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시작은 우주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도구에서 유래 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의 황하유역에는 해마다 홍수가 범람하여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 하며 별의 움직임에 따라 한 해 농사를 지었다.

이렇게 고대 중국인들이 하늘의 별자리를 표시하던 돌들은 기원전 2300년 경 중국의 요왕이 아둔하고 게으른 아들의 인격 수양을 위해 흑과 백이 겨루어 집을 많이 짓는 편이 이기는 게임인 바둑을 시작했다.

한반도에 바둑이 전해진 시기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삼국사기'에 고구려 승려 도림이 백제의 개로왕과 바둑을 두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는 도구에서 하나의 놀이 문화 였던 바둑은 17세기 일본에서 막부 정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게임의 룰이 생겼고 오로지 바둑만 두고 사는 직업군인 기사제도와 본인방 같은 가문 대대로 바둑 기사의 계보를 이어가는 바둑 가문이 탄생했다.

일본에서 지역별 종파별 바둑 가문 대결이 시작되면서 전 열도의 대전으로 게임의 룰이 정비 되었다.

바둑의 룰은 간단하다. 반상 위에 찍힌 361개의 점 안에 돌을 놓고 흑과 백이 겨루어 집을 많이 짓는 편이 이기는 게임이다.

한국은 20세기 초까지 흑과 백의 돌을 미리 바둑 판에 배치 하고 시작하는 순장 바둑을 두었지만 해방 후 일본에서 바둑 공부를 하고 돌아 온 조남철 9단이 일본 바둑 룰을 한국에 보급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바둑은 단 한 번에 게임으로 승부가 나지 않는다.

흑의 수로 중단 되는 것이 오래 전부터 지속된 게임의 룰이지만 일본 바둑은 여기에 상수(上手)에 대한 예외를 두고 일단 상대의 수를 봐 두고 다음 수를 다시 바둑이 재계 되는 시기까지 천천히 고심해서 대국이 중단될 때까지 마지막 수를 봉할 수 있는 규칙으로 변형 되어 왔다.

이렇게 자잘한 규칙과 예외, 만일에 대비한 비책까지 바둑의 현대 룰을 확립한 바둑 기사는 일본의 명인이라 불리는 혼인보 슈사이다.

일본의 메이지와 다이쇼, 쇼와 시대에 걸쳐 50년 동안 불패의 기록을 세운 바둑 명인 혼인보 슈사이는 상대 바둑 기사를 선발 하는 데만 일 년 반이 걸릴 정도로 만만치 않은 상대와의 게임에서 궁극의 승자가 되는 바둑을 즐겼다.

대국 조건도 각자 제한 시간 40시간에 각 대국 간격이 나흘 일정에 대국 중에는 줄곧 숙소에 머무르면서 승부가 날 때까지 바둑을 지속했던 명인은 결국 마지막 바둑 경기를 앞두고 숨을 거둔다.


제 21대 혼인보 슈사이(本因坊 秀哉 )명인은 1940년 1월 18일 아침, 아타미에 있는 우로코야 여관에서 죽었다. 세는 나이로 예순 일곱살이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 중에서


1938년 6월26일부터 12월4일까지 장장 6개월에 걸쳐 세기의 바둑 대전이 벌어졌다.

14회나 계속된 이 경기는 65세의 바둑의 명인 혼인보 슈사이의 대국 경기로 그는 경기 중반에 병으로 쓰러져서 11월 중순까지 석 달 동안 경기가 중단 되었다가 그가 병원에서 퇴원하자 마자 겨우 제개 되었다.

하지만 50년 간 이어온 '불패의 명인'이라는 기록이 30세의 젊은 신성에게 깨지고 결국 대국이 끝나고 나서 1년 후 1940년 명인은 원래 몸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소설을 쓰지 않는 날이면 항상 바둑판을 펼쳐 놓고 바둑알을 만지작 거리며 바둑판에 흑색과 흰색 기보를 두고 읽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38년 6월부터 12월까지 약 반년 동안 치러진 바둑의 명인 혼인보 슈사이의 마지막 대국을 직접 참관하는 동안 신문에 총 64회의 관전기를 연재하며 일본 열도를 바둑의 열풍으로 몰고 갔을 정도로 바둑 애호가 였다.

일본의 바둑 역사는 약 300여년으로 [명인 名人]이라는 호칭은 <도쿠가와> 막부 시절엔 모든 걸 다 차지할 수 있는 직위일 정도로 바둑 판에서 승자의 자리에 올라가면 막강한 세력을 과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고 나서 부터 바둑계의 승자인 명인들이 누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명예뿐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명인>에 실존 명인 혼인보 슈사인는 1914년 마지막으로 명인 名人 칭호를 받았던 인물이다.

'명인의 하얀 부채가 얼음물을 얹은 검은색 칠(漆) 쟁반에 비치어 움직이는 고즈넉함. 관전은 나 혼자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 중에서

50년 동안 바둑의 명인이였던 혼인보 슈사이는 삼십 년 동안 흑을 쥔 적이 없었다.

그는 이인자가 없는 일인자였고 살아 생전 후진 가운데 8단도 없었다.

동시대 활동 했던 바둑 기사들 중에서 그의 지위에 견줄 자가 없었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십 년 동안은 일본 바둑계에서 명인 혼인보 슈사이의 승부를 넘어선 기사도 나타나지 않았고 계승자도 없었다.

흑과 돌의 집짓는 게임을 '도道'의 예술로 끌어 올려 기와 예절을 갈고 닦는 명인 바둑 기사를 탄생 시킨 곳은 일본이였지만 일본의 바둑의 기예를 누른 상대는 한국의 바둑 기사들이였다.

승부의 세계가 원래 그렇다. 아니, 승부를 떠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원래 그렇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길 수 있다면 이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전의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내가 버텼던 이유는 이겨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아직 이길 기회가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조훈현의 <고수의 생각법> 중에서

한국 바둑의 명인 계보는 한국바둑의 개척자인 조남철 9단이 터를 닦기 시작해서 김인 9단-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 그리고 인공지능 알파고를 상대로 1승을 거둔 이세돌에서 현재 2000년생 신진서 9단으로 이어진다.

2019년 1월부터 7년째 세계 1위인 그는 14억 중국의 최고 기사(棋士)들을 줄줄이 무너뜨린 무서운 20대 신진서 9단은 엄청난 인해 전술 전략을 펼치며 만리 장성 같은 바둑 게임 판을 키우고 있는 중국 바둑 기사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상대다.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바둑 기사 다섯 명이 신진서 9단에게 달려 들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다.

한 해 동안 82국을 소화하는 신진서 9단은 상대가 강할 수록 묘수가 떠오르고 더 강한 상대가 나타날 수록 정신이 집중 되어 강자들을 꺾을 때 마다 자신감이 붙어 마지막 승자 자리에 올라가는 바둑 인간 알파고다.

5일 동안 이어지는 결승 대국이 시작될 때는 신진서 9단은 혼자 다섯 명의 중국 바둑 대표들을 상대 할 때는 게임이 시작되는 오전 10시 40분 부터 저녁 6시간 까지 경기에 임하고 중간 휴식 시간에 식사와 주변 산책을 하며 마지막까지 온전히 바둑판과 혼연 일체가 된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복기를 하고 복기가 끝나면 새로운 상대인 인공지능 바둑을 연구 하고 있다.

2000년 생이 혼자 중국과 일본의 바둑 기사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었던 건 지속적이면서 일률적인 습관 덕분이였다.

