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벨의 죽음 동서 미스터리 북스 81
크리스티나 브랜드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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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평이 매우 좋았기에 표지의 저 기분나쁜 표정을 애써 외면하며 보았다. 이 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나중에 보니 꽤 많은 추리소설을 썼으며 대부분이 수작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주로 읽고 좋아하는 추리소설은 한 사람의 걸출한 탐정이 등장하여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고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며 한 술 더 떠 해박한 지식을 뽐내기까지 하면서 사건을 척척 연역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거기에서 촛점을 맞추는 건, 그 사건을 둘러싼 인간들의 심리, 사람과 사람사이의 미묘한 관계, 애증, 분노, 그리고 이에 대한 철학적 사회적 심리적 분석이다. 읽고 있으면 괜히 나까지 유식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아지기도 하고(좀 우스운 발상이긴 하지만) 범인이 누굴까 요리조리 맞춰보는 재미가 더해져 추리소설 읽는 즐거움도 생기곤 해서이다.

그런데 이 책은 틀리다. 말하자면 그 인과관계가 워낙 뚜렷하고 그래서 누가 범인일 것인가에 대해 단 몇 사람을 놓고서만 추리하면 된다는 것이 일단 특징이다. 밀실추리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범인은 그 얼마 안되는 시간에 그 공간에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는가에 대한 갖가지 가능성들이 도출될 수 있고 그 때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타이밍을 가지는 '그' 사람을 지목하면 되는 상황이 주어진다. 그리고 이 책은 정말 그 장면들을 하나하나 다시 조명해가며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도출해내고 불가능한 이유들을 대응시키면서 점점 추리의 대상을 좁혀가는, 매우 독특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몇 년전, 한 남자가 자살을 한다. 이유는 자신의 애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해서였고 그 애인은 술김에 제제벨이라는 여자의 꼬임에 넘어가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자살한 남자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 한 공연장에서 만나게 된다. 제제벨과 그 애인을 유혹했던 남자, 그리고 애인.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예전에 그 자살한 남자와 인연이 있었지만 아주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협박편지가 앞의 세 사람에게 전달된 후 실제 공연이 시작되면서 제제벨이 살해당하고 그 애인을 유혹했던 남자는 목이 잘린 채 배달이 된다. 이제, 이들을 죽일 만한 동기를 가진 사람은 그 공연장에 모였던, 그 자살한 남자를 알고 있던 사람들로 압축된다. 아버지일 수도 있고 형일 수도 있고 누나일 수도 있는..그 사람들. 하지만 사건의 상황이 퍼즐처럼 짜맞춰지는 듯 하다가도 어그러지곤 한다..

결말 부분은 의외의 상황이 연출되어져 흥미진진함을 더욱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다.  여러번 반복되는 반전들이 매번 놀랍고 그 속에서 표출되는 인간들의 허영심들도 다른 추리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내용이었다. 약간 산만해보이기도 하고 논리적인 비약도 없지 않으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 때는 잘 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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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들의 미사
로렌스 블록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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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님이 가장 좋아하는 탐정이 나온다고 해서 골라본 책이었다. 사실 책 제목이 좀 섬뜩해서(?) 조금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그래도...하는 마음에 집어들었다. 고려원에서 십년도 전에 나왔고 한번도 개정이 안되었다는 것도 그 망설임의 이유이긴 했지만(^^;)

보면서 어떤 영화가 계속 생각났었다.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였는데(이 제목을 말하면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스포일러의 누명을 쓸 듯 하여 일단 건너뛴다) 보면서도 계속 속이 메슥거렸었다. 역시 이 책을 보면서도 그런 기분이었다. 십년도 더 전의 책인데 그 당시에 이랬단 말인가.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싶다. 미성년에 대한 강간(?), 변태, 살인, 혼음, 마약 등등등.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게 미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이란 말인가. 정말인가...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쩝. 정말 이럴까? 믿고 싶지 않지만 이 책에 상까지 준 걸 보면(에드가 앨런 포우상이라나) 현실을 잘 묘사한 책인 모양이다.

주인공 탐정 '매튜 스커더'는...우리가 흔히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냥 우리 근처에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지만 그 마음이나 그 성향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회색 뇌세포만으로 사건을 추리하기 보다는 몸으로 뛰고 열심히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사건을 파헤쳐나가고 자신의 느낌에 충실한 탐정. 게다가 알콜 중독 환자에 무면허인 남자. 그래서 이 책의 결말은 매우 놀라운 것임에도 놀랍지 않은 것일 수 있었다.

