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롱이의 꿈 동심원 11
이옥근 지음, 안예리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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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느낌이 물씬 나는 노란 은행잎과 다람쥐가 그려진 표지를 보면서, 문득 아, 가을이구나. 한마디 툭! 던져본다.

아침의 상쾌하고도 쌀쌀한 기운이 더해져 가을 속으로 푹 들어왔다는 느낌이 든다.

 

동시를 이야기할 때 '어린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이렇게 가끔 동시를 통해 어린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샛길은 현실 속에서만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인터넷 샛길]을 읽다보면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아 움찔한다.

 

아침이면, 우리 동네에는 부식을 파는 트럭이 올라온다. 어릴 땐 문밖만 나서면 이것저것 파는 작은 가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대형마트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가게가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골목 안까지 들어오는 부식트럭이 반갑고 편하다. [가자 가자, 과자 사러 가자!]에는 과자 파는 트럭이 나온다. 조금 생소하고 낯설지만, "과자가 왔어요, 과자가!"하고 외치는 소리가 "배추 왔어요, 무 있어요"하는 소리와 겹쳐 묘하게 마음을 끈다.

 

'엘리베이터 탈 때는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아저씨, 미안해요]는 유치원 가는 아이를 붙들고 낯선 사람 뿐만 아니라 아는 사람이라도 엄마가 미리 말한 게 아니면 절대 따라가면 안된다고 다짐을 받는 내 모습이 떠올라 씁쓸했다. '손목에 철사를 두르고 모자를 눌러쓴 모습의 아저씨'뿐만 아니라 다정한 모습을 살갑게 대하는 동네주민조차 의심을 해야 하는 세태가 보이는 것 같다. 아이들의 동시에서 이런 소재를 만난다는 것은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다. 그래도 마지막에 미안한 마음에 인사를 하는 결말에 안도하긴 했지만.

 

'산골 폐교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놀던 다람쥐'를 보고 온 날 베란다에 풀었다가 뒷산으로 돌려보낸 다람쥐 이야기인 [다롱이의 꿈]도 씁쓸하긴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편리함 속에 가둬 버린 자연이 어디 다롱이 하나뿐이겠는가? 자연은 자기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가장 행복하다. 다롱이가 화분에 묻어둔 씨앗이 싹을 틔웠을 때 다롱이의 부재를 느끼겠지만, 다롱이는 산으로 돌아가 더 행복할 것이다.

 

'큰소리 뻥뻥'치는 사람을 나는 별로 안좋아한다. 책임지지도 못할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는 생각이 들뿐 아니라 그 속에 얼마만큼의 진실이나 진심이 담겨있는지 헤아리지 못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빠의 큰 소리는 가슴이 아려온다. [큰소리 뻥뻥]에는 우리의 아빠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담겨있다. 아이들은 주눅들고 왜소해진 아빠보다 비록 지키지 못할 말이라도 큰소리 뻥뻥 치는 아빠가 더 좋다.

 

동시집을 읽다가, 왜이리 씁쓸한 느낌이 드는겐지. 물론 이 동시집에는 작은 희망과 긍정의 힘이 보이는 시들도 많다. 방앗간 앞 시멘트 틈에서 싹을 틔운 [방앗간 고추씨]가 그러하고, [훌라후프]를 돌리며 '지구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마애삼존불상을 닮은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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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 생길 거야 노란상상 그림책 3
리즈앤 통 글, 유진 김 닐란 그림, 김경연 옮김 / 노란상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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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자마자 나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 일이 생길거야. 요즘처럼 힘들고 답답한 날에는 이런 말이 정말 듣고 싶다. 그리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는 절문 옆의 참새 우리에서 그 새들을 누군가가 풀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불교에서는 잡힌 생물을 자유로이 풀어주는 것을 선행이라고 생각한다." 마이는 자기가 풀어주고 싶지만 그럴만한 돈이 없다. 그래서 새 구경도 하고 모이도 준다.

마이는 불당 안에 있는 투에게 씨앗을 주며 새들에게 모이주는 것을 도와달라고 말한다. 마이가 줄 수 있는 것은 씨앗뿐이었지만, 마이의 마음은 투에게 전달이 된다.

"자유로이 훨훨, 자유로이 훨훨
파아란 하늘 속으로,
착한 일을 하면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온다네."

