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꿈 속에서 내가 마스크를 안 쓴 걸 알고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는데...세상에! 광장을 채운 모두가 마스크를 안 쓴 광경이 총천연색(태몽도 아닌데!)으로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꿈속에서도 너무 좋아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보았던 기억이...


2021년도의 마지막 읽고 있는 책.

















아직 초반부 읽는 중인데 나는 왜 저자가 영국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을까. 사회적, 경제적 계급에 따른 교육 환경의 격차가 유독 큰 나라로 기억하고 있어서였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탈출하고 싶었던 원가정을 다시 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 복기하는 여정이 많은 것들을 환기한다. 단순히 개인적 회고에 머무르지 않는 그 지점이 빛난다. 객관화된 주관적 글쓰기의 진가가 발휘되는 책이다.

















20대 기자들이 바라본 소년범들의 세계. 언론에서 소비하는 소년 범죄의 잔혹함은 그들을 사회에서 영영 추방하거나 성인 범죄자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방조하게 되는 길로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문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 촉법소년의 폐지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나쁜 어른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제대로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들이 그 엄청난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추방되기를 은밀히 바라는 마음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특히 성적 자기 결정권을 학습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채 자라나는 소녀들의 이 아직 덜 자란 아이들의 범죄의 세계의 가장 밑바닥 생태계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고 가슴 아팠다. 어른들의 가장 고질적인 악을 그들에게서 모방하여 다시 재생산하는 아이들의 취약한 세계. 심지어 그런 아이들의 취약성을 악용하는 간악한 어른들. 


세밑에 읽게 된 책들이 어둡다. 그 어두움을 어떻게 뚫고 나아가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알라딘 식구들 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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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가는 시점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기고 싶은 올해의 책들을 추려본다. 좋았던 책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다시 읽게 될 것 같은 책을 중심으로.


▶인문/과학




방대한 분량, 사 세기에 걸친 과학자와 시인, 소설가의 이야기는 언뜻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엮어낸 거대한 모자이크를 들여다보면 그 촘촘함과 조화로움이 가지는 아름다움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요하네스 케플러의 꿈에서 출발하여 마거릿 풀러의 묘비 앞에서 맺는 이야기는 우리 인간의 개개의 삶이 가지는 그 찰나성과 우리가 소망하는 것들이 끝내 좌절당하고 사랑이 떠나갈 때의 그 가차없음에 대한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에 남아 죽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하여 우주적 관점에서 조망한 것이다. 크고 빛나는 이야기들.











흔히 베스트셀러는 그 깊이와 완성도에 대해 의심당하는 경향이 있다. 다 좋다고 하면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초적이고 단편적이고 무언가에 영합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좋은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철학을 사변적이고 추상적으로 이야기해야 그 본질에 더 충실한 것이라는 시선은 하나의 편견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이야기. 얄팍하지 않으면서 흥미롭고 진지하면서 금세 실제 사례로 가닿는 그의 능수능란한 글솜씨에 절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책이다. 재미있고 뭉클하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소설




어렵다. 어려운데 매력적이다. 작가가 이 책 한 권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쏟아부었는지 그 공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책이다. 과연 우리가 죽음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죽기 직전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그 실체를 붙잡을 수 없을 것이다. 삶이라는 게, 사는 일이라는 게 생명을 전제로 하는 한 죽음을 제대로 완벽하게 연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그 근사치에 처절하게 가닿으려는 노력 그 자체를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사는 일과 죽는 일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더 깊어지고 넓어지지 않을까. 한 구도자의 구도 과정을 목격하는 것 같은 느낌의 읽기였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 싶을 정도로 나의 이해는 피상적이었다. 나머지는 사는 일과 읽고 생각하는 일들로 채워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다. 그 묘한 사투리의 리듬감, 삶의 고단한 그 여정의 간이역에서 채워지는 구수한 입담들이 주는 즐거움도 읽는 재미를 준다. 










