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온천 달걀, 온천 달걀 들 해서 도전해보았는데 3연속 실패했다. 실온에 둔 달걀을 1) 다 끓은 물에 6분 30초 + 찬물에 4분 두기도 하고 2) 다 끓은 물에 15분 + 찬물에 3분  두기도 했으며 3) 끓는 물에 넣고 약불로 3분 + 불 끄고 3분 + 찬물에 3분도 두었으나 실패(사실 이 333 레시피는 그럴 듯해서 두 번이나 했다. ㅠㅠ)  앞의 두 번은 흐물거려 계란후라이를 했고, 망할 333 레시피로는 반숙이 되어 버렸다. 착한 남편이 "나 반숙 좋아해요."라며 먹어 주었지만 나는 이를 득득 갈며 신경질을 냈다. "이 블로그 저 블로그를 봐도 온천 달걀의 핵심은 레시피가 간단하다는 건데 난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그게 약오른다고요!" 그러자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온천 달걀 어렵다는 포스트를 찾아보면 어때요?" ...여보.

 

*

 

 

 

 

 

 

기회와 능력이 되면 한번 홍영우 선생님(할아버지♡) 찬양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 덤덤하면서도 귀엽고 익살맞은 그림은 물론, 군더더기 없는 입말까지도 옛이야기 그림책으로 100점이다. '옛이야기 그림책'이 비교적ㅠㅠ 시장이 괜찮은 데다 장르 자체의 매력이 있어서 화가들이 많이 도전하는데, 나는 지나치게 화려한 그림보다 홍영우 선생님의 소박한 그림이 좋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7세 남이 올 때마다 읽어달라고 하고 기쁘게도, 나 역시 읽을 때마다 좋다. 특히 <<딸랑새>> 으하하.  

 

 

고추의 한살이로 들여다본 고추밭 생태계 _  고추

 

때마침 고추 익는 가을이라 보고 있는 책이다. 그림이 아주 정감 있고 설명이 시시콜콜하지 않아서 좋다. 화자가 고추씨인데  "고추는 이렇게 자란단다~" 하는 것과 "나는 이렇게 자랐어."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고백하자면 나는 '생태 그림책'이란 타이틀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의 부제에 있는 '생태계'는 책의 내용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오늘 10세 남과 이 책을 보고 요앞 텃밭 울타리 밖으로 나온 빨간 고추를 구경했다.

 

 

캄펑의 개구쟁이

 

 

 워낙 유명한 책인데 내가 너무 늦게 보았다; 말레시아 작가가 자신의 어린시절을 자전적으로 그린 만화다. 기후도 풍습도 다른 말레시아 얘기인데다, 지금부터 5,60년 전 이야기라 아무래도 좀 낯설겠지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아무래도 좀 낯설었는데 어느 순간 응? 하고 이 애들 놀이의 규칙을 진지하게 이해해가며 "오, 재밌겠다!" 하고 있다. 정답다. 우습다. 세밀하다. 무심하다. 아름답다. 그런 만화책이다. (혹자는 그림책이라고 하기도.)

 

 

푸른 개

 

7세남 한 분이 요새 걱정이 있다. 글자를 익히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엔 자연스럽게 익히려니 하고 여유 있던 부모님도 함께 걱정하는 것이, 글자를 모르는 것 때문에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그 고객이 유난히 이 책을 좋아한다. 어떤 책인가. 암만 부모가 말려도 기어이 성장을 이루어내는 아이의 무의식을 그린 작품이다. 원할 때마다 마음을 다해 읽어 주고 있다.

 

*

 

입을 게 없다고 외치며 옷을 샀다. 사 온 옷을 정리하면서 보니 옷장에 남색 꽃무늬 원피스가 네 벌, 남색 꽃무늬 블라우스가 두 벌, 남색 셔츠가 두 벌이다. 비슷한 비중으로 분홍색 티셔츠가 많다. 문제가 뭘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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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4-09-25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천가서 먹어야 진짜 온천달걀....이겠죠..(우히히히)

네꼬 2014-09-25 15:44   좋아요 0 | URL
온천탕에 넣었다 먹으리. (응?)

