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저 구름처럼 느려. 이 잎에서 저 잎까지 가는 데 한참이나 걸려. 나뭇잎 사이가 아무리 가까워도 건너뛰지도 못해. 아직은 작고 어린 애벌레니까.

그래도 나중에 나비가 되면 구름처럼 하늘을 둥둥 떠다닐 거야. 이깟 나뭇잎이 대수겠어? 저 나무 끝까지 날아오를 거야.

- 김원아 『나는 3학년 2반 7번 애벌레』중에서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것. 이것은 미성숙한 존재가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에 이르는 스토리에서 흔히 쓰이는 은유다. 너무 흔해서일까? 애벌레에서 어린이를 연상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도 실제 동화에 등장한 경우는 별로 없다. 작가는 영리하게도(영리한 것은 얼마나 좋은가!) 이 빈자리를 좋은 동화로 채워 넣었다.


소재만 잘 잡은 게 아니다. 앞서 애벌레를 '미성숙한 존재'로 흔히 은유한다고 했는데, 애벌레로서는 지금 자신이 완전한 존재다. 언젠가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될 존재가 아니라, 오늘의 애벌레로서 하루를 산다. 먼저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는 형님들을 동경하기도 하지만, 배춧잎에 모양을 내면서 재미를 찾고,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몽상에 잠긴다. 그리고 당장에 닥친 위험으로부터 자신의 세계를 구해낸다. 


7번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장면은 물론 아름답지만, 나는 그 장면 없이도 이 이야기가 많은 것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나비가 되지 않고도 7번 애벌레는 완전한 생명이다. 어린이도 그렇다. 어른이 되기 전이라고 해서 미완성의 존재가 아닌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조금 바꾸자면 어린이에게는 오늘까지가 평생의 삶이다.


작은 판형에 그림이 많고 귀여우며 문장이 단순하다. '첫읽기책'이라는 시리즈 의도에 비해서는 이야기가 긴 편이지만, 이 시리즈로 나온 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든다. 작가의 첫 책이라는 점도 반갑다. 상 이름 그대로, '좋은 어린이 책'.



+ 함께 읽는다면









꼬마 애벌레 말캉이 1, 2 (황경택 만화)

궁금한 건 못 참고, 심심한 건 더 못참는 애벌레 얘기.

깜짝 놀랄 만큼 뻔뻔하다는 게 웃음의 포인트인데

읽다 보면 은근히 감동을 받는다.

초등 1학년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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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자란 스기노는 일상을 살면서도 '시선을 딴 데 두는' 사람이었다. 스기노는 열두 살이 넘어서도 어린애처럼 엉뚱한 짓을 하곤 했다. 멸종한 바닷새에게 편지를 담은 유리병을 띄우기도 하고 교실의 뜯긴 마룻바닥 아래 콩나무를 심기도 했다. 두 손 놓고 자전거 타기나 공중그네를 연습하는 소녀였으니 서커스에 빠지는 것도 당연했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정해야 했을 때도 마술사나 선원이 되고 싶어 했다. 결국 병든 부모를 돌보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느라 고향 마을에 정착해 살면서도 그런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것, 위험한 것에 끌리던 그녀는 결국 마술사에게 매혹되어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젊은 남편과 어린 두 아이를 남겨 두고서.


식구들 사이에서 외할머니는 빨래를 널다 떨어지는 사고로 돌아가신 것으로만 되어 있었다. 외할머니, 즉 스기노에 얽힌 비밀을 알아낸 것은 이제 열두 살인 후코다. 여름방학을 보내러 시골 외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빨래 널 때 쓰는 2층의 문이 신비한 정원으로 연결되는 문이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젊은 시절 행방불명된 외할머니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후코 역시 정원에 매혹되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질 뻔하는데, '온기 어린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외친 친구 덕분에 위험에서 벗어난다. <<시계 언덕의 집>> 이야기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 바닷가 마을의 평화로운 정경이 공들여 묘사된 것은 나처럼 인내심이 적은 독자에게는 힘든 코스였다. 스기노뿐 아니라 여러 마을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러시아 문물에 대한 얘기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비밀의 문은 금방 찾았는데, 문 안쪽에서 신나게 모험하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 것도 의아했다. 후코가 이 정원의 진짜 주인일 것이라고 짐작한 매력적인 소녀 마리카의 정체를 밝히는 것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거의 지루하다고 할 작품인데도 내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은 것은 작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결국은 속이 시원해지거나 웃음이 나거나 마음이 따뜻해지거나 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그래서 후코의 외할머니가 미지의 것을 동경하다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내가 잘못 읽은 줄 알았다. 외할머니를 되찾는 것도 아니고, 그 죽음 혹은 행방불명을 위로하지도 않는다니. 냉정하다. 작가에 대해 배신감마저 들었다.


