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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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  -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을 돌아보면 아득한 느낌이 든다. 1980년대 폭압적 정치현실과 사회적 혼란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많다. 최승호의 「대설주의보」는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우회적으로 ‘백색 계엄령’을 선포했다. 곽재구의 ‘은행나무’, 이성부의 ‘벼’ 같은 시와 함께 최승호의 ‘대설주의보’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시가 되었다.

  윤대녕의 신작 소설집 『대설주의보』의 제목은 곧바로 최승호를 연상시켰다. 윤대녕은 작가의 말에서 최승호에게 제목을 허락받았다는 내용을 적고 있어 연상작용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시와 소설의 내용은 무관하다.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를 읽고 임철우가 ‘사평역’이라는 소설을 쓴 것과는 거리가 좀 있다. 제목이 같다고 해서 상징적 의미가 동일하지는 않다. 다만 대설주의보라는 말이 주는 눈의 중량감, 백색의 공포와 혼란 등의 이미지는 윤대녕의 소설에서도 그대로 차용된다.

  일곱 편의 단편이 묶인 이번 소설집은 『제비꽃』 이후 그를 기다린 많은 독자들에게 단비처럼 충분하게 갈증을 풀어준다. 책장을 덮는 순간 다음 책을 기다리게 하는 작가를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윤대녕의 소설은 늘상 변함없는 것처럼 읽히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은어낚시통신』으로 80년대 소설의 문을 닫았던 그는 이제 아이러니하게도 80년대를 대표하는 시와 동일한 제목인 『대설주의보』로 2010년대의 문을 열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평론가의 말대로 ‘존재의 시원’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일에 지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작업을 줄기차게 해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평단과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꾸준히 자기 세계를 구축해가는 행복한(?) 작가 윤대녕의 앞으로도 계속 기다릴 필요가 있다. 

  『제비꽃』이 출간됐을 때 예스 24 독자와의 대담에서 그를 만났던 기억이 새롭다. 이대 후문 북카페에서 어느 독자가 ‘소설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쓴 리뷰였음을 작가는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두 시간 이상 이어진 대담으로 가까이서 본 그의 모습은 소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작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겠지만 즐거운 추억이다.

  이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소설들은 단편이면서 장편으로 읽힌다. 유사한 인물들 혹은 비슷한 사건들이 중첩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 상황, 마음의 갈피들이 끊어진 듯 보이지 않게 이어져 있는 것 같다. ‘보리’는 ‘정희’를 연상시키고, ‘수연’이는 ‘은주’를 떠올리게 한다. ‘해란’이가 ‘연미’고, ‘혜경’이 울산 화장품점 아가씨로 보인다. 이렇게 주인공들이 선명하면서도 중첩되는 것은 이 소설집이 단순한 단편 모음이 아니라 유기적인 구조물로 보이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보통 한 작가의 소설집을 읽다보면 파편화된 단편들이 뒤섞여 인상적인 한 두 편을 제외하고는 기억조차 희미해진다. 그런데 『대설주의보』는 한 편 한 편이 선명하게 각인된다. 그렇게 윤대녕의 문체와 감각이 오롯이 전달되는 것은 개인적인 취향 뿐만 아니라 그의 소설이 가진 진정성의 힘은 아닐까? 결국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일상에 대한 환멸 속에서 길어 올리는 필연적 구멍 같은 것은 아닐까? 현실에서 모든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버리는 힘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간극 때문인지도 모른다. 메울 수 없는 그곳에 대한 미련과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려는 간절함이 팽팽한 긴장을 만들고 그 긴장의 끈을 조율하는 솜씨는 윤대녕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늘 그리워하지는 않아도 언젠가 서로를 다시 찾게 되고 그때마다 헤어지는 것조차 무의미한 관계가 있다. - ‘대설주의보’, 101쪽

  표지를 벗겨내고 소설을 읽다가 처음 밑줄 그은 문장이다. 나중에 표지 카피로 썼음을 확인하고 편집자를 떠올려 보았다. 윤대녕이 말하는 그 관계는 말해지는 순간 그것이 아닌 관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맺는 수많은 관계 속에 그 말의 진실이 숨어 있다. 확언할 수 없는 미래, 불투명한 현재, 아득한 과거 속에서 서로 상처 받는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객관적 거리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내면의 문제로 몰아가는 작가의 태도는 오히려 절실함에서 독자들을 압도한다. 비현실적 인물들을 보는 거리감이 아니라 나사가 하나씩 빠져버린 사람들의 무감함이 오히려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상처는 대개 스스로 받는다는 사실을.