다락방 2014-09-25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쨌든 이것이 온천달걀 어렵다는 페이퍼가 되겠네요? 온천달걀 어렵다 로 검색하면 이게 먼저 뜨겠죠? ㅎㅎ 물론 전 온천달걀이란 말을 여기서 처음 봅니다만. ㅋㅋㅋㅋㅋ

[푸른 개]는 저도 읽어볼게요. 전 `기어이 성장을 이루어내는`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마음을 다해 읽어주는 네꼬님이라니. 사랑합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남색 꽃무늬 원피스도 좋고 분홍색 티셔츠도 좋네요. 뭐, 좀 많으면 어때. 많으라지, 뭘!

네꼬 2014-09-25 15:46   좋아요 0 | URL
우와 나 댓글 막 날아갔어. 폭풍같이 썼는데.

암튼 이 포스팅이 바로 온천달걀 어렵다는 포스팅이라니 다락님 천재란 내용이었어요. 천재씨!

2014-09-25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4-09-25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천달걀...이 있군요! ㅎㅎㅎㅎㅎ 첨 들어봅니다.

네꼬 2014-09-25 15:46   좋아요 0 | URL
아아 나도 안 들어본 거면 좋겠다. ㅠㅠ 약만 올라요.

휘모리 2014-10-14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푸른개를 읽었어요. 조금은 무서운 내용이였지만 또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얘기라 좋았어요.

네꼬 2014-10-19 22: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이 책의 좋은 점이 개가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쿨하게 떠났으면 너무 서운했을 듯;;
 

생선 가겟집 아들 수로 앞에 나타난 여우 씨는 어딘가 뻔뻔한 인상이다. 날씬한 몸매에 갈색 양복, 하얀 구두로 치장한 여우 씨가 막 인사를 하려는 듯, 모자를 잡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 듣고 싶은 말만 솔솔 쏟아질 듯한 얄미운 입매, 아름다운 스카프는 바람에 너풀거린다. 그를 감싸고 있는 분홍빛은 아름답고, 녹색과 노란색이 뒤섞인 공기는 어딘가 두렵기도 하다. 이 여우 씨가 뭐라고 하는가? “제가 이 생선 가게를 봐 드리겠습니다. 주인님은 어서 나가 실컷 놀다 오세요.” 그렇다, 수로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이다. 게다가 대가는 생선 한 마리 뿐이란다. 그림처럼 꼭 이렇게 생긴 여우가 이런 제안을 하는데 거절할 강심장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수로도 냉큼 가게를 맡기고 놀러 나가는데 여우는 곧 본색을 드러낸다. 일손이 필요하다며 하나 둘 식구를 데려오더니 엿새 만에 가게 생선을 바닥낸 것이다. 그러곤 말하길, “생선 한 마리씩! 게다가 주인님은 제가 식구들을 데려오는 것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역시 인상대로 뻔뻔한 여우였다. 여기서 ‘인상’의 최소한 절반은 그림에서 온 것이다. 좋은 삽화가 ‘글과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면, 「상냥한 여우 씨와 식구들」의 여우 그림은 좋은 삽화의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접힌 부분 펼치기 ▼

 

 

 

 

펼친 부분 접기 ▲

김기정 동화집 『금두껍의 첫 수업』에는 열 편의 동화가 실려 있다. 10여 년 간 쓰인 작품이 모인 자리다 보니, 주제도 내용도 아롱이다롱이다. 「금두껍의 첫 수업」처럼 아름답고 신 나는 환상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고, 「만보의 자장면」처럼 현실의 아이를 위로하는 작품도 있다. 그리고 작품마다 그에 걸맞은 허구의 그림이 독자의 감상을 거들고 있다. 「무지의 상상력 대결」에서 도전장을 받고 가마에 올라탄 무지를 보라. “누군가한테서 도전을 받는 일은 절대 싫은 일이 아니”라는 무지가 마침 하얀 태권도복을 입고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무지처럼 당당한 표정을 짓게 된다.

 

주로 화려하게 펼쳐지던 그림은 “한 아이가 떠났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시인과 선생님」에 이르러 갑자기 차분해진다. 단순하고 부드러운 선과 검은색만으로 표현된 인물은, 그림만으로도 문득 슬픔을 전한다. 엉뚱한 순간에 “니야아옹!” 소리를 내서 웃음거리가 되었던 꼬마 시인 입에 사랑스러운 고양이 얼굴을 그려 넣다니.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라 해도 이런 그림을 상상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 책에서 글과 그림의 어울림은 합이 잘 짜인 무술 겨루기 같다. 작가는 작품을 써서 보여 준다. 화가는 그것을 보고 그림을 그려 낸다. 작가는 흠칫 놀라면서 다른 작품을 보여 준다. 화가는 천연덕스럽게 또 그림을 그려 보인다. 이것도 그릴 수 있을까? 이것도? 작가는 신이 나서 쓴다. 화가도 아마 웃으면서 그릴 것이다. 그야말로 작가와 화가의 상상력 대결 아닌가.