다카도노 호코는 <<꼬마 할머니의 비밀>>에서 어려지는 옷을 발명한 할머니들이 모험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할머니들은 어린이의 몸이 되어서 갖가지 문제를 겪고 해결해나면서 '어린이다움'의 힘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진지한 씨와 유령 선생>>은 빡빡하게 살던 진지한 씨가 유령과 마주하면서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이야기였다. 달리 말하자면 환상이 느긋함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유독 스기노에게는 이렇게 가혹할까. 그건 지금 후코가 어른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후코는 그 속에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환경 속에서 홀로 경험하는 세계, 그것이 가져다주는 해방감.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동안은 어른이 되는 걸 두려워했지만 어른이란 건 어쩌면 부모의 자식이나 가족의 한 구성원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으로만 존재하여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른이 된다는 건 두렵기는커녕 아주 멋진 일이었다." (211-212쪽) 


방학 동안 느끼는 해방감은 어른이 된 느낌으로 혼동될 수 있지만, 이어지는 대목에서 후코가 할 수 없이 방학 숙제를 하는 것처럼 아직 완전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아니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해방감과는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마법에 기댈 수도 없고, 환상에 빠져 현실을 잊을 수도 없다. 단지 '허락되지 않은 것' 정도가 아니라, '위험한 것'이다. 차갑게 들리지만 그 점을 알게 하는 것이 정말 후코를 위하는 길인지 모른다. 판타지는 이상으로서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위험한 나락이 될 수 있다. 외할머니는 끝내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해 추락했고, 외할아버지와 엄마, 외삼촌은 그로 인해 괴로운 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 분명 초원의 끝까지 달려가서 바늘 산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움의 대가, 그것은 너무나도 비쌌던 것입니다." (272쪽)


후코와 함께 비밀을 풀어가던 친구 에이스케는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후코가 환상에 빠져 추락하려 할 때 온힘을 다해 그녀를 부른다. 후코가 떨어지면 안 된다는 강한 의지를 찾은 것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온기와 힘이 담긴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환상이 아니라 사람에게 의지해서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현실이란.


후코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그때 문을 열고 본 세계의 아름다움과 위험을 잊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보니 나도 마음이 풀리고 안심이 된다. 다시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정도가 아니라 작가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작가는 이제 좀 컸다고 환상의 세계를 잊으면 안 돼, 하고 독자를 묶어두지 않는다. 오히려 머무르려는 독자를 등떠밀어 삶으로 내보낸다. 그렇다면 이제 환상의 세계는 사라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후코가 추락할 뻔했던 2층의 문 밖으로 떨어진 회중시계는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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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사 음식을 좋아한다. 특히 전이 좋다. 시댁에서는 감자와 고구마, 연근을 쪄서 식힌 다음 전을 부치기 때문에 겉이 바삭하고 속은 잘 익은 전을 먹을 수 있다. 부추전(현지 명칭은 정구지전)도 고소하고 특히 꼬치전(?맞나?)이 좋다. 맛살과 햄과 단무지와 쪽파를 꼬치에 끼우고 있으면 이건 정말 전통과는 한참 멀구나 싶지만, 여기에 계란물을 입혀 부쳐 놓으면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좋아서 자꾸만 손이 간다. 파뿌리, 양파 껍질, 무 껍질 등과 함께 푹 삶은 수육도 좋다. 특히 문어 숙회는 썰면서 집어먹고 싶은 걸 늘 간신히 참는다. 고사리를 비롯한 각종 나물을 넣고 비빈 제삿밥은 그야말로 정점. 소고기와 무, 두부를 듬뿍 넣고 끓인 탕국과 함께 먹으면 몇 그릇이고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쓰면서도 먹고 싶다. (옆길로 새고 있다...) 사과, 배, 한과로 디저트까지 먹고 나면 염분과 지방에 대한 걱정도 가라앉는다. 오히려 제사상이 사실은 균형잡힌 식단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나이므로 음식을 하는 것도, 차리고 나르는 것도, 설거지도, 별로 힘들지 않다. 어머님과 형님이 어려운 걸 다 해주시기도 하고, 남편도 아주버님도 빼지 않고 일하는 덕도 크다. 아버님 제사를 위해서 다른 친척들이 와주시는 것도 보기 좋다. 친척 어른들이 "오느라고 고생했다, 와서 얼굴 보니 좋다."고 말씀해주시면 왠지 어깨가 으쓱하고 마음도 푸근해진다. 제사는 좋다. 다만 나는 나도 절을 하게 해달라는 거다. 왜 여자는 절을 안 시켜주는가! 그것이 불만이다. 나의 경우는 제사 음식을 준비하거나 뒷정리를 할 때보다, 남자들이 절하는 동안 얌전히 물러 서 있는 순간에 확실한 부엌데기가 된다. 나도 절을 하고 싶다. 나도 돌아가신 아버님께 인사 드리고 싶고, 세상을 떠난 가족을 잊지 않는 따뜻함을 다른 가족들과 나누고 싶다. 같이 준비했으니까 나도 그럴 자격이 있다.


