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비룡소 전래동화 24
성석제 글, 김세현 그림 / 비룡소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래동화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옛날에는 전래동화가 말그대로 전래되어 내려왔었기에 누가 어떤 마음으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각색되기도 하고, 축소 또는 확대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에게서 듣는 전래동화는 감칠맛이 더 풍부했던 것 같다. 요즘은 이야기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해줄 사람이 주변에 별로 없다. 하물며 나조차도 전해들은 이야기보다 책으로 읽은 이야기가 많다보니 입말로 재니나게 풀어줄 자신이 없다. 그래서 제대로 이야기를 풀어놓은 전래동화, 나의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있는 전래동화를 찾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완벽하게 찾아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얼마전에 도서관에서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한번 살펴보았는데 의외로 마음에 드는 책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비룡소의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전래동화를 글과 그림으로 옮기는 데에는 여러가지 제약이 따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그림책은 어떨까? 일단은 글로 옮긴 이가 성석제라니 만족. 그림은 후루룩 훑어보니 고구려벽화같은 느낌이 든다. 이것도 색다른 느낌이다.

 

  


고구려 때의 이야기니 고구려 느낌을 살려그린 그림이 잘 어울린다. 난 어렸을 때 '바보온달'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바보의 이미지를 떠올리곤 했다. 내가 아는 '바보'는 그것뿐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그림책에서 보여주는 '온달'의 모습은 어떠할까? 일단은 온달이 다른 아이들보다 키도 크고 몸도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를 벗기고 옷을 제대로 갖춰입자 그는 '바보'가 아니라 '건장한 청년'이었다. 

   

 이렇게 온달의 모습을 새로 보고 나니, 그가 유명한 장수가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바보'의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서 용맹한 장군의 모습을 보여주기란 아무리 상상력을 쥐어짜내려해도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릴 적 기억에 온달이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라는 정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그림책은 그러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다듬어지지 않고 가꿔지지 않은 한 청년의 지적세계는 물론이고 외형적인 변화까지 이끌어낸 것은 바로 평강공주이다. 평강공주는 제대로 된 원석을 골라내고 다듬을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것은 그녀가 받은 교육이 그러했을 터이고, 배운대로 실천한 것이다. 그저 매일 울기만 하는 울보공주가 아니라, 궁궐에서 응석받이로 커온 공주가 아니라,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실천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역사에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나는 이야기 속의 그녀 평강공주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굳이 여기서 여자가 할 일과 남자가 할 일이 다르다고 구분하지는 말자.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인정해주고, 내가 가진 것을 펼쳐보일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과, 그 도움을 통해 세상에 나서게 되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싶다.

 

 

 

 

오랫만에 읽어본 전래동화 한 편이, 나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게 한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도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평강공주'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만날 수 있다면 더 없는 행운일 것이고, 지금은 내가 (부모가) 훌륭한 선생님이자 조언자로서 옆에 있어주고싶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브캣 2013-02-23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똘망똘망 왕국의 비밀 - 제7회 (주)우리교육 어린이책 작가상 창작 부문 수상작 힘찬문고 59
김미숙 지음, 윤지영 그림 / 우리교육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똘망똘망 왕국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똘망똘망'이라는 단어가 말해준듯, 이 책에는 보는 것과 관계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인 혜안이의 이름에서도 '보는 것'이 연관된다. 제목과 주인공 이름, 그리고 첫번째 에피소드까지 모두 '보는 것'과 관계가 있다.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보통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알고 있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시각'이라는 단어에는 진짜 '보다'의 의미도 있지만 어떤 '관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연발생적으로 본다는 것에 익숙하게 살고 있다. 보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남과 다르게 보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현대사회는 '남과 다르게 보는 것'을 중시한다. 그것을 창의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다르게 본다'는 것을 '이상하다'거나 '정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우리의 주인공 혜안이는 남과 다르게 보는 아이이다. 시력검사표에 나온 물고기 그림, 나비 그림 하나도 남들과 똑같이 보지 않는다. 혜안이의 눈은 마음과 연결되어있는 듯하다. 남과는 다르게 보는 눈을 가진 아이. 남혜안.

