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막심 고리키 지음, 최윤락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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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을 보나, 내용으로 보나 읽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 책이다. 소설치고는 사회성이 짙기 때문에 그다지 재미는 있지 않다. 물론 재미로 읽는 책은 아니다. 공산당 혁명이 있기 전의 노동자들의 투쟁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서 그 당시의 노동자들의 생활 모습, 가난, 노동환경에 대해서는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읽다보면 공산당 혁명은 필연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정, 자식의 안녕과 안정을 위해 희생을 하는 어머니조차 투쟁과 혁명의 전사로 변해가니 말이다. 민중의 요구는 행동으로 이어져야만이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지식인들이 사기꾼이 되지 않으려면 실천을 해야 하듯이... 시대적 부름은 고리끼의 시선에 그렇게 포착된 듯 싶다.

고전이란, 다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빛이 나는게 있는가 하면, 곰팡이 냄새가 진동을 하는 작품도 있는 것 같다. 글쎄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는 어디에 해당될까. 읽는 사람의 선택에 달렸겠지만...

'참된 사람만이 인간의 이성에 묶여진 쇠사슬을 끊을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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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민 말루프 지음, 김미선 옮김 / 아침이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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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라는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시선을 비꼬는 말을 사용하기 적당한 역사적 사건들이 많다. 그 중에서 십자군 전쟁을 성지탈환이라는 미명하에 학살과 약탈을 화려하게 채색하였던 서구의 역사가 그러하다. 대한민국의 정규교육을 받았지만 십자군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은 자세히 모른다. 이슬람과 서구의 충돌이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고, 우리도 그 분쟁에 결코 멀지 않다는 걸 감안한다면 200년간 7번에 걸쳐 일어나 십자군 전쟁은 재미있고도 중요한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이 책은 그동안 서구의 시선으로 쓰여진 역사를 정면으로 받아친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눈으로 십자군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물론 공정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드나, 그동안의 왜곡된 역사에 대한 보상으로 이 정도는 애교로 눈감아 줄 정도이다. '마라의 식인종', '에미르의 눈에 비친 야만인들'에서는 아랍인의 눈에 비친 유럽인들의 모습을 묘사한 글이 절정에 이른다. 흥미로운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이다. 역사책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그 당시의 제도, 풍습을 이야기 한다. 황당한 장면들도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프랑크,이슬람 연합군이 또다른 프랑크,이슬람 연합군과 대치한다던가, 동료가 포로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몰라라 하고 자기 배만 채우는 프랑크인, 노예계층(맘루크)이 지배계층으로 등극하는 쿠데타, 예루살렘은 뒷전으로 미루고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는 4차 십자군 원정 등은 역사의 희극성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 책이 진정 의미를 가지는 부분은 현재와 과거의 연계에 있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립, 아사신파의 광신적 테러, 유럽과 이슬람의 충돌, 음모와 배신, 분열과 야합, 민중에 대한 학살, 폭력, 파괴 그러는 한편 지배층의 부패와 무능력함. 현재는 어떠한가. 700년전의 모습과 너무나 닮지 않았나? 이라크의 석유를 침탈하고,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비인도적 살육행위를 하는 서구를 향한 무차별적인 테러는 당연한 보복으로 여기는 21세기의 지구는 평화를 잊어버린 듯 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십자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균열의 역사에서 아랍인들은 지금까지도 부당한 침범을 느끼고 있다'라고 그리고 폐쇄적이고, 전근대적이며, 분열된 아랍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길고 긴 피바람의 역사를 무엇으로 종식시킬 것인가. 세계는 평화를 바라고 있다. 아랍의 성왕, 살라딘처럼 관용과 자비로 적을 대하여 평화를 지키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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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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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네크워크와 매체의 발달로 세계가 점점 좁아지는 현 시대에 문화의 국경은 사라졌다. 이것을 문화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의 증대라는 긍정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수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로 무장한 상업성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것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고, 그것을 누린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좋아하는 것이라고 유익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에 대해 고민해 봐야한다.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대중매체, 스타, TV, 대중, 유행, 언론. 그들의 관계는 얽히고 얽혀 시작과 끝이 모호하다. 하지만 대중의 요구보다는 자본의 힘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중문화가 던져주는 먹이와 대중의 식성은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받아 먹기만 한다면 주체적 요구와 선택을 상실한체 먹이에 맹종하는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중문화의 습성을 이해하고 기존에 갖고 있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쉽게 쓰여진 이 책은 유행과 대중문화에 민감한 청소년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중문화의 겉과 속이 쬐끔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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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갈릴레오 총서 3
사이먼 싱 지음, 박병철 옮김 / 영림카디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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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학문적 열의는 실패의 두려움을 지워버린다. 두려움 없는 도전이 무모함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그 결과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기에 인생을 걸고 도전하는 사람의 모습은 숭고하게 비춰진다. 지식의 한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다. 수학 역사상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였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되는 바로 그 순간이 해당 될 것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접근하기에 앞서 고대 그리스 수학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책의 도입부분은 하나의 수학 정리는 어느 한 순간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대 지식부터 이어져 온 인류의 지적 유산임을 보여준다. 피타고라스부터 해결사 앤드류 와일즈까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중심으로 한 수학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많이 들어 본 유클리드, 라플라스, 가우스, 푸리에, 오일러, 튜링 같은 위대한 수학자들이 조연처럼 등장하지만 그들의 실패와 성과 또한 결국에는 와일즈의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

