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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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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다. 글쓰기가 행복하냐고. 글을 쓰는 일이 직업일 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거나 그 일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다른 일과 다르게 적성과 취미가 맞아야 할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글을 쓰는 능력과 노력까지도 갖추어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글을 쓰는 직업은 작가 이외에도 많은 직종이 있다. 글의 종류에 따라 대상과 내용이 결정되면 한결 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작가에 비해서. 하지만 어떤 글이든 쓴다는 행위 자체가 두려움이 아닌 창조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공통점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추측이지만 다른 직업과는 달리 세상에 유일무이한 나만의 창조물이 남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느낌이 색다를 것 같다.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글쓰기의 목적과 대상, 내용과 범위에 상관없이 기본적인 사실들을 나열하는 책부터 문학적인 글쓰기와 실용적인 글쓰기를 나누어 구체적인 방법과 기술을 전수하는 책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책들도 주관적인 또 하나의 창작물로 보인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소양과 배경지식 태도와 관점에 따라 쓰는 글은 천차만별이다. 사람의 생김만큼 다양한 글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 다른 경험에 따라 글을 쓰는 목적과 방법에 따라 다른 글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독자들이 그런 종류의 책을 읽는 목적도 각기 다르다. 실용적 목적과 배움의 목적에서부터 단순한 호기심과 책을 쓴 사람에 대한 관심까지 책을 읽는 목적만큼 얻어내는 결과도 다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많은 글쓰기에 관련된 책들이 나올 이유가 없다. 결국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는 것이다. 비법도 없다. 그냥 쓰면서 스스로 익히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배우는 방법이 최선이다. 그러면서 차별화시키고 개성을 만들어가는 것이 글이다. 그런 자세를 얼마나 진지하게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물론 타고난 재능은 양념이다.

미국의 작가 나탈리 골드버그가 쓴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한계를 확인해보지 못한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행복할 수 없다. 글을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에게 쓸 능력은 있는지, 무엇을 쓸 것인지, 왜 써야 하는지 하는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해결될 때까지 글을 쓰지 않고 읽기만 하면 안 된다. 나탈 리가 말하는 방법은 자신의 글쓰기를 극한까지 몰고가라는 주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써라’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무조건 써야 한다. 쓰면서 생각하라. 준비가 될 때까지 쓰지 않는다면 쓸 수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에 부딪힌다. 저자가 주문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볼 때 아주 간단하고 명확하다. 그래서 더 깊이 고민하게 한다. 전체적인 전략과 신념이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은 개별 전술보다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짧은 단상들에 제목을 붙혀 놓고 있어서 쉽게 읽히지만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어 실감나고 진지하다. 폭넓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일단 전달이 쉬워야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한다.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 책의 비결은 쉬운 표현과 명료한 전달에 있다. 독자들에게 명령형을 사용하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구나 제각각일 수 있는 글쓰기의 방법을 단정적인 어조로 말하는 것은 정말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렇게 했다. 그 방법이 거부감이 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담아 진심어린 마음을 전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다소 딱딱하거나 이론적인 내용이 되기 쉬운 글쓰기의 방법론을 이렇게 편안하고 쉬운 말로 써내려갈 수 있는 것도 물론 저자의 능력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학교 현장에도, 글을 쓰고 싶었지만 가슴 속에 꿈으로만 묻어둔 어른에게도 좋은 안내서와 지침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주변 사람을 돌아보고 세상을 돌아보고 결국 다시 자신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시나 소설을 쓰는 전문 작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도 글쓰기는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어떻게 쓸 것인가는 문제보다 왜 쓰지 않고 버티는가하고 물어보는 편이 빠르다고 나탈리는 충고한다. 쓰면서 생각하고 정리하고 살아가라. 일단 쓰고 있다면 절반은 성공했다. 작가로서 성공이 아니라 인생을 성공하기 위해 글을 쓰라고 충고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물론 그 충고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먼저 해야 할 것이다.

