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바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1
최승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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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시가 되고 시가 노래됨을 어렴풋이 알려준 광석이형 16주기.

 

시는 노력만으로 쓸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있다. 타고난 감수성과 언어의 활용 능력은 연습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를 만날 때 떠오르는 생각이다.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서울의 예수에 실린 시인의 눈빛에 감전된 것은 감수성의 백열등이 깜빡이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황지우와 이성복의 시를 처음 만나던 순간, 김영승의 반성과 김승희, 최승자의 시를 읽던 느낌, 나른한 5교시 박노해를 낭송해주시던 선생님의 떨리던 목소리 그리고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 최승호의 대설주의보세속도시의 즐거움을 뒤적이던 밤은 소리도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예감한다. 먼지 묻은 책장의 앨범처럼 가슴에 남아있거나 무턱대고 과거로 회귀하거나. 아주 오래된 기억의 편린들. 그리고 가끔씩 오래된 친구의 소식을 기웃거리듯 빛바랜 시집을 꺼내들거나 근황을 궁금해 하거나.

 

최승호의 시집 아메바는 낯설다. 기존에 썼던 시들에 대한 반성적 고찰 혹은 그림자 연습. 시인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 이 시집은 일종의 문체 연습 같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언어와 이미지를 먹고사는 아메바 같은 시들의 향연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낯선 시집을 읽으며 예전의 시들과 다시 만나고 변형된 이미지, 생경한 리듬, 낯선 의미와 부딪친다. 시의 이미지는 살이고 리듬은 피요, 의미는 뼈에 해당한다고 했던 인터뷰 기사가 떠오른다. 수능 모의고사에 출제된 자신의 시 문제를 풀었다가 모두 틀렸다는 항변으로 시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던 최승호는 이제 대학교수다. 상황이 변했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그의 시를 추동할 만한 내적 긴장과 감수성이 증발되고 있거나.

 

아주 오랜만에 최승호의 시집을 읽고 나서 몇 편을 옮겨본다. 그의 실험이거나 게으름에 대한 반성이거나. 혹은 살아있는 시인에 대한 그리움이거나 쓸쓸한 뒷모습이거나.

 

 

03 나의 두개골

 

나의 두개골 안에

불타는 가시덤불의 거센 불길이

느껴지는 이 싱싱한 밤

 

03-1

 

밤이면 흐느적거리는 시의 촉수들,

뜨거운 두개골의 창문 밖으로는

오월의 장미넝쿨이 흘러내린다

 

 

04 문자

 

문자에 스민 그의 피, 그의 숨결, 그의 고통, 때로 얼음의 책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여온다. 그는 아직 얼음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04-1

 

방산 속의 허연 유령처럼

밖을 내다보는 희미한 얼굴,

얼음의 책의 저자

 

 

14 붕괴

 

붕괴된 백화점

철거되지 않은 거대한 벽면이

폐허 위에 기우뚱하게 서 있던 것과

전봇대를 삼키듯 휘감아버렸던 나팔꽃덩굴을 너는 기억한다

 

14-2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붕괴된 벽에

누가 언어의 사다리를 걸어놓고 기어오를 것인가

 

 

19 우리는

 

우리는 거대한 증발접시 안에서 속이 타는 물방울 같은 존재들인지 모른다

 

19-4

 

우리는 먼지들의 러시아워 속에 붐비는 먼지 같은 존재들이다

 

 

36 연중강우량 1mm

 

연중강우량 1mm

아이쿠 사막에선

모래에 뿌리 박은

가시 돋친 혀들이 선인장처럼 자라면서

뚱그런 철퇴 모양 번쩍이는 해 아래 이글거린다

 

36-1

 

아이쿠 사막에선

태어날 때도 아이쿠!

죽을 때도 아이쿠!

