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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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기차는 서로 잘 어울린다. 기차 안에서 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버스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아주 조금도 불가능하다. 느껴지는 감각이 다르기 때문이거나, 어쩌면 연상 작용 때문일 수도 있겠다. 버스는 어린 시절에 갔던 수학여행이나 캠프처럼 내가 가기 싫었던 장소를 떠올리게 한다. 기차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나를 데려디준다. 그것도 생각의 속도로.

하지만 철학과 기차에는 퀴퀴한 느낌이 있다. 둘 다 한때는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였으나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유물이 되었다. 오늘날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도 일부러 기차를 타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부모님이 말리는데도 일부러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철학은 기차 타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뭘 모르던 시절에나 하던 것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p.10

나는 철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기차는 좋아한다. 기차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교통수단으로서의 기차를 좋아한다. 지방에 살고 있으면, 수도권 지역에 편중된 문화 시설과 컨텐츠를 즐기기 위해 적지 않은 교통비를 투자해야 한다. 버스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기차는 돈이 많이 든다. (요즘은 비행기가 더 싸긴 하다) 대신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 나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 기차를 선택한다. 주로 책을 읽거나 업무를 하게 되는데, 아주 편안한 프리미엄 우등고속버스라고 해도 기차만 못하다.

이 책의 저자는 기차와 철학이 참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한때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였지만 지금은 약간 낡아버린 유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한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굳이 기차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국이라면 다를 것 같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기차로도 충분히 1일 생활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우리야 그렇다 치고, 나는 저자의 기차여행에 함께 탑승을 해보기로 했다. 여행은 혼자 가는 것도 좋지만 동행이 있다면 더 재미있는 법이다.

철학이라 하면 아무래도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철학을 배울 때 '철학'을 배우지 않고 '철학에 대해' 배우기 때문이다. 철학적 사고를 키울 수 없는 철학 수업을 하니 철학이 재미있을 수 없다. 철학은 지식 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사고방식,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무엇을'이나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p.12).

저자가 선택한 철학자는 총 14명이다. 새벽부터 황혼에 이르기까지 14명의 철학자와 함께 일어나 궁금해하고, 걷고, 보고, 듣는다. 때로는 즐기기도 하고 관심을 기울여본다. 싸우기도 하고 베풀기도하며 감사하거나 후회한다. 역경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거나 늙어가거나 죽음을 준비하기도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레우스, 소크라테스, 루소, 소로, 쇼펜하우어, 에피쿠로스, 시몬 베유, 간디, 공자, 세이 쇼나곤, 니체, 에픽테토스, 보부아르, 몽테뉴를만날 수 있다. 이들은 익히 들어봤고 잘 아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들의 사고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볼 때 저자는 그들 중에서도 소크라테스를 좋아하는 것 같다. 계속해서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거나, 의심한다. 그래서 이 기차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일 거다. 우리의 인생을 관통하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 몸을 실어 본다.

마르쿠스는 철학자이자 왕인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저자는 마르쿠스처럼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이 철학을 공부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마르쿠스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아 아니라 망각이었기 때문에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독촉했다고 한다. 《명상록》을 통해 마르쿠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마르쿠스는 스스로에게 생각을 그만두고 행동에 나서라고 한다. 좋은 사람에 대한 설명을 하지 말고 좋은 사람이 되라.

제이컵 니들먼의 《철학의 마음》 에 "우리 문화는 일반적으로 질문을 경험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질문을 경험한 철학자로 소크라테스를 든다. 소크라테스는 '무엇을'과 '왜'에 관한 질문에 관심이 없었다. 그가 관심을 가진 질문은 '어떻게'이다. 소크라테스는 지식보다 방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소크라테스에게 철학과 대화는 동의어였다. 삶을 성찰하거나 자기자신을 명확하게 들여다 보려면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며,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말을 남겼다. 나의 삶을 다시 한번 더 되돌아보게 된다.

