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고 싶을 때 읽는 동화 어린이 성장 클리닉 2
김민정 지음, 한차연 그림 / 기탄교육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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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책 제목이 마음에 안 들때가 많다. 에둘러가기보다는 직접적으로 표현한 제목이 많은데, 그렇다치더라도, 부자되기와 같은 책제목들이 어른책에 이어 아이들 책 제목에까지 쓰였으니 한편으로는 영 씁쓸하다.

 

경제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그것이 [부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자]라는 것은, 나의 경제활동이 이루어낸 하나의 성과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모두 경제적 가치만을 성공의 척도로 보는 경향이 많으니 더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

 

한편으로는 이 책의 서두에서 [부자]란 나누어줄 것이 많은 사람을 말한다며 [부자]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그나마 서두에서 이렇게 밝힌 덕에 제목에서 가졌던 불만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다.

 

이 책 속의 일화나 이야기들은,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거나,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들로 꾸며져 있다. 대신, 그 이야기들과 함께, 함께 생각해봐요에서 생각꺼리를 던져주며, 마음박사님이 들려주는 귓속말을 통해 우리가 이 이야기들을 읽고 얻을 수 있는 교훈과, 실제적인 실천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자체로서는 괜찮은 책인듯하다.

 

그렇지만, [어린이성장클리닉]이라는 뚜껑을 덮어쓰고 나온 이 책이 [어린이들이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고, 스스로 이겨내는 방법을 익히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키가 훌쩍 자라있을거]라는 목적을 밝혔는데, 과연 [부자가 되고 싶을 때 읽는 동화]는 거기에 만족할만한 책인가? 약간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이 제시하는 이야기들은 너무 이상적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 세상이 이런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지나치게 삐딱하게 본 것도 사실이고,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최선의 내용들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차라리, 제목처럼 대놓고 솔직해졌다면 더 나았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마음박사님의 톡톡 클리닉 중에서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알뜰한 생활방법 중에서도 아이들이 실천하기보다는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적어놓은 것들이 보여서 아쉬웠다.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은 모르겠으나, 이 책은 약간 실패한 듯 보인다. 어울리지 않는 주제 선정에 지나치게 이상적인 내용의 나열에 그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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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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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人이라는 단어를 [악인]이라고 부를 때와 [나쁜 사람]이라고 부를 때는 묘한 느낌의 차이가 있다. [나쁜 사람]보다 [악인]이 더 악하게 느껴진다. 악하다는 것은 뭘까? 보통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도덕적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도덕적 기준이라는 것은 모호하다. 사회적 통념 상의 악과 개인적 기준에 있어서의 악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시다 슈이치가 그린 [악인]은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걸까?

우선, 이 글이 연재소설이었다는 걸 감안하고 읽어보았다. 역시나, 연재소설의 묘미는 다음 회를 기다리게 하는 것인만큼 이 소설 역시 그런 묘미를 잘 살리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니 각 장에 묘사된 사람들의 행동, 생각을 잘 갈무리해가며 읽어야 이 책을 무리없이 소화해낼 듯하다. 물론 내용이 어렵거나 하지는 않다. 왜냐면, 우리는 초반에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인인 유이치와 피해자인 요시노의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특별히 그들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고, 살인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하나하나 퍼즐 맞추듯 맞추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잠시, 중간쯤에서 행방불명되었던 마스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조금 헷갈리긴 했다. 혹시 마스오가 살인자인건 아닐까라고..

결과적으로는, 이 소설의 영역은 추리라기 보다는 한 살인사건을 두고 그 주변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소설이었다. 유이치와, 요시노, 그리고 또하나의 중요 인물인 미쓰요. 그들과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을 살펴봄으로써 그 세사람의 외로움,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그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지만, 알고보면 가해자도 피해자고 피해자도 가해자가 된다. 그런 상황을 만든 건 그들 주변의 사람들, 그러니까 바로 우리 자신이다. 살면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은 그냥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마스오라는 대학생이 한 행동을 보라. 그는 자신이 한 행동에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요시노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일조한 셈이다. 뿐만아니라 근거없는 뜬소문을 진실인양 믿어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거나 한 사람들도 그 사건에 일조를 한 셈이다.

