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달리는가 - 동물들이 가르쳐준 달리기와 진화에 관한 이야기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정병선 옮김 / 이끼북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의 느낌은 놀랍다였다. 사실 리뷰 쓰겠다고 신청은 했지만 내용이 뭔지를 자세히 가늠하긴 어려웠고 다만 제목에 혹해서 신청했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왜 달리는가. 문학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막상 받아놓고 보니 예상이 많이 빗나가는 바람에 적이 당황스러웠다. 저자는 생물학 교수이고 자신의 달리기 기량을 높이기 위해서 연구 대상인 동물들에게서 생물학적인 관찰을 통해 지식을 얻고자 했다. 따라서 내용의 절반 이상이 낙타, 영양, 개구리 등등의 동물들이 진화학적으로 어떻게 달리는가에 대한 약간의 전문 용어를 포함한 설명들이었다. 하지만, 지루할 수도 있는 이 내용들이 놀라움으로 다가오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저자는 타고난 글솜씨로 자신의 오래 전 경험들을 아주 상세하게 그 느낌까지 마음에 와닿게 기술하면서도 사람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놓치지 않는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고 그 모든 것이 내게는 감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저자인 베른트 하인리히는 생물학자인 동시에 많은 책을 저술한 사람이면서 또한 100km울트라마라톤 선수이기도 하다. 100km라니! 이러한 달리기는 기존의 마라톤과는 달리 더큰 지구력이 있어야 했고 그래서 별다른 지식이 없었던 저자는 다른 동물들이 왜, 어떻게 뛰는 지를 살펴보고 자신에게 하나씩 접목함으로써 방법을 찾아나가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결심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어린시절, 대학시절을 통해 달리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과정들, 연구하는 동물들의 특징들을 하나씩 둘씩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울트라마라톤에 참가하여 기록을 내는 최종 순간까지를 담담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아프리카의 여느 아침이다. 영양이 잠에서 깨어난다. 영양은 자기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여느 아침이다. 사자가 잠에서 꺠어난다. 사자는 자기가 가장 빠른 영양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자든 영양이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튼 해가 떠오르면 당신은 이미 달리고 있을 것이다." (pp 22)

저자에게 있어서 달리기는 인간에게나 동물에게나 존재의 근원이다. 달리기 위해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있기 때문에 달리는 것이다. 어린 시절, 숲에 살 때부터 그는 달렸고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크로스컨트리 선수를 하면서 그 달리기는 이어졌다. 달리기는 신체의 일부를 사용하는 여타의 다른 운동들보다 훨씬 정직한 행위이며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름아닌 마음이고 그것은 용기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예컨대 마술로는 어디에도 갈 수 없지만 한 번에 한 걸음씩 일련의 정확한 연속 과정으로 발걸음을 움직이면 목표한 곳에 다다를 수 있다. 첫번째 세 걸음을 내딛지 않는다면 1,600미터를 완주할 수 없다. 때가 묻지 않은 신성한 이 행위에는 진실과 아름다움, 조화가 자리잡고 있다. 모든 걸음이 중요하다. 각각의 발걸음은 아름다운 행동이다. 이 걸음(step)들이 모여 보폭(stride)을 만들고, 전체로서 속도(pace)가 된다. (pp 96)

학업과 달리기를 병행하면서 저자는 동물들에게서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혈관이나 간, 뼈, 허파 같은 기관이 없는 곤충이 어떻게 운동을 하고 온도를 유지하는 지, 새들은 어떻게 쉬지않고 수천 킬로미터를 비행하여 이동할 수 있는 것인 지, 가지뿔영양은 어떻게 최고의 달리기 능력을 보유할 수 있는 것인 지, 낙타의 가공할 지구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 지 등에 대해서 하나하나 의문을 가지고 해결점을 찾아가면서 진화라는 것에 대해 관점을 가지게 되고 특히 신체구조는 틀리지만 인간과 공유하는 공통점들을 찾게 된다. 읽어보면 이런 점이 있구나 라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이론들이 종종 나온다.