 

 

 

혜안이는 시력이 나빠졌고, 안경을 써야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집으로 돌아온 헤안이는 엄마의 모습을 마주하지만, 엄마는 뭔가 딴 생각에 잠겨있다. 혜안이의 존재는 엄마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누군가 안경원에 함께 가주었으면 하지만, 혜안이는 혼자서 안경원에 간다. 어린 헤안이를 돌봐주는 어른들의 부재가, 이 글을 읽는데 어떤 단서가 될 듯하다.

 

혜안이가 그곳에 잇는지조차 몰랐던 새빛안경원에서 안경을 받아온 날, 이상한 경험을 한다. 천장에 생긴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이다. 어딘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장치치고는 조금 허술한 면도 있지만, 어쨌든 안경을 쓴 혜안이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혜안이가 들어간 세상은 신기하게도 꽉차있는 세상이다. 생각하는 것도 보이고, 한숨쉬는 것도 보인다. 슬픔도 기쁨도 즐거움도 모든 것이 보이는 세상이다. 모든 것이 다 보이는 세상은 편한기도 하지만 불편하기도 하다. 속마음을 다 들켜버리거나 감정상태를 다 읽혀버렸을 때의 황당함을 느껴본 독자라면 이해할 수 있을듯하다. 혜안이가 들어간 세상은 모든 것이 보이는 세상이다. 그리고 혜안이에게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있다는, 이 세상에서는 '보이는 끈으로 연결된' 인연을 찾아나선다. 물론 혜안이는 그 끈이 어디까지 이어있을지는 알지 못한채 말이다.

 


 

 

그리고 혜안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수퍼박테리아. 솔직히 말해 이 수퍼박테리아가 왜 혜안이와 함께 다녀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수퍼박테리아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스토리대표그룸 할아버지를 만나기도 하고, 장미향 아줌마를 만나기도 하면서 도착한 곳에서는 드디어 인연의 끈이 연결된 상대를 찾는다. 그는 바로 혜안이의 형, 혜성이다.

 


 

 

혜안이가 죽을 고비를 넘기는 모험을 하는 가운데, 혜성이와 혜안이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혜안이는 신기한 안경을 쓰고 이 세상으로 왔다지만 형은 왜 이 세상에 있는 것일까?

 


 

 

형의 도움으로 무사히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온 혜안이에게 안경원 누나는 현실을 알려준다. 혜안이가 안경을 맞추러 온 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안경원누나와 혜성이를 잃고 혜안이의 눈마저 잃게 하였다고 슬피 우는 엄마.

 

 

원래부터 남다른 세상을 보아 온 혜안이에게 실제로 보이지 않는 눈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는 또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으니까. 엄마의 슬픔도 날려줄 수 있는 방법을 혜안이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모든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 속에 얼마나 많은 인연들이 함께 하고 있는지를 아니까 말이다.

 

전반적으로는 이야기가 재미나고, 주제도 좋지만, 어디선가 본 장면 같은 느낌이 들어서 참신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중간에 혜안이의 이름이 혜성이로 오타난 부분도 보이고, 전반적으로 산만한 느낌이 드는 아쉬운 글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기한 붓]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신기한 붓 사계절 그림책
권사우 글.그림, 홍쉰타오 원작 / 사계절 / 2012년 11월
절판


읽어 본 그림책 중에 중국작가의 책은 손에 꼽을만큼 적다. 영어권 그림책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일본그림책이다. 게다가 중국작가가 그린 중국그림책은 더 적다. 이 그림책도 이야기는 중국이야기이지만 그림은 한국작가가 그렸으니 한국그림책이다. (이 점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그림책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기한 붓은, 홍쉰타오의 <신필마량>이라는 동화를 그림책으로 그려내었다. 홍쉰타오는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를 모아서 <신필마량>을 썼다고 한다. 전래동화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특징을 이 그림책 역시 모두 가지고 있다. 한없이 착하고 선량한(게다가 외모까지도 그러한) 주인공과, 자기욕심만 채우고 주위를 돌아볼 줄 모르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조연(게다가!! 외모까지도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악당스러운)이 등장한다. 그리고 당연히 마량은 신선의 도움을 받고, 악당인 원님은 마량을 괴롭히다 벌을 받는다.



