그냥 보자, 라고도 하지만 ㅜㅜ-, 계속계속 얘기하면 어딘가에서 작은 변화라도 일어날테니, 결국 그 변화가 점점 더 커질테니, 부지런히 읽고 쓰는 것이 나의 소임인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성차별을 주제로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스스로는 무지할 수밖에 없는 남성이 당신의 경험을 빌리고 당신에게 확인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화는 당신이 끊임없이 설명하면, 상대가 시비를 가르는 식으로 흘러가곤 합니다.


· 음……별로 안 와닿는데.

·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

· 정확한 근거가 있어?

· 난 그런 말 못 들어봤는데?

· 왜 네 주변에만 그런 일이 생겨? (p.57)



최근에 내 주변 친구의 경험을 얘기한건데도 상대는 내게 '난 그런 사람 한 번도 못봤는데?' 한 일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다고 얘기하는 내게 '난 못봤는데?' 그러면... 대화 단절..................... 그러면서 내게 일부 남성들이 여성혐오하듯이 너도 남성혐오 하는거다, 라고 하더라. 나는 맞다고 인정했다. 나는 당신같은 남성을 혐오한다.





가부장제는 경제권을 독점하고, 여성과 달리 '군대에 갈 자격이 되는' 남성의 우월성을 토대로 작동합니다. 따라서 가부장제에 반기를 든 게 아니라면 남성은 '김치녀'와 더치페이를 할 수 없습니다. 남성의 돈으로 사치를 하는 여성은 가부장제의 가공물이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에, 가부장제의 유지를 위해 남성이 전부 부담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자신의 가정을 끝까지, 군말 없이 혼자 벌어 책임져야 합니다. 남성만이 군대에 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부당함을 여성에게 토로하는 치졸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군대에 갈 수 있는 남성만 진정한 시민으로 인정을 받는 기제는 가부장제가 만들었으므로, 가부장제를 없애지 않는 한 남녀가 동등하게 군대에 갈 일은 없을 겁니다. 우월한 남성이라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남성 개인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가부장제는 남성에게 의무를 부과했고, 보상으로 권위와 특혜, 남성이 우월하다는 훈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의무가 부당하다고 외치는 남성들이 있습니다. 음? 적의 적은 친구라더니, 얼핏 들으면 이들이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인가? 하는 의아함이 생깁니다. 아, 이 사람 혹시 지금 가부장제의 폐해를 페미니스트에게 이르고 싶은건가? 싶은 것이죠. 그런데 이들의 다음 논리를 가만 들어보니 '남자가 불쌍하다', '역차별이다', 그 다음은 김치녀 공격으로 이어지는군요. 그들은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 '김치녀'가 너무 미운 모양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번지수를 잘못 짚었습니다. 더치페이를 하고 싶은 이에게 돈을 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주는 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가부장제입니다. 가부장제가 좋으면 남자답게 군말 없이 압박감을 떨쳐내고 돈을 낼 것이며, 가부장제가 싫으면 이에 반기를 들면 됩니다. 가부장제가 싫은데 맞설 용기가 없거나 귀찮다면 그냥 살아도 됩니다. 대신 그로 인한 압박감과 울분을 애꿎은 여성들 혹은 페미니스트에게 터뜨려서는 안 되겠지요. (p.52-53)



나는 데이트비용을 내가 절반 이상 부담하는 편이다(내 친구들도 그렇다). 뭐, 운이 나빴던건지 모르겠지만,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연애한 적이 없기도 했고, 내게 돈이 있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데이트는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애인이든 친구든 맛있는 걸 사준다고 하면 너무나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그 기분을 상대에게 들게 하기 위해 나 역시 그렇게 행동한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여자들이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야지' 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안다. 그 여성들은 대부분 가부장제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데이트 비용 외에도, 다른 부분에서도 가부장제의 수혜자인 남성과 비슷한 시선으로 여자들을 본다. 여성들이 옷을 야하게 입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거나, 군대도 안가면서 권리를 주장하려고 하면 안된다고 한다거나, 너무 똑똑한 여자는 남자들이 싫어한다거나 하는, 남성위주의 생각을 가진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태어나서 자라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환경속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잘못됐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편하다면, 위의 인용문처럼, 지금처럼 그냥 살면 된다. 그렇지만 나는 안그럴거다.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밥을 쉽게 얻어먹는 것 같고 군대도 가지 않고, 편해 보입니다. 자신들보다 강하고 견고한 가부장제를 공격할 수 없으니 자신들보다 약한 여성들에게 권리만 누리고 의무를 회피한다는 손쉽고 뜬금없는 비난을 토해냅니다.

그렇지만 여성이 페미니즘 운동으로 '군대에 가지 않을 권리'를 얻어냈을 리 만무합니다. 가부장제를 타파하자는 페미니즘더러, 여성을 하등시하여 여성에게 내어주지 않은 가부장제의 의무부터 따르고 권리를 주장하라는 말은 지독한 모순입니다. 여성이 징집 대상이 되지 않기를 원하는 쪽은 군대를 만든 가부장제입니다. 여성을 군대에 갈 수 없는 열등한 존재로 박제해두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열등한 존재인 여성은, 군 복무를 경험한 남성이 비춰 보며 자신감을 고취하는 거울이 됩니다. 동시에 시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얌체로,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남성의 화풀이 대상이 됩니다. 지켜달라 말한 적이 없는데 여성을 지키러 군대에 갔다 왔다고 주장하며 화를 내는 남성이 속출하는 이유가 이겁니다. 남성들은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국방부에 요구하거나 헌법 소원을 내지 않습니다. 이 문제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는 여성이었습니다. 대신, 남성은 여성을 비방하며 자심의 힘듦을 토로하는 대표 무기로 언제까지고 '군대'를 내세웁니다. 군대는 뻔뻔한 여성들이 지지 않으려 하는 힘든 짐인 동시에 여자 따위는 감히 질 수 없는 대단한 사명이라는 모순이 그들의 기반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는 걸, 남성들은 잘 아는 겁니다. 

페미니즘이 쟁취하고자 하는 권리는 기본권입니다. 밥 몇 끼 얻어먹으려고 페미니스트가 되는 이는 없습니다. 기본권은 인간이라면 당연하게 가져야 할 권리로, 무언가를 해야 주어지는 보상이 아닙니다. 페미니스트는 가부장제가 제시하는 '틀'을 거부하고 기본권을 위해 싸웁니다.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의 틀 속에서 남성들에 의해 주어지는 알량한 배당금을 누리는 데 관심이 있기는커녕, 배당금을 포함한 틀 자체를 부수고 바꾸고자 합니다. 그러니 '군대도 가지 않는 김치녀 페미니스트들이 권리만 누리고 의무를 저버린다'는 가부장제 속 남성들의 비난은 얼마나 모순적이며 무지한 것입니까? (p.54-55)



군대도 가지 않는 김치녀 페미니스트들이 권리만 누리고 의무를 저버린다, 같은 비난은 비단 남성들뿐만 아니라 개념녀 프레임에 갇힌 여성들도 하고 있다(어제 작성한 《쇼코의 미소》 페이퍼에서 기자 선배가 바로 이랬지). 개념녀라는 프레임도 제발 부수고 나와줬으면...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은 개념녀인가....



남성은 가부장제를 유지하고 싶은지, 유지하기 싫은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많은 수의 남성이 유지는 하고 싶은데 그냥 징징대고 싶었음을 인정해야 할 겁니다.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한들 설마 가부장제를 페미니스트가 만들었겠습니까? 페미니스트를 공격하는 논리로 쉽게 등장하는, '권리만 챙기고 의무를 지지 않는' 쪽이 누구인지부터 봅시다. 번지수를 잘못 짚는 불상사만 피해도 상황이 보다 명쾌해집니다. (p.56)



덧붙이는 말없이, 그냥 인용만 해도 하고 싶은 말을 거의 대부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성은 공감능력이 부족하니 여성이 알려주어야 한다'는 말은 남자는 관심과 공감을 표하는 것만으로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의미밖에는 못 됩니다. 애초에 공감을 못 하는 존재로 태어났다면 영영 못 하는 대로 살았을 텐데, 누군가가 이렇게나 노력한 끝에 결국 바뀐 걸 보면 스스로 먼저 노력 해볼 수도 있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p.32)



책으로나 영화로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합니다. 그러니 기득권이어서 몰랐다면 더더욱, 몰랐던 입장을 그들이 조금 이해했다고 바로 감동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벽인 줄 알았는데 귀가 있다니 얼마나 감동이겠냐만은, 귀가 있었는데 왜 이제 들었냐고 열 받아도 됩니다. (p.32-33)




더 어려운 게 있습니다. 바로 예쁜 말씨로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일 위험한 게 바로 이런 예쁜 헛소리입니다. (p.79-80)



이들은 참 점잖고 느긋합니다.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친 쪽'이 분개하면, 타이르기도 합니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중용을 지키며, 긍정적이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비슷한 예는 더 있습니다. 외모지상주의가 심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겠다면서 외모지상주의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왕이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게 건강에도 좋지, 학교폭력 당사자아게 아무리 그래도 친구인데 친하게 지내는 게 좋지, 청년 실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삭생이 무급 인턴으로라도 이력서를 한줄 채워보겠다는데 굳이 거기에다 한 마디 하기를, 그래도 다 네 실력을 쌓는 거고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니 좋지, 가사 분담에 무책임했으면서 내 덕에 요리실력이 늘게 된거니까 고맙게 생각해. 간단히 말하자면, 눈치가 없는 겁니다. 눈치 없이 혼자 느긋한 이유는 달리 없습니다. 느긋해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느긋한 채로 살 수 있는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이 정해져 있어서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는, 본인이 팔자가 좋다는 걸 드러내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p.80-81)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태도의 폭력이 내용의 폭력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좋게 넘어가자'며 분노하는 이들을 온화하게 타이를 수 있는 것은 그가 분노할 필요가 없는 기득권이기 때문일 뿐입니다. 기득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기득권이 설파하는 아름다운 의도는 무의미하며,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을 좀 깨닫고 예쁜 헛소리는 넣어두어야 한다는 겁니다. (p.82)



넣어둬라, 응?



여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남성을 설득하고 포용해 이해로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견디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설득이 이루어진다면야 좋겠지만, 여성의 목소리가 기득권자인 남성을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부터가 오만한 발상입니다. 여성의 목소리와 행동은 온전한 주체가 되고자 하는 몸부림이지, 다른 주체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오독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당신이 당연하게 상대를 설득해야 하고, 그때의 어조는 당연히 온화하고 이성적이어야 하고, 상대가 당신의 말을 듣는 시늉을 하면 당신은 그에게 감사하고 그를 받아들여줄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권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냈을 뿐, 당신에게 상대를 설득할 의무는 없습니다. 상대를 사랑으로 감싸야 할 의무는 더더욱 없습니다. 당신은 상대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은 당신의 마음이 내킬 때에만 행동해야 합니다. (p.86-87)




"그렇다고 꼭 '남혐'을 해야겠느냐",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 누가 질문하느냐에 따라 대답이 정확히 다릅니다.