06050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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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과 철학 강의 1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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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와 다름없다. 전쟁과 평화라는 상반된 가치는 인류에게 방학 중 일기숙제처럼 영원히 미뤄진 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전쟁과 폭력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50여년간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은 한반도의 평화가 한민족에게는 가장 긴 평화(?)의 시기일지도 모른다. 지구상에서 단 하루도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날은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만큼 인류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그 폭력의 판단 기준을 선과 악으로 들이대거나 원인을 규명하는 일 자체가 부질없다. 인간은 싸운다. 고로 존재한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론의 1차적 욕구는 생리적 욕구다. 식욕과 성욕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렇다면 전쟁과 폭력은 이러한 1차적 욕구를 성취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가라는 물음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아니면, 마지막 5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위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행사해야 하는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폭력의 문제는 국가의 존립을 위한 몸부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중세의 봉건적 가치를 고집하는 수구세력의 목숨을 건 저항은 결국 나라를 말아 먹었다. 근대화의 기로에 선 조선은 대한민국이라는 제국주의를 선택했으나 일본에 의해 끝내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벌어지는 독립 운동과 일본의 패망에 의한 광복은 초유의 이념대립에 의해 한국전쟁으로 이어진다. 결국 친일 잔재 청산은 21세기에도 요원한 숙제가 되어버렸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박정희로 이어지는 현대사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고통이다.

이 폭력의 시대를 넘어 우리는 평화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까? 푸른 하늘에 짙게 드리운 먹구름은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인류의 미래는 과거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답변일 뿐인가?

도올이 말하는 폭력의 세기와 논술의 세기에 동의할 수는 없다. 조선시대 <책문>으로부터 논술의 역사를 찾고 있는 도올의 논술에 대한 거대 담론은 시대와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거시적 안목으로 비쳐지지만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온몸으로 부대끼는 삶의 현장에 적용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EBS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논술 강의를 하고 있는 도올은 <논술과 철학강의>라는 책을 통해 강의의 면면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두 권의 책 중 1권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폭력’의 문제와 관련시켜 살펴보는 1부와 철학의 제문제들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들을 짚어보는 2부는 가독성이 탁월하다. 고등학생들에게 강의하듯 막힘없이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어려울 수 있다는 서문의 내용이 무색하다. 3부는 문장론이다. 수많은 책을 쓰면서 대표적인 저술가답게, 개인 출판사를 운영할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도올의 문장론은 수준 이하이다.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이야기를 중언부언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래도 1, 2에서 보여준 도올 특유의 입담과 일관성 있는 시선은 한국 현대사와 철학의 제문제에 대한 명쾌한 설명으로 읽을만하다. 특히 맨땅에 헤딩하는 논술 세대를 위해서는 반드시 권해줄 만한 책이다. 바야흐로 ‘논술의 시대’가 도래했다. 세계 문학이나 한국 문학을 출판하는 모든 출판사와 글쓰기와 관련된 모든 책들의 앞, 뒤에 ‘논술’이라는 수식어는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다. 맹목적이고 무분별한 논술에 대한 집착은 그 결과가 뻔하지 않은가. 초등학생부터, 아니 취학 전 아동부터 시작되는 논술에 대한 광풍이 염려스럽다. 학교교육의 방법과 틀이 바뀌지 않은 채 논술에 대한 관심과 열의만 증폭되는 현실에 대한 대책은 시급하기만 하다.

도올은 책 말미에서 2006년을 시대의 물음에 답할 수 없는 침묵의 시기로 규정하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논술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책 두 권으로 논술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본적인 사유의 틀과 세상에 대한 이해 방식을 바로 잡는 데는 도움이 될 만하다. 도올 특유의 자뻑멘트가 눈에 거슬리기도 하고 우리말 문장과 한글 전용에 대한 주관적 아집이 보이기도 하지만 귀엽게 봐준다면 후한 점수를 줄 수 있겠다.

대학 입시와 직결된 각론으로 들어가서 이 책이 대입 논술을 위해 도움이 될만한가라는 질문에는 절대로 아니라고 대답해야 한다. 2008학년도 대입부터 시행되는 통합 논술의 예시들은 도올의 지적대로 프랑스의 바칼로레아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빼앗기거나 잘못된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실전과 훈련을 일치 시켜야하는 현실에서 본다면 부적당한 교재다. 하지만 넓고 깊은 의미에서 궁극적인 논술의 목적을 실현해야 한다면 어느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는 없다. 잡다한 지식의 암기가 아니라 논리적이고 창조적인 사유 방식들을 다듬어 나가기 위한 방편이라면 잠시 시간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060817-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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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과 철학 강의 2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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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져도 우리가 쉽게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철학은 실용적인 학문이어야 한다.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 상황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삶의 목적과 가치를 생각해 보는 관념론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질문들에 대해 안내자와 길잡이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부단한 훈련과 노력은 개인의 몫으로 돌리더라도 생각하는 방식과 세상과 삶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들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어렵지도 않고 비현실적이도 않은 철학은 불가능한가?