 

 

40

 

벽에 머리를 대고

혼자서 가만히 우는 아이가 있다

 

40-2

 

절벽에서 돋아난

마애불(磨崖佛)의 얼굴을

지우개도 없이 지우는 것은 바람이다

 

 

43

 

살이 얼마나 질긴지

때밀이수건에 먼저 구멍이 났다

 

43-4

 

뜨거운 무의 목욕탕

거기 들어앉았다 나온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49 한낮의 골목

 

한낮의 골목 텅

빈 골목을 꾸부정하니

지팡이를 짚은 늙은 고독이 지나간다

 

49-2

 

골목, 골목, 골목들이 점점 사라져간다

사막에는 골목이 없다

 

 

58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은 물렁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반죽덩어리, 그 물렁물렁한 책을 베개 삼아 나는 또 시상(詩想)에 잠긴다

 

58-1

 

물감을 베고 누운 화가처럼

물렁물렁한 책을 베개 삼아

나는 시상에 잠긴다

 

 

20120106-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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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애니멀 - 사랑과 성공, 성격을 결정짓는 관계의 비밀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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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롭다.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부터 사주, 별자리 등 올 한 해가 궁금하기만 하다. 개인적인 삶은 물론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전 세계의 동향까지 너무 복잡해서 예측 자체가 무의미한 일들조차 다양한 전망들이 쏟아진다. 그 전망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 예측가능한 개인의 행동과 심리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로 요약된다. 정치적 행위든 경제적 활동이든 모든 사람은 사회화된 패턴 속에서 움직이고 새로운 변화와 흐름을 받아들이며 보다 나은 삶을 욕망한다. 이기적인 태도와 비합리적인 움직임의 소비기호는 늘 자본주의 사회의 판매자들을 긴장시키고 급격한 사회변화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내일이 궁금하다. 내일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이크로 트렌드와 메가트렌드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의 문제는 현재 사회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싶은 사람들의 관심일 뿐이다. 넓은 범주에서 개인은 언제나 따로 또 같이움직인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은 쉽게, 아니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을 천성이라 부르든 팔자라고 부르든 말이다. 유전적 정보를 통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향과 우주의 시공간 속에 운명적으로 결합된 명운이 합해져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는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면 내면적 자아는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혹은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는 에 대해서 말할 때 내가 알고 있는 자아(anima/animus)와 사회적 자아(persona)를 일치시키는가. 아니면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두 개의 자아가 드리운 그림자의 영역을 말하는가. ‘나는 누구인가의 문제는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의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의 무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의식의 억압된 요소를 다른 사람들에게 투영한 후 자신의 결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결점을 남에게 전가하여 공격하고 비판한다. 칼 융이 말한 인간의 무의식 영역은 이후의 정신분석학자와 심리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든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부모를 통한 가정교육으로부터 또래집단, 학교교육,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인간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된다. 동일한 사안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인간에 대한 상반된 태도 등 수많은 조합으로 이루어진 개인들이 탄생하게 된다. 현대사회의 특징을 한 마디로 정리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성찰하는 일은 피부에 닿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현재 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혹은 의 미래를 알기 위한 수단으로 타인과 사회를 들여다본다. 그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니라 관찰의 주체와 대상이 뒤바뀔 뿐 개인과 사회 어느 쪽이 분석의 대상이 되든 무관한 일인 것 같다.

 

자기계발될 수 있는가

 

데이비드 브룩스의 소셜 애니멀을 보면서 두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인간은 스스로 계발되는가, 아니면 언제나 외부의 조건, 타인에 의해 변화되는가. 또 하나는 인생에서 성공이란 무엇인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의 삶의 토대를 이루는 관심사이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보다 많은 사람이 읽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이 책을 꾸미고 있다.

 

먼저 외모를 평가해보자. 567페이지의 두툼한 분량의 책을 코팅표지로 무선제본했다. 결과는 25천원. 어떤 물건과 비교해도 책값은 항상 가장 저렴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책값은 더구나 번역서는 다양한 가격결정 요소가 있지만, 내용에 어울리는 외모를 가졌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한마디로 너무 비싸게 포장했다. 소장한 후 자주 찾아보고 참고하다가 자손대대로 물려줄 만한 내용은 아니라는 뜻이다. 자기계발서를 낮잡아 보는 것이 아니라 소설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읽히고 나름의 운명대로 흘러갈 책으로 보이지만 책의 표지와 디자인은 잔뜩 힘을 주고 권위를 가지려고 애쓰고 있어 안타깝다.

