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박완서 아카이브 에디션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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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조선 미술전에서 유화 작품으로  첫 입선 한 박수근은 4년 뒤에 소묘 작품으로 두 번째 입선을 한다.

제 15회 선전 출품작 <일하는 여인>박수근,1936

당시 심사 위원 중 한 명이였던 일본인 다나베는 박수근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평가를 했다.

'데생 위에 엷은 색채를 칠해 놓고 인물의 특징을 잘 잡았다. 소묘 담채란 이런 것이다.'

일본인 심사 위원 다나베와 달리 한국 심사위원들은 박수근의 작품에 대해 저 마다  혹평을 날렸다.

-어설프게 서양 화풍을 따라 했는지 인물이 화면 중심에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안정감이 부족하다.

-흑, 백 색조의 뚜렷한 대비를 시도 했지만 질감이 거칠어서 일관된 색조톤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그리다가 멈춘 듯이 미완성 작품처럼 보인다.

-수채화도 아니고 수묵화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급히 완성한 흔적이 보인다. 기본 데생의 기량이 부족해 보인다.

일본인 심사 위원 다나베는 한국인 심사위원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판화와 사진의 질감을 연상 시키는 박수근의 독창적이면서 뛰어난 기법에 후한 점수를 주고 수상작으로 입선 시키지만  한국인 심사위원들은 실력이 부족하다며 사적인 자리에서 화가에게 질책을 가했다.


한국 근대 미술사의 거장들인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화백들이 활동 하던 시기에 미술학도들은 궁핍하지 않은 비교적 넉넉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해서 가족들의 금전적 지원을 받아서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에서 서구 미술을 공부한 유학파들이였다.

따라서 이들이 조선으로 돌아 왔을 때 일본에서 배웠던 서양 기법을 마음껏 발휘 하기 위해 일본 제국 미술 협회 지원 아래서 독립전, 자유전에 작품을 출품하며 미술 시장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일본 유학파 예술가들의 유일한 꿈은 총독부 주관의 관전에 입선 해서 세계 무대로 나가는 것으로 1930년대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 한 이들은 조선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였다.

유학파들과 달리 박수근은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농업과 광산업에 종사 했던 부모의 3대 독자로 태어나 서당에서 글을 깨우쳐서 보통 학교에 입학했지만 광산업의 불황과 홍수 피해까지 입게 되면서 집안은 몰락해 버렸다.

교사들의 도움으로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박수근은 미술 학교는 커녕 상급학교 진학의 꿈조차 꾸기 힘들 정도로 가난했다.

그의 재능을 안타깝게 여겼던 미술 교사의 도움으로 온갖 허드렛일을 전전하면서도 홀로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던 박수근은 18살 나이에 일본인 심사 위원의 추천으로 조선 미술전에 입선을 한다.

두 번째 역시 일본인 심사위원들의 만장 일치로 입선을 하게 되자 일본 유학을 갔다 온  화가들은 그의 다음번  출품작을 낙선 시켜 버린다.

제대로 된 화구도 없었고 외국산 제품에 귀한 색조 유화 물감은 만져 본 적도 없었던 박수근은 연필과 검은색 물감으로 절구질을 하고 맷돌을 돌리며 일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렸다.

해방 전까지 박수근이 꾸준히 미술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동안 한국인 심사위원들은 '너무 평범한 소재에 단조로운 색조톤에 기술적으로나 구상적으로 논할 바가 못된다.'며 혹평을 날렸지만 일본인들은 서구적 미술사조를 따르지 않고 향토색이 짙은 독특한 구조와 화풍, 거친 질감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그의 독창성이 후대에 가장 독보적인 화가가 될 것임을 예감 했다.

유학파들이 고향과 출신 나이대 별로 그룹전을 열고 서로의 작품을 구매 해주며 똘똘 뭉쳐서 작품 활동을 펼칠 때 박수근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출품했다.

값비싼 재료들로 덧칠한 유학파들 작품 속에서 박수근 작품은 도드라졌고 어김없이 일본인 심사위원들은 그의 작품에 후한 점수를 주어서 유학파들을 제쳐 버리게 만든다.

불행하게도 화가로서 기량을 막 펼쳐볼 시기에 해방을 맞이하고 6,25전쟁 발발로 피난 살이가 시작 되고 박수군이 군산 피난지 부둣가에서 가족들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할 때 유학파 예술가들은 통영과 부산, 진주 등지에서 서로의 작품 전시를 열며 부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1953년  박수근은 미8군 CID(범죄수사대) 매점(PX) 초상화부에서  화가를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로 올라간다.

1953년 서울 수복 후 재개된 국전에 박수근은 두 점의 작품을 출품한다.

이마를 간신히 덮을 정도로 짧게 머리를 자른 소녀가 등에 강보에 싼 갓난 아기를  업고 있다.

누이 또는 언니의 등에 얼굴을 묻은 잠든 아기를 업은 소녀는 먹을 것을 구하러 간 아비나 어미를 기다리는지  옆 모습에서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전쟁과 피난, 가족과 친지의 죽음을 겪으며 배고픔을 견뎌 내며 살아 남은 한국인들에게 박수근의 그림은 외면하고 싶은 슬픔이였고 잊어 버리고 싶은 과거 였다.

하지만 미군 피엑스를 통해 박수근의 작품을 꾸준하게 구매 했던 미군 상사들의 부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서도 그의 작품을 구입했고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화구와 물감을 보내 주었다.

전쟁통에 뇌막염으로 큰 아들을 잃고 피난 살이 때 셋째 아들마저 세상을 떠난 아픔을 겪었던 박수근은  여색을 탐한 적 없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다정 다감한 사람이였고 길을 가다 노상을 하는 상인들을 만나면 갖고 있는 돈을 전부 털어서 좌판에 있는 것들을 구입했다.

박수근은 여타 다른 화가들 처럼 개인 화실도 없었고 재대로 된 화구를 갖춰 놓고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그는 일평생 툇마루에서 그림을 그리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 오면 함께 숙제를 봐주었고 아내가 상을 차리면 함께 먹고 나서 가족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면 멈췄던 그림 작업을 이어나갔다.

박수근이 살던 집이 마을 구역 계획으로 도로 공사 지역으로 지정되고 툇마루 땅 마저 잘려 나갔을 때 그는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아이들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든 후에야 그림을 그렸다.

박수근의 작품의 중심은 전부 평범한 우리 일상의 모습들이다.

 어린 누나가 갓난 쟁이 동생을 업고 있고, 이웃 아주머니들이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아기를 업은 어머니가 걸음마를 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고갯길을 걸어 가거나, 시장 좌판에서 물건을 놓고 파는 여인들까지 그의 모든 예술 속 주인공들은 모질고 고된 삶을 견뎌냈던 우리 어머니들이였다.

양말 조차 신지 않은 채 검정 고무신을 신은 여인이 힘껏 절구질을 하는 모습이 화강암처럼 단단한 삶의 의지로 표현 되었다.

1952년 새해 첫 달, 피난 살이 당시 두 아이를 잃은 박수근이  부둣가에서 받은 품삯으로 겨우 감자 한 자루를 구해 온다.

도마 위에 아무렇게나 늘어 놓은 감자 알들 사이에 기다란 칼이 놓여 있다. 피난 살이 중에 겨우 감자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상황을 보여 준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올라온 박수근은  미군 상사의 아내들이 작품을 구입해 주어서 피난 중에서 먹어 본 적이 없었던 귀한 음식을 구해 온다.

1950년대 중서부 지역 중에서 부잣집들만 먹을 수 있었던 굴비가 박수근 집의 밥상에 올라가 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불후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박수근은 동시대 부유한 지주와 대상인 집안의 유학파 출신들보다 불평등한 위치에서 출발했다.

박수근이 예술가의 삶을 살았던 시대는 1930년대 초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로  파란만장한 삶의 파고 때문에 그의 건강은 1950년대 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간경화와 신장염이 악화 되어 백내장의 후유증을 겪었던 박수근은 예술가로 활짝 날개를 펴기 시작할 무렵에 한 쪽 눈을 실명한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한 박수근은 한 쪽 눈으로 고향땅 양구에서 행상을 나가는 어미의 손을 잡고 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 옆을 지나갔던  지난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지막 붓을 든다.