장자크 루소는 산책자였다. 그는 자주 걸었고, 혼자서 걸었다.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한 그에게 '걷기'만큼 어울리는 것이 또 있을까. 저자는 루소의 철학을 '자연은 좋고 사회는 나쁘다.'라고 정리한다. 루소는 우리가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많은 것이 사회적 관습이라고 믿는다. 루소처럼 많은 철학자들은 걷기를 즐겼다고 한다. 걷기는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소크라테스도 아고라를 걷는 것을 즐겼고, 니체는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전부 걷기에서 나온다라고 하였다. 토머스 홉스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걷기를 즐겼다. 칸트는 엄격한 산책 일정을 고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느린 이동 수단인 걷기는 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소로는 숲속에서 홀로 자족하는 척하면서 몰래 엄마 집에 들러 파이를 먹고 빨래를 맡기는 등 위선적인 행동을 많이 했다고 비난받는다. 그러나 저자는 《월든》은 숲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즉 소로는 사회와 격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소로도 모든 철학은 궁금해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무엇이든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들이 붙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서로 견딜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거리"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우리 인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그리고 쇼펜하우어가 살던 시대에는 백과사전이 인터넷이었다. 그는 책만 열면 바로 해답이 있는데 골머리를 썩일 이유가 있겠는가.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내놓는 것이 100배는 더 가치있는 일인데 자기 생각을 하지 않고 책 앞으로 달려간다고 비판했다. (요즘은 그 책도 안 읽어서 문제~). 저자는 여기서 읽다를 클릭하다로 바꾸면 현재의 우리 모습이 나온다고 말한다.

1부를 통해 5명의 철학자를 만났다. 익히 잘 알고 있는 철학자지만, 저자의 생각과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그들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위선적이라는 소로나, 마조히스트 루소를 만나기도 했다. 이어지는 2부와 3부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내가 그나마 교과서에서조차 보지 못했던 철학자를 만난다는 것이다.

시몬 베유는 "가장 큰 희열은 가장 온전하게 주의를 기울였을 때 찾아온다"고 하였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을 떠올리게 한다. 관심은 집중이 아니다. 집중은 강제할 수 있으나 관심은 강제할 수 없다. 집중은 수축하지만 관심은 확장한다. 집중은 사람을 피로하게 하지만 관심은 피로를 회복시켜 준다. 집중은 생각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고 관심은 생각을 유보하는 것이다. 시몬 베유는 진정한 관심이란 기다림과 같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세이 쇼나곤은 낯설면서도 더 알고 싶은 철학자이다. 책에서 소개한 많은 철학자들 중에서 그의 생애와 철학을 상세하게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타고 철학자들과의 여행을 마친다. 철학이란 것이 늘 어렵게만 다가왓는데 조금은 편안하게 만나볼 수 있었던 책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한평생을 훑어내리면서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철학을 교양으로 읽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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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여우 - 숫자로 만든 스릴러 그림책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66
케이트 리드 지음, 이루리 옮김 / 북극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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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나오는 그림책은 참 많다. 게다가 한 마리로 시작하는 것을 보니 숫자 놀이인가? 아니면, 배고픈 여우 이야기일까? 여우 한 마리의 얼굴이 그려진 표지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본다. 이 그림책이 내 책상 위에 놓인지 좀 된 것 같은데, 이제서야 제대로 읽어본다.


여우 한 마리가 걸어간다. 알록달록 예쁜(?) 발자국을 남기며. 한솔이가 어렸을 때 에코센터에 가서 야생동물들의 발자국을 살펴보고 배웠던 적이 있다. 개과와 고양이과의 발자국이 달랐던 것 같다. 발자국이랑 배설물을 보면서 어떤 동물이 지나갔는지 확인도 해봤던 기 억이 있다.


이 그림책의 첫 페이지에는 여우 발자국이 한가득이다.

