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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증의 기술 -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쓰기의 모든 것
앤서니 웨스턴 지음, 이보경 옮김 / 필맥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글쓰기이다. 기능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도 있고 좀더 광범위하게는 전략적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글쓰기는 어떤 측면에서 접근하든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통상 글쓰기라고 하면 시나 소설 혹은 수필이나 일기 등 문학적인 글로 받아들인다. 학교를 다니면서 국어 시간에 배운 글쓰기는 대략 문예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살아가면서 쓰게 되는 모든 글들은 대부분 문학적인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다. 가령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레포트를 쓰거나 취업을 하기위해 자기 소개서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서 잡다한 글쓰기가 문학적인 글과는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실용적인 글쓰기와 구별지어 생각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또 하나의 글쓰기가 바로 논증적인 글쓰기이다. 최근 논술의 열풍과 더불어 글쓰기는 일반인들에게까지 들불처럼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이 팔리고 누구나 글을 쓰며 살아간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전문가들의 설자리가 그만큼 좁아졌다. 숨은 대가들의 솜씨는 그것을 엮어내는 힘이 조금 부족할 뿐, 전문적인 영역에서 일상사에 이르기까지 그 폭과 깊이를 더해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많은 글들 속에 숨어 있는 논리적 오류와 모순들이다. 제대로 설득력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실용적인 글쓰기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이다.
논증은 논리적인 증명의 한자어이다. 우리가 국어시간에 배운 논설문이라고 한정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좁아지거나 형식이 뚜렷하게 고정될 것 같아 역자는 논증적인 글이라고 번역한 것 같다. 앤서니 웨스턴의 <논증의 기술>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쓰기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훌륭한 책이다. 신문의 칼럼이나 대학 입학을 위한 논술에 이르기까지 논증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런 교육을 받을 기회도 가르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비판이라는 용어 자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과 군사 정권과 유교 문화권에서 순종적이고 무비판적인 생활태도와 문화적 관습들도 한 몫 거들었기 때문이다. 비판과 비난은 다르다. 비판은 가치중립적인 용어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판과 비난이라는 어휘에 대한 개념을 가까운 거리에 두고 해석한다. 말 많으면 공산당이었던 어두웠던 과거 때문이다. 논리적인 비약이 아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성적 기능임에도 불구하고 탐탁치 않은 눈길을 먼저 받게 된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와 같은 현상과 인식들은 사고력을 기르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창조적인 제안과 논의들이 활발하게 살아 숨쉴 수 있는 숨구멍을 막아 버린다. 최근들어 대학에서도 글쓰기나 작문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지식의 축적과 새로운 연구, 생각을 드러내고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 과정이 어떤 형태로든 대부분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지고 정리된다. 어려서부터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은 쉽지 않은 일들과 부딪힌다. 바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것이 그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여러번 고개를 끄덕이고 속이 시원했던 이유는 우리 사회나 교육 풍토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개인적인 판단 때문이다. 마치 사전이나 실전에 활용할 수 있는 야전 교범처럼 치밀하고 간략하게 정확하고 분명하게 쓰여진 책이다. ‘논증’을 다룰 자격이 충분할 만큼 논리적인 책이다. 머리말과 들어가는 글에서는 논증의 목적과 논증적인 글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1장부터 6장까지는 논증의 규칙을 다루고 있다. 논증이 무엇인지 논증의 규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30가지의 원칙을 설명한다. 그리고 7장부터 9장까지는 글쓰기의 규칙을 설명한다. 논증을 실제 글쓰기에 적용할 때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끝으로 10장에서는 ‘오류’에 대해 설명한다. 일상적인 대화나 논쟁, 글쓰기 과정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들에 대해 점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TV 토론 프로에 출연하는 패널들의 오류까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많은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부록에는 ‘정의’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2004년에 번역된 책의 8쇄를 사서 읽었다. 시간이 흘러도 여러 사람에게 권한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실용적인,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도구적 목적을 가진 책들은 전자제품의 매뉴얼처럼 식상해지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폐지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논증에 관한 여러 책들 중에서도 군더더기 없이 탄력적이고 상쾌한 스텝을 밟는 쉐도우 복서처럼 빠르고 정확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읽었으면 써야한다.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이성적인 접근이 가능하도록 써야 한다. 상대를 설득하기 전에 스스로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예상될 반론의 근거까지 짚어내는 개방적이고 탄력적인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알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가장 큰 불행이다. 칼날처럼 예리한 비판과 논리적인 토론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용기 있는 사람은 겁이 없는 게 아니라 겁이 나도 행동하는 사람이다.
070524-0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