 

 

 

 

 

 

 

 

 

* 마음대로 쓰래서 마음대로 썼다가 마음대로 썼다고 까인 원고를 마음대로 여기 올리는 나란 여자 자유로운 여자. (그런 거 아니잖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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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8-1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우리 네꼬님 원고를 깠담? 흥!! -_-

네꼬 2014-08-11 17:39   좋아요 0 | URL
까였어요. 까였다고. 흑흑. (쓰고 보니 어딘가 시원한 "까다"라는 말 )

치니 2014-08-11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이다뇨, 이런 주옥같은 글을 왜!

네꼬 2014-08-11 17:39   좋아요 0 | URL
이런 주옥같은 댓글이라니!

마노아 2014-08-1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이야말로 주옥!!

네꼬 2014-09-02 13:22   좋아요 0 | URL
크허. 불성실한 나 따위... ㅜ
 

처음 '먹이사슬'을 배웠을 때가 생각난다. 나는 일단 이 말이 무서웠다.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게 계속 이어진다니. 그러는 한편으로 사람은 누가 잡아먹진 않으니까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아마도 나는 사슬보다는 피라미드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내가 단순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학교에서 중요한 한 가지를 안 가르쳐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슬의 끝이 다시 첫 고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

 

1920년대 미국에서 국립공원을 정비하면서, 사나운 동물 늑대를 모조리 사냥했다고 한다. 포식자 늑대가 사라지자 엘크나 들소 같은 덩치 큰 동물들의 수가 늘어나 풀과 나무 들이 남아나지 않았다. 그러자 거기 깃들여 살던 작은 동물들이 살 곳을 잃었다. 간단히 말해서 생태계가 파괴된 것이다. 캐나다의 늑대를 데려다 가까스로 번식 시키고 나서야 다시 균형이 잡혔다. 자료를 찾다 보니 이 생태계 복원과 늑대의 컴백은 별 관련이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어쨌든 <<늑대가 돌아왔다>>는 이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의 좋은 점은 "늑대가 없으면 이렇게 된다."고 겁을 주는 게 아니라, 늑대가 돌아옴으로써 자연이 다시 풍성해졌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영리한 점은 새끼 늑대가 바라보는 자연을 그렸다는 것. 늑대가 사냥한 엘크를 갈까마귀, 검독수리, 회색곰, 까치, 생쥐, 딱정벌레가 나누어 먹고 새로 자란 풀 사이로 참새가 지저귀고 비버가 버드나무로 못을 만드는 것을 새끼 늑대가 지켜본다. 긍정적인 기운으로 가득찬 생태 그림책이다. 늑대가 돌아와서 잘된 일로 마인드맵을 그리고, 동물들 이름마다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쳤더니 아이들 종이 위에도 숲이 되살아났다.

 

*

 

 <<누가 누구를 먹나>>는 아름답고 재미있는 책이다. 표지는 강렬한 빨강이지만 본문은 오로지 검은 선으로만 그려져 있다. 판형도 시원하고 화면마다 배경 없이 주인공만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어 눈을 딴데로 돌릴 수가 없다. 화면마다 글은 한 줄, 그것도 빨간색.

 

꽃이 자라났습니다.

진딧물이 꽃을 먹었습니다.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먹었습니다.

할미새가 무당벌레를 먹었습니다.

여우가 할미새를 먹었습니다.

 

늑대가 여우를 삼키고 늙어서 죽자 그 위에 파리들이 모이고, 개구리가 파리를 먹고 알을 낳았는데 물고기가 그 알을 먹고, 물고기를 물총새가 먹고. 때로 늙어서 죽는 동물이 등장해서 분위기 전환(?)을 하지만 먹이사슬은 계속 이어진다. (여기서 눈치가 빠른 아이는 "덩치가 커서 누가 안 잡아먹는 동물은 늙어서 죽네요?"라고 한마디.) 강한 동물만 약한 동물을 먹는 것이 아니다. 스라소니 죽은 자리에 난 풀을 토끼가 먹고 토끼 똥을 쇠똥구리가 굴린다. 이 아름다운 고리의 끝에는 무엇이 있나. 따로 읽은 네 명의 아홉살이 마지막 장면에 모두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렇다. 꽃이 자라난다!