여우가 가는 곳은 닭들이 자고 있는 닭장이다. 살금살금. 부제처럼 '스릴러'를 느낄 수 있는 화면 구성을 보여 준다. 최근에 본 구미호 드라마들이 떠오른다. 옛날에는 구미호 하면 사람 간 빼먹는 여유였는데 요즘은 잘생긴 구미호가 많아서 이미지가 많이 달라진 듯하다. (말이 옆으로 샜네) 


여우는 살금살금 닭장으로 들어간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잠을 자던 닭들이 놀라서 푸드덕 깨어나면

여우는 맛있는 닭을 먹을 수 있을까? 어둠 속에서 닭털이 날리는 걸 보니 몇 마리 꿀꺽 했으려나? 싶은데...  

닭장 안에서 깨어난 수많은 닭들이 한꺼번에 여우를 쫓기 시작한다.

어둠과 대비되어 닭들의 화려한 색과 엄청난 개체수가 여우보다 더 무섭다. ㅎㅎㅎ

1부터 10까지 수를 세어가던 그림책이 갑자기 100으로 바뀐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중에서 이런 스릴(^^)을 느끼게 하는 그림책이 또 있었던가? 그림을 괴이하게 또는 무섭게 변형시키지 않으면서도 1, 2, 3, 4 숫자가 커지는만큼 긴장감도 커지는 그림책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은근히 오싹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맨 앞 페이지와는 달리, 마지막 페이지에는 닭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다. 여우와 닭이 한바탕 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 그림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우리는 '안도'를 하게 된다. 약간의 반전이 귀여운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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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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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 작가의 '아몬드'가 유명하지만(부산에서는 원북원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나는 읽어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나와도 인연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 이 책 '타인의 집'을 읽게 된 것도 독서동아리에서 함께 읽어보자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8편의 단편 소설을 모은 소설집이다. 첫 번째 소설 '4월의 눈'을 읽는데 가슴이 탁 막히면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옴을 느꼈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상황'은 다르지만 '그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이 오롯이 나에게 전이되는 기분이 들었다. 사이다처럼 이혼을 하고 훨훨 날아다니는 여자의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일일드라마처럼 눈물 줄줄 흘리고 매달리고 얽히고 얽히는 이야기말고,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벗어나는 이야기. 처음 그들이 이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는 그런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아내의 아픔을 남편은 이해할 수 있을까?

"난 단지 우리가 행복하길 바랐을 뿐이야."

내가 조용히 말했다.

행복, 아내가 그 단어를 중얼거렸다.

"난 차라리 우리가 처음부터 불행했길 바라." (P.36)

8편의 소설 중 '타인의 집'은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소설집에서 작가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타인의 집'은 쉐어하우스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지만,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직도 나의 집이 없는 내 모습이 묘하게 겹쳐졌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눈치싸움을 하고 결국엔 그들 모두 아무 힘이 없는 세입자일 뿐이라는 사실이 왜 그렇게 다 내 얘기 같은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족'도, '가정'도, 그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집'도 다 내게는 불안정하고 의미없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소설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같아서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그 반대였다.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거기에서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어서다. 나는 그들의 아픔에 지나치게 젖어들었고, 나만큼이나 대책 없는 그들에게 화가 났다. 끝까지 읽느라 조금 고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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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리커버)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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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호프 자런의 '랩 걸'을 떠올린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는 오히려 랩걸보다 더 공감하며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천문학자로서의 고민 속에 나와 혹은 우리와 공통되는 고민들이 살짝살짝 보인다. 거기에 연구만 하느라 연구실에 틀어박혀 자기 분야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답답한 학자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의 캐릭터가 보인다. 글 곳곳에 숨어 있는 문학과 영화와 음악과 대중문화가 좀더 가깝게 끌어당긴다.

