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란 자유의 불가능성을 인식하는 곳에서만 존재하는 그 무엇이고, 그것은 불쾌감을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사막에서만 자유롭고 사유하며 불쾌하다.  

아기가 엄마에게서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불쾌도 쾌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구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가 처음 엄마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할 때 아이는 불쾌감과 함께 자기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불쾌감과 함께 자기 의식이 형성된다는 점에 주목하자.

아이는 엄마로부터 분리된 후 불쾌와 쾌적을 구분하게 된다. '나'라는 의식은 불쾌와 연관되고 '나'라는 의식이 얕아질 때 쾌적과 연관된다. 부모가 아이의 요구를 충분히 들어주는 상황에서 아이는 자기 의식이 옅은 쾌적상태에 놓이게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 아이는 불쾌의 '나'를 의식하게 된다. 또한 '불쾌의 나'를 의식하게 되는 때는 부모가 전지전능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때 인생이란 것에 묻는 아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개 이것은 4-5세 경이라고 한다)

아이가 또래집단에 귀속되기 시작하면 이런 '불쾌 상태'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생긴다. 대체로 이런 과정은 커가면서 공동체에 귀속되거나 이탈하면서 반복될 것이다. 이것을 역사적으로 적용시켜 본다면 '근대성'이란 것은 '불쾌'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삶과 일체화되었던 앎을 분리시켜 삶이나 세계를 상대화시켜 보는 태도는 불쾌를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서구 근대 자본주의의 윤리를 금욕과 축적의 역설적 연관으로 보는 베버의 사고방식도 이와 유사하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쾌적함과는 상관없다. 그것은 공동체로부터의 망명자, 추방자의 사고다. 사유함은 불쾌함과 연관된 것이다. 파문당한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나는 생각하면서 존재한다"라고 풀었다. 좀 바꾸면 '나'는 불쾌하면 존재하는 것이다. 아기의 자기 의식이 불쾌와 연관되듯이 사유하는 존재의 증거 역시 불쾌와 연관이 있다.

인간의 자의식(혹은 반성능력)이란 것은 왜 생긴 것일까? 인간 정신은 진화의 최고단계라는 거창한 주장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간이 다른 생물에 비해 자연에 부적합한 상태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자연에 최적의 적응을 달성한 결과로 지능과 반성능력이 생긴 것이 아니라, 자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자연에 대한 부적응 상태로 인해 불쾌에 지속적으로 휩싸여있다보니 어느 순간 "내가 도대체 왜 이곳에 있는가?"라는 의식이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식이 확장하다보니 지옥도 만들고 천국도 만들지 않았을까? 지옥은 이 부적응 상태보다 더 나쁜 상태에 대한 상상이고 천국은 더 나은 상태에 대한 상상이란 식으로 말이다.

이른바 '유기체적 사유'라느니 '동양적/전일적 사유'라느니 하는 것들은 언제나 쾌적한 상태를 꿈꾼다. 주체(나)가 없으면 불쾌도 없다. 이 속에서 자유란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여 안빈낙도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피에르 상소류의 서구발 유유자적주의는 근대의 불쾌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그것이 대항하고 있는 것은 불쾌와 축적이 역설적으로 뒤엉켜있는 서구자본주의다. 그들은 축적을 포기함으로써 그것과 함께 뒤얽혀있는 불쾌를 거둬내려 한다. 불쾌가 자유와 결합된 문제라는 것을 동양 풍의 '자유' 개념으로 해소하려한다. 분리되었던 앎(주체, 의식, 존재자)은 삶(자연, 분수, 존재)에 다시 결합되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언제나 실패할 것이 뻔하며 그 좌절감이 엉뚱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나치즘이나 황도주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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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8-1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가 엄마에게서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불쾌도 쾌적도 존재하지 않는다..여기서의 쾌 불쾌는 생리적 관점에서 쾌 불쾌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싫어한다는 것의 의사 표현으로서의 쾌 불쾌를 말하는 거예요 ??
'나'는 불쾌하면 존재하는 것이다...부분을 보면 인간의 회의적인 자세를 자의식-반성능력-이라고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만...자의식-반성능력-과 일반적으로 말하는 죄의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간달프 2004-08-16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리적일수도 있고 표현적인 것일수도 있겠죠.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냥 흡수하다가 쉬고 흡수하다가 쉬고 하는 반복적인 상태만 지속되는 것 아닐런지요? 일케 생각해요. 쾌는 불쾌에 수반되어 초래된 것이라고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생리적/표현적이라기 보다는 논리적인 것이라고 보고 싶네요.