같이 일하고 같이 절하자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한 가지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제사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의견을 내는 것이 주저되었다.


다른 예로 수십 년 전(수십 년 전....) 내가 다닌 대학에서는 '빨간 립스틱은 페미니즘의 적'이라는 식으로 여성의 섹시함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천박하게 여기는 어떤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짧은 치마가 좋았고 하이힐을 신으면 허리가 잘록한 기분이 들어서 좋아하는 아가씨였으므로 그런 분위기가 싫었다. 그러면서 '어머니 대지'라는 추상적인 명명으로 여성성과 생태주의를 연결하는 것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페미니즘이란 여성의 성을 지우는 것도 아니고, 강조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때는 배우지 못했다. 페미니즘은 모든 성별을 존중하는 것이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약자가 없게 만들기 위한 것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모두가 잘 살아야 되니까 생태주의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걸 수십 년 지나서 깨닫게 된 것은 단지 내가 공부를 못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전혀 아니라고는 못함.) 아마 당시의 여성주의 교육에서는 그게 한계였을 것이다.


그 시절 나에게는 잘 짚어서 가르쳐주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이 책인 것 같다.

















나는 제사를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다. 그래서 같이 절할 권리를 달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다. 나는 쉬폰 드레스를 좋아하고 반짝이는 목걸이를 좋아하고 빨간 색을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다. 우리나라의 결식 어린이와 먼 나라의 저체온증 어린이를 위해 세이브더칠드런 캠페인에 동참했지만 '개념녀' 운운하는 홍보에 질려 항의하고 매몰차게 후원을 끊은 페미니스트다. (어린이들에 대한 죄책감은 그들의 몫이므로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교육에는 엄격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사람으로서 젠더의 평등 역시 확고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에는 여러 길이 있다. 모든 성별에 공정하고 모두의 행복에 관심이 있으니 당연히 그렇다. 페미니즘에 막연한 불편, 나아가 공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이 보면 좋겠다. 다정하고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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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2-18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네꼬 2016-02-18 14:38   좋아요 0 | URL
동지! 덥석

cyrus 2016-02-18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부장 중심 문화가 강한 대가족은 여전히 남자들만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두 다 그런 게 아닙니다. 지역마다 문화가 차이가 있듯이 제사 방식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제 친가에서는 남자 친척 분들만 제사를 지내고요, 외가에서는 오히려 남자 친척 분들이 여자 친척 분들에게 같이 제사 지내자고 말합니다. 처음에 외가 쪽도 남자들만 했는데, 시대가 바뀌니까 같이 지내는 분위기로 형성되어 제사를 지냅니다. 정확히 어느 지역에서 남자와 여자와 같이 제사를 지내는지 잘 모르지만, 시대가 변한만큼 제사를 준비하는 여자들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집안은 다 같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 있을 겁니다.

