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나다 - 첨단 패션과 유행의 탄생
조안 드잔 지음, 최은정 옮김 / 지안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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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루이 14세를 그린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구역질이 났다. 환갑이 넘은 나이의 노인네가 각선미를 드러내기 위해 망토를 들추고 있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화려한 의상과 뮬을 신고 있는 그의 모습은 기괴하다. 미의 기준이 아무리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 할 지라도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17세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사내였던 그를 바라보는 일은 괴로움에 가깝다.

 조안 드잔의 <스타일 나다>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유행의 근거지로 루이 14세를 지목한다. 가볍게 읽어낼 수 있는 미시사에 해당되는 이 책은 헤어드레서와 패션, 구두 부츠에서부터 샴페인, 거울, 우산, 향수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를 대표하는 물건과 패션에 관련된 일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 기원을 찾는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의 환영을 제거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거품과 허상이 빚어낸 꿈들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만한 책이다.

 전우익 선생이 어느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무언가 사기 위해 산다고 말했다. 그걸 사면 버리고 또 사고 그리고 또 버리고 그러다 사람들이 죽는다고 했다. 물건의 노예가 된다고. 같은 물건이라도 같은 스타일이라도 모방 심리와 집단적 무의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사람들에게 획일성과 유행이라는 선물을 안긴다. 일종의 정신병적 현상이다. 무리 사회에서 혼자만 고립된다는 두려움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것을 이겨낼 만한 이념도 철학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더욱 그러하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얼마나 비슷한 것들을 추구하는지.

 전근대 사회에서 왕을 중심으로 한 귀족들의 사치와 허영을 들여다보는 일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일이다. 그들이 머리 모양이나 옷, 구두에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었던 토대를 마련했던 민중들의 삶은 검은 밤의 커튼 뒤에 가려져 있다. 생존을 위한 노동과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던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은 이면으로 사라지고 밝고 화려한 왕과 귀족들의 생활이 전면에 등장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동경하고 자연스럽게 모방하며 그들이 선도했던 패션과 스타일은 유행이 된다.

 그렇게 시작된 미용 산업과 패션 등 전체적인 스타일을 위한 소품들은 하나의 산업이 되었고 그 중심에 선 사람들은 또다시 자본의 노예가 된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소소한 옷에 대한 관심과 생필품에 가까운 물건들이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고 전부가 되어버린 현실은 어지러운 환각처럼 느껴진다.

 첨단 패션과 유행을 탄생시킨 루이 14세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프랑스의 문화가 있었고, 그것을 흉내 낸 유럽의 문화가 탄생했다면 결코 기꺼운 마음으로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이 필요하겠지만 마음 한 구석 삐딱한 시선을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이 책은 패션과 유행에 관한 ‘스타일’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는 필요한 책이다. 루이 14세와 당시의 프랑스를 중심에 놓고 그 이면과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꼼꼼한 정보와 흥미로운 이면사가 펼쳐진다. 스타일로 자신을 말하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스타일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과 현실에서 만나는 일들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출발한 책들이 많다. 특히 여성들의 입장에서 매일 매만지는 머리나 뿌리는 향수 그리고 보석이나 거울 하다못해 접는 우산에 이르기까지 그 기원을 들여다보는 일은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한 대답과 같은 책이다.  ‘스타일, 그것이 알고 싶다’

 어떤 패션과 유행이든 실용적인 목적과 미의식에 바탕을 두겠지만, 그것을 누리고 향유할 수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상상할 수 없는 가격과 소위 명품에 눈이 먼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서는 또 다른 책과 현실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정신 병리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해서 재미있는 주제가 될 수 있겠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추적 추적 내리는 빗소리로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의 욕망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재미는 책 속에서 직접 찾아야 한다. 이 책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결국 독자의 몫일 뿐이다.


070216-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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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2-1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설 잘보내시기를.......

sceptic 2007-02-2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건강하고 즐거운 날들 보내세요...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황대권 지음 / 열림원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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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장미를 연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화려한 외모와 강렬한 붉은 빛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서양의 꽃이지만 특별한 행사와 기념일을 위해 사람들은 장미를 준비한다. 생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하지만 장미는 꽃이 진 후에 가장 흉한 모습을 보여준다. 거꾸로 뒤집어 정성스레 말려준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지저분한 낙화의 모습은 절정의 순간과 대비되어 참혹하기까지 하다.