이 책에서는 이 노래가 울려퍼진다. 책 속의 인물들의 마음 속에서, 그리고 책을 읽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마이에게 씨앗을 받은 투는,
유리조각에 발을 베인 소녀에게 슬리퍼를 벗어주고,
물 긷는 소녀는 달구지를 몰고 가던 옹 하이에게 물 한그릇을 주고,
옹 하이는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위태위태 걸어오는 할머니를 태워주고,
할머니는 스님께 쌀밥을 주고,
스님은 병든 소년에게 침을 놓고 불경을 외우고,
소년의 아버지는 새장에 갇힌 참새들을 풀어준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부드럽고 편안하다.
그들은 넉넉하지 못하고, 고달프고, 병든 아이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이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줄 줄 안다. 그리고, 그 선행은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한 사람의 선행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친절의 수레바퀴는 사람들 마음 속에 있었다.

한솔이는 5살이다. 책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기에는 어리다. 불교재단이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서 그런지 낯설기보다는 가깝게 여기는 듯하다. 좋은 행동을 하면 좋은 업이 쌓이고, 나쁜 행동을 하면 나쁜 업이 쌓여서 다시 태어날 때 영향을 미친다는 불교의 전통을 굳이 종교적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가 지켜야 할 도덕과 전통과 관습 속에 이미 그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었던 책이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어주다가, "자유롭게 훨훨~"하는 노래소리 대목이 나오면, 한솔이는 자기가 만든 음에 가사를 붙여서 노래로 불렀다.

그리고 한솔이에게 '베트남'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세계 지도를 보기를 좋아하고, 어딘가 외출을 할 때면 자기 맘대로 그린 지도를 갖고 나가야 하는 한솔이는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책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는 물론이고, 자주 접하기 어려운 베트남의 전통이 포함된 그림책이라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대해 함께 알아보기로 했다. 마침, 근처 박물관에서 베트남문물전이 열린다고 해서 함께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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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9-16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란 상상이란 출판사가 있네요.

하늘바람 2010-09-16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담신 메시지가 참 좋네요.
엄마의 고운 바람으로 자라는 한솔이
5살 한솔이 많이 컷지요?
 
<한국 과학사 이야기 1>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국 과학사 이야기 1 - 카이스트 신동원 교수님이 들려주는 하늘과 땅의 과학 한국 과학사 이야기 1
신동원 지음, 임익종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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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미있는 과학사 이야기를 읽었다. 역사책을 통해 한국의 과학을 살펴보거나, 인물을 통해 접한 적은 있지만,

그때마다 단편적인 지식을 얻었다면, 이 책은 한국의 과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길잡이글에서 저자는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으로 나누지 않고, 하늘, 땅, 생물, 몸의 과학을 나누었는데, 왜 이렇게 나누었는지를 이해하려면 우선 오늘날의 과학과 옛 과학이 서로 같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한다고 말하며 "동양에서는 자연에 대한 학문을 격물학(格物學), 이학(理學) 또는 물리(物理)라고 해서 모두 '사물의 이치를 캔다'는 뜻"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현재의 과학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이해하게 하고, 서양과 동양의 과학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앎으로써 언제, 어디의 과학이 우수하다 아니다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섯부른 판단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기술;이 과학'과 비슷한 모습을 띠기도 하지만, 기술은 과학과 별로 상관없이 발달했어. 기술은 자연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사람이 생활하고 생존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하여 기술의 발달을 과학의 발달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우리에게 다른 깨달음을 준다.

 

더불어 이 책은 오늘날의 잣대로 옛 과학을 바라보지 말 것과 비약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과학을 다룬 책을 보면 세계 최초,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붙이기를 좋아하는데 그것이 아니어도 옛 과학은 충분히 우리가 알아야 하고 참고해야 할 것임을 알게 해 준다.

 

1권인 이 책에서는 1부 하늘과 2부 땅으로 나누어진다.

 

옛 사람들은 오늘날 천문학보다 관심 영역이 훨씬 넓었다(p.13)고 한다. 이러한 관점을 이해하고 있어야 옛 과학을 오늘날의 잣대로 평가하는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천문학을 살펴보는 과정으로 제일 먼저 고인돌에 새겨진 별을 이야기한다. 내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운 내용에는 고인돌에 새겨진 별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선사시대의 하늘은 이어 무덤 속의 벽화에 그려진 별자리로 이어진다.

 

요즘도 혜성의 폭발이나 별똥비가 내리는 날은 사람들의 관심이 하늘로 모아진다. 옛날에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기우너전 1세기 무렵에 이미 별똥비 기록이 등장한다고 한다. 신성의 폭발장면도 있고 흑점에 대한 기록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열심히 하늘을 관찰하고 기록한 것이 하늘의 재앙을 읽어내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가 천문지도를 그렸다거나, 조선시대에 만든 여러 해시계와 측우기, 자격루, 동서양의 과학이 만나 만들어진 혼천시계, 칠정산과 같은 달력, 그리고 음악과 도량형, 수학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옛 사람들이 하늘을 어떻게 관찰하고 생활에 응용했는지를 알 수 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즐거움도 있다.

