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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마물의 탑 ㅣ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평점 :
[일본 연안은 예전부터 해난 사고가 잦았다. 육지와 바다가 인접한 부분에 암초가 허다했고 폭풍우와 짙은 안개, 눈보라 등의 악천후까지 겹치는 데다 항로표식이 충분치 않았던 탓도 컸으리라. 그 항로표식의 대표가 등대이다]
청년 시절 중국 만주 건국 대학에 재학 중에 학도병으로 대동아 전쟁의 불길 속으로 끌려 들어간 모토로이 하야타는 전쟁의 피바다에서 미쳐 날뛰었던 조국 일본에 엄청난 환멸을 느꼈지만 패전 후 자신의 힘으로 조국을 재건하겠다는 꿈을 품는다.
나츠메 소세키는 작품 <갱부>에서 '세상에 노동자 종류는 많지만,그 중 가장 괴롭고 가장 하등한' 일은 광산의 노동자라 지칭 했고 하야타는 땅 속 깊숙한 곳에 파묻힌 석탄을 캐는 세상에서 가장 하등한 일을 시작한다.
하야타는 갱도로 내려 갈 때 마다 두 번 다시 바깥 세상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면서도 갱도일이 세상에서 가장 하등한 일이라 생각 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그와 달리 탄광 갱도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살아 돌아 와도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자 불길한 예감에 사로 잡힌 하야타는 갱도 입구에서 보이는 바닷길 위를 비추는 고가사키 등대의 불빛을 바라본다.
[고분에서 출토된 창과 검을 거대하게 만들어 놓은 듯한 예리하고 가늘고 긴 기암이 바다에서 뾰족 뾰족 솟아 있다. 고깃 배의 앞길을 막으려고 일부러 파도 사이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손가락처럼 보였다.]
갱도 밖을 나온 하야타는 곧장 요코하마의 등대 관리 양성소를 들어가 우수한 성적으로 다이코자키 등대 해상 보안청에 파견 된다.
그의 임무는 등대 주변을 수색, 관찰 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일로 등대가 문제 없이 해상 표식의 역할을 다하도록 유지하고 관리 해야 한다.
관광 기간에는 일반 관광객이나 소풍, 수학 여행으로 찾아온 학생들을 이끌고 다니며 등대 주변 지역 안내까지 맡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가끔씩 절벽에서 뛰어내려서 자살을 하려고 찾아 오는 이들도 있기 때문에 하야타는 한 순간도 긴장감을 놓지 않고 있다.
히야타가 예의 주시 하는 곳은 바로 폭포수가 흐르는 곳으로 일명 이곳은 일본 열도 내에서도 자살 명소로 지목되고 있는 곳이다.
[바다로 들어간 뒤로는 바닷물과 안개를 헤치면서 정신없이 소녀를 구해냈다. 다행히 상대는 난동을 부리지 않고 얌전히 내게 몸을 맡겼다. 그래도 사람을 안고 안개가 피어오르는 바다를 헤엄쳐 근처 바위 사이의 좁은 모래사장까지 도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쟁 때보다 더 힘든 경험이었을지 모른다.]
하야타는 부임 했던 첫 날부터 폭포수 앞에서 뛰어내린 소녀의 목숨을 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수 많은 생명이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걸 막는데 온 힘을 쏟아 부었다.
그가 두 번째로 부임한 고가 사키 등대는 첫 근무 지역보다 훨씬 낮은 위치의 곶 암벽 위에 새하얀 탑이 우뚝 솟아 있는 곳으로 높이 솟아 있는 곶 보다 키가 낮아야 하는데 마치 우뚝 솟아 있는 기암 절벽과 경쟁 하듯 높이 솟아 있다.
[구지암 사이에서 꿈틀거리다 쏟아져 나오는 시퍼렇고 성난 파도,등대 뒤로 바싹 다가온 밀림 같은 깊고 짙은 푸른 숲, 어느 샌 가 하늘 가득 펼쳐진 회색 구름, 주변 일대에 펼쳐지고 있는 옅은 우윳빛 안개. 그 한복판에 선 새하얀 탑...]