100km 울트라마라톤을 준비하고 경기에 참여하여 1등으로 골인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저자가 가졌던 느낌들은, 책에서도 말했지만 인생과 비슷함을 느낀다. 경주는 내 인생의 은유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진화해온 과거, 경험, 그리고 마음의 영향을 받는다...나도 경주에 대비해 내가 하고 있던 일이 올바른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이상적인 배우자, 학문, 또는 훈련 섭생법을 선택할 때처럼 우리는 위험을 산정한다. (pp 318) 무엇이든 몰두하는 사람에게는 그것 이외의 우주가 보이는 법이다. 저자는 달리기를 하면서 인생을 보았고 그것을 넘어선 인류의 진화와 그 노상에 있는 우리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라는 주제로 이렇게 훌륭한 책을 쓰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저자가 생물학자이기 때문에 그저 달리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 진화의 문제 등을 깊이있게 사색한 결과물이기에 그럴 수있었을 게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 책을 덮으면서 감동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모체로서의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가치와 꿈을 말하는 저자의 생각에 있다. 아마도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진화의 끝자락에서 달리기에 그다지 적합하게 구성되어지지 않은 신체를 가지고(동물들에 비해서 말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달리게 하는 원동력으로서의 마음과 꿈이 살아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에게 공통으로 내재해 있는 사냥꾼의 마음이 실용성을 넘어서는 가치를 공유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꿈이다.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커다란 부분이다. 현대의 주자들을 따뜻한 아프리카의 깊은 밤에 화톳볼 주위에 모아놓는다면 그들도 여느 부시맨들처럼 타다 남은 재를 들쑤시면서 결승선에 도달하기까지의 그 모든 과정과 그 이상까지도 반추할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쓰고자 했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pp 322)

저자의 이 마지막 말을 읽으면서 내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많은 꿈들을 생각해보았다면 비약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달리는 행위 하나에서도 우리는 나름의 마음을 싣게 되고 그 마음들은 결국 나름의 꿈이라는 것에 잇닿아 있음을 알게 되니 내가 하는 모든 행위들에게서 그것을 찾는 것을 어쩌면 당연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이 책이 비단 달리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만 추천할 수 있는 책으로 그치지는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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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4-16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실함이 묻어난 리뷰... 추천하고 가요...;;;;

비연 2006-04-16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감솨해요^^ 읽은 느낌만큼 잘 써진 것 같진 않은데...우히히~
 
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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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 읽고 나서의 기분. 설명하기 힘들다. 분명 잘된 추리소설(이걸 추리소설이라는 범주 안에 넣는다면 말이다)이긴 한데 뭐랄까. 그냥 복잡하고 난해하고 그러면서도 뒷끝이 개운치 않은 맛이다. 장장 633페이지(아무리 '손안의 책'이라고는 하지만 말이다)나 되는 데다가 역자의 말 한마디조차 없는 불친절한 책이라는 점 때문은 아니다. 그래서 뭐라고 리뷰를 써야 할 지 사실 막막하면서도 또한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의무감 같은 것을 부여한다.

일단 이 책의 장광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반다인의 책에서 잘난척 현학적으로 말하던 탐정은 비길 바가 아니다. 교코구도(본명은 추젠지 아키히코)라는 고서점 주인의 길고도 긴 말들은 작가의 세계관과 나름의 철학들이 범벅이 되어 우리에게 전해진다. 한번 말을 시작하면 끊어지질 않고 상대의 말은 무시해버리기 일쑤다. 소설을 읽는 건지, 철학책을 알기쉽게 대화형으로 풀어놓은 건 지 헷갈릴 정도다. 하긴, 그렇다고 그 말들이 다 이상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너무 길고 너무 자주 등장해서 좀 지루하다는 것일 뿐.

선전에 나온 것처럼 이야기는 1950년대, 전후 일본이 이제 막 부흥하려고 하는 찰나, 유서깊다고는 하나 이제는 쇠락의 길에 접어든 산부인과 가문의 사위가 실종되고 그 부인은 임신 20개월이 넘어도 출산을 하지 못한다는 정보를 접한 두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여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이는 괴이한 탐정 에노키즈와 형사 기바 등이 관여를 하면서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는데...

얼핏 보면 매우 평범(물론 사건 자체는 평범하지 않다. 20개월의 임신이라니...)한 추리소설의 구도를 가진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사건의 결말은 매우 충격적이고 믿기가 어렵다. 일본의 고대 설화 등에서 등장하는 우부메와 고획조 등의 요괴(혹은 귀신?)담이 적절히 가미되면서 전쟁과 망상과 집착과 광란이 교차되고 거기에 결코 유쾌하지 않은 한 집안의 역사와 왜곡된 인간상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파국에 치닫게 된다. 그냥 잘못된 역사의 반복이라는 측면만을 강조했더라면 그렇지 않았을테지만, 요괴라느니 영혼이라느니 하는, 밤에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한 일본의 정서들 덕분에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로 이끌어가는 추리소설이라고 보여진다.