1960년에 완성한 <귀로> 작품은 마치 세월의 흔적으로 낡고 헤진  흑백 사진을 연상 시키며   지나간 시간의 아련한 감정의 잔흔 처럼 거친 물감의 질감이 화폭에 새겨져 있다.

49세 되던 해 백내장으로 한쪽 눈을 실명한 후에도 계속 그림을 그렸던 박수근은  51세 되던 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박수근이 떠난 1965년. 그 해 10월 유작전이 열리고 그의 작품 앞에 어느 중년 여인이 전시된 그의  작품들을 보고 강렬한 충격을 받는다. 


미치고 환장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1․4 후퇴 후 텅 빈 최전방 도시 서울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은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을 증언하고 싶었다.

-박완서의 <나목> 중에서 


 평생 여성과 나무를 즐겨 그렸던 박수근은  생계를 위해 아이를 위해 팔을 들어 올린 여인들의 따스함과 강인한 생명력을 산이 갖고 있지 않는 나무의 곧고 강직한 모습에서 삶의 희망을 발견했다.


나목(裸木) 은 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겨울 나무를 의미한다.



나무는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곧게 자라지 못한다. 그렇다고 수직으로 늘씬하게 쭉쭉 뻗은 나무 만이 치열한 경쟁의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 남지 못한다.

 굴절되고 절단된 가지, 바로 갈등과 궁핍의 상징이다.

모두가 굶주리고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에 박수근은 아이들이 쓰다 버린 몽당 연필로 올곧게 성장하지 못한 채 잎사귀 하나 없이 처절할 정도로 앙상하게 가지만 남겨진 나무들만 그렸다.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불멸의 작품들을 만들어낸 박수근이 그러 했고 그의 작품을 활자로 완성한 박완서 작가도 봄을 기다렸다.

2026년 매서운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 오고 사회 곳곳은 저마다 분열과 갈등으로 앞으로 저마다 각기 다른 목소리로 투쟁을 외치고 있다.

우리 모두 저마다의 고민과 아픔 어려움을 겪으며  힘겨운 나날을 살아 가고 있다.

겨울을 맞은 나무는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곧 따스한 바람이 불고 태양의 길이가 길어지는  봄이 오면 새 잎이 돋고 새로운 꽃을 피우듯 2026년 봄을 기다린다.

내가 지난 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 밭 속의 고목,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닮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 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박완서의 <나목> 중에서 

‘강변’(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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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에만 나오는 제철 음식과 제철 간식이 있듯이 2025년 한 해의 끝자락에 펼쳐 든 책이 있다.















‘세계 최초 시 서바이벌 오디션이 시작됐습니다./ 지금 바로 투표해주세요’ 상상은 뻗어 나간다. ‘“자 이번엔 금지어 미션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린 단어는 시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세계, 미래, 사랑, 기계, 영원, 천사. 바다, 숲, 여름, 겨울, 비, 눈, 유령, 죽음!”// 습작생들은 탄식했다 심하게 좌절한 습작생의 경우 상담 치료를 신청하기도 했다…”
-고선경의 ‘스트릿 문학 파이터’. 중에서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서 이듬해 10월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를 펴낸 고선경 시인은 지금까지 16쇄(3만부)를 찍어낸 문단의 아이돌이다.
등단 때부터 ‘시적 패기’가 돋보였던 고선경 시인은  어린 시절 서른 살이 되면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 막연한 생각을 품었었다.
현실이라는 냉정한 세상에서 시인은 많이 미끄러지고 실망하고 상처 받으며 앞을 향해 나아갔고 그렇게 끄적인 시들은 독자들에게 ‘힙한’(멋진) 것으로 소비하는 ‘텍스트힙’이 되어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서른 살을 앞둔 고선경 시인은 우울이나 침울한 감정은 거둬 내고 어떻게 해야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지를 궁리하며 독자들에게 한결같이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 받을 묘책을 꾸민다.

가슴 떨리게 설렜던, 손에 땀을 쥐도록 긴장하느라 자주 우스워졌던, 수도 없이 흔들리느라 내내 멀미를 느꼈던, 0.1을 뺀 나머지만큼 사랑했던 나의 이십대.

-고선경의 29.9세「나 여기 살아」중에서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의 2025년 한 해의 마지막 12월의 작가 고선경 시인은 스물아홉의 겨울날 겪는 두근거림과 불안, 아픔과 설렘을 특유의 유쾌한 입담과 시적인 패기로 펼쳐 보인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무슨 일을 벌릴 것 만 같이 통통 튀다가 독자에게만 비밀스러운 쪽지를 슬쩍 보여 줄듯 말듯 밀당을 하기도 한다.

짝사랑을 하다 너덜 너덜해진 가슴을 부여 잡다가도 돌연 구체적인 사랑을 위한 계획을 세우며 아직 만나지 못한 상대를 향한 연서를 쓰기도 한다.

좋아하는 간식을 먹으며 사랑의 모양이 느껴지는 순간을 상상하는 시인의 엉뚱한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기다가 청포도 맛 사탕을 입 속에 넣은 시인이 사람의 감정은 어떤 포장지나 사탕의 껍질로 감쌀 수 없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시인이 빚어낸 시어들을 읽는 동안 마치 서로 대화 하듯 시인이 따라 주는 콜라를 나눠 마시며 시인이 읽고 있는 시를 찾아 읽다 보면 어느 새 시인의 나이 29.9세에 다다라서 함께 손을 맞잡고 서른의 문턱을 향해 간다.

매일 쓰지 않더라도 매일 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은 독자에게 이런 비밀을 털어 놓는다.


네 미래의 시는 아마 너를 기대하고 있을 거야


시대를 막론하고 시는 대중들에게 잘 읽혀지지도 않고 잘 쓰이지도 않는다.

무엇이 시를 시이게끔 하는지, 시인조차 알 수 없는 시대에 시를 읽는다고 앞 날이 밝게 빛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시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 두 눈을 번쩍이다 입가에 미소를 띄우게 된다.

오늘의 운세 따위를 믿는 건 아니지만

머릿속이 답답하니 주변을 정리하라길래 창문을 열고 쓸고 닦고 방 청소를 했다.

창밖은 건물뿐이지만

잘 보면 사다리꼴 모양의 하늘이 빼꼼 청명함을 드러냈다.

책상 서랍 속에는 찢어진 노트 한 장

뒤집어 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에게는 아직 끝내주는 인생이 남아 있다"

그게 꼭 부적 같아서

바깥만 나가면 하늘이 드넓다는 걸 알게 되어서

바깥을 씩씩하게 걸었다.

하늘색이 행운의 색깔이라는 건

보통 행운이 아니다.

나도 부적 하나 써 줄게

만사 형통이나 만사대길 말고

남을 돕는 팔자를 가진 이의 이름 하나 적어 줄게

그러니까 이 시 꼭 사서 간직해

알았지?

-고선경 <신년 운세> 중에서


뒷통수를 후려 치고 싶은 일들 그리고 원통하고 후회하며 미련이 남은 일들로 가득 차서 새로운 한 해가 시작 되면 운이 트일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신년 운세를 보러 가서 마뜩 잖은 점괘를 받았을지라도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자연 세계에서도 너무 멋지면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있지 않은가?

2025년 한 해 동안 많이 후회하고 많이 슬퍼했을 지라도 추운 겨울을 견뎌낸 나무에서 푸르른 잎사귀가 돋아나듯 온갖 세파와 풍파를 견뎌내는 동안 어느 순간엔 반짝 반짝 빛이 나는 날이 찾아 올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사는 건 흔히 주어지지 않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이 벅차고 눈부신 건 아니다. 때로는 이 일이 나를 지치게도 하고 내가 이 일을 의심하게도 만든다. 하지만 이 일을 하는 한, 일의 어려움에 대한 불평은 함부로 입 밖에 내고 싶지 않다. 원래 사랑이란 언제나 경이로움과 피로감이 동반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오래오래 사랑할 궁리를 하고 있다.