 

전체 2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스토리텔링 기법을 잘 활용하고 있다. 에리카와 해럴드는 이 책의 주인공이다. 말하자면 소설처럼 두 주인공의 부모님부터 연대기적 서술에 의존하고 있다. 마치 고전소설을 읽는 느낌으로 부모님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두 주인공을 통해 구체화된다. 에리카와 해럴드는 어떻게 일과 사랑을 이루며 그들의 성격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저자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 비밀의 열쇠를 찾는다.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큰 틀과 체계를 세우지 않고 연대기적 소설 기법을 활용한 것은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가상의 주인공의 내세워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가독성은 뛰어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간과하기 쉽다. 책의 내용은 사실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심리학적 요소를 설명하고 다방면의 전문가와 방대한 저서가 소개된다. 핵심적인 내용을 짚어내고 간략하며 설명하며 두 주인공의 심리상태, 관계를 맺는 양상, 선택의 순간에서 발휘되는 능력 등을 적절하게 결합시키고 있어 이해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반면에 특정한 주제나 내용을 장으로 구별해 놓았으나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지 않고 읽고 나서도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음식점으로 치자면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뷔페에 해당되겠다. 넓고 고급스런 인테리어, 온갖 종류의 음식, 즉석요리와 다양한 음료, 신속한 서비스와 만족스런 사람들의 표정. 그러나 문을 나서는 순간 뿌듯한 포만감이 아니라 잔뜩 먹었는데 뭘 먹었는지 알 수 없는 허전함.

 

이 책은 결국 비범한 성취와 행복으로 이끄는 조건, 과정, 방법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두루 살피고 있다. 의사결정과정, 인간관계, 학습, 재산, 문화, 지능, 자기통제력, 실수, 집단사고, 도덕, 본능, 정서 등 두 주인공의 생활을 통해 다른 자기계발서와 달리 실제 생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생생한 현장감은 미국사회의 가장 화려한 면을 부각시키며 기회의 땅에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성공적인 삶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목표와 가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닌가. 1%의 행복에 도전하는 이 책은 2011년 미국사회를 뒤덮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피로가 극대화되고 있는 99% 현실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1%가 아니라 99%를 위한 세상을 고민할 시점에 1%의 삶을 꿈꾸며 그것이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그 안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난감하다. 나쁜 책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권하지는 않고 싶은 애매~한 책이다.

 

 

2012010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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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주문할 때 사람들은 타인의 서평이나 신문기사를 얼마나 참고하는지 궁금하다.

혹은 유명 서평가와 북로거(파워블로거)의 글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라딘에 책을 주문하러 가면 구매하지 않은 사람들의 서평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특히 신간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빌렸을 리 없고 서평용 도서를 받았거나 관계자이거나 친인척이거나.

그리고 내용은 객관적이지 않고 주례를 세울 확률이 높다.

공짜로 책 받고 악평을 썼다가 먹게 될 욕의 양과 받게 될 불이익에 대한 발빠른 손익계산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특히 각 인터넷 서점, 각 포털의 우수, 파워블로거들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같은 책의 서평이 올라온다면,

십중팔구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이다. 서평을 참고할 필요가 없는 광고다.

회당 10만원, 주당 1~2회 서평 제의를 하는 사이트부터 다양한 제안을 하는 프로모션 업체까지.

그 분들은 몇명이 혹은 누가 제안에 응하고 있으며 얼마나 수익을 올리고 있는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차피 운영하는 블로근데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문제는 공개여부다.

그리고 그 서평과 책 구매여부의 상관관계다. 순수한 매니아와 책벌레를 찾는 일은 그래서 더욱 어렵다.

