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진화
데이비드 버스 지음, 전중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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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움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감정일까?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유전 형질에서 비롯된 모든 행동 양식과 본능적 욕망과 충동들은 ‘적응’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일 수밖에 없는 요소는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그리움인가 아닌가.

  진화심리학은 동물의 생태를 관찰해 온 진화생물학과 더불어 가장 흥미로운 과학의 한 분야이다. 인간의 행동과 심리 상태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한 관심은 당연해 보인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보았던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를 권할 만하다. 짝짓기 행동의 원인이나 여자가 원하는 것 그리고 남자가 원하는 것에 대한 책들도 넘쳐난다. 단순하고 자극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책들을 읽었다면 이제 진지한 고민을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남자는 여자를 모르고 여자는 남자를 잘 모른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선풍적인 히트를 기록한 이유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보다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요소에 대한 관심과 해답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남자와 여자의 갈등과 오해는 계속될 것이다. 물론 안다고 문제가 없어지지는 않지만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수많은 분노와 갈등을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과학은 우리에게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주고 수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기능을 담당해 왔다. 진화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우리가 걸어온, 인류가 살아온 세월에 대한 흔적과 패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실제 행동에 나타나는 결과들과 그 결과의 원인들에 대한 깊은 고민과 통찰력을 제공해 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러한 상(像)은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지도 모른다. 남편이 때때로 너무나 쉽게 거의 처음 본 여자와 침대로 직행한다는 사실이 아내를 불편하게 할지 모른다. 아내가 계속해서 짝짓기 가능성을 탐색하고, 다른 남성에게 성적으로 접근해 달라는 힌트를 던지고, 때로는 들키지 않고 남편을 오쟁이 지운다는 사실이 남편을 볼편하게 할지 모른다. 인간 본성에는 경악스러운 면이 있다. - P. 196

  세상에는 불편한 진실들이 많다. 안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그리고 대책이 없거나 막막한 이야기들. 인간 본성에 관한 솔직하고 진실한 이야기들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보다 우리의 행동과 현실에 나타난 문제들을 객관화 시켜 보거나 통찰력을 가지고 관찰하는 일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싶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진실이 있는 법이다. 두렵다고 회피할 수는 없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지, 왜 내 마음은 그렇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을 때 이 책이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여자가 원하는 것, 그리고 남자가 원하는 것, 하룻밤의 정사, 배우자 유혹하기,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성적 갈등, 파경, 남녀의 화합, 여성의 은밀한 성 전략 등 580여 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고 진지하게 남자와 여자의 관계들을 살펴보고 있는 이 책을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지기도 하다. 종교에 따라,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인식할 수도 있겠다.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인류학적 관점에서 수많은 시간동안 인종과 국가를 초월해서 시행된 관찰과 면접 등 진화심리학에 관한 연구 결과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나왔고 진행되고 있으나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있다. 과학이 모든 걸 해결해 준 시대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미 2,000년 전에 오비디우스가 이와 똑같은 현상에 주목하여 문자로 씌어진 역사를 통해 이 전술이 줄곧 사용되어 왔음을 기술했다. “소녀들은 시를 격찬하지만 값비싼 선물을 받으려 애쓴다. 아무리 까막눈 멍청이라도 돈만 많다면, 소녀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 오늘날은 진정 황금만능의 시대이다. 황금으로 명예를 사고, 황금으로 사랑을 얻는다.” 우리는 아직도 황금만능 시대에 산다. - P. 207

  돈많은 남자 김중배를 선택한 심순애의 비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0년 전에 오비디우스가 한 말을 기억해야 한다. 돈은 자원이고 안전이며 평화이고 행복이다. ‘금융은 돈이 아니라 행복입니다’라는 논증적 오류를 포함한 광고 카피가 당당하게 대한민국 안방에 울려퍼지는 현실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든 아니든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보다 많은 자원을 보유한 남성에게 끌리는 여성의 본능을 절대로 욕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이 책은 더 이상 ‘사랑’만 먹고 살겠다는 순진한 다짐도, 순애보도 가당치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가 몰랐던 많은 행동 패턴들, 특히 남녀 간의 심리와 행동 방식들은 오랫동안 진화되어온 ‘적응’의 결과이며 욕망에 충실한 유전자의 명령이라는 사실들이 확인된다. 축적된 연구 결과들이 대중적인 책을 통해 이렇게 쉽고 설득력 있게 전해지기도 힘들 것 같다. 인간의 질투에 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질투심을 일으키는 사건은 남성의 경우에는 부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적응적 문제에 직결되는 반면에 여성의 경우에는 자원과 헌신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문제에 직결된다. - P. 259