등장인물의 행적과, 줄거리는 전래동화의 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나는 그림작가가 인물을 너무 정형화해서 그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착한 얼굴을 하고 나쁜 짓을 하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정말 따스한 품성을 지닌 사람도!!

마량은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지만, 집이 가난하여 붓을 살 수는 없었다. 물론 종이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마량이 바닥에 새를 그리고 있으면 새들이 날아와 구경을 하고 있을정도니, 얼마나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멋진 붓으로 커다란 종이에 원님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 이 장면은 마량이 바닥에 나뭇가지로 새를 그리는 장면과 비교가 된다. 마량도 저런 멋진 붓(종이)이 있다면 더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러던 마량에게 신선이 나타나 붓을 전해주는데... 마량은 붓으로 바위에 닭을 한 마리 그렸다가 그 닭이 살아나는 것을 본다. 그리고는 배고픈 아이들에게는 밥을, 힘들어하는 농부에겐 소를 그려준다. 자기자신의 부와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모두 그려낼 수 있는 붓을 가졌음에도 마량은 남을 위해 그 붓을 사용한다.

그런가하면, 역시나 우리의 원님은 당연히 자기자신을 위한 그림을 그린다. 금덩이를 그렸지만 똥덩이가 되어버리고, 돈나무를 그렸지만 뱀나무가 되어버린다. 오로지 자기 욕심을 위해 그림을 그리니 그 욕심에서 나는 냄새가 똥보다 더하고, 그 욕심이 사악한 뱀보다도 추악하다.

원님은 자신이 그림 그림이 이상하게 변하는 것을 자신의 욕심때문이라 깨닫지 못하고 마량을 시켜 황금산을 그리게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뻔히 눈 앞에 보고도 그것이 잘못임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더 많은 죄를 짓고, 더 많은 오만과 오기를 부린다. 결국 그들에게 남은 건 자멸 혹은 파멸이다.

황금산으로 가기 위해 파도가 세어지고 고칠어져 자신이 탄 배가 뒤집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오로지 황금!! 황금만을 부르짖으며 나아가는 저 욕심가득한 얼굴을 보라. 그가 황금산에 닿았다한들, 황금만 갖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를 두고 학을 타고 날아가는 마량. 마량은 신선이 되어 날아간다.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그림으로 행복을 전해주기 위해.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어서, 자신이 그 욕심때문에 얼마나 추악해져가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권선징악의 주제야 전래동화가 가진 특징 중의 특징이 아닌가. 그 느낌이 잘 살아있는 그림책이고, 섬세하고 예쁜 그림이 눈길을 자꾸 멈추게 만드는 그런 그림책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브캣 2013-01-29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나는 비단길로 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비단길로 간다 푸른숲 역사 동화 6
이현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역 중에 태풍을 만나 금씨상단의 대상주이자 엄마인 금기옥이 실종되고, 그의 딸 홍라는 상단을 되살리기 위해 집안에 내려오는 비상금(?)을 들고 교역에 나선다. 홍라는 어머니가 일구어놓은 상단을 빼앗길 위기에 놓이자 상단을 지키기 위해 길을 나서는데, 자신이 왜 상단을 지키고자 하는지, 왜 그 위험한 길을 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지금은 엄마의 상단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생각뿐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홍라는 자신이 왜 교역을 떠나는지,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마다하고 굳이 험한 길을 나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홍라가 주인공이지만, 홍라의 마음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은 주변 인물들에 의해서이다. 태풍에 배가 난파되었을 때 홍라의 곁에 있었던 호위무사인 친샤와 별을 보는 월보, 그리고 홍라의 재산을 노리는 섭씨영감의 아들 쥬신타, 홍라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비녕자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제각각 자신의 마음 속에 숨겨놓은 꿈, 혹은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을 알바 없는 - 홍라의 첫 이미지는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 딸이자,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하는 아가씨이다- 혹은 알아야할 이유도 없는 홍라가 함께 길을 떠난다.

