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 An Inspector Morse Mystery 1
콜린 덱스터 지음, 이정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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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라는 책을 접하면서 콜린 덱스터라는 추리소설 작가를 알게 되었다. 사실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아쉬울 정도다. 모스 경감이라는 독특한 탐정의 창조가 특히 인상적이었고 정교한 구성을 이리도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서둘러 이 작가의 소설들을 찾아보았고 그래서 읽게 된 책이 이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이다.

추리소설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은 그 유명한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는 소설과 거의 비슷한 구성이라고 느낄 것이다.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는 책이 아주 먼 옛날의 역사적 사실들을 상상력과 자료를 토대로 멋지게 재구성한 것이라면 이 책 '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이라는 책은 120년전 쯤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쓴 책 한 권을 탐정이 우연히 접하면서 그 모순들을 하나하나 파헤쳐가는 과정을 담은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잘된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간의 방탕한(!) 생활로 위질환을 앓게 된 모스 경감은 옆 병상의 죽은 대령이 실화를 내용으로 지었다는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이라는 책을 미망인으로부터 우연히 건네받게 되고 짦은 4장의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과연 '누가 범인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루이스 경감과 미모의 사서 등을 동원하여 자료를 모으고 추리를 하게 되는데...이 책의 묘미는 소설 내에 또 하나의 소설(액자소설이라고도 한다)이 담겨져 있다는 것과 모스 경감의 흥미만점의 병상생활, 그리고 소설 한 권으로 여러가지 추리를 하는 과정이 잘 버무러져 어느 한 대목도 소홀히 넘어갈 수 없다는 데에 있겠다.

살인이라는 것만큼 인간의 본성을 잘 드러내는 것이 있을까. 과거나 현재나 그리고 어쩌면 미래까지도 사람의 욕망과 그것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방법으로 시도하려는 계획(예를 들어 살인), 그리고 그것을 남들이 눈치채지 않게 은밀히 저지르고자 하는 노력들은 결코 멈추지 않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리라. 결국 120년 전에 일어나서 이젠 그 범인을 체포할 수도 없고 단죄할 수도 없는 사건 하나를 통해 짚어지는 모순들을 발견하고 그 상황을 상상력과 논리를 통해 다시 만들어보는 과정은, 사람의 본성에 대한 문제를 또 한번 확인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스 경감의 머릿 속에서 벌어졌던 그 당시의 실제 상황들이 자료와 작은 실마리들로 하나씩 입증되는 흐름을 보는 것은 매우 유쾌한 경험이었다. 또한 50대 중반의 뛰어난 지력의 소유자지만 술을 좋아하고 이쁜 여자에게 끌리고 급하게 성질 부리고는 곧 후회하기도 하는 헛점 투성이의 탐정을 다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해문 출판사에서 콜린 덱스터의 모스 경감 시리즈를 계속 내고 있는데 하루 빨리 완간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많이 가지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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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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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 신입생 때였다. 비교적 늦게(?) '모모'라는 책을 접한 건 이 나이에 무슨 동화야 라는 알량한 허위의식이 내게 있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제목이 마음에 안 들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아뭏든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많이 알려져 있음에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그 해 생일에 교회의 동급생 친구가 불현듯 그 책을 선물로 건네주면서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이에 맞지 않는 친구의 조숙함과 진중함에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 데다가, 책이란 모름지기 자기가 읽어보고 선물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게 주기 전 그 책을 자기가 먼저 보았다며 괜챦은 책이라 말하던 그 친구의 성의에 감동하여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나의 상상과는 다르게 '모모'라는 책이 그저 그런 동화가 아니라는 느낌으로 가슴이 벅찼었다. 덕분에 미하엘 엔데라는 작가는 다른 작가와는 조금 틀린 이미지로 내 머릿 속에 자리잡히게 된 듯 하다.

이 책이 나왔을 때 한번 더 망설였다. 혹시 그 '모모'라는 책에서 받았던 느낌이 다는 아닐까 환타지 동화라는 쟝르가 과연 더 이상의 인생에 대한 얘기를 담보할 수 있을까 라는 잡다한 걱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신뢰를 담아 이 책을 골랐고 지금 다 읽고 나니 예전 그 당시의 가슴 벅참이 다시 밀려오는 듯 하다.

역자 후기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거창한 말로 문명을 비판하지 않아도, 난해한 용어로 철학적 사항을 설파하지 않아도 그 이상의 깨달음을 자연스럽게 얻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엔데의 작품들이 지닌 힘이다." 이 문장이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정말 잘 정리한 것이 아닐까 한다. 나의 상상력을 너무나 뛰어넘는 작가의 환타지에 약간의 기괴함까지도 느껴지지만 그 상상력의 저변에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철학,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 문명에 대한 냉소섞인 서늘한 분석 등이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구술하지 않아도 내 정신에 이미지로 각인되게 하는 힘이, 그의 소설에는 있다.