참석자 중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사람은 유일한 학부생인 나뿐이었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외쳤다. 태양에서 IAU거리에 있는 지구에서부터 5AU거리의 목성으로 순간이동하는 주문을. 아주 짧고 간단한 문장이었다. "저요!" (P.19~20)

나는 언제나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고 믿는다. 나도 저자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들마다 손을 번쩍 들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저 순간 "저요!"하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는 다들 짐작이 갈 것이다. 그녀가 두번째 '저요!'를 외쳤던 것처럼 나 역시 그런 시간을 거쳐왔다. 내가 그녀처럼 대단한 과학자나 알아주는 유명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앞에 온 기회를 잡을 때가 있다. 나는 저자를 잘 모르지만, 어떤 성격일지 상상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참 쉽게 썼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만큼 이 책은 잘 읽힌다. 과학적 지식만을 다루지 않고 과학자로서의 삶과 짧지 않은 기간동안 한국에서 과학자로 살아가는 삶을 잘 그려놓았다. 특히 와닿았던 부분은 우리나라의 많은 기록에 남아 있는 천문학적 관찰 기록들을 이야기하는 부분과 이소연 우주인의 이야기, 그리고 학생들의 글쓰기에 관한 부분이었다.


학문은 정제된 기록에서 출발한다. 자신이 발견한 것이나 실험한 내용, 조사 결과와 그에 관한 생각 등을 잘 정리해서 이름, 날짜와 함께 기록해두면, 훗날 누구라도 그것을 참조해 재현해보고 거기에 새로운 부분을 더해 다시 자신만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다른 학자들이 따라 해보았을 때 같은 결과가 재현되도록 레고 조립 매뉴얼처럼 정확하고 자세해야 한다.

학자들은 교류를 통해 지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기록을 발표한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학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멀리 있는 학자들과도 교류하기 위해서 편지 형식을 취했던 것이 오늘날 논문의 전신이다. 논문에서는 과거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연구하고 논했던 내용을 정확히 밝히며 인용한다. 남의 업적을 내 것인 양하는 태도는 국가나 가족에 대한 긍지를 느낄 때나 쓰는 것이요, 남의 글 베끼기는 타자 연습할 때나 하는 일이다.

학문할 때의 글은 형식도 갖추어야 한다. 다양한 공간과 시간을 넘어 그야말로 '누구나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쓴이가 이미 갖추고 있는 명성이나 영향력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읽히고 판단 받을 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용은 뛰어날지라도 형식만은 판에 박혀 있어야 한다. 이 연구를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혹은 마침내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는 적지 않는다. 시적 허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대학생이라면 학문적 글쓰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문적 글쓰기는 유려한 글 솜씨를 요구하지 않는다. 연구 내용이 별것 아니더라도, 글이 서툴더라도, 남의 것을 베껴 열 쪽짜리 보고서를 쓰는 것보다 한두 쪽이라도 자신이 행하고 생각한 내용을 형식에 맞게 쓰는 것이 더 지적인 활동이다. 그것이 대학의 모든 강의에서 공통으로 배우는, 혹은 배워야 할, 대학생으로서의 기본 소양이다. (P.58-60)

좀 길게 인용을 하였다. 비단 이 내용은 대학생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의 글쓰기 또한 이와 같다. 대내외 문서를 작성하면 그 문서는 누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애써 만들어 놓은 문서가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거나 현학적인 표현으로 인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된다. 학교에서부터 글쓰기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실수를 한다. 기안서나 제안서를 쓰고 계약서를 쓰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라 막막해한다. 이과생들의 글쓰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렇다고 문과생에게는 이런 문제가 없다고 할수는 없다. 막연하게 길어진 문장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고,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했듯) 시적허용이 필요없는 문장을 써야 함에도 감성적인 단어를 마구 섞어놓기도 한다. 보고서라고 하기에 애매한 글들, 무엇을 기안하는지 제안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글에서 벗어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대학원생들은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나도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제 막 집중을 좀 해 보려는데 집에 갈 시간이라는 알람이 울리면 선뜻 손놓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생각해보면 뛰쳐나가지 않은 날이 드물다. 왜 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야 일어서는지. 엄마는 늘 뛰어다닌다. 그렇게 퇴근한 날은 읽고 있던 논문이나 책이 가방 가득 들어 있다. 부모 노릇도 연구자 노릇도 절반쯤만 할 수 있는 날이다. (P.77)