그렇다면, 누가 악인인가? 이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는 모두 악인이다. 그걸 인정해야한다. 미디어를 통해 사건사고를 하루도 빠짐없이 접하는 당신도 예외가 될수는 없다. 사회적 통념이라는 틀을 만드는데 일조한 당신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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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그림 여행 나만의 완소 여행 2
최수진 글 그림 사진 / 북노마드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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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면서 사람들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여행을 추천하기도 하고, 심기일전을 위한 계기를 마련한다는 취지 아래 여행을 택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이 아니더라도 여러가지 개인적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베트남 그림여행의 저자인 최수진씨는, 왜 베트남으로 갔을까? 프롤로그에서는 [계절과 경비, 주어진 시간 안에서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적합한 곳이 정해지면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해답이 나오지 않을 경우엔 '언젠가 가봐야 할 것 같은' 그러면서도 '힘든 마음의 준비는 하지 않아도 될듯한'나라로 후딱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p.5)라고 말하며 그녀가 베트남에 가게 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책 제목으로 봐서는 여행지 선택의 이유와는 상관없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떠난듯하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책장을 넘기는 나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었을까? 일단 여행기니까, 베트남에 대한 일반적인 여행정보를 좀 얻고 싶고, 또, 그림여행이라 하니 그녀의 그림을 보는 재미를 기대해도 되겠다. 게다가, 종단여행이라 하지 않는가? 적어도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어느 정도 훑을 수는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가졌다.

 

결론부터 말해보자.

 

이 책을 읽고 베트남 여행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를 얻는데는 실패.

베트남에 대한 어떤 동경이나, 한번쯤 떠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데도 실패.

그녀의 그림을 보는 재미 역시 실패.

 

한마디로 내가 원했던 책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미리 읽어본 독자들의 코멘트나, 나보다 먼저 이 책에 대한 글을 쓴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면 그들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웟다고 한다. 여행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그림을 보는 것 역시 그러하다.

 

그러면, 나는 왜 그녀의 이야기와 그림에 집중하지 못하고, 공감을 얻지도 못했던 것일까?

 

이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베트남 종단여행에 대한 글에서는 온통 그녀가 바가지를 쓰거나 불쾌한 감정을 토로한 글만을 본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그림은, 글에서 받은 느낌때문인지 그림이라기보다 메모에 가까운 스케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는,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종단하며 그들의 생활을 몸으로 체험하고 그걸 그림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카페나 호텔에 앉아 자신만의 감정을 표출하는 그림만을 그렸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여행지에서 원하지 않는 여행을 한 것 같다.

 

그래도 꾹 참고 읽다보니(사실 그렇게 읽기 힘든 책도 아니고 글도 짧고, 별 내용도 없어서 책장 넘기기는 쉬운 편이다) 그녀의 두번째 베트남 여행 부분에서 그나마 여행기 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이다. 반은 건졌다.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앞부분과는 상반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다른 분위기의 글이 글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첫번째 베트남 여행에서 짜증과 불쾌감을 느꼈던 비슷한 상황에서도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첫번째 여행이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종단한다는 빡빡한 일정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경비를 아끼겠다는 생각이 더 많아셔였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두번째 여행에서는 아늑하고 편한 호텔에서 묵으면서, 경비에 대한 일화는 별로 찾아볼 수 없을만큼(그만큼 앞 이야기에서 바가지에 대한 일화가 너무 많았다) 여유로운 여행을 해서 그런가보다.

 

나는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가르치던 학생들 중에 베트남 학생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에 그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어느 정도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익숙함은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지에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쳐지나가는 여행을 할 경우에는 일부를 보고 전부를 판단하기 쉽다. 저자가 첫번째 여행에서 온통 안좋았던 기억만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베트남을 찾은 이유는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녀의 위트(?) 넘치는 글들은, 책으로 인쇄되어 나오기에는 부적절해보인다. 요즘은, 개인 블로그에 올린 잡다한 글들, 혹은 그와 비슷한 글이 책으로 나오는 게 유행인듯싶다. 블로그의 업데이트를 기다리며 하루 하루 들러서 보는 글과, 책이라는 껍데기를 둘러쓰고 인쇄된 매체로 읽게 되는 글은 차이가 있다. 적어도 화면상으로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글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뭐, 그런 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읽기 좋은 책이기도 하겠다.