다음 명절 때 제사를 지내기 전에 가족들이 모여 있을 때 여자들도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건의하듯이 말해보면 어떨까요? 저는 외가 친척들이 제사 지내는 풍경을 선호합니다. 모두가 같이 제사상을 준비하고, 제일 중요한 제사는 한 사람 빠짐없이 지내는 것,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거든요. ^^

네꼬 2016-02-18 17:08   좋아요 0 | URL
네, 저 역시 (가톨릭 식이라 단촐했지만) 함께 제사 준비하고 절하는 집에서 자랐습니다. 지역에 따라서라기보다 집집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요. 저도 그래서 처음에 놀랐고요.

변화의 속도도 집집마다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세대부터 남자들이 장을 봐오고 음식을 만들고 나르고 정리하는 것, 제사 전후로는 외식하면서 피로 푸는 것 등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각 세대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변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요. 건의로 해결될 만큼 단순하진 않으니까요.

moonnight 2016-02-18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으로 백만번 좋아요를 누릅니다^^ 제 큰집에서도 남자여자 다함께 절해요. 다들 그러면 좋겠어요. 제사음식 준비와 뒷정리가 힘들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네꼬님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새애기^^

네꼬 2016-02-18 18:06   좋아요 0 | URL
어이쿠 백 만 번이나요. 저는 제가 먹은 거 치운다고 생각하면 억울하지 않거든요;;;; (진짜로 많이 먹음) 그나저나 새애기라고 하기에는 약간.... =_=

꿈꾸는섬 2016-02-18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처럼 `나는 페미니스트다`하고 당당히 외치고 싶은데 요샌 제 정체성조차 혼란스러워서 당당하지 못한 것 같아요. 책을 먼저 읽어봐야겠어요.^^

네꼬 2016-02-19 17:18   좋아요 0 | URL
뭘요. 당당하다기보다는.. 한편으로는 모든 성별이 평등하다는 게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따로 말 안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랬고요.

무스탕 2016-02-18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사..살롱해요, 고릉고릉고릉~~~♡

네꼬 2016-02-19 17:19   좋아요 0 | URL
살롱이라니, 살롱이라뇨. 사랑아니고? (왜 당당히 말을 못해! ㅋㅋ)

2016-02-18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9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족 2016-02-19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음. 과거에 남녀협상같은 데 제가 여성대표로 참석하면, 읭 그래, 니들 그거 해-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들-, 나는 밥해서 먹이는 일을 하지,라고 협상을 마쳤을 거 같아요.
처녀 적에는 그게 되게 힘든 일이고, 싫은 일이고, 고생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얼마 안 있어는 남편에게 `네가 사람노릇하려고 결혼했지? 여자사람 데려가서 일 시켜먹을라고`라고도 했었는데. 지금은 맛없다고 타박하지만 않으면 먹이는 거 너무 즐거워요.

네꼬 2016-02-19 18:17   좋아요 0 | URL
음, 그러니까 뭔가 먹을 것을 만들어 주는 걸 좋아하신다는 거죠?
저도 좋아해요. 누구든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면 좋고요.
저 역시 남이 만든 것 엄청 잘 먹고요.
먹는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삼천포)
 

일 년 중 유일하게 만두를 먹지 못하는 시즌이다. 내가 (찐)만두니까...

 

*

 

그림책의 세계는 넓고 깊어서 건져도 건져도 보물이 계속 나온다. 마침 여름에 읽으면 좋을 그림책을 몇 권 찾아서, 거실에 두고 오며 가며 들추어보고 있다.

 

수박 수영장 / 안녕달 그림책

 

잘 익어 반으로 갈라진 수박이 수영장이 된다. 이렇게 말하면 수박이 어마어마하게 크거나 사람이 아주 작거나 해야 될 텐데,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런 것 따위가 뭐 중요한가 싶다. 처음에는 석석 살아있던 과육이 아이들이 밟고 놀면서 수박 물이 되어 진짜 수영장처럼 된다. 튜브를 끼고 뽁뽁 소리를 내며 걷는 아이들, 발목에 묻어나는 수박, 껍질로 만든 미끄럼틀, 모든 것이 시원하고 달달하고 즐겁다. 그런데 수박 수영장이라니, 이 발상은 어디서 왔을까? 맨 뒷장에 조그만 힌트가 있다. 요즘 만난 가장 사랑스러운 그림책.