대형출판사가 아닌 경우 몇몇 인터넷 서점 메인을 점령해야 하는 어려움, 광고홍보비의 부담 등 여러가지 이유로

블로그 마케팅을 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작가가 직접 쪽지를 보내 책을 보낼테니 주소를 알려달라는 일까지 벌어진다.

숨어있는 좋은 책을 찾아읽고 함께 나누고 광고에 휩쓸리지 않고 옥석을 가리고 내 몸에 맞는 옷을 고르듯 내게 필요한 좋은 책을

골라 책 표지를 넘기기까지는 많은 수고로움을 이겨내야 하고 깊은 안목도 필요하다.

어디 책 뿐일까마는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갈수록 어렵기만 하다.

책 한 권 주문하기도 험난하고 숨어있는 책을 보물찾기는 더욱 어렵고 어느덧 책이 떨어지면

늦은 겨울 밤 담뱃갑이 빈 취객처럼 마음이 급하다. 미리 목록을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고 책을 살펴두지 않으면

즉흥적으로 주문하게 되는 책이 끼어들고 광고에 속거나 본전을 헤아리게 된다. 어쩔 수 없는 게으름의 대가!

미리 준비하고 계획세워가며 계통과 주제를 생각하고 분류해 놓은 빈 구멍을 메우지 않더라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고 쓸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다가온다. 호흡을 가다듬고 준비운동을 하고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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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 첨단 의학 시대에 우리가 알아야 할 죽음의 문화
미하엘 데 리더 지음, 이수영 옮김 / 학고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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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

 

모든 에는 시작이 있을까. 생명의 기원, 우주의 근원, 세상의 시작은 언제 어디에서부터일까.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연속적인 흐름을 분절시켜 놓은 인간의 시간 단위.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하듯 탄생은 죽음을 예비하고 시작은 끝을 맞이한다. 어느덧 시작과 끝이 아니라 끝과 시작이 맞닿는 시간이 되었다.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 인위적인 인간의 시간이든 편리에 의한 단위이든 한해는 저물고 새해는 밝는다.

 

무한 반복되는 시간과 달리 생명을 가진 것들은 탄생, 성장, 소멸을 반복한다. 개체는 계통발생을 반복하며 다음 세대에게 유전자를 남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그 흔적들이 시간을 견디고 또 변화하며 이전의 흔적들을 지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수많은 세포들이 죽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손발톱이 자란다. 말하자면 한 우리의 존재 자체도 매일 매일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일을 반복하다가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인간이 만든 모든 사물과 제도도 마찬가지다.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그렇게 이룩한 문명은 세월을 견디고 인류의 문화가 되고 지식으로 축적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 목적과 방향에 대한 무수한 철학적 고민과 무관하게 우리는 오늘을 살고 세계는 존재한다. 시작과 끝은 매 순간 반복되며 그 모든 의 시작은 알 수 없으나 그 은 예정되어 있는 것만 같다. 그러한 무지(無知)의 지()를 얻기 위해 인간은 종교와 철학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모든 세계와 무관하게 한 인간의 탄생은 죽음과 더불어 모든 것을 소멸케 한다. 주체적인 를 확인하고 세계는 인식하는 순간부터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세계는 내가 존재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좁은 의미의 존재론이 가능하다. 이전의 시작과 끝은 무의미하며 내 죽음과 함께 모든 세계는 점등된다.

 

죽음, 존재의 소멸과 또 하나의 세계

 

인간의 죽음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태도와 인식방법, 장례절차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은가. 동양문화에서는 죽음을 터부시하는 오랜 전통에 따라 여전히 삶이 끝나는 순간 죽음이 시작된다는 불연속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삶과 죽음이 하나이며 삶의 그림자가 곧 죽음이라는 연속적 세계관을 가진 문화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죽음은 통곡의 대상이며 건너고 싶지 않은 두려움의 강이다.