“뭐 꼭 또래를 사귀라는 법은 없지. 하지만 모쪼록 상처에 대비하거라. 상처라는건 대개 스스로 받는거니까.” - ‘대설주의보’, 136쪽

  가끔 윤대녕의 소설을 읽다가 현실 속의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아니 내 주변 사람들을, 그들과의 관계를 돌아본다. 그래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문장에 혹은 관계의 잔인함에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서로를,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는 우리를 위하여!

도대체 우리는 무슨 일을 하며 나이를 먹어가고 또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사는 게 모두 어리석고 잔인한 속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 윤대녕, ‘도비도에서 생긴 일’, 234쪽

  거대한 서사도, 기막힌 사건도, 처음 듣는 이야기도, 특별한 인물도, 가고 싶은 배경도, 자극적인 표현도, 없다, 윤대녕의 소설에는. 하지만 여전히 그의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평론가 신형철의 말대로 “시를 엿보는 소설도 있지만 시를 통과한 소설도 있다는 것을, 남자와 여자는 완전히 만날 수도 완전히 헤어질 수도 없다는 것을 나는 그의 소설에서 배웠다.”

세상 모든 이들이 저기 언덕 너머에 숨어 있는 달리아 밭처럼 뜨거운 마음으로 생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삼가 두 손 모음. - 윤대녕, ‘여름, 여행’, 276쪽

오늘도 삼가 두 손을 모으고 하루의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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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 개비의 시간 - 제3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문진영 지음 / 창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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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여전히 흔들렸고, 버스 손잡이가 아닌 그의 팔을 잡았을 뿐인데 나는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았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내 옆에서 함께 흔들려주었기 때문인지도.

  그렇게 흔들리는 인생에서 단 하나 흔들리지 않는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 한다, 우리는. 아니, 흔들려도 좋으니 옆에서 함께 흔들려주는 누군가를 원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불안하고 곁에 있는 사람조차 나와 다른 리듬으로 흔들릴 때 고독을 절감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혼자라서 느끼는 외로움과 다른 내 실존의 깊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근원적 자아와 마주한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자아정체성이 형성될 무렵에 낯설과 자신과 대면하지 못한 사람은 타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조차 불안하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죽도록 달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드디어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진 후에도 고독하기는 마찬가지다.

  신인작가 문진영의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은 2010년 청년들의 그로테스크한 초상화이다. 제3회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았으니 한 젊은이는 구원을 받았으나 그가 현실에서 만났던 혹은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청춘들은 결코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이 소설은 그만큼 우울하게 읽혔다. 소설은 어차피 읽는 독자들의 수만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고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 나는 이 소설에서 미래의 희망이나 그래도 다시 한 번 따위의 안일한 현실 인식을 읽어내지는 못했다. 이 소설은 그만큼 참담한 현실을 건조한 목소리로 담아내고 있다.

  문진영은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스물넷 대학생이다. 여자 대학생이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모래바람이 서걱이는 메마른 목소리로 담아내고 있어 독자들에겐 출구 없는 미로처럼 답답하게 읽힌다. 단순하게 소설을 쓰기 위해 오랜 시간 습작 과정을 거친 문학 소녀의 글이 아니라 감수성 예민한 대학생의 고백처럼 읽히는 것은 문진영의 문장이 가진 매력이거나 현실의 아득한 거리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니체가 말했다.
한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찌 할 수 있으랴. - P. 36