 

 

수박하면 참, 이런 그림책도 있다.

 

한입에 덥석 / 키소 히데오 그림책

 

동물들 모인 자리에 굴러 들어온 커다란 수박. 악어 꼬리로 잘라서 나누긴 했는데 동물들마다 먹는 모양이 다르다. 단순한 내용인데 의성어 의태어가 많이 나와서 재미있다. 수박 먹고 싶네.

 

 

 

들리니? / 하이지마 노부히코 그림책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꽃이 열리는 소리, 별이 빛나는 소리륻 들어보길 권하는 그림책이다. 나는 '서정적인 그림책'은 어른 취향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에는 단박에 매료되었다. 특히 이 장면이 마음에 들어서 이 책을 샀다.

 

 

 

 

 

무엇을 표현한 것일까?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다.

 

 

지구촌 문화 여행 / 알렉산드라 미지엘린스키, 다니엘 미지엘린스키 그림책

 

볼 것이 끝없이 나오는 신기한 지도책. 판형이 시원시원하니 크고, 한 나라당 한 펼침면을 다 써서 곳곳의 문화를 소개한다. 알라딘 미리보기로도 그 귀여움이 다 전해지지 않는다. (꼭 확대해서 자세히 보시길!) 색감도 아름답고 대체 어떻게 취재했는지 자세히도 묘사했다. 표지에 적힌 대로 "거실에서 지구 한 바퀴"를 돌아보기 딱 좋다. 그런데 한 가지, 왜 "대한민국"을 "우리나라"로 번역했을까? 러시아, 크로아티아, 에스파냐, 대한민국, 일본... 이렇게 세계 속에서 이해하는 게 더 좋을 텐데 굳이 왜? 비행기 타고 세계를 여행하다가 갑자기 여기가 우리 집 거실이란 걸 콱 깨닫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포장마차와 송광사까지 그려 넣은 걸 보면 새삼 이들의 취재(연구)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캘빈의 마술쇼 / 크리스 반 알스버그 그림책

 

책 속의 계절도 이렇게 더운 여름날이다. 동생을 놀리고 또 귀찮아 하던 캘빈은 마술쇼에서 최면술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는다. 그리고 친구와 작당해 동생을 상대로 최면술을 실험해 본다. (스포일러 방지 차원에서 여기까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도 기묘하고 반전이 있어서 약간 으스스하다. 그래서인지 10세 고객님들의 절반은 웃겨하고 절반은 어리둥절해한다. 9세 남의 반응이 흥미로웠는데 꽤 놀랐는지 표정이 굳어서 "이거.. 아닌 거 같아요." 한다. "뭐가?" "몰라요. 그런데 이거... 아 몰라요." 여름엔 역시 미스터리인가! 이 책은 전에 <<프로버디티!>>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었는데, 사려고 했을 때 절판 상태라 아쉬웠다. 이번에 새로 나와서 바로 사긴 했지만 제목은 원제대로 프로버디티!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

 

 

해리스 버딕과 열네 가지 미스터리

 

"14명의 경이로운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나는 좀 이상하다. "14명의 작가들이 들려주는 경이로운 이야기"라고 해야 맞지 않나?? 작가가 훌륭하긴 해도 경이로울 것까지야?

 

아무튼 사 두었던 이 책을 이제야 읽었다. 알려져 있듯이 해리스 버딕이 남긴 신비로운 그림을 모티프로 유명한 작가들이 이야기를 지어낸 것을 모은 책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 그림만 모아서 낸 그림책이 더 훌륭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보다는 이 책이 더 좋다. 물론 그림만으로도 이미 완성된 작품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그런데 그 그림을 보고 궁금해 죽겠어서 참다 못해 자기가 이야기를 써보는 그 마음들이 너무 좋다. 혹시 작가들끼리 "아 내가 그 그림 갖고 하려고 했는데!" 하고 질투하거나 그러진 않았을까? 어딘가에서 해리스 버딕이(실존하긴 할까?) 이 출판된 책을 보고 있다면 좋을까, 싫을까?