일본의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그들의 정서에 반감이 들면서도 추리소설에 일본이라는 나라의 색채가 강하게 들어가 어떠한 흐름을 형성했다는 자체에는 부러움이 든다. 추리소설 하나에도 자신들의 역사(그것이 괴기스럽든 요괴스럽든 간에 말이다)와 분위기를 고스란히 실을 수 있는 작가들의 정신이 때론 무섭기도 하고 말이다. 어쨌거나 유럽이나 미국의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른 쟝르의 추리소설을 만들어낸 점은 높이 사고 싶다는 거다.

처녀작이라고 하기에는 그 완성도가 너무 높아서 작가 교고쿠 나츠히코의 이름을 다시한번 들춰보게 된다. 솔직히 나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 하에 별을 하나 제외시키긴 했지만, 억지스러운 장광설만 좀 자제했더라면 흠을 찾을 수 없으리만치 잘 만들어진 추리물이라는 느낌을 가진다. 다음엔 낮에 읽을 것을 결심하고(밤엔 정말 무서웠음을 고백한다)  '망량의 상자'를 읽어보아야겠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서 오싹함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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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3-1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읽고 싶게 만드는구랴..(낮에 읽는다는 조건으로^^)

물만두 2006-03-12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성님 이거 무서운거 아니라 밤에 읽으셔도 상관없어요^^

비연 2006-03-12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ㅋㅋㅋ 꼬옥 읽어보세요^^

비연 2006-03-1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전..무지하게 무섭던데요? 웅~ 등줄기에 소름이 쫘악~

상복의랑데뷰 2006-03-23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섭다기 보다는 징그럽다는 표현이 ^^;;

비연 2006-03-24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복의 랑데뷰님) 아...좀 그렇죠? 엽기적이라는..근데 그 장면은 상상만 해도 좀 무서워서요. 그 방의 장면..(더 이상 말하면 스포일러..우히히~)

jedai2000 2006-03-2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량의 상자>는 엽기성도 두 배, 재미도 두 배, 완성도도 두 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지만요..^^;;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비연 2006-03-29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엽기성이 두 배라...흠. 그래도 재미와 완성도도 두 배씩이니 읽어봐야겠군요^^

상복의랑데뷰 2006-04-20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에 망량을 읽었는데, 저는 망량에게 올인을...

비연 2006-04-21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가요? 지금 상/하권 고스란히 제 책장에 놓여있습니당.
상복의 랑데뷰님 말씀을 들으니 바로 개시해야겠군요! 룰루랄라~
 
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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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자 마자 바로 컴퓨터 앞에 달려드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이거, 잡스러운 소리라도 리뷰 꼬옥 남겨야겠다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앉았다. 보기 드문 수작이라고, 이런 건 추리소설이라는 이름으로 한정짓는 게 아까울 정도라고 나름 생각하면서 말이다. (물론 추리소설이 좁은 쟝르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손사래를 칠 사람들도 있을까봐 지레 우려스러워서 하는 소리지)

여러가지 사건들이 두서없이 펼쳐지고 그것이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을 연결시키다가 어느 순간에 하나의 울타리 안에 묶여지는 구성은, 기실 예측 가능한 것이다.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오는 숱한 얘기들, 사람들이 사카키바라 료가 저질렀다고 추정되는 사건에 수렴되리라는 것은 초반부터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건, 짜임새 훌륭한 구성에 사회문제를 폭넓으면서도 예리하게 담아내는 솜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언론에서 가끔 문제 제기를 할 때에나 생각하게 되는 사형 제도라는 것. 그것도 머리 아파서 별로 깊게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또는 죽일 놈은 죽여야 한다고 격앙하는 부류의 사람들과 인권을 얘기하며 반대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 그런 사형 제도가 화두가 될 수 있는 것은 결국 죽음과 삶의 문제, 그리고 신이 아닌 사람이 행해야 하는 행위들에 있겠다. 누가 누구를 죽이는 것이 어떤 근거로 정당화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법이나 제도라는 허울좋은 명목으로 허용되고 있는 그것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되는 사람들의 죄의식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것인지. 그리고 과연 '죽일 놈'은 누구인지. 이런 것들을 쉴새없는 템포로 박진감 넘치는 필체를 동원하여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이 책은.

우츠기 고헤이 부부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사카키바라 료는 그러나 사건 전후에 대해 기억을 전혀 못하는 상태다. 매일 엄습하는 사형에 대한 불안을 삭이며 한 가지 떠오른 단상이 '계단'이고 또한 자신이 죽이지는 않았다는 것 뿐이다. 사카키바라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난고 교도관과 상해치사 혐의로 복역 중이다가 가석방된 미카미 준이치가 뛰어들게 되면서 결국 진범을 가려내는 과정을 그린 이 추리소설은, 사건 당일의 기억을 상실한 용의자라는 구상과 모두들 직간접적으로 사람을 죽여본 경험을 공유한, 그래서 늘 그 테두리에서 맴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설정, 그 과정에서의 법적 사회적 심리적인 묘사 등이 너무나 뛰어나다.