이 책은 표제인 '자유의 감옥' 이외에도 7가지의 중단편을 담고 있다. '긴 여행의 목표', '보르메오 콜미의 통로', '교외의 집', '조금 작지만 괜챦아', '미스라임의 동굴', '여행가 막스 무토의 비망록', '길잡이의 전설' 이라는 제목을 가진 각각의 글들은 일면 말도 안되는 얘기들의 나열로 보일 수 있지만 기실은 지금의 나, 혹은 그 언젠가의 나와 세상에 단단히 발을 붙인 채 서술되어지고 있다. 작가는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을 독창적으로 풀어가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현재라는 시간과 공간 속의 자신과 그 너머에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혹은, 문명 세계라는 정글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생각도 이끌어내며 사람이 인생을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를 되짚어보게 한다, 아주 강력하게.

'내 앞엔 나의 길이 놓여 있다. 나, 막스 무토는 이미 자신의 목적지에 도달해 있는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막스 무토의 비망록 中).' 수많은 상념들이 교차되며 때아닌 철학적 화두에 복잡한 심경이 되었을 지라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누구도 부럽지 않은 나였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미하엘 엔데가 말하고자 했던 꿈(이걸 이렇게 표현해야 한다면 말이다)이 나의 혹은 많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하나의 빛으로 늘 존재할 것임도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냥 이야기라기 보다는 사람의 본질 속에서 꿈틀거리는 가치의 문제들을 쉼없이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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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4-11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벤트하는데, 사려고 보관함에 넣어 놓았어요. 단편모음집이였군요. 좋아라!

비연 2005-04-1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잘하셨어요! 넘 좋은 책입니다~~^^

비로그인 2005-04-13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읽었지요..;; 곧 리뷰쓰려하는데.. 편견(?)이 생길까봐 클릭한 후에 내용은 읽지도 않고, 얼른 댓글로 내려왔습니다...(--!!)

비연 2005-04-1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멋진 리뷰 올려주세요~~ 꼬옥 읽을께요^^

미네르바 2005-04-28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리뷰 쓰고 나서, 님의 리뷰 읽어 보았어요. 님의 리뷰도 참 좋았어요. 정말 좋은 책이지요? 아무래도 사야 되겠어요.

비연 2005-04-2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소장해두시면 더욱 좋은 책이죠~ 이 작가, 참 대단하다 싶어요~
 
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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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그랬으리라 생각되긴 하지만, 내가 이 소설을 고른 건 표지 때문이었다. 내게는 매우 낯선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이고 '북구의 모나리자'라고까지 불리어진다는 유명한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한번쯤은 눈길을 머물게 하는 마력이 있다. 작가가 이 작품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절대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 단언한 것처럼, 이 작품 속의 소녀의 분위기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을 불러일으킨다.

그리트라는 열여섯살 짜리 소녀가 타일공이었던 아버지의 사고로 집안이 기울자 베르메르댁의 하녀로 들어가게 되면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사려가 깊고 늘 많은 생각이 있는 그리트는 곧 다른 하녀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게 되고 베르메르의 그림 그리는 일을 돕게 된다. 물감을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약재나 돌을 곱게 가는 일은 그리트의 마음을 떨리게 하고 처음부터 아련하게 가지고 있던 '그' 즉 베르메르에 대한 동경심을 더욱 크게 만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급기야는 많은 사연 끝에 베르메르의 그림을 위한 모델이 되는데...

어리고 가난한 소녀가 화려한 예술가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면서 조금씩 달라져가는 모습을 이 소설은 매우 섬세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소박한 개신교도의 집에서 늘상 보아오던 환경에서 떠나 성모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이 여기저기 걸려있고 노란 공단 망토와 진주 목걸이를 한 여주인이 있는 집에 머무는 것은 소녀에게 두 집 어디에도 마음을 붙일 수 없는 공허함을 안겨주게 된다. 그리고 말없이 그림만 그리는 주인의 모습에서 이 상황들을 잊게 할 피난처를 발견하고 그의 그림들 속에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게 되는 흐름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또한 하녀와 주인이라는 관계. 권력을 가진 자와 그 아래에 있는 자, 그리고 그것이 묘하게도 남성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규정된, 혹은 화가와 모델의 역할로 규정된 상황에서 느껴질 수 있는 사소하면서도 강한 끌림이 보일 듯 말 듯 하게 그려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실존인물이었던 반 레이원후크라는 인물이 소설에서 말하듯("너 자신으로 남아있도록 해라."....."그런 말이 아니야. 그의 그림 속에 있는 여자들....그 여자들을 그는 자기의 세계에 가둬놓고 있어. 너 역시 거기에서 길을 잃을 수 있어.") 어쩌면 그리트와 '그'의 관계는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는, 그 속에는 가난도 없고 빚도 없고 부양해야 할 가족도 없고 복잡한 인간관계도 없는 그저 순수하고 투명한 세상 속에 갇혀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관계가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는 건 그 감정의 결이 너무 고와서, 그리고 끝내는 서로의 떨리는 손길과 뜨겁게 부딪히던 눈길만이 뒤에 남겨져서일 게다.