지루하고 어렵고 시대에 뒤떨어진 작품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효하고 시의성 있는 질문을 품고 있는 문제작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과 인생, 무엇보다 인간의 그 불완전함을 한계치까지 밀고 나가 탐구하고 이해하려 했던 작가다. 그의 펜끝에서는 삶의 속살과 인간의 심연이 기어이 드러나고야 만다. 그 끝에 절망으로 침잠하지 않을 수 있는 작가는 그가 유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만든 캐릭터들은 분명 실존한다. 우리의 뒤에 우리의 옆에 바로 우리의 속에. 위대한 이야기다.









남성 작가가 여성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흔히 대상화되기 쉽다. 표피적이고 단편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한계를 깨고  그 여성의 내면에 들어가 그녀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작가가 윌리엄 트레버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에는 필연적으로 작가의 세계관이 윤리관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익명으로 죽어간 소녀들을 흔들어 깨우고 그녀들의 이름을 찾아준 이 대작가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에세이




체코의 국민작가인 차페크의 열두 달 정원에 관련한 글이 맞다. 맞는데 신변잡기 에세이가 아니다. 묵직하고 감동적이고 심오하다. 그런데 동시에 귀엽고 사랑스럽고 웃음이 절로 나온다. 


정원과 사랑에 빠진 중년 남자가 그 정원의 땅 위에 우스꽝스럽게 엎드린 모습이 그 작가의 형의 삽화로 직접 재현된다.


세계적인 작가의 정원 가꾸기 분투기는 이 작가의 책을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최고의 홍보문이다. 










▶기타



전설적인 시나리오 작법서. 영화 제작자나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의 교본처럼 칭송되는 책이지만 그런 것과 전혀 무관한 그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책이다.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그 어떤 철학자나 소설가보다 흥미롭고 깊이있게 얘기되는 책이다. 심지어 인간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심리학이나 처세술이 아니라 이 책에서 의외의 출구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원형을 이야기하며 인간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밖에.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서 그들의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자세에 대한 금과옥조 같은 조언들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을 오늘날의 작가로 성장시킨 유년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가장 가치를 두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2022년에는 더 행복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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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1-12-28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more and more 행복해지시길~

blanca 2021-12-29 07:40   좋아요 0 | URL
덕담 감사합니다. 기억의집님도 점점 더 행복해지기를...

stella.K 2021-12-28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년엔 더 행복해질 거예요.^^

blanca 2021-12-29 07:40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도 같이 행복해져요. 감사해요.

psyche 2021-12-29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옛날에 읽은 죄와 벌을 빼고 읽은 책이 하나도 없네요. ㅜㅜ blanca님 더 행복한 2022년 되시길!

blanca 2021-12-29 16:28   좋아요 0 | URL
프쉬케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항상 건강하시고요!
 

코로나 시대에 생명의 무게를 생각해본다. 특히 요양원과 중환자실에서 코로나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그들의 존재를. 어떤 것이든 드러내어 놓고 말하기 힘든 기준 아래 익명화되는 그 존재의 존엄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그것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언제까지나 남의 일이 될 수 없는 그 나약함. 


"하지만 인간의 목숨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 해도, 우리는 항상 무언가가 인간의 목숨보다 더 값진 것처럼 행동하죠."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가여운 이들.흔들리는 가여운 불꽃들. 더듬거리며 말하는 별들.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사랑스러운 점은 바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안 보뱅의 아버지는 마지막 1년을 알츠하이머로 요양원에서 보낸다. 보뱅이 요양원의 노인들을 보고 쓴 글은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편협함을 일깨운다. 자본주의의 눈먼 경쟁에서 밀려나 타인을 짓밟고 올라설 필요가 없는 그들의 존재가 가지는 가치에 대하여 보뱅은 얘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있음이 가지는 그 계량화될 수 없는 의미에 대하여. 


코로나 시대에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을 이미 이야기한 작가들의 글에서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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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5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
⠀()_/)
⠀(。ˆ꒳ˆ)⠀
ଫ/⌒づ🎁

blanca 2021-12-25 11:05   좋아요 1 | URL
오, 귀여운 토끼가. 스캇님도 메리크리스마스!