 

*

 

그런데 앞의 두 권은 사실, 이 책을 읽으려는 워밍업이었다.  

 

아기 누가 사자를 고소한다. 엄마를 잡아먹었다고. 표지를 보고 내용을 짐작한 아이들은 먼저 유죄다 무죄다 말이 많다. (그런데 어째서 아이들은 혼자 있어도 시끄러운가!) 사자는 죽은 누가 자기를 잡아먹어 달라고 했다고 항변하지만, 누 측 증인들은 사자의 사냥으로 인한 개체수 감소를 호소하고 죽은 누의 선량함을 회상하면서 사자를 압박한다. 그러다 죽은 누가 병들어 있었고, 그게 사자한테는 잡아달라는 사인으로 보일 수 있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또 이렇게 개체수가 조정되지 않으면 초식동물들도 굶어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 초원에 병이 퍼지면 모두에게 재앙이 닥친다는 이야기도. 침묵 속에 판결이 내려진다. "사자가 엄마 누를 죽인 것은 무죄입니다. 다만... 모두들 엄마 잃은 아기 누를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책을 다 읽은 다음 다시 사자의 죄에 대해 묻자 아홉살 셋은 무죄에 동의했고 무려 한 명은 아기 누를 고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무고죄.

 

그런데 요즘 '정의' '공명심'에 경도된 S만은 끝까지 사자는 유죄라며 판결의 부당함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S의 주장은 이랬다. 1) 병에 걸렸다고 해도 사자가 할퀴고 무는 게 더 아프다. 2) 누는 병에 걸렸으므로 어차피 밖에 나가 놀 수 없으니 남한테 옮기지 않을 것이다. 3) 누를 죽이고도 무죄라고 하면 사자는 또 다른 동물을 마음대로 잡아먹을 것이다. 오! 자연의 조화 균형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S의 주장도 성실하다. S는 자연의 법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 자연의 법칙을 인간 사회에 적용했을 때 생기는 문제를 어렴풋이 지적한 것이다.

 

*

 

흥분한 S에게는 <<선인장 호텔>>을 읽어 주었다. 아주아주 천천히 자라지만 200년 가까이 살면서 14미터까지 자라는 사구아로 선인장에 여러 동물이 깃들이는 이야기라 조금 진정이 되었다. 늑대의 생태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어린이에게는 <<영리한 사냥꾼 개과 동물>>을, 늑대나 다른 동물을 그려 보고 싶은 어린이에게는 <<킁킁이가 간다1, 2>>을 읽어주었다. 다시 말하지만 따로 만났는데, 강아지를 선택한 두 명은 약속한 듯 강아지 소리를 내면서 그림을 그렸다. 두 번 다, 하마터면 손을 뻗어 쓰다듬을 뻔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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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4-1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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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4-04-15 11:37   좋아요 0 | URL
다락님! "누가 누구를 먹나"는 다락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타미랑 같이 보면 더!

아무개 2014-04-1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같은 사람에겐 어쩌면 동화책이 가장 읽기 어려운 텍스트 일지도 모르겠어요.



네꼬 2014-04-16 09:27   좋아요 0 | URL
어려운 책도 있지요;; 저는 그래도 어린이책이 제일 좋습니다.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 (^^)

서니데이 2014-04-1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누와 사자의 문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긴다면, 인간사회는 간단합니다. 먹으면 안돼요. 절대 안돼요!! 무조건 유죄. 이럴 땐 사람은 자연의 일부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심각한 이야기인데, 갑자기 딴 생각이... ^^;)

네꼬 2014-04-16 09:28   좋아요 0 | URL
네, S는 자연의 법칙과 인간 사회의 문제를 한꺼번에 생각한 것 같아요. 아주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의문 또는 비분강개라 너무 진정시키진 않았습니다. ㅎㅎ

밤의숲 2014-04-21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왜 혼자 있어도 시끄러운가! 에서 빵 터진 1인입니다. >_< 아아앜 귀요미들!!

네꼬 2014-05-12 16:41   좋아요 0 | URL
오늘도 답을 찾는 1인 -_-a 애가 없는 저로선 미스터리 투성이.