주변 인물들의 설정도 하나하나 살아있다. 철저하게 그 당시 그림들을 분석하여 만들어낸 도시의 모습과 한 명 한 명의 성격들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여자로서 육감적으로 그리트를 멀리하는 카타리나와 코넬리아의 미묘한 질투심, 같은 하녀이고 더 오래 그 집에 머물렀지만 여전히 늘 그런 상태인 타네커의 냉정함, 여자이지만 좀더 큰 구도 속에서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큰 마님, 마리아 틴스의 중량감, 돈으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믿는 전형적인 캐릭터인 반 라이번의 탐욕스러움, 가난 속에서 딸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그리트 부모님의 의혹과 떨림 등이 정말 실존했던 인물인 양 아귀가 딱 들어맞아 소설 읽는 재미를 한층 더했다.

그리트를 사랑하는 푸줏간집 아들 피터가 "넌 네가 속하지 않는 세계에 점점 마음을 빼앗기고 있어, 그리트. 그 사람들의 세계는 너의 것이 아니야." 라고 말했듯, 그리트는 영원히 빠져버릴 듯했던 그 세계에서 과감히 나와 '핏물이 든 손톱과 앞치마'라는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유를 얻는다.

작가는 그림 한 점에서  느껴지는 감상들을 바탕으로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 살아있는 세계 이상의 그 무엇을 구현하는 재주를 보여주었다. 그저 그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질 수 있는 그 시대의 사회구조와 생활상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마음 저변의 짙은 감정들을 세세하게 들어내어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어느새 그들의 세상에 흠뻑 빠지게 한다.

읽는 내내 마치 아름다운 시 한 편 읽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신비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소설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하는데 이 감정의 미묘한 線들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궁금해서라도 한번 꼭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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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4-03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님의 찬찬한 리뷰를 보니 정말 이제는 더 못버티겠다 싶어요. 저두 조만간 읽어야겠어요 ^^ 추천합니다!

비연 2005-04-03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감사해요^^ 저도 방금 님의 서재에 들어갔었는데..ㅋㅋ

미네르바 2005-04-0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의 섬세하고, 정결한 리뷰에 감탄합니다. 이 책 보관함에 담겨진 지 오래였는데, 더 이상 못참겠네요. 다행히 저희 학교 도서관에 이 책이 있네요. 어서 빌려 읽어야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추천!!

비연 2005-04-0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과찬의 말씀을...넘 감사합니다..^^
 
살의 동서 미스터리 북스 39
프랜시스 아일즈 지음, 유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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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시스 아일즈가 앤소니 버클리 콕스와 같은 사람이라는 건 몰랐다. 예전에 읽은 '독초콜릿 사건' 이라는 추리소설의 매우 독특하고 흥미로운 구성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 책이 이름만 달랐지 같은 사람에 의해 쓰여진 작품이란 걸 알고 나서 아하~ 했다. 그리고 이 작가는 기존의 추리소설과는 참으로 다른 작법을 구사하고 있음에 그리고 그 치밀함이나 내용이 그저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놀라왔다.

이 작품을 선택하기까지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추천하는 분들이 많아서 보기는 봐야겠다 했지만 범인이 누군지 알고 시작하는 거라니, 무슨 재미로 추리소설을 읽겠는가 했으니까. 추리소설이라 함은, 사건이 발생하고 거기에 유능한 탐정이 개입되어 범인의 심리와 행동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게 하는 쟝르가 아닌가 말이다. 하긴 작가는 "....종래의 순수하고 단순한 수수께끼 풀이 소설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수학적인 흥미보다도 심리적인 흥미에 중점을 둔 탐정 취미 또는 범죄 취미 소설이 융성하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라는 견해를 밝혔고 그 예측이 맞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추리소설이 매우 잘 만들어진 것이고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재미도 있음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확실히 느끼기는 했다.

시골의사이자 신분이 보잘 것없는 에드먼드 비클리 박사는 가진 건 없지만 가문이 좋은 줄리아라는 연상의 아내와 살고 있다. 나이가 한참 많은 아내에게 늘 주눅 들고 그 권위에 복종만 하며 살아온 비클리 박사는 공공연하게 여러 여자와 가벼운 내연의 관계를 맺으며 가정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한 불만감과 스스로 지니고 있는 열등감을 해소하며 지내고 있는데 우연히 동네에 이사온 마들레인 클렘미어라는 여자로 인해 부인에 대한 살의를 품게 되고 결국 그 일을 치밀한 계획 하에 성공적으로 수행하는데....

