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 나남창작선 29 나남신서 10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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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박경리라는 명성만으로 읽게 된 책이다. 부잣집이 3대에 걸쳐서 철저하게 망해가는게 주된 내용인데, 전형적인 비극으로써 다 읽고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에서 말하듯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운명처럼 끈질기게 쫓아오는 불행은 무당굿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고, 기독교적 신앙으로도 저항할 수 없었다. 무기력하게 살아 남은 자들의 슬픔을 묵묵히 바라보는 우리에게 밀려오는 공포감과 연민을 막을 수 없듯이...

운명은 절대적이다. 우리는 왜 비극을 좋아할까? 남의 불행에 우울함을 털어버리게 하는 묘한 감정적 동요는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불행하지 않은 나의 현 모습에 안위를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감정이란 분출되면 해소되는 휘발성 현상인가... 토속적이고 샤머니즘 성향이 짙은 세대와 서양사상과 물질적 가치가 중시되는 사회적 변동이 가져오는 혼란 속에서 김약국 집안의 몰락은 기존의 질서의 파멸과 새로운 질서, 운명의 시작을 예고한다. 용빈과 용혜가 통영을 떠난다는 것이 바로 그 의미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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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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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겉표지부터 매력적인 책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가 연상되기도 하고, 겉표지의 하얀 배경에 무질서하게 엉켜있는 알파벳은 눈먼 세상의 한 모습일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환상과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다른 책들과 확연히 다른 특징으로 인하여 읽기가 힘들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없다. 의사, 의사의 아내, 첫번째로 눈이 먼 남자,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 검은 안대를 한 노인, 눈물을 핥아주는 개처럼 눈이 멀기 전의 '잔상'과 눈이 먼 후에 느낄 수 있는 '특징'만으로 그들을 구분하고 있다.

게다가 작은 따옴표, 큰 따옴 등의 기호가 없어서 그들의 대화나 진행에 조금이라도 집중을 느슨히 하면 누가 어떤말을 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단락조차 없이' 빽빽한 글자가 460페이지에 달하니 한장 한장을 넘기는 것은 고행처럼 느껴진다.

책의 2/3쯤 읽었을까. 몇 가지 실망스러움은 나의 기대감을 무너뜨렸다. 첫번째로 실망한 것은, 눈을 멀게 하는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정부와 조직의 대응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야만스러웠다. 우리에 가두듯이 수용소에 격리시키고, 음식만 던져주며, 치료는 물론 위생, 질서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군인들이 '학살'까지 했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 오히려 당연시 하는 군인들을 보며 작가가 보여주는 군인에 대한 혐오감이 어느 정도이지 알 수 있다.

얼마 전 사스가 전 세계를 위협할 때 중국조차도 많은 의료진을 투입하며 이를 극복하려 애썼고, 의료진 또한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렇기 때문에 눈먼 자들이 처한 '극한상황은 조작된 것이다'라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느낌은 소설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든다.

두번째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수용소 내의 폭도 20여명의 행패에 굴복한 300여명의 다른 눈먼 자들의 비굴함이 극에 달한다. 자기 아내들을 성노리개로 바치면서까지 음식을 얻어먹는 상황 설정은 역겹다. 왜 그들은 저항하지 않았을까? 눈이 멀고, 굶주렸다고 인간이기를 포기했는가? 소설 안에서는 처절하지만, 소설 밖의 나는 물음표만 생긴다.

세번째로, 모두가 눈이 먼 새로운 세상이 되면 '기존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보여줄 것이다' 또는 '눈이 가지고 있는 다른 의미'를 보여줄 것이라는 나의 기대가 빗나갔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몸부림만 보여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생존이 가장 커다란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정도'는 눈을 감고 상상해도 될 만큼 일반적인 것이다. '문명', '눈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 무너진다고 '인간성'도 무너질 수 있는가? 글쎄...

이러한 물음표를 안고서,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아노미 상태를 통하여 작가는 나에게 어떤 메세지를 던져 줄 것인가? 인내심으로 끝까지 읽어내려 갔다.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6줄은 나의 뒤통수를 친다. 장자의 호접지몽이 떠오른다. 현실사회의 획일적이고 고착화된 가치관에서 벗어나 그 어떤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봐야할 진정한 눈.