  소설은 네 명의 주인공이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다. 보잘 것 없는 비정규직 혹은 예비 직장인의 생활에 대단한 사건은 없다. 물이 흐르듯 시간 속에 스며드는 청춘들의 하릴없음이 아프게 느껴진다. 미친 듯한 열정과 미래의 꿈에 대한 도전이 피 끓는 젊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부박한 현실에서 길어올릴 수 있는 작은 희망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 소설에서는 그것을 찾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 자본주의 본산 강남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희망도 미래도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좌절과 슬픔 속에서 우울하게 살아가는 청춘도 아니다. 그가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M이나 편의점에서 교대로 일하는 J 또한 마찬가지다. 건너편 카페에서 일하는 물고기도 나와 비슷하다. 네 명의 등장인물은 성별과 상황만 다를 뿐 표정 없이 떠도는 미라처럼 감정이 배제된 것 같다. 익명성의 천박한 자본주의 중심에 서있는 주인공은 일회용으로 가득한 편의점처럼 조용하고 시원하게 그렇지만 환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 흑백필름 같은 현실을 문진영은 결코 우울하게 그려내지 않는다. 한낮의 빛이 어둠의 깊이를 알 수 없다는 듯 네 명의 청춘들은 그들만의 깊이와 넓이로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밝고 경쾌할 정도는 아니지만 잔잔한 미소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의 유머와 감각적인 문장들은 이 소설의 장점이다. 높고 큰 목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어딘지 꾹꾹 힘주어 눌러 쓴 초등학생의 공책처럼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할 것 같은 진지함이 묻어난다.

게다가, 딱 한 판만 더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거든. 한 판만 더, 한 판만 더…… 그러다가 막상 성공하고 나면, 그때는 최단기록을 내고 싶어지는 거야, 젠장. 사는 게 그런 거지. - P. 121

  사랑조차 돈에 저당잡힌 88만원 세대의 세태소설로 읽는다면 이 시대의 청춘이 너무 비참하다. 이 소설은 그렇게 통속적으로 읽을 수도 있겠으나 ‘꽃들에게 희망을’ 외치는 양치기 소년처럼 아이들에게 젊은이들에게 끝없이 경쟁을 강요하고 1등만 독려하는 사회의 어른들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만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가르친 어들들에게 묻고 싶어졌다. 눈높이를 낮추면 취직할 수 있는지 취직하고 나면 결혼해서 집사고 행복하게 애를 키우며 살 수 있는 세상인지.

  세상은 조금씩 자란다고 믿는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이 만들어가는 바람직한 세상을 생각해 보자.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날개짓을 할 수 있는 한정된 공간만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날 수 없는 날개를 달아 준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금 아주 많은 위험과 시련 속에 서 있다. 교육, 환경, 정치, 사회, 문화 등 어느 것 하나 희망만으로 가득했던 시절은 없었지만 지금은 혹독한 겨울이다. 아무리 난해한 문장들로 가득 찬 책이라도 읽을 수 없는 책이 없는 것처럼 이겨내지 못할 겨울도 없는 법이다. 어쩌면, 당신이 그런 책일지도 모른다.

그래, 어쩌면 당신은 늘 내게 책장을 펼쳐 보이고 있는 한 권의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언어로는 도무지 해독해낼 수 없는, 난해한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었다. - P.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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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 사계절 1318 문고 56
박채란 지음 / 사계절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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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마. 사랑이 제일 중요한거야. 작은 민들레 홀씨 하나에게도, 수백년을 살아낸 메타세콰이아 나무에게도, 그리고 너희들에게도, 똑같이 사랑이 가장 중요해. 
사랑이란, 너희가 선택한 바로 그 삶 안에서 살아 있으려는 마음이니까. - P. 263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웁다는 말 한 마디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말을 백 번쯤 되뇌었는지 모르겠다. 그리움은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 충분 조건이다. 그립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은 눈을 감은 채 그리움의 부피를 가늠하는 일이고 그 무게에 눌려 숨조차 쉬기 버거운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사랑이 없는 삶은 누구에게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말이다. 첫사랑은 말하자면 우리가 비로소 성인이 되기 위한 관문과 같은 것이다. 대부분 과거의 일일 터이니 ‘첫사랑’을 떠 올려 보자. 아득한 열기와 혼돈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끝없는 자책과 후회가 밀려온다면 지독한 첫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사람이다. 서툴고 모라자서 아름다웠던 순간을 추억하며 늙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비겁한 것만은 아니다. 청소년기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그 혼란을 ‘사랑’과 함께 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박채란의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는 네 가지 사랑이 등장한다. 이성에 대한 사랑(새롬)은 물론이고 가족에 대한 사랑(태정과 선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새롬과 선주) 그리고 삶에 대한 사랑(하빈과 선주)이 그것이다. 사랑의 종류를 나눌 수 있을지 의문스럽지만 그 대상을 나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열 여덟, 고등학교 2학년인 여학생들 사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소설은 엉킨 실타래처럼 사건의 실마리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만큼 치밀하게 계산된 전개 과정은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사춘기 소녀들의 관심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거창한 꿈을 꾸기도 하지만 대부분 소박하고 사소한 일들이다. 이성에 눈을 뜨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새롬), 부모님의 이혼으로 헤어진 아버지를 그리워하기도 하고(태정), 자살한 언니와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엄마 때문에 괴로워 하기도(선주) 한다. 백혈병에 걸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하빈) 아이의 입장에서 새롬과 태정 그리고 선주의 고통은 어떻게 보였을지 짐작이 간다.