신진서 9단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오전 9시 기상

-식사 전 기보, 두 개

-오전 11시 전 까지 아침 겸 점심 식사

-인터넷 바둑 공부

-오후 시간 동안 기보/기보/기보

- 오후 3시 쯤 간식과 휴식

-인터넷 바둑(이길 때 까지 게임을 지속한다.)

-저녁 6시 까지 기보/휴식/기보

-늦은 밤 이기면 산책을 나가고 지면 이길 때 까지 기보/기보/기보


이겼다고 믿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잡념은 교활하다. 이겼다고 생각해 방심하는 순간이 자신이 파고들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임을 알고 있다. 목표가 눈앞이라면 그때야말로 조심해야 한다. 그때가 가장 큰 위기일 수 있다.

-신진서 9단의 <대국> 중에서


박진감 넘치고 실감 나는 3D게임이 넘쳐 나는 시대에 흑과 돌을 만지작 거리며 몇 시간에 걸쳐 반상 위에 찍힌 361개의 점 안에 돌을 올려 놓은 게임은 과거 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평생 동안 바둑판만 응시한 채 1년 365일 손에서 바둑 알을 쥐고 사는 명인은 바둑판을 벗어난 세상의 온갖 협작과 질투,교묘한 술책이나 속임수, 눈속임에 크게 개의치 않아야 하고 그런 시선과 모함에 휘둘릴 시간도 없을 것이다.

명인의 하루 일과는 바둑 알을 쥐고 바둑판을 바라보며 시작되고 하루의 마지막도 바둑 알을 손에서 내려 놓아야 끝이 나고 한 번 승부가 펼쳐 지면 끝장 날 때까지 승부를 보는 근성으로 인생의 모든 걸 바둑에 건다.

바둑의 세계를 모르는 이들에게 명인의 삶은 이해 불가다.

기껏해야 바둑이고 이기고 지는 승부의 게임이지만 바둑 판 위에 찍힌 361개의 점 안에 돌을 놓고 서로 집을 지으려 다 보면 경계선을 둘러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이렇게 흑과 백이 맞붙는 과정에서 흑과 돌의 대결은 마치 온갖 처세술이 난무 하는 세상의 축소판 처럼 인간의 모든 희노애락이 바둑 판 위에서 펼쳐지는 오묘한 게임이다.

인생 전체를 바둑판에 온전히 바쳐 버린 명인처럼 읽고 쓰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매진 하는 사람이 있다.

단 두 편의 소설로 일본을 대표하는 주요 문학상을 잇달아 수상한 마쓰나가 K 산조는 1년 365일 설계도를 그리며 집을 지어 올렸던 건축가였다.

주중엔 설계도면과 씨름을 하고 주말이면 배낭을 짊어지고 산행을 했던 마쓰나가 K 산조는 산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일상의 자잘한 것들이 떠올랐고 산에서 내려 와서 등산 하는 동안 느꼈던 여러 상념과 공상들을 종이에 쓰기 시작한다.

주말 마다 손에 쥐고 다녔던 산행 루트가 그려진 지도는 종이 위에서 정교한 플롯으로 짜여 졌다.

작가 마쓰나가 K 산조는 자신의 분신과 같은 주인공 하타의 산행을 통해 무탈하게 별탈 없이 직장 생활을 성실히 하던 3년차 직장인이 어느 날 등산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기 시작하면서 전에는 단 한 번도 시도 한 적 없는 산행을 시작한다.

그는 산을 올라가는 동안 유툽 채널 운영자가 알려주는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산을 오르게 되고 산행 중에 여러 인물들을 만나며 챗바퀴 같은 인생에도 나름대로의 보람과 행복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베리에이션 루트(variation route). 베리 루트라는 표현도 쓴다고 한다. 평범한 등산로가 아닌 길, 요컨대 파선(破線) 루트라 불리는 고난도의 숙련자용 루트나 폐지된 길을 나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명확한 정의는 없지 않으려나. 좀 진귀한 루트를 두고 베리에이션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또는 정해진 루트가 아니라서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없는 계곡이나 능선을 따라가거나, 지형도를 보고 올라갈 수 있을 법한 곳 또는 오히려 못 올라갈 법한 곳을 나아가는 등 루트를 완전히 무시하고 산행 하는―”

-마쓰나가 K 산조의 <베리에이션 루트> 중에서

산을 오르고 내리는 과정도 바둑 판에 흑과 돌을 쌓는 과정도 정해진 '길' 법칙이 없다.

두 발을 땅에 딛고 두 손을 바둑 판에 내밀며 한 발 한 발 , 한 수 한 수 앞으로 나아가면서 포기 하지 않는 노력과 근성으로 버텨 내고 감내 하고 이겨내면서 자신 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작가 마쓰나가 K 산조는 산행을 하면서 자신만의 루트를 개척 했고 산에서 내려와 자신만의 스토리로 종이 위에 활자를 채워서 한 권의 책으로 완성 했다.

산을 오르는 것도 바둑 게임에서 이기는 것도 쉽지 않고 한 권의 이야기를 완성 하는 것도 쉽지 않다.

2024년 2월 1일 부터 쓰기 시작한 장편 역사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매회 1만자를 넘나들며 2025년 1부 50회를 지나서 3월 27일 61회의 고지를 찍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

https://tobe.aladin.co.kr/s/9373

1회부터 60회까지를 발걸음 수로 계산을 해보면 일반 성인 한국인의 보폭은 60~80cm 정도로, 1,000걸음은 약 1km 정도다.

큰 걸음으로 만보를 걸으면 약 6~8km를 걷게 되고 만보 걸음을 채우려면 2시간 정도 소요 된다.

1년을 넘겨서 61회를 썼으니 61 만보를 두 발로 걸은 것과 비교 할 수 있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AI 시대와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되는 오늘날, 목표 또한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목표를 정하면 마치 만점짜리 과녁처럼 그것에만 집중하지만, 기술과 사회는 끊임없이 변한다. 오늘의 기준으로 설정한 목표가 내일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장기적인 목표라면 빠르게 발전하는 AI 기술, 데이터 경제, 디지털 트렌드의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해야 한다.

-이라야의 AI 시대, 불안한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중에서



인공지능이 바둑도 두고 소설도 쓰고 그리고 뚜벅 뚜벅 만리 장성도 지치지 않고 걸어 갈 수 있는 시대에 창작법을 어디에서도 배운 적 없는 나는 홀로 고군분투 하며 100회를 예정하고 장편 역사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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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121번째이자 여성으로는 18번째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이 출간한 책들은 지난해 10월 부터 최근 까지[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순번을 서로 번갈아 가며 1위 자리를 밀어 내고 올라서기를 반복했다.











한강 작품 열기 속에서 인기 아이돌이 추천하는 책, SNS열풍을 타고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책,영향력 있는 인사가 추천하는 책들이 빠른 속도로 베스트셀러 상위권으로 진입했다.












이 와중에 세상은 12·3 불법계엄 이후 대통령 탄핵심판이 열렸고 전국 주요 도심은 탄핵 찬반 시위, 시국 선언,집회 등으로 단 하루도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다.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권력의 '별의 순간'을 잡으려는 대권 잠룡들이 여론의 추이를 살피는 동안 아이돌 그룹의 신간 앨범이나 사진집 발매 오픈 런 대기줄 처럼 어느 정치인의 자서전 책을 사려는 이들이 대형 서점 개점 전부터 100m가 넘는 줄을 서는 기 현상이 벌어졌다.