―고선경, 12월 16일 산문, 「29.9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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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5-12-31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콧님 새해에도 멋진 나뭇가지에 푸릇푸릇 풍성한 잎이 나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scott 2026-01-01 00:43   좋아요 1 | URL
망고님 병오년 붉은 말 처럼 힘찬 한해 되시길 바랍니다 ^^

2026-01-01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1-02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金慶子 2026-01-04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의 리뷰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저는 ‘멍청해지기 전에 읽는 뇌 과학‘ 책을 읽고 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cott 2026-01-05 00:25   좋아요 0 | URL
金慶子님 새해 좋은일 행복한 일 가득하세요
감사합니다 ^^
 










1867년 오스트리아와 합동 제국이 되기 전 헝가리는  크로아티아 왕국과 트란실바니아공국까지 지배 하면서 중부 유럽에서 강력한 왕국으로 군림 하고 있었다.

헝가리의 강한 통치력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방패막이가 되어서  루마니아의 중심부가 되는 왈라키아-몰다비아공국과 보스니아, 루멜리아, 실리스트르 지역(이 지방은 1차 대전 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세르비아,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가 되었다)을   통치했던 오스만 제국이 유럽 중심으로 진격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스만 제국은 중세시대 부터 존재 했던  불가리아왕국, 세르비아왕국, 보스니아 왕국의 땅을 차지 하면서 거친 산악 지대 위에 세워진 몬테네그로 까지 통치 하고 있었지만 이들 왕국에 대해 강한 통치를 하지 않고 세금만 거둬 들였고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왕국인 헝가리와의 전쟁에 용병으로 나선 이들에게는 토지권을 주는  유화 정책을 펼쳤다.

자잘하게 쪼개져 있는 남부 유럽 국가의 자원 용병에 힘을 얻은 오스만제국은 1526년부터 1680년대까지 중부 헝가리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었고, 여기를 발판으로 북쪽의 합스부르크 영토를 침입했지만 성벽에 둘러 싸인 요새 도시 빈을 함락하는데 실패 한다.

서유럽 정복 전쟁에서 불가리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사람들은 오스만 제국 군대의 제복을 입고 싸웠지만 오스만 제국의 술탄에 대한 존경심이나 제국을 향한 애국심은 눈곱 만치도 없었고 이슬람으로 종교를 개종한 이들은 단 한 명도 존재 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오스만 군대에서 받은 돈을 받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갔다.

이 지역의 통합성의 뿌리는 서유럽의 종교나 민족성에 영향을 받아도 근본적인 민족과 종교를 바꾸지 못했다.

여러 세기에 걸쳐 로마 시대를 제외 하고  단 한 번도 통합된 적이 없었고 1000년 경에 도래한 기독교는 라틴 기독교와 그리스 기독교 두 형태로 나눠져서 민족의 토속 신앙과 결합한 독특한 종교로 발전 되었다.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동유럽은 서유럽의 문화나 종교에 뒤섞이지 않은  변방 지역의  미지의 땅으로  오랜 전쟁으로 인구 이동의 물결이 일어나서 한 집안에 기독교와 정교회 교인, 유대교, 무슬림교가 뒤섞여 있는 다종교 사회 구성원을 이루고 있었다.

1880년 유럽 중동부 지역에는  네 개의 국가만 존재 했다.

 러시아제국, 오스만제국, 프로이센왕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이 네 개의 국가들 영토 내에서 과거의 정치적 경계를 나눠보면  북쪽에는 1795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의 분할로 소멸된 폴란드-리투아니아연합왕국이 있었다.

 남쪽에는 1526년부터 합스부르크 왕가 소유가 된 헝가리 왕국과 보헤미아왕국이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남부 유럽 지역의 사람들의 운명을  완전히 통제 했던 국가는 없었다.

1867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합동 제국으로 거대한 영토를 차지 하면서 지난 세기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던 보스니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가 행정 자치 구역이 되어 간접 통치를 받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이 남부 유럽 지역을 하나로 통합 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하는 사이에 경제적으로 서유럽에 비해 낙후된 남부 유럽 지역에 주변국 종교인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고 종교와 메시아 전통에 익숙했던 시민들은 종교적 믿음을 통해 세속적인 해방을 갈망 했다.

남부 유럽의 혁명가들이 시민들에게  제국들 보다  가난하고 낙후된 경제 상황을 위협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며  독립을 향한 투쟁 만이 부유하게 살길 이라며 선동을 하는 동안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지하철을 타고 움직였고 집집마다 정제된 깨끗한 수도물이 쏟아지는 수도관이 설치 되었고 거리마다 환한 조명등이 켜졌다.

제국이 밝힌 조명등은 멀리 떨어진 통치 지역인 르비우의 집집마다 등유 램프가 설치 되었고 루마니아 땅은 전기로 불을 밝히는 유럽의 첫 국가가 되었다.

철로가 유럽 대륙을 종횡 무진 달리면서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 곡물이 유럽 전역으로 팔려 나갔고 리투아니아의 삼림지대에서 벌목된 목재가 바다 건너 영국의 건설 붐을 일으키게 된다.

목재업으로 곡물업으로 벼락 부자가 된 이들이 남부 유럽 지역에 등장 하면서 금융 시장에 대 호황이 이어지는 동안  남부 유럽의 혁명가들은 시민들에게  제국들 보다  가난하고 낙후된 경제 상황을 위협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며  독립을 향한 투쟁 만이 부유하게 살길 이라며 선동하며  민족들 사이를 이간질 하며 분열 시켰다.

민족의 분열은 테러범을 양성해서  이들이 저지르는 살인은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대의로 둔갑했다.

20세기  유럽이 눈부신  과학발전과 기술 혁명으로  빈과 부다페스트에 일급 호텔과 경마장, 무도회장 ,카지노들이 들어서는 동안 남부 유럽에  온갖 종교인들과 사상가들 혁명가들이 몰려 들었다.

 그 결과 파시즘과 공산주의, 민족주의가 움트는 토양이 되어 폭력적인 방법으로 평화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거대한 제국에 맞서는 테러범들을 양성 했다.

다인종, 다종교의 조각보처럼 꿰 맞춰진 이 지역은 20세기에 불어 닥친 변혁의 폭풍으로 인해 가장 밑바닥부터 파괴 되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이념에 사로잡힌 이들이 모이자 강력한 집단 정체성이 종교보다 더 강한 민족주의를 일으키며  제국의 운명을 뒤 흔들었다.

만일 타임 머신을 타고 1914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된다면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전차에 올라타서 1번지부터 19번지를 지나는 정거장 마다 역사적인 인물들이 살고 있는 곳을 지나칠 수 있다. 

가장 먼저 제국의 최고위 공무원이자 통치자인  황제 요제프의 집무실이 있는 호프부르크 궁을  시작으로 베르크가세에 있는  현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 집에 도착한 후 길 건너편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면 20세기 세계 대전 발발에 큰 기여를 한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아나키스트들이 격론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카페를 나와 거리를 걷다가 서부역으로 향하는 전차에 올라타면 그루지아 출신의 농노 스탈린이 은신하고 있는 주택지구를 지나 레온 브론슈타인이라는 가명으로 러시아 사회주의 신문을 발행하고 있는 레프 트로츠키가 살고 있는 부촌 지역인 슐로스스트라세에 다다르면 황족들과 황실 가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쇤부룬 지구까지  탐방 할 수 있다.

쇤부룬 지구에는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출신 청년의 총에 맞는 비극적인 죽음으로 세계 1차 대전 발발의 불씨를 터지게 만든  합스부르크 제국의 2인자 황태자 페르디난트의 집무실이 있는 벨베데레 궁을 지나 거대한 궁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공원을 가로 질러 가면 군대에 징집 되지 않으려고 친척집 지하에 은신하고 있는 스물 넷의 화가 지망생 아돌프 히틀러를 만날 수 있다.