  사랑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하빈의 전언이 이 소설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삶은 숙명처럼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우리의 선택이었다. 부모와 환경을 탓하기도 하지만, 실제 그것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만 우리의 삶은 우리의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작가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아이들에게 다양한 사랑의 의미를 보여준다.

  먼저 새롬이를 살펴보자. 사랑하는 오빠에게 버림받은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 못생긴 손이 콤플렉스지만 오빠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별의 아픔보다 누군가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더 견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정이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를 잃는다. 영원히 떠나버리려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분노가 뒤섞인 마음이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선주는 남부럽지 않은 사회경제적 조건을 갖춘 환경이지만 억압적인 부모 때문에 자살한 언니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고통받는다. 세 명의 아이들은 하빈이라고 하는 아주 특별한 아이를 만난다. 또래 아이들보다 두 살이나 많은 하빈이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소설의 후반부에 그 이유가 그럴듯하게 설명되지만 오히려 독자들은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작가는 하빈이의 입을 빌어 사랑의 의미와 중요성을 말한다. 식물에 대한 사전적 지식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를 말해준다. 식물이 가지고 있는, 아니 자연의 신비가 품고 있는 진리를 인간은 얼마나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되묻고 있는 듯하다. 스스로 세상에 파견된 안전요원이라고 말하는 하빈이는 쉬운 인생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코끼리가 아카시아를 돕는 방식을 통해 세 명의 아이들의 고민을 해결해 준다. 어쩌면 세 명의 아이들은 하빈이를 통해 스스로의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을 치유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하빈이는 ‘거울’의 역할을 한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가끔 살아있으려는 마음을 의심한다.

  이 책의 제목이 된 ‘사이프러스’는 네 명의 아이들에게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배우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식물로 둘러쌓인 옥상 정원에서 아이들은 가슴에 응어리진 모든 의문을 풀어내고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착한 사람이 모두 바보가 아니라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깨우치기도 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확인하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10대 소녀들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심리 상태를 읽어내고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소설이 감동적인 이유는 현실을 문제를 읽어내는 섬세함과 대안을 제시하는 상상력이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적 상상력을 포기하지 않은 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심각한 문제들을 밀도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특히 이 모든 소동과 혼란의 중심에 ‘자살’이라는 쉽지 않은 소재를 끌어들여 그 심각성과 중요성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원인을 제시하고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다소 억지스런 면이 없지 않지만 사회과학 분야의 책이 아니기 때문에 문학적 형상화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다만 하빈이의 생활기록부를 담임의 책상에서 확인하거나 전학 온 학교의 담임을 불러내는 일 등 현실감을 떨어뜨리는 몇 가지 요소가 아쉬웠다.  

  청소년들의 자살은 대입제도 등 사회구조적 문제, 부모들의 양육태도, 주변 환경 등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앞으로 많은 작가들이 좀 더 깊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주제이다. 무겁고 심각한 소재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작가뿐만 아니라 기성세대 모두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청소년 문제는 바로 우리들의 현재이며 미래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신가?


100314-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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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 여자로 살고 싶은, 하지만 남자라 불리는 열일곱 청춘의 이야기
줄리 앤 피터스 지음, 정소연 옮김 / 궁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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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면서 동성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 적이 있다. 이성과 논리, 말과 글로 표현된 성적(性的) 소수자에 대한 생각과 시각적 이미지로 확인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처럼 낯설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생소함을 아름다운 자연 속에 배치함으로써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대자연 속에 펼쳐지는 두 남자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깊은 슬픔을 토해 냈고, 히스레저의 사망으로 영화에 대한 기억은 더욱 비극적으로 남아있다.