 

홍라는 발해사람이다. 발해는 개방적인 나라여서 고구려의 후손이라 칭하면서도 그들끼리 폐쇄된 나라를 구성한 것이 아니라 주변 소수민족을 아울렀던 나라이다. 게다가 이러한 개방성은 교역에서도 드러나는데, 발해의 유물을 살펴보면 서역과의 교역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홍라가 교역을 위해 떠나는 길은 그 옛날 발해사람들이 교역을 떠났던 그 길이다. 일본도, 신라도, 압록도, 영주도, 거란도가 발해의 다섯개 교역로인데 홍라는 압록도를 따라 등주로 간다. 중국의 비단이 주로 교역상품이었던 실크로드(비단길)처럼 발해의 주거래는 담비가죽이었고, 그 길을 담비의 길이라 불러야한다는 주장도 있을만큼 왕성한 교역이 이루어졌다.

 

홍라의 여정에서 이러한 발해의 문물이나 교역상황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중요한 작품배경이자 소재로 등장한다. 서역의 은화가 사용된 흔적을 보여주는 소그드 은화, 십자가를 건 삼존불인 발해삼존불이 그러하다.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소재들이지만, 역사동화이기에 이러한 것들이 배경이자 소재로서 잘 활용되고 있다. 홍라라는 존재는 역사속 실존인물이 아니지만, 홍라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소재들은 모두 발해의 역사를 재현해내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발해에 대해 알아가는 즐거움도 좋았지만, 홍라를 비롯한 작중 인물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그는 과정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홍라는 애초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가씨로 등장한다. 이야기의 결말에서 그녀는 자신이 왜 아버지에게 일신을 의탁하지 않고 교역에 나서는지를 깨닫게 된다. 어찌보면, 대상주였던 엄마의 기질을 물려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홍라가 해야 할일이자 하고 싶은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호위무사인 친샤는 어릴 적에 잠시 한눈을 판 탓에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호위무사로 살아왔다. 자신의 과거를 기억해내고 하나뿐인 이모와 해후한 후 다시 홍라에게로 돌아와 끝까지 홍라를 지켜주는 인물이다. 쥬신타는 장사에 수완이 좋은 녀석이지만 그것보다는 불교에 빠져있는 인물이다. 인도로 가서 그 옛날 고승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도를 하고자 한다. 월보는 별을 보는 것을 좋아하여 천문을 공부하였고 천문에 능한 사람이 되고픈 꿈이 있다. 그런가하면 비녕자는 자신의 부모를 죽게 만든 홍라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자이다. 홍라의 목숨을 구해주었지만, 홍라로 인해 부모님을 두분다 잃게 되는 비녕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홍라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제각각의 생각을 품은 채 홍라와 함께 교역길을 떠나고 그 여행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고 주어진 상황대로 살아가는 홍라와 같다. 홍라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이 책을 읽은 아이들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기길 바란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인물간의 긴장감이 별로 없고, 사건에 대한 몰입도도 그다지 좋지 않아 다소 밋밋한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브캣 2013-01-24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김금이 우리 누나 쑥쑥문고 77
장경선 지음, 김은주 그림 / 우리교육 / 2012년 12월
장바구니담기



우리 나라 역사에 기록된 참 많은 사람들 중에 위대한 왕이나 영웅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아주 당연한 이 문장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러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좋았다는 말을 하며 이 단편집에 실린 이야기가 바로 그들의 이야기일 거라는 짐작을 가능케한다. 그리고 저자는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를 쭉 쓰고 싶어하는 작가로 소개되고 있다. 일제강점기라 하면, 그다지 유쾌할 것 없는 이야기들, 고통받는 우리 민족의 슬픔과 아픔을 그려낸 무거운 이야기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우리를 안심시킨다.