강희맘 2014-12-16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감사합니다~^^
 

 

 

 

 

 

 

 

 

 

나는 추리소설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읽은 것도 없었다. 미미 여사의 책을 (좋아해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어찌된 일인지 "주홍색 연구" 같은 작품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 추리소설하고 나는 잘 안 맞나 보다 생각하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유명한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들은 어린 시절 언니가 읽고 얘기해줄 때 너무 무서웠던 기억 때문에 더욱 관심 밖이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해, 영국 드라마 "미스 마플" 시리즈랑 "명탐정 포와로" 시리즈에 홀딱 빠져서 보고 또 보았다(무료로 보게 해준 올레티비께 감사). 특히 마플 역을 맡은 할머니가 너무 좋아서 막... 아, 이 얘기를 하려면 너무 길고 옆길로 새기 쉬우니까 여기까지만. 아무튼 드라마 덕분에 음, 그럼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님을 만나 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읽으려고 보니 아니 이분 이분 무슨 책을 이렇게 많이 쓴 거야! 어디서부터 읽는담? 드라마로 본 작품을 읽으면 재미가 덜할 것 같고, 유명한 작품들은 너무 많고(?), 다 읽을 수도 없고 어쩌지! 그러던 차에 황금가지의 '에디터스 초이스' 판이 나왔다.  

 

나는 '에디터'라는 말이 싫다. 자기 자신을 '에디터'라고 부르는 것은 더 싫다. 이 단어에 무슨 원수가 져서는 아니고, 이 말을 쓰는 뉘앙스가 싫은 것이다. 편집자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에디터'라고 하는 게 왠지 스스로 세련되게 보이려고 그러는 것 같아서 싫다. 내가 편집자일 때도 싫었는데 지금도 싫다. 아니 그러니까 이 말을 하려던 게 아닌데? 어쨌든 '에디터'라는 말은 싫지만 그래도 꾹 참고 이 시리즈를 산 것은, '초이스'에 방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름(이 경우 직업이지만)을 걸고 작성한 목록을 일단 믿어 보기로 한 것이다. 부록으로 주는 "A to Z"도 욕심 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목록은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이 목록 덕분에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추종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추리소설이라는 정글을 탐험할 의지가 생겼다. 세상에 읽을 것은 많기도 하지!

 

* 여기서 잠깐. 오오. 나는 추리소설 무지렁이였던 덕분에 스포일러 없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ABC 살인사건>>을, 그리고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읽었다. 이것은 정녕 행운. 오오. 세상은 아름다워라. 그리고 알고 보니 추리소설의 핵심은 범인 찾기가 아니라 형식의 아름다움에 있었어!

 

여기까지 쓰고 보자면 나는 페이퍼가 아니라 리뷰로, 이 '에디터스 초이스'에 별 다섯을 주었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럴 생각도 있었는데, 별점을 주는 게 골치 아팠다. 내용상으로는 별 다섯이다. 그런데, 그런데. 늘 얘기하지만 나는 오탈자에 관대한 독자다. 아마 편집자, 그리고 한때 편집자였던 사람들 중에서 내가 이 문제에 가장 관대할 것이다. 오탈자 문제는 '섬세함'과 관련 깊고, '섬세함'은 개인의 성격과도, 부득이한 일정(즉, 미친 일정)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교정자의 덤벙대는 성격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원고를 봤어도 오탈자가 생길 수 있고, 정말 꼼꼼하게 보고 싶었어도 정해진 일정 때문에 할 수 없이 실수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맞춤법 문제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계속해서 틀리는 경우라면. 이건 알고 모르고의 문제니까.

 

~하는지 /~하는 줄

~했대 / ~했데

맞추다 / 맞히다

~했든 / ~했던

 

이 몇 가지 내용은 요즘 세상의 편집자들이라면(!) 강박적으로 챙기는 것들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할 수 있다. 몰랐을 수도 있고, 알고도 놓쳤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초이스'가 '에디터스 초이스'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려면 한 번 이상 크로스 교정을 해야 하고, 그랬다면 이 정도로 틀리진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 목록이 좋고, 더불어 기획도 좋다. 이 세트의 표지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열 권 뒷표지의 문구를 다 다르게 작성한 것도 표 안 나는 고생이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적어도 '에디터스 초이스'를 표방했으면 이 실수들을 어떻게든 줄였어야 했다.

