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되는 부모
수잔 포워드 지음, 김형섭 외 옮김 / 푸른육아 / 2008년 10월
구판절판


우리는 가족의 규칙에 맹목적으로 복종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역자가 되기 때문이다. 국가나 정치적 이상, 종교에 대한 충성심은 가족에 대한 충성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충성심을 갖고 있다. 이 충성심은 가족체계와 부모,부모의 신념에 우리를 종속시킨다.-182쪽

독립된 인격체가 되는 걸 허용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킴과 같은 어른들은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에 중독되어 끊임없이 남의 인정을 갈구하게 된다.-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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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니앤 2011-11-29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겨서 사보앗는데 실제, 그다지 잘 읽히지는 않는 책이엇어요~ ㅎㅎ
 
벨아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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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야망이 빈약한 배경과 만났을 때 인간은 때로 극단적으로 잔인해질 수 있다.
재능과 야망에 성적매력까지 가진 남자가 출세를 위하여 상류층 부인들의 속되고 무른 감정을 희롱하고 이용하는 이야기.
게다가 해피엔딩이기까지 하다. 

모파상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갈라져 있다. 유려한 묘사도 섬세한 감정의 속살의 드러냄도 없는
그저 툭툭 거친 붓으로 캔버스에 보이는 대로 단조롭게 그려갈 뿐이다. 
솔직히 이 점이 나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의 인물들은 지나치게 전형적이다.
처음부터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쁜 놈이다. 그리고 그 나쁜 놈을 훑고 가는 수많은 단상도 다 같은 색깔로 도열하고 있다.
인간의 그 연약한 가변성과 복합적인 감정의 다채로운 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주인공 조르주 뒤루아가 뛰어드는 언론계의 추악함도 그 부정성이 지나치게 비대하게 부푼 느낌이다. 
 

인간이 이용가치로만 저울질당하고 애정도 하나의 약점으로서만 작용하는 그 세계가 거북해서인지
아니면 그런 현실을 눈감아버리고 싶어만지는 나의 미성숙함때문인지 재미있고 술술 읽혔던 소설의
해피엔딩이 자못 거슬린다. 인간의 비열함과 비루함이 심판받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해피엔딩으로
읽히는 기괴함이 있다. 권선징악적인 그 위선적이고 단순유치한 도식에도 손을 들어줄 수 없지만
결국 인간과 삶을 긍정할 수 없는 그 결말에도 찝찝한 뒷맛이 과히 좋지 않다. 

모파상의 견고한 현실은 긍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빡빡했다.
대작가이지만 당시의 자연주의적 사조는 사실주의적 배경에 과장된 인간형이 얽혀 있는 형국으로 보인다.  

그래서 <벨아미>를 닫고 나오는 길은 조금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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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3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벨아미는 못 읽은 책이라 모르겠고,
적과 흑, 위대한 개츠비~ 도 같은 부류의 책이 아닐런지...

blanca 2010-02-03 15:31   좋아요 0 | URL
다 비슷 비슷한 부류 같아요. 개츠비만 사랑을 위해 출세를 이용했고. 저는 자꾸 청춘의 덫의 이종원 생각이 나서 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0-02-05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파상의 소설은 인간을 너무 적나라하고 비관적으로 그려서 싫다는 사람이 많아요.이문열 씨도 <비계 덩어리>에 대한 감상을 그렇게 쓴 적이 있지요.그런데 저는 모파상,특히 비계덩어리는 몇 년에 한 번씩 꼭 반복해 읽어요.굳이 표현을 찾자면 섬뜩한 유머라고나 할까요.블랙 코미디라는 단어로 부족하니까요.

blanca 2010-02-06 15:03   좋아요 0 | URL
아....제가 놀란 건 결말부분이었어요. 벨아미를 냉소하는 건지 옹호하는 건지 모호하게 그의 마음 속을 지나가는 생각들을 마치 당연한 상념들인마냥 나열해 놓고 끝내버려서. 참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보통 이런 인물들에 대한 냉소가 없어 좀 거북했나 봐요. 비계 덩어리 읽어봐야겠어요.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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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태인 수용소에서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그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나의 놀이로 제안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처연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삶의 고통의 격자 속 틈바구니에 유머를 불어넣는 것은 가볍고 경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삶과 인간자체를
긍정하는 일이다. 