 우리 나라 길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민들레와 장미를 비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손쉬운 대비 효과를 가져오지만 적절한 방법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장미는 장미대로, 민들레는 민들레대로 나름의 아름다움과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과 사회적 상징이 부여될 뿐이다. 민들레가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처럼 장미도 민들레를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야생초편지>의 작가 황대권의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과학기술과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시대에 대한 반론이다. 1985년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13년이나 복역한 작가의 이력은 신영복 선생의 그것처럼 책을 읽는 내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후광효과를 가지게 된다. 환경과 생태적 측면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인간 세상을 재단하는 것은 또 하나의 편견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저자의 이야기가 현실과 동떨어진 유토피아같은 얘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의 ‘현실성’ 측면에서 살펴보는 사람이 있고, 논리와 이성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서와 공감대를 맨 앞에 두는 사람도 있다. 저자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고 어떤 측면에서 이야기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은 독자 개인의 문제로 돌려야겠다. ‘산처럼 생각하기, 똑바로 바라보기, 멀리 내다보기’라는 세 부분으로 엮인 책은 저자의 마음과 생각들을 담아낸 맑은 물과 같다. 농촌과 환경을 앞세워 맹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과격하지도 않고 억지스럽지도 않다.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잃은 것이 없이 많은 것들을 성취하고 만들어가며 산다고 생각했던 도시의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와는 다르면서도 유사한 측면이 많다. 스스로를 ‘생태 공동체 운동가’로 불리기를 원하는 작가의 생각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물론 이 책의 목적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거나 이론을 펼치는 책이 아니기는 하지만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와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는 관점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신선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정확하고 분명한 목소리는 부족하고 책의 구성은 엉성하다.

 마음밭에 심어놓은 작은 풀꽃들이 피어난다고 해서 그것들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꺾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이 올 때까지, 아니면 필요한 꽃들만 꺾어야 한다. 그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사물과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궁금한 사람들은 많지 않다. 정갈하고 깨끗한 마음의 결들을 담아내고 있지만 시골 냇가에서 맑은 물 한 잔을 마신 후의 덤덤함 이상은 얻지 못했다.


07021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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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장 피에르 카르티에.라셀 카르티에 지음, 길잡이 늑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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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크리트 냄새 자욱한 섬에 떠 있다. 현대판 공중부양.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메마르다. 성냥갑처럼 똑같이 생긴 집을 쌓아놓고 똑같은 위치에 앉아 밥을 먹고 잠을 자고 TV를 본다. 아침에 일어나 똑같은 입구에서 쏟아져 나왔다가 저녁에 똑같은 입구로 들어간다. 병정놀이 하듯 현대인의 삶은 기계적이다. 노동에 바쳐지는 시간과 휴식에 바쳐지는 시간들로 나뉘어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다가 비슷한 종류의 행복을 느끼거나 비슷한 종류의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우울해하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고독을 즐기기도 한다.

 아파트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어둠속에 괴물처럼 솟아 있다. 칸칸이 불 밝힌 대한민국의 저녁은 안녕한가.

 피에르 라비의 삶을 그린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는 현대인의 우울한 자화상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그의 삶은 우리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나무와 바람과 대지와 하늘을 무대로 펼쳐지는 그의 인생은 도시와 문명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는 흉내낼 수 없는 삶으로 보인다. 거대한 감옥에 갇혀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손쉽게 혹은 낭만에 기대어 전원생활을 상상한다. 하지만 피에르 라비에게 자연은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어머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숨을 쉬고 있는 동안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생을 영위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들과 대면하게 되면 낭패감을 느끼게 된다. 알제리 오아시스 출신의 피에르 라비는 프랑스 부부교사에게 입양되어 문명의 혜택을 받지만 그의 피부색과 출신 성분을 숨길 수는 없다. 이방인에 대한 차별과 문명에 대한 혐오는 피에르 라비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다.

 척박한 땅을 일구어 뿌린 만큼 거두고 자식을 낳고 기르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는 귀농한 한 외국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과는 사뭇 다르다. 자신이 경험한 삶의 방식과 땅을 대하는 법을 나눈다. 그 속에서 깨달은 생의 의미를 이웃과 나누고 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질적 풍요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다국적 기업과 거대 자본에 의한 농업과 기계식 산업이 불러온 재앙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가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마치 성자와 같다. 뚜렷한 목표와 진지한 태도는 미래의 농업과 자연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분명하고 맑은 정신을 소유한 피에르 라비의 삶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한 편의 시와 같다. 낭만적인 태도로 그의 삶을 기웃거리자는 말이 아니다. 현실 속에 발딛고 사는 우리들이 한 번쯤 먹거리를 위한 자세와 태도를 고민해 보자는 뜻이다.

 장 피에르 카르티에와 라셀 카르티에 부부가 그를 찾아가 보낸 일주일간의 기록이 이 책의 내용이다. 피에르 라비의 말과 생각을 관찰하고 그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두 부부의 태도는 진지하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삶을 소개하는 흥밋거리가 아니라 우리들 안에 살고 있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겸허한 반성의 목소리로 들린다.