이 글을 읽는데 어찌나 공감이 되는지. 읽다 만 책과 자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퇴근하느라 핸드백이 아니라 무거운 백팩이어야 했고, 예쁜 구두보다 투박한 운동화일 수 밖에 없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저자가 아이를 재우고 마저 하려던 바램과는 달리 잠들어버렸듯이, 나 역시 그러한 시간을 보냈다. 대한민국의 위킹맘은 크든 작든 비슷한 일들을 겪고 사는 듯하다. 우주인 이소연에 관한 평가는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일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소연이 남자였더라도 그런 평가를 받았을까? 부모 중 누군가가 본인의 일을 잠시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를 위해 달려가는 것은 양육자로서의 의무다.(P.107) 엄마의 의무가 아니라.

저자의 글에는 우리나라의 우주과학의 미래를 위한 애정이 마구 묻어난다. 우주 탐사에 관한 정책은 특별한 정치색을 띠지는 않는다고 한다. 정계에서 과학자 집단에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분야나 국민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분야를 선별해달라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과학이든 기술이든간에 자기네가 하지 않으면 다 혈세 낭비라고 몰아붙이고, 해 준것은 없으면서 공은 자기들에게로 돌리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의 억지 선동)가 자주 보이던데....나의 기우이길...

우주탐사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필수라고 한다. 저자는 비전을 제시하는 자문단도,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도, 그것을 승인하는 최고결정권자와 국회, 공무원들, 그리고 우주탐사를 지지하고 애정어린 눈길로 봐주는 국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우주탐사가 늦어지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제는 자신있게 발걸음을 더 떼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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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고정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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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의 제인 오스틴 전집을 구입한 지는 조금 되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읽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 이번에 드디어 읽었다. 함께 읽는 독서동아리가 없었다면 아직도 책장 한켠에 놓여있을 책이었을 수도 있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부유한 독신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 (p.11)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 그 독신 남성은 부유하고 멋있고 모든 걸 갖추었겠지? 그와 관계가 있을 그녀는 아마도 제법 똑똑하고 괜찮은 미모를 지녔을 것이며, 대신 집안 형편은 좀 딸릴 수 있겠네. 나의 이 생각은 이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일단 맞아떨어지는 설정이었다. 어린 시절 하이틴 로맨스와 할리퀸 로맨스 시리즈를 모두 섭렵한 이래(그때가 초등 5학년 경부터 중등 3학년 즈음까지였다) 이런 류의 로맨스 소설은 가능한 안 읽을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아, 그래도 읽다보면 좀 다르지 않을까? 사후 20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읽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책이니까. 그래서 계속 읽어가기 시작했다. 베넷 부인과 베넷 씨가 네더필드 파크에 이사 오는 빙리 씨를 두고 자신의 딸들이 결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화자는 베넷 씨를 예리한 지성, 냉소적인 유머, 내향적인 기질, 충동적인 변덕이 기묘하게 섞여 있어서 그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그에 반해 베넷 부인은 비해력도 떨어지고, 견문도 좁고, 오로지 딸들을 출가시키는 일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각자 독특한 자기만의 개성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등장하지만 어느 하나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책 속 배경이 되는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적 조건 등은 지금 보면 고루하고 갑갑한 것임에도 술술 읽히는 것은 그런 인물들이 자기 역할을 잘 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베넷 씨에게는 다섯 명의 딸이 있다. 제인은 아주 아름다운 아가씨이고, 리지(엘리자베스)는 인물은 제인보다 못하고 싹싹하지도 않지만 예리한 면이 있고 똑똑한 딸이다. 메리, 리디아, 키티는 베넷 씨 생각에 멍청한 아이들일 뿐이다. 물론 부모로써 딸들을 사랑하긴 하지만 말이다. 네더필드 파크에 온 빙리 씨는 무도회를 열었고, 거기에서 빙리 씨의 친구인 다아시 씨가 주목을 받았다.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 품위 있는 태도 때문이었지만 곧 고약한 태도로 인해 급격히 인기가 떨어지고 만다. 엘리자베스 역시 다아시 씨와 빙리 씨의 대화를 듣다가 그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갖게 된다.