우선 여성혐오 문제에 거의 관심을 가진 적이 없는 대다수의 남성이 묻는 거라면, 제가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은 여성혐오를 언제 알았습니까? 남성혐오 전에 알고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습니까? 만일 남성 혐오가 생겨나고서야 여성혐오의 존재를 알았다면, 그 순간 남성혐오는 목적을 달성해버리므로 유의미합니다.

지금 말하는 '남혐'이라는 현상은 작년도 메르스 사태 이후 생겨났습니다. 인터넷상에서 마치 하나의 자연스러운 문화처럼 존재해온 '김치녀'와 '된장녀'를 필두로 한 여성혐오 현상을 '미러링'하여 남성들이 여성 일반의 생활, 소비, 행동 등을 싸잡아 비난하고 재단하던 어휘를 그대로 여성이 남성에게 하는 말로 바꿔 제시한 움직임에서 비롯된 겁니다. 이것을 손쉽게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이라고 동일시하면서 '그렇게 똑같이 혐오로 맞대응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려면, 남성혐오가 생겨나기 이전에 그토록 만연했던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과 제재가 있어야 했고, 그것을 재밌다고 소비하거나 묵인 혹은 방관하는 이들에 대한 비난이 있어야 했고, 남성혐오 직전까지 여성들이 수없이 제기해온 온건하고 지적인 비판에 반응을 했어야 합니다. 여성이 더 나은 수를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남성이 '저급하고 의미 없는 수'에만 반응한 겁니다. 이런 이야기는 이미 여러 저명한 이들이 백 번 천 번 명확하게 말했으니 저는 그저 다시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남성혐오가 왜 싫습니까?

그냥 싫다거나, 다른 방식의 행동을 가르쳐주고 싶어 꺼낸 말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시도해본 사람이 아닌 이상 그는 가르침을 줄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만약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고 싶은 거라면, 온건한 방식에 참여하면 됩니다. 참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온건하게 행동하는 이들은 많이 있습니다. 설마 페미니스트가 남성혐오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오만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엔 오직 남성혐오만 보인다는 뜻이므로 남성혐오는 또 한 번 유의미해집니다. (p.112-114)




(시각이 편향됐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당신과 나, 둘 중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쪽이 당신이라는 착각이 얼마나 편향된 건지는 아십니까? (p.174)




페미니즘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당신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해도 한 번 실수하는 순간 '네가 무슨 페미니스트냐'라는 질타를 받게 됩니다. 당신의 한계부터 파악하려는 눈길이 당신에게 쏟아집니다. 노동권, 보편 인권, 동물권 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페미니즘에만 신경을 쓰면 이율배반이라는 평가도 뒤따릅니다. '이런 문제를 논하지 않고 네가 어떻게 페미니스트야?'와 같은 말로 끊임없이 당신을 검증하려 합니다. '페미니즘보다는 산적한 다른 문제에 주목해야 하지 않아?'는 더 노골적입니다. 다른 문제에도 모조리 나선 뒤에야 페미니즘을 말할 자격이 겨우 주어진다는 논리의 저변에는, 페미니즘이란 모든 문제가 해소된 뒤에야 건드려볼 법한 부차적이고 하찮은 문제라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란 성별로 발생하는 권력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일 뿐이며, 페미니스트는 그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노동문제며 동물권에 관심을 더 갖는 쪽도 어차피 이들이긴 합니다.) 페미니스트라고 모든 질문에 완벽한 대답을 내놓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분야의 권리운동에 나서서 전천후의 투사임을 입증해야 할 이유는 당연히 없습니다. (p.178-179)




책의 사이즈가 작고 무게도 가볍다. 그래서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에 너무 편했다. 세상 모든 책들이 이 사이즈, 이 무게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맨날 무거운 책들 가지고 다니느라(요 네스뵈!!!!!!!!!!!!!!!!!!!!!!!!!! 버럭!!!!!!!!!!!!!!!!!!!!!!!!!) 너무 힘들어. 이건 출퇴근길이 노동이야, 노동 ㅠㅠ 




지난 토요일에는 친구와 면세점 쇼핑을 했는데, 티파니 매장을 지나치게 됐다. 아, 나는 누가 나에게 티파니 반지 사줄 일이 없을테니, 내가 살까? 하니, 친구가 '응 들어가보자' 하더라. 아니야 무슨... 나 반지 있는데 뭐...... 그냥 내가 사서 끼기에는 너무 비싸잖아..... 하니 친구가 왜 못사냐며 이렇게 말했다.


"우정반지 할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빵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정반지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티파니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깔깔 웃으며) 좋네, 우정반지로 티파니!

- 응.

- 못할 게 뭐있어!

- 응 하면 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러고 그냥 지나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티파니 반지................ 그냥 살까? 왜냐하면 내가 지난주에 네일 받으러 샵에 갔다와가지고 지금 손이 이렇게나 예쁜 거다!!



반지 끼면 더 예쁠듯!! 음... 그렇지만......



저거 예쁘다고 반지 사서 끼면 잘 어울리고 예쁘겠지만, 네일은 지워질거고, 반지가 예쁘니까, 네일 또 하고 싶을 거고, 그런데 또 지워질거고, 또 네일 받으러 가고, 또 지워지고 또 네일 받으러 가고......................그러면 너무 돈을 많이 쓰게 되겠지..................그러니까......................애초에 반지를 안사는 게 답이겠지................... 그렇겠지..................... 반짝이는 반지를 갖고 싶네...............음.....................음...........................



네일 받을 때는 진짜 너무나 지겨운데, 이렇게 두고두고 며칠씩이나 예뻐서 기분이 넘나 좋다. 오늘도 자꾸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했다. 크- 돈이 좋긴 좋구먼.....쩝.........



우정..........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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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7-1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개님 방에서 이 책 보고나서... 으흠... 나는 2쇄때나 읽을 수 있겠군, 하고 있었는데,
다락방님 방에서 반은 읽은듯한 이 느낌 같은 느낌^^

아무개님이 인용해주었을 때도 그렇구요. 제가 제일 띵~~~ 했던 부분은요.
페미님즘의 이해 혹은 페미니즘의 논쟁과 관련해 남성들의 동의가 필요없다는 부분이예요.

우리에게는 설득할 의무가 없지요. 알아서 알아채면 좋겠지만.
아이 수학 문제 가르쳐주듯, 다정할 필요가 없다는걸, 그걸 알았어요.
책을 다 읽어본 것도 아니고, 저자 의견에 모두 다 동의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이야기는 정말 마음에 콱!! 와서 닿네요.

그나저나 네일 이뻐요~~~ 반지 끼면 더 이쁠듯해요 (우정반지 부추기는 이 부추김^^)

다락방 2016-07-21 08:20   좋아요 0 | URL
이게 조만간 서점에서도 팔 것 같은데 아무쪼록 널리 읽히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위에 제가 페이퍼에도 썼듯이, 정작 읽어야할 사람들은 관심도 없겠죠... 하아-

우리에게 설득할 의무도 없고 대답할 의무도 없다는 게 참 마음 편해지더라고요. 항상 잘 대답해줘야 겠다는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는데, 만약 제가 대답해준다면, 그건 제 `호의`였던 거에요. 이젠 제가 원할 때에만 답해야겠어요.

단발머리님이 동의할 수 없었던 작가의 생각은 어떤거에요?

2016-07-19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21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6-07-1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일 예뻐요.
악세사리 취향이 완전 확고해서 제가 사는걸 더 좋아합니다만, 반지만은 왠지 선물로 받고 싶네요..
저도 예쁜 은반지를 티파니에서 얼마전에 봤는데 ㅋㅋㅋㅋㅋㅋ

제 여성학 지식의 8할은 남자선배들이 채워주었는데, (여자선배는 한명뿐인 극한 환경 ㅠ.ㅠ) 오직 한가지만 마음에 남았어요. 내가 모르거나 불편하지 않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거나 문제가 없는건 아니라는 거죠.

저도 요즘 읽는 책이 엄청난 무게라 출근길에 가지고 나오지 못해서 엄청 진도가 느려요. 이러다 다 못읽을지도 =.=

2016-07-21 0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21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21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6-07-19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페이퍼 읽으니 울 남편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하는. 월급도 통째로 맡기고 본인은 용돈 타 쓰고, 결혼 해보니 명절이 얼마나 여성에게 불합리한 가부장제도인지 설명하면서 나중에 나는 명절 일년에 한번만 하겠다, 요즘 딸 하나 낳고 딸 둘만 있는 부모도 있는 사람도 많은데 아들 가졌단 이유로 명절때 우리집 먼저 오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명절은 한번만 하자고 하니 수긍해 주고, 직장 부서내에서도 여직원 한명 있는데 고과 좋게 줘서 과장으로 승진 시켜주면서 주변 남직원들의 댓발 나왔을 때, 여자라고 승진 못 할 이유가 뭐냐고 니네들도 잘 하면 승진 시켜 주겠다면서 불만 잠재우고. 드러내진 않지만, 상당히 진보적이란 생각이 드네요.


우리 사회가 여성 외모에 대해 이쁜 것만 찾는 건 생각해 볼 만 한 것 같아요. 제가 여성주의에 눈을 뜬 게 제임스 카메론의 에일리언과 터미네이터 영화였는데, 거기 여주인공들 시고니 위버와 린다 해밀턴의 전투적인 모습 때문이었어요. 카메론 이전에 여성을 저렇게 전투적이고 적과 싸울 수 있다는 영상 이미지를 보여 준 감독은 없었거든요. 진짜 놀라웠다는. 그 때부터 여자도 남자와 똑같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어린 나이에 들더라구요. 저 그 때 중 2~ 80년대만 해도 여주들이나 여 가수들 얼마나 이쁘게만 보일려고 했거든요. 영상이미지가 참 중요하긴 해요. 그 후 미드 보면 이쁜 여배우들보단 그 역에 맡은 여배우들에게 역을 주더라구요. 로앤 오더의 마리스카 하지테이(올리비아역)나 굿와이프의 마굴리스 보면 이쁘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드라마 보면 볼수록 진짜 적격이다 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리도 싸우면서 서서히 바꿔야할 것 같아요. 울 딸한테 오늘 넥슨이 김자경 성우 짤랐다길래 넥슨 탈퇴하라 했네요. 본인도 수긍하고~

다락방 2016-07-21 08:37   좋아요 0 | URL
명절 정말 불합리한 가부장제죠. 저는 결혼하기 싫은 이유중에 하나가 명절이거든요. 아 너무 싫어요. 지금은 명절 때면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데, 제가 결혼하고 나면 명절 때 놀러간다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별로 겪고 싶지 않아요. 그걸 불합리한 거다 생각할 수 있다니, 남편분이 정말 멋지시네요 ㅠㅠ