1900년 오스트리아 '빈'의 정신과 의사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출간한 20세기는 심리학의 세기 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의학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심리를 정밀하게 측정한 작업을 시도 하며 여러 임상 실험을 통해  인간의 사고와 행동 발달의 추이를 심리학적으로 치료하면서 인간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통해 지각과 감각, 주의력, 기억, 의사 결정을 포괄적인 연구를 통해 인간의 심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데이터를 구축해 나갔다.

20세기 세계 역사를 뒤흔들어 놓았던 세기의 인물들을 일렬로 늘어 놓고 그들이 남긴 흔적과 유산을 하나의 선으로 이어 보면 놀랍도록 21세기 현재 시대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00년전의  유럽은  어제 마차에 탔던 이들이 오늘은 전차를 타고 출근 했고 휴가 때는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를 여행했고 전화선이 연결 되어 밖을 나가지 않고도 편지를 주고 받지 않아도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연락 할 수 있었다.

중부 유럽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헝가리는 유럽에서 가장 드넓은 영토를 차지 하고 있었던  합스부르크  제국에 여러 차례 맞서 혁명과 봉기를 일으켰지만 전장터의 수장들이 차례 차례 참수형을 당하고 나서 굴욕적인 타협 끝에  제국의 형제가 되었다.

황제 프란츠 요제프는 잠재적 봉기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제국의 수도 보다 먼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지하철을 개통 시켰고 독일에 맞먹을 정도로 열차선을 건설할 수 있게 했다.

헝가리의 산업 혁명을 주도 했던 지식인들과 엘리트 가문들은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의과 대학과 건축 대학을 설립해서 도시의 산업화를 앞당겼다.

1890년대부터  부다페스트에는 환자 긴급구호차가 출동했고 소방차도 프랑스, 독일 보다 앞선 시스템을 도입하고 운행 하며 도시의 안전을 책임졌다.

1900년대부터 수도에 전화 케이블 선이 깔렸고 도나우 강물은 전 지역에 깔린 수도 공급용 파이프를 타고 흘러 들어갔고 배관으로 공급하는 가스로 시민들은 집에서 손쉽게 요리 할 수 있게 되었다.

도로가 정비 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생생 달리는 자동차가 운행 되고 전차선이 들어서고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전보와 우편을 받아 보고, 전화로 소식을 전달할 수 있게 된 시대는 스마트 폰 하나로 연결 된 지금의 시대 만큼 매일 매일 놀라움으로 가득 찬 기대감으로 넘쳤다.

하루 아침에 말이 모는 마차에서 디젤 엔진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 등유가 아닌 전기 불로 어둠을 밝히며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넘나들었던 20세기는 눈부신 기술 과학 혁명의 시대였다.

하지만 인공 지능과 함께 공존하고 있는 현 시대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 유럽 대륙에 가본다면 가장 먼저 낯선 언어와 방언에 의사 소통에 불편함을 겪게 될 것이고 지금과 판이하게 다른 지정학적 질서와 사회 제도와 규범에 놀라게 될 것이고 현재와 너무나도 차이가 큰 기술과 의학 수준에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환경 적응에 탁월한 인간은 어느 시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아 남았다.

그 이유는 문명의 발달과 눈부신 과학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기본적인 원초적 욕구인 식욕과 성욕 그리고 탐욕은 어느 시대에 어떤 세대 모두의 DNA이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20세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역시  탐욕과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과거의 인물들이 그랬듯이 국가와 사회, 개개인의  리스크에 영향을 받아,시기심에 휩싸이며 사소한 분쟁이 지역과 민족, 인종갈등으로 번져서 국가간의 무력 충돌이 빈번했다.

현 시대와 전혀 다른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었던 유럽 대륙에서 21세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신 인류의 눈에 집단 소속감을 중시하는  20세기 사람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지나친 자신감과 근시안적 태도 역시 현재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수구 시설이나 공공 시설 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 살았던 최하층민들도 탄압과 박해를 피해 살아 남기 위해 제국의 난민 생활을 했던 떠돌이 이민자들 모두 단 하나의 인생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래의 희망을 품고 굶지 않고 끼니를 채울 수 있는 일상의  행복이여서 불확실한 현실에서 내일을 위해 살아갔다.

타임머신을 타고 20세기 세상을 둘러 보면 지금과는 모든 것이 다른 낯선 세상임에도,  그들의 사는 모습을 지켜본 뒤 입에서 절로 이런 말이 튀어나올 것이다. 

“똑같네, 똑같아. 지금과 전혀 변한 게 없구나.”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서 독자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가?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가 독자들에게 던진 위의 질문은 유럽이 전쟁으로 어제의 세계가 무너지기 직전이나 직후 그리고 21세기 현 시대까지 관통하는 세기의 질문이다.

 사람이 살아 가려면 최소한 것들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환경과 이를 뒷받침 해줄 탄탄한 법과 사회 제도와 질서가 필요 하다. 하지만 살아 가는 동안 여전히 뜻하는데로 가질 수 없는데도 무리 할 정도로 소유 하고  더 소유 하기 위해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의 굴레에 갇혀 버린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1900년 심리학으로 20세기로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나서 세계 곳곳에서 한 목소리로 외친 것은  변화였다.

변화는 우리의 주의와 호기심을 끌어당긴다. 새롭고 놀랍고 흥미롭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으로 인민의 삶과 정신을 지배 하고자 했던 레닌과 그의 동지들인 트로이츠키, 스탈린 모두 세상을 전복 시켜서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데 앞장 섰다.

레닌이 창당한 당에 가입하고 그가 인민을 향해 외친 선언문에 깊은 감동을 받아 기존의 사회 질서를 전복 시키는데 동조 하고 협력했던 세대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불러 일으킬 파장이 전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알지 못했다.

그동안  역사의 흐름을 바꾼 중대한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접촉이나 별생각 없이 무심코 내린 결정 때문에 일어났다.

그 결정은 때로는 경이로운 결과를 낳기도 하고, 끔직한 비극을 불러오기도 했다. 


2024년 2월 1일 부터 연재 하고 있는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역사적 배경은 60여 년 동안 제국의 황제로 군림한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통치 하던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다.

-굿바이, 부다페스트

https://tobe.aladin.co.kr/s/9373

역사적 사실과 실존 인물 그리고 내가 창작한 허구의 인물이 뒤섞여 있다.

공통의 언어나 종교, 역사가 없었던 합스부르크 제국은 하나의  국가라기 보다 필요한 곳에 적정하게  설치된 미니어쳐 같은 거대한 허상의 국가로 황제의 명을 받아 움직이며 똑같은 멜로디를 들려주는 오르골 같은 국가 였다.

19세기 말 부터 시작된 민족주의의 열풍이 20세기에 들어서서 계급의 차별과 부의 불균형으로 인해 붕괴 직전의 위기에 처한다.

제국의 제 1공무원 자리를 60여년의 세월이 넘도록 지키고 있던 황제 요제프 1세는 자신의 임무는 헌신적으로 지치지 않게 성실하게 수행 하는 것이라 믿었다.

반면에  제 2 공무원 자리에 있었던 제국의 후계자인 황태자 페르디난트는 낡고 오래된 제국의 관행과 관습을 전부 뜯어 고치고 싶었다.

이중 제국의 지위에 있었던 헝가리는 이 두 사람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최악의 규율 준수자이자 강요자로 이루말 할 수 없이 멍청했다.'

몇 세기 동안 군림했던 제국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

 변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 할 때 국가의 최고 권력자들이 어떤 통치력으로 국가를 이끌고 가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한 순간에 바뀌어 버린다.

20세기에 불어 닥친 변혁의 폭풍은 오랜 시간 유지되어 왔던 제국의 표층을 서서히 침식 시키고 파괴했다.

역사의 한 순간도 단 하나의 사건 때문에 발발 한 것이 아니라 앞서 발생했던 여러 복합적인 문제들이 점과 점으로 이어져서 여기 저기 실타래처럼 엉켜진 것이 특정한 시기에 분출 되고 발발하게 되는 것이다.

20세기 아름다운 시절을 회고했던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런 글을 남겼다.