광화문을 지나가는 버스 차창 너머로 눈 앞에 이런 광고 문구가 스쳐 지나간다.


긴박한 순간을 디테일하게 묘사한 역사 다큐멘터리


누구든 책을 낼 자유가 있고 누구든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구매 할 자유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 역시 내가 읽고 싶은 책,손바닥 크기의 작은 문고본을 꺼내 무심코 펼쳐지는 페이지를 읽는다.


“어제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돌아보니 울컥 목이 메었다. 모두가 착하디 착한 이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루의 고된 생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눈매에서 뭐라 말하기 어려운 인간의 우수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이다."


머릿 속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펼쳐 드는 책이 있다.


영혼의 스승’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납덩이처럼 무겁고 답답하기만 한 이 가을의 공기 속에서 그토록 선량한 눈매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어디서 무얼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이 뭘 잘못했다고 이 가을의 공기는 이렇게 숨이 막히는가. 언어가, 인간의 그 언어가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들으려야 들을 수가 없다. 요즈음 신문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라디오를 들어도 눈물이 난다. 인간의 말이 듣고 싶어서, 우리들 이웃의 나직한 그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내 귀는 도리어 문을 닫는다.

지형(紙型)까지 떠 놓았지만 언제 책이 되어 햇빛을 보게 될는지 알 수 없다. 영혼의 모음(母音)은 맑게 개인 하늘 아래서가 아니면 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1972년 입동절 다래헌(茶來軒)에서 저자 합장.”

법정스님을 평가할 때 ‘무소유(無所有)’의 가르침을 실천한 수행자이자 고등교과와 대학 교과에 수필이 실리는 자연주의자 에세이스트로 인식한다.

하지만 스님이 남기신 글들을 찬찬히 읽다 보면 ‘비구 법정’은 반 세기 전 민주화에 앞장섰던 선구자자 였다.

1954년 입산 출가하여 조계산 불일암 시자인 법정(法頂)스님은 1960년부터는 통도사에서 운허스님이 주도했던 <불교사전> 편찬사업에 참여하고 1972년 12월 독재 정권 연장을 위한 유신 헌법이 발효되고 이에 항거한 학생, 시민, 민주계 인사 등의 유신 철폐 개헌 서명 운동이 일어나자 여기에 스님도 뜻을 함께 하였다.

1971년 법정 스님은 <현대문학> 3월호에 <무소유(無所有)>를 발표했다.

우리는 지금

다스림을 받고 있는

일부一部 몰지각자者

대한민국大韓民國 주민住民 3천5백만 다들 말짱한 지각知覺을 지녔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지각知覺을 잃었는가

아, 이가 아린다 어금니가 아린다.

입을 가지고도 말을 못하니

이가 아리는가

들어줄 귀가 없어 입을 다무니

이가 아리는가

들어줄 귀가 없어 입을 다무니

이가 아리는가

오늘도 부질없이

치과의원齒科病院을 찾아 나선다.

흔들리는 그 계단을 오르내린다.

「1974년 1월-어떤 몰지각자沒知覺者의 노래」(중에서)


1980년 법정스님은 해인사와 서울을 오고 갈 때 뉴스와 신문을 통해 5·16 군사쿠데타가 발발 한 것을 알게 된다.

몇 일 후 선암사의 어느 노스님이 군인이 쏜 실탄을 팔에 맞아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며 사회민주화에 대해 발원한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를 발표한다.


“민주화 운동을 할 때 박해를 받으니까 증오심이 생기더군요. 내 마음에 독을 품는 게 증오심인데 그때 ‘이래선 수행에 도움이 안 되겠구나’하고 느꼈어요. 순수한 마음에서 이탈하는 게 괴롭고. 중노릇하는 내 본분이 뭐냐고 스스로 물었지요. 본래 자리로 돌아가자. 해서 산으로 들어갔어요.'

-법정(法頂)


시국을 비판하며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던 어느 날, 법정스님은 정권에 대한 증오심이 스스로의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음을 깨닫고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서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 불일암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버리고 한 칸 암자에서 혼자서 밭을 매고 밥 지으며 수행한다.

법정 스님이 세상의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산 속으로 들어간 지 17년의 세월 동안 그의 주옥같은 산문집들을 읽는 독자들 마음마다 사색의 깊이가 새겨지고 스님이 활자로 새긴 철학적 언어들은 현실의 고통 속에서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밝은 빛이 되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으나 침묵 속에 머무는 사람들만이 그것을 발견한다. 말이 많은 사람은 누구나 막론하고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간에 그 내부는 비어 있다.

스님의 말씀을 더 듣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산 속 암자까지 찾아 가자 법정 스님은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1992년 법정스님을 찾아온 한 프랑스 철학자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 혼자 살고 계신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스님은 다시 붓을 들고 세상 밖으로 나갔다.


‘내가 사는 방식을 남에게 강요할 게 아니라, 이렇게 자연에서 배우고 얻어 들은 것들을 사람들과 나눠야 되겠구나.’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녁 10시에 자는 일과를 매일 지키셨던 법정 스님은 세상을 향해 말로 글로 깨우침을 전하고 나서 2010년 3월 13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을 남기고 입적 하셨다.

50년 동안 수행을 했던 법정스님이 다다른 곳은 과연 어디였을까...


“사람의 한 생애에서 남는 것은 재산도 명예도 아닙니다. 얼마나 주변 이웃에게 덕(德)을 베풀었는지가 중요해요. 바로 덕이야말로 사람의 근원적인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은 덕을 쌓을 줄을 모릅니다. 잘 살고 편리해도 덕이 없으니 외롭고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이죠. 무슨 일을 하든 이웃에 덕이 되는 따뜻한 가슴과 포용력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을 통해서만 회복할 수 있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을 뽑기 위해 친인척을 채용하는 전통을 내세우는 매관매직을 하고 있는 무소불위 공무원들은 국민의 혈세 법카를 긁으며 잘 먹고 잘 사는 풀 소유의 삶을 누리고 있다.

국민의 삶을 좌지우지 하는 권력자들은 저마다 국민의 세금으로 현금 살포를 하겠다고 하고 미래 먹거리를 위해 인공 지능이라는 단어를 내뱉으면서도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킬 수 있는 법안만 통과 시키며 정치 개혁, 정권 교체를 외치고 있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외면하는 동안 사회 곳곳에 시퍼런 칼날들이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을 찌르고 있고 부실한 사회 안전망은 언제 어디서 어떤식으로든 무너져 버릴지 모를 정도로 위태롭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우리 모두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의 역사다.

소유 하려는 열망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남들 보다 더 많이 내 몫을 챙기기 위해 끊임없이 싸울 뿐이다.

홀로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시며 청빈을 실천하셨던 법정스님은 빈 손으로 떠나셨다.

“그저 ‘현재의 나’일 뿐입니다. 과거를 회상하거나 불확실한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최대한의 삶을 살아갈 뿐이지요. 연륜 값을 하고 있는 건지, 수행자 답게 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고, 함부로 말과 행동을 하지 않을 뿐이지요.”

-법정(法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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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03-11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생각하니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울 수록 어서 빨리 맑고 향기로운 세상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scott님의 늘 좋은 글 감사 합니다.

2025-03-12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189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셰프는 1972년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 까지 곤충분류학자, 유전학자, 동물학자였고 때로는 철학자, 역사학자가 되기도 했다.