제가 '자의식'이나 '반성능력'이란 말을 쓴 것이 적절했는지 자신없네요. '죄의식'이라... 그것과는 좀 다를 듯 하네요. 죄의식이란 아마 나의 소속 공동체와 연관이 있겠죠. 그 공동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코드에 어긋날 때 발생하는 것이겠죠. 제가 여기서 불쾌와 연관시킨 '나'는 좀 다른데요. 뭐랄까... 공동체 내부의 꽉막힌 동어반복에 대한 의심, 회의 따위와 연관이 있어요. 나아가 나의 생각이란 것이 이 공동체의 동어반복의 복사물에 불과한 것 아닐까하는 '불쾌'도 되고요. 그렇다고 그 공동체 바깥으로 영원히 나갈 수도 없겠지만요. 그런 식으로 자각하니 참을 수 없지요...

대체로 자의식이나 반성(성찰)이란 말을 기능주의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걸 반대로 사용하는 거죠. 어떤 공동체가 있고 그 공동체의 내부 체계에 적합한 주체와 성찰능력이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자의식과 반성을 자족적 공동체에 대해 역기능적으로 위치시켜 본 거죠. (죄의식이라면 공동체에 대한 역기능에 대한 부정적 판단이겠죠.) 흔히 말하듯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 나의 생각은 공동체의 동어반복적 순환에 갇혀 있으므로 거기에 '나'는 없다. '나'는 다른 곳에(동어반복 바깥에) 있다는 것이죠.

대충 위에 쓴 글은 '가라타니 고진'의 글들에서 필 받아서 막 쓴 겁니다.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겠지만서도^^;;;;;; <탐구 1>.<탐구 2>. 혹은 <언어와 비극> 등을 추천해요.
 


김인식의 <얼굴없는 미녀> (2) - 매개된 욕망과 반복강박, 경계성 장애

영화를 잘 보면 재미있는 것이 발견된다. 정신과의사는 아내를 포기하다시피 했다가 제3의 남자가 아내를 사랑하게 되자 아내에 대한 강한 애착이 생긴다. 그러나 아내는 그 사이 죽어버린다. 그는 아내의 애인이 이미 죽은 아내에게 걸어오는 전화를 계속 받으면서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복수'라고 여긴다. 이번엔 외환딜러의 경우를 보자. 그 역시 아내 몰래 오입질을 하지만 아내에게 남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는 외도를 그만두고 아내에게로 돌아가려고 한다. "나 그 여자 못 버려" 왜 못 버려? 애착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 그의 아내는 죽어버린다. 그는 아내의 애인(정신과 의사)이 이미 죽은 아내에게 걸어오는 전화를 계속 받으면서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복수'라고 여긴다.

이 두 인물은 두 가지 착오를 하고 있다. 하나는 그들의 사랑(혹은 애착)이 애착의 대상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아내에게서 걸려오는 전화에 대답하지 않고 흐느껴 우는 전화 속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복수'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바로 얘기하자면 그들의 애착은 아내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제3자에 의해 매개된 애착(욕망)일 뿐이다. 남이(그것도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근사한 자가) 자기 아내를 사랑하게 된다는 점 때문에 열정이 되살아난 것이다. 따라서 전화 속의 흐느끼는 목소리를 듣는 것은 그것이 '복수'가 아니라 매개된 열정을 아내가 죽은 상태에서도 지속시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은 르네지라르의 유명한 '3각형 욕망이론'을 영화적으로 풀어놓은 것인 듯 하다. 모든 욕망은(요구가 아닌) 타자의 욕망이다. 게다가 제3자에 의해 매개된 욕망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애착하지만 그것은 그 누군가때문에 애착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누군가를 애착하기 때문에 그 누군가를 애착하는 것이다. 이로인해 나는 어떤 이를 사랑한다고 여기지만 왜 사랑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대답할 수 없다. 나의 사랑(애착)은 설명할 수 없는 외부(혹은 '제3자' 혹은 넓게보면 '사회')에 의해 매개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의정을 매력적이다라고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정말 이의정을 그렇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혹은 매스컴에 의해) 귀엽다고 판단해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여긴다.)