  이 책을 읽는 내내 충돌하는 것은 세상의 윤리와 도덕 그리고 유전자와 욕망 사이의 충돌이었다. 이 둘 사이에 벌어지는 간극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진화심리학자와 종교인 그리고 윤리학자 사이의 대담과 토론을 준비해 보면 어떨까 싶은 상상을 해 보았다. 인간은 끊임없이 교육을 받고 윤리적 가치관을 신봉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교과서와 다른 일들과 상상을 초월한 행동들을 접하게 된다.

  여성들의 배란기에 혼외정사가 급증하는 이유, 동성애에 관한 미스터리, 시간의 따른 변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지만 적응적 측면에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까지 재미있고 편안하게 설명되어 있다. 학문적인 관점으로 흘러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주제들을 이렇게 쉽게 풀어낸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는 앞으로도 꾸준히 인간이 접근해야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간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현재와 같은 삶의 형태가 고정된다면 유전자의 정보 자체도 적응적으로 변화하겠지만 현재까지 조상들이 적응하며 살아남은 유전자의 기억들과 인간에게 이미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행동 방식들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인류학자 나폴레옹 샤농이 야노마뫼 족 사람들에게 미국에서는 자유나 민주주의 같은 이상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선포한다고 전하자,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여성을 생포한다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이 바보같이 생각되었을 것이다. - P. 424

  전쟁에 관한 야노마뫼 족 사람들의 견해와 미국인들의 견해가 많이 다를까 궁금했다. 그리고 과연 자유나 민주주의와 같은 이상을 위해 미국이 전쟁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 사실일까? 야노마뫼 족처럼 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차라리 생존을 위해 혹은 석유와 같은 더 많은 자원을 위해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면 더 쉽게 이해하지 않았을까?

사랑과 연애, 섹스와 결혼에 관한 남녀의 엇갈린 욕망에 관한 진실이 이 책을 통해 모두 밝혀지긴 어렵지만 많은 의문점이 해소되었다. 정답이든 아니든, 하나의 관점이든 삐뚫어진 시각이든 아니든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겠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이 책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저자의 다음과 같은 바람은 어쩌면 희망 사항일지도 모른다. 화합이라니? 욕망을 절대 화합하지 않는다. 다만 화합을 가장한 채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질 뿐.

진화라는 엄청난 시간대를 고려하는 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의 전체 성 전략 레퍼토리 가운데 유독 하나의 전략을 중시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인간 본성은 우리 성 전략의 다양성에서 발견된다. 인간의 성 전략 레퍼토리에 내재한 다양한 욕망들을 이해한다면 화합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 P. 418


0709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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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1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올라오는 거 보고서 사려고 계속 보관함에 넣어놨던 책인데 ㅎㅎ
지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비로그인 2007-09-11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부터 굉장히 독특한 느낌을 주어서 잊혀지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상당히 좋은 느낌이군요.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sceptic 2007-09-1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쫌 두껍긴한데...책장도 잘 넘어가고...읽을만 합니다...실망은 없으실듯...싶네요...^^
 
말들의 풍경 -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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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은 저마다 자기의 풍경을 갖고 있다. 그 풍경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다르다. 그 다름은 이중적이다. 하나의 풍경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풍경들의 모음도 그러하다. 볼 때마다 다른 풍경들은 그것들이 움직이지 않고 붙박이로 보인다. 그러나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말들이 갖고 있는 은총이다. 말들의 풍경이 자주 변하는 것은 그 풍경 자체에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풍경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자꾸 변화하기 때문이다. - <말들의 풍경>을 시작하며, 1989년 김현

  1990년 겨울에 나온 김현의 <말들의 풍경>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1부 말들의 풍경에서 김현은 최승호, 최승자, 김정란, 김혜순, 곽재구, 박남철, 유하, 황인숙, 송찬호, 기형도의 시에 대해 말하고 있고 2부 보이는 심연과 안 보이는 역사 전망에서는 이성부, 이승훈, 김정웅, 박상륭 등의 작품을 분석하고 있다.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이름들이다. 아득한 스무살 무렵 추억의 언저리를 더듬게 한다. 여전히 건재하게 한국 현대시에 주요 시인으로 남아 있는 이들이 당시엔 재기 발랄한 신인이거나 젊음의 열정을 내뿜을 무렵이었다. 17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충분히 감회에 젖을 만하다.