이중 어느 하나만 떼어내서는 그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류비셰프는 다재다능 하다는 수식어를 붙이기 힘들 정도로 박식 했지만 그가 연구하고 탐구 한 것들이 인류 역사를 뒤바꿀 정도로 뛰어 나다거나 노벨상 후보로 거론 될 정도로 대단한 학문적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것은 70여권의 학술서적과 1만2천5백여장에 이르는 연구논문, 수천권의 소책자들로 개인 비서나 연구 조교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이루어 낸 성취였고 연구 결과물이였다.

페테르부르그 대학교에서 물리-재료학부를 전공한 류비셰프는 1911년 스무 살 나이에 학부 과정을 졸업 하고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 1920년대 페름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근무하고 사마르 연구소 연구원을 거치는 동안 그가 살았던 세상은 혁명과 전쟁으로 왕조 체제가 무너지고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존의 가치와 사상이 무너지는 엄청난 변혁을 겪었다.

1930년 스탈린 체제에서 류비셰프는 레닌그라드 연방식물보호연구소에서 농촌 곤충학을 연구했고 7년 만에 키예프 생물연구소로 부임해서 생태부장으로 재직하는 사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 했다.

전쟁 기간 동안 류비셰프는 프르제발스크와 프룬제의 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종전후 울리야노프스크 교육대학의 동물학부장으로 부임헤서 1955년 65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 재직했다.

65세 나이로 은퇴 하고 나서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하루 8시간 이상 자고 산책과 운동을 즐기면서 틈틈이 공연.전시를 보며 러시아 땅 어디에서든 열리는 학술세미나와 국책사업에 참가 하며 마지막 남아 있는 17년의 세월 동안 총 70여권의 저서와 1백권 분량을 완성하고 세상을 떠났다.

류비셰프가 이루어낸 방대한 성과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의 지치지 않는 체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만물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이라는 공평한 시간을 류비셰프처럼 합리적이고 짜임새 있고 활용 했다는 것은 AI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수수께끼처럼 느껴진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기 1년 전부터 류비셰프는 ‘시간통계 노트’ 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스물 여섯 살부터 작성하기 시작한 <시간 통계 노트>는 82세로 눈을 감기 전까지 단 하루도 빼 먹지 않고 기록했다.

류비셰프가 시간을 기록한 형식은 간단했다.

- 1964년 4월7일,-곤충분류학:알 수 없는 곤충 그림을 2점 그림.

-3시간 15분 -어떤 곤충인지 조사함-20분

-추가업무:슬라브에게 편지-2시간45분

-사교업무:식물보호단체 회의-2시간25분

-휴식:이고르에게 편지-10분

-곤충분류학 연구 2시간 20분

-논문집필 1시간 5분,편지 3시간 20분

-프라우다지 15분/이즈베스티야지 10분/문학신문 20분/톨스토이 책 1시간 30분...

이렇게 류비셰프는 회계장부를 기록하듯 모든 일을 할 때마다 매일 시간을 계산해 넣었고 심지어 자기 서재에 들어와 시시콜콜 질문하는 딸에게 친절하게 답해 주는 시간도 틈틈이 기록했다.

류비셰프는 이동 중에도 시간을 기록 했는데 버스·기차 타는 시간, 회의 시간, 줄 서있는 시간까지 기록 했고 장기 출장을 갈 때는 읽을 책 목록을 정한 뒤 출장지에 해당 서적을 미리 우편으로 부칠 정도로 시간을 아꼈다.

그는 이렇게 24시간 동안 쌓여간 시간기록을 매달 말 합산했고 연말에는 이를 다시 결산해서그래프와 표를 만들었다.

이쯤 되면 류비셰프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시간에 매달렸고 매 순간 강박관념에 사로 잡힌 정신 질환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의심이 생기지만 그의 가족들에 증언에 의하면 그는 절대로 시간에 얽매이지도 않았고 어떤 일을 해도 시간에 쫓기며 우왕좌왕 하지도 않았고 하루 8시간 숙면을 유지 하며 생애 마지막까지 큰 병치레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찌감치 류비셰프는 24시간 동안 인간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14-15시간 정도라는 것을 깨닫고 주어진 시간 동안 시간을 쪼개 쓰면서 단 1분도 허비 하지 않고 연구하고 탐구하고 강연하며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유지 했고 야외 활동이나 유흥도 즐기며 주변인들까지 살뜰 하게 챙겼다.

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건 그가 스물 여섯살 때부터 기록했던 시간을 철저하게 계산과 해서 혁명이 발발 해도 전쟁이 터져도 정권이 바뀌는 동안 뛰어난 절제력과 끈기를 갖고 실천에 옮겼다.

그리하여 후대인들은 그를 향해 <시간을 정복한 남자>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시간이라는 에너지는 단 한번도 운동을 멈춘 적이 없고 태초의 모습 그대로 길들여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이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컨베이어 벨트 같은 것으로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된 재화다.

19세기에 태어나서 20세기 중반에 생을 마친 류비셰프에게 시간은 째깍 째깍 움직이는 시계 초침의 존재 반응처럼 항상 감지할 수 있는 물리적 대상으로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1분 1초에 의미를 부여해서 시간 쪼개 쓰는 기술과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일찌감치 터득해서 자신의 생의 시간인 82년을 25억8천5백95만2천초로 미분(微分)해버렸다.

“자유롭게 쓰기는 내가 아는 한 글을 써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며 최고의 만능 연습법이다. 자유롭게 쓰기를 연습하면 그저 십 분간 멈추지 않고 강제로 쓰면 된다. 때로는 좋은 글이 나올 테지만 그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한 주제에 집중해도 좋고 이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가더라도 좋다. 때로는 의식의 흐름을 잘 기록한 글이 나올 테지만 의식의 흐름을 계속 따라가기는 무리일 것이다. 자유롭게 쓰기를 하면 때때로 가속이 붙겠지만 속도는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피터 엘보의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 중에서 


2023년 1월 12일 부터 매일 하루에 두 편 씩 투비컨티뉴드에 글을 쓰고 있다.


https://tobe.aladin.co.kr/t/scott


글을 쓰던 중에 두려움이 불쑥 불쑥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가장 필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능력을 받아 들이고 용기를 그러모아 중단하는 두려움을 날려 버려야 한다.

창작의 열기가 어느 날 갑자기 서서히 불이 붙어 올라 오지 않는다.


2024년 2월 1일 목요일 부터 새로운 창작물을 시작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

https://tobe.aladin.co.kr/s/9373




“글은 시상이 떠올랐을 때 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처럼 기계적으로 써야 한다. 소설가 야마다 도모히코는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집필 활동을 했다. 그 역시 기계적인 글쓰기를 강조했다. 휴가를 이용하지 않았다. 휴가 기간 중 여유롭게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쉴 때는 푹 쉬고 일상 중에 집필을 위한 시간을 짜냈다. 훌륭한 소설가들은 대체로 다작을 했고 맹목적이고 기계적으로 글을 썼다. 감흥이 생겨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다 보니 감흥이 생긴다.”

-한근태의 '일상의 한 번은 고수를 만나라.' 중에서

2024년 2월 1일 매주 목요일부터 시작된 생애 두 번째 창작 소설 <굿바이,부다페스트>는 12월 26일 목요일 까지 총 48편의 에피소드를 올렸다.

이 기간을 시간으로 환산 하면 1년 365일 매일 하루에 두 편씩 새글을 쓰면서 동시에 48주 동안 창작 소설을 쓴 것이다.