 

김열규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에서 한국인에게 죽음은 너무 먼 곳에 있다는 사실을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통해 확인시켜 준다. 또한 최준식의 죽음, 또 하나의 세계한국죽음학회창립 이후 근사체험을 통해 삶과 다른 영역으로서의 죽음에 대해 문화와 종교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임사체험 (), ()은 세계 각국의 임사 체험자를 면담하여 동서양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사후세계에 대해 실증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에 비해 독일인 의사 미하엘 데 리더의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는 매우 현실적으로 읽힌다. 앞서 언급한 책들이 시대와 문화 혹은 임사체험자들을 통해 죽음 자체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면 이 책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맞이해야할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다.

 

생명을 아주 짧은 시간 연장할 수 있다 해도, 1퍼센트의 가능성만 있어도 치료를 하려 드는 것이 의료계의 일상적인 형태다. 그러나 때로는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는 미명 아래 엄청난 불행을 안겨준다. - 25

 

30년간 응급의료 전문가로 일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과 태도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저자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문장이며 이 책의 화두가 되는 생각이다. 생명 연장의 꿈은 인간의 본능이다. 살고 싶다는 기본적인 욕망에서 출발하는 의학은 우리에게 좀 더 긴 삶의 시간을 선물한다. 그러나 끝까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생명을 연장하는 것만이 옳은 일인가.

 

우리에게는 인간답게 죽을 권리, 고귀한 삶의 연장선에서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첨단의학 시대에 살면서 인간의 생명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연장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떻게죽고 싶은가의 문제는 우리에게 깊은 고민을 남겨 놓았다. 넓은 의미에서는 안락사의 문제까지도 언급되고 있는 이 책은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고민과 일부를 공유한다.

 

정확한 기준을 마련할 수 없으나 소생 불가능한 뇌사, 고통만이 남아있는 치유 불가능한 질병 등 세상에는 오로지 죽음만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들이 단 하나의 목적이 생명 연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논의해야할 문제들을 제기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의학적으로 심장사와 뇌사의 의미를 살펴보고 우리가 죽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숙고해보자. 임종을 앞둔 환자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환자에 대한 죽음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간병을 받으면서도 비참한 죽음을 맞는 사람들, 통증 치료와 죽음의 문제, 완화의학의 경계 등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매한 경계와 논쟁들이 독일 사회를 배경으로 진지하게 설명되어 있는 이 책은 의료복지가 제대로 갖추어진 선진국 의사의 배부른 투정으로 볼 수는 없다. 기초의약품이 없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죽음을 맞이하는 아프리카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 책은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다가 품위 있게 죽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가족의 태도, 의사의 결정, 사회적 제도에 따라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선택권이 없을 수도 있다. 환자와 가족, 의사만 합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이 책에서는 풍부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사람답게 죽는 방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 가꾸고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는 건강한 우리들의 삶을 위해서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201112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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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고미숙 외 지음 / 북드라망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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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란 몸이 지닌 리듬과 탄성, 혹은 강밀도다. 거꾸로 말하면 과거부터 이어져 온 욕망과 훈련의 결정체, 그것이 곧 나의 몸이다. - 12

 

펜과 칼 그리고 혀

 

The pen is mighter than the sword. 기억도 가물가물한 영문법 책의 예문으로 추측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육체와 영혼으로 나누어 생각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때로는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을 견딜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혼을 지배하는 말과 글은 인간이 사용하는 두 가지 종류의 언어다. 그러면 말과 글은 어떻게 다른가. 아니, 어떤 것이 더 치명적인 상처를 낼 수 있을까.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리는 일을 경계하고 그 두려움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것은 사실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팩트와 소문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즐기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 때문인지도 모른다.

 

말과 글의 가장 큰 차이는 기록과 상대의 유무일 것이다. 일회적으로 흘러가는 말과 달리 영원히 기록되며 반드시 다른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말과 달리 글은 혼자서도 쓸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자신과의 대면을 의미하며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고 자기 고백의 수단이다. 기본적으로 글을 쓰는 동안 내면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의 생각은 무엇이며 내 삶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삶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글쓰기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 아닐까 싶다.