  사람들은 흔히 동성애 혹은 트랜스젠더를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보다 지독한 성적(性的)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전통적인 동양 사회에서는 더욱 심하다. 이 금기에 대한 도전과 사회적 저항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여전히 뜨거운 감자처럼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을 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논리와 이성에 앞서 심정적으로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그 편견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자로 살고 싶지만 남자로 태어난 아이는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다. 그 이름은 『루나』. 밝게 빛나는 태양이 되지 못하고 어둠이 내린 뒤 달빛이 되어야 하는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적절한 이름이다. 작가 줄리 앤 피터스는 커밍 아웃한 레즈비언이다. 작가의 직접 체험에서 길어 온 사유의 깊이는 독자들을 충분히 매료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자아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성인들에게도 많은 고민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그들은 비정상일까? 정상이란 또 무엇일까?

  작가는 태어날 때부터 남자의 몸이었던 불행한 여자 아이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준다. 남자 아이가 여성적 성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여자 아이가 남자의 몸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야기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편견의 벽과 마주한다.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집단적 성향과 관습의 벽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는 단순함, 그것은 그럴 것이라는 편견, 예전에도 그랬다는 안일함 앞에서 우리는 좌절할 때가 있다. 더구나 동성애도 아니고 트랜스젠더의 문제는 우리의 가치관과 전통적인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음을 해체한다. 도대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어떤 기호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본능과 욕망, 유전적 질서의 힘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혼란스런 마음을 갖고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렴풋이 그들(트랜스젠더에 대한 거리두기와 가치 판단 미루기를 위한 3인칭)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가족과 사회 안에서 기대되는 성역할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문화적 관습으로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옳고 그름을 떠나 하나의 질서 속에서 이해하는 거대한 사회적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다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소설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트렌스젠더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남자 주인공의 여동생 레이건이 이 소설의 서술자이다. 오빠 리엄과 언니 루나는 같은 사람이다. 한 사람 안에 두 개의 자아를 곁에서 매일 지켜보아야 하는 동생 레이건의 시선은 부모 혹은 다른 사람의 시선과 다르다. 밤마다 잠을 설치며 루나가 되는 오빠의 모습을 지켜보며 리엄은 가짜이고 루나가 진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레이건의 고통은 루나만큼 심각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관찰자 시점이 아니라 루나와 레이건 두 명이 모두 주인공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리엄은 현실 속에서 거의 완벽한 남자로 등장한다. 잘생긴 외모와 우수한 학업 성적으로 여학생들에게 늘 인기가 많고 학교에서 인정받는 학생이다. 열 일곱 청춘으로 부족한 것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와 어머니의 외면 속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루나는 리엄의 진짜 모습이다. 아무리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해도 루나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더더욱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동생의 도움을 받아 여장을 하고 쇼핑을 하러 나가는 장면은 읽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사람들의 시선은 마치 독자에게 던져진 편견에 대한 비난처럼 느껴진다. 결국, 리엄은 수술을 결정하고 집을 떠난다. 여동생과 이별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지만 이 소설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특별한 소재와 인상적인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에 의해 서술된 소설이 아니라 한번쯤 우리 모두가 성찰해 보아야 할 문제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나의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관심과 애정을 갖고 그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들의 의무가 아닐까? 내가 가진 특별한 성격과 취향처럼 선택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좌절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자.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까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주변의 소수자들을 위한 작은 관심 그리고 편견 없이 그들을 대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해할 수 있으나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태도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까. (性的) 소수자 이외에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싶다. 정확하고 섬세한 표현, 탁월한 심리 묘사, 담담한 문체가 이끌어 낸 아름다운 소설 한 권을 누구에게 권해볼까.


1003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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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빨강 창비청소년문학 27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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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연두

난 연우다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우물물에 설렁설렁 씻어 아삭 씹는
풋풋한 오이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옷깃에 쓱쓱 닦아 아사삭 깨물어 먹는
시큼한 풋사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 연두
풋자두와 풋살구의 시큼시큼 풋풋한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풋내가 나는 연두
연초록 그늘을 쫙쫙 펴는 버드나무의 연두
기지개를 쭉쭉 켜는 느티나무의 연두
난 연우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누가 뭐래도 푸릇푸릇 초록으로 가는 연두
빈집 감나무의 떫은 연두
강변 미루나무의 시시껄렁한 연두
난 연두가 좋아 늘 내 곁에 두고 싶은 연두,
연두색 형광펜 연두색 가방 연두색 팬티
연두색 티셔츠 연두색 커튼 연두색 베갯잇
난 연두가 좋아 연두색 타월로 박박 밀면
내 막막한 꿈도 연둣빛이 될 것 같은 연두
시시콜콜, 마냥, 즐거워하는 철부지 같은 연두
몸 안에 날개가 들어 있다는 것도 까마득 모른 채
배추 잎을 신나게 갉아 먹는 연두 애벌레 같은, 연두
아직 많은 것이 지나간 어른이 아니어서 좋은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초록이 아닌 연두