나의 하루의 시작은 새벽 다섯 시 30분 부터다. 새벽형의 인간으로 살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에 입학 했을 때 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하루의 시작을 새벽부터 시작하게 되니 나와 함께 시간을 시작하는 무리들 중에 비해 두 세시간 정도의 시간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는 그 시간 동안 계획 했던 공부를 하거나 새로운 학문을 학습했고 때로는 부족한 수면양을 채우기도 했고 전공 과목이 아닌 다른 학문을 공부하는 시간으로도 활용했다. 사회인이 되고나서는 이른 아침에 시작하는 수업을 들었고 관심이 가는 주제를 학습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알라딘에 글을 쓰면서 창작을 시작하게 되었다.

2024년은 어느 해 보다 바쁘게 살았다. 2박 3일 일정의 해외 출장을 나간 사이에도 나는 매일 투비컨티뉴드에 글을 썼고 빠짐없이 기획한대로 창작 소설을 써나갔다.

어느 날 불쑥 영감이 찾아 오기를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사회적 지위가 올라 갈 수록 연봉의 숫자가 늘어 날 수록 시간적 여유는 점점 사라져갔고 활자로 된 것들 보다 빠르게 검색하고 손 끝으로 터치 할 수 있는 화면을 응시 하는 시간이 더 많아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동 중에도 책을 펼쳤고 비행기 안에서는 오늘 어떤 글을 쓸지 골몰했다.

언제 어디서든 앉을 의자와 테이블을 발견 하면 노트북을 펼쳐 놓고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에게 허용 되는 시간은 단 몇분 일 때도 있고 길어야 한 시간에서 두 세시간 정도 뿐이다.

2023년 1월 부터 쓰기 시작한 글이 어느 새 1년을 지나 2년 차로 접어 드니 1400개가 넘는 글이 쌓여 졌다.

평균적으로 천자 이상을 넘겨 쓰고 있고 어떤 글은 2천자에서 3천자를 쓰고 창작 소설은 한 회당 만자 가까이 쓰고 있다.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는 순간부터 단어가 떠오르고 문장이 쏟아지지 않는다.
가장 먼저 <모닝 페이지>를 쓰기 전  어떤 주제를 쓸 것인가 고민하고, 그 주제에 맞는 사례와 근거를 찾아 마지막 나의 의견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매일 모든 과정마다 사색이 필요하기에, 한 편의 글을 쓰는 과정은 단 몇 분 만에 이루어 지지 않는다.


1400개의 글이 쌓이도록 매일 글을 쓰는 동안 나라는 사람은 전과 달라 졌을까?

매일 모닝 페이지를 쓰는 동안 사소한 감정이 떠오를 때나 소소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마다 글을 쓰고 멈추지 않고 지금까지 쓰고 있는 동안 내 안에 흩어져 있는 상념들이 차곡 차곡 정리 되어 가고 있다.

모닝페이지

https://tobe.aladin.co.kr/s/2724


손 안에 스마트 폰을 쥐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팔목과 귀에 스마트 폰과 연결 된 기기를 장착하고 이전의 세대들이 누려 보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수시로 보고 체크할 수 있는 기술 혁명의 엄청난 수혜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매일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고 스마트 폰의 세상이 보여주는 시간에 갇혀 순간의 영상과 순간의 클릭으로 시간을 허비 하며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는 시간 강박증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

어디에서든 넘쳐나는 영상과 숏폼 시대에 단 1회 출연으로 억대의 개런티를 받는 이들이 웃고 놀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 나의 시간을 허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를 대신해서 피 땀 눈물을 흘리며 일해 주지도 않고 대신해서 내 삶을 살아 주지 않는다.


우리는 밝은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듯, 삶의 신성한 가치가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을 망각하고, 삶이 평온할 때는 삶의 가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합니다.

-츠바이크


글을 쓰는 데 재능도 영감도 지식도 필요 없다.

쓰는 동안 영감을 떠올리고 쓰면서 지식을 쌓아가다 보면 몰입의 경지에 이르러서 글은 점차 변화하고 진화 해 나간다.

용기란, 두려워하면서도 어쨌든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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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2-28 04: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 2024년 바쁘게 보내셨군요 저는 게으르게 지냈네요 요새도 게으르게 지내고, 늦게 일어나고 내일은 조금 일찍 일어나야지 하기를 되풀이합니다 이게 지금만 그런 게 아니기도 하네요 scott 님은 부지런하게 보람있게 하루 하루를 보내시는군요 늘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저도 잘 못하는 거지만... 마음이나 몸이 괜찮으면 괜찮을까 싶지만 그것도 아닌 듯해요 운동을 해야 좀 나을지도... 운동이라고 해봐야 어쩌다 걷기만 하는군요 쓸데없는 말을...

scott 님 주말입니다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2024-12-28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힐 2024-12-29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제가 처음 알라딘 서재 활동을 하면서 scott님께서 제 첫 친구가 되어 주셨어요. 정말 친구가 되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늘 올려주신 글 열심히 읽고 많은 배우고 있어요. 나중에 기회게 되면 모닝 페이지도 들어가 보도록 할 께요. 2024년 scott님이 보낸 시간의 밀도는 더 없이 커 보입니다. 남은 한 해 잘 보내시고 내년에도 좋은 글 올려 주세요. 감사 합니다.

2024-12-29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29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31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30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31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훈드여, 새로운 사상은 반드시 두 가지 질문을 받게 되오. 하나는 그 사상이 약할 때: 너는 어떤 존재인가? 타협하고 거래하고 사회에 순응하며 자기 자리를 찾아 살아남으려 노력하는가, 아니면 앞뒤가 꽉 막힌 고집불통에 꼬장꼬장하고 게다가 멍청하기 짝이 없어 산들바람에 휘어지느니 차라리 부러지는 쪽을 택하는가?─후자인 경우, 대개는 (백 번 중 아흔아홉 번쯤) 산산이 부서지기 마련이오. 그러나 백번째에는 세상을 뒤바꿀 수도 있소.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 중에서


1989년 9월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가 출간 되자마자 이슬람교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비하 하고 모독 했다는 이유로 이 책을 불태우며 극렬한 시위로 들끓어 오른다.


악마의 시는 무슬림 인구 집단이 많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수단,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리랑카, 태국, 탄자니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베네수엘라 등의 국가에서 출판을 금지 시켜버린다.

1990년 2월 14일 이란 테헤란 국영 라디오 방송에서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1989년 6월 사망) 유언으로 남긴 '무슬림을 모독한 자는 처단하라'라는 종교 법령' 파트와'를 발표하며 각지에 흩어져 있는 무슬림들은 살만 루슈디를 발견 하는 즉시 무함마드의 이름으로 처단 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1990년 2월 14일 파트와가 발령된 다음날 부터 살만 루슈디는 기나긴 도피 생활을 시작 하고 전 세계 곳곳에서 <악마의 시>를 불 태우는 시위와 작가 살만 루슈디의 생명을 지키자는 시위로 극렬하게 나눠져 버린다.

이 책을 출간하는 나라의 담당 출판사들은 무슬림으로 부터 폭탄 테러 위협을 받았고 악마의 시를 번역한 이들은 무슬림 폭도들에게 공격 당하거나 살해를 당했다.

유럽에서 <악마의 시>를 가장 먼저 출간한 이탈리아와 노르웨이 그리고 아시아 국가에서는 일본의 번역가와 출판인들이 무슬림의 공격으로 안타까운 생명을 잃자 세계 각국의 출판인들과 작가 단체들은 즉각적으로 살만 루슈디와 출판인들과 번역가들을 무슬림의 테러 대상에서 보호 받아야 하고 표현의 자유를 존중 하라는 선언서를 발표 한다.