물론 외국도 여전히 여성혐오가 있고 비하가 있지만, 그래도 우리보다 더 빨리 눈을 뜬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이번에 넥슨 사건 보면서, 남자들이 메갈의 미러링 만으로도 이렇게 광분해서 뛴다는 게 너무나 놀랍더라고요. 그 거친 말들을 너무나 무서워해요. 서프러제트에서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하기 위해 여성들이 하다하다 안되니까 유리창에 돌던져 깼던 거 생각도 나고요. 아직 유리창에 돌던져 깬 수준도 아니고, 그저 소녀들은 왕자가 필요없다는 티셔츠 만들어 입었을 뿐인데, 그걸 가지고 광광 울면서 안돼 안돼, 이러고 성우 밥줄 끊어버리고.. 어휴.. 남자들 너무나 못났어요, 진짜. 그 와중에도 <소녀는 왕자가 필요없다>는 티셔츠 입은 어떤 남자들은 인증샷 찍어서 올리고 그래서 참 좋았어요. 어찌나 예쁘던지 ㅠㅠ

아직 갈 길이 멀죠.
아니, 거기 티셔츠 사입은 사람들이 훨씬 메갈을, 페미니즘을 잘 알텐데,
그간 여성혐오하는 모든 것들에 입닥친 남자들이 뭘 그렇게 `메갈이 어떤덴줄 알아?`, `페미니즘이 뭔줄 알아?` 이러면서 맨스플레인을 해대는건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외모는 상당히 비중이 크죠. 가수든 골프선수든 일단 후원해줄테니 성형 하고 오라고 하잖아요. 못생기면 못생겼다고 욕하고, 그래서 성형하면 성형괴물이라 욕하고.. 뭘 해도 그냥 욕먹는 것 같아요. 여전히 개그 프로에서는 못생기고 뚱뚱한 걸 비하하며 개그 소재로 쓰고요. 토할 것 같아요 진짜.

hellas 2016-07-1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말씨로 하나마나한 아무말하는 거 진짜 무익 할뿐 아니라 백해 하죠 ㅡㅡ 일단 내 기분을 엿같이 만들잖아요. 어째 하루도 조용할 날없는 여성인권후진국에 살다보니 예민해지는건 너무 당연한 수순이네요. 넥슨 보이콧합니다:(

다락방 2016-07-21 08:40   좋아요 0 | URL
진짜 욕나옵니다. 뭘 그렇게 예쁜 태도 좋아해요? 예쁜 태도로 병신 같은 말 하는 거 진짜 빡치는데 말예요. 게다가 여자에겐 예쁜 말을 더 기대하는 것 같아요. 어이구, 점잖으셔서 소라넷 같은 거 만들었나 봅니다. 너무 싫어요.

singri 2016-07-2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레오파드 읽는중인데 책이무슨 쌓은벽돌도 아니고 요네스뵈 버럭..버럭..보고 있으면 전자책이 좋은거구나 하게됨 ㅋㅋ

다락방 2016-07-21 08:41   좋아요 1 | URL
저 레오파드 사야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거워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제 좀 지침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다고 전자책은 집중이 안되고... 아아, 벽돌같은 책 들고다니며 힘들어하는 게 이번 생에서 제가 맡은 역할인가 봅니다. 흙 ㅜㅡ

moonnight 2016-07-20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다락방님 네일 예뻐요♡ 한번도 안 해 봤고 앞으로도 할 일 없겠지만 다른 사람들 예쁜 네일은 좋아요^^ 좋은 책 구경하고 갑니다.

다락방 2016-07-21 08:41   좋아요 0 | URL
할 때는 너무나 지겨운데 하고나면 예뻐서 기분이 좋아요. 얼른 다른 색깔도 해보고 싶어요. 히히히히히^^
 

토요일에는 비가 왔고, 나는 친구와 쇼핑을 하러 가기로 했기 때문에 가급적 가방을 가볍게 들고 가고 싶었다. 책 대신 스맛폰으로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자, 그러면 책 무게가 확 줄어든다, 라고 금요일 밤까지 생각했지만, 금요일부터 읽기 시작한 《쇼코의 미소》가 너무나 좋아서, 에라이, 역시 책이다, 하고는 가방을 또 무겁게 만들고 말았다. 가방에는 이미 친구에게 빌렸던 책 한 권과, 내가 빌려줄 책 한 권이 들어있던 터였다. 쓰벌...책 세 권이나 들은 가방을 들고 얼마나 걸은겨.....


그렇지만 지하철안에서 《쇼코의 미소》를 읽는 건 참 즐거운 일이었다. 소설 내용 자체가 해피해피한 내용인 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게 즐거웠던 거다. 차분한 문장들을 읽어내려가며 핑- 눈물이 고이기도 했는데, 책장을 덮은 순간, 어제 백자평에 쓴 것처럼, 작가는 자신이 되고 싶어했던 바로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사람 말이다.
















나는 소설에서 문장이 가진 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가져야 할 것이 대단한 서사라기 보다는, 어떤 이야기이든 어떻게 풀어내는데 있는지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그래서 소설이 보여주는 세상이 크지 않아도 되고 요란하지 않아도 된다. 별다른 사건이 없어도 결국 작가가 어떤 걸 보여주고 싶어하는지, 그걸 파악해내는 과정은 정말 즐겁고 의미 있으며, 결국 작가가 그 글을 통해 보여주고 하는 바가 내가 바라보는 바와 같다면, 좋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쇼코의 미소》를 읽는 건 참 즐거운 일이었다. 나는 이승우를 좋아하고 한창훈을 좋아하는데, 아, 이제 최은영을 믿고 보겠다!! 하는 마음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별 거 아닌 이야기들을, 일상의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보여주는데, 그걸 보여주는 문장들이 차분하고 우아하다. 그러나 결코 어렵지가 않아서 마음에 쏙 스며든다. 그래서 진짜 별 거 아닌 이야기가, 여자와 여자의 우정 이야기가, 엄마와 딸 사이의 지나친 배려에 대한 이야기가, 이성 친구와 영문도 모른 채 멀어진 이야기가, 마치 내 일인듯 쑤욱, 스미고 들어와 내 마음이 안타깝고 애가 타고 답답해지고, 멀어진 관계를 되돌리고 싶어지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쇼코의 미소 줄거리가 뭔데? 라고 얘기하면, 아, 너무나 별 거 아닌 것이다. 응 고등학생 때 알게 된 쇼코라는 일본인과 친구가 되어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어른이 되어 다른 모습에 실망하다가 .... 너무나 별 거 아닌, 그러나 내게도 일어나는 바로 그 일이 아닌가. 영웅도 없고 판타지도 없다. 최은영의 이야기 속엔 그저,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위에 말했듯이, 최은영은 소설 속에서 언제나 약자의 시선을 놓지 않는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글을 써주는 게 너무나 좋지만, 이런 시선을 가지고 글을 써주는 건 진짜 넘나 좋은 것 ㅠㅠ 



변리사 선배의 시선이 내 손에 머물렀다. 살구색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을 그는 찬찬히 훑었다. 못마땅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예전에는 대학생이라면 지성인이었어. 요즘 애들, 머리에 물이나 들이고 손톱칠이나 하고 대중문화에 찌들어서 지들 선배들이 이룬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도 모르지." -<먼 곳에서 온 노래>, p.196



기자 선배가 그 말에 맞장구 쳤다. 

"그러게 말이에요, 형. 우리 학교 여자애들 보셨어요? 게집애들처럼 몰려다니면서 선배보고 오빠라고 하질 않나. 우리 노래패도 단단하게 이끌어줄 남자애들이 안 들어와서 결국 이렇게 된 것 같아요. 나도 여자지만 여자애들, 뭉칠 줄도 모르고 도무지 조직이라는 걸 이해 못하잖아요." 그 말을 끝낸 기자 선배가 나를 쏘아봤다. "소은이라고 했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너도, 우리 후배라면 그런 여성적인 태도는 좀 버려야 할 것 같다? 말투도 그렇고 옷차림도 그렇고…… 나도 여자지만, 사회에 나와보면 참 융화가 안되는 여자들이 많아. 툭하면 삐지고, 불평불만에. 남자들은 안 그러거든. 우리 대학 여자들이 좋다는 게 뭐야. 제3의 성이잖아. 여자지만 다른 여자들의 열등함은 지양해야지." - <먼 곳에서 온 노래>, p.197



하아- 나는 저 기자 선배가 개념녀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남성들이, 그리고 여성들도, 지금의 젊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맞춰가며 잘 적응해나가기를 바란다. 부드러움이, 여성스러움이 죄인 것처럼 말한다. 머리에 물을 들이고, 손톱칠을 하면, 왜 안되는가. 툭하면 삐지고, 불평불만에, 남자들은 안그러거든... 이라니. 꼰대에는 남녀가 없다. 오늘 출근길에 '이민경'의 《우리에게는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책 생각도 나고.. 자, 계속 보자.



"남자 애들이 편하기야 하지. 우리 때는 후배가 마음에 안 들면 세워놓고 빠따로 두들겨 팼어. 그게 다 교육이었지." 변리사 선배가 입을 열었다.

"지랄." 미진 선배였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변리사 선배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지랄이라고 했습니다." 선배의 대답에 그때까지도 말싸움을 하던 옆옆 테이블 선배들도 우리 쪽을 보고 조용해졌다. 하, 변리사 선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디서 하늘 같은 선배한테."

"말도 못합니까." 그 말을 하는 미진 선배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미진아, 경석 형이 새내기 예뻐서 좋은 말씀 해주시는 거잖아. 형, 아시잖아요, 쟤 좀 예민한 거. 미진아, 사과드려. 경석 형께, 다른 형들께도 사과드려." 기자 선배가 미진 선배의 팔을 붙잡았다.

"이거 놓으세요." 미진 선배가 기자 선배의 손을 뿌리쳤다. "학번이 벼슬입니까? 해마다 나타나서 제일 어리고 만만한 여자애 붙잡고서 주정하는 인간도 제 선배입니까? 신경석씨, 민주주의 사랑한다고 하셨어요? 이 작은 집단에서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 위에 서야 후련한 사람이 무슨 민주주의 운운이에요. 당신 같은 사람을 차라리 독재가 편할 거야. 인간이 평등하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솔직히. 씨발, 이 더러운 꼴을 꼭 쟤한테까지 보여야 합니까? 전 이제 그러기 싫어요, 싫습니다."

"넌 항상 이렇게 감정적이었어. 그게 네 약점이고, 그거 극복 못하면 너 사회생활 못해." 기자 선배가 말했다.