그레이스 2021-12-25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간비행!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다시 읽고픈 소설이예요.~♡

blanca 2021-12-26 09:59   좋아요 0 | URL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라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이제서야 읽다니 하며 놀랐답니다.
 

올해 갑자기 노안이 왔다. 그 탓에 한동안 책도 보기 싫고 글도 쓰기 싫어졌다. 뭔가 이런 행위를 할 때마다 너는 이제 늙었다,고 확인사살당하는 심정에 절로 우울해졌다. 노안이 오기 전의 내가 그리웠다. 깨알같은 글씨로 그날그날 있었던 별스럽지 않은 일들을 메모했던 나날들이 낯설었다. 나이든 얼굴도 새치도 노안만큼 나이듦의 현타를 주지는 않는다. 노안이 온 순간 이제 엄마로만 생각했던 어떤 중년의 여인의 모습이 내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각이 왔다. 

















미켈란젤로가 72세에 성 베드로 대성당의 수석 건축가로 임명된 사실은 크게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이다. 그는 만년에 그 걸작의 책임을 떠안았다. 심지어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큰 프로젝트였는데도 그는 기꺼이 떠안았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착공부터 완공까지 미켈란젤로가 전담한 것은 아니다. 착공은 이미 브라만테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한 것을 미켈란젤로가 인수하여 시공상의 결점을 보완하고 윤곽을 확정지어 후대의 잔로렌초 베르니니가 완공하기까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한 마디로 누군가에게 노년에 그런 일을 떠맡긴다면 골칫거리로 여기고 거절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시작도 마무리도 할 수 없는 일, 분명 많은 착오와 허점을 수정, 보완해야 하는 머리 아픈 일을 이제는 모두 퇴직하고 고향에 돌아가 쉴 나이에 타향에서 만년의 17년을 온전히 헌신하여 완수해 낸 것이다. 


저자 월리스는 세계적인 미켈란젤로 권위자로 그 자신이 예순이 넘고 나서야 미켈란젤로의 이 만년의 프로젝트를 탐사한 이야기를 집필할 결심을 하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위대한 예술 작품들 뿐만 아니라 방대한 기록 자료를 남긴 사람이라 한다. 이 문서 자료들을 통해 구축한 거장의 만년의 서사는 그 자체로 감동적인 이야기로 와닿는다.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은 미켈란젤로가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가로 출발하여 완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의 장대한 여정에 관한 보고다.


미켈란젤로는 모든 것을 명령하고 뒷짐만 지고 있는 유형의 건축가는 분명 아니었지만 노령에 접어들며 어디까지 자신이 관여하고 어디부터 위임해야 하는지를 기민하게 인식한 실행가였다. 그는 그 자신을 중심으로 한 여러 조수들의 군단을 직접 조직했고 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우정을 나누었다. 그의 건축 프로젝트의 위대한 점이 여기에 있다. 스승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그 스승의 정신이 구현되는 데 한 치의 오차도 없도록 후계자들이 움직일 수 있었던 건 그의 설계, 그의 조직이 체계성과 핵심적 가치 덕분일 것이다. 이는 온갖 정보를 한 사람이 독식하고 주변 사람들과 제대로 된 소통이나 아랫사람에 대한 적절한 위임이 이루어지지 않아 끊임없이 초심의 가치와 정신이 무화되는 여러 프로젝트나 심지어 정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가 주변 사람들과 나누었던 우정들, 아들처럼 사랑하고 아꼈던 하인과의 눈물겨운 작별 에피소드들은 두고두고 여운이 길다. 동시대 사람들보다 거의 배는 살아서 장수했던 거장은 그만큼 수많은 인연들과 예기치 않은 석별의 정을 나누어야 했다. 그는 베드로 대성당 건축을 조물주에게서 주어진 하나의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끊임없이 고향 피렌체로 돌아오라는 주변인들의 요청에도 결국 로마에 남아 여든이 훌쩍 넘어서까지 버틴 것은 그 소명을 완수하는 것이 구원 그 자체로 향한 길이기도 하다는 그 자신의 믿음과도 통하는 일이었다. 