1910년 부터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거의 똑같은 정도로 느낄 수 있었던 갑작스러운 융성이 시작 되었다. 도시는 해를 거듭할수록 한층 더 아름다워졌고 인구도 증가해 갔다. 1914년의 부다페스트는 1900년에 살고 있었던 그곳이 아니였다. 일국의 수도에서 세계적인 도시로 변모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런던, 파리, 베를린, 암스테르담에 부호들이 부다페스트로 몰려와 저마다 화려한 저택과 호텔에 둥지를 틀었다. 거리는 화려한 가게들로 즐비했고 웅장한 건물마다 멋지게 차려 입은 이들이 드나들었고 매일  도서관, 극장, 박물관에서 지식을 쌓고 여가를 즐겼다. 이전에는 소수의 상류층만 누렸던 특권이 일반인들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노동 시간이 단축되어 여행도 즐기며 한 채의 집과 그림, 자동차를 살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든 일에서 부의 증대와 파급을 느꼈고 점점 더 새로움을 추구 하며 우리 앞에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 확신했다. 젊은 세대, 늙은 세대들 모두 흔히 그랬던 것처럼 '옛날에는 참 좋았지.'라며 어제의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슈테판 츠바이크

 1914년 세대는 지금의 세대보다 더 행복했을까?

평생 동안 진리를 추구 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진리의 한계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20세기 천재 중 한 명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00퍼센트 알콜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100퍼센트 진리도 없고 100퍼센트 행복도 없다'는 말을 남겼다.

1차 대전의 화마가 발발하기 직전  1914년 세상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고 지상의 새로움이 건설되고 창조 되었던 시대였다.

역사를 보면 세상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곳인지 깨닫게 된다.

 20세기 최악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그 시절의 세상을 지난 2년 동안  <굿바이, 부다페스트>에 100회에 걸쳐 펼쳐 보였다. 

글을 쓸 때 마다 매번 한계에 부딪친다. 특히 누군가에게 읽혀지는 글을 쓴다는 건 단순히[ 나는 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갔다. 지하철 역까지 걸어갔다]. 라는 문장 만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 되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하루를 마감하는 날에 다음날에 해야 할 목록의 우선 순위를 세워 놓을 때면  제 1순위에 <창작>을 적었다.

그렇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창작>  안에는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여행을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든 어떤 식으로든  내 스스로 무언가 만들고 창조 하는 작업을 의미 했다. 

따라서 내 삶의 버킷 리스트의 1위 자리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창작>이다.

투비에 소설을 쓰고 연재 하는 동안 하루의 시간을 배분하며 일의 우선 순위에 맞춘 생활 습관을 바꾸게 되었다. 

가장 먼저 독서의 양과 범위를 이전 보다 더 폭 넓혀졌다.

창작 소설을 집필하기 이전과 이후로 독서의 양과 종류를 비교 해 보면 나의 독서량은 살아온 생애 주기 중에 현재 최정점을 찍고 있다.

글을 쓰면서 책을 읽게 되자,  단순히 읽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쓰기 위한 독서가 되었다.

러시아의 망명객으로 미국에서 영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블라디미르 나보코브가 매번 새 작품의 원고를 담당 편집자에게 넘겨 줄 때 마다 들었던 소리는 바로 ' 한 인간이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원고 분량이 정해져 있다.'라는 말이였다.  

특정 직업이나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우리가 내뱉고 사용하는 언어의 양은 정해져 있다. 문자와 톡 메시지가 아닌 한 페이지 이상을 오로지 문장으로 가득 채운다는 건 그리 쉽지 않다.

 200여페이지의 단행본 분량을 채우는 글자 수는 대략 150,000자 정도로 이 숫자를 쌀로 환산 하면 27가마니 정도 분량이다.

“소설을 쓰는 데는 세 가지 원칙이 있으나 불행하게도 그 원칙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윌리엄 서머싯 몸의 말처럼, 글쓰기는 운동과 악기를 배우고 일련의 전문 기술을 배우는 것과 달리  정해진 원칙도 기술을 갈고 닦을 교재도 없다.

 2024년 2월 1일 부터 쓰기 시작한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가 100회 완결을 목표로 지난  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에 한 회 씩 투비컨티뉴드에 올려서 2025년 12월 25일 마침내 100회 완결에 다다랐다.

지난 2년 동안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를 쓰기 위해 내 안의 지식과 창조적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읽은 책은 영하의 추위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책 탑을 쌓아 올릴 수 있다.

톨스토이가 던진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져 보면 

-내 안에 무엇이 있는가?

-나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2025년의 시간도 딱 5일 남겨 두고 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무언가 이룩하고 창조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의 끝은 단 하나다. 

결국엔 우리 모두 죽는다. 사랑하는 이들, 미워 하는 이들 모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이 땅의 행성도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열평형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우주 속 먼지가루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모든 것이 사라져서 텅 빈 공 空의 상태가 될 것이다. 그토록 치열하게 요란을 떨 정도로 열심히 오만하게 살았던 생명체들 모두 무無로 존재 하지 않은 상태, 모두가 0의 지점에서 끝이 난다. 이런 진실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듯, 끝이 죽음이 아니라는 듯 살아간다. 바쁘게 하루 하루 일분 일초를 낭비하지 않고 살아도 텅 빈 공 空의 상태는 채워지지도 않고 영원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 텅 빈 공 空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순간 허무와 우울 그리고 모든 것이 헛되어 보이고 커다란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이런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이들이 살아 온 모습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얻기도 하고 무언가에 몰두하고 열의를 쏟아 부으며 견디고 극복한다.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까?

 언제 비로소 이 세상에 어른 같은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어떤 권력이나 위세를 행세 하지 못하는 미약한 어른으로 하루 하루 성실하게 일해서 꼬박 꼬박 세금이 털려나가는 유리 지갑을 갖고 있다. 

만일 권력을 갖고 있다면 한번 쯤 위세나 가식을 떨며 모순투성이의 나라는 결점을 세상에 숨기게 될지 모른다.

 나에게 세상을 향한 권력이 없기 때문에 나는 날마다 새로운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읽고 쓰고 있다.

어쩌면 책을 읽는 시간은 가장 헛된 시간일지 모르고 삶에 그리 큰 교훈이나 깊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한 생을 단 한 단어로 줄이면 [이야기] 즉,서로 다른 이들의 삶의 [이야기]다. 

살아 온 세월은 이야기의 연속이고 인생 자체가 이야기 보따리다. 

따라서 책을 읽는 동안 허구의 인물들의 시선으로 두 번의 삶을 살게 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2025년 한 해 동안 모두가 어렵고 힘겨운 시기를 무사히 견뎌 내고 12월 25일 행복한 성탄절을 맞이하는 오늘 무명의 작가가 2년 동안 써온 기나긴 대 장편 <굿바이, 부다페스트>이  오늘 마지막 100회가 시작된다.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 ‪꙳⋆🎅🏻 ࣪⊹ 𝙼𝚎𝚛𝚛𝚢 𝚇𝚖𝚊𝚜  ·🌲


-굿바이, 부다페스트 100회. 누가 세상을 지배하는가.(완결)

https://tobe.aladin.co.kr/n/54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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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성큼 찾아 오니 밖을 나서기 전 챙길 것들이 많다.

머플러, 장갑, 모자, 마스크 그리고 언제나 몸과 혼연 일체여야 하는 스마트 폰...

옷이 두툼해지는 겨울에는 가능한 가방 속에 많은 물건을 넣고 다니지 않으려고 하지만 다른 것은 빼놓더라도 종이책은 반드시 가방 속에 넣고 다니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 마자 커피를 내리는 시간 동안 오늘 하루 나와 함께 할 책을 고르는 것도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무작위로 눈에 들어 오는 책을 고를 때도 있고 전문 지식분야를 쌓기 위한 책일 때도 있고 누군가의 추천을 받은 책일 때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책을 선택 할 때는 그동안 무심코 클릭한 것들이나 구입한 목록들의 정보를 수집한 알고리즘 추천을 가능한 의지 하지 않고 내 스스로 특정 주제를 정해 놓고 내가 구상하고 원하는 포트폴리오에 맞춰 책을 선택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종류와 여러 장르의 책을 읽을 수 구독 서비스 책읽기도 1년 동안 해보았다.