"김연숙씨나 잘하세요. 여자인 게 그렇게 부끄럽고 괴로운 일이었어요? 여자들은 감정적이고, 분란 일으키고, 이기적이어서 조직 배반 하기 쉽고, 여자의 적은 여자고. 그런 자기부정이 김연숙씨가 말하는 건강함이었습니까? 여자 후배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아세요." -<먼 곳에서 온 노래>, p.198-199



때릴 수 있어서 편하다니, 저게 말이야 방구야...

마치, 열등하다는 것처럼, '넌 너무 감정이 풍부해', '넌 지나치게 감성적이야' 같은 말들을 내가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 '넌 논리가 부족해', '좀 더 이성적이 돼봐' 같은 말들을, 진짜 내가 졸라 많이 들어봤다. 나도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내가 열등한 줄 알기도 했다. 감성이 더 발달한 나는 이성이 더 발달한 다른 사람들보다 열등한가봐...하고. 하도 그런 시선으로 보고 그런 말들을 해와서. 그렇지만 몇 해전부터 스스로 깨달았다.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들은, 다 그럴만한 것들이었다고. 오히려 그런 감정들과 격한 반응들,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직관이었으며, 그것들이 여태 내 삶을 지탱해오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안다. 자기들이 이성적이며 논리적이라고 자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실제로 약자에게 개소리들을 더 많이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감정적이고 성별로 여자이지만, 내가 여자인 것이 부끄럽지 않다. 나는 쉽게 흥분하고 빡치기도 잘하지만, 이렇게 빡치는 성향으로 인해서 '아닌 것 같은'일들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그래서 그릇된 일에 대해 그걸 저지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저 단편속에서의 '미진'이 선배들의 말로 빡치지 않았다면, 그래서 저렇게 흥분해 얘기하지 않았다면, 저 모임에서는 계속 저런 일이 반복됐을 거다. 여자에게 여자인 걸 부끄러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이.


여자들이여, 빡치면 참지 말고 버럭대자!! 버럭버럭!!




작가는 자신의 소설들 속에서 이런 시선들을 놓지 않는다. <한지와 영주> 에서는, 아프리카 남자와 한국 여자가 프랑스에서 만나 친해진다. 그들은 늘상 함께 이야기나누고 그 시간을 좋아하는데, 그 먼 곳에서 인종차별에 노출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다리 위에서 "Chinese"라고 나를 부르기도 했고, 보다 과격한 사람은 "Fuck off colored!"라고 소리치고는 마시던 술병을 던지려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우리는 멀뚱히 다리 위를 쳐다봤다. 조금도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프랑스어로 욕을 했는데, 내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한지는 웃으면서 별 거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그곳에 가만히 앉아서 우리에게 그런 인종차별적인 말을 내뱉고 도망간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저들은 다리를 건너서 어디로 가나. 장을 보고 집에 가거나 술집에서 친구들을 만나겠지. 그 사람들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일 거고, 고객이나 상사 앞에서 모멸감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외모나 나이, 환경, 혹은 누군가의 편견 때문에 차별받아본 기억이 있을 테고 사랑했던 누군가에게 거절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되갚아주고 싶은 건가.

아니면 그저 누군가를 자극해서 그 반응을 보고 싶은 건가. 나는 그런 식으로밖에 자신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는 그들이 진심으로 가엾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차별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삶은 얼마나 공허한가. -<한지와 영주>,p.152



'메갈리아' 사이트에서 미러링으로 남성들에 대한 발언들을 할 때, 여자일베다, 혐오에 혐오로 맞서지 마라,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그것이 미러링이라는 걸 이해한다면, 애시당초 잘못된 것은 메갈리아가 아니라 그 전부터 존재해왔던 여성혐오라는 것을 알아챌텐데, 고작 그 거친 말들에 여자들에게 '그러는 것은 잘못되었다'라고 얼마나 많은 말들이 나왔던가. 어느날 메갈리아에 들어갔더니 누군가 그런 글을 써놓았다. '이렇게 남자들 혐오하는 거, 미러링이라고 너네도 들어보라고 하긴 하는데, 이렇게 하면서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 누군가를 혐오한다는 거, 그게 내 삶에 긍정적이진 않은 것 같다' 라는 뉘앙스의 글이었다. 그에 댓글들이 많이 달렸는데, 그 중에서는 '나도 그랬다, 그러면서 남자들은 오랜시간 허구헌날 이렇게 여성을 혐오하고 살다니, 그들의 삶은 대체 어떻게 이루어진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댓글도 있었다. <한지와 영주>의 저 문장은, 혐오를 일상으로 달고사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부분이었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차별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삶은 얼마나 공허한가. 이걸 스스로 깨닫는 자와 깨닫지 못하는 자들 사이에는 또 얼마만큼의 간극이 있을까.



<한지와 영주>에서 아프리카에서 온 남자 한지와 한국에서 온 여자 영주는 친근한 우정을 쌓는다. 사실 영주는, 그보다 더 먼 미래에 대해 혼자서 생각해보기도 했다. 아프리카로 한지를 따라 가는 일, 한지의 가족에게 인사를 나누는 일, 함께 사는 일 같은.... 그들은 매일 만나 대화와 침묵을 나누지만, 그들이 언젠가 서로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는척하지 않는다.




"넌 여기서의 시간을 잊어버릴 수가 없겠다." 한지가 내 노트를 훑어보면서 말했다. "나는 글쓰기가 어렵던데. 어떻게 이렇게 매일 기록할 수 있어? 나중에 만나게 되면 나에게 지금 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줘야 돼. 난 잘 잊으니까."

"꼭 이야기해줄게."

우리는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그런 식으로 다시 만날 것을 가정했다. 초인종만 누르면 언제고 얼굴을 볼 수 있는 옆집에 사는 것처럼,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이야기하면 슬리퍼를 끌고 놀러갈 수 있는 거리에 사는 것처럼 다시 만날 것을 가정하면서 우리가 평생을 서로 아무 관계 없이 살아가리라는 사실을 피하려고 했다.

"영주. 나는 알아.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 한지가 말했다.

"그래."

나는 내 노트 위에 나란히 놓인 '한지'와 '영주'를 바라봤다. -<한지와 영주>, p.161-162



어휴, 어젯밤에 잠들기전에 이 책을 마저 읽는데, 한지와 영주를 읽다가 한참이나 가슴이 아파 저 문장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다시 만날 것을 가정하면서 우리가 평생을 서로 아무 관계 없이 살아가리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 너도 알고 나도 알고.. 그렇지만 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 너무 마음이 아픈 거다. 안다고 해서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는 건 아는 거고 아픈 건 아픈 거니까. 깊은 밤에 이 책을 읽다가 가슴 속이 서늘해졌다.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할 수 있다면, 저 문장을 읽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난..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렇게 친근한 두 사람이 결국은 서로 아무 관계 없이 살아가리라는 사실을. 이게 너무 아프다. 그러고 싶지 않다. 아 진짜 ㅠㅠ 밤이라서 가슴 아픈 글이 아니라, 아침에도 가슴 아픈 글이야. 이 페이퍼 쓴다고 저거 적는데 또 너무 슬프다 ㅠㅠ



씨발 ㅠㅠ



나는 이제 진짜 앞으로 아무도 안만나고 아무도 안좋아하고 아무랑도 친근한 관계가 되지 않은 채로 살고 싶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인생은 어차피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현희 노래처럼, 다시 사랑하지 않을 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할아버지에게 나는 종교이고, 하나뿐인 세계야.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죽어버리고 싶어." -<쇼코의 미소>, p.13

"네가 그리웠어."
나는 쇼코가 조금 미워져서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리웠었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쇼코의 미소>,p.24)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쇼코의 미소>,p.34

"너가 어른 되면 남자고 여자고 없다. 너가 여자여서 안 된다는 소리 듣거들랑 무식한 소리구나 하구 비웃어버려. 넌 뭐든 다 되고 뭐든 다 할 수 있다. 너 땐 남자구 여자구 마음 바른 사람이 잘 살거여." -<비밀>,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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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6-07-18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러링에 발끈하는 모습들이라니... 조그맣고 예쁜 입으로(물론 그리 생각지도 않는것 같지만) 자신들을 비난하니 당혹스러운건가봐요 ㅋㅋㅋ 완전 유리알멘탈이었지 뭡니까. 이 책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되네요. 항상 즐겁게 읽는 다락방님 리뷰>_<

다락방 2016-07-19 08:0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헬라스님. 말 좀 거칠게 했다고 부르르 하다니... 소라넷 사이트 같은 것도 만들어 낄낄대는 놈들이.....고작 거친말에 부르르 하다니.... 너무나 한심하더라고요. 전 중간에서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건 나빠 하는 놈들이 더 싫어요. 이긍 짜증나.
안그래도 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다 읽었어요. 이건 잠시 후에 페이퍼 쓸게요. 군대 얘기랑 미러링 얘기랑 나오는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은 원래 다 이해하고 있던 사람들이 읽는 거 아닌가... 우리가 다 아는 얘기 하는데, 정작 이걸 읽어야 할 사람들은 아예 읽을 생각을 안하겠지... 하는 생각요... 휴.....

hellas 2016-07-19 08:14   좋아요 0 | URL
다 알고있는 자들만 죽어라 반복학습하는거죠. 슬프네요. 그래도 읽다보면 판매부수에 도움이 될것이고 이분야 책도 더 자주 출간될것이고 이런책도 세상에 존재합니다 여러분 광고도 될것이고.... 뭐 이런 나비효과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다락방 2016-07-19 11:47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읽고 회사 동료에게도 빌려줬는데, 읽는 사람도 늘어나면 그만큼 거기에 대한 언급도 많아질테고, 아무래도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야 낫겠지요. 지치지 않고 계속 앞을 보며 가야겠어요.

2016-07-18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9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9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9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9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07-19 12:27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 좀 멋지긴 한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조기후 2016-07-19 12:33   좋아요 0 | URL
그 말 취소할까... ㅎㅎㅎㅎㅎㅎㅎ

2016-08-05 0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는' 소설을 사랑한다. 그런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그렇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사랑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야기는 웅장할 필요도 없고 넓은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막 재미있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를 작품속으로 끌어들이기만 하면 된다. '내가 이 사람이라면 .. '이것만 가능하면 된다는 거다. '줌파 라히리'는 그저 집 안에 있는 여자를 그려내지만 나는 줌파 라히리가 그려내는 그 여자가 되어볼 수 있다. 함께 <지옥 천국>의 등장인물이 되어 프라납 삼촌에 대한 연정으로 속을 끓이는 거다. '에미'가 되어서 레오를 사랑했었고, '안나'가 되어서 세상의 혹독함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그런 소설이 좋다. 그런 소설을 내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흥미롭게 훅훅 넘어가고 재미있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읽긴 했지만, 소설속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되어볼 수 없다면, 그 소설을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게 내가 이승우를 좋아하는 이유고, 천명관과 장강명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재미없는 소설들도 아주 많은데 그와중에 재미있게 쓴다는 건 큰 장점이지만, 나는 그 작품이 '고발성'과 '재미'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이유로 좋아할 순 없다. 나는 더한 무엇이 필요하다. 아니면 다른 무엇이 필요하거나.