스티븐 킹은 소위 잘 팔리는 작가다. 잘 팔린다는 말만으로는 어쩌면 그의 상업적 성공의 폭을 온전하게 담아낼 수 없을 만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저리>,<쇼생크탈출>,<스탠 바이 미> 등 영화화되어 이중의 성공을 거둔 작품만도 상당하다.
이런 잘 팔리는 작가가 글쓰기에 관련한 책을 낸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자
지극히 상업적인 계산에서였을 공산이 크다는 단정은 아무리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극찬을 해대도 거부감만 더해갔다.
그러다 갑자기 정말 욱해서 시작한 독서는 이 책이 단조롭고 그저그런 창작법 강론이 아니라 그의 미니자서전이고
오늘날 소설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정찬에 인생 전체를 관조하고 때로는 그것에 대한 깨달음들이
묻혀 있는 작은 철학서이도 했다는 깨달음으로 잠시 숙연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뻥' 터지는 책이라는 데에
무조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마구 강요하고 싶어진다. 



자, 그저 놀겠다는 일념으로 동생의 배설욕구를 존중해 주지 않았던 형 덕택에 덩굴옻나무로 밑을 닦아 녹말물에 6주를 좌욕해야 했고, 킹왕짱 전자석을 만들겠다고 의기충천한 형을 뒷받침해주다
건물전체 전기가 나가 경찰이 출동하고 자동차전용극장에 가 있다 "스티븐 킹, 부인이 진통중입니다!"라는 방송을
들어야 했던 사내의 이야기들 앞에 진지한 척 터지려는 웃음을 꾹꾹 누르지는 마시라. 그리고 '그게 전부다'라고 섣불리
단정짓지도 말고. 가출한 아버지 덕택에 청소 일을 해서 두 아들을 키워낸 엄마 밑에서도 유머와 익살을 소중한 보석처럼
그러안고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낳을 수 있었던 그의 얘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장담한다.
'톰 오소여의 모험' 보다 더 재미있다.

어린 아들이 표절한(^^) 만화를 보고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고 독려하고 실제 만들어낸 이야기들을 자매들에게
돌려 읽게 한 엄마의 사려깊은 배려가 있었기에 오늘의 그가 있지 않았을까. 이 사랑스러운 개구쟁이 형제가 장성하여 어머니의 임종을 맞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이 대목에서는 스티븐 킹의 감정표현이 전혀 없다. 그저 그날의 정경과 그날의 행동을 담담하게 얘기하고 있을 뿐. 

어머니의 눈길이 데이브(형)와 나, 데이브와 나, 데이브와 나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72㎏이던 어머니의 체중이 40㎏으로 줄어 있었다. <중략> 우리는 번갈아가며 어머니께 담배를 물려드렸다.
"내 새끼들." 

이 대목.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고 싶다. 남편 없이 밑바닥 육체 노동으로 키워낸 아들들. 그리고 그 옆에서 맞이하는 죽음.
"내 새끼들."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었다. 

한편 그의 성공가도에서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던 알콜과 마약 중독이 유유히 걸어나온다. 그 와중에도 우리의 스티븐 아저씨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알콜 중독자에게 술을 참으라고 하는 것은 설사병 걸린 사람에게 똥을 참으라는 얘기라고. 그가 인생에서 쫓겨난 것 같은 기분(이 잘 나가는 사람이 이런 느낌을) 속에서 걸어나오기까지의 작품들 속에는 술과 코카인에 대한 은유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낸 암시들 속에 그의 고통에 대한 상념이 절절히 배어 있었던 것이다. 

창작론 대목도 참 유쾌하고 재미있다. 인위적인 플롯의 도식과 주제를 향한 전진배치 대신 상황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얘기의 선호는 당연하게 대중들의 호응을 끌어내었다. 특히나 부사,대명사,수동태를 혐오하는 장면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 귀기울여봄직하다. 평이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강조하며 좋은 글을 쓰려면 근심과 허위의식을 벗어 던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닐런지.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 있을 거라고 방방 뛰며 흥분하는 대목에서는 절로 웃게 된다. 갑자기 김훈의 <공무도하>에서 여주인공 노목희의 출판사에서 부사와 형용사의 용례사전을 간행한 대목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 출판사는 음. 

