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경관 동서 미스터리 북스 23
펠 바르.마이 슈발 지음, 양원달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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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멋진 탐정 한명 출몰하여 현장 검증은 한번만 해도 머릿 속에 범인의 윤곽이 연역법으로 주욱 떠오르고 거기에 따른 가설들을 다시 주욱 세운 후 퍼즐을 맞추듯 사건을 풀어나간다..인거 보면 이런 류의 추리소설에 우리가 많이도 길들여졌나 보다. 사실 현실에서는 그런 민완탐정이 '계셔서' 사건을 후다닥 해결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 게다. 오히려 일선의 경찰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실오라기같은 증거들을 조심스레 모아모아 어렵게 범인을 색출해내는 게 맞으리라. 요즘 TV에서 인기리에 방송되고 우리 엄마가 한 회도 빠지지 않고 열심 시청하고 있는 'CSI' 시리즈와 같이 말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정말 현실과 가깝게 쓰여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절대 진부하다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찰 아저씨들이 수사실 한 켠에 앉아 혹은 현장을 주도면밀하게 좇아 다니며 사건을 차근차근 수사해나가는 모습이 그려져서 더욱 실감나고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더욱이 경찰들의 개성어린 면면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마치 실자국 하나 없는 봉제인형마냥 잘 어우러지게 묘사한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스웨덴의 부부 추리소설 작가라니. 이름부터가 낯설고 지명이 발음하기조차 힘들지만 식상하게 내 눈에 박혀있던 미국식 영국식 이름보다 오히려 집중이 잘 되는 듯 하였고 한 명 한 명의 경찰들을 애정어리게 그린 솜씨가 멋들어져 눈을 뗄 수가 없게 했다. 어느 외진 거리에서 이층 버스가 난데없이 멈추고 그 속에 타고 있던 9명의 승객들이 총탄에 어이없이 죽어있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추리소설은, 인간의 호기심이라는 측면과 허위의식을 낱낱이 파헤치고 풀릴 것 같지 않던 사건이 어느 순간 물꼬가 트이며 범인에게로 그 증거들이 모이는 순간을 박진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는 수작이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나 스웨덴이나 매한가지인 경찰이라는 신분에 대해서도 너무 자조스럽지 않고 또 너무 영웅시되지 않게 적절히 보여주고 있다. 가족을 힘들게 하면서 선택한 직업이지만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범죄에 대한 증오와 진범을 밝히고자 하는 의지들이 아..과연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졌다면 이럴 만하다 싶은 걸 보면 어디나 어떠한 직업으로 인해 빚어지는 이야기들은 비슷비슷한 건가 보다.

이 부부작가의 작품을 꼭 다 읽어봐야겠다 하는 마음을 담아 마지막 장을 덮었다. 알라딘 서재를 하면서 주옥같은 추리소설들을 보다 많이 접하게 된 건 나에게 있어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하는 마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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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3-22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넹^^ Kel님의 리뷰 보고 사서 읽은 책이에요...넘 재밌어서 감사의 뜻을..^^
이 작가들의 책이 시리즈로 쫘악 나왔으면 좋겠어요. 동서문화사여 제발..ㅋㅋ
 
빨강머리 레드메인즈 동서 미스터리 북스 32
이든 필포츠 지음, 오정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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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접해보는 이든 필포츠의 추리소설이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형식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는, 풍경에 대한 세심한 묘사와 로맨틱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어느 작은 도시에서 뜻하지 않은 혈육간의 살인 사건으로 보여지는 사건이 일어나고 우연히 휴가를 갔던 마크 브렌던이라는 런던 경시청 소속의 민완 형사가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거기에는 살인된 사람의 부인인 스무살 초반의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가 있고 브렌던 형사는 사사로운 연애 감정에 휘말린 채 사건의 해결에 전력한다. 하지만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가고 계속 유령과 같은 살인자의 모습만  드문드문 나타나는데..결국 이 제니 펜딘이라는 미망인의 큰 삼촌의 친구이자, 탁월한 탐정인 피터 건즈의 등장으로 사건은 실마리를 찾아가게 되고 결국 잡히고야 만 범인의 멋드러진 수기로 이 책은 마무리를 짓는다.

무엇보다 사람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는 점이 이 추리소설의 큰 장점이다. 아주 세세한 감정의 흔들림과 의혹, 질투, 분노 등이 눈 앞에 보이는 듯 그려지고 있고 범인의 잘난 체 하고 싶어하는(!) 그 심정 또한 곳곳에 드러나 소설의 매력을 더한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 작위적인 설정과 지나칠 정도의 구체적인 설명들로 인하여 범인의 윤곽과 플롯이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는 것이 흥미를 조금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범인이 왜 그런 일들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의구심만큼은 그대로 남아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게 한다.