무엇보다, 그냥 지나치곤 했던 사형 제도라는 문제를 치밀하고 접근성 강하게 들추어냄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철학까지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흡인력있는 작품이라는 점이 강력 추천하는 이유이다. 즉, 뭔가 두리뭉실하게 내 가슴 속에 내재되어 있던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들, 타인과 자신에 대한 생각들, 복수와 댓가라는 것에 대한 가치들이 하나씩 둘씩 수면 위로 떠올라 과연 문제가 무엇인가 그리고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가 또한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점이 있다.

사실 이것저것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읽어보면 아니까. 무조건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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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2-26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이 책에 찬사를 보내시는군요. 꾹.

비연 2006-02-27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보세요^^ 절대 후회 안 하실 듯~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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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충격적인 반전은 처음이라는 평들이 많았다. 게다가 약간은 몽환적인 책표지와 연애소설에나 어울릴 듯한 제목이 주는 이질감도 한 몫을 한 듯 하다.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다들 쉬쉬하며 읽어보라고만 하는가. 추리소설이라고 단정지어 구분한 책이 낭만적인 표지와 제목을 가지게 된 연유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너무 바빠서 사놓고도 한참을 못 본 채 마음을 계속 졸여왔던 것 같다. 궁금하고 또 궁금하고.

어제 오랜만의 여유를 부려 하루종일 이 책과 더불어 보냈다. 일단 한번 들면 놓을 수는 없는 책이다. 아주 박진감 넘쳐서도 아니고 매우 구성이 잘 되어서도 아니며 무지하게 재미있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사전에 들은 정보 때문이다. 반전의 정체가 뭔가. 이 생각 때문에 끝을 보게끔 했다. 사실, 전체적인 내용은 좀 진부하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이나 알 듯 모를 듯한 실마리를 슬쩍 슬쩍 내비침으로써 독자들을 긴장하게 하는 내용이나 어디선가 많이 본 느낌을 준다. 게다가 반전이라고 하니까 내용을 그런 식으로 자꾸만 유도하게 되고 결국은 김빠진 맥주를 마시는 기분을 안겨준다.

그렇게 거의 대부분을 읽어내려갔는데도 반전의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결국 마지막 한 컷에 다 달려있나. 갸우뚱 하면서 읽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이해하고 있던 것과 다른 내용이다. 나는 앞장부터 펼쳐들고 설렁설렁 책장을 넘기며 내용을 다시 보았다. 어..이상하다. 내가 이해한 게 맞는데 왜 이런 내용이 나오는 거지? 그렇게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나니 뒤통수를 강타하는 충격이 아니라 내가 은근슬쩍 사기를 당했다는 느낌을 먼저 받았다. 그러니까 버스에서 태연자약하게 신문 한장 펼쳐들고 있다가 핸드백 근처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손길에 번쩍 눈을 들어보니 핸드백이 찢겨져 그 속에 있던 지갑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바로 그 순간의 아연한 느낌. 그리고나서야 터져나오는 비명. 어, 내 지갑! 그러니까 이 소설도 마지막 장을 넘긴 후 한동안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허둥지둥 내가 속았구나 하는 것을 알고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다.

결국 나는 작가에게 보기좋게 당한 셈이다. 그건 작가가 고도의 트릭을 썼기 때문이 아니다. 말하자면 내가 나의 고정관념에 속은 거다. 그래서 뒷끝이 씁쓸했고 책을 또다시 들춰보며 내가 무엇에 대해 그런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었는가 반추하게 된다.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머리 속에 박혀진 영상 속에서만 상대를 판단하게 된다. 내가 알던 것, 사회가 요구하는 것, 규정지은 것 등등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자세 따위는 취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타인을 그 영상의 틀 속에 박아버린다. 그렇다. 작가는 사회의 문제를,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한번 비틀어 냄으로써 우리에게 명백한 자각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그다지 나의 호감을 끌지도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류의 반전도 아니었으며 더더군다나 그 속임수라는 것이 통렬함 보다는 자괴감을 선사했음에도 별을 4개 주도록 만든다. 사회의 문제라는 것은, 하나하나 구체적이고 서술적으로 르포형식으로 풀어서 선사해야지만 우리의 마인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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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2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그 점이 이 작가의 새로운 시도였고 당해도 좋았던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연 2006-02-26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조금은 색다른 반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그런 반전이 아니라
우리에게 뭔가 시사하는 점을 가지게 하는 사회성 짙은 반전...^^