 돈 주고 사는 주말 농장이나 노년을 자연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들 속에는 땅에 대한 인간들의 원형적인 그리움이 내재해 있다.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지침서나 참고서가 아니라 생에 대한 태도와 도시에서의 척박한 삶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생길 때 이 책은 고민의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삶을 돌아보게 하는 피에르 라비의 삶은 우리를 경건하기에 충분하다.


070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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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여기 머문다 - 2007년 제3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전경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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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수상하는 문학상은 단 한 명에게 수상을 안겨주어야 한다. 당연한 규칙이지만 많은 것을 함의한다. 당해연도에 발표된 소설들의 편차와 무관하게 습관적으로 누구에겐가는 상을 안겨야 한다. 이것이 문학상의 가장 큰 딜레마이다. 매년 수상하는 작품들이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매력적이고 뛰어난 작품이 나온 해도 있고, 기대 이하의 작품이 수상하기도 한다. ‘올해의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은 없습니다’라고 발표할 만한 용기(?)는 없을까? 문학상의 권위를 떠나 수상작이 출판사에 안겨줄 경제적 이익과 수상자가 안게 될 명예를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서른 한 번째 이상 문학상, 전경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가 나왔다. 책꽂이 한 켠에 스물 한 권째가 꽂혔다. 이상 문학상과 함께 세월이 흘러간다. 시간의 흐름은 문학상에 권위를 부여하고 특별한 의미를 갖게한다. 하지만 매년 작품집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감동과 감회는 부침이 심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별 감동도 큰 울림도 없었다.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상처는 일상적이다. 매일 벌어지는 일이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일이다. 비극적인 상황 인식이지만 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변이될 뿐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감정의 결들은 미세한 떨림과 섬세한 울림으로 표현된다. 섹스에 탐닉하고 상대를 속박하는 결혼관계가 결국 파경을 몰고 오고 머나먼 이국에서 섹스없는 백색결혼을 고민하던 주인공에게 빛의 환영이 보인다. 그녀에게 사랑과 결혼은 무엇인가를 점검해야한다. 아니,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확인해 보아야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지닌 내용을 너머선 문학적 성과에 있다. 수상 선정 이유에서 여러 명의 심사위원들이 밝히고 있지만, 그것이 이해되지 않거나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공감과 이해는 거리가 멀다. 엘리트 소설과 대중 소설의 벽을 허물었다는 이태동의 평가보다는 허무과 열기를 내뿜고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가 온당하다. 보는 시각에 따라 혹은 태도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만장일치로 한 작품을 선정하면 핵복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독자의 평가도 달라진다. 어쨌든 전경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 미흡하는 쪽에 과감하게 한 표 던진다.

 내용과 관계없지만 우수상 수상작의 순서를 등단순서로 한 것은 엽기다. 이전처럼 가나다순이 합리적이다. 군대도 아니고 문단 짬밥 순으로 우수상 수상작 순서를 정하다니 어이가 없다. 문단 권력은 이렇게 작은 곳에서 싹이 트고 내면화된다. 그들만의 서열과 위계가 자리잡아가는 과정이 이렇게 스치듯 비춰진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나?

 한창훈의 ‘아버지와 아들’이 내뿜는 사투리의 힘. 입말이 보여주는 구수함과 부자 간의 대화가 생활의 일부로 녹아들어 감칠맛이 난다. 김연수의 ‘내겐 휴가가 필요해’는 발상이 기발하며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소도시의 도서관을 중심으로 주인공을 오히려 에피소드 형식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취한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적절한 배치가 흥미롭다.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는 젊은 작가의 발랄함이 그대로 묻어나면서도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백이 날카롭고 진지하다. 심사위원들이 주목했다는 권여선의 ‘약콩이 끓는 동안’이나 편혜영의 ‘첫번째 기념일’은 밋밋하게 다가왔고, 천운영의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는 감각에 의존하고 있어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학상 수상 작품집으로 유일하게 매년 구입하는 책에 대한 느낌도 생각도 매년 달라진다. 시간이 흐르고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소설과 문학상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한 작가의 문학적 성과와 미래에 대한 격려가 내포된 것이 문학상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쏟아지는, 혹은 명멸하는 숱한 단편들 중에서 매년 옥석을 가리는 작업의 힘겨움과 독자들과의 약속 사이에서 분명한 자세를 보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작과 함께 지난 해의 문학적 성과를 기억하는 책으로서 의미를 가진 책이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엔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그냥 읽고 쓴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입맛과 손맛이 씁쓸한 것은 나 혼자 느끼는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다.