무도회와 정찬 초대 등을 통해 다양한 이웃 간의 교제가 이루어진다. 제인과 엘리자베스도 네더필드의 여자들(허스트 부인과 빙리 양)과 교제를 한다. 빙리 양은 제인의 상냥한 태도를 아주 마음에 들어하였다. 제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운 태도를 취하며, 누군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부정적으로 바꾸는 일을 어려워할 만큼 마음도 얼굴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빙리 양을 비롯한 그쪽 가족들이 자신의 가족들에게 거만하게 구는 것이 못마땅해하였다. 그나마 빙리 씨가 제인을 향해 보여주는 친절과 호감 때문에 그들도 예의상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샬럿(엘리자베스의 친구)은 이렇게 말한다. "결혼 생활에서 행복이란 순전히 운에 달렸어. 서로의 기질을 속속들이 안다거나 원래부터 아주 비슷했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건 아냐. 기질은 세월이 지나면서 계속 달라져서 결국은 서로 부딪치게 되지. 인생을 함께 보낼 사람이라면 결점은 되도록 모르는 게 좋아."(p.38)

배넷 씨의 다섯 딸은 물론이고,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남녀가 결혼을 하기 위해 상대를 물색하고 청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결혼은 신분 상승 혹은 경제적 여건이 달라질 수 있는 해법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오히려 샬럿의 결혼관은 마땅해보인다.

무도회 이후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씨에 대해 오해의 폭을 계속 넓혀가는듯하다. 내가 보기에는 다아시 씨가 계속 좋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은데 엘리자베스는 왜 모를까? ^^;

나도 '첫인상'이 꽤 오래 가는 편이다. 처음에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던 사람은 늘 일정 정도 벽을 쳐놓게 된다. 어떤 커다란 계기가 생기지 않는 한 첫인상이 바뀌기에는 어렵다. 아마도 엘리자베스 역시 그랬을 것 같다. 제인이나 엘리자베스에게 좀더 교양 있고 우아한 엄마와 동생들이 있었다면 그들의 인생도 달라졌을까? 평판이란 것이 그렇게 중요한 시대처럼 말하지만 결국은 남자의 평판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콜린스 씨나 위컴 씨 같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게 되는 과정을 보아도 그렇다. 나라면, 그런 사람의 '과거'라면 그를 좋은 사람으로 절대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유산을 상속받거나, 빚을 탕감하게 되고 '결혼'을 함으로써 모든 게 용서(?)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때문에 도망간 여자는 손가락질을 받지만, 사랑때문인지 돈때문인지 이유도 불분명하게 도망간 남자는 그다지 평판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엘리자베스나 제인이 엄마와 동생들 때문에 별볼 것 없는 가문의 딸로, 곁에 있는 이들이 결혼을 반대하는 것도 정당하게 변명이 되는 상대로 보여지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엘리자베스는 위컴 씨, 콜린스 씨, 다아시 씨 앞에서도, 그리고 숙부인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법한 캐릭터다. 현실에서도 그렇게 당당하게 표현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비록 시대나 사회적 상황이 지금과는 다르다고 하여도 엘리자베스 같은 당당한 여성상이 요구되는 지금에도 많은 이들이 재미있게 읽는구나 싶었다.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가문이 지체없는 가문이라 하여도 사랑 앞에서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마도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흔들었지 않을까? 오해와 착각으로 인해 꼬이고 꼬인 인연의 실타래를 푸는 데에는 그들의 솔직함, 그들의 진실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제인 오스틴의 책을 몇 권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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