김용옥의 <논술과 철학강의 2>는 1권 논술편에 이어 ‘철학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발에는 오른발과 왼발이 있지만 신발에는 없다. 왜 오른쪽과 왼쪽 신을 구분해서 신어야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도올의 어린 시절은 암담했다.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것들에 대한 관찰과 생각으로부터 철학은 시작된다. 철학은 보편을 지향하지만 절대를 말하지는 않는다. 상식에 대한 반론으로 시작된 철학의 길은 정치와 종교에 대한 당연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철학으로 가는 길은 쉽고 간단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복잡해서 현실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도올은 말한다.

철학은 서양언어에서 비롯된 ‘지혜의 사랑’도 아니고 일본식 한자어인 ‘밝은 배움’도 아니다. 철학은 정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철학을 정의하는 사람의 관심의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가치를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지식도 아닌 철학을 우리는 왜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들려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중고생을 위한 논술과 철학을 위한 강의록이라는 명분으로 쓰여졌지만 누구나 한번쯤 스스로 ‘돌대가리’라고 선언하는 도올의 철학 이야기에 귀기울여 볼만하다. 근엄한 제목과 들어본적도 없는 용어들 사이에서 좌절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철학의 길을 제시해 준다. 우리의 삶이 텍스트이고 세상이 콘텍스트일 때 철학은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모든 가능성을 전제로 한 무전제의 전제가 철학이라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모든 우상과 편견들을 깨뜨리는 일이 철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내 마음의 우상을 깨뜨리고 개방적인 시선과 비판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서 철학은 시작된다.

그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당연하고도 다양한 전제 중의 하나이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고 말한 화이트 헤드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현실과 이상을 분리해서 인식할 때 철학은 우주 밖으로 멀어진다. 존재하지도 않는 ‘이데아’에 대한 탐구와 믿음은 현실과 유리된 철학을 낳았다. 동양의 장자가 이야기한 우물한 개구리는 소견이 좁을 뿐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 큰 흐름속에 작은 흐름을 포함시켜 관견管見을 이야기할 뿐이다.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개구리도 결국 현실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올의 관점과 방식이 정답일 순 없다. 그가 이미 밝히고 있듯이 철학에는 절대가 없으므로.

이 책은 동서양의 철학의 차이를 통해 동양 철학의 우월성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책은 아니다. ‘철학은 문화사’라고 말할 정도로 문화적 토양과 삶의 방식에 뿌리를 둔 철학을 맹목적으로 따를 이유가 없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언어의 차이와 생각의 차이를 낳고 결국 철학적 사유를 결정 짓는다. 우리가 발붙히고 살고 있는 이 땅에서 필요한 철학은 지금, 여기,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 해야 한다. 철학은 인간학이 되어야 한다는 도올의 말이 철학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방식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도올이 보여준 삶의 이력들과 그가 말해온 많은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읽는다면 도올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글은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고 편견없이 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는 일은 독자가 판단할 일이지만 도올을 지우고 그의 주장만을 놓고 보더라도 크게 실망할 만한 책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을 ‘대학 입시를 위한 논술과 철학강의’로 읽는다면 조금 거리가 멀다. 실전과는 다소 거리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할 논술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뚜렷한 자신의 목소리와 나름의 독특한 해석으로 철학과 세상을 읽어내는 도올의 목소리는 내게 신선한 울림을 준다. 서양 철학자 하나를 붙잡고 목숨거는 철학 교수보다 그를 비교 우위에 두는 이유는 교수가 아니라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이 책에서 보여주는 생각 때문이다. 도올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떠나 그의주장이 언제나 비판과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도 지나친 확신과 소신에서 비롯된 뚜렷한 신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독선이나 아집과는 거리가 멀다. 철학에 대한 수많은 생각과 방법들 중의 하나로 도올의 말에 귀기울여 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0609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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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
안정효 지음 / 모멘토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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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다. 말은 곧 사람됨을 규정하고, 글은 곧 그 사람 자체를 나타낸다. 말과 글은 다르다. 발화 의도와 글을 쓰는 목적이 같더라도 전달 방식과 매체가 다르기 때문에 전달 효과도 다르고 결과도 다르다. 물론, 글은 말보다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글보다 말을 좋아한다. 그래도 쓰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 그래서 글은 말보다 점점 진해진다.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글쓰기에 답이 있다는 말이 된다. 일차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글쓰기는 가르쳐야 하겠지만 문학적인 글쓰기는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배우려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꾸준히 써라. 한 마디 말로 끝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 글쓰기에 대해 오랫동안 소설을 써온 작가의 말에 귀 기울여 본다.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는 정말 만보다. 만보는 한가롭게 거닐다는 뜻이다.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서는 속보가 불가능하다. 오랜 시간이 투자되어야 하며 꾸준한 훈련이 뒷받침 되어야 하고 지속적인 노력과 열정이 보태져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한 가르침이 이미 제목에 숨어 있다. 단권의 책으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로또 복권보다 어려운 확률에 도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만한 문학적 재능과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종류의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문학에 대한 작은 관심과 소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소일거리 삼아 읽어볼 책이다.