이 책은 "어린이책을 좋아하는 어른"이 보기에 딱 좋다. '애들이 이런 걸 읽고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접고 그냥 나 좋자고 읽는 게 좋다는 얘기. 린다 수 박의 <하프>가 가장 좋았고, 로이스 로리의 <일곱 개의 의자>, 스티븐 킹의 <메이플 거리의 집>도 좋았다. 여름엔 역시 미스터리!

 

 

*

 

 

태풍이 지나가면 이제 군만두가 될까?

걱정은 접어두고 일단 복숭아를 하나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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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7-27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여섯살 조카가 수박을 엄청 좋아해요, 네꼬님. 그래서 저 맨 위의 책을 보관함에 슝- 넣어요.
헷 :)
네꼬님이 페이퍼 써주는 알라딘은, 그렇지 않은 알라딘보다 조금 더 많이 좋아요!

네꼬 2015-07-27 21:52   좋아요 0 | URL
10세 남(터프가이)도 신나서 읽더라고요. 타미도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두근두근)
(((제가 뭘요 하하핳)))

무해한모리군 2015-07-27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수박을 좋아하니까(전 한통도 혼자먹어요 으하하하) 수박 수영장을 읽어보겠어요.. 꿈의 수영장이네요 ㅋㄷㅋㄷㅋㄷ

네꼬 2015-07-27 21:53   좋아요 0 | URL
하하하 수박 한 통을 다 먹는 여자! 멋있다! 그렇다면 정말 꿈의 수영장이군요. 아마 읽다 보면 수박 드시게 될 거예요 ㅋㅋㅋ (저는 수박 소주라면 한 통을 먹을 수 있습니다만.)

moonnight 2015-07-27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수박수영장이랑 들리니 보관함에 넣어가요^^ 정말 덥죠 헉헉-_-;;;

네꼬 2015-07-27 21:53   좋아요 0 | URL
어유 정말 더워요. 이게 집인지 사우나인지. ㅠㅠ 잘 견뎌봅시다. 어질 @@

꿀수박 2015-07-27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야 (늘 그렇듯이) 네꼬님의 탁월한 안목!!ㅋㅋ 저도 <수박 수영장> 거실에 전시했어요! 저는 <풍덩 시원해요>랑 같이..히히. 여름 끝날까 봐 조마조마해요ㅠㅠ 어쩐지 찐만두가 된 네꼬님을 상상해 보는 오늘 아침.ㅋㅋ 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

네꼬 2015-07-27 21:54   좋아요 0 | URL
꿀수박님 ㅋㅋㅋㅋㅋ 저를 어떻게 상상하고 계신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 아마도 왕만두겠죠.... (아니라고 못 함.) 풍덩 시원해요, 정보 감사합니다! 꿀수박님도 더위 요리조리 잘 피하세요!
 

 

 

 

 

 

 

 

 

글자가 없는 그림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림만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을 그려 놓거나, 반대로 너무 많은 것을 숨겨 놓아 예술성을 강조하는 책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당연한 얘기지만 단서가 너무 많으면 시시하고, 적으면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또 많은 경우에 글자 없는 그림책은 어린이에게 읽어주기가 어렵다. 대사를 지어내거나 어린이의 상상을 엿보는 것이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기 떄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글자 없는 그림책의 좋은 점을 상기하라고 나온 것 같다. 놀 친구도 없고 가족도 바빠 홀로 심심해하던 소녀가 마법의 펜을 발견한다. 이 빨간색 펜으로 벽에 문을 그려 열고 들어가면서 여행이 시작된다. 신비로운 숲을 지나자 화려한 왕궁이 나오는데, 거기서 소녀는 새장에 갇힌 아름다운 보라색 새를 구해준다. 그러느라 펜을 잃어버리고 감옥에 갇혔지만 이번에는 새가 소녀를 구한다. 새는 소녀를 보라색 작은 문 앞으로 인도한다. 그 문은 새가 이 세계로 들어온 문, 곧 새의 세계로 연결되는 문인데, 문 밖에서는 보라색 마법 펜을 든 소년이 새를 기다리고 있다. 소년과 소녀는 각자의 펜으로 바퀴를 하나씩 그려 자전거를 만들어서는 나란히 타고 놀러 간다. 물론 소년의 세계는 소녀가 있던 바로 그 현실 세계다. 책을 다시 본다. 첫 장면, 외로운 소녀가 웅크리고 있는 그 골목 한 쪽에 다른 소년들과 조금 떨어진 채 보라색 펜을 든 소년이 있다. 두번째로 책을 읽자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세번째는 어떨까? 놀랍게도, 더 많은 것이 보인다.