  고종석은 선배의 책 제목에 기댄 것도 아니고 똑같은 제목으로 책을 묶어 냈다. 영화용어로 ‘오마주’에 해당하는 것일까?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칼럼을 모아 <말들의 풍경>이라 이름 지었다. 법학과 언어학을 공부한 저자의 이력은 글을 읽는데 크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 최근에 <모국어의 속살>에서 보여주었던 혹은 지금까지 그가 보여주었던 우리말과 글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비판적 관점들이 이 책에서도 오롯하다. 신문의 칼럼이라는 제한된 분량때문인지 깊이 있고 심층적인 내용을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하나의 주제와 인상들을 찾아내 빛을 내고 담아내는 솜씨는 장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신문에 실린 글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려운 말이 없고 저자 나름의 뚜렷한 색깔과 고집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문장들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담백하다.

  제목에 걸맞게 우리말에 대한 관심과 분석들이 정확하고 날카롭다. 일상에서 사용되는 우리말의 특징과 한계들, 그 깊이와 갈피를 짚어낸 칼럼들이 하나의 주류를 이루고, 또 하나의 흐름은 인물에 대한 탐색이다. 정운영, 김윤식, 이오덕, 전혜린, 서준식, 양주동 등 우리말과 글을 살려 쓴 사람들의 글과 생각들을 꼼꼼하게 털어내고 제자리에 놓아 본다.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나름의 고집대로 이오덕을 평하거나 김윤식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공감을 할 만하다. 홍승면, 임재경이나 정운영 등 선배들에 대한 인상과 글을 통해 보여주었던 특징들도 재미있었다.

  책으로 묶어내기 전에 분류하고 편집하고 내용을 수정하는 수고를 건너뛰며 날 것 그대로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하는 방식을 취한 점이 독특하다. 각 글 뒤에 연도와 날짜를 밝혀 놓음으로써 당시의 맥락과 상황들을 엮어서 생각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해 보일 수도 있으나 정치적 시론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기록의 성격을 지닌다. 그 재미라는 것이 개인이 속한 집단과 사회가 사용하는 한국어의 풍경들에 대한 소박하고 맛깔스런 밥상과 같다. 책을 묶어내는 방식이나 책에 대한 욕심을 조금 털어버린 채(수십권의 책을 냈기 때문에 욕심이 없어 그런지도 모르지만) 소탈하게 엮어낸 <말들의 풍경>은 김현의 그것에 견주어 비교하는 것은 온당치가 않다.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제 작고할 당시의 김현의 나이를 넘어선 저자가 선배에게 보내는 투정과 질투가 가당치 않다고 했지만 독자가 보기엔 정겹고 즐겁기만 하다.

  김현 선생이 생전에 이촌동 자택을 찾은 제자나 지인들이 돌아갈 때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계시더라는 이야기를 고등학교 때 문예반 동기 녀석한테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한동안 헤어지며 버스에 대고 손을 흔드는 우스꽝스런 짓을 했었다. 그 몇 년 후에 돌아가셨다. 제대로 이해되지도 않았겠지만  선생의 책들을 읽으며 문학에 눈떴다. 감탄과 아쉬움들은 표현이 부족해 말로 다하기 어렵지만 이제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의 시간으로 남아 있다.

  17년이 지난 후 고종석은 <말들의 풍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언어를 바꾸려는 힘과 현실을 바꾸려는 힘의 작동원리가 같지는 않겠지만 언어의 언저리에 서성이며 쑤석거리는 모습으로 남게 될 줄이야…… 한결같은 모습으로 계속될 고종석의 이야기에 여전히 귀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현실은 언어 이전에 있는 것이어서 언어를 바꾸려는 노력이 고스란히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될 수는 없겠지만, 언어의 비틀림을 응시하는 일은 현실의 비틀림을 살피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 P. 99


0708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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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ptic 2007-09-04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은 아니라서..즐거운 독서 하세요...
 