'하나의 열매를 얻기 위해 나무가 오랫동안 자라 듯 학문적 성과를 위해서는 오래 기다려야 한다' 수학의 완결성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결과는 찬란한 것이었다. 결과에만 집착하여 순수과학을 등외시하는 현실에 있어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서 학자들이 보여주었던 열정은 인간의 지성을 대표하는 위대함이었다. 인간의 지적 호기심, 그것은 인류의 문화적, 기술적 진보를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학교 다닐때는 느낄 수 없었던 수학에 대한 흥미를 부록에 실려있는 수학 정리들이 불러 일으키는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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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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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새의 선물>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더 이상 성장할 것이 없어 밑천이 드러나는 것도 더 빠르던가. 고독으로 말라 버린 삶.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고독뿐인듯 하다. 허무적이고, 회의적인 그녀의 시선 그러나 더욱 억세며 강인한 삶의 의지가 느껴진다. '나는 지금도 혐오감과 증오, 그리고 심지어는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극복의 대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곤 한다'

요즘에 읽게 된 소설들은 상당수가 60~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성장 소설이었다. 읽다보니 성장소설이었다. <새의 선물>은 액자형 소설로서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삶이 세세하고, 재미가 있다. 여기서 재미란? 삶이 삶으로 느껴지는 재미. 그들의 삶이 피부에 스며드는 수분처럼 촉촉하다. 애증, 허위, 순수, 절망, 고통 그 모든 것이 우리 삶이기에 비록 거칠더라도 따뜻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철없는 이모, 다른 말로 표현하면 순수한 이모의 편지 한장을 받아 보고 싶기도 하고, 미스 리의 유혹도 느껴보고 싶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으며 당장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것들만 지니고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해왔다. 삶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삶에 성실하다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아이러니도 아니다.' 너무나 일찍 삶을 알아버린 30대의 주인공에게서 느껴지는 연민은 눈보라를 맞으며 중절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이모의 눈동자만큼 쓸쓸하게 차오른다.

'그가 돌아보는 순간 그 모습은 내 눈 속에 그대로 멈춰버린다. 그리고는 찰칵 하는 소리에 이어 현상액에 담가지며 거기에서 물기를 머금고 빠져나와 커다랗게 확대된 뒤 네모난 테두리를 두른 채 내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가슴에 스며든 그 사진액자를 언제까지나 소중히 간직하겠다는 약속을 하기 위해 나는 두 손을 앞가슴에 모은다.' 시처럼 쓰여진 이 소설에서 발견한 비루하지 않고 차갑지만 뜨거운 마음은 내 마음에 그대로 멈춰버리고, 찰칵 소리와 함께 액자에 담겨 오랫동안 간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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