 

아무래도 열 권이나 되니까 관리가 어려웠을까? 그래도 표지에서조차 '맞히다'를 '맞추다'로 잘못 쓴 데 대한 설명이 되진 않는다. 시간이 없었을까? 비교해보진 않았지만 판권으로 짐작컨대 이 세트 도서들의 번역 원고는 이미 출간된 것들을 그대로 활용한 것 같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더 어두워진다. 몇 년 동안 찍고 또 찍은 원고를 그대로 '에디터스 초이스' 판에 흘린 셈이니까. 물론 새로 받은 원고라고 해도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아아, 나는 왜 이런 글을 쓰고 있을까. 내가 편집한 책을 두고 누가 오탈자가 있다느니 교열을 못했다느니 맞춤법이 틀렸다느니 하면 진위를 가리기 전에 얼굴부터 달아올랐던 내가. 지금도 판권에 내 이름 적힌 책들이 오류를 한껏 품은 채로(ㅠㅠ 쓰고 보니 비통하다) 누군가의 서가에, 더 심각하게는 도서관에 꽂혀 있을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베개에 얼굴을 묻는 내가. 이 목록은 왜 하필 '에디터스 초이스'인가. 나는 그래서 선택했고, 그래서 화가 난다. 이것이 애거서 크리스티를 사랑하게 된 이 봄 나의 고뇌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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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4-03-24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이런걸 두고 직업병이라고들 하나봅니다. 우리 모두의 사랑 애거서 여사를 드디어 보셨군요. 애거서 여사의 가장 거대한 스포일러는 언급하신 세 작품말고 다른 작품에 있죠... 저는 그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를 가장 먼저 퍼뜨린 사람을 저주하고 싶은 심정입니다ㅠㅠ

네꼬 2014-03-24 09:08   좋아요 0 | URL
아앗 소이진님. 뭐죠? 뭡니까, 뭐죠? 제가 안 읽은 책이면 좋겠네요. 저 10권에 포함되지 않는 책이었으면! (두근두근)

그렇게혜윰 2014-03-24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집자셨군요?^^저도 요즘 이 책 읽고 있는데 아가사여사의 매력이 진짜 넘칩니다. 다만 전 번역이 가끔 매끄럽지 않다 느꼈었는데 그게 편집자의 역할일수도 있겠네요...번역자만 욕하고 있었어요ㅋ 유명하신분인데 왜 이래? 이러면서요^^ 하지만 이런 문제로도 덮어질수없는 매력!

네꼬 2014-03-24 13:07   좋아요 0 | URL
네, 지금은 아니지만요;; 그나저나 애거서 여사님 매력은 *_* 막 여사님 뜻대로 제 마음이 막 막 요동쳐요.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책이 한 권 나오려면 여럿이 힘을 합쳐야 할 텐데.. 아아 ㅜㅜ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될지 모르지만 너무 아쉬웠어요.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뭐라도 쓰지 않을 수 없는 여사님 매력!

paviana 2014-03-24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집자 본인이 10번 읽어도 절대 못 잡는거 아시잖아요. ㅎㅎ 자기가 읽고 싶은대로 미리 읽어버리니까요. 한명 이상이 크로스 체크해야 되요. 그렇지 않으면 안되는데 미친 일정때문에 ......
그래도 맞히다는 심하네요. 표지는 진짜 여러명이 보잖아요. 안그런가?
2권이나 안 읽은게 있네요. 살짝 반성하고 갑니다.ㅎㅎ

네꼬 2014-03-24 13:09   좋아요 0 | URL
파비님, 제가 바로 그 10번 읽고 못 잡는 편집자였습니다. 하하... (웃음이 나오냐.) 표지에 실수도 했고요 하하하하...(ㅠㅠ) 딴 사람 실수한 것만 봐도 제 가슴이 다 철렁하는데, 이 경우는 이 '에디터스 초이스'라는 이름 때문에 제 마음 한구석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봐요. 이 페이퍼 괜히 썼나 좀 후회도 돼요. ㅠㅠ

치니 2014-03-24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리소설 무지렁이인데, 미미 여사에게 광분도 잘 안 되는 쪽인데, 네꼬 님이 이러니까 마구 마음이 흔들려요! 지금이라도 애거서 크리스티를 읽어야 하는가!
저 역시 형식미를 보기 이전에, 누가 범인인지 생각해야 하는 게 골치 아파, 귀찮게 뭘 그리, 이러면서 멀리 한 편이거든요.
흐, 편집자라는 직업은 정말 힘든 직업인 거 같아요. 편집자 여러분, 존경합니다.

