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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서평들을 보면 가관이다. '역시 에코다', '대단한 풍자와 위트', '이게 바로 패러디' 그러나 '이해는 잘 안 된다' 그러면서도 '되게 재미있지만, 에코의 유머에 동승하기 위해 애썼다는 것에 만족한다.'라고 위선적인 웃음을 짓는다. '혹시 내가 바보가 아닐까', '내가 무식해서 일까', '언제쯤이면 이해할 수 있을까'라며 자학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이 책을 무엇을 위하여 읽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에코가 말하는 바보들의 표본이며, '신화 옵빠 짱'을 외치는 빠순이들의 습속과 동질하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유머는 기본적으로 문화의 코드가 맞아야 한다. 에코가 개그콘서트를 보고 웃는 상황은 거의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을 학대하면서 거짓 웃음을 보이려고 하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다른 문화의 유머를 이해할 정도의 경험과 지식을 갖추려면 그 곳에 살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매명주의로 탄생한 저속한 출판업계의 결과물일 뿐이다. 에코가 이 책을 안 썼다면 과연 저런 평들이 나올 것인가?
-인용-
'프랑스 브뤼헨이 최근에 CD를 냈는데, 그거 들어 보셨어요?'
'실례지만, 뭐라고 하셨지요?'
'「눈물의 파반」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초입 부분이 너무 느린 것 같더군요.'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반 아이크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또박또박한 말투로) 블록플뢰테 말이예요.'....
'그거 참 재미있군요. 그래도 수제품 쿨스마를 손에 넣으려면 3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아시겠지요? 그런 점에서 보면 흑단으로 만든 뫼크가 낫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것 중에서는 최고죠. 가젤로니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입니다. 그건 그렇고,「데르드레 둔 다 프네 도버」의 5번 변주 정도는 들어 보셨겠지요?'
'그 곡보다는 텔레만의 환상곡들을 한번 연주해 보셨으면 해요. 해내실 수 있겠어요? 설
마 독일식 운지법을 사용하시지는 않겠지요?'
'아시다시피, 저는... 독일에 관해서라면... 독일의 BMW는 대단한 차죠. 그래서 독일인들
을 존경하기는 합니다면...'
'알겠어요 무슨 말씀인지. 바로크 식 운지법을 사용하시는가 보군요. 좋습니다. 다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사람들은...'
솔직해지자. 영어회화 시간에 다들 웃으며 얘기한다고 덩달아 웃는 눈치 빠른 바보가 되기 위해 책을 읽나? 세계적인 석학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피카소의 낙서를 평가하는 이들의 머리 속은 본질적으로 같을 것이다. 비싸서 아름답다. 이 말이 내 머리 속을 맴도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