  보기 드문 ‘청소년시집’이 나왔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책을 받아 들고 한참이나 뒤적였다. 최근 청소년 문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출판사마다 청소년 대상 소설이 활발하게 출판되고 있다. 아동 작가와 기성 작가가 청소년 출판 시장에 뛰어들어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만큼 수요가 있고 시장이 형성되어 간다는 말이다. 반가운 일이다. 어린이 문학과 성인 문학의 중간쯤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했던 청소년문학이 자리를 잡아 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 문학은 곧 청소년 소설로 인식된다. 다양한 갈래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 꾸준히 창작되고 독자들의 관심과 호응이 필요하다. 특히 시의 경우는 청소년 대상 시가 거의 창작되지 않는다. 그래서 박성우의 청소년시집 『난 빨강』은 기념비적인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중앙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2009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저작 및 출판 지원사업에 청소년 시가 당선되면서 청소년문학을 시작했다고 한다.

  명확한 시기를 구분할 수 없는 청소년은 어린이와 성인 사이의 미성숙한 인격체를 이르는 말이다. 성인에 가까운 육체적 성숙에 비해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스무살 언저리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 중, 고등학생이 여기에 해당한다. 박성우 시인은 대한민국 청소년이 겪어야 하는 생활 속의 이야기를 세심한 관찰을 통해 발랄하게 표현한다. 채 여물지 않은, 초록이 되지 못한 ‘연두’가 그들의 특징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아직은, 초록이 아닌 연두.

심부름

누나는 고 삼이다
반에서 일이 등 하는 고 삼이다

그런 누나가 뜬금없이
만두가 먹고 싶다고 해서,
뒤에서 오 등 정도 하는 내가
밤늦게 만두 심부름을 갔다

너무 늦어서 이 골목 저 골목
문 닫지 않은 만두 집을 찾아 헤매다가
큰 사거리 근처까지 나가서 겨우 샀다

만두가 식을까 봐 뛰어서 집으로 갔다

심부름 가서 딴짓하다 늦게 왔다고
엄마한테 잔소리를 잔뜩 들었다

난 뒤에서 오 등이니까,
말대꾸할 힘도 없어서 그냥 잤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청소년들은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의 고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세대이다. 수능으로 대표되는 성적표가 그들의 정체성이다. 고3이 된 공부 잘하는 누나를 위해 만두를 사러 간 동생의 심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이 시는 일상에서 느끼는 청소년들의 심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른들의 시각이 아니라 그들의 처지와 시각에서 바라보면 세상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똑같은 시기를 거쳤으면서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향해 아이들은 오늘도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른다.

  특히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와 수능 결과로 패배감을 맛본 채 스무 살을 시작해야 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한줄세우기, 승자독식 사회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의 잘못된 경쟁 구도로 만들어진 기형적 사회 구조를 반영한다. 인간사회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지만 스무살이 되기 전에, 성적만으로 인생의 대부분이 결정되는 사회는 공정하지 못하다. ‘공부기계’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대책은 없는 걸까? 참고 견디라는 말로만 그들을 위로할 수는 없다.