영국은 살만 루슈디를 24시간 밀착 보호 하며 이란에게 경제적 외교적 제재 조치를 취했다.


살라딘은 참지 못하고 낄낄거렸다. 그 사건이 다윈의 보복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덤스데이는 저 딱딱한 빅토리아시대에 살았던 불쌍한 찰스에게 미국의 마약문화에 대한 책임을 덮어씌웠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 와서는 자기가 그토록 반대하던 부도덕한 문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중에서

1981년 <한밤의 아이들> 출간한 살만 루슈디는 전 세계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세계 문단 중심에서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영국 정보부의 보호 아래 수시로 거주지를 옮겨 다녔던 살만 루슈디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머물렀던 곳을 세워 보다가 사용했던 침대가 무려 56개나 된다는 사실에 놀라며 본격적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격투기, 권투 같은 호신술을 배운다.

호메이니는 <악마의 시>가 본격적으로 서점에 깔리기 3개월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유언을 반드시 지킨다는 무슬림들이 파트와는 발령한 사람만 취소 할 수 있다는 근거를 내세우며 살만 루슈디를 향한 칼 끝을 저버리지 않았다.

제국 시절에 북아프리카 이슬람국가를 지배해서 무슬림의 이민자들과 난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프랑스는 1993년에서야 <악마의 시>를 번역 출간 하고 이슬람의 테러 행위가 미국 땅으로 번질 것을 우려 했던 미국은 프랑스 출간에 뒤이어 미국판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파트와 법령을 충실하게 시행했던 무슬림 폭도와 테러리스트들은 세계 곳곳에 알라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이들을 대상으로 분노하고 테러짓을 저지르는 동안 살만 루슈디는 공포심에 떨며 무기력하게 살지 않았다.

그는 매일 각종 호신술을 연마 했고 전 세계 여러 매체에 출연해서 언론의자유, 종교적, 관용, 문학의 자유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하며 전세계 여론을 움직였다.

1998년 서방 국가의 제재 압력에 버티기 힘들었던 이란은 루슈디의 사형 선고를 철회 한다고 발표 했지만 루슈디를 처단 하는 어떤 무슬림도 처벌하겠다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파트와 법령이 발표 되자 마자 이틀에 한 번씩 거주지를 옮겨 다녔던 살만 루슈디는 도저히 이런 상태로 살 수 없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버린다.



용서 할 수 없는 일이란 어떤 것인가? 자기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전부를 들키는 것, 그 살 떨리는 벌거벗음의 상태 그것이 아니면 또 무엇이겠는가?- 일찍이 지브릴은 살라딘 참차의 모든 비밀이 고스란히 드러나버린 상황을 -납치,추락,체포 -목격하지 않았던가?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 중에서


반세기를 지나서도 무슬림들은 <악마의 시>를 쓴 작가 살만 루슈디를 용서 하지 않았다.

2022년 여름 살만 루슈디는 뉴욕대에 주최하는 강연장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 이슬람 테러리스트 가 휘두르는 칼에 찔려 한쪽 팔의 신경이 완전히 끊어졌고 한 쪽 눈 시력도 완전히 상실했다.



바닥에 쓰러져 내 몸에서 바깥쪽으로 퍼져가던 피 웅덩이를 바라보던 모습이 기억난다.

피가 많네. 나는 생각했다. 그런 다음에는 내가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극적이고 특별히 끔찍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엄지손가락이 내 목을 눌렀다. 큰 엄지손가락 같았다. 그 손가락이 가장 큰 상처를 눌러 내 생명이 담긴 피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살만 루슈디의 <나이프> 중에서


원형 극장 무대에 살만 루슈디가 올라가는 순간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를 쓴 24세 무슬림 청년이 달려들어 날카로운 칼로 목을 찌르고 얼굴 위쪽과 입 왼쪽, 가슴, 허벅지를 차례차례 찌른다.

살인마 무슬림 청년이 살만 루슈디를 찌른 시간은 단 27초

현장에 있었던 소방관과 의사들의 빠른 응급처리를 받은 살만 루슈디는 왼손 힘줄과 대부분의 신경이 끊어진 상태로 응급실로 실려와 죽음을 향해 갔다.


눈을 잃었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시신경이 손상되었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는 나를 죽이지 못했으나 내 눈을 가져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그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눈을 잃는다는 건 신체적으로 힘든 일이다.

시야의 4분의 1을 아예 보지 못한다는 건 그 자체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엄청난 마취제를 투여 받은 살만 루슈디는 가족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 삶을 되찾아야 해. 죽음과 비슷한 상황에서 그저 회복만 할 수는 없어.

삶을 되찾아야 해.'

일주일 동안 끔찍한 수술을 마치고 일주일 회복 기간 동안 살만 루슈디는 앉고 일어서고 걷고 움직이는 법을 천천히 시도하고 파트와 법령 선포 당시 아홉 살 나이였던 아들, 이제는 새 하얀 머리카락으로 풍성하게 뒤덮인 그 아들의 손을 잡고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간다.

끔찍한 사고를 겪은지 18일 만에 살만 루슈디는 환자복을 벗고 티셔츠와 운동복 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휠체어에 올라탄다.

그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 하는 눈도 귀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회복의 시간을 갖고 칼이 아닌 펜을 들고 한 글자 씩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언어도 칼이었다.언어는 세상을 베어 세상의 의미를 그 내적 작동 방식과 비밀과 진실을 드러낼 수 있었다. 언어는 하나의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 베어 들어갈 수 있었다. 언어는 헛소리를 지적하고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언어가 나의 칼이었다.


살만 루슈디에게 칼을 들고 달려간 테러리스트 이름은 하디 마타르 24살의 레바논 출신인 그는 ‘악마의 시’를 단 두 페이지만 읽은 뒤 범행을 계획했다고 경찰에 진술했지만 그의 집에선 3만개가 넘는 증거물들이 쏟아졌다.

이란과 이슬람 국가는 이 사건과 자국의 연관성을 전면 부인했고 그 테러리스트도 단독범행이라 자백했다.

현재 미국 경찰은 배후 세력을 찾아내지 못했다.

파트와가 선포 된지 33년 6개월의 시간이 흘러 칼에 찔린 살만 루슈디는 강한 의지로 살아 남았다.

그는 회복 기간 동안 자신의 목을 찌른 그 테러리스트에게 범행의 이유를 묻는 일문일답 형식의 상상속 대화를 시도한다.



-살만 루슈디

신의 본성에 대해 물어봐도 될까?

-테러리스트

신은 모든 것을 포괄하기고 모든 것을 아시지. 그분은 곧 모든 것이야.

-살만 루슈디

너희의 전통에 따르면, 너희의 신과 그 책에 나오는 다른 민족들. 그러니까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 믿는 신은 다른 거지? 그 사람들은 그들의 책에 적혀 있는 대로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던데.

-테러리스트

그들이 틀렸어.

-살만 루슈디

너는 내가 부정직할 뿐 아니라 악마이기도 하다는 거네. 그래서 나를 죽이는 게 옳다는 거야?

-테러리스트

너는 새끼 악마일 뿐이야. 그러니 자만하지 마. 하긴 새끼도 악마도 악마지.

-살만 루슈디

악마는 파멸 시켜야 하고?