나는 이탈리아에 가본 적이 없고 그래서 아쉽게도 "나의 백발과 나의 고령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고백하고 시작했던 이 예술가의 걸작의 스카이라인을 보지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보고 싶다. 그 앞에서 고작 그의 나이의 반 정도를 살고 노안으로 투덜거렸던 나의 이 나약함을 반성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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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1-12-06 14: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토요일 신문에서 신간소개된 걸 보고 보관함에 넣었는데 blanca님은 벌써 완독 후 리뷰까지@_@;;; 저도 노안 와서 슬퍼요ㅠㅠ;;;;

blanca 2021-12-06 16:10   좋아요 1 | URL
헉, 달밤님마저...알라딘에서는 노안이 가장 슬픈 화두죠.

다락방 2021-12-06 15: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 급격한 시력 저하로 토요일에 안과를 갔었는데요 건조증과 노안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노안이라는 거 알고 갔지만 막상 닥터가 ‘버티세요‘ 라고 하니까 우울하더라고요. 이미 시작된 노안은 영양제로 잡을수도 늦출 수도 없고 앞으로 더 진행될 일만 있으니 버티다가 안되겠을 때 돋보기 맞추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몸이 노화를 실감하는 일은 이래저래 우울하지만 눈에 있어서는 더 우울했어요. 저는 책을 봐야 하는데요. 책을 봐야하는데 노안이라뇨. 닥터는 눈을 좀 덜 쓸 것을, 보는 일을 좀 덜 할것을 권유했는데요 그렇다면 제가 줄여야 할 것은 폰이겠구나 싶었어요. 무언가 줄여야 한다면 책 보다는 폰이 나을것 같아요.

노안도 저와 같이 겪는 블랑카님. 사실 저는 노안온지 좀 됐답니다 ㅠㅠ

blanca 2021-12-06 16:13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도 최근에 안과가셨군요. 저도 미루다미루다 간 거였거든요. 저보다 훌쩍 젊은 여자 의사가 사십 대에는 정밀 검진을 요합니다. 이렇게 확인사살을 ㅋㅋㅋ 흑, 노안은 저는 아주 머나먼 정말 할머니가 되면 갑자기 짠 오는 건 줄 알았어요. 이렇게 사십대부터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건지 몰랐잖아요. 아, 폰을 줄여야겠군요! 근데 지금 너무 우울해하면 더 나이들면 또 후회할 것 같아서 최대한 빨리 길고 두꺼운 책들을 독파하기로 마음 먹었어요.ㅋㅋㅋ 나이들면 힘드니까요.

북극곰 2021-12-06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쵸, 흰머리와 주름살은 그러려니 싶은데 노안은 심리적인 충격이 크죠? 근시 때문에 안경까지 쓰고 있는 저로서는 정말 불편해요. 근시 시력도 나빠졌는데 그에 맞춰 도수를 올리면 책 볼 때 어질어질 촛점이 안 맞아서 아예 책을 보기 힘들더라고요. 슬픕니다. ㅠㅠ

blanca 2021-12-06 16:14   좋아요 0 | URL
한동안 너무 우울해서 책이 꼴도 보기 싫어지더라고요. 지금은 넘어가긴 했는데...그래도 우울감이 있어요. 노안이란 게 참...사람을 침울하게 만들더라고요. 내가 이십대에 쓴 자그마한 글씨를 내가 보고 놀란다니까요.보이지도 않네, 이러면서...

stella.K 2021-12-06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랑카님, 인간은 한때 낙심할 수 있어도 좌절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도 노안이 왔을 때 다소 의기소침했는데 또 그냥 살아지더군요. 오늘 아침 배우 송승환이 나왔는데 시력을 거의 상실했는데 그래도 무대에 오른다고 하더군요. 대사는 소리로 외우고 동선 익히면 어렵지 않다며 긍정적이었어요. 우린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어느덧 60대 중반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응원해 주고 싶더라구요. 그냥 응원해 주자구요.^^

blanca 2021-12-06 19:10   좋아요 1 | URL
송승환님 예전에 강연으로 실제 뵌 적이 있는데 최근 소식 듣고 많이 놀라고 안타까웠어요. 다시 연기하고 계신다니 참으로 반갑고 다행입니다. 네, 스텔라님 말씀 감사합니다.
 