전자책은 종이책을 읽는 속도에 비해 압도적으로 빨리 읽어도 제대로 완독 하는 책도 없었고 눈으로 스킵을 하다 보니 머릿 속에 남는 구절도 없었다.

특히 전자책을 읽다가 다른 앱을 열고 딴짓을 하기 일 수였고 이 책을 클릭하다가 또 저 책을 클릭하며 앞 장 몇 구절만 읽다 만 책들이 수두룩하다.

여전히 이북 기기와 스마트 폰에 저장된 책은 천 여권이 넘지만 지구가 종말 하기 전까지도 저장된 책을 전부 읽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다양하게 볼 거리가 넘쳐 나는 세상에 300페이지가 넘는 소설 한 권에 집중하기도 힘들다.

몇 주전 영화 <국보>를 보고 나서 일본 가부키 극에 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유툽이 없던 시절이라면 분명 국보 원작을 구입해서 읽었을 것이고 가부키에 관한 책이 있는지 찾아 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두 권을 완독 한 다음엔 일본 근 현대사 책을 찾아 그 시대 역사에 대해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감명 깊게 보았던 마지막 장면을 OST와 함께 보기 위해 유툽에 접속하니, 가부키에 관한 영상이 주르륵 떴다.

추천 알고리즘을 따라가 보니 가부키 역사부터 분장, 유명 가문과 공연에 대한 여러 정보를 10분 내외 영상으로 모두 섭렵할 수 있었다.

이런 시대에 책을 왜 읽어? 유툽이나 넷플릭스를 보면 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자 중독인 나는 요시다 슈이치의 국보를 종이책으로 구입했다.










[막이 단숨에 걷히자, 불길한 태고 소리와는 정반대로 무대 위에는 큰 눈 속에서 어째서인지 벚꽃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중앙에 선 큰 벚나무, 천장에선 만개한 벚꽃 가지가 가득 매달려 있습니다. 그런 호화로운 무대를 보며 객석에서 탄식이 새어 나오고, 태고 소리가 더욱 높이 울려 퍼진 바로 그때, 거목 줄기에 걸려 있던 까만 천이 스르르 풀리면서 나무 안에서 유녀遊女 스미조메墨染가 나타났습니다. 강한 조명 아래 드러난 것은, 연회색 옷감에 늘어진 벚꽃 가지 장식을 수놓은 복장의 유녀 스미조메. 츠부시시마다(つぶし島田: 에도시대 후기에 유행한 머리 모양-옮긴이) 스타일의 머리를 수많은 기생용 비녀로 꾸민 모습입니다. 예상치 못한 변주에 객석에선 파도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고, 2대손 하나이 한지로도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호오. 세키노토関の扉인가?” 이것이 바로 가부키 무용극의 명작 <쌓이는 사랑 눈 세키노토>의 명장면으로, 무대 아래쪽에는 이야기꾼 역할을 맡은 게이샤들과 샤미센이 쭉 늘어서고, 큰 벚나무 옆에는 관문지기인 세키베이関兵衛가 가만히 대기하고 있습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국보> 중에서






인공지능(AI)이 일상과 일터 학습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사용 되면서 이전과 상당히 달라진 세상이 삶의 깊숙한 영역까지 파고 들었다.

강의 음성만 녹음하면 AI가 요약본과 정리 노트, 예상 문제까지 만들어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해서 학생들은 더 이상 수업을 듣고 손으로 필기 하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수업에 출석하지 않고 녹음본을 사서 AI를 활용해 학습하거나 비대면 수업 강의에서는 사전이나 법전 종이책을 펼쳐 놓지 않고 AI를 학습 도구로 적극 사용하고 있다.

리포트는 기본이고 복잡한 코딩, 정보 분석까지 AI가 순식간에 해내다 보니 학생들은 AI에 사실상 모든 것을 위임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등장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젠 어디서든 AI를 사용하지 않으면 구 시대 사람 취급을 당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AI 몰고오는 광풍은 허리케인 급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AI를 ‘어떻게 쓰나’를 고민했다면 이젠 ‘AI 없인 어디에도 못 가고 일도 공부 못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TV가 아닌 AI ‘바보상자’가 덮친 세상에서 선택한 책은 최신 AI트렌드나 사용 방법에 관한 책이 아닌 살만 류슈디의 <진실의 언어>다.

부커상 3관왕 수상에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살만 루슈디는 '악마의 시’ 출간 이후 이슬람교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살해 위협에 시달려왔다.

목숨이 위태로운 시기에 은둔 하지 않고 왕성하게 집필하며 전 세계인을 향해 펜의 힘을 보여 줬던 살만 류수디는 2022년 여름 미국 뉴욕대가 주최하는 문학 강연 연사로 초청 받아 무대에 오르는 순간 괴한이 휘두르는 잔인한 칼 끝에 한 쪽 팔과 한 쪽 눈을 잃어 버렸다.

구사 일생으로 살아남은 살만 루슈디는 현재 왼쪽 팔의 신경이 완전히 끊어졌고 한 쪽 눈 시력도 완전히 상실했다.

살만 루슈디는 자신을 향한 칼에 펜으로 맞서며 언어로 세상을 베고 찌르면서 종교의 관습과 굴레로 겹겹이 쌓여 있는 불평등을 향해 진정한 자유의 힘이 무엇인지 언어의 힘으로 증명해 보였다.

회복 기간 동안 써 내려간 <나이프>에서 루슈디는 이런 말을 한다.


합리주의자의 신앙에서 러셀은 이렇게 말해. '사람은 자신의 열정에 어울리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잔인한 사람은 잔인한 신을 믿고, 자신의 잔인함에 핑계를 대기 위해 믿음을 이용한다. 오직 친절한 사람만이 친절한 신을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 경우에든 친절하게 행동한다.

-살만 루슈디의 <칼> 중에서


죽음의 칼 끝이 자신의 몸을 관통 해서 생과 사의 경계에서 살아 돌아 온 살만 루슈디는 <진실의 언어>라는 책에서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가장 유감스러운 기질은 무엇입니까?”


일터나 사적인 장소에서 MBTI로 상대가 내 기질을 궁금해 하고 물을 때면 어느 순간엔 I이였다가 E일 때도 있고 F일 때도 있다는 대답에 상대방은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를 내린다.

혈액형이 같다고 기질도 똑같지 않듯이 MBTI로 상대의 기질을 정확하게 나눌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와 다른 MBTI로 편을 가르며 섣불리 장 단점에 대해 낙인을 찍어 버린다.

1인 SNS와 유툽 시대는 어느 시대보다 만나 본 적 없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는 쓰잘데기 없는 말이 넘쳐 나는 시대다.

특히 챗 GPT의 등장으로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믿고 말하게 되어서 스스로 생각하고 유추하며 의문점을 찾아 해결하고 처리 하는데 쓰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말만 하면 척척 원하는 걸 찾고 해결 하는 시대에 진실된 말과 언어, 문장들이 챗 GPT의 힘을 빌려 하는 말들과 뒤섞여져서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인간은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아 챙겨 먹듯이 타인과 다른 세상을 향한 왕성한 호기심에 무엇에 대한 것이든 찾아 읽으며 학습해 나갔다.

인간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설령 상상력으로 빚어낸 허구의 이야기 일지라도 그 이야기 속에서 사랑과 증오, 용기와 비겁,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는 ‘진실’을 찾아 다녔다.

종이책, 전자책 그리고 유툽 영상까지 현 시대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 상당수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보고 경험하고 맛보고 시험해보고 보여주는 것들 뿐이다.