070209-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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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魔 2007-03-04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 책을 읽으신 소감이 저와는 틀리기에 이 주소를 제 블로그에 링크합니다. 저도 다른 분들의 시선을 통해 제 시야를 넓힐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벌써 21권째라니... 존경스럽습니다. 전 이제 겨우 5~6권째인듯 싶은데요.. by http://samma.org

sceptic 2007-03-05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간다는거죠...^^
 
천사는 여기 머문다 - 2007년 제3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전경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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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수상하는 문학상은 단 한 명에게 수상을 안겨주어야 한다. 당연한 규칙이지만 많은 것을 함의한다. 당해연도에 발표된 소설들의 편차와 무관하게 습관적으로 누구에겐가는 상을 안겨야 한다. 이것이 문학상의 가장 큰 딜레마이다. 매년 수상하는 작품들이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매력적이고 뛰어난 작품이 나온 해도 있고, 기대 이하의 작품이 수상하기도 한다. ‘올해의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은 없습니다’라고 발표할 만한 용기(?)는 없을까? 문학상의 권위를 떠나 수상작이 출판사에 안겨줄 경제적 이익과 수상자가 안게 될 명예를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서른 한 번째 이상 문학상, 전경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가 나왔다. 책꽂이 한 켠에 스물 한 권째가 꽂혔다. 이상 문학상과 함께 세월이 흘러간다. 시간의 흐름은 문학상에 권위를 부여하고 특별한 의미를 갖게한다. 하지만 매년 작품집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감동과 감회는 부침이 심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별 감동도 큰 울림도 없었다.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상처는 일상적이다. 매일 벌어지는 일이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일이다. 비극적인 상황 인식이지만 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변이될 뿐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감정의 결들은 미세한 떨림과 섬세한 울림으로 표현된다. 섹스에 탐닉하고 상대를 속박하는 결혼관계가 결국 파경을 몰고 오고 머나먼 이국에서 섹스없는 백색결혼을 고민하던 주인공에게 빛의 환영이 보인다. 그녀에게 사랑과 결혼은 무엇인가를 점검해야한다. 아니,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확인해 보아야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지닌 내용을 너머선 문학적 성과에 있다. 수상 선정 이유에서 여러 명의 심사위원들이 밝히고 있지만, 그것이 이해되지 않거나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공감과 이해는 거리가 멀다. 엘리트 소설과 대중 소설의 벽을 허물었다는 이태동의 평가보다는 허무과 열기를 내뿜고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가 온당하다. 보는 시각에 따라 혹은 태도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만장일치로 한 작품을 선정하면 핵복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독자의 평가도 달라진다. 어쨌든 전경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 미흡하는 쪽에 과감하게 한 표 던진다.

 내용과 관계없지만 우수상 수상작의 순서를 등단순서로 한 것은 엽기다. 이전처럼 가나다순이 합리적이다. 군대도 아니고 문단 짬밥 순으로 우수상 수상작 순서를 정하다니 어이가 없다. 문단 권력은 이렇게 작은 곳에서 싹이 트고 내면화된다. 그들만의 서열과 위계가 자리잡아가는 과정이 이렇게 스치듯 비춰진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나?

 한창훈의 ‘아버지와 아들’이 내뿜는 사투리의 힘. 입말이 보여주는 구수함과 부자 간의 대화가 생활의 일부로 녹아들어 감칠맛이 난다. 김연수의 ‘내겐 휴가가 필요해’는 발상이 기발하며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소도시의 도서관을 중심으로 주인공을 오히려 에피소드 형식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취한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적절한 배치가 흥미롭다.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는 젊은 작가의 발랄함이 그대로 묻어나면서도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백이 날카롭고 진지하다. 심사위원들이 주목했다는 권여선의 ‘약콩이 끓는 동안’이나 편혜영의 ‘첫번째 기념일’은 밋밋하게 다가왔고, 천운영의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는 감각에 의존하고 있어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학상 수상 작품집으로 유일하게 매년 구입하는 책에 대한 느낌도 생각도 매년 달라진다. 시간이 흐르고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소설과 문학상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한 작가의 문학적 성과와 미래에 대한 격려가 내포된 것이 문학상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쏟아지는, 혹은 명멸하는 숱한 단편들 중에서 매년 옥석을 가리는 작업의 힘겨움과 독자들과의 약속 사이에서 분명한 자세를 보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작과 함께 지난 해의 문학적 성과를 기억하는 책으로서 의미를 가진 책이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엔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그냥 읽고 쓴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입맛과 손맛이 씁쓸한 것은 나 혼자 느끼는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다.


070209-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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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2-09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1년째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계시군요. 저도 78년 것을 산 적이 있는데(물론 제가 그때 산 건 아니고 고등학교 때 예전 것을 산 것 같습니다. 저도 한 때 1년에 한권이라도 소설을 읽자는 생각에서 매년 살 생각을 했었는데...작년 것 한번 훑어보고 사볼 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

sceptic 2007-02-0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9년부터 매년 구입했고 그 이전 것이 몇 권 있어서 그렇게 됐습니다. 이제 번호가 빠지는 게 싫어서 그냥 사게 되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