정신과 의사는 제 3자에 의해 촉발된 열정을 지속시키기 위해 피암시성이 강한 경계성 장애자를 도구로 삼고자 한다. (어쩌면 특별출연한 이사비도 그런 정신과 의사의 노리개가 되었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경계성 장애의 여자(김혜수)가 병동 복도에서 정신과 의사의 죽은 아내의 환영을 보고 1년 후에 정신과 의사의 진찰실에서 최면도구로 보이는 디지털 시계를 언급하는 장면은 그녀가 처음부터 정신과 의사의 매개되고 좌절된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그는 그가 아내를 욕망하게 했던 구조/형식을 다시 반복하게 하려고 그녀에게 거짓 과거를 최면으로 주입시킨다. 그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를 사랑하는 자신'이란 형식에 빠져들때 강력한 성욕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 욕망으로 반복강박적으로 재생된다.

'얼굴없는 미녀'란 말은 말이 안된다. 우선 얼굴이 없다면 괴물이지 미녀는 아니다. 그런데 이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말이 된다. 제3자(혹은 사회)에 의해 미녀로 보일 수도 있고 추녀로 보일 수도 있다. 그녀가 내재적으로 어떤 요건을 갖추었느냐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녀의 이미지는 오리지널한 얼굴이 없이 텅빈 괄호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떠돌아다닐 뿐이다. 그럼 진짜 그녀의 얼굴은 어디 있을까? 나는 그녀의 얼굴을 정말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어느 순간 괴물로 돌아오는 미녀에게 기겁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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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8-1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님 글보니 영화 못 보겠어요...
어쨌든 또 퍼갑니다

간달프 2004-08-15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비관적인가요?

sweetmagic 2004-08-1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 심하게 동감하는 바, 제 눈에 그게 다 안들어오면 좌절할 것 같아서요 ^^;;
 

 한 남자가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 홀로 앉아있다. 그가 왼편 거울을 볼 때 그는 자신을 떠난 아내를 보고, 오른편 거울을 볼 때 자신을 방문한 환자를 본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한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자신의 거울상과 만나고 그것과 사랑에 빠지는 것일 뿐이다. 그가 거울 밖의 타자(他者)를 만나려 할 때 언제나 거울상과 어긋난 존재와 대면할 수 밖에 없다. 그 어긋남으로 인해 집착이 생긴다. 그는 자신의 거울상과 실제 타자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그 어긋남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점은 인물들이 서로에게 비춰진 거울상처럼 반복된다는 것이다. 일정한 패턴이 있고 그 패턴은 무한하게 반복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것은 마치 연쇄무늬를 가진 벽지같다. 특별출연한 이사비 부분은 연쇄무늬의 벽지 끝부분이 잘려나간 것과 같다. '빙산의 일각'이란 말이다. 애정사를 테마로 삼고 있지만 인간사회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타자 그 자체와 만나지 못한 채 나르시시즘의 방에 갇힌 자들의 무한한 연쇄로 구성된 사회말이다. 그리고 그 사회는 자기 밖의 괴물만큼이나 더 무시무시한 사회다.

이런 사회 속에서 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나'의 확장태로 타자가 없는 대신 '다른 자(異者)'가 있다. '다른 자'란 나 아닌 자로 규정되는 자로, 나의 존재에 의존해 있는 것에 불과하여 결국 나의 나르시스즘의 확장형식(거울상)일 뿐이다. 따라서 남자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은 얼굴이 없다. 그는 남의 얼굴에서 자기만을 볼 뿐이다. 이 때 타자가 억압된다. 어디에서 억압되나? 그 남자 주인공의 정신 속에서 억압된다. 그것은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때가 되면 언제든 다시 돌아온다. 백인들이 흑인 노예의 반란을 끊임없이 두려워 하듯이, 자본가들이 임금노예들의 봉기에 노이로제가 걸리듯이, 가부장적 남자들이 아내와 딸들에게 살해위협을 느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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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8-12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갔습니다 ㅠ.ㅠ;;

간달프 2004-08-12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윗매직님~ 궁금한 거 있는데요. 이모티콘 눈썹이에요 눈물이에요?

sweetmagic 2004-08-13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 간달프님이 입을 여셨다 !!