공부 기계

알람 시계가 울린다

고등학교 이 학년인
공부 기계가 깜빡깜빡 켜진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졸린 공부 기계는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간다

공부 기계는 기계답게
기계처럼 이어지는 수업을 기계처럼 듣는다

쉬는 시간엔 충전을 위해
책상에 엎드려 잠시 꺼진다

보충수업을 기계처럼 듣고
학원수업을 기계처럼 듣고
공부 기계는 기계처럼 집으로 간다

늦은 밤 돌아온 공부 기계는
종일 가둥한 기계를 점검하다,

고장 난 기계처럼 껌뻑껌뻑 꺼진다


  모두가 똑 같은 일상을 견뎌내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 공부기계가 하니라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서로 다른 특기와 적성을 살려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가? 21세기가 되어도 대입제도와 교육정책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 오래가지 못할 것 같은 혹독한 경쟁구도는 굳건하다. 이제 그 경쟁이 공정하지도 못한 게임으로 변질되고 있다. 신음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공부기계가 아니라 ‘난 빨강’이라고 외치는 청소년들의 꿈과 열정에 주목해 보자. 발랄하고 적극적인 아이들,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다양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학교, 즐겁고 밝은 웃음으로 가득한 가정이 미래의 청소년들에게 가장 중요하다. 3월이 되면 새로운 학년,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 새롭게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묻고 싶다. 넌 빨강이 되고 싶은지.

난 빨강

난 빨강이 끌려 새빨간 빨강이 끌려
발랑 까지고 싶게 하는 발랄한 빨강
누가 뭐라든 신경 쓰지 않고 튀는 빨강
빨강 립스틱 빨강 바지 빨강 구두
그냥 빨간 말고 발라당 까진 빨강이 끌려
빼지도 않고 앞뒤 재지도 않는 빨강
빨빨대며 쏘다니는 철딱서니 같아서 끌려
그 어디로든 뛰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빨강
난 빨강이 끌려, 새빨간 빨강이 끌려
해종일 천방지축 쏘다니는 말썽쟁이, 같은 빨강
빨랑 나도 빨강이 되고 싶어 빨랑
빨랑, 빨강이 되어 싸돌아다니고 싶어
빨빨 싸돌아다니다가 어느새 나도
빨강이 될 거야 새빨간 빨강,
빨강 치마 슈퍼우먼이 될 거야
빨강 팬티 슈퍼맨이 될 거야
빨강 구름 빨강 바다 빨강 빌딩숲 만들러 날아다닐 거야
새빨간 거짓말 같은 빨강,
막대사탕처럼 달달하게 빨리는 빨강,
혀를 내밀면 혓바닥이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을 것 같은 달콤한 빨강
빨-강, 하고 말만 해도
세상이 온통 빨개질 것 같은 끈적끈적한 빨강


  박성우의 시는 청소년들이 겪는 거의 모든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내용과 소재면에서 그들의 생활과 밀착되어 있다.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 겪게 되는 성적, 가족, 이성친구, 사춘기, 컴퓨터, 노래방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가감없이 그려진다. 시가 아니라 마치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재밌고 즐거운 감동을 주는 청소년시집이다.

  다소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경쾌하고 즐겁게 엮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 청소년들은 시가 어렵지 않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어른들은 그들의 생각과 고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시집이다. 이 책을 통해 청소년시집이 활성화되고 보다 많은 시인들이 그들의 고민과 생각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국어 선생님

내가 가진 책들은
어떤 페이지를 펴보아도
온통 국어 선생님 얼굴만 보여준다
책 속에서 아른아른, 또렷하게 나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준다

찰싹, 내가 내 뺨을 치며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국어 선생님은 책 속에서 잠깐 사라진다

그러다가는 금세 또 또렷하게 나타나는
내 사랑 국어 선생님은,
내가 펼치는 모든 교과서와 참고서에서 나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고는
나를 등 뒤에서 꼭 껴안아 준다

찰싹, 정신을 바짝 차리려
찰싹찰싹, 내가 내 뺨을 때리고는
얼얼해진 뺨을 가만히 어루만지다 책을 들면

어느내 나는 또, 국어 선생님과 검푸른 바닷가에 있다

말똥말똥 멀뚱멀뚱 내려온 뭇별들과
찰바당찰바당 바다를 거니는 달이 있는 바닷가,
모래밭에 나란히 앉은 내 사랑 국어 선생님이
간질간질 달콤한 귓속말을 해온다 나도 사랑해,

책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100307-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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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yur 2010-03-09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간만에 통쾌, 상쾌한 시편들을 마주 대하니
문학의 힘이 느껴집니다. 나이를 떠나서 공감할 수 있는 편편들이었습니다.
박성우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작가란 인간의 마음을 건드리는 마술사라는 생각이 드네요.


sceptic 2010-03-28 22:53   좋아요 0 | URL
저도 즐겁게 아주 잘 읽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짚어내서 공감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