자유와 인간적인 삶
김우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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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빛은 모든 것을 어둡게 한다.’는 하이데거의 말은 이미 반세기 전의 진단이지만, 모든 사실과 언어가 대중 매체의 언어 조작이 되어버린 오늘에 특히 맞는 말일 것이다. 무세계의 어두운 시대는 오늘도 계속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 P. 36

  김수영의 영원한 시적 탐구가 ‘자유’로 귀결된다면, 지금은 사람들의 삶이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지칭해도 좋을 김우창의 <자유와 인간적인 삶>은 깊은 ‘자유’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현실적인 삶에 대한 고민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한 시대나 세대를 대표하며 생의 정리 단계에서 쏟아내는 감성과 이성 그리고 심미적 세계에 대한 선생의 발언들은 문장 하나하나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문장의 내적 긴장과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 고리에 팽팽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고 있으며 전체가 단단하게 구조화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3부 심미적 질서 부분이 그러하다. 1부에서는 무세계의 세계성에 대해 2부에서는 적극적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이 부분들이 책의 핵심적 사유를 드러낸다. 심미적 질서는 쉴러의 저작과 사상에 대한 해석들이고 선생 자신의 생각들이 교차되고 있지만 세상의 질서에 대한 미적 기준과 역할들을 꼼꼼하게 짚어주고 있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나누어 적극적 자유 의지를 실현하는 개인적,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다루는 부분에 핵심적인 내용이 숨어 있다. 자유를 위한 투쟁은 목표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목표를 이룩하기 위해 상황과 환경을 만들어 가는 투쟁에 불과하다. 철학과 역사에서 이야기하는 자유에 대한 의미가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저자의 선언은 조용하고도 분명하다.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향한 진보의 역사이다. 이 역사 발전에서 도덕은 매우 착잡한 현실적 연관을 가지면서 나타나게 된다. 도덕은 너무 쉽게 왜곡되어, 인간의 자유에 대한 외적 구속으로 작용한다. 그 왜곡은 그 자체의 속성보다도 현실 상황으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 P. 123

법이나 도덕을 외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종교에서 신적인 것을 성스러운 것이라기보다 힘으로써,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 P. 123


  법과 도덕과 자유에 관한 개인의 생각과 태도는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이 외연적 요소들이 왜곡되고 뒤틀려서 개인과 사회에 미쳤던 해악과 위험들에 대해 우리는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입장에서 과연 신자유주의와 매스미디어와 자본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러시아의 수학자 페렐만의 삶을 예로 들어 자유와 현대인의 삶을 반추하고 있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수학적 난제를 해결하여 수백만 달러의 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인터넷에 풀이과정을 공개하고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메달 수상을 거부했으며 돈과 명예가 보장된 직위들을 모두 거부한 채 어머니를 모시고 등산을 하며 버섯을 따는 일이 하겠다는 페렐만을 단순히 이 시대의 기인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과연 공적인 빛은 모든 것을 어둡게 하는 것인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당장 오늘 하루와 내일에 대한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한 상황에서 자유의 의미를 묻는 것은 배부른 유행가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인간적인 삶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숙명이 아닌가 싶다.

  ‘사람은 자유 속에 태어나지만, 어디에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는 말로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시작한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선언인지도 모른다. 과연 ‘자유’란 무엇이며 저자의 말대로 ‘진실 안에 산다’는 말이 그렇게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인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내 몸에 묶인 사슬을 끊고 진실 안에 살 수 있는 삶은 스스로의 노력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할 사회의 중심적 가치가 아닌가?


070809-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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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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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모든 것들이 엉망이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이반 일리히는 <학교없는 사회>에서 “학교제도는 기회를 평등하게 한 것이 아니라 기회의 배분을 독점하고 말았다”고 선언했다. 살아가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성을 기르기 시작하는 첫 걸음을 학교라는 체제에서 출발하게 된 것은 당연히 근대적 사회 제도 안에서 받아들여야만 했다. 반성적인 성찰 없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생각하는 방법과 틀조차 정형화 규격화되어 버린다. 자본과 권력에 좀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한 지름길을 모색하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몸부림은 끊임없이 사유의 폭을 좁히고 닫힌 세계 속으로 개인을 몰아간다.

  생각이라는 것은 가정에서 혹은 학교에서 만들어질 수 없다. 역설적으로 어느 곳에서든 만들어지는 것이며 일회적이지도 순간적이지 않다. 모든 곳에서 지속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변화를 일으킨다. 기본적인 사고의 방향과 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가치관과 세계관이 형성된다. 성장기에 굳어진 생각들이 끊임없이 외부적인 요소나 조건에 따라 흔들리기도 하고 변화 발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하는 힘과 방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 창조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처절한 몸부림으로도 얻기 힘들어 질 수 있는 것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초상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아니 인정받을 수 없는 학교 제도에 묶여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와 판단이 옳다고 굳게 믿는 교사들에 의해 강요받은 생각과 전쟁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법을 세뇌당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판단일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상황들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많지 않다. 공부와 공부를 거듭하여 실업계나 인문계를 결정하고 점수에 맞춰 전공을 선택하고 죽기 살기로 취업에 목숨 걸거나 시험에 도전하고 안정된 직장과 높은 연봉을 꿈꾼다. 자본과 권력을 향해 부나방처럼 몰려가지만 그 끝은 허망하기만 하다.