전문가나 특정 기술을 연마 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일반인들의 관심을 단번에 끌어내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반면 넷플릭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비슷비슷한 포맷의 예능물과 드라마들이 고스란히 소설의 장르로 배어 들어서 뛰어난 상상력 보다 주변에서 흔히 찾아 보고 마주 할 뻔한 일과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신간들 중에서 읽는 맛을 느끼게 하는 책이 드물어졌다

무릇 이야기란 신비롭고 흥미롭고 초현실적이며 때로는 상스럽기도 해야 영상 시대에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그렇게 살아남은 이야기는 비록 상상력으로 빚어졌을지라도 걸핏하면 서로 다투며 증오하고 미워 하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순 덩어리 인간이 유일하게 ‘진실’에 도달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준다.

살만 루슈디는 작가들이 제대로 구사해낸 '거짓된 진실'이야말로 현재와 같이 진실이 모든 곳에서 공격 받는 시대에 진정으로 이야기의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고 말한다.

현 시대는 자기 이익과 결부된 거짓말이 감쪽같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여론을 선동해서 좀 더 믿을 만한 정보가 오히려 '가짜 뉴스'라고 퍼뜨린다.

언제나 논쟁의 여지가 있었던 진실이 현 시대만큼 논쟁적이였던 적은 없었다.

AI 시대에 인간은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 더 이상 누군가의 말에 경청하지도 않고 복종하지도 않고 매일 숨 쉬는 공기만큼 믿기 힘들 거짓 정보가 곳곳에 떠다니고 있다.

진실이 결여된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AI가 거짓을 찾아 내 줄 수 있을까?

무엇이든 상상해서 말과 글로 지어낼 수 있는 인간의 자아는 동시에 많은 자아가 될 수 있는 존재다, 허구의 세상을 보여주는 문학은 이런 인간의 다면적인 자아와 모순된 기질을 다른 시각으로 보여준다.

해고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

왜냐하면 기업이 더 이상 사람을 고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던 일 만큼을 해내는 것을 넘어 10배, 100배의 생산성을 가진 AI의 경쟁력이 막강해져서 가까운 미래에 기업은 사람이나 특정 부서가 수행하던 기능과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AI를 구독할 것이다.

엄청난 생산성을 가진 AI의 구독료가 월 최저 급여의 절반도 안 된다면 기업의 경영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직원 소수와 다수의 AI 에이전트들로 재편될 미래 사회에 기업은 더 이상 사람을 고용하지 않을 것이고 인간은 AI에게 일자리를 물어보고 AI가 던져준 일을 처리하는데 급급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AI로 인해 구조 조정 당한 인간에게 도래할 미래는 중세시대 만큼 암울하다.

AI의 지속적인 발전과 진화 가능성에 거품론이 제기되고 있는 이 시기에 미래에 닥쳐 오게 될 해고 없는 시대에 대비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에게 동등하게 할당 된 24시간을 누군가가 먹고 놀고 마시고 체험하고 즐기는 영상을 보는데 흘려 버리지 말아야 한다.

태초 이래로 이 세상은 여러 거짓과 진실이 이리 저리 뒤섞이면서 인간의 삶을 변화 시켜 왔지만 AI가 인간의 영역에 파고 들면서 중요한 정보와 완전한 쓰레기가 언뜻 보기에 동일한 수준의 권위를 가지고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AI 사용이 급증할 수록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평행 우주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해고 없는 시대에도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문자와 활자로 눈부신 발전을 이끌었던 인간은 제 3자의 시선으로 쓰여진 책을 통해 내면에 잠재된 본능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서 자아를 찾고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읽어내며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 왔다.

매일 쏟아지는 허풍쟁이나 비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불확실한 정보와 거짓들의 홍수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챗 GPT에 의지 하지 말고 스스로 찾아 보고 고민하고 사유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더더욱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

오늘 내가 읽는 이야기는 결국 나의 일부가 되어 가치관을 형성하고 이 세상을 이해 할 수 있는 기틀이 되어 줄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손하지 않다. 광장에서 소리 지르기 시합인 경우가 많다. 논쟁에서 이길 기회를 잡고 싶다면, 그 논쟁에 참여해야 한다. … 작가의 경우에는, 증거에 근거한 주장에 대한 우리 독자들의 믿음을 재건하고, 소설이 항상 잘 해오던 일,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사실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해를 구축하는 일을 해야 한다.

-살만 루슈디의 '진실의 언어' 중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살아 남은 작가 살만 루슈디가 펜의 힘으로 쓴 <진실의 언어>는 칼의 힘보다 강하고 거짓을 그럴듯한 진실처럼 말하는 챗GPT보다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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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30 0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자신의 열정에 어울리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귀절을 필사합니다.

scott 2025-11-30 22:3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마힐 2025-11-30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AI버블론이 나오더라구요. AI의 발전 속도는 놀라웠지만 어느 순간 정체되고 있다고 하네요. 막대한 전력량과 뜨거운 열을 냉각시키기 위한 냉각수, 그리고 아주 큰 데이터 센터 규모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들. 하지만 AI는 이미 정치, 경제, 과학, 교육 분야로 확장하여 더 판을 키우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는 인간의 기대심리가 너무나 깊게 깔려 있다고 봐요. 막대한 자금과 앞으로 투자할 시간과 기대 비용이 기술의 발전보다 더 빠르고 크기 때문에 버블론이 나온 것 같아요. 이제는 웬만한 AI기술로는 사람들이 놀라지 않아요. 즉 인간의 기대심리가 AI발전을 넘어선 거죠. 결국 AI보다 인간의 마음이 어떤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 속에서 scott님의 리뷰 속 말씀이 더 와 닿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간만이 희망이지 않을까요?

2025-11-30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30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30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5-12-05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서재 달인 발표했어요 scott 님 축하합니다 2025년에도 서재 달인이 되셨네요 늘 그렇지만 한해 빨리도 가는군요 다른 해보다 더 빨리 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뭔가를 해도 빨리 가지만, 별로 안 해도 잘 가요 남은 십이월은 조금 천천히 가면 좋겠네요 며칠 꽤 춥네요 scott 님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밤 시간 보내세요


희선

2025-12-25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햇살과함께 2025-12-25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영화보고 왔는데 너무 감동이네요! 책도 읽어보고 싶어요! Scott님 남은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고 연말 잘 마무리하시고요~!

scott 2025-12-25 21:55   좋아요 1 | URL
국보
정말 잘 만든 예술 영화죠!
반드시 극장 큰 화면에서만 봐야 느낄 수 있는 감동!
책은 영화와 다른 깊이가 있습니다(영화는 카메라 연출이 일품!)
기온이 급강 하고 있습니다
햇살님 따스한 연말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네가 누구든
올리비아 개트우드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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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실리콘 벨리의 테크 산업 대 호황으로 하루 아침에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인 갑부들이  주변 토지를 대거 사들이면서 일대 부동산 가격이 폭등 하자 여름 한 철 관광 기간 동안에만 외지인들로 북적였던 팟벨리 지역의 부동산 가격도 치솟기 시작한다.

한적한 휴양지 바닷가에 가장 전망 좋은 지역에 살고 있던 토박이들은 몇 십배로 폭등한 가격을 받고 살던 집을 처분한다.

부자들이 입지가 가장 좋은 자리에 새로운 건축물을 올리는 사이에 지역 거주민이자 세입자들은 몇 십 배로 뛴 월세를 내기 힘들어 도시 중심부에서 벗어난 곳으로 이주 하거나 살던 곳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른다.

실리콘 벨리 산업이 대 호황이기 전  팟벨리의 주민들은 여름 한 철 외지인들을 상대로 공유 숙박이나 음식점 장사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문단속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서로를 믿었던 이웃들이 사라지고 난 후 팟벨리에서 유일하게 팔리지 않은 낡고 허름한 집이 있다.

엄마의 친구 베델와 함께 사는 미티는  실리콘 벨리 산업이 대 호황이기 전 부터 산타크루즈 해변 마을 팟벨리에 살았던  미티는 이웃들이 모두 떠나고 난 후 마지막 남은 거주민이라는 묘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부터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인근 부자 동네를 돌아 다니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화려한 장식물을 구경했던 아이였던 미티는  매일 밤마다   어느 집에 누가 이사 오게 될지 내심 궁금해 하며 새롭게 변해 가는 마을 풍경을 관찰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타코 식당에 설거지 하는 일을 할 때를 제외 하고는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 살고 있는 미티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생계 때문에 어머니 친구 베델에 집에 맡겨지고 나서  또래들처럼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하지 못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온라인으로 교육 과정을 마친 미티에게 졸업식 가운과 베레모를 사주고 노트북을 사준 것도 엄마 친구 베델이였다.