한 작가의 창작론은 사실 지루하기 짝이 없다. 한 사람의 연애 이야기처럼 자신에겐 목숨처럼 소중했지만 남들에겐 따분하고 재미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특별하다고 해서 모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시중에는 글쓰기에 대한 책이 넘쳐나는 이유는 배움의 열망이 그만큼 뜨겁다고 볼 수 있다.

520여 페이지로 구성된 이 책은 일단 분량 초과다.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나중에 보태진 넷째, 다섯째 마당은 사족이다. 알면서 보탠 이유는 무언가? 유명 작가된 이후의 몸가짐과 태도까지 충고하고 있는 부분은 애써 눈감으려 해도 지루한 잔소리에 불과하다. 실질적인 글쓰기에 관한 셋째 마당까지는 소설가로서 150여권의 책을 번역한 번역가로서, 그간의 노하우를 나름의 방식대로 자연스럽고 알아듣기 쉬운 말로 풀어낸다. 학생을 지도하듯 편안하고 직설적인 어법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돌려 말하거나 어려운 어휘, 전문 용어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정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초보자들이 겪게 되는 실수와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짚어 주고 반드시 지켜야할 수칙들을 꼼꼼이 일러준다. 자상하고 친절한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있어 소설을 써보고 싶은데 딱딱하고 이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은 책들을 보며 한숨지었던 독자들에게 제격이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와 가장 닮은 책이다. 제목이 ‘글쓰기 만보’지만 사실은 ‘소설쓰기 만보’이다. 문학적인 글쓰기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산문에 국한된 특히 소설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실전 비법에 해당된다. 정규 코스를 거쳐 형식과 틀을 갖추어 나가는 방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세와 방법이야 어찌됐든 경기에 이기는 훈련만을 요구하는 거리의 허슬러처럼 여겨진다. 재밌고 유쾌한, 감동적이며 치밀한 소설 쓰기는 문학에 대한 이론과 문법보다도 실전에 관한 수많은 조언과 지침들이 피부에 와 닿는다. 그래서 이 책은 야전교범이라기보다 선임병들의 직접적인 조언처럼 훨씬 실감나게 다가온다.

대부분 외국 작가들의 낯선 소설들을 예문으로 들어 실제 적용 문제에 있어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고 지나치게 긴 예문과 동어 반복에 해당되는 설명들이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흠으로 볼 수 있다. ‘만보’라는 제목으로 그 모든 단점들이 다 가려질 수는 없다. 스스로 독자들에게 말했듯이 좀 더 탄탄하고 치밀한 내용의 구성이 아쉽다. 소설이든 아니든 독자들은 그렇게 한가하거나 여유있게 즐길만한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데릭 젠슨의 <네 멋대로 써라>나 나탈리 골드버그의 <뼈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보다 후한 점수를 주기는 힘든 책이다. 이태준의 <문장강화>와 같은 이론적 체계적 글쓰기 책이 아니라면 좀 더 간결하고 인상적인 몇 가지 패턴이나 기법들을 전수해줬으면 하는 것은 개인적인 바람일까?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소설가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작가들의 힘겨움과 노력, 열정과 한숨을 배우는 것도 이 책을 얻게 되는 덤이다. 한 권의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뿐만 아니라 작가의 땀과 눈물까지도 읽어 낼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한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접근한다면 읽을 만한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0609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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