저.... 저 그 그게요 - 아 떨려서 말도 안나와 ... -

... 워...원래는 누..... 눈썹인데요.
저 저는 가...감도...오..옹의....눈물이라고 우기고..싶어요.
아... 아니 우길래요 ...

푸다닥....


바보 바보
" ㅠ ㅠ" 는 눈썹이구요 눈물은 " T . T " 를 많이 써요 라고 왜 말 못해 !!

히히 ^^;; 감동의 눈물이라구요 ~~ !!

간달프 2004-08-1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꾸 잘 안해서 미안해요. 담 부턴 꼭 대꾸할께요^^ 말대꾸?
 

고종 업적 과잉 강조...王政 극복 문제의식 不在
본격서평:『고종시대의 국가재정 연구』(김대준 지음, 태학사 刊, 2004, 332쪽) 등
2004년 07월 14일   김재호 전남대 

김재호 / 전남대·경제사

 '고종시대의 재조명'은 1997년부터 1999년에 걸쳐 발표된 이태진 서울대 교수의 고종시대에 관한 논고를 모은 논문집이며,  '고종시대의 국가재정 연구'는 故 김대준 연세대 교수의 박사학위논문('이조말엽의 국가재정에 관한 연구(1895∼1910)', 연세대, 1974)을 다시 조판해 간행한 것이다(이하 '재조명', '연구'로 약한다).

이렇게 저자가 다른 두 책을 한 자리에서 평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김대준의 논문을 간행한 이태진 교수는 '간행사'에서 '연구'는 "대한제국의 근대국가 수립의 가장 핵심적인 면"을 다루고 있으며, 대한제국 정부는 갑오개혁에 의해서 개정된 회계제도를 충실히 이행해 근대적 국가예산제도를 "확립"했으며 이러한 성과를 일본의 재정고문과 통감부가 "파괴"했다고 결론짓고 있다는 점에서 "자력 근대화 실재론 주장자"에게 대단히 고무적인 업적이라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양 저서의 문제의식의 동일함은 30년 세월의 거리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한다.

'재조명'에서 이태진 교수는 저작의 목적을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한국 사회과학자들이 "오늘의 사회과학적 주제들을 우리의 역사를 통해 보려는 시각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고 개탄하고 있는데, 이러한 한국 사회과학계의 현상에 대해서 사회과학자의 일원인 평자 또한 크게 공감하고 있으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원인이 식민지병합의 충격으로 인한 한국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이며 따라서 그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소박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사회과학자 대부분이 한국사, 더 정확히는 역사 일반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어떤 편견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과학 이론을 그것이 생성됐던 시공간에 대한 이해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천박함 때문이며, 아직까지도 사회과학이론의 개발자(maker)가 아니라 이론을 학습하는 수용자(taker)의 단계에 만족하고 있는 유치함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 밑바탕에는 사회과학적 주제를 정면에서 대하지 못하는 래디컬한 자세의 부족함이 드러나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적 위치에서 비롯하는 것이다(변방성). 이러한 사회과학으로부터 "오늘의 사회과학적 주제"를 제대로 해명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자도 동의하겠지만, 어떻게 사회과학 이론의 이해, 개발, 적용이 인간의 사회적 경험의 총체인 역사에 대한 통찰이 없이 가능하겠는가. 그러나, 자국의 역사를 긍정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주관과잉의 연구를 한다면 우리나라 사회과학의 문제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에 대해서도 자해행위가 될 것이다.

'재조명'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개항기 자주적 근대국가 수립의 주체는 고종이었다. (2)고종은 "暗弱"하지 않았다. 고종은 "계몽절대군주"였다. (3)고종은 영조와 정조의 근대 지향적인 "民國政治"이념을 계승했다. (4)대한제국의 전제군주정은 민국정치를 계승,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5)고종의 근대화 노력은 대한제국의 근대화정책(光武改革)에 의해서 실현됐다. (6)대한제국의 근대화 정책은 성공을 우려한 일본의 침략에 의해서 좌절됐다.