 

고미숙과 그의 친구들(?)이 함께 쓴 누드 글쓰기, , 이라는 <감이당>의 모토가 그대로 반영된 책이다. ‘수유+너머에서 독립하여 인문의역학 공부모임이라는 <감이당>의 결과물들이 책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 책은 사주명리학과 글쓰기의 만남이다. 이름하여 누드 글쓰기라. 알몸을 드러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보다 더 힘든 일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일이다. 고미숙, 김동철, 류시운, 손영달, 수경, 안도균은 사주팔자를 들여다본다.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는 음양오행과 더불어 인간의 몸과 기질의 특성을 결정짓는다. 미래를 점치는 일도 아니고 미신이라 할 수도 없는 사주팔자. 과연 믿을 만한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그것을 들여다보는데 글쓰기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독서의 최종목표는 글쓰기다. 책을 읽는 건 삶의 길을 찾는 탐색이다. 길찾기는 반드시 자신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란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형식에 속한다. 읽기와 쓰기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 이 순환의 사이클이 바로 책의 매트릭스인 것. - 23

 

사주팔자와 글쓰기

 

자신이 태어난 연월일시가 네 개의 기둥이며 그에 해당하는 여덟 글자. 그 중에서도 일()에 해당하는 간지 중에서 천간에 해당하는 글자가 주인이다. 심심풀이로라도 운세나 토정비결을 본 적이 없었지만 이 책을 보면서 내 사주를 확인해 보았다. 중심글자는 신. 음양오행에 따르면 신은 음에 해당하는 금이다.

 

신금辛金()

 

날카롭고 예리한 금속이나 보석을 상징한다. 침착하고 예리한 판단력과 논리적인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일을 깔끔하고 명확하게 마무리한다. 그러나 그런 만큼 예민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냉소적인 면이 있다.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실수를 용납 못할 정도로 엄격한 내면의 잣대가 있다.

 

여기까지 찾아보다가 덮고 말았다. 아직 누드 글쓰기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보다. 하지만 손영달, 김동철, 수경, 류시성은 사주팔자를 풀어놓고 자신의 삶을 쓴다고미숙이 누드 글쓰기의 존재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안도균이 사주명리학의 개요를 설명한 후 각각 비겁, 관성, 식상, 재성이 강한 네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엮인 이 책은 위험하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라고 했을 때 요구하는 내용과 기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고미숙과 안도균의 글을 제외하고 실제 자신의 삶을 사주명리학으로 풀어내는 누드 글쓰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한 편의 소설을 보는 것처럼 흥미롭기도 하지만 타인의 생을 들여다보는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사주명리학을 풀어내는 예문으로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과의 대면을 시도하는 일이 얼마나 가능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일 것 같은 독특함만은 인정해 줄만하다.

 

글쓰기는 시인이나 소설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몸과 삶이 만나는 글이라는 누드 글쓰기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치유하는 글쓰기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입 속의 검은 혀가 아니라 온몸으로 누드로 글쓰기를 시작하라는 저자들의 이야기는 독자들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거나 운명 따위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사람들에게 성찰과 겸손을 선물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생의 순환은 단선 레일 위를 유유히 달리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조건이 만나는 틈새로 새로운 복수(複數)의 길을 여는 과정이다. 인생은 그렇게 주체와 조건이 중층으로 얽혀 있는 다차원의 세계다. 넓고 평평한 도로와 비포장도로가 섞여서 나타나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과 틈새의 길이 동시에 주어지기도 하며, 갈림길인가 하면 어느새 길이 모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삶이란 알다가도 모르고 잡힐 것 같으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것. 그러므로 눈을 뜨면 역설이요, 감으면 모순인 인생의 길들은 그 자체로 지극히 정상적인 순환의 논리 안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따라서 자신의 삶을 보고자 한다면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 모순과 역설의 논리를 익혀야 한다. - 35

 

 

20111227-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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