내용으로 봐서는 그다지 특별한 얘기가 아니나 이 소설의 묘미는 이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심리적인 변화와 그 일을 계획하면서 느끼는 자아도취감, 정신병리적인 자기합리화 등을 매우 섬세한 터치로 묘사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평범한(사실 비클리 박사가 가지고 있는 inferiority complex 등은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이 자기와 가장 가까운, 하지만 두려움과 증오의 대상인 사람에게 살인이라는 동기를 가지게 되는 그 과정들이 지나침없이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합리성까지 부여하면서 설명되는 것은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매력이라고 본다.

또한 순조롭게 진행되던 긴긴 글의 마지막 자락에 단 한 페이지로 마무리되는 충격적 반전은 인생의 아이러니를 한꺼번에 느끼게 해주는 결정적인 것이었다. 다 읽고 나서도 그 놀라움이 가시지 않는, 그래서 이 작가는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한 편의 심리소설을 완성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와 같은 이유로  이 책을 고르는 데에 망설임을 가진다면 염려말고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앤소니 버클리 콕스라는 이름으로 내었던 '독초콜릿 사건' 이라는 책처럼 우리에게 조금 색다른 추리소설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또 하나의 괜챦은 추리소설을 만났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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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4-02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작품이 더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어요...

비연 2005-04-02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저두요^^

oldhand 2005-04-02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클리 콕스도 소개된 작품들 하나 같이 일정한 수준과 재미를 보증하는 작가인것 같아요. <시행착오>도 왕추천이랍니다.

비연 2005-04-03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ldhand님! 정말 오랜만에 들러주신 것 같아요..그동안 어디 계셨어용?
암튼 넘 방가방가~ 님이 추천하신 '시행착오'를 보관함에 곧바로 집어넣었답니당~

sayonara 2005-04-04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님의 표현대로 마지막의 반전만 뛰어나다면... 트릭같은 것도 뛰어났으면 좋겠는뎅.. ㅎㅎㅎ

비연 2005-04-04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yonara님...반전만 뛰어난 건 아니구요(ㅋㅋ)..
트릭이 매우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단 이 책은 제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살의를 가지고 살인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과정 속에서의 범인의 심리상태에
주목하시는 게 더 재밌을 겁니다...아주 잘 묘사해놓았지요~^^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0
콜린 덱스터 지음, 문영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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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맘에 들어 골랐다. 콜린 덱스터의 작품은 처음이지만 많은 분들이 이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모스 경감에 대해 언급한 글들을 보아서인지 그리 어색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동서미스터리북스의 100번째 시리즈물이라는 것도 괜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었다.

우드스톡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곳에 두 아가씨가 있다. 버스가 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다가 한 아가씨, 좀더 육감적이고 아주 뇌쇄적인 복장을 한 아가씨가 히치하이킹을 하자고 제안한다. 내키지 않아하다가 다른 한 아가씨도 좇아 가게 되는데...그날 밤, 히치하이킹을 제안했던 아가씨가 처참한 모습으로 살해된 채 발견되고 수사는 시작된다. 강간과 살인. 굉장히 진부한 살인수법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콜린 덱스터는 매우 독특하게 전개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스 경감은 중년의 약간 마른 듯한 탐정으로 다른 여느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들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큰 그림을 그려두고 수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전개방법은 사뭇 달라서 가설이 깨지면 다른 가설을 덧대고 다시 그 가설에 부합되는 증거가 포착되면 조각을 맞추듯 다른 증거들을 찾아내는 수사방법이 매우 섬세해서 어느 한 가닥이라도 놓쳤다가는 어리둥절해지기 십상이다.

유머와 낭만이 깃든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사건을 해결하는데 용의자를 잡기 위해 숫자를 하나씩 좁혀나가는 그 방법은 재미있는 방식이었다. 모스 경감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도 괜챦은 경험이었고. 루이스라는 인물의 등장도 이 소설의 묘미이다. 하나도 모르는 듯 따라가는 모습이나 모스 경감에 대한 복잡한 심정들이 조금씩 비치는 것이 마치 우리네 독자들을 투영한 듯한 캐릭터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복잡한 관계들, 그리고 오해, 분노, 질투. 언어로 하나하나 설명하기 곤란한 뒤얽힘을, 상황들에 대한 언급으로 풀어나감으로써 책 내용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는 추리소설이다. 무엇보다 추리는 그럴싸해도 상황이 엉성한 추리소설도 있는데 이 소설은 소설로서의 작품성도 어느 정도 갖춘 모양새를 보여주어서 읽는 내내 흥미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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