무엇보다 믿어야 할 사람과 믿지 말아야 할 사람, 사실이라 생각해야 할 것과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 등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어 끝까지 그 결말을 의심하게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것이라 보여진다. 결국 일종의 허영심으로 무너진 범인이, 그러나 자신의 범죄 행각과 배경을 스스로 자화자찬하며 유려한 솜씨의 글로 남기는 대목은 인간이란 어디까지 사악할 수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삐뚤어진 생각에서 비롯되는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세계 10대 추리소설 중의 하나라는 타이틀이 전혀 무색하지 않은 멋진 작품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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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2-25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군요. 읽어보고 싶어요!! 세계 10대 추리소설이라... 심리묘사도 탁월하단 말이죠....

비연 2005-02-25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꼬옥 읽어보세요^^

balmas 2005-02-25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96220

 

일단 추천 하나 하고 ㅋ.
저도 읽어봐야겠군요. 감사.^^


울보 2005-02-26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비연 2005-02-27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lmas님..추천감사하구요~^^ 잡아주신 숫자도 감사~
다들 읽어보신다니 제가 왜 이리 반가운지요...오호홋~^^**
 
폭스 이블 블랙 캣(Black Cat) 5
미네트 월터스 지음, 권성환 옮김 / 영림카디널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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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부터가 인상적이다. 여우(fox)가 덫에 걸려 난도질당해 죽어가는 장면. 그리고 어느 노인에게 집어던져지고 계속해서 일어나는 그런 잔인한 사건들에 지친 노인은 여우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총을 쏜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이름. 폭스 이블(Fox Evil)이라는 정체모를 사내. 그대로 읽으면 탈모증이란 뜻이고 거꾸로 읽으면 사악한 여우라는 뜻이다. 그의 아들인 울피(Wolfie)와 컵(Cub, 새끼여우)은 아버지의 폭력과 억압으로 인해 그 나이때보다 훨씬 못 큰 아이들이다. 영국 도싯 지방의 작은 마을 센스테드에서 일어난 제임스 로키어-폭스의 부인 에일사의 살인사건. 남편과 아내의 다툼을 동네 사람이 들었고 괴상한 소문 탓에 남편이 아내를 죽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덕분에 제임스는 집안에 두문불출하며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고 있다. 이렇듯 주인공들의 이름은 모두 여우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주위에서는 여우 사냥에 대한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동물학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우를 사냥하는 자체가 생명존중 사상에 어긋난다고 하고 사냥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개가 여우를 죽이는 게 가장 깨끗하다고 한다. 여우와 관련된 사람들의 가정사와 여우 사냥을 중심으로 한 동물학대 문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작품 전체에 잘 스며들어 매우 짜임새있는 구성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이 작가는 동물애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런 형식을 빌어 나타내고자 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정과 작은 시골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축으로 하여 어두운 가정사와 그를 둘러싼 음모들, 모함들이 주된 흐름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는 영국 추리소설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살인 사건을 계기로 제임스의 망나니 아들 레오와 난잡한 사생활을 가진 엘리자베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열일곱에 낳아 멀리 입양시킨 딸 낸시와 관련한 가정사가 하나하나 들춰 내어지고 이기심과 잔인한 본성을 드러내며 끊임없이 이 가정을 경계하는 마을 주민들의 추악한 면들도 함께 도출되면서 단지 살인 사건이라는 측면보다는 작은 도시에 같이 머물면서도 서로에 대한 신뢰나 애정이 결핍된 인간의 본질적인 잔혹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이 아마도 이 미네트 월터스라는 작가를 아가사 크리스티의 계보에 올려놓는 것 같다.

매우 두꺼운 책이지만 술술 잘 읽혀지고 특이한 구성(신문 기사가 중간 중간 게재되는 형식)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논리의 흐름,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운을 남기는 소설적 재미가 아주 인상적이다. 또 인물 캐릭터가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여 내가 그 속에 놓여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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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2-04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넷 월터스 좋은 작가죠^^

비연 2005-02-04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만두님이 적극 추천하셔서 읽게 되었는데 정말 좋은 작가더군요..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윈터 앤 나이트 블랙 캣(Black Cat) 3
S. J. 로잔 지음, 김명렬 옮김 / 영림카디널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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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책이 있다. 읽고 있는 건 글자이고 나는 책을 보고 있는데 읽는 내내 영화라도 보는 듯 눈앞에서 영상이 스쳐지나가는 그런 책. 그래서 책을 다 읽고 탁 덮는 순간 귓속에서 그 대사들이 들리는 듯한 책. 아마도 이 책이 내겐 그랬던 것 같다. 추리소설이라기에는 매우 문학적이고 문학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시나리오 같다. 구성이 탄탄하고 앞뒤의 이어짐이 자연스러워서, 5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한번 열고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손을 놓을 수 없는 마력이 있는 책이기도 했다.