어떤 책은 예기치 않게 다른 책을 매개로 해서 온다. 


















최은영 작가의 솔직한 고객들에 감동 받았다. 인터뷰에서 자신을 그럴듯한 사람으로 포장하고 싶은 욕구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을 터인데 그녀는 그것을 넘어서 자신의 상처, 한계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내보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최은영의 인물들이 독자의 공감을 자아내는 것은 그런 작가의 내려놓기가 했던 역할이 클 것이다. 나의 시선은 반드시 나를 먼저 관통해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실린, 아버지를 아직 아빠라 부르는 젊은 시인 김연덕의 <일요일 오후의 책 말리기에 대한 짧은 이야기>라는 앤 카슨의 <짧은 이야기들>에 대한 서평의 잔상이 길다. 나는 김연덕 시인 덕택에 앤 카슨을 읽게 되었다. 주말, 원로목사가 소장했던 일본의 옛 신학자의 고서적을 마루에 앉아 말리는 아버지의 아들이 쓴 서평이다. 김연덕 시인은 그런 아빠가 비석처럼 도미노처럼 늘어놓은 서적들을 바라보며 앤 카슨의 "아주 작고 명징한 비석들" 같은 짧은 시를 떠올린다.

















시 같기도 하고 단상 같기도 한 짧은 글들의 모음집이다. 책의 왼편에는 제목이, 오른편에는 시가 실려 있는데 제목 자체가 시의 주제의 함축이라 시를 다 읽고 나면 한번 더 들여다보며 나의 의미 해석이 맞았나 확인하게 되는 구조다. 고흐도 카미유 클로델도 브리지트 바르도도 나온다. 역사적 사실들과 실존 인물들을 소재로 활용하여 의미를 추출하는 시인의 재능이 경이롭다. 이 중에서 특히 시인이 시로 적은 후기가 가장 좋았다. 


후기에 대한 짧은 이야기


후기는 재빨리 피부를 떠나야 한다. 소독용 알코올처럼. 여기 그 예가 하나 있는데, 에밀리 테니슨의 할머니가 자기 결혼식 날인 1765년 5월 20일에 남긴 일기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안티고네」를 다 읽었고, 주교와 결혼했다. 


자신의 결혼식 날 남긴 짧은 이야기. 생의 후기도 이와 마찬가지여야 할 것 같다. 구구절절 나를 해명하거나 변명할 필요가 뭐 있을까. 태어나 살다 죽었다, 고 이야기하는 말만으로 충분하다. 생은 그 자체로 존엄하고 충분히 무거우니까. 많은 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들로 우리를 오염 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앤 카슨은 '짧은 이야기들'로 충분히 많은 것들을 깊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시인 같다. 말과 글들에는 이미 숨결이 있어서 내뱉는 그 순간부터 날개를 달고 상대에게 가닿는다. 나의 의도는 그 순간 이미 떠나게 된다. 그 언어가 어떻게 해석되고 소화되고 남을지는 이후부터 나의 소관이 아니다. 자식을 낳는 일과도 닮았다. 


그 마음을 짐작하는 일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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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18 21: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번호 최은영 작가님 특집이네요
글속에 작가의 성품이 뭍어 나는데 인터뷰에서도 善한 분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작가!

앤카슨은 응축된 언어 속에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 산문같은 시를 쓰는 작가 인것 같습니다. ^^

blanca 2021-11-19 09:52   좋아요 1 | URL
네, 제가 최은영 작가 팬이라서 바로 구입을 ^^ 인터뷰도 마치 작가 소설처럼 문장 하나하나가 참 정제되어 있더라고요. 단편소설 읽는 것처럼 뭉클했답니다. 악스트는 인터뷰가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