 

지금도 풍수지리는 여러 분야에서 응용된다. 더불어 지도 제작에 대한 이야기들은 여러가지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어려운 과학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으므로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한국의 과학을 다룬 책들이 어린이의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되다보니 전문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빼놓고 최초와 최고라는 찬사로만 채우지거나, 인물 중심으로 인생역정을 보여주는데 치중하다보면 뭔가 허전한 기분을 느끼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러한 점을 잘 충족시키고 있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것이 무조건 좋고 옳다가 아니라 균형잡힌 시각으로 과학사를 훑어볼 수 잇도록 도와준다. 세계 최고거나 최초가 아니여도, 발달된 문물과 과학지식은 받아들이고 우리 땅과 실정에 맞는 과학으로 발전시켜 옴으로써 그것이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친 과학이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이 책을 통해 어른인 나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 조상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어떻게 배우고 익혔으며 실생활에 적용했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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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우 아저씨네 노래창고 모음집 (12CD)
굴렁쇠 아이들 노래, 백창우 작곡 / 보림(음반)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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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이가 올해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다. 불교재단이다보니 반야심경을 줄줄 외우고, 길가다 스님을 보면 반가워하고, 목탁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면, 한솔이가 부르는 노래가 달라진 것은 천천히 변해가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이전에 한솔이가 부르던 노래는 뽀로로 동요가 거의 전부이다시피했다. 거기에 가끔 내가 불러주는 아주 오래된 동요가 몇 개 있을 정도. 그런데 유치원에 가더니 부르는 노래가 달라졌다. 노래를 부르다 나에게 더 가르쳐달라고 하는데, 내가 모르는 동요들 뿐이라 난감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컴퓨터로 동요를 찾아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한솔이가 엄마가 모르면 컴퓨터로 찾아달라고 하는데, 아이들 동요목록을 봐도 모르겠고, 한솔이의 노래만 듣고 동요를 찾는 것도 어려웠다. 

그러다가, 백창우 아저씨네 노래창고 CD의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구입을 했다. 한솔이는, CD의 목차를 읽으면서 자기가 듣고 싶은 노래를 찾아서 듣는다. 보통, CD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일은 거의 없다. CD플레이어로 자기가 듣고 싶은 노래를 찾아서 그것만 반복해서 듣는다. 한글을 읽을 수 있으니 CD의 목차가 적힌 종이는 늘 한솔이 차지다.  

예전에 [노래하는 강아지똥]과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를 통해 백창우님의 노래에 익숙한 한솔이. 그래서일까, 이 CD도 한솔이가 즐겨듣는 CD가 되었다. 전통동요의 느낌이 나면서 가사는 재미가 있다. 아이는 술술 잘도 따라 부른다. 개인적으로 노래가사를 정말 못외우는 나는 한솔이가 가사를 외우는 걸 보면 늘 신기하다. 잠잘 때 늘 책을 읽어달라는 한솔이가 한동안은 이 CD를 계속 들으며 잠을 잤다. 평소에는 자기가 듣고 싶은 곡만 듣고, 잠자기 전에는 CD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게 된다. 

알고보니 유치원 통원버스에서도 이 노래들을 들려준다고 한다. 곡도 좋고 가사도 좋다. 한솔이는 가끔 동요에서 들리는 우리 악기 소리를 흉내내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뭔가를 알려주려는 노래가 아니라 우리의 자연과, 삶을 그린 노래들이라서 특히 더 좋은 것 같다. 

이원수님이나 이문구님의 동시에 곡을 붙인 것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백창우동요집이 더 좋다. 덤으로 각 CD마다 노래 반주가 3-4개씩 들어있어서 혼자 따라부리기도 좋다. 모든 게 반주가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니라서 아이가 원하는 곡의 반주가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가사없이 듣는 곡도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 어릴 때 부르던 동요들보다 이 동요들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한솔이가 내가 어릴 때 부르던 '노을'이나 '섬집아기'같은 노래도 좋아하지만.  

나도 가끔 한솔이가 유치원에 가고 없을 때 이 동요집을 듣는다.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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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0-09-10 0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구입했는데, 그렇게 즐겨 들어지지 않네요. 음악과 워낙 친하지 않는 제 탓이지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도 들려주니 좋아하더라구요.