울보 2006-02-26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이책주문했는데,,

비연 2006-02-26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후회하지 않을 만한 내용이랍니다^^

2006-04-20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06-04-21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추리소설에 대해 거는 기대를 넘어서는(!) 사회문제라는 데에 의의를 많이 두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마지막 부분의 반전은 놀라움도 있었지만 실소를 자아내는 부분도 없지 않았으니까요.
알라딘에는 글 잘 쓰시는 분들이 넘 많아서 제 글은 정말 부끄럽지요. 님의 글도 잘 읽고 있는 걸요^^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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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참 엽기적인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아흔살의 노인이 생일을 맞이하여 풋풋한 처녀와의 하룻밤을 자신에게 선물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서 시작되다니. 게다가 소개받은 처자는 열네 살 밖엔 안된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나'는 그 소녀와 단둘이 밤을 지내기를 결정하다니. 마치 '선데이 서울' 같은 삼류 잡지에나 나올 법한 가십 기사 종류이며 보면서도 혀를 끌끌 차게 될 황당무계한 설정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위대한 작가란 이러한 일상적이고 저열한 소재 속에서도 인생에 대한 빛나는 성찰과 회고를 담아내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그런 류로, 위대하다는 말을 붙이기에 전혀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늙어간다는 것. 수많은 세월들을 뒤로 한 채 노쇠해진 몸과 마음을 지니며 살아간다는 것. 무엇보다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나를 어느 새 규정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인생의 황혼녘에 누구나 감내해야 하는 쓰디쓴 경험인 지도 모르겠다. 아흔살. 거의 한 세기를 살아온 주인공 '나'는 기자이자 칼럼니스트이다. 그는 사창가에서 노니느라 결혼의 시기를 놓쳤고 돈을 주지 않고는 여자와 관계를 한 적도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진정한 사랑에 대해 생각할 틈도, 진지한 인생이나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는 생활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라 보여진다. 그에겐, 거래만이 있을 뿐 감정의 소통이나 시간의 더께 아래 묻혀진 속깊은 마음의 교감도 없었을 것이다. 과거는 그에게 회한을 안기고 늘 그런 상태일 듯했던 많은 것들이 사라지거나 혹은 잊혀졌다. 신문사 사장실에 걸려진 사진 속의 인물들 머리위에 수없이 새겨진 십자가들만이 남아있을 뿐.

그런 '나'가 그 어린 소녀를 만나면서 달라지게 된다. 약에 취해 쓰러져 자고 있는 벌거벗은 소녀를 보며 "욕망에 쫓기거나 부끄러움에 방해받지 않고 잠든 여자의 몸을 응시하는 것이 그 무엇과도 비할 바 없는 쾌락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스스로 델가디나라 마음대로 이름 붙이고는 소녀를 위해 하나씩 주변을 채워주고 마음을 위로해준다. 생전 처음으로 그는 강렬함과 행복감을 느끼며 소녀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간다.

사랑은 또한 그가 자신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녀 덕택에 나는 구십 평생 처음으로 나의 타고난 성격을 알게 되었다. (...)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도 미덕이 아니라 게으름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야박한 심성을 숨기기 위해 인자한 척하고, 그릇된 판단을 숨기기 위해 신중한 척하고, 쌓인 분노가 폭발할까 봐 화해을 청하며, 타인의 시간에는 무관심하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시간을 엄수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  낭만주의 문학에 빠져뜰고 음악 취향도 바뀌고 무엇보다 묵은 과거 세상을 넘나들던 칼럼은 사랑의 달콤한 연서로 바뀌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현실이었다.

나이가 조금만 들어도 사람들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게 있다면 바로 '불타오르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닐까. 경험이 많다는 혹은 많이 들어서 안다는 교만을 무기로 내 마음에 무언가 다른 변화가 생기는 것에 지레 겁을 먹고 움츠려들어서는 방어벽을 겹겹이 싼 채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을 떠올려본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것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아흔살이 되어도 새롭게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인간상을 제시한다. 열정과 도취와 사랑의 낭만은 언제나 가능한 것이며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을 변화하게 한다고 그는 말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감정 저변에 깔린 내 자신에게 충실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라고 얘기하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을 결론을, 전혀 무리없이 천박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감히 대단한 작가라고 말해본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잊고 사는 무언가가 있는 듯한 허전함에 시달릴 때 이 책을 펼쳐들면 위안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단 '사랑'이 아니라도, 마음에 불타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작은 불씨마저 사그러뜨리는 일 없이, 그렇게 언제라도 나를 생생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대상 혹은 존재를 만날 수 있도록 나를 숨기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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