요즘 드는 생각이 한 가지 있는데 글을 잘 쓴다는 것. 특히나 소설가의 역량의 핵심은 그럴듯한 문장 수사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풍요로운 상상의 지도를 그려보이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문장을 현란하게 포장하는 기술이야 연마가 가능하지만 그 문장 속에 진실의 핵이 박혀 있는 이야기를 불어넣는 작업은 직관에게 인도받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만난 스티븐 킹의 창작론은 반가웠지만 그래서 씁쓸하기도 했다. 결국 뛰어난 소설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이 책 집필중에 당한 대형 교통사고가 말미를 장식한다. 이 책이 단순한 창작론으로 매듭을 짓지 않게 된 우연이기도 하다.
쾌감때문에 글을 쓴다는 그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 그 노고를 금전적인 것 뿐만이 아니라 건강으로도 치하받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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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10-02-01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안 그래도 보고 싶었는데, 더 보고 싶어지네요 :)

blanca 2010-02-01 22:49   좋아요 0 | URL
이매지님 저도 안볼라다가 슬쩍 본 책인데 대박입니다. 꼭 보세요~

라로 2010-02-0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래서 스티븐 킹의 이 책만 읽고 그의 다른 책은 안 읽었어요~.^^;;;
사실 그의 책들이 제가 좋아하는 쟝르도 아니긴 하지만 말이지요,,,,,

blanca 2010-02-02 21:46   좋아요 0 | URL
nabee님 저도 이 책만 읽고 그의 소설은^^;; 제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닙니다. 이런 책 읽으면 왠지 그 작가의 다른 책들을 읽어줘야 할 것만 같은 부책감이 막 들어요--;;

순오기 2010-02-03 11:56   좋아요 0 | URL
나도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만 읽었지만, 우리 애들이 좋아해서 사주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다 줬어요. 샤이닝은 아들녀석이 친구 빌려줬더니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가져 가 버렸어요.ㅠㅠ

302moon 2010-02-02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4년에 구입하고 읽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는.
스티븐 킹의 소설보다는, 그의 창작론이 더 끌리더라고요. :)
애초에 소설을 읽으려 시도도 안 했지만/
친구가 좋아한다고 해서,
미저리는 언젠가 읽으려 계획했다가 아직도=_=

blanca 2010-02-02 23:54   좋아요 0 | URL
저를 비롯 이 책만 읽으신 분들이 많군요^^ 저도 시도도 안했고 솔직히ㅋㅋㅋ 계획도 없답니다. 미저리. 진짜 그 포스가 대단하죠. 그런데 또 원작은 안읽게 되네요. 다 비슷한 것 같아요^^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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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애플의 아이폰과 카메룬 감독의 아바타를 접해보지 못한 데서 느끼는 소외감과 자괴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1Q84』와 조지오웰의 『1984』를 읽지 않은 데서 온 것만큼은 아니었다. 

조지 오웰을 모르고 이 책을 시작한 것은 일종의 모험이자 치기였다. 각오도 단단히 했다. 
비판적 개인의 대명사라는 그의 대표작과 그것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를 외면하고 바로  그의 정치적 견해로
뛰어드는 것은 그가 언급했던 나폴리아이스크림(3색 아이스크림)의 가운데 층을 떠내려는 것과 유사한 시도였다.
 

그런데 그 무모하고도 용감한 시도는 그의 익살과 재치, 그리고 인간에 대한 통찰력 있는 애정을 바탕으로 한
친절함덕분으로 가두리라도 훑고 내려올 수 있었다. 아주 재미있고  친절하고 쉽게 독자들을 끌어오려고
애쓴 작품이자 번역이다. 1부의 탄광노동자의 르포르타주와 2부의 사회주의에 이르게 된 자전적 내용,
정치적 견해 등도 전혀 딱딱하지 않고 흥미롭다. 실제 항상 모든 일을 직접 체험해 보고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이해를
지양했던 그의 태도가 문체에도 그대로 드러난 것 같다. 현학적인 어휘와 만연체로 동사를 행한 주인을 찾기 위해 목을 빼고
주어를 찾아 헤매어야 하고 그럴듯한 논리와 문학적 깊이는 지루함을 덧대어야 한다는 듯이 얘기하는 글들과는 애초 다르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조지 아저씨는 이런 사람이다. 