하양물감 2010-09-11 14:22   좋아요 0 | URL
한솔이는 이 cd의 노래들 다 좋아해요.(^^)
 
<달 샤베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달 샤베트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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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나 작가의 전작 '구름빵'이 제목에서부터 친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면, '달샤베트'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게 개인적으로 '샤베트'를 별로 안좋아하는데다가 아이에게 샤베트를 사준 적도 만들어준 적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솔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다가 조금 난감했던 것이 '샤베트'가 뭐야?라고 묻는데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다. 한솔이에게 '빵'이 아주 익숙한 음식인데 비해 '샤베트'는 낯선 음식이었던 것이다. 물론 책을 보면서, 달 아이스크림보다는 달샤베트가 훨씬 어울리는 음식이라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본의아니게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샤베트를 하나 사줄 수 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느낌이나 상황은 그렇다치고, 일단 작가의 상상력은 여전했다. 무더운 여름밤을 참 잘 표현했다는 생각도 든다. 창문을 꼭꼭 닫고, 에어컨을 쌩쌩, 선풍기를 씽씽 틀고 잠을 자는 사람들. 그들이 사는 집 밖 어둠 속에서 더위에 녹아내리고 있는 커다란 달님. 

   

예전에는 창문을 활짝 열고 부채질을 하거나 선풍기 바람을 쐬곤 했기에 여름밤의 정취를 제법 느낄 수 있었지만, 에어컨을 켜면서부터는 창문이고 방문이고 꼭꼭 닫으니 밤하늘을 볼 일도, 여름밤의 벌레소리도 잘 들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아무도 창밖 풍경에는 관심이 없는 밤, 녹아내리는 달님을 부지런한 반장할머니가 발견하고, '달방울'을 받는다.  

 

그런데 아파트에 정전이 일어나고, 깜깜해졌는데, 달방울을 받은 할머니집만 불이 훤하다. 전기가 아닌 달님의 빛으로 가득한 할머니집. 사람들은 할머니의 샤베트를 받아들고 시원해져 집으로 돌아간다.  여름밤 전기 과부하로 인해 정전이 되고, 사람들은 그제서야 달빛을 보는 것이다.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정전이 잦았던 옛날에는 집집마다 초를 구비해놓았었고, 어쩌다 정전이 되면 초를 찾아 촛불을 켜던 그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요즘에야 정전이 흔한 일은 아니라 텔레비전 뉴스에도 나오곤 하지만, 예전에야 흔한 일상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잠깐의 정전은 촛불을 켜면 또 그만이었지만, 요즘은 정전이 되면 사람들의 일상이 모두 정지된다. 그만큼 전기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의 달샤베트는 어린 시절 촛불을 생각나게 한다.  

 

사람들이 달샤베트를 먹고 잠든 밤, 즐거운 꿈이라도 꿀 것 같은 밤이다. 그때 이 할머니의 집에 손님이 찾아온다. 절구와 절구공이를 등에 멘 옥토끼 두 마리. 이 책은 자꾸 나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만든다. 달에는 절구를 찧는 옥토끼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고 믿었던 그 시절로 말이다. 지금 한솔이는 이 책을 보면서 왜 옥토끼 두 마리가 갑자기 나타났는지 어리둥절해한다. 달에는 토끼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이미 달을 과학적(?)으로 알고 있는 탓이다. 그러고보면 요즘 아이들은 상상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구나 싶다.

 

달이 사라져버려 갈 곳을 잃은 옥토끼 두 마리. 할머니는 남은 달물을 부어 달맞이꽃을 피워낸다. 달처럼 환하고 아주아주 커다란 달맞이꽃이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자 작은 빛이 점점 자라나 커다란 달이 된다. 

   

달이 차고 지는 모습을 보며 또다른 상상의 세계로 달려가곤 했는데, 지금 우리 아이들도 그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  

 

한 권의 책을 통해 나는 어린 시절을 돌이켜볼 수 있었고, 여름 밤의 정취를 느껴보고자 집안의 전기를 모두 끄고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어린 시절 보았던 새까만 밤하늘과 빛나는 별들을 찾기는 어려웠다. 대신, 밤거리를 여전히 밝히고 있는 불빛들과 시끄러운 차소리가 가득하다.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생겼다. 한솔이는 덥다고 칭얼거린다. 조금만 기다려 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거야.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그 밤바람은 뜨거운 도시의 열기에 묻혀버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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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0-09-10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 너무 좋네요. 얼른 한 권 사야겠어요. 고맙습니다. 꾹~

하양물감 2010-09-11 14:28   좋아요 0 | URL
구름빵보다 못하다는 평가도 많이 있더라구요. 그렇지만, 구름빵도 처음에 봤을 때는 굉장히 낯설었는데 점차 좋아졌었거든요. 저한테는 이 책도 그런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