요 네스뵈는 아주 재미있게 쓰는 작가다. 게다가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더 재미있게 느낄지를 알고있는 작가다. 곳곳에 복선을 배치하는 건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흥미로운 장치이지만, 그렇지만, 요 네스뵈의 소설을 읽고나면 좀..음...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진짜 범인을 잡기 위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거다. 물론 세상은 잔인하고, 실제로 경찰들이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엄한 사람을 잡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희생이 담보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좀... 그래..... 여하튼 너무 재미있어서 어제도 늦게까지 《데빌스 스타》를 마저 다 읽고 잤지만, 요 네스뵈의 소설 특징은 내가 등장인물들 중 그 누구도 좋아할 수 없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 였다. 나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야. 다른 거좀 줘봐, 더한 것좀 줘봐! 나는 요구가 많은 독자인 것이다.



《데빌스 스타》는 '오슬로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었다. 나는 이제 한템포 쉬어가기로 했다. 정신없이 오슬로 시리즈 세 권을 내리 읽었더니 독서에 대한 열정은 활활 타올랐지만 이제 좀 차분해지고 싶달까. 다음 책은 뭐로 할까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오슬로 시리즈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좀 해본다. 엘렌이 꼭 죽었어야 했을까, 톰 볼레르의 결말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네, 올레그는 그 어린나이에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은데 괜찮았다고? 베아테는 왜 자신의 생리혈이 아닌 걸 자신의 것인줄 알고 닦았을까..같은 것들. 톰의 집에 가서 소파에 앉았는데 일어나보니 생리혈이 소파에 묻어있다. 아이고 이를 어째, 나는 아직 날짜가 아닌데.. 하며 그걸 지우는 베아테를 보니 좀 짜증이 났던게, 보통 그런 경우-소파에 묻을 정도-라면, 일단 자신의 겉옷부터 들여다봐야 하는 거 아닌가. 어? 나 생리해? 하고. 그러면 자기가 한 게 아니라는 걸 알텐데, 소파만 보고 그걸 닦고 앉았다는 게 .... 그리고 며칠전에 얼룩진 피와 지금 나온 피가 같냐... 실제로 톰은 그게 베아테의 것이 아닌 줄 알고 있고, 그 전에 찾아왔던 다른 여자의 것인 줄도 알고 있다. 그래서 베아테의 행동을 보고 웃는다. 아 빡침이..



신참형사 '베아테 뢴'을 보면서 나는 유명한 팝송 <stupid cupid>를 여러차례 떠올렸다. 이게 《프린세스 다이어리》였나, 그 영화에 삽입되어서 맨디 무어가 부르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영화속에서 등장인물이 나쁜 남자를 사랑했다가 아 이게 아니구나, 하고는 나중에 제대로된 남자를 사랑한다는, 대충 그런 내용이 나오는거다. 그런데 그런 경험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는 게 아닐까. 처음 연애라는 걸 할때, 처음 사랑이라는 걸 할 때, 우리는 그 감정에 취해 상대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크다. 그저 학교에서 인기 많은 남자애라는 것, 잘생긴 남자애라는 것 만으로도 '으아앗 이런 남자랑 사귀다니!'하면서 좋아할 수 있는 것.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남자가 아주 형편없는 나쁜 새끼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아, 내가 이런 놈을 사랑했었구나, 하게 되는 순간이. 그 다음 연애는 그보다 낫고 또 그다음 연애는 그보다 나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사귀게 된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 나쁜 사랑을 했었고, 이건 내게 떼어낼 수 없는 혹처럼 따라다니면서 나를 괴롭힌다. 내가 왜그랬을까, 왜그렇게 잘못된 선택을 했을까, 를 아직도 생각한다. 그 후에도 딱히 좋은 사랑을 했던 건 아니다. 좋은 사랑이란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차차 나아졌'지, 바로 확 좋은 연애인이 되지는 않았었다. 


베아테가 그랬다. 신참 형사로서 고참 형사인 톰 볼레르와 사귀게 되는데, 그 남자가 나쁜 남자임을 해리가 말하지만, 그러나 말하는 해리조차도 베아테의 연애에 자신이 끼어들어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있다. 톰 볼레르가 아무리 나쁜 남자여도. 베아테는 잘생긴 고참 형사 톰 볼레르의 매력을 거부하지 못한 채 그와 잠깐 사귀었지만, 이제는 그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를 안다. 그런 놈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헤어지고 나서도 두려움에 떨진 않았겠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 더 나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 저런 놈을 걸러낼 수가 있지....
















해리는 동료의 죽음을 수사하며 진실에 가깝게 다가섰고, 이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자신에게 소중한 여자 '라켈'과의 관계가 소원해진다. 라켈과의 관계를 되돌리고 싶고, 그리고 그렇게 다시 되돌려졌다고 생각한 순간의 해리와 라켈과의 대화가 참 좋다.



"괜찮지 않아……. 당신 없이는."

"그렇지 않아." 해리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끌어당겼다. "당신은 나 없이도 아주 괜찮을 거야. 문제는 나와 함께여도 괜찮냐는 거지."

"그거 질문이야?" 그녀가 속삭였다.

"생각할 시간을 줄게." (p.580)



내가 없어도 당신은 여전히 괜찮을 것을 알고, 당신이 없어도 나는 괜찮을 거라는 걸 알고, 그렇지만 우리가 함께 지내고 싶으니 함께 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보는 게, 너무 좋다. 건강한 사랑, 건강한 관계인 것 같아서 절로 흡족해진다. 우리 각자가 괜찮은 사람이라면, 함께 하면서도 크게 상대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파악하게 될테니까.



《디어 마이 프렌즈》 11화에서 나문희는 남편 신구를 두고 가출한다. 이제 편하게 살고 싶어서 남편을 두고 혼자 나가 집을 구해 거기서 늦게까지 잔다. 남편이 '이럴 거면 이혼해!'라고 하자, 두말없이 이혼서류를 내민다. 신구는 '내가 잘못한 게 도대체 뭐냐'고 나문희를 윽박 지르지만, 신구야말로 대표적인 한남충이다. 며칠에 걸려 제사 음식을 준비시킨 뒤, 여자가 제삿상 근처에 있으면 재수없다고 집 밖으로 내보내는 남자다. 물 떠오라고, 밥 차리라고, 저녁에는 칼국수를 준비하라고 하는 게 신구다. 돈을 벌면 죄다 동생들에게 갖다 바치는데, 자기 입으로 나문희에게 '나에게 가장 소중한 건 1순위가 부모고 2순위가 형제다' 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문희는 말한다.


그러니까 당신 형제들하고 살아.



반평생을 부부로 함께 살아오면서 나문희는 꼬박꼬박 가계부를 써야 했고, 뭔가를 먹을 때마다 구박을 받았다. 아이스크림 하나도 마음대로 사먹을 수가 없었고, 남편이 시키는 대로 밥상을 차려야 했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꾹 참으며 여태 견뎌왔던 건, 남편이 언젠가 약속한 세계여행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남편이 세계여행을 갈 생각이 1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늘상 아내가 챙겨주는 밥만 먹고 아내가 챙겨주는 물만 마셔왔던 신구는, 아내가 없는 집에서 밥도 해먹지 못하고 설거지도 못한다. 친구인 주현의 집에 가서 주현이 밥상이며 술상을 차리는데도 꼼짝도 안한다. 오죽하면 주현이 '밥 떠와요!' 소리를 지를 지경이라니까. 아내가 가출한 후의 신구 집은 엉망이다. 신구는 딸들에게 전화해 자기 밥을 차리라 하고, 아내의 친구이자 자신들의 초등학교 동문인 여자들에게 전화해 자기 밥을 차려내라 소리지른다. 박원숙은 신구에게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형제들 불러서 설거지 시키라'고 말하자 신구는 


"걔네들은 남자잖아!"


소리지른다. 이때 박원숙도 맞받아 소리친다.


"나는 여자야! 근데 그게 뭐!!!!!!!!!!!!!!!!!!"



아, 박원숙 언니 멋져!! ♡ 눈물이 날 정도로 멋져. 흑흑 ㅠㅠ



신구는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몰랐다.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내를 종부리듯 했다. 나는 옛날의 남자들이 신구 같았다는 것을 안다. 그런 남자들은 종종 밥상을 뒤엎기도 했다는 사실을. 아주 어릴 적에 우리 아버지도 그랬던 것 같다. 기억이 희미한데, 우리 아버지도 한 번 밥상을 엎었던 것 같다. 이게 맞는 기억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우리 아버지는 이제 설거지도 하시고 밥도 하시고 빨래도 돌리시고 청소도 하신다. 이렇게 한지 꽤 오래 되었다. 그리고 아빠랑 함께 사는 나는, 아빠든 남동생이든 그냥 두는 법이 없다. 꼭 같이 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내가 세탁기를 돌리고서는 빨래를 널 때, 내가 빨래 널테니까 아빠가 빨래 걷어서 개, 라고 한다든가, '내가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올 테니까 니가 설거지 해' 라고 한다든가. 난 곧죽어도 혼자 안한다. 트레이닝 시켜야해, 트레이닝. 남동생도 내게 말한다. 내가 걸레질 할테니까 누나가 청소기 돌려, 라고. 함께 사는 곳에서는 함께 하는 게 옳다. 그렇지만..아빠가 찌개는 좀 안끓였으면 좋겠어....... 너무 조미료만 듬뿍듬뿍 넣어 ㅠㅠ




11화에서 연하가 완에게 슬로베니아 성당의 사진을 화상전화 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잘생긴 얼굴 양쪽으로 사진을 들어올리고, 자신을 보고싶어하는 완에게 미소를 짓는데, 으윽, 너무 좋아서, 절로 엄마미소가 지어졌다. 이쁘구먼...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뿌다. 하트 뿅뿅 ♡

나도 많이 늙었구나. 그런 조인성을 보면서 '조인성 같은 남자 사귀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이구 이쁘구먼..'하는 걸 보니.... 늙었구먼..............




그리고 이건 쉬어가는 페이지.

지금 치즈퀸(http://cheesequeen.co.kr/) 에서는 '램브란트 고다치즈'가 1+1 이벤트 중.



작년 여름에 이 치즈를 처음 맛보고 너무 맛있어서 사먹어야지 사먹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드디어 며칠 전에 치즈퀸 사이트에 들어가 주문을 하려는데, 아 글쎄, 1+1인게 아닌가! 나이쓰! 으윽, 설레인다. 1년만인데 여전히 맛있을까.. 하고 먹어보니, 진짜 맛있다 ㅠㅠ 내 추천으로 친구가 사 먹고는 자신은 '짜다'고 말했다. 오늘은 회사에 가져와서 동료 두 명에게 맛보게 했는데 둘다 처음에 '짜다'고 말하더라. 그러면서 그냥 이렇게 먹기는 뭣하고 와인하고 먹어야겠다고. 그래, 이건 와인이 꼭 생각나는 맛이다. 와인하고 먹으면 진짜 기똥차다!