아직도 나는 다른 사람이 입 댄 컵이나 병에 든 무얼 마시는 것 싫다(다른 사람이란 남자를 말하는 것이고, 여자가 입 댄 건
상관없다
).-p.177 

1부의 탄광 지대 노동자들의 실상을 다룬 르포는 우리가 호흡하느라 들이키는 산소 만큼 산업사회에 필수적이지만
그래서 더 자주 망각하는 하류 노동자들의 고된 노역을 직접 따라가며 보여준다. 특히 막장에 가기 위하여 몸을 반으로 접고
1.5킬로미터를 가야하는 그 댓가없고 드러나지 않는 긴 여행에 대한 묘사와 땅속 삼백미터 밑 숨막히는 더위 속에서 탄진을
들이키며 무릎으로 기어가며 일하는 그들의 모습에 대한 얘기는 편하게 앉아 그 얘기를 듣는 것이 마치 죄악처럼
느껴져 무언가 참회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안달에 사로잡히게 했다. 

우리 모두가 지금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도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다.
-p.49 

2부는 오웰이 소위 상류 중산층 하급에서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어 노동자들의 편에 서게 되었는지의 궤적을
보여주고 이어 파시즘의 위협을 받고 있는 사회주의의 효과적이고 본질적인 전파의 방법에 대한 나름의 모색과
대안이 펼쳐진다. 특히 그가 이튼 스쿨 같은 영국의 사립학교가 속물근성을 세련되고 미묘하게 길러내는 곳이라고
지적한 대목이 인상깊다. 머리에는 기득권에 대한 비판과 온갖 혁명의 명분들을 채워넣지만 정작 갈라지고 유쾌한
향을 기대할 수 없는 노동자의 손을 잡을 수 없는 그 속물근성과 부조리에 대하여 고백하는 장면은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끄집어 내어 펼쳐 놓은 것 같아 뜨끔하다. 

그가 얘기하는 사회주의는 대단한 대의나 그럴듯한 명분의 허식을 벗어버리고 드러나는 정의와 자유의 속살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도식과 고루한 관용어들과 경직된 이념의 틀 바깥에 내쳐진
노동자 계급들을 포용하고 소극적인 지식인들을 끌어오기 위해서 직접 그들 속에 몸을 던진 그의 체험적 이념의 실현에
대한 기대는 허식이 아니고 기만이 아니고 속물적이지 않아 설득당하게 되고 설득당하고 싶어진다. 

모든 혁명적 소신이 갖는 힘의 일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은밀한 확신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p.212 

혁명은, 그 단어가 가지는 도발의 핵심은 우리가 가진 것들을 포기하고 우리 자신의 일부를 허물어뜨리는 자기희생의 다리를
건너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지향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의 속물 근성과 우리의 위선을 아프게 긁어내고 우리가
서있기 위한 땅을 고통스럽게 지지해 주고 있을 그 수많은 무리들과 함께 가는 그 길은 최소한의 인간다움에 대한
존중이며 인간 최선의 미덕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1930년대 오웰의 통찰은 그래서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며
장중한 울림을 가진다. 



다시 돌아와서 무라카미 하루키의『1Q84』와 조지오웰의 『1984』를 함께 읽으려고 한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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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0-02-0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어요. 저는 조지 오웰의 에세이 <코끼리를 쏘다>와 <파리와런던의 밑바닥생활>을 먼저 읽어서 이 책 상당히 궁금했거든요. 이 책에서도 오웰의 내면 깊숙한 곳에 우러나는 진실함을 읽을 수 있을까,하고 말이에요.
저는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프랑스 혁명은 그 때 단발적으로 끊어진 것이 아니고
저런 노동자 파업, 여성의 참정권 시위 그리고 68혁명까지 이어온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blanca 2010-02-01 14:53   좋아요 0 | URL
조지 오웰의 다른 에세이들이 있었군요. 저는 부끄럽지만 이 책이 그의 책으로는 처음이라 솔직히 깊이있는 이해는 부족했다고 봅니다.^^;; 기억의 집님 얘기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국 그런 역사 속의 저항의 힘이 피를 따라 내리 흐르고 있는 것 같아요. 댓글 하나에도 님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masarururu 2010-02-0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페인 내전(스페인 '내전'이 틀린 용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만)에 직접 참전하고 쓴 르포르타주인 <카탈로니아 찬가>도 아주 재밌습니다. 이걸 보고 나면 조지오웰을 안 좋아할 수가 없지요..

blanca 2010-02-07 12:58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조지오웰의 1984가 읽기 힘들다고 해서 그의 책은 다 지루한 줄 알았더랬어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꼭 읽어보겠습니다.
 