 

 

 

 

 

 

 

 

 

 

 

 

 

 

 

다른 나라 사람이 쓴 "현대의 고전"을 읽을 때면 왠지 입이 나온다. 이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1900년대 중반의 미국 시골의 풍경도 낯설고, 강박적으로 검소한 셰이커교도의 생활도 낯설다. '내가 이거 알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 알아두면 좋은 교양이지만 우리나라 것도 잘 모르는 처지니 하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왜 우리나라엔 그런 청소년소설이 없나 아쉬운 마음이 들고, 이런 나는 국수주의자인가 회의가 들고, 그보단 내가 좋은 작품을 몰라서 그렇겠지 싶어서 한심하다.

 

오리 입을 하고 '그래 뭐, 로버트가 돼지 잡는 일을 하는 아빠를 사랑한다는 얘기겠지. 로버트가 정성껏 키우는 돼지도 결국 죽겠지. 아빠가 아프다고?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로버트가 어른스러워지는 얘기겠지. 끝에 조금 울리겠지.' 하면서 읽었는데 이야기는 정말 그렇게 진행되었지만 나는 아이고 엉엉 울었다. 정말 많이 울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아빠 손을 잡아 입을 맞췄다. 돼지 피가 잔뜩 묻어 있는 그 손에 말이다. 죽은 돼지의 기름과 피가 묻어 있었지만 나는 계속 아빠 손에 입을 맞추었다. 설사 나를 죽이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아빠를 용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170쪽)

 

'사람의 것도 짐승의 것도 아닌' 숨을 쉬며 돼지를 잡는 아빠. 인생이 준 직분을 묵묵히 해나가는 도살꾼 아빠.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들의 돼지를 죽이고 그 손으로 아들을 쓰다듬으며 '어른스럽게 받아들여주어 고맙다'고 하는 아빠. 로버트가 아빠가 자신을 죽인다 해도 아빠를 용서하겠다고 할 때, 나는 감히 그들의 종교 속 신과 신의 아들을 떠올렸다. 그래, 재미없는 배경 묘사를 견딜 가치가 있었다. 충분히 있었다.

 

*

 

무한도전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유재석이, 노홍철 사건 때문에 멤버들도 힘들고 토토가 촬영도 다시 해야 돼서 위기였는데 오히려 재촬영을 하면서 감동적인 장면이 많이 나왔다면서 "인생은 참 알 수 없구나" 했단다. 난 그 말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남아서 자꾸 떠오른다. 참 알 수가 없다. 책 읽는 작은 일 하나도 이렇게 생각과 다르다. 마음을 열고 살자. 좀 엉뚱한 결론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마음을 열어 두자. 햇볕을 받자. 곧 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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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03-12 0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 들어왔다가 네꼬님의 새 글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얼른 `좋아요` 부터 눌렀어요. 곧 봄이라는데 날이 참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네꼬 2015-03-12 00:12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안녕하세요? 저는 바람에 맞서 먼지를 한 움큼씩 먹으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 (ㅠㅠ) 그래도 봄이 오는 바람이다 생각하고 씩씩하게 지내기로 해요.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5-03-12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돼지가 한마리도 죽지 않던 날, 은 또 뭐지? 하고 갸웃 거리다가 으음, 저 그림책도 타미를 위해 찜, 해보다가 역시 오랜만에 네꼬님 글은 좋구나, 하다가 가요.

안녕?
:)

네꼬 2015-03-12 13:34   좋아요 0 | URL
다락님,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은 왠지 재미 없을 것 같아서 안 읽다가 읽었는데 흑. 그림책은 타미 추천해요. 아주 추천해요!

치니 2015-03-12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 님의 오리 입을 연상하면서 읽으니까 안 그래도 재미있는 페이퍼가 더욱 재미있다는 사실! ㅎㅎ

네꼬 2015-03-12 13:35   좋아요 0 | URL
제가 봐도 꽥꽥 소리가 안 나는 게 이상할 정도로 오리 입이었어요. 뭐 부정을 할 수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