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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전쟁의 나라 - 7백 년의 동업과 경쟁
서영교 지음 / 글항아리 / 2007년 10월
평점 :
이 책이 말하고자하는 바는, 마지막 결론에 가서 명확해진다. 7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존속될 수 있었던 고구려의 힘,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나 당나라가 끊임없이 고구려를 공격해야했던 이유로 유목민족들과의 끊임없는 동업과 경쟁 때문이었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고구려보다 훨씬 단명했지만 위대한 제국을 건설했다고 말하는 저자의 의도는, 고구려가 계속 유지되었었다면 그들이 그런 제국을 건설할 수 없었을 거라는 전제 하에 고구려가 주변 유목민족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시키고 단속해왔는가를 말해준다. 결국 저자는, 혼란스러운 국제정세를 현명하게 이용해온 고구려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솔직히 충격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고구려는 강대한 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나라였고,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과 같은 역사속의 위대한 왕들이 있는 나라였으며,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역사 속 나라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 책 속의 고구려는 수렵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원시적인 부족민 정도로 나오거나, 호탕하고 거침없을 것 같았던 광개토대왕의 내면은 패할까 두려워하던 약한 군주의 모습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특히 약탈을 주로 하는 고구려의 모습은, 약탈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그래서인지 영 보잘것없는 나라로 그려지는 것이었다.
고구려는 여러 가지 사료로 볼 때 수렵을 하며 살아 온 사람들이 주축이 된 나라이다. 그래서 고구려의 전쟁 기술은 수렵에서 익힌 사냥기술이 변형된 것이다. 초기의 고구려는 수렵을 통해 먹을 것을 구하고 주변 유목민족을 약탈하여 생활을 했다고 한다.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는 것보다 수렵이나 약탈이 선호된 이유는 아마도 고구려가 위치한 지리적 영향도 클 것이고, 수렵을 주로 해 온 민족 구성원들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고구려가 주변 유목민족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약탈을 하여 얻는 수확물은 가축뿐만 아니라 기병과 말이 포함되어있었다. 이는 중요한 포획물이었다. 고구려가 번성하던 당시의 국제정세를 보자면 말을 타고 싸움에 임하는 기병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강성하던 시기였고, 그러한 유목기병들을 잘 포섭하여 내 편으로 만들어놓은 나라가 국제적으로 맹위를 떨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유목기병들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고구려나 중국의 나라들이 그들에게 지급해야 할 품목도 다양했으니 유목민으로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즉, 유목민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받고, 그들의 특기인 기병술을 이용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고구려로서도 말을 키우고 기병을 양성하기 위해 긴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고 그들이 가진 물품을 조금 나누어줌으로써 얻게 되는 실질적인 이익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조금 고구려의 모습이 옹졸해 보이기도 하나 이는 그 당시의 국제정세로 볼 때는 탁월한 전략이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가 포섭한 유목민족은 고구려의 기병이 되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러 나라들에는 위협이 되거나 혼란을 가중시킬 존재로 군림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가 원활한 영토를 가진 국가로 번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이러한 유목기병을 이용하거나 약탈을 감행한 것은 초기의 고구려가 행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영토를 확장한 이후에는 유목기병을 이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군마를 보유한 것으로 보이는 사료가 있는데, 이는 고구려의 영토가 확장되어 국경주변처럼 계속적인 전쟁이 일어나는 장소가 아닌 곳에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여유가 보장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국경 지역에서는 여전히 유목민족의 힘을 이용하면서 그 외 지역에서는 자체적인 군사역량을 키우고 있었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 물론 저자는 군마에 대한 언급을 하기는 했지만 그 외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어서 고구려가 오로지 약탈을 통해서 국가를 존속시킨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듯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알고 있는 고구려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마지막 결론을 통해 밝혔듯이 고구려가 주변 유목민족을 이용한 기술은 비단 고구려만의 기술은 아니었다. 당나라가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주변 유목민족을 잘 포섭하였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유목민족을 잘 다루는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당시의 상황을 잘 이해한 것이다.
물론 이 책은 고구려가 유목민족과의 동업과 경쟁을 통한 전쟁을 테마로 하고 있다. 따라서 부수적인 고구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고구려보다는 중국이나 유목민족의 흥망성쇠를 자세히 언급함으로써 그 당시의 국제정세를 알기 쉽게 풀이하고 있다. 고구려를 바라보는 시각을 국제정세에 맞추어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 책의 테마가 [전쟁]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국제정세도 어느 나라와 손을 맞잡고 어느 나라와 대항해야 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가 맞닥뜨리는 영향은 실로 크고 다양하다. 미국이 강대국으로 군림하면서, 주변 국가들을 자국의 이익을 위한 전쟁에 끌어들이는 모습을 보라. 결코 그 옛날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
이 책은 그 내용에 있어서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을 포함하고 있어서 다양한 책읽기, 역사읽기를 제공해준 장점이 있는 반면에 매끄럽지 못한 문장, 조사의 오사용(너무 많음), 오타(p.251 구토-국토, p.343 연계소문-연개소문 등), 인물의 이름이 달라지거나(p.118사유-사기), 구체적인 학자 이름이 있는데도 어느 학자로 표기하는 등 읽기에 방해를 주는 요소가 많았던 것은 단점이라 할만하다. 내용에 있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면이 보이는 것은 이 책의 테마 때문이라 생각하며 고구려의 인물들을 나약하거나, 포악하거나,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던 인물의 성격과는 다르게 표현한 것 역시 저자의 생각에 근거한 것이므로 단점으로 포함시키지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