(에디터, 라는 단어를 보면 저는 보그 ㅂㅅ체가 먼저 떠올라서 ㅋㅋ 이미지가 안 좋은데 하필 왜 문학작품 시리즈에 저런 제목을 다셨을까)

네꼬 2014-03-24 13:14   좋아요 0 | URL
오오 치니님 어서 오시와 어서 오시와, 애거서 여사의 세계로! 으왕 전 정말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어요. 깜짝 깜짝 즐겁게 놀라고 있습니다.

이 세트, 엄청 공들인 것 같아요. 일단 이런 선을 내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시도고요. 그렇지만 본문이 이러니 아무래도 속이 상하더라고요. ㅠㅠ 어느 직업이라고 안 힘든가요. 불철주야 애쓰는 편집자들을 저 역시 조.. 좋아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3-24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미치너 말년의 걸작 <소설>엔 작가와 편집자와의 줄다리기가 정말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죠.그 소설을 읽고 한 작품이 출판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과 타협이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네꼬 2014-03-24 20:17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 오래간만이어요! 사실 저는 편집자로 일할 때도 별로 작가랑 줄다리기 안 하는 불성실파였어요. -_-a 물론 합이 잘 맞으면 일하는 보람이 크지만 뭐 꼭... (이하 생략) "소설"도 그렇지만 현실에서도 너무 많죠 ㅎㅎ

서니데이 2014-03-24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읽었던 <봄에 나는 없었다>는 추리소설 아니라고 하지만, 재미있었어요. 이 책 세트라서(그것도 열권) 아직도 사, 말어 하고 있는데, 아아... ;;


추가, 조금있다 생각나서 찾아보니까 이런 거 있더라구요.

"본격 미스터리는 양식미의 세계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
--마야 유타카의 <애꾸눈 소녀>에 대한 온다 리쿠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심사평 중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저도 범인 찾는 거 말곤 별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지, 그런 건 몰랐습니다. )

네꼬 2014-03-24 20:19   좋아요 0 | URL
아아 그렇습니다. 아아... 이긴 하지만 이 목록 자체는 편집부에서 꽤 자부심 가질 만한 것 같아요.

그나저나 추리소설의 형식미에 대한 건 전혀 생각도 않고 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범인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 이것은 그야말로 "범인은 바로 너!" 수준의 발견!!

2014-03-24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4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4-03-24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살까말까 하면서 노려보고 있는 책인데 ^^; 네꼬님 덕분에 얼른 산다. 로 바뀌었어요. ㅎㅎ
예전에 저 오탈자 못 참고 괴로워하는 성격이었는데요. 가만보니 저역시 모르고, 맞는 줄 착각하
고 썼던 말들이 많더라구요. 그 이후부터는 그러려니 하게 되었어요. (백만년전에;) 논문 쓸 때는 수십번 읽고도 놓치는 오자들 -_-;;;;
(새삼스레;) 네꼬님, 그리고 제가 모르는 편집자분들, 수고 많으셨어요!!!!!

하여간에 주문하러 고고씽~^^

네꼬 2014-03-24 20:22   좋아요 0 | URL
어이구 문나잇님. 저는 오탈자 되게 잘 참아요.(원래 그랬어요 ㅎㅎ) 편집자가 그랬으니 그게 문제였죠 ㅎㅎ 근데 오탈자가 아니라 맞춤법을 반복해서 틀리는 데다 이게 '에디터스 초이스'라는 것, 게다가 원래 있던 원고로 짐작되는 점 때문에 그만 툴툴대는 페이퍼가 되고 말았네요. 저라고 뭐 얼마나 잘 알아서 그러겠습니까.. ㅠㅠ

일단 리스트는 아주 좋다고 생각하고요. 이 세트의 장점 또 하나는 표지. 또 하나는 세트 부록 문나잇님도 재밌게 읽으시면 좋겠네요~

2014-03-25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5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수의 탄생]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일수의 탄생

유은실 글 * 서현 그림

 

 

 

 

 

 

 