가끔 이런 추하고 더러운 면들은 모르고 살면 안될까 싶기도 하다. 그냥 남의 나라일인 듯 모른 채 나만의 꿈을 꾸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하지만 우리가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배우고 하는 것은 아마도 세상을 바로 알아가자는 차원에서 하는 일이겠지.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몰라도 되는 일을 우연히 알게 된 사람모양 그저 힘겹고 역겹고(!) 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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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테일러스 동서 미스터리 북스 7
도로시 L. 세이어스 지음, 허문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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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참 낯선 책이어서 많은 분들이 추천을 해주셨음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다. 읽고 나니 왜 알라디너들이 이 책에 대해 많이들 언급했는 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점이 나를 매료시켰다. 일단 지은이의 '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다. 전좌명종술이라는 영국 고유의 종치는 기법을 그렇게 깊이있게 그러면서도 사건의 분위기와 어울리게 묘사했다는 자체가 놀라왔다. 작품 전반적으로 계속해서 나오는 종에 대한 설명과 그 비유들, 한 chapter 마다 붙인 전좌명종술과 관련한 부제들...이 작품이 과연 추리소설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절묘했다.

또 하나는 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분위기다. 사실 어찌 보면 기묘한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내용보다는 작은 영국의 마을, 그 속에 있는 사람들, 도난사건, 그리고 고통받는 선량한 사람들, 그 속에 있는 8개 종의 존재와 의미 등등이 뭐랄까...처연함마저 안겨주는 어떤 면이 있었다. 나중에 역자도 설명에 장문으로 이러한 감상들을 적어두고 있기는 했지만. 마지막 대목에 가서는, 그것이 억지가 아니라 아, 그렇구나..하며 무릎을 치게 만들고 그래서 선과 악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누군가는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읽는 내내 묘한 흥분에 사로잡혀 손에서 놓을 수 없으리만치 푹 빠져 읽게 만든 작품이었고 그래서 추천하고 싶다. 세이어스라는 추리소설 작가에 대해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고. 어떤 지식을 사건 해결의 과정과 그리 절묘하게 융합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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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4-09-06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 테일러스>는 "거장의 원숙미가 흘러 넘치는 걸작"이라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반전이나 화려한 트릭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 전반에 걸쳐 인간성 대한 원초적인 질문과 인생의 굴곡이 상징적으로 잘 함축되어 있다고 느껴지더군요. 웅장한 종들과 그 종들만큼 웅장한 스케일로 왠지 가슴이 막막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비연 2004-09-06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oldhand님. 너무나 적절한 단어를 제게 주셔서 감격... 가슴이 막막해진다..이 작품을 읽고 나서 가졌던 느낌이 바로 그거였슴다...추리소설을 넘어서서 인간에 대한 고찰을 깊이있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 넘 좋았슴다..^^

하이드 2004-11-22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초반부 읽다가 놓은 이후로, 아직 못 잡고 있는데, 읽은 부분까지 지루하진 않았지만, 왠지 지루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오는 책이더라구요. '나인 테일러스'에 대해서 열심히 인터넷 뒤지다가 지쳐서, 그 담부터 책 못읽구 있어요. -_-a

비연 2004-12-02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홋. 미스 하이드님. 지금에야 댓글을 확인했네요..^^;; 읽다보면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셔도 될 듯..나인 테일러스를 잘 몰라도 인간 본성과 그 삶에 대한 이해로 인해 이 책을 좋아하게 되실 거에요...저도 그랬구요^^
 
세 개의 관 동서 미스터리 북스 90
존 딕슨 카 지음, 김민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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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존 딕슨 카의 소설은 나와 왠지 코드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근데 이 작품만큼은 나에게도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더이다. 밀실살인 트릭의 대가라는 호칭이 무색하지 않으리만치 소설의 전개가 매우 짜임새 있었고 나중에 다 해결되고 나서 그 진상을 밝히는 동안에는 딴 생각없이 집중해야 했다...

유명한 교수가 자신의 방에서 살해된다. 가면을 쓴 사람이 들어와 총으로 쏜 듯한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 이 교수는 동생이라 자처하는 사람에게 공개된 석상에서 협박을 받은 사실이 있다. 그리고...그 동생도 비슷한 시간에 거리에서 주위에 아무 흔적없이 살해가 된다. 마치 귀신에게 홀린 듯한 살인들. 시간적 공간적 연속성이 전혀 없는 이 사건들은 갈수록 미궁에 빠지게 되는데....