윤리적 노하우 아우또노미아총서 21
프란시스코 바렐라 지음, 박충식.유권종 옮김 / 갈무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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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더 많이 생각하고 나의 의식의 흐름에 더 집중할수록 더 이기적으로 변해 간다.
타인과 나 중심의 소통을 원하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역설적으로 나는 더 불행해진다.
나에게 집중하는 삶이 아닌, 타인의 삶에 연대하는 삶의 만족도가 더 높다는 것은 새로울게 없는 얘기다.
 

인지생물학자인 칠레태생의 프란시스코 J. 바렐라가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초청되어 윤리학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실은 이 책은 본문이 백페이지가량 정도밖에 안될 정도로 얇은 책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인지학, 구성주의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상당부분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조금은 불친절한 책이다. 그러니 나 같은 독자는 두 번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해제도 잘 되어 있고 번역자들도 기본적으로 인접학문을 전공하여 충실한 번역을 하려 애쓴 노고가 돋보이지만
평범한 독자들이 철학과 컴퓨터과학, 뇌과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 눈부시도록 놀라운 바렐라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빛나지만 따올 수는 없는 별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심정이라고 할까. 
조금이라도 쉽게 읽으려면 말미에 실린 역자의 해제와 바렐라의 생애를 역으로 먼저 읽어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바렐라의 이론을 한마디로 축약한다면
윤리의 노하우는 점진적이고 직접적으로 자아의 가상성과 익숙해지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바렐라는 자아는 허구의 참조점이라고 본다. 바렐라만의 독창적인 이론은 아니지만 자아는 허구의 개념임을
체화하면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자비와 연대가 생겨난다는 주장의 독창성은 놀랍다.
'나'는 없다. 타인과 관계하기 위한 언어, 여러 사회적 활동 사이의 다리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타인에 대한 동정은 욕망의 광기로 전염되어 있기 쉽다.
그 어떤 욕망도 끼어들지 않은 공의 상태에서 자비는 충동적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그가 거론한 맹자의 성선설도 이 부분에서 재조명된다. 나는 여즉까지 맹자의 성선설을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이 머나먼 이국의 학자는 맹자의 성선설을 더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선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의 만개
라고. 그러니 반드시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훈련이 뒤따라야 한다고.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타자에 대한 관심은 보통 자아의 느낌과 뒤섞여 있기 때문인정받고 평가받으려는
열망을 충족하려는 욕구와 혼동
되기 쉽다. p.106 

결국 나를 비울 일이다. 도교, 불교, 유교와 서구과학의 접점에서 타인에 대한 연대의 지도의 참조점을 설명해 준
그는 결국 도덕적 행위란 공리적 윤리체계나 실천적인 강령이 아닌 허구의 자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외치고 있다. 비어있는 나의 허전함은 타인에 대한 참된 돌봄으로 채워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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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2010-01-2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타인에 대한 동정은 욕망의 광기로 전염되어 있기 쉽다..그리고 '나'는 없다..

문득 '자아는 만들어진 자기방어의 정체성'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블랑카님.나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音과 音사이,사물과 사물사이,나와 너 사이의 여백쯤일까요?)

blanca 2010-01-26 22:26   좋아요 0 | URL
자아라는 개념에 집착할수록 더 불행해진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좀 그런 경향이 있어요--; 있지도 않은 걸 가지고 사실은 에파타님 말씀하신 것처럼 그 사이에서 떠돌아다니는 것들이 마냥 나인 것처럼 오해하고 집착하고 속단하고. 정말 만들어진 자기방어의 정체성이라는 표현이 맞네요. 그런데 또 심리학 정신분석에서는 자아를 강화하는게 치료의 첫걸음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어서 참 헷갈립니다. 개념 자체가 서로 다른 건지.

저절로 2010-01-27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정신분석' 아주 순하게 표현하자면 회의적입니다. 조작된 개념으로서의 '정신'은 결코 보편화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강화'라니요(천만에 말씀 만만에 꼬딱지!). 요즘 저는 '無'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blanca 2010-01-27 14:0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요즘들어 거부감이 들더라구요. 프로이트씨도 좀 그렇고. 솔직히 잘 알지는 못해요.^^;; 공부가 더 필요한 분야지요. 마음이 약해질 때는 또 솔깃해지고 그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