하야타는 갱에 들어 갔던 그 순간처럼 불길한 예감에 사로 잡히며 '가능하다면' 저 곶에는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기묘한 사건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저 멀리 고가사키 등대의 등대장이 하야타를 향해 손을 흔들지 않고 우두커니 서있다.
사람을 그리워 하거나 반가워 하지 않는 등대장은 새로 부임한 직원을 반갑게 마중 나오지도 않은 채 우두커니 선 채로 이렇게 중얼 거린다.
...허연 게 춤을 춰서 말이야...
....하얀 마물
부임 첫날 하야타는 오래전 쿄토에서 여관을 운영하다 이곳 까지 흘러 들어 왔다는 친절하고 상냥한 주인이 운영하는 여관에 하룻밤을 묶고 그곳에서 하얀 신 '시라가미'를 모시는 무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여관 주인이 극구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하야타는 어떤 생각에 사로 잡혔는지 반드시 자신의 근무지 고가사키까지 혼자 가겠다며 여관을 나선다.
지도를 보며 산 속으로 들어 간 하야타는 해변 등대가 있는 곳까지 도달 하려면 울창한 숲을 헤집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인적도 없는 이 산 속에서 하야타의 뒤를 누군가 쫓고 있다. 그는 서서히 숨이 막힐 정도로 호흡이 가파지더니 인기척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뒤를 돌아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체 뭐를 무언가가 느껴지지만 어떤 것과도 마주치지 않는 공포 속에서 하야타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등대로 가는 길인지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한다.
드디어 좌우로 뽀족한 암벽 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왼쪽과 오른쪽 갈림길로 이어지는 길목에 낭떠러지가 있다.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 한 발만 잘못 디뎌도 저 아래로 떨어진다.
까마득한 절벽을 기어 올라갈 지 아니면 바로 코 앞에 보이는 갈림길까지 단 숨에 뛰어넘을지 이제 하야타의 운명은 '거목과 묘석, 기암길' 사이에 놓여 있다.
길을 잃어버린 하야타 , 주변은 순식간에 어두컴컴한 암흑으로 변하고 저 멀리 희미하게 반짝이든 등대에 불이 켜졌다.
죽음의 찰나의 순간 하야타는 손전등을 켜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돌연 불빛에 날아드는 나방 같이 하야타 귓전에 날아드는 사람의 목소리
'누구세요?'
그는 무엇에 홀린 듯 유카타를 입은 소녀를 따라 걷는다.
소녀를 따라간 오두막집에 두 눈이 이글거리는 공포스러운 가면을 쓴 이가 그를 노려 보고 있다.
소녀의 할머니 시라쿠모는 백녀라 불리는 무속인으로 하얀 가면을 쓰고 있다.
만약 길을 잃더라도
하얀 집에는 가지 마세요.
거기서 묵으면 안됩니다.
소녀의 이름은 하라타, 자신을 낳아 준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
소녀는 운명처럼 대를 이어 무녀 수업을 받고 있다.
그날 밤, 하얀 집에서 잠이든 하야타는 꿈 속에서 무언의 발소리를 듣는다.
떠나기 전 하라타에세 받은 부적 천을 손에서 놓쳐버린 하라타, 눈 앞에 펼쳐진 무성한 덤불이 꿈틀거리고 저 멀리 등대가 보이는데도 가지 못한다.
이곳 자연의 기운이 그의 길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일까? 아니며 고가사키 등대가 새로운 등대지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고가사키등대
조금 남은 노을빛을 받아 적동색으로 물든 등대는 거대한 밀랍양초처럼 등실에 불까지 들어오면 정말 촛불에 불을 붙인 것처럼 보인다.
하야타는 목숨을 걸고 두 번째 바위로 뛰어 올라가자 그곳에 놓인 돌계단을 발견한다.
이 돌계단을 오르면 등대가 있는 등탑까지 갈 수 있다.