-테러리스트

그래, 넌 이십억 명의 미움을 받고 있어. 그것만 알면 돼. 그렇게 까지 미움을 받다니. 어떤 기분일까? 벌레가 된 기분이겠지 잘난 체하며 온갖 말을 떠들어대지만 사실 너는 자신이 벌레 보다 못하다는 걸 알고 있어. 발로 밟아 죽여야 할 벌레 말이야. 넌 다른 나라고 여행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전 세계 나라의 절반 정도에는 발도 들일 수 없어. 그런 곳들에서는 너에 대한 증오가 너무도 강하니까.

-살만 루슈디

평범한 남자에게 할 만한 평범한 질문이야. 사랑에 빠진 적이 있나?

-테러리스트

난 신을 사랑한다.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가 출간 되고 나서 학자들 사이에서도 신성을 모독했는지 아닌지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으로 갈라졌다.

1989년 ‘악마의 시’는 출간 되자마자 금서로 지정돼 수입·유통·출판이 금지되어서 이슬람권에서 책을 읽은 사람이 드물었고 살만 루슈디에게 칼을 휘두른 테러리스트도 딱 두 페이지만 읽어 보고 범행을 계획했다.

실제로 이 작품을 읽어 보면 신성 모독이 아닌 시대와 사회에 대한 풍자와 유머로 가득 찬 20세기 <돈키호테> 같은 스토리라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까닭은 온건한 사람으로 보이길 거부했기 때문입니다.내가 여기 있는 까닭은 내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모든 것을 변화 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도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아프리카인,카리브인, 인도인,파키스탄인,방글라데시인, 키프로스인, 중국인-만약 우리가 저 바다를 건너오지 않았다면, 만약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 들이 일자리와 존엄성과 자식들의 더 나은 삶을 찾아 저 하늘을 건너오지 않았다면 우리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이 사회를 다시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죽은 나무를 잘라내고 새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우리 차례입니다.

-살만 루슈디 <악마의 시>중에서


봄베이발 여객기가 런던 상공에서 폭발하고 두 남자 살라딘 참차와 지브릴 파리슈타만 살아 남는다.

살아 남은 두 사람의 운명은 부서지고 흩어져 버린 비행기 잔해 속에서 탑승 했을 때의 영혼과 자아를 벗어 던져 버린다.

모국어도 잊어 버리고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영혼, 초능력을 갖은 두 사람의 미래는 이미 현실에서 소멸 되어 버린 채 지상의 천사로 다시 태어난다.


'다시 태어난 거야. 자네와 나. 생일 축하하네. 이봐 생일 축하 한다고.'

작가 살만 루슈디는 홀수 장에서 비행기에서 추락 하기 전 지상에서 15년 동안 배우의 삶을 살았던 지브릴 파리슈타의 삶을 보여 주고 짝수 장에서는 천사로 변신한 모습으로 교차 시키며 세상을 들끓어 오르게 만드는 온갖 사건들을 끄집어 낸다.


기억할 거야 양탄자 타고 다니는 레카 우리가 추락할 때 봤잖아 그리고 한 명 더 있었는데 미친놈 같은 스코틀랜드 복장을 하고 고라(백인, 유럽인) 같던데.

이름은 제대로 못 들었지만

알리도 그 둘을 봤는지 못 봤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알리는 그대로 서 있기만 했고

레카가 시킨 일이었어 알리를 위층으로 데려가라고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정상에 오른 사람은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면서

나는 손가락으로 알리를 겨냥했고 우리는 위층으로 올라갔어

나는 알리를 밀지 않았어

레카가 밀었지

나는 절대로 알리를 밀어버릴 수 없었으니까.

스푸노

내 마음을 알아줘 스푸노

빌어먹을

나는 그 여자를 사랑했다고....


작가 살만 루슈디는 <악마의 시>에서 초월적 존재의 진짜 정체를 명확하게 알려 주지 않고 그의 정체를 곳곳에 숨겨 놓았다.

그 초월적 존재는 시 공간을 오고 가며 현실과 지옥, 그리고 천국 속에서 지상의 온갖 사건 마다 모습을 드러내고 푸념 하고 변명하며 거짓말 같은 진실을 장황하게 늘어 놓는다.

파트와 선포 후 33년 6개월 만에 자신의 목을 찌른 테러리스트가 법정에 서게 되는 날 작가 살만 루슈디는 그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삶에 당신이 침입한 것은 폭력적이고 해로웠지만. 이제 내 인생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사랑으로 가득한 삶이지요. 당신이 감옥에서 보낼 나날이 무엇으로 채워질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은 아닐 거라고 거의 확신합니다. 앞으로 내가 당신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게 된다면, 아마 별것 아닌 듯 어깨를 으쓱하며 지나칠 겁니다.

난 당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내게 그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부터 남은 나날 동안 당신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상관없는 존재가 될 겁니다.

나는 당신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살아서 기쁩니다. 내 삶은 계속 이어질 겁니다.

-살만 루슈디


루슈디는 자신을 향한 칼에 펜으로 맞서며 언어로 세상을 베고 찌르면서 종교의 관습과 굴레로 겹겹이 쌓여 있는 불평등을 향해 진정한 자유의 힘이 무엇인지 언어의 힘으로 증명해 보였다.

회복 기간 동안 써 내려간 <나이프>에서 루슈디는 이런 말을 한다.


합리주의자의 신앙에서 러셀은 이렇게 말해. '사람은 자신의 열정에 어울리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잔인한 사람은 잔인한 신을 믿고, 자신의 잔인함에 핑계를 대기 위해 믿음을 이용한다. 오직 친절한 사람만이 친절한 신을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 경우에든 친절하게 행동한다.


신성 모독이라는 이유로 살해를 지시하는 자는 신의 제자가 아닌 그저 한 인간에 불과한 살인 교살자일 뿐이다,

어느 시대나 어떤 사회에서도 예술은 논쟁과 비판을 불러 일으키지만 예술의 궁극적 가치를 인간성의 본질에 부합되는 자유와 존엄의 권리로 받아 들여야 한다.

단,그 예술의 가치가 형편 없다면 사람들에게 금세 잊혀 질 것이고 역사에 기록 되지 않을 것이다.

시인 오비디우스는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에게 추방 당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로마 제국은 멸망했지만 오비디우스가 세상에 남긴 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지금까지 널리 읽혀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살해 당하고 불태워지고 소각 되고 쇠창살에 갇힐 지라도 말을 하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인간의 자유까지 막아 낼 수 없다.

신의 이름을 외치며 칼을 들고 달려든 자에게 생명을 잃을 뻔 했던 살만 루슈디는 폭력이 아닌 펜을 들고 예술로 이렇게 답했다.


언어는 나의 칼이었다.

만약 내가 뜻밖의 칼 싸움에 휘말렸다면

아마도 ‘언어’라는 칼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만 루슈디(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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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4-11-11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인/작가의 분노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오늘도 눈호강하고 갑니다~ 정성이 가득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당~ ‘나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시원합니다!

scott 2024-11-19 11:22   좋아요 2 | URL
살만 루슈디 여전히 칼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고 눈과 팔의 신경이 끊어져 버렸지만 죽을 때까지 칼 대신 펜을 쥐고 악의 공포를 이겨 내겠다고 합니다
에이 아이 시대에 더 소중해진 펜의 힘! ^^
 


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2024년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안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월 10일(한국 시각 저녁 8시) 수상자로 한강의 이름을 호명하며 “역사적 트라우마와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면서도 시적인 소설”을 쓴 작가라고 소개하며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했다는 발표를 했다.