그러면서 나는 좀 의아했던 게, 내게 이 치즈는 '짜다' 보다 '맛있다'가 먼저 였는데, 그건 왜그런걸까.. 였다. 그래서 동료1도 '차장님 짠 거 싫어하는데 이거 괜찮으세요?' 하더라. 나는 설렁탕 집에 가면 설렁탕에 소금간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 싱거움이 너무 좋아서. 곤드레밥집에 가면 양념간장으로 비벼 먹지도 않는다. 그 심심한 맛으로 먹으려고. 찌개나 짜장면을 먹고 짜다고 생각되면 좀 불쾌해지곤 하는데, 어째서 이 짠 치즈를 '짜다'고 인식하기 보다 '맛있다'로 먼저 인식하는 걸까? 이건 무슨 차이인걸까? 모르겠네...


아무튼 한 쪽씩 먹고나서 잠시 후. 나는 계속 이게 너무 생각나. '나 하나 더 먹어야겠네, 너무 생각나' 했더니, 동료2가 '저도요, 저도 더 주세요'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른 집에 가서 와인 따라가지고 이 치즈랑 먹고 싶다. 나는 이 치즈 먹을 생각만 해도 침나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랑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요즘에 나의 노화를 실감하며 아, 이제 나도 비타민 같은 거 챙겨먹어야겠구나, 하고는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먹을 비타민을 내 돈 주고 샀다. 그리고 꼬박꼬박 챙겨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어제 오전, 내가 아침에 비타민을 먹었던가? 하고 갸웃하게 되는거다. 먹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먹었던가 아니던가......그냥 하나 또 먹을까......아니야 생각을 해보자 생각을.....하고 또 생각해도 긴가민가 한거다..음. 그러나 내가 누군가.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여자사람이 아닌가! 그래, 화장실에 가보면 알 수 있지! 움화화하핫. 나는 화장실에 가서 소변 색깔을 확인하고는  '후훗 비타민 먹었군' 하고 알 수 있었다. 아..........너무 똑똑해. 너무나 지혜로워. 지성미가 철철 넘치는 여자사람이야 ㅠ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내는 이 놀라운 능력! 차장 자리엔 그냥 올라간 게 아니야!! 깨알 지혜로 가득차있는 여자사람이야, 나는!!!!! 훌륭해, 멋져!!!!!




그나저나 어제 앞머리를 내 스스로 잘랐더니 찐따가 되었네.. 얼른 자라라, 얼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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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6-07-15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페이퍼엔 내가 다락방이랑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다 있네!!! 좋다 좋다! ♡

램브란트 치즈의 그 끝맛이 뭔지 아직도 생각이 안나요.
오늘가서 다시 먹어보겠어요. ㅋㅋ
스낵치즈(과일 견과류치즈)는 종류별로 다 먹어볼 생각이에요. 넘 맛있어!!

다락방에게 램브란트 치즈의 맛은 행복한 기억인거지?! ^^


[디마프] 에서 주현아저씨가 신구할배 화장실 사용하는거 보고 앉아서 소변보라고 했던 장면 기억나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놔. 난 그 장면이 너무 후련했어요!!
아니 똥도 앉아서 싸면서 왜 소변은 서서 싸. 온 사방으로 다 튀겨가면서.

다락방 2016-07-15 10:49   좋아요 0 | URL
주현 아저씨가 손 씻고 나오라는데도 그냥 나오잖아. 변기도 안돌리고. 뒷처리는 항상 다른 사람이 해줬던거지. 그래서 신구 아저씨 나오고나서 주현 아저씨가 샤워기로 변기 청소하잖아요. 여자친구 집에 가서 과일도 다 씻어주고. 혼자서도 이미 잘 하는 사람이라서 너무 좋았어요. 난 혼자서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참 좋아. 이게 매력 포인트가 있는데, 혼자서 잘 하는거랑, 하겠다고 말한 거 하는 사람들. 그게 너무 좋아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게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섣불리 약속도 하지 않고 맹세도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음..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새고 있네.. ㅋㅋㅋㅋㅋ

아 빨리 가서 와인 마시고 싶다. 고다치즈 썰어둔 것 꺼내고 갈릭 들어간 치즈도 썰어가지고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서, 아, 나 올리브도 있지! 올리브도 몇 개 꺼내놓고 먹어야징. 아 집에 가고 싶어 엉엉 ㅠㅠ

나는 혼자서 너무 잘지내나..하는 생각을 요즘에 해요. 혼자 놀 생각하면서도 막 신나는 걸 보면, 혼자인 게 적성에 맞는건가... ㅎㅎㅎㅎㅎ 지금도 집에 가서 혼자 와인 마실 생각하면 너무 짜릿해! >.< 걸어서 세계속으로 보면서 마실까, 비밀은 없다를 결제해서 보면서 마실까. 혼자 막 생각중.

나도 그 생각 내내 했어요. 램브란트 치즈 먹었을 때 되게 행복했어서, 그래서 내게는 행복의 맛이 짠 걸 앞서고 나오는걸까..하는 생각. 근데...그건 아닌 것 같고...그냥 맛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와 2016-07-15 10:54   좋아요 0 | URL

다락방이 같이 램브란트 치즈를 먹으면 더 맛있을라나???? ㅎㅎㅎㅎㅎㅎㅎㅎ


둘이여도 누구나 자기방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게 아닐까. ^^

다락방 2016-07-15 11:00   좋아요 0 | URL
오오, 바뀐 이미지 엄청 근사하고요!! ㅎㅎㅎ

나는 내가 너무나 혼자 잘 지내서 둘이 지낼 경우 상대를 서운하게 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요. 계속 내가 혼자 있을 공간과 시간을 나는 필요로 할텐데, 이게 상대에게 서운하면... 그러면 안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뭐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내가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치즈가 있어 행복하다!!

건조기후 2016-07-15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네스뵈의 소설은 스토리는 정말 기가 막히지만 심리적으로 공감할 부분은 별로 없는 게 저도 늘 허전해요. 톰 볼레로도 캐릭터를 조금 더 섬세하게 그려줬으면 꽤 멋진 악당이 됐을텐데 많이 아쉽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긴 이야기를 재미있게 쓸 수 있는 것도 엄청난 능력이라서 무지 존경하면서 봅니다 ㅎㅎㅎ

디마프는 나중에 시간 날 때 한꺼번에 보려고 벼르고 있어요. 난 여자야! 근데 그게 뭐! 멋지네요. 김수현 드라마에 항상 나왔던 쿨하고 멋진 중년 여자 캐릭터가 생각나요. 멋있는 고모 이모들 좋아요...

크, 저 치즈사이트에서 지금 계속 빠져나오지를 못 하고 있어요. 눈 돌아가요 어후... 몇 개 고르긴 했는데 다른 거 또 추천하실만한 것 있어요?

다락방 2016-07-15 11:23   좋아요 0 | URL
네, 되게 재미있게 읽었는데 요 네스뵈를 좋아할 순 없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작품을 다 찾아 읽긴 할 것 같고요. 재미있게 쓰는 것도 엄청난 능력이죠. 세상엔 재미없게 쓰는 사람이 훨씬 더 많으니까요. 톰 볼레르의 최후랄까, 그게 좀... 영 별로더라고요. 공감할 만한 인물이 없는 게 참 아쉬워요. 지금 생각으로는 스노우 맨도 다시 읽고 싶은데, 좀 쉬었다가 읽으려고요. 어휴, 무슨 시리즈를 이렇게 연달아 읽기는 처음이네요. ㅎㅎㅎㅎㅎ 그런데 시리즈는 잭 리처가 최고인 것 같아요. 잭 리처 시리즈 읽으면 잭 리처 사랑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해리 홀레는 사랑하게 되질 않더라고요? ㅎㅎㅎㅎㅎ 잭 리처 만세!

디마프는 요즘 시간 내서 계속 보고 있고 이제 11화까지 봤는데, 그간 여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다 보여줘서 너무나 좋아요. 그러면서 괜찮은 남자가 있다는 것도 잊지 않고 알려주고요. 그리고 이 여자들이 인생은 원래 막장이라며 다함께 소리 높여 얘기하는데, 참 좋더라고요. 보다보면 속시원한 장면이 많이 나와요. 히힛

저도 저 치즈 사이트에서 도마랑 나이프도 사려고 준비중입니다. 도마랑 나이프가 있으면 좀 더 편하게 좀 더 우아하게 즐길 수 있겠더라고요. 근데 오늘도 알라딘에서 한 박스를 주문해서..도마랑 나이프는 다음 달로 미뤄야겠어요. ㅠㅠ
건조기후님, 이 치즈도 맛있어요!

http://cheesequeen.co.kr/goods/view?no=1277

이것도 드셔보세요. 이히히히히. 램브란트도 드셔보시고, 이것도 드셔보세요. 건조기후님 와인 좋아하세요? 램브란트는 진짜 딱 와인 안주거든요. 먹자마자 와인 생각이 엄청 쓰나미로 밀려와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나중에 드셔보시고 어땠는지 알려주세요! 아 설레어요.. >.<

건조기후 2016-07-15 11:43   좋아요 0 | URL
오, 이 치즈 벌써 담아놨어요! 갈릭은 무조건무조건이니까요 ㅎ 그런데 세일되는 건 품절이네요..
도마랑 나이프.. 나이프는 이해가 되는데 도마는 왜 이렇게 웃기지 ㅎㅎㅎㅎㅎ 접시에다 바로 썰면 편할 것 같은데... 음. 어쨌든 치즈 고르고 있으니 행복하네요 ㅋㅋㅋ 술은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와인이랑 먹어볼게요. 저도 신나고 설레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6-07-15 11:53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 신기한 게 치즈 고르고 또 치즈가 배송되어 오고 그걸 먹는데... 행복하더라고요? 참,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구먼... 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은 출근할 때 잘라둔 치즈 몇 조각 가져왔었거든요. 방금전까지 다 먹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삶은.. 먹는 것인가... ㅎㅎ
건조기후님도 맛있게 드세요! 네 시 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바로 배송된대요! >.<

건조기후 2016-07-15 13:32   좋아요 0 | URL
주문했네요 ㅋㅋㅋㅋㅋ 칼이 제일 비싸요 배보다 배꼽이 더 ㅋ
치즈치즈한 행복한 주말을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락방님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6-07-15 13:41   좋아요 0 | URL
어떤 치즈가 어떠한 느낌을 줬는지 감상도 꼭 들려주세요. 아 맞다. 치즈 칼로 치즈 썰어서 먹기전에 인증샷 한 방 보내줘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조기후 2016-07-15 14:0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다락방님 너무 웃겨요 ㅋㅋㅋㅋㅋ

보물선 2016-07-16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우맨>만 보고 다 사놓고 모셔두고 있네요.