그가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누군가 뒤쫓아 오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마침내 도착한 고가사키 등대에 또 한 번의 십대 소녀가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하고, 겨우 구해 낸 그 소녀는 하야타의 첫 부임지에서도 구사일생으로 구했던 그 소녀였다.
첫 부임지와 현재 부임지 사이의 시간은 10년, 저 소녀는 하나도 나이를 먹지 않은 모습 그대로다.
소녀는 하야타를 쫓아 다니는 바다의 마물인 것일까?
갱부들이 탄광 속에서 이따금씩 발견하는 검은 빛의 마물 처럼 바다에는 하얀 마물이 살고 있는 것일까?
대를 이어 등대를 지키는 이들에게 하야타는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실제 목격담이야기를 듣는다.
이 십 년 전 산 속 깊은 곳에 사는 무녀의 딸과 결혼한 등대지기, 두 부부가 부임지를 옮길 때마다 하얀 물체가 쫓아다니고 변경의 등대지로 옮겨도 하얀 물체는 어디든 쫓아 온다.
두 부부 사이에 아이들이 태어나고 어느 날 막내딸 하나미가 사라진다.
그것이 춤추고 있어.....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미친 듯 춤추는 하얀 사람의 그림자가 그의 뇌리에 또렷이 떠올랐다. 그것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하지만 착실히 등대를 향해 오고 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아이가 사라진 후 하얀 물체도 함께 사라졌다.
하야타가 숲 속 하얀 오두막에서 만났던 소녀가 등대지기 부부의 딸이였을까?
아니면 주기적으로 해안 절벽에서 자살 기도를 하며 뛰어내리는 소녀가 두 부부의 아이의 혼령인 것인가?
등대 부속 관사 측면으로 돌아가자 두 번째 바위로 이어지는 돌계단,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하야타가 등대까지 도달하지 못했던 그 갈림길에 등대와 같은 크기의 거대한 하얀 사람이 서 있었다.
거대한 하얀 마물의 탑의 모습이 하야타의 눈에만 보이고 있는 것인가?
고가사키 등대 불빛에 이상이 감지 된 신호를 등대 관제소는 책임 등대장과 항로 포식직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된다.
이 지역 등대를 오랫동안 신임 모토로이 하야타 혼자 담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현장으로 달려가 확인 한 후 반 쯤 넋이 나간 채로 등대 주변을 돌아 다니고 있는 하야타를 병원에 입원 시킨다.
등대지기를 만난 것만 기억하고 있는 하야타는 4일 만에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후에
등대지기 부부와 아이가 행방 불명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이곳 고가사키 등대에서 만나 이야기 했던 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조사에 착수 한 경찰은 하야타가 등대지기 가족을 살해 하거나 모의 자살로 몰고 갔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 등대지기 이사카가 남긴 일기 마지막 페이지가 발견 된다.
[오후 늦게 , 이 시기에는 드물게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금세 짙어졌다. 하마치를 무적실로 보냈는데 도무지 무적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는 뭘 하는 걸까?
일지에는 이런 내용을 적을 수 없으니 일기에 적는다.
좀 더 여유가 있으면 무적실로 상황을 보러 가야겠지만, 왠지 나쁜 예감이 들어, 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일기에 적어둔다. 또 돌아와 계속....]
기이한 괴담이 서려 있는 등대 마다 어디까지가 인간들이 저질렀는지 아니면 기이한 자연 현상에 깃들려 있는 불가사의한 현상인지 알 수 없다.
일본은 일찌감치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며 유럽 곳곳에 사람들을 보내 등대 기술을 배웠고 이후 피바다를 일으키며 무자비하게 주변 국가 사람들을 살육했다.
일본의 해안 곶마다 우뚝 서있는 하얀색 등대는 마치 바닷 속으로 가라 앉은 무고한 생명들의 혼령의 탑일지도 모른다.
마을 여자들 가운데 딱 하나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해녀가 입는 하얀 옷 같은 차림새의 사람이 있었다....
아이가 사라진 후 하얀 사람도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