 

그녀의 그림을 보는데 글이 많이 방해한 듯 싶다. 그림과 함께 쓴 글이 도움이 될 때도 있고 이렇게 방해가 될때도 있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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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질꼬질 냄새 나는 우리 멍멍이 - 장독대 그림책 10
해노크 파이븐 글.그림, 노은정 옮김 / 좋은책어린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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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아이가 가족의 그림을 그리는 걸 보면, 늘 같은 걸 그리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 했다. 아이의 그림은 아이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는 훌륭한 자료이기도 하다. 아이가 무의식 중에 그리는 그림을 보면서 나를 되돌아볼 계기가 생기기도 한다.

꼬질꼬질 냄새 나는 우리 멍멍이라는 책을 처음 펼치면, 흔히 우리가 보는 가족그림이 있다. 얼굴과 몸과 팔다리가 있는 단순한 그림이다. 이 단순한 그림도 처음에는 얼굴에 몸도 없이 팔다리만 그리다가 점차 몸도 그리고 팔다리도 자유로워지면서(?) 변화를 거듭한다고 하니 아이의 그림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을듯하다.

첫 페이지에 있는 단순한 그림을 넘기면, 자기가 생각하는 아빠의 이미지와 자기가 그린 그림이 다르다고 말하면서 새로 작품을 만든다. 아빠의 특징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여러가지 재료들을 가지고 아빠얼굴을 그리는 것이다. 용수철처럼 힘이 넘치는 아빠, 팽이처럼 신나게 놀아주는 아빠, 엉뚱하고 재미있는 아빠, 고집불통인 아빠를 그냥 선으로 그린 그림에서는 잘 느낄 수 없지만, 아이가 아빠의 특징을 나타내는 물건들로 그린 그림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보는 눈이 정말 뛰어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과연 내 아이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함께 동봉된 독서지도가이드를 보면, 아이가 처음부터 이렇게 잘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말라고 한다. 어느 정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이가 지금까지 한번도 사물을 사람의 특징과 연관시키거나, 사물의 특징을 비교해본 적이 없다면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라면 특별한 훈련이 없어도 잘해낸다. 때로는 내 눈에는 마냥 어리게만 보였던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단순히 사람 얼굴을 그리는 게 아니라 사물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고, 비유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인 것 같다. 단, 이런 책은 제시된 예시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당장 우리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아이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보자. 이럴 때 콜라주는 참 좋은 방법이다. 아이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나는, 아이가 어려서, 아직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할 줄 모르기 때문에 올해 7살이 되는 조카에게 보여주고 한번 해보았다. 아빠, 엄마, 그리고 가족같은 지니(조카네 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표현을 해보았다.

아빠는,

오락을 잘해서 몸은 키보드.
맛있는거 잘먹어서 눈은 쵸콜렛.
힘이 세니까 코는 힘센 망치.
잘 놀아주니까 입은 블럭이란다. 



하하..늘 컴퓨터만 끼고 사는 부자(父子)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제대로 아빠모습이다.

엄마는,
미싱을 잘해서 머리카락은 실.
엄마 눈은 맛있는거 많이 해줘서 귤
좋은냄새가 나서 코는 화장품.
알록달록한거 좋아해서 입은 메니큐어.
사랑스러워서 머리에 하트 핀이란다.

 

엄마가 매일 미싱으로 가방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아서그런가? ^^; 그래도, 네모난 아빠얼굴과는 달리 동그랗고 예쁜 접시얼굴이네. 
 
지니는,
따뜻해서 몸통은 모자, 다리는 장갑.
노는거 좋아해서 머리는 공.
너무 시끄러워서 꼬리는 마이크란다.