  <꽃들에게 희망을>의 책장을 넘기다가 문득 떠오르는 자신의 모습처럼 우리의 삶은 지향을 잃고 맹목적으로 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생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루트번스타인 부부의 <생각의 탄생>은 ‘창조적 사고’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삶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고 나와 세계를 고민하는 사유로서의 생각은 아니다. ‘창조성’에 찍힌 방점은 책의 마지막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21세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와 세대를 넘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각의 능력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추상적인 것 같지만 자세히 읽다보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면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생각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라는 표현을 썼지만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열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이 그것이다. 단순한 사고 기능이나 창조성을 돕기 위한 방법들의 나열은 아니다. 계통적으로 체계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관찰로 시작해서 마지막 통합에 이르기까지 학문과 예술 등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거나 천재적 창조성을 보여준 사람들의 실증적인 예가 중심이 된다. 각각의 능력이나 방법들이 왜 중요하며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될 수 있는지 설명하고 그 분야에서 탁월한 정신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서 근거를 갖추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림이나 도표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재미있게 읽어 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매력은 창조적 사고와 통합적 이해라는 능력의 상관관계를 잘 풀어내고 있다는 데 있다. 부분의 합이 전체는 아니지만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것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방법도 창조성을 위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과정과 절차를 설명하고 개별적인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을 위한 ‘통합’의 과정으로 이끌어내는 방법은 한 권의 책을 완결성 있게 만들어 준다. 더구나 마지막 장을 ‘전인을 길러내는 통합교육’으로 설정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방법들을 살펴보자.

통합교육에는 여덟 개의 기본목표가 있다. 첫째, 학생들에게 보편적인 창조의 과정을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둘째, 창조과정에 필요한 직관적인 상상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셋째, 예술과목과 과학과목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다학문적 교육을 수행해야 한다. 넷째, 혁신을 위해 공통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교과목을 통합해야 한다. 다섯째, 한 과목에서 배운 것을 여러 분야에 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과목 간의 경계를 성공적으로 허문 사람들의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일곱째, 모든 과목에서 해당 개념들을 다양한 형태로 발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여덟째, 상상력이 풍부한 만능인을 양성해야 한다. - P. 415

  개인적인 냉소적이고 삐딱하기 때문일까?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가능한 것은 몇 번째 항목일까? 예체능 과목은 내신과 수능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과 상황들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분과 학문별, 과목별 이기주의는 극단적이다. 당장 없어져야할 ‘교육부’에서도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통합논술’은 ‘통합’ 아니라 과목 간 ‘짬뽕논술’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공교육과정에서 가르치지 못하거나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평가하겠다고 공언하는 대학들의 배짱은 언제나 가진 자의 거만함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교육’이 아니라 ‘선발’에 올인하는 기득권 대학들의 행태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침이 마르도록 이 책을 칭찬하는 이어령은 미래 사회의 방향과 목표가 이쪽이어야 한다는 원론만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이 책이 지향하는 바와 방법론에 대한 공감과 별개로 암울한 현실이 먼저 고개를 쳐든다. 생각의 도구가 없거나 방법을 모르지 않을 텐데, 이 책에 열광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모을 수 있는 실천론이 궁금해진다.


070808-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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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인성(wholeness)을 위한 사고의 체계화 "생각의 탄생"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9-25 17:38 
    생각의 탄생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에코의서재 전반적인 리뷰 2007년 9월 25일 읽은 책이다. 430여페이지의 책이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특정 분야에 관심을 두지 않고 다방면의 지식을 습득하려고 했던 나였기에 여기서 제시하는 부분들이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나 스스로도 어떠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부분을 느끼게 만드는 책이었다. 어찌보면 나도 사고의 틀을 완전히 깨지..
 