관광지로 유명한 캐피톨라 부두의 타코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하는 미티는 손님들에 받은 팁 액수에 따라 삶의 희비가 엇갈리는 나날을 보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갖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모든 것들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만 보았던 미티는 타인의 삶을 관찰 하는 묘한 취미를 갖는 어른으로 성장 했다.

그렇게 백화점 쇼윈도에 화려하게 장식된 상품을 구경하듯  지나가는 행인척 하며 새로운 이웃들의 사는 모습을조용히 관찰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던 미티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웃이 나타난다.

가녀린 목선과 희미하게 반짝이는 검은색 눈동자를 가진 매혹적인 외모의  레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미티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부러워 하기 시작한다.

커튼을 달지 않은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외부로 보여지는 레나에게 실리콘 벨리에 테크 기업을 소유한 부유한 남자 친구가 있다.

미티는 무엇이든 최고만 누리며 최고로 행복한 삶을 누릴 것만 같았던 레나가 매 순간 남자친구 서배스천에게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을 통해 알게 된다.

단 한번도 레나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미티는  우연히 화단에 나와서 화분의 흙을 담고 있는 레나가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미티는 레나가 남자 친구에게 신체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용기내어 그녀에게  첫 대화를 시도 한다.

낯선 이웃의 방문에 크게 당황하지 않은 레나는 미티에게  마치 프로그래밍 된 로봇처럼 남자 친구 이력을 줄줄 읊어 대는 기이한 모습을 보인다.

서로 안면을 트고 난지 몇 일 후 레나는 미티와 베델이 살고 있는 허름한 집을 찾아 온다.

레나는  미티의 낡은 집에 페인트 칠하는 걸 도와주면서  남자 친구가 어떤 사업으로 실리콘벨리에서 거부가 되었는지 자신은 어디 출신에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랐는지 이야기를 한다.

비슷한 또래의 친구가 된 미티는 레나에게 친밀감을 느끼면서 내심 세련되고 부유한 그녀의 삶을 부러워 한다.

레나는 자신의 모든 걸 통제 하고 감시 하는 남자 친구 서배스천에게 질식 당하기 일보 직전에  미티를 따라 해변 놀이 공원에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부터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집은 조용하다. 서배스천은 두세 시간은 더 있어야 돌아올 것이다. 레나는 거실 가운데에 서서 고요 속으로 침잠한다. 바깥 세상에서 하루를 보낸 뒤 현실로 돌아오니 낯선 느낌이 든다. 집은 전보다 더 내 집 같지 않다. 차갑고 날카로운 대리석 조리대, 윤기로 반들 반들한 식탁, 시체처럼 경직된 고리 버들의자.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 중에서 

남자친구에게 일상의 모든 걸 감시 받고 조정 당하는 삶을 살고 있는 레나는 거울을 볼 때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 할 정도로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 보던 레나는 신체 부위 중에서 오작동 되는 곳이 없는지 직접 점검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베스천에게 통제 당하고 부터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지 못하게 된 레나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몇 주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지막으로 서핑 할 때의 일 뿐이다.

서핑 할 때 따개비에 물렸던 상처에 피딱지가 생겼던 흔적을 발견한 레나는 서랍에서 핀셋을 꺼내 다리 꽂아 버린다.

다리에 상처가 생긴 것 조차 기억이 희미 해 질 무렵 피가 배어 있는 침대 시트를 발견한다.

레나의  삶을  집요하게 관찰 하고 있던 미티는  겉으로는 친밀하고 사려 깊은 행동을 하고 있는  시배스천이  레나를 학대 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때마침 어느 테크 기업 엔지니어가 의식이 있는 AI 로봇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신입 사원들에게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 한다.

이런 불길한 소문이 감도는 가운데  시배스천은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잘해 준 이웃인 베텔과 미티를 저녁 식사에 초대 한다.

 미티는 시배스천이 베텔과 이야기 하는 동안 슬쩍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뜨고   집안에 수상한 흔적을 찾아 곳곳은 은밀한 시선으로 둘러 본다.

미티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시배스천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연인인 레나를 바라 보면서도 여성을 지칭 할 때면 항상 깔보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식사 후 레나가 바다로 수영 하러 가자는 말에 미티가 따라 나서고 바닷물 속에 뛰어든 레나 입에서 미티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미티는  십 년 전 자신이 동경했던  발레리나 에스미의 사고가 단순 사고가 아니였다는 걸 알게 된다.

미티는 생각한다. 다음 세대 언젠가, 모든 윤리적 논란이 세월에 묻혀버릴 때면 서배스천의 업적을 칭송하는 프로필이 작성될지도 모른다고 그 프로필은 레나를 한때 지나간 프로젝트 수명이 미리 정해져 있었던 작품으로 언급할 것이다. 그때 쯤이면 레나를 만든 기술은 낡은 기술이 되겠지. 실험실에서 만든 로봇 유모의 모유를 먹고 자라,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일 만큼 연필을 잡아 본 적도 없으며 그냥 만들어 낼 수도 있는데 굳이 사람을 사랑해 할 이유를 상상 할 수 없을 그 시대의 어린이들은 그저 웃어 넘기고 말. 그런 낡은 기술.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 중에서 

소설 <네가 누구든>은 아버지와 행복했던 기억이나 유년기의 추억이 별로 없었던 미티와 남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자아가 짓밟혀 버린 레나의 삶이 서로 맞물려 가면서 전개 되는 동안  고도로  발전 하고 있는 AI기술이 머니 게임에 승자 위치에 있는 남성들에 의해 여성의 삶이 어떻게 짓밟히고 파괴되고 있는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여성의 몸으로 AI시대에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릴러의 문법을 차용하여 섬세하게 탐구한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사랑하오, 살아 있는 여인이여.

시 구절 같은 문장을 쓴 사람은  조 단위에 달하는 이혼 위자료를 지불하고 이탈리아 베네치아 도시를 하루 동안 빌려서 두 번째 결혼을 한 세계 최고 거부 중 한 명인 제프 베이조스다.

독자들에게 제프 베이조스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든 이 소설에서  최첨단 산업을 주무르고 있는 테크 산업의 큰 손인 남자들이 여성의 신체를 교묘하게 착취하며 악랄하게 이용하고 있는 모습을 스릴러 기법으로 내밀 하게 묘사 했다.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관음증이 사람의 눈이 아닌 기계가 대신 할 때 삶의 터전이 어떻게 달라지고 성별이 다른 성이 어떤 차별과 학대를 당하게 되는지 뛰어난 구성과 감각적인 문체로 펼쳐 보인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을 다 읽고 나면 우리의 몸은 항상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AI에 의해 가장 많은 복제가 되어 딥페이크 사기와 범죄에 가장 많이 이용 당하고 있는 여성은  세계적인 컨트리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다.

전 세계에 걸쳐 거대한 팬덤을 갖고 있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가짜 영상과 사진들은 검은 손들에 의해  성적 착취물이 제작 되고  있고 그 사진을 누르는 순간 개인 정보가 탈탈 털리고 있다.

인간의 삶을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고 있는 AI 기술에 의해  여자 유명인들 뿐만 아니라 유명인, 인기인 같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들 모습 뿐만 아니라 가까운 지인들 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 또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얼굴과 몸은  교묘하면서 악랄한 해커들의 먹잇감이 되어 버렸다.

의뢰인의 취향에 맞게  원하는 걸 말하면 무엇이든지 척척 해 주는 AI기술을 발전 시킨 주역들은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의 삶을 대량으로 수집하고 착취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이고 있다.

 최첨단 기술이 등장 하기 전 인간의 삶은 많은 모순을 갖고 있어도 그 나름대로 질서를 갖춰 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네가 누구든 ...당신이 누구든. 인간의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공지능의 알고리즘 덫에 걸려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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