철저하게 후보작 선정 과정 부터 심사까지 베일에 쌓아 놓고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노벨상 주최국이자 위원회인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자 선정에 있어서 정치적 색채가 농후 하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의 권위를 지닌 문학상으로 꼽힌다.

노벨상은 1901년 첫 시상 이후 123년의 세월 동안 가뭄의 콩 나듯 여성들에게 상을 수여 해서 물리학 분야 같은 과학 분야는 각각 3명 정도의 여성 수상자에게 영광이 돌아갔고 문학상은 2024년까지 121명의 수상자 가운데 2024년 한국 작가 한강을 포함해서 여성 수상자는 불과 18명에 불과 하다.

역대 노벨 수상자들 성비율로 비교 해보면 각 분야 수상자 8명 중에서 7명 정도가 남성이라면 여성 수상자는 단 1명에 그치고 있고 8년에 한 번 정도 노벨상에 여성 수상자들이 포함 되고 백인 수상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서 비 서구권에서 수상자가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 정도로 서구 보수주의적 색채가 강하다.

이런 비난을 의식 했는지 2012년 부터 남성 수상자와 여성 수상자에게 번갈아 상을 수여 했던 스웨덴 한림원은 2019년 미투 운동 촉발로 2년 동안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았다.

2016년과 2017년에 남성이 연달아 수상한 것을 제외 하고 2022년 아니 에르노가 상을 받은 다음 해에 노르웨이 남성 극작가 욘 포세가 수상했다.

따라서 영국의 베팅 사이트들은 올해 유력한 수상 후보로 중국의 카프카와 보르헤스로 불리고 있는 <찬쉐>를 수상 유력 후보로 내세웠고 일본어와 독일어로 시와 소설, 에세이를 쓰는 일본 작가 다와다 요코도 베팅 후보에 올려 놓았지만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을 수상한 한국 작가 '한강'의 수상 예측을 한 영미권 언론은 없었다.

특히 이번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수상은 의미가 크다.

1993년 흑인 최초이자 여성인 토니 모리슨이 수상 한 이후로 아시아 여성으로서 첫 수상이자 유색인종 여성으로서 두 번째 수상이다.

1945년 남미 출신의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은 칠레 태생의 혼혈 백인이었고, 2007년에 수상한 도리스 레싱은 이란 태생이지만 영국인 부모를 둔 백인이었다.

100년의 시간 동안 노벨 문학상은 한없이 가벼운 통속적인 스토리나 영어권 국가 출신에 백인 남성 작가의 작품 중 영어로 번역된 작품이 많은 유럽, 북미 작가들에게 상을 집중적으로 수여했다.

따라서 이번 2024년 한국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백인, 남성이 주류인 세계 문학계에서 매우 뜻 깊은 일이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작가 한강은 출판사에서 근무하던 중 1993년 ‘문학과사회’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을 실으며 시인으로 등단했고 이듬해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1995년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가기 시작한 작가 한강은 2005년 '몽고반점'으로 이상문학상 수상하며 탄탄한 문체와 밀도감 넘치는 스토리로 문학성을 인정 받는다.

2007년에 발표한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멀리하는 주인공을 통해 욕망과 폭력의 본질을 탐구한 작품으로 유려한 문장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2016년 시인을 지망했던 영국의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으로 맨부커 국제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향을 불러 일으킨 작가 한강은 2014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역사의 한 가운데 선 개인의 고통과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은 2014년 만해문학상,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하고 전세계 20여개국에 번역 출간됐다.

2023년에 출간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했고 1년 뒤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작가 자리에 우뚝 섰다.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속보를 터트리는 언론사들은 아시아계 최초 여성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상금의 액수(1100만 크로나/약 14억4000만원/세금이 부과되지 않음)에 대문자로 강조 하면서 세계 문학의 거장 헤밍웨이, 포크너 ,마르케스, 토니 모리슨의 이름과 나란히 표기 되는 작가가 되었다며 잔뜩 호들갑을 떨고 있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Before my wife turned vegetarian, I'd always thought of her as completely unremarkable in every way......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고리를 실험적이고 시적인 스타일로 연결 시킨 한강의 문체는 전 세계 독자들에게 새로운 문학의 세계로 이끌었다.

10월 10일 노벨 문학상 선정 위원회 소속 안나-카린 팜 노 위원은 수상 발표 후 인터뷰에서 작가 한강의 작품 선정 이유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한강은 많은 장르를 아우르는 복잡성과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어구를 구사하는 작가다. 작품에서 뛰어난 주제를 연속성 있게 이어가면서도 특색 있는 변조가 돋보인다'









안나-카린 팜 노 위원은 한강의 작품 중에서 2014년 출간한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영문 제목 Human Acts)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며 1980년대 한국의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겪은 한 소년의 끔찍한 트라우마가 어떻게 세대를 넘어 계승 되는지를 고통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역사적 사실을 유려한 문체로 가득 채웠다며 극찬 했다.










정말 닥쳐올 총살을 기다리듯 숨을 죽였습니다. 죽음은 새 수의같이 서늘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지나간 여름이 삶이었다면, 피고름과 땀으로 얼룩진 몸뚱이가 삶이었다면, 아무리 신음해도 흐르지 않던 일초들이, 치욕적인 허기 속에서 쉰 콩나물을 씹던 순간들이 삶이었다면, 죽음은 그 모든 걸 한번에 지우는 깨끗한 붓질 같은 것이라고.

-한강의 <소년이 온다> 중에서


한강은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 발표 당시 인터뷰에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았을 정도로 이 작품은 작가의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된 작품이라는 말을 남겼다.

작가는 집필 하는 동안 광주에서 학살 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을 옆에 놓고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고통. 속에서 완성한 작품이다.










부디 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수전 손택


우리는 무엇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시각적인 동물인 인간은 눈으로 목격한 것을 통해 고통의 감정을 느끼고 그 다음으로는 소리를 통해 듣는 '말' 언어 일 것이다.

우리가 매일 쓰는 언어는 순간적이다.

사랑-고통- 미움-그리움-행복 이라는 단어들은 백년 후면 흩어지고 사라져 버릴 '소리 덩어리'에 불과 하다.

“AI는 우리 종의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진화 경로를 바꿀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


AI인공지능 시대에 나의 언어를 대신 해 줄 AI지능형 비서들이 있다.

나를 대신해서 글을 써주고 자료를 찾아 주고 쇼핑을 하고 공과금 업무와 회계 업무까지 척척 해준다.

운전 중에 가족들에게 메시지를 남겨 주기도 하고 매일 밤 어떤 오디오 북을 읽을지 골라주고 어떤 OTT프로그램이 있는지 추천까지 해준다.

따라서 몇 개의 단어만 알고 있어도 인공지능 비서가 무엇이든지 대신 선택해주고 해결 해 주는 시대에 하루의 시간을 꼬박 쏟아 부어 버릴 정도의 분량의 책을 읽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

인간의 얇은 입술로 내뱉는 말은 그 무엇도 붙잡을 수 없고 세상에 어떤 큰 변화를 불러 일으킬 정도로 대단하지 않다.

부유 하는 말들은 초라 할 정도로 덧없고 소음 공해에 지나지 않지만 언어가 가진 힘은 다른 시각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 보게 만들어서 지나간 시간과 역사를 되돌아 보며 현재 내가 먹고 보고 느끼고 말하는 그 모든 것들을 타인의 감정과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 할 수 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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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24-10-11 2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

scott 2024-10-11 21:02   좋아요 2 | URL
대단하죠!
작가님 책들 서점 마다 동이 나버렸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