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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그러니까, 유동이 바로 모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절대로 한곳에 머물지 않는…… 물 속에서도 공기 속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래서, 살아 있는 생물은 보통 모래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것입니다…… - P. 32
자연은 영원히 예술의 고향이다.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감정으로 자연을 바라보기도 하고 자연이 주는 경건함을 표현하는 예술은 어쩌면 수없이 반복되는 과거일 뿐이다. 내가 알고 있는 대상에 대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반적인 편견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특별한 혜안을 갖고 있지 않다면 산도 바다, 하늘과 강, 나무와 꽃도 피상적인 모습으로만 우리에게 인식된다.
모래의 생명이 유동이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유목적 특성을 가진 모래는 언제나 자유롭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위대한 문학은 정신이 번쩍들게 하는 각성을 준다. 그런 면에서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는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사춘기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까뮈의 『이방인』만큼 특이하고 인상적이다. 번역서가 가지고 있는 한계, 문장에 대한 의심을 떨쳐버릴 만큼 단숨에 책장이 넘어갔다. 이 책을 소개해 준 겨울님께 감사한다.(세상에 얼마나 많은 좋은 책이 있는 줄도 모르고 죽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안타까운 일인데 책을 권해주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바닷가 사구의 한 마을로 곤충채집을 하러갔던 한 사내. 그는 모래 속에 사는 여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영원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사내의 실종. 도대체 그는 모래로 된 굴 속 같은 집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낼 수 있는지 상상해보자. 모래로 뒤덮여 있는 곳에서 혼자 살고 있는 서른 남짓의 여인. 하룻밤을 신세 지게 된 남자가 다음 날 그녀는 전라의 몸으로 얼굴에 수건을 덮고 잠들어 있다. 기이한 광경일 수밖에 없다. 남자도 곧 익숙해지고 그 이유도 알게 된다. 살기 위해 모래를 퍼올리고 또 그렇게 생존하는 일상을 터득하게 되는 주인공.
하지만 주인공은 끊임없이 탈출을 꿈꾸고 실제로 마을 밖으로 탈출할 뻔 한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벗어날 수 없는 운명 같은 게 있다면 인생에서 발버둥쳐 봐야 소용없는 노릇이다. 숙명은 믿지 않지만 자신의 한계와 상황은 믿는다. 인연도 우연일 뿐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삶이 되기도 하며 한 곳에 머물지 않는 모래가 가장 자유롭게 떠돌고 싶은 영혼을 가둘 수 있다는 아이러니! 이 소설의 기이함은 등장인물들의 태도가 아니라 모래의 속성같은 인간들의 관계에 있는지도 모른다.
모래 암석 파편의 집합체. 때로 자철광, 주석, 그리고 간혹 사금을 포함하고 있다. 직경 1/16~2mm.
본문에 적혀있는 가장 객관적이고 사전적인 모래의 정의가 오히려 생경하다. 작가는 이 모래의 힘과 흐름을 모래의 기본적인 속성과 정직함을 따라간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사막이 끈적하게 피부에 달라붙는 땀방울과 한여름의 뜨거운 모래와 쉴새 없이 그 사이를 파고드는 바람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입안에서 서걱이며 씹히는 모래알갱이의 참을 수 없는 이물감처럼 낯설고 공포스런 주인공의 변신이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 잠자보다 우울해 보였다.
이 소설의 매력은 모래와 여자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벗어난 교사인 남자의 관계에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모래를 받아들이고 모래에 순응하며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여자, 타의에 의해 여자와 동거하게 된 남자의 몸부림.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두 사람의 태도는 사뭇 진지하다. 모래는 여자에게 생활이며 고통이고 숙명이자 삶이다. 그러나 남자에게는 구속이며 죽음이고 욕망이자 소멸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든 나는 맨 처음 까뮈가 떠올랐다. 앞서 말한 대로 『이방인』, 『시찌프스의 신화』의 강렬함이 생각났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책 뒤표지를 보고 웃고 말았다. 그런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 듯. 영화로 만들었다는데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뒤적거려보거나 찾아봐야겠다.
어쩌면,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힘의 절대적인 표현이 아닐까……. - P. 36
절대적인 힘은 어떤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는 통찰력 있는 문장이 눈에 들어온 것은 최근의 상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지켜내는 힘과 의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치에 대한 판단 기준이 아니라 행동과 신념에 대한 기준은 스스로 지켜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아니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내게 그런 역량까지 주어지진 않은 모양이다.
모래 구덩이에서 세상에서 가졌던 직업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장면이 나온다. 교사였던 주인공이 선생들에 대해 평가해 놓은 장면이다. 매우 인상깊다. 그리고 적확하다.
실제로 선생들만큼 질투의 화신에게 매달리는 존재도 드물다……. 학생들은 해마다 강물처럼 자기들을 타고 흘러가는데, 선생들만 그 흐름의 밑바닥 깊이 박혀 있는 돌멩이처럼 남아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 희망이란 타인에게 얘기하는 것이기는 해도 스스로 꿈꾸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기를 쓰레기 같은 존재라 여기고 고독한 자학 취미에 빠지든지 아니면 타인의 일탈을 고발하는, 의심 많은 도덕군자가 된다. 자유로운 행동을 공경하는 나머지 자유로운 행동을 증오하지 않을 수 없다……. - P. 78
스스로 꿈꾸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 한 군데 뿌리박힌 돌멩이는 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럴 바엔 차라리 직업을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선생이란 직업이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는 게 아닌가 말이다. 선생이 모래의 남자가 되어 원초적인 삶을 살게 되었을 때, 말과 행동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구경하는 즐거움은 다분히 가학적이다.
09120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