요즘의 추리소설 혹은 문학작품들이 많이 다루고 있는 소재 중의 하나가, 어린 시절의 상처와 그로 인한 불운한 인생, 그 속에서 또 상처입는 주위 사람들, 그리고 악연처럼 다시금 돌아오는 비슷한 상황들인 듯 하다. 주인공인 빌 스미스는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과도 소원하게 지내고 하나 있던 딸마저 사고로 잃은 채 외롭게 사립탐정을 하는 사람이다. 어느날 불쑥 찾아든 여동생의 아들, 그러니까 조카인 개리로 인해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그 궤적을 좇아가는 와중에 살인과 실종, 그리고 워런스타운이라는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묻어두고 싶었던 추악한 사건의 전모들을 알게 된다....집단 광기라는 것이 얼마나 가당치않은 결과를 낳게 하는 것이고 그토록 비합리적인 일들 앞에서도 버리지 못하는 그 무엇 때문에 벽에 부딪힌 듯 해결하기 난감한 일들이 있을 수 밖에 없음을, 마치 내 일인양 답답해 하며 보았다.

정의란 무엇일까. 어떤 개념이나 100% 절대적인 것은 없겠지만 적어도 정의라는 개념만큼은 누구에게나 마음 속에 비슷한 像으로 그려지리라 여긴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역사를 찬찬히 뒤돌아보아도 정의가 제대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채 발휘된 적이 있었는가 싶기도 하다.  어떤 인간은 너무나 나약해서 큰 흐름 앞에서 희생이란 걸 당하면서도 일성 한번 지르지 못한 채 스러지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는 그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불사할 수 있는 잔인하고 악랄한 인간들이 있다.

그런 면에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쌍한 존재들이다.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속에서 끝없이 자기를 용서해온 사람들이 어떤 큰 사건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내릴 수 밖에 없을 때 그들에게 품을 수 있는 감정은 단 하나, 가엾음이 아닐까. 이 소설은 그런 심정을 가지게 한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왜 서양의 요즘 영화나 책에서는 서양남자와 동양여자를 파트너로 하고, 서양남자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동양여자(주로 중국인)의 이미지를 매우 냉정하고 객관적이고 완벽에 가까운 그것으로 그려내는 게 유행인지 모르겠다. 이것도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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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철리 여자 동서 미스터리 북스 46
로스 맥도날드 지음, 김수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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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맥도널드의 작품은 항상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번 '위철리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위철리가의 딸인 휘비양이 실종된다. 우리의 멋진(!) 루 아처 사립탐정에게 그 아버지가 의뢰를 해온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비밀리에 찾아달라고. 단순히 20대 초반 아가씨의 난데없는 투정일 수도 있는 실종사건이었지만 파헤쳐나갈 수록 그 집안의 비밀들이 속속 드러나고 이 사건이 매우 중대한 사건임이 나타난다. 루 아처는 그 특유의 친화력과 추리력으로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하나 실마리들을 풀어가고 그 속에 있는 비참한 음모와 인간 군상들의 추악함을 몸소 느껴나가야 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도 다 전해지리만치.

주로 돈과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본질과 미묘한 감정의 곡선들, 그 속에서 우연챦게 벌어지는 해프닝들에 대해 남다른 시각을 가진 로스 맥도널드는, 이러한 소설을 통해 미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폐를 예리하게 해부한다. 사람들이 돈을 앞에 두고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가, 그리고 사회적 외로움과 개인간에 빚어지는 마찰들이 얼마나 그릇된 방향으로 내몰아질 수 있는가를 철저하게 제 3자적인 입장에서 구술한다. 여기에서 가장 빛나는 캐릭터는 뭐니뭐니해도 루 아처라는 탐정이다. 그는 아주 특별하지도 아주 평범하지도 않은 유능한 탐정 중의 하나이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의문에 차례대로 응답해가면서 사람과 직접 만나고 얻어맞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실마리를 찾아나가는, 굉장히 현실적인 인간상이다. 때론 비애도 느끼고 때론 동정심도 느끼지만 어떤 한도를 벗어나지 않고 그럼에도 인간적인 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 매력적인 탐정 덕에 끔찍한 배경을 가진 사건조차도 참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로스 맥도널드를 좋아하거나 혹은 처음으로 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유명한 '소름'보다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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