특별할 것 없는, 굳이 뜯어보자면 좀 모자란 부부 사이에서 일수는 태어났다. 사람이 모자랄 것까지야 뭐 있나 싶어서 방금 '좀 모자란 부부'라고 쓰기가 망설여졌는데, 작가가 그렇게 그렸다. 왜 모자란 사람들이냐. 서로 잘 알지 못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보고 결혼한 거야 흔한 사연이니 그렇다 치고, 아들에게 건 기대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특히 엄마가 그랬다. 일수를 두고 툭하면 "언젠가 나를 돈방석에 앉게 해줄 아들"이라며 치켜세우고 동네방네 큰소리를 치고 다니는 엄마는 순박한 소시민이라기보다 아둔한 욕심꾸러기 같다. 그에 비해 일수는 어땠냐면 보통이었다. 무얼 해도 중간이었다. 학교 선생님이 특기사항 란에 적을 말이 없어서 "순한 아이입니다. 특기가 생길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 많이 관심을 기울여 주십시오."(32쪽)라고 쓸 정도로 보통이었다. 이 책은 그런 딱 보통 일수가 나고 자라 어른이 된 데까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차분하게 또 능청스럽게.

 

초등학생 일수는 우연히 서예부에 들어 그저 성실하게 글자 교본을 베끼며 연습했는데 그게 어쩌다 한번 선생님한테 관심을 받게 되고, 엄마는 그걸 또 일수에게 서예가의 기질을 인정받은 것으로 오해해(이 엄마는 언제든 오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다. 소란이 일단락된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공고를 갔는데 기계공포증 때문에 자격증 하나 없이 졸업) 군에서 제대하도록(군대에서 이발 기술, 조리 보조 등을 배웠으나 모두 실패) 별 특기를 찾지 못한 일수는 예상 대로 엄마가 운영하는 문구점을 어슬렁거리는 백수가 된다. 예전에 잠깐 배운 서예 덕에 '독창적으로 서투른 붓글씨'로 초등학생 가훈 쓰기 숙제를 대신 해주며 자리를 잡는가 싶던 일수는, "선생님 가훈은 뭐냐"는 한 어린이의 질문을 계기로 어릴적부터 친구인 일석(중국집 운영)과 함께 자아를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

 

*

 

수십 년 전 이야기(어머 ㅠㅠ)이지만 대학시절, 성당 주일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만날 때 깨닫고 놀란 것 중 하나는 평범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이다. 반듯한 아이들은 그게 예뻐서, 말썽쟁이들은 그게 골치 아파서 자꾸 보게 된다. 그 사이에 있는 범범한 애들은 자주 놓쳤다. 그런데 동화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일수처럼 '완벽하게 보통'인 아이가 주인공으로 내세워진 작품은 흔치 않고, 있다 해도 그건 1)'평범한 아이예요' 라는 작가의 주장에 의한 것이거나 2) 개성이 없는 아이일 때가 많다. 일수는 평범한 게 개성이다. 그런 점이 좋다. 얼마나 평번한지 실감 있게 그리기 위해 공들인 흔적이 보이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작가는 그렇지 않았던 걸까? 잘하는 것도 없어도(이 분야에서 일수는 오히려 보통 이하였다) 가훈 대필가로 그럭저럭 살아가던 일수가 돌연 자아를 찾아 떠난다는 설정이 내겐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작가 마음이니까!

 

덧붙여 한 가지. 일수의 부모는 물론이고 "너는 누구냐" "너의 쓸모는 누가 정하냐" 등 도사님 같은 질문을 하는 명필(서예학원장)까지도 희화화했는데, 덕분에 이 작품에서 믿을 만한 어른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동화에 대해 내가 선입견이 굳은 탓인지 나는 주인공이, 독자가 기댈 구석이 어느 한 군데라도 있는 작품이 좋다. 멍청한 어른을 꼬집는 거야 동화의 특권이지만 이따금 냉소가 지나쳐 과연 어린이 독자들에게도 전달이 잘 될까 싶은 부분이 더러 있었다. 작가의 말 분위기로 보건대 작가는 동화의 독자 중 어른들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쓴 것 같다. 아이에게 권하기 전에 어른들이 먼저 읽으면 좋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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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페파 2014-01-22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보고 갑니다.

네꼬 2014-01-28 22: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하늘바람 2014-01-2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픈 책이네요

네꼬 2014-01-28 22:57   좋아요 0 | URL
어른보다 아이들 반응이 궁금한 책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