 
 
논증의 기술 -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쓰기의 모든 것
앤서니 웨스턴 지음, 이보경 옮김 / 필맥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글쓰기이다. 기능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도 있고 좀더 광범위하게는 전략적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글쓰기는 어떤 측면에서 접근하든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통상 글쓰기라고 하면 시나 소설 혹은 수필이나 일기 등 문학적인 글로 받아들인다. 학교를 다니면서 국어 시간에 배운 글쓰기는 대략 문예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살아가면서 쓰게 되는 모든 글들은 대부분 문학적인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다. 가령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레포트를 쓰거나 취업을 하기위해 자기 소개서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서 잡다한 글쓰기가 문학적인 글과는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실용적인 글쓰기와 구별지어 생각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또 하나의 글쓰기가 바로 논증적인 글쓰기이다. 최근 논술의 열풍과 더불어 글쓰기는 일반인들에게까지 들불처럼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이 팔리고 누구나 글을 쓰며 살아간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전문가들의 설자리가 그만큼 좁아졌다. 숨은 대가들의 솜씨는 그것을 엮어내는 힘이 조금 부족할 뿐, 전문적인 영역에서 일상사에 이르기까지 그 폭과 깊이를 더해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많은 글들 속에 숨어 있는 논리적 오류와 모순들이다. 제대로 설득력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실용적인 글쓰기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이다.

  논증은 논리적인 증명의 한자어이다. 우리가 국어시간에 배운 논설문이라고 한정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좁아지거나 형식이 뚜렷하게 고정될 것 같아 역자는 논증적인 글이라고 번역한 것 같다. 앤서니 웨스턴의 <논증의 기술>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쓰기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훌륭한 책이다. 신문의 칼럼이나 대학 입학을 위한 논술에 이르기까지 논증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런 교육을 받을 기회도 가르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비판이라는 용어 자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과 군사 정권과 유교 문화권에서 순종적이고 무비판적인 생활태도와 문화적 관습들도 한 몫 거들었기 때문이다. 비판과 비난은 다르다. 비판은 가치중립적인 용어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판과 비난이라는 어휘에 대한 개념을 가까운 거리에 두고 해석한다. 말 많으면 공산당이었던 어두웠던 과거 때문이다. 논리적인 비약이 아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성적 기능임에도 불구하고 탐탁치 않은 눈길을 먼저 받게 된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와 같은 현상과 인식들은 사고력을 기르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창조적인 제안과 논의들이 활발하게 살아 숨쉴 수 있는 숨구멍을 막아 버린다. 최근들어 대학에서도 글쓰기나 작문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지식의 축적과 새로운 연구, 생각을 드러내고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 과정이 어떤 형태로든 대부분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지고 정리된다. 어려서부터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은 쉽지 않은 일들과 부딪힌다. 바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것이 그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여러번 고개를 끄덕이고 속이 시원했던 이유는 우리 사회나 교육 풍토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개인적인 판단 때문이다. 마치 사전이나 실전에 활용할 수 있는 야전 교범처럼 치밀하고 간략하게 정확하고 분명하게 쓰여진 책이다. ‘논증’을 다룰 자격이 충분할 만큼 논리적인 책이다. 머리말과 들어가는 글에서는 논증의 목적과 논증적인 글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1장부터 6장까지는 논증의 규칙을 다루고 있다. 논증이 무엇인지 논증의 규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30가지의 원칙을 설명한다. 그리고 7장부터 9장까지는 글쓰기의 규칙을 설명한다. 논증을 실제 글쓰기에 적용할 때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끝으로 10장에서는 ‘오류’에 대해 설명한다. 일상적인 대화나 논쟁, 글쓰기 과정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들에 대해 점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TV 토론 프로에 출연하는 패널들의 오류까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많은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부록에는 ‘정의’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2004년에 번역된 책의 8쇄를 사서 읽었다. 시간이 흘러도 여러 사람에게 권한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실용적인,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도구적 목적을 가진 책들은 전자제품의 매뉴얼처럼 식상해지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폐지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논증에 관한 여러 책들 중에서도 군더더기 없이 탄력적이고 상쾌한 스텝을 밟는 쉐도우 복서처럼 빠르고 정확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읽었으면 써야한다.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이성적인 접근이 가능하도록 써야 한다. 상대를 설득하기 전에 스스로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예상될 반론의 근거까지 짚어내는 개방적이고 탄력적인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알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가장 큰 불행이다. 칼날처럼 예리한 비판과 논리적인 토론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용기 있는 사람은 겁이 없는 게 아니라 겁이 나도 행동하는 사람이다.


070524-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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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뫼 2007-05-25 0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증. 아, 어려운 부분입니다. ^^;; 저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네요.
서평 잘 읽습니다.

sceptic 2007-05-27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꾸준한 관심과 노력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