결말이 마음에 들었던 건, 존 딕슨 카가 종종 사용하는 '인간적인' 면에 대한 진중한 고찰 때문이었다. 죽어가는 교수가 남긴 몇 마디 말은...그런 인상을 주기에 매우 적합했다(다 읽어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소설은 몰라도 이 책만큼은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아울러 중간 부분에 역대의 추리소설 중 밀실트릭에 대해 해설해둔 부분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명대사인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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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4-08-31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인자의 피로함이 절절히 독자들에게 전해집니다.. 책을 읽고 나서 몹시 피곤해했었죠. 밀실 살인사건을 다룬 미스터리중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연 2004-08-31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인자의 피로함이라...정말 적절한 표현인 거 같네요^^
저도 밀실 살인사건 관련 추리소설 중 가장 으뜸이라고 생각하구요.....
 
움직이는 표적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2
로스 맥도날드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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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나왔던 책을 그냥 조금 손봐서 내놓은 책인지라 요즘 책 같지 않게 활자며 편집 상태며 여러가지로 열악한 이 책을 그래도 놓지 않고 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루 아처'라는 매력적인 탐정 덕분이다. '소름'에서 처음 만나 반해버린 이 탐정이 나오는 추리소설을 섭렵하리라 마음 먹고 고른 책이었는데 보니까 이 소설이 아처 탐정이 나온 첫 장편소설이었다!

어느 백만장자가 갑자기 사라졌다. 애정이 남아있으리라 여겨지지 않는 불구의 부인이 아처 탐정을 고용하면서 얘기는 시작된다. 백만장자의 하나 남은 딸과 그 딸이 좋아하는 비행기 조종사. 그리고 그 딸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변호사. 그 밖에 이전엔 몰랐었던 백만장자 주위의 사람들. 이러한 관계들이 하나하나 파헤쳐지면서 미국 사회의 부조리와 비뚤어진 가치관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책의 묘미는 바로 변호사의 캐릭터에 있다. 가난했고 자수성가로 법률공부를 하여 변호사가 되었으며 바빠서 결혼조차 하지 못했던 40세의 그 변호사는, 마음 깊이 늘 석유재벌과 같은 백만장자의 딸과 결혼하여 신분상승을 완결하기를 꿈꾸어 왔다. 아마도 그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되어 있었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납치된 백만장자를 찾기까지 만나게 되는 많은 인물 군상들 또한 마찬가지다. 한때는 헐리우드에서 얼굴이 조금이나마 알려졌으나 이제는 퇴물인 여배우, 마약을 하는 피아노 치는 여자, 외국인들의 불법체류를 도와주는 브로커 등등. 미국 사회의 어두운 뒷면을 설명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너무나 적절하게, 또한 지나치지 않게 묘사된다. 로스 맥도널드라는 작가는 추리소설 속에 사회를 담고 있어 읽노라면 감탄하게 된다. 결말도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다. 뜻하지 않은 그 결말이 너무나 많은 것들을 담보하고 있기에.

루 아처 탐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하고 이제까지 몰랐다면 알기 위해 꼭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원제가 'The Moving Target'이라는데 잘 음미하면 매우 적절한 제목이라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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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4-08-09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도널드 참 좋지요. 이 작품은 데뷔작이라 그런지 저에게는 좀 밍밍했어요. 필립 말로하고 그다지 큰 차별성이 없어보였다고나 할까.. <위철리 여자>에 이르러서 맥도널드가 왜 하드보일드 삼위일체의 하나인줄 알았지요.

비연 2004-08-10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철리 여자'도 읽어보아야 겠네요^^ 저는 최근 만나게 되는(물론 알라디너들 덕분이지요^^) 멋진 탐정들 덕분에 아주아주 신나게 지내고 있슴다...맥도널드 작품도 전권 번역되었으면 좋겠다는 강렬한 바램을 가지며...

하이드 2005-01-05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위철리 여자, 소름 , 그리고 이 작품, 움직이는 표적 중에서 '움직이는 표적'이 가장 좋았어요. 루 아처는 이 작품에서 가장 우울하고 가장 바닥이지만, 그런 점이 훨씬 더 매력이었다고 하면 절 변태라고 하실껀가요? ^^;;

비연 2005-01-07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태라니요....^^;; 저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루 아처라는 탐정에게 더 끌렸었답니다. 아직 위철리 여자를 못 읽은 게 마음에 많이 걸릴 만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