'꿈에서 깨어난 느낌'. 악몽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다. 쓰레기가 뒤덮인 세상, 그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눈을 뜨고 있지만, 향기에 취해 눈이 먼 사실을 모르고 있다. 소설 속의 눈먼 세상과 현실의 차이는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459페이지를 소비했구나. 무지... 나의 무지를 작가는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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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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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했을 때의 느낌과 감추어진 그것의 내면을 보게 했을 때 주는 느낌은 천지 차이이다. 이 차이를 결정 짓는 것은 '주어진 것이냐', '찾아내는 것이냐'이다. 즉 나의 느낌이 주체가 되어, 의미를 부여하고, 가슴에 담아 내는 과정은 책을 읽는 목적이자, 책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쾌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동 한그릇>이라는 이 책은 '전형적인 도덕 교과서'라는 느낌만 강하게 들었다. 맛으로 비교한다면 억지로 맛을 내는 '인공 조미료'쯤이라고 생각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감동은 내가 저절로 느끼는 것이지, 감동을 받으라고 온갖 상황을 연출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가공된 것은 자연미를 훼손시킨다.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진실되지 못하다. 진실하지 않은 것에서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다. 이 책은 단지 착한 이야기일 뿐 나에게는 그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했다.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입장마다 틀리겠지만... 이 정도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그들의 '순수함'이 오히려 나에게는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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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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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낯설게 느껴진다. 싱아? 싱아가 무엇일까. 누가 먹었냐고 물었으니, '먹는 것이겠구나'하고 짐작만 될 뿐 그것의 실체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싱아에 대한 궁금증은 나로 하여금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장점을 십분 발휘하게 하였고, 웹에서 싱아의 사진을 잽싸게 찾을 수 있었다. 자연과 너무 동떨어져서 살아서일까? 평범한 잎사귀와 가느다랗고 곧게 뻗은 줄기... 화단에 있는 식물과 특별히 달라 보이질 않는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작가가 살았던 시대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 괴리감으로 갈라서게 된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작가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이 결코 우리들의 것이 될 수 없음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마지막 문장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 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 뿐이야.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이 갖고 있는 의미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본의 식민지에서, 2차 세계대전과 민족상잔의 비극까지 우리 세대 이전의 역사를 그녀는 증언해야만 한다. 이 땅에서 벌어진 사실들이 세월의 그림자에 가리워저 잊혀진다면, 그것 또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개인사를 통하여 격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모습을 사실적으로 편안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녀가 보아 온 가족들, 이웃을 통하여 식민지, 전쟁, 가난, 배고픔을 겪어보지 못한 우리를 하나의 고리로 묶어 버린다. 특히 가족들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들은 잔잔한 재미를 더해 준다. 거친 세상을 살면서 이웃들에게는 강인하고, 거만한듯한 품위를 유지하려 애쓰지만, 아들에게는 한없이 약한 어머니의 이중적인 모습에 거침없이 비판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애틋한 사랑으로 비춰진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오빠를 동경하는 마음, 이러한 시선들을 통하여 그 시대의 그 모습들을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다.

시대를 읽는 창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가는 각자의 몫이다. 낡은 기억들로 치부할 수도 있고, 그들의 기억에 낭만적 공감대를 나눌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들만의 기억으로 남겨놓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와 시련, 상황들은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아직도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으며, 예를 들면 강제로 징용되어진 위안부 할머니나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인 비전향 장기수 등 우리는 아직도 끝을 만나지 못했다.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는가? 아니 왜 사라졌는지는 우리에게 물어야 할 질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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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인식입문
김상운 / 홍릉(홍릉과학출판사)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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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문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패턴인식을 처음 공부하겠다는 초심자에게 기본적인 식별방법을 깊지 않은 수준에서 폭 넓게 제공하려는 의도만으로 강의노트를 책으로 편저하였다' 저자의 의도와 이 책으로 공부하면서 느낀 점을 비교하여 평가한다면, 한마디로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내용들이다'. '깊지 않은 수준'이라지만, 이 책은 '강의노트'가 기반이었다. 말 그대로 강사의 강의는 필요조건이 된다. 물론 부가적인 설명이 있지만,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추가적인 자료를 찾거나, 또 다른 책을 찾아야만 한다. 알고리즘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는 턱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수식 또한 중간 과정을 생략하여, 다음 식에 대한 난해함을 증폭시킨다. 패턴인식이 수학적인 이해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2부에 있는 9개의 분류기 프로그램 소스는 '이해만 할 수 있다면'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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