다락방 2016-07-17 23:21   좋아요 0 | URL
저는 스노우맨 팔아버렸는데;; 다시 사서 읽어볼까 생각해요 ㅋㅋㅋㅋㅋ
 















바로 전편인 《레드 브레스트》에서 해리는 '랄케'에게 첫 눈에 반한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웃음소리에 반한다.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웃음소리를 좋아한다면, 저 웃음소리를 듣기 위해서 무언가 하고 싶어진다면, 그건 상대를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녀와 함께 더 있고 싶고 또 만나고 싶다. 데이트 신청도 했었다. 


《네메시스》에서도 해리의 그 마음은 여전하다. 라켈에 대한 마음. 라켈을 사랑하는 마음.



"방금 세 번이나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것도 이웃사람이 보는 앞에서. 남자에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

라켈이 웃음을 터뜨렸다. 해리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좋았다. 처음 들은 순간부터. 저 소리를 자주 들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기왕이면 매일 듣고 싶은 웃음소리였다. (p.46)



크- 누군가의 목소리를 매일 듣고 싶어한다는 거, 아 진짜 좋지 않은가. 상대의 웃음소리가 좋다면, 그건 진짜 영낙없이 상대를 사랑한다는 거다. 이건 뭐 말이 필요없다니까. 그래서 그 사람을 자꾸자꾸 웃게 해주고 싶은 거.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라켈의 웃음소리를 좋아하는 해리가 좋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꽉 차오르는 건, 살면서 그렇게 자주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좋다, 저 사람을 매일 웃게 해주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사람도 자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을 잡으면, 최선을 다해 그 사람의 옆에 있을 수 있도록 애를 써야 한다. 그런데, 해리야... 하아.



해리의 전(前)여친 '안나'가 오만년만에 해리에게 전화를 한다. 그래서 잠깐 만났었고, 작별의 키스를 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라고 해리는 생각하지만, 또 만나기로 한 약속 앞에 해리는 흔들린다. 음.. 안만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한다. 라켈 생각이 자꾸 나서. 그래서 해리는 망설이다가 안나에게 전화를 한다. 나는 오늘 너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고 하려고.



해리도 자신이 얼마나 횡설수설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중요한 건 해야 할 말을 하고 전화를 끊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저기, 안나.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한 약속 말이야……."

"유치하게 굴지 마, 해리!"

"유치하게?"

"난 지금 21세기가 시작된 이후로 최고의 카레를 만드는 중이라고. 혹시라도 내가 널 유혹할까 걱정이라면 실망하게 될 거야. 난 그저 너와 한두 시간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뿐이야. 추억에 잠기려는 것뿐이라고. 몇 가지 오해도 풀고. 아니면 그저 한바탕 웃어도 좋고. 일본산 고추는 샀어?"

"아, 응."

"잘했어. 8시 정각이야."

"음……."

"이따 봐."

해리는 우두커니 서서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p.96-97)



아...나는 해리가 단호하게 안나에게 '노'를 말하길 원했다. 저 장면을 읽으면서, 안돼 해리, 너는 라켈을 사랑해, 거기 가지마, 진짜 간절한 마음으로 바랐다. 게다가 해리는 라켈에게 안나를 만난다고 말하지 않았다. 라켈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까지 그를 짓누른다. 그러니까 애초에 가지를 말거나, 앗싸리 '나 전여친을 만나기로 했어' 라고 말을 했어야지! 너 진짜 어쩌려고 그래!


아, 해리를 보는데 진짜 나를 보는 것 같아가지고. 이미 지난 일이지만, 그러니까 나 역시 전남친을 만나러 가면서 그걸 말하지 않아가지고 애인이 화를 냈던 적이 있다. 으... 힘든 시간이었지. 아무사이도 아니고, 그저 잠깐 밥이나 먹고 들어올 거여서, 딱히 뭐 이걸 말하냐 싶었던건데, 아무 사이도 아니고 그저 잠깐 밥이나 먹고 들어올거였으니 말을 했어야 되는 거였다. 말하지 않으니까 일이 커져버려가지고............... 인생 ....................... 연애란 .............................역시 짝사랑이 짱이야! 윤여정 만세!! 나도 짝사랑이나 해야겠다. 짝사랑이 속편하다. 막 남자들 만나고 다녀도 아무도 뭐라 안하고 언제 어디에 가도 자유롭잖아. 그러면서 내 마음은 사랑을 계속하는거지. 역시 짝사랑 만세야!!! 


아 다시 해리 얘기로 돌아가서,

해리는 안나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안나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에 대해서, 안나를 만나고 왔다는 사실에 대해서 라켈에게 말하지 않는다. 하아, 해리야, 라켈을 매일 웃게하고 싶다면서, 매일 웃음 소리를 듣고싶다면서, 그런데 전여친을 만나러 가면 어떡하니. 게다가, 말하지 않고 전여친 만나러 갔는데.... 문제가 너무나 커져버렸잖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애초에 말했으면 그 다음도 편했을텐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사람이 늘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번 거짓말을 시작하면 그 거짓말은 자꾸 거짓말을 만들게 되니까. 반면 사실만을 말하면, 언제나 어디서나 같은 대답을 할 수가 있다. 머리를 굴리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거니까 한결같은 답을 할 수가 있는거다. 


전(前)애인은 가급적 만나지 말고, 만나러 갈거라면 현재의 애인에게 말하고 갑시다.  


해리가 안나를 만나러 가서 너무나 속상했다. 내 애인도 아닌데 내가 속상해. 나 말고 다른 여자 만나지 말란 말이야! 라고 울부짖고 싶은 심정이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너무 속상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톰 볼레르의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져서 내친김에 계속 읽어보자고 어제는 《데빌스 스타》를 주문했다. 으윽 톰 볼레르, 어떻게 되나 보자. 《스노우맨》은 하도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거기서 해리가 전(前)아내를 구하는 장면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라켈하고.. 헤어지는건가... 헤어질 줄 알면서도 나는 지금 그들의 연애 얘기에 귀를 쫑긋하고 있는건가. 연애는 뭔가, 인생은 뭔가... 헤어질건데 왜 사귀는걸까..... 라지만, 모든 헤어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마도, 시간을 돌려도 역시 같은 선택을 할거라는 대답을 하게 될 것 같다. 해리야, 라켈하고 헤어지지마...ㅠㅠ



나는 트위터를 하는 게 너무 좋은데, 거기에 똑똑한 언니들이 너무 많아서 좋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좋고 잘못 알았던 것을 바로 잡게 되는 것도 너무 좋다. 다른 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도 트위터의 내 타임라인을 보면 가능해진다. 그런데 얼마전에는 글쎄 누군가가, 구몬을 한다는 트윗을 작성한 거다. 오!!! 오!!!! 오!!!!!!!!!!!!!!!!!


나는 구몬이든 뭐든 학습지는 당연히 아이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인지, 성인이 구몬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1도 안해봤는데, 그 트윗을 보자마자 진짜 신세계가 열린 기분이었다. 그 사람은 영어랑 일어랑 중국어를 다 하는건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일어가 밀려서 엄청 숙제하고 있다 라고 썼다. 오만년전에 잠깐 학습지 선생으로 2주간 일한 경험으로 보건데, 이런 방문학습지는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 할수가 있다. 아아, 불어랑 독어랑 스페인어가 있다면, 오오, 나도 해보고 싶다! 라고 생각하다가, 앗! 하고 벼락 같은 깨달음. 엄마!!!!!!!!!!!!!!!!!!


엄마는 몇해전부터 영어 공부를 하고싶다고 생각하고 계셨고, 그래서 내가 몇 해전에 단어책을 사드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집에서 혼자 책을 보고 공부하는 게 쉽지 않고, 일단 영어로 쓰여진 것들을 읽는 것이 가능해야 단어 외우는 것도 효과가 있을테니, 나는 구청에서 하는 문화센터나 야간학교는 어떨까 생각해서 가끔 엄마랑 얘기해보고는 다음에, 다음에, 했던 거다. 그런데 구몬이라니!! 마침 칠 살 조카는 한글나라 선생님과 한글을 공부하고 있으니, 엄마도 그런 식으로 영어를 알파벳부터 차례대로 하면 좋지 않을까?? 


아침에 이 생각이 나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일어났어? 응. 

나는 엄마에게 칠 살 조카가 하듯이 그런 방식으로 영어공부를 하면 어떨까 물었다. 엄마, 내가 돈은 내줄게, 그렇게 해보는 거 어때? 하고. 그거 기초부터 시작할 수 있으니까 엄마가 공부하기에도 부담 없지 않을까? 하고. 엄마는 반기시며 '좋은 생각이다!' 하셨다. 그러면서 좀 생각해보시겠다고 했다. 저녁에 여동생과도 의논해보겠다고. 

응, 엄마, 여러가지로 좋을 것 같아. 정해진 시간에 학원 가서 앉아 있을 필요도 없고, 잠깐 동안 선생님 만나고 숙제 하면 되고, 엄마가 그거 하는 거 보면서 조카도 '할머니도 이렇게 공부하네' 할 수도 있고, 여러가지로 좋을 것 같아, 하고 부추겼다. 히힛. 엄마가 하게 됐으면 좋겠는데, 공부를 싫어하는 내 입장에서 공부를 하라고 막 강요할 수도 없으니, 엄마의 대답을 기다려봐야겠다. 아 설레인다. 나는 내가 공부를 못해서 그런지 누가 공부한다고 하면 너무나 응원해주고 싶어진다. 응 공부해, 하고 막 응원하고 싶어져. 엄마가 영어 공부를 시작해서 새로운 단어를 맞닥뜨렸을 때 읽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그 과정이 얼마나 신날까. 