 

제대로다. 이 집 개가 제법 시끄러운 갠데, 그 특징이 한눈에 드러나는 모습이다.
아이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사물을 짚어내는 실력이 제법이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많은 것을 배운다. 아이의 생각을 넓혀주는 책을 만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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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미술관 -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정혜신 지음, 전용성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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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표지에 구름들이 흘러가는구나.. 그런데, 왜 사람 얼굴을 안그렸을까?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 책을 다 읽었을 즈음에, 책 표지가 아닌 책 속 내용에서 이 그림을 다시 보았을 때, 사람 얼굴을 안 그린게 아니라 솜사탕, 혹은 구름사탕에 가려진 거라는 걸 알았다. 순간의 착각이 꽤 오래간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나 역시 내가 보고 싶은대로 뭔가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림에세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기 때문에, 함께 수록된 그림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블로그에서 전용성이라는 화가에 대해 소개한 글을 읽었다. 특별한 소개없이(남편의 선배이자 옆집남자라는 정보밖에 없었다) 그의 작업실 풍경을 담은 사진을 보자니, 생뚱맞다. 어쨌든, 이 책 속 그림과 글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림을 보고 떠오른 생각을 글로 옮겼다는데, 내가 그림을 보면서 떠올린 것과는 다른 것들을 많이 쓴걸 보니,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책 속 그림을 먼저 쭈욱 훑었다. 그림을 먼저 본 이후에 그녀의 글을 읽었다. 혹시나 글이 그림을 보는 나를 방해할까 싶어서였다.

p.36 붉은색 꽃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마흔다섯송이가 활짝 폈다. 
p.48 두 남녀의 뒷모습이 가슴이 찡해온다. 왤까?
p.98 앞서 본 두 남녀의 뒷모습에 배경이 더해졌다. 삐쭉삐쭉..

그의 그림에는 유난히 뒷모습이 많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게다가 개 한마리. 그의 집에서 키우는 개일까?

그림을 다 본 후에 글을 읽기 시작했다. 글의 내용은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도 있지만, 별 상관없이 느껴지는 글도 있다. 나의 공감을 받은 글은,

p.13 나를 긍정하기 : '나'를 아름답다고 마음 깊이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너'를 긍정하는 일에도 예민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회는 각박해진다. 나를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이를 보는 눈도 넓어진다는 걸, 이미 과거의 몇몇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의 사회에서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p.41 귀 기울이기 : 자세히, 정확히 알지 못하면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마음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면, 삶에서 상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널렸다. 자기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진실이라 믿거나, 정답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곳,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p.45 시시함의 매력 : 힘을 합쳐 계란 삶기, 쓰레기 분리수거 함께 하기....등과 같은 무자극적인 일들, 그런 시시한 행위들이 사람 사이를 더 두텁고 끈끈하게 만듭니다.

힘을 합쳐 계란을 삶는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쓰레기 분리 수거 함께 하기와 같은 시시한 행위가 사람 사이를 두텁고 끈끈하게 한다는 말에는 깊이 동감하는 바이다. 쓰레기 분리 수거는 일반 가정에서 매일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다. 그런데, 이걸 온통 주부의 몫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 분리해놓고 밖에 내다놓기만 하라는데도 하기 싫어하기도 한다. 이런 시시한 일(?)이 때로는 부부 사이의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하하.

p.107 돌이 자란다 : 자식에게 좋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방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방해하지 않는 것이 무관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것 쯤은 알겠지.

p.139 행복한 옥수수 : 옥수수나 꽃게. 양손을 모두 써서 먹어야 하는 이런 종류의 먹거리는 손에 뭔가 묻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탐탐해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무엇에나 손 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폭력을 제외하고요.

오, 바로 내 이야기다. 나는 옥수수, 꽃게 이런걸 먹지 않는다. 수박이나 포도도 먹지 않는다. 바로 손에 묻는 것이 귀찮아서이고, 물이 줄줄 흐르는 것도 싫고 일일이 씨를 뱉어야 하는 것도 귀찮아서이다. 그렇다고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적어도, 나보다 이런 것들이 주는 기쁨을 하나씩은 더 맛볼 수 있다는 말이겠지?

180페이지 정도 되는 책에서, 그림 세개와 글 5개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시시하게 여겨진 건 아니다. 전체적인 글과 그림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아침에 일어나 그림 하나, 글 하나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런 류의 글이 그렇듯이 한꺼번에 쭈욱 읽어서는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글은 매일 업데이트되는 블로그 글에 어울릴런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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