물론 그 시대의 이야기가 즐겁고 재미난,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일리는 없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겨운 삶을 살았다고 해도 그 안에서 희망을 찾고, 꿈을 꾸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가 있을 리 없을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는 총 4개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김금이 우리 누나', '싸움닭 바위', '1920년, 봄입니다', '마음으로 쓴 편지'.


'김금이, 우리누나'에 나오는 금이는 지능도 모자라고 말도 못하는 아이다. 그런 금이를 누나로 둔 금동이가 주인공이다. 지금 금동이네 마을에서는 자꾸 아이들이 사라진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고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들을 단속하느라 아이들만 잡아가서 삶아먹는 놈이 있다고 겁을 준다.

요즘같이 SNS로 소문이 퍼진다면, 사라지는 아이들에 대한 괴소문이 삽시간에 퍼졌을 것이고, 말이 되니 안되니, 이런 헛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을 잡니 마니, 시끄러웠을 법하다. 어쨌든 엄마는 금이에게도 똑같이 단단히 일러주고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그날 아이들은 길에서 자치기를 하다가 일본 순사를 만나고, 실수도 순사의 얼굴을 다치게 한 금이는 순사에게 얻어맞는데, 엄마와 금이를 마구 발로 차던 순사가 금동이를 보고는 태도가 돌변한다. 사탕을 준다며 금동이를 살살 꾀어내는 순사의 모습에서 뭔가 찜찜함이 느껴진다.


일본순사의 사탕발림에 넘어간 금동이가 한 일은 우리나라의 오래된 무덤 속에서 보물들을 꺼내는 일이었다. 작은 구멍 속으로 들여보내기에 안성마춤인 아이들을 이용하고 그 비밀을 위해 구멍을 막아버려 마을에서는 계속 아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들에게 조선사람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았다면, 저러한 일은 차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조선사람은 일을 하는 기계였고, 대신 전쟁을 하는 총알받이였고, 실험대상이었을 뿐이다. 생명을 경시하는 그들의 태도는 두번째 이야기 '싸움닭 바위'에서도 나온다.

그런데, 왜 이 단편은 금이의 이름이 제목일까? 나는 금동이가 금이를 누나로 대해주지도 않고, 순사에게 맞아 터질 때도 도와주지 않는 데서 금동이 역시 금이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금이는 금동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정적이지만 극적이지는 않은게 조금 아쉽지만) 사람은, 그 어떤 것보다도 존중받고 대접받아야 할 존재라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싸움닭 바위'에서는 싸움닭의 경기를 보여준다. 싸움닭이 경기를 할 때는 네 발가락 뒤쪽에 있는 엄발을 묶어서 경기를 하다 죽지 않도록 보호장치를 한다. 스포츠 경기를 할 때 사람들이 보호장구를 착용하는 것과 같다. 정정당당하게 겨루기를 하는 것이지, 서로 죽이자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인들에게 늘 지기만 하는 다카하시는 싸움닭의 엄발을 묶지 않고 경기에 내보내고, 바위는 피를 흘리며 경기를 한다. 결국은 정당한 방법으로 경기를 한 바위가 승리를 하는데, 이 주제는 역시 '1920년, 봄입니다'에서 다시 되풀이된다.


자전거 경기가 열린 경복궁. 왕이 계신 궁궐에서 자전거 경기를 하거나, 궁궐을 동물원으로 만들어버리거나 하면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뭉개고자 했던 일본의 정책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자전거 경기가 열리던 날, 이길 것을 장담하던 일본이 질 것 같자 경기를 일방적으로 중단해버린다. 경찰서장의 아이를 따라가 그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광일이와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폭력과 억지가 아니라 '정당한 방법'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마지막 이야기는 '마음으로 쓴 편지'. 강제노동을 하러 간 조선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강제노동이 끝나는 날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모두 총살하고 구덩이에 묻어버리는데, 이 주제는 또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간다.


이 책이 