나는 알파벳도 모르는채로 중학교에 진학했다. 내게 영어는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를 미친듯이 외워 쪽지시험은 다 맞았지만 내게 영어는 늘 아슬아슬했다. 과외를 시작하고 온 아이들이 영어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대답하는 걸 보면 위축됐었다. 국민학교때의 나는 전교에서 모르는 아이가 없을 정도로 공부도 잘하고 예쁘고 인기도 많은 아이었는데(응??), 중학교에 들어와서 영어시간엔 바보가 된 것 같아 너무 기가 죽는 거다. 그래서 '난 영어 못하는 애' 하고 내가 나를 포기하고 수업시간에도 딴짓만 했었는데, 1학년 2학기에 바뀐 영어선생님이 장국영의 <TO YOU>를 들려주기 시작하면서 오오, 이것은 뭐지, 하고 흥미가 생겼고,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외삼촌이 나를 붙들고 앉아 발음기호를 알려주면서 신세계가 열리기 시작했다. 알지 못하는 단어를 읽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나서 사전을 아무데나 펼치고 단어들을 읽어보곤 했다. 그때부터 영어가 너무 재미있어서 닥치는대로 팝송을 외우고 해석하고 해서, 듣기평가도 늘 다맞고 수능에서도 영어 점수가 제일 높았더랬다. 뭘 알게되면 알기 시작할 때가 얼마나 좋던가. 게다가 좋아서 공부를 하니 칭찬도 쏟아진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의 담임은 영어선생님이었는데, 수능기출문제집을 다같이 풀어보던 시간, 번호대로 걸려서 내게 지문을 읽고 해석하게 시켰더랬다. 학급의 많은 아이들은 답안지를 보고 옆에 해석을 적어놨었는데, 훗, 내게는 우스운 이야기... 나는 그냥 읽고 해석했다. 그리고 정답은 뭐입니다, 하고 말하니, 선생님이 갑자기 "락방아" 부르신다. "네?" 하니, 그 조용한 수업시간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 영어선생님 해라. 발음과 해석이 퍼펙트해. 어쩜 그렇게 잘하냐?" 라고 폭풍칭찬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시간이었다.

좋은 시절이었지.


그러다 대학 원서 쓸 때, '넌 성적이 안되니까 영어 본고사 보는 데로 원서 넣고 영어 본고사 보자, 너 영어 본고사 점수로 대학가야 해' 하셨더랬는데 ....................................

그런 내가 어쩌다 지금의 영어병신이 되었나..................................

대학이 망친 거야 나를...대학이 망쳤어............................



아무튼 공부를 막 시작해서 점점 더 많이 보이게 되는 그 기쁨을 엄마가 알게 됐으면 좋겠는데, 나 역시 방통대 편입했다 자퇴한 경험이 있는 관계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강요할 수가 없다. 아 갑자기 생각나네. 엄마, 중,고등학교때 학습지 비싼 돈 주고 시켜줬는데 하나도 안하고 밀려서 미안해....없는 돈에 내가 졸라서 에이플러스 시켜줬는데...... 깨끗하게 쌓아둬서 정말 미안해.....................대신 내가 이제 엄마 공부 시켜줄게..... 엄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음.. 근데 나는 해리가 전여친 만난 거 너무 속상해서 읽다가 책장까지 덮을 정도였는데, 아니, 그 얘기 쓰려다가 왜 잘나갔던 과거 얘기를 쓰게 됐지? 참 사람이 쓸데없는 게 과거자랑인데... 쩝.....

그나저나 구몬에 스페인어 있는지 검색해봐야겠다.



어제 저녁엔 너무 더워서 퇴근길에 아빠를 불러 이남장 설렁탕 가서 설렁탕 한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나는 다이어트 중이니까(응?) 좀 남기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 괜찮아, 더우니까, 기운 빠지면 안돼, 잘 먹어야 해, 하고는 집에 돌아갔는데, 왜 금세 또 허해지는 거지... 외로워서... 허한건가....아니면 소화력이 너무 왕성한건가.......이남장이 양이 적나........왜징........ 아빠가 사둔 도넛츠를 먹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래서 도넛츠 앞에서 벗어났다. 냉장고를 열어 토마토를 꺼내서 폭풍흡입을 했는데, 휴, 어제 도넛츠 먹고 잤으면 오늘 아침에 후회했을 거야.


아무튼, 짝사랑이 좋고 공부가 좋다.










"약에 취해서 그런 건 아닐까요? 평상시에는 정상인 사람이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공격성이 증가하는 약물은 없나요?"
에우네는 고개를 저었다. "약물은 잠재해 있던 성향을 더 두드러지게 하거나 약화시킬 뿐일세. 술에 취해 아내를 죽이는 작자는 평소에도 아내를 구타하는 성향이 있지."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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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7-12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구몬을, 저도 함 고민해봐야겠네요.
영어부터 (응?) ㅋㅋㅋㅋ

다락방 2016-07-12 10:23   좋아요 0 | URL
저는 다른 외국어 있으면 기초부터 천천히 시작해보고 싶은데 제가 별로 흥미없는 일어랑 중국어만 있네요. ㅎㅎ
영어는 제가 어제 교재를 주문했으므로 일단 제가 생각한 방식으로 공부 좀 해보고 결정해야겠어요. 히히.

비연 2016-07-1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이 망친 거야 나를...대학이 망쳤어............................
... 락방님 죄송. 이 대목에서.. 뿜었슴다...^^;;

다락방 2016-07-12 10:43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흐
뿜으셨다니 기쁩니다! 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16-07-1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좋은 시간이었다.
좋은 시절이었지.

여기에서 감동의 물결~~~~
다시 시작해요~ 어머님이랑 같이 함께^^

다락방 2016-07-12 11:24   좋아요 0 | URL
네,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제가 워낙 공부를 싫어해서 ㅎㅎ
엄마라도... ㅋㅋㅋㅋㅋ
화이팅!!

건조기후 2016-07-12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어제 `랄케`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스노우맨 촬영현장 사진 찾아다니다 잊어 먹었네요 ㅎㅎ 받침 위치만 달라졌는데 느낌이 정말 신기할 정도로 달랐어요!

스노우맨에서 라켈을 구해요. 해리는 결혼한 적도 없는데 왜 전처를 구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대체 이 책 볼 때 무슨 책이랑 같이 본 겁니까 ㅎㅎㅎ 라켈 구하던 장면 진짜 스릴넘치고 예술이었는데 어휴.. 지금도 막 숨이 차올라요.

오, 구몬 괜찮네요. 저는 독일어를 배우고 싶은데 독일어는 없나봐요. 영어도 그렇고 독일어도 맨날 생각만.. 항상 모든 물적 심적ㅋ 환경이 완벽하게 갖춰지고 나서 시작하려고 하니 아무 것도 못 하고 시간만 가네요. 조금이라도 뭐라도 하면 될텐데 늘 마음만 먹다가 이 꼬라지에요. 그만 좀 벗어나자 벗어나 ㅎ

다락방 2016-07-12 13:25   좋아요 0 | URL
아 뭔가 이혼한 전처 구하는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스노우맨이 아닌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 뭘 본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스노우맨 다시 읽어야겠네요 젠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구몬 괜찮은데 영어,일어,중국어 밖에 없더라고요. 저도 스페인어나 불어 독어 있으면 도전해보고 싶은데 말이지요. 가장 기본적인 단계부터 천천히 말이지요. 쩝... 아무튼 엄마가 구몬 하기로 결정했으면 좋겠어요. 배움의 기쁨은 크잖아요. 공부하긴 싫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데빌스 스타 도착할 거에요. 기다리고 있어요. 내친김에 오슬로 시리즈 고고. 톰 볼레르 어떻게 되나 보고 싶어서 미치겠어요. 오슬로 시리즈 나중에 마저 읽을까 싶었는데, 데빌스 스타 백자평 보니 많은 사람들이 톰 볼레르 얘기를 하길래, 아 안되겠다 지금 봐야겠다 하고 어제 주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문하는 김에 5만원 이상 주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벗어나자 벗어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조기후 2016-07-12 13:4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우린 왜 이렇게 벗어날 게 많은 거죠 ㅋㅋㅋㅋㅋ 벗어날 거 많은 인생에서 좀 벗어나자 벗어나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6-07-12 13:47   좋아요 0 | URL
벗어나자 벗어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생의 굴레........ 자유로워 집시다! 히히히히히

singri 2016-07-12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우맨 읽어야되는데 글보니 막막 읽고 싶네요 ㅋㅋㅋ 전 레드브레스트 읽어서 막 입이 간질간질해요 ㅎㅎ흐

다락방 2016-07-12 14:52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레드 브레스트랑 네메시스 다 읽었고요. 데빌스 스타가 지금 제게로 오고 있습니다. 움화화핫. 그런데 스노우맨 다시 읽고 싶어서 중고 검색하고 있는데 알라딘 중고는 없네요. ㅠㅠ

singri 2016-07-12 14:58   좋아요 0 | URL
아 데빌스스타 ㅡ
얼마전에 샘으로 봤었어요. 전자책이 눈에 잘 안 익는데 이렇게 재밌는거 팍팍 읽어져서 한번씩 보게되요.

다락방 2016-07-12 15:16   좋아요 0 | URL
오와- 이거 분량도 상당한데 전자책으로 보셨단 말입니까?
저 너무 궁금해요! 톰 볼레르, 넌 어떻게 되는거냣!

루쉰P 2016-07-1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영어 병신 ㅋㅋㅋ 이거 정말 와닿아요. 이거 비밍인데요. 저 시험에 영어를 못 넘어서 지금 자꾸 헤매고 있어요. 아~~ 저는 장국영 같은 그런 영어적 만남이 안 올까요...외우고 또 외워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정말 영어병신이 남 일이 아니에요. 학원도 다니고 개인과외도 20만원이나 들여서 했는데, 그 선생은 별로 의욕이 없어서...하지만 뭔가 감은 잡았거든요. 매일 단어 외우고, 문법 외우고 그게 참 힘들어요.

영어를 못하면 인생의 패배자가 된다던데...사실 영어 원서로 읽고 싶은 책도 많거든요...

영어병신 ㅋ 왜이리 웃기지....전 영어 고자에요....

다락방 2016-07-13 11:17   좋아요 0 | URL
영어를 못한다고 인생의 패배자가 되지는 않을겁니다, 루쉰님. 저는 영어를 못하지만 패배자가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영어를 잘 할 수 있다면 볼 수 있는 세상이 더 넓어지는 건 분명한 사실이죠.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확률도 더 커지고요. 그러니 영어를 잘하는 건 매우 유리합니다. 유리한 걸 떠나서, 일단 읽고 싶은 원서를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ㅠㅠ

계속해봅시다, 영어공부. 영어 천재가 되도록 힘써봅시다 ㅠㅠㅠ

야홍이 2016-07-18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몬지 모를 이공감대~~ 영어병신 ㅋㅋㅋㅋㅋ 진짜 웃겼어요 그리고 이 헤매이는 글의 전개속에 마무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집중력도 ㅋㅋㅋ 언제나 잼있네요 ㅋㅋㅋ
그리고 그 짝사랑은 너무 가슴아픈관계로 패슈~ 네메시스는 읽는걸로 결정 !! 저도 읽으면서 주인공이랑 이야기 하고 싶네요 ~~ 안돼!!!

다락방 2016-07-18 10:50   좋아요 0 | URL
많은 사람들이 영어에 대해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나봐요. ㅎㅎ 잘하고 싶은데 못하고 잘하고싶은데 하기는 싫고... 크-
제자리로 돌아오는 집중력, 이라니. 오! 제가 미처 저에 대해 몰랐던 면이네요. 저는 이렇게 저의 몰랐던 점에 대해 누군가 얘기해주는 게 엄청 좋아요. 히힛.
네메시스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거에요. 해리한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다고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