이 간단한 요약에 의해서도 '재조명'이 그리는 그림이 조선후기부터 개항기와 식민지기에 걸친 장대한 스케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색채도 상당히 화려하다. 그러나 세부적인 묘사를 일일이 평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이 그림의 구도에 대해서만 말한다. 이 그림에는 5백년의 지구력을 보여준 조선왕조의 극복이라는,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 왕정의 극복이라는 문제의식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 평자는 단지 정치체제를 입헌군주제나 공화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태극기 분석이 밝히고 있는 "명월이 수많은 하천에 비치는 것"과 같이 "진정하게 소민을 보호하는 군주와 백성의 관계"(276)로 요약되는, 영조·정조의 "탕평군주"와 그 계승자 고종의 비전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평자는 이러한 비전 위에 근대사회를 수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듯이 당대의 서학의 수입, 동학의 발흥은 다름 아닌 조선 왕조의 이러한 비전 자체를 문제삼고 있었다. 일제에 의한 대한제국의 병합이 우리의 근대사에 치명적인 병폐를 가져다 줬다면, 왕정을 자기 스스로 극복할 기회를 강탈한 것에 있다고 해야 한다. 저자는 전제군주정인 대한제국과 함께 근대를 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생각건대 君民一體의 민국정치의 이념을 근대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진정 그러하다면 해방 후 우리는 대한제국의 부활을 위한 복벽운동부터 시작해야 했을 것이다.

한 인간은 그 사람이 먹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한 나라를 평가할 때도 국왕의 생각을 살필 것이 아니라 그 재정부터 살펴야 한다. 고종이 비로소 자신의 민국정치의 이념을 구현할 수 있었다는 대한제국의 재정제도와 재정상태는 어떠했는가. 김대준의 '연구'의 의의는 공포되지 않았던 예산자료를 발굴해 정리하고 최초로 재정학의 방법에 의해서 분석했다는 연구사적인 것에 있다. 갑오개혁기에 도입된 근대적 재정제도가 대한제국기에 유지, 발전됐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은 오류이다.

대한제국기의 황제권력의 강화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궁내부와 내장원의 재정팽창으로 갑오개혁기의 재정제도는 뒤틀려갔다. 재정곤란으로 인해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예산제도 밖에서 국왕직속의 내장원이 국가재원을 집중해 재정곤란에 빠진 정부에 대해 지세수입을 담보로 대부를 해줄 지경에 이르렀다. 요컨대 황실재정에 의한 정부재정의 지배라는 양상을 노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연구'는 이러한 황실재정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정부예산에서 화폐발행수입이 축소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조폐국인 전환국이 국왕직속으로 이전돼 정부예산에서 빠진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환국은 황제의 사금고 역할을 했으며 악화인 백동화 남발은 대한제국기 화폐제도 문란의 주범이었다. 이러한 대한제국의 재정제도는 宮府一體의 이념하에서 운영됐던 국가재정을 정부재정과 왕실재정으로 분리하고, 왕실재정을 정부 통제하에 두고자 했던 갑오개혁의 전도된 결과라고 해야 한다. 이것을 두고 갑오개혁기의 재정제도가 발전돼 근대적 재정제도가 "확립"된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재정제도는 어찌됐건 근대적 목적에 잘 쓰면 되지 않겠는가. '재조명'은 대한제국의 근대적 업적의 예로서 도시개조사업, 중국도서의 대대적인 수입, 군사비 예산의 증대 등을 거론하고 있지만, 국가재정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과세대상(토지, 인구)에 대한 파악, 징세기구의 개편, 근대적 산업의 이식과 육성, 군사력의 강화를 우선적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대원군이 국력을 기울여 중건한 경복궁을 두고 새로 경운궁을 짓는 것이나 비명에 죽은 황후의 장례를 위해서 막대한 자금을 지출하는 것이 시급한 사업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재조명'은 1902년에 설립된 황제직속의 益聞社를 항일정보기관으로 평가하고 대한제국이 제대로 된 근대적 국가체제를 갖추고 있는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관민의 모든 동향을 감시하고 "자유 민권을 빙자하여 전제정치를 비방하며 정부 득실을 평론하여 인심을 선동하는 자"를 탐지하는 것을 임무로 하였던 익문사. '大韓帝國制' 아래 君民一體의 '민국정치'의 실상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일지언정 어떻게 항일정보기관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저자는 갑신정변, 갑오개혁, 독립협회로 이어지는 근대화 노력을 모두 일제와 결탁한 권력찬탈기도로서 평가절하하고 있는데, 고종황제는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실로 자신을 알아주는 후원자를 얻었다 할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에서 '甲午改革이후 近代的 財政制度의 形成過程에 관한 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업의 발흥과 관료, 1876-1910', '한국 전통사회의 기근과 그 대응:1392-1910' 등의 논문이, '맛질의 농민들 - 한국근세촌락생활사'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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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치하를 조명하는 제3의 시선 - 식민지배와 근대의 이중성
2004년 07월 14일   강성민 기자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일제시대를 독특한 시선에서 조명하는 두권의 책을 펴냈다. '일제 파시즘 지배정책과 민중생활'과 '일제의 식민지배와 일상생활'(이상 혜안 刊)이 그것이다. 이 두권은 그 동안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정책이나 그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사회운동 연구에 치우쳤던 연구의 약점을 보완하고 식민지시대를 산 한국인의 구체적 경험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연구시각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이 책들은 서구에서 불어온 역사에 대한 미시사적 관점과는 또 다르게, '실존하는' 지배권력과 밀착 연동되고 있는 일상들을 추적했다는 점에서 그 차별점이 느껴진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일상생활'에서는 먼저 '도시화'에 주목하고 있다. 경성이 일본인지역인 남촌과 조선인거리인 북촌이라는 민족차별적인 공간분화를 겪으면서 조선인 소외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1차적 변화다. 보다 심층적인 것은 안채와 사랑채로 이어지는 평면적, 개방적인 전통가옥구조에서 내외부가 철저히 차단되는 근대식 '문화주택'의 등장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근대인으로 식민지인들을 조성해나간 것이다. 백화점과 공장의 등장은 새로운 근대 경영기법을 습득한 경영인과 체계적인 통제를 받는 노동자의 계급적 분화로 나타나고 이는 근대적 문물과 제도의 수입과 맞물리면서 개인들의 생활을 변화시켰다는 분석도 등장한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문화적 제도에 나타난 변화, 농촌사회, 민간신앙, 근대적 감옥, 식민지교육, 경찰제도 등을 살펴봄으로써 식민지 조선인의 생활상에 종합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일부에게 이 시기는 정치적 폭력과 경제적 약탈의 시기였고, 또 다른 일부에게는 근대를 처음으로 경험하고 부를 축적해 '문명'을 맞이한 새로운 시기였겠지만, 이 시대의 실제 모습은 두 대립적인 것이 섞이고 어우러진 총체적인 것이라는 게 이 책의 시각이다.

'일제 파시즘 지배정책과 민중생활'은 역시 '수탈과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의 영향 아래 전시수탈의 강화와 황민화정책의 실상 폭로에 주안점을 둔 기존 연구, 특히 빈약한 연구성과를 가지고 확대해석하는 경향을 반성하면서 파시즘 지배정책의 총체적 모습 파악에 도전했다. '1930년대 추진된 농공병진정책'이 일본의 공황타개와 조선개발을 통한 총력전체제 구축을 위한 플랜이었다는 점(방기중), 당시 행해진 '사상 정화공작'의 예를 분석해 국경지대의 공작책임자로 조선인들을 임명하는 내선일체 및 황민화의 집중강조 현상(미즈노 나오키), 일본이 벌인 전쟁이 정복·침략 전쟁이 아니라 천황의 은혜를 널리 보급하기 위한 성전이라는 1940년대의 국사교과서 분석(김경미), 일제의 총동원체제가 기존 농촌마을 사회의 공동체적 유제-신분제적 관계망을 사라지게 하고 '근대적' 사회질서로 재편하게 만든 것에 대한 분석(이경란), 전시체제하 조선연맹의 말단 기초조직인 '애국반' 활동을 중심으로 주민동원과 생활통제가 이뤄진 실상(이종민) 등에 대한 접근이 이뤄진다.

신기욱 교수는 이번 분석에서 서구 독일·이탈리아 현상에서 유래한 파시즘 개념을 식민지조선에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는 걸 경계, 경험성을 강조하며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농정은 조합주의적 요소를 지녔으며, 기 이념적 기반은 농본주의와 사회정책으로 대변되는 일본의 메이지 개혁주의였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일제 파시즘 지배의 구체적 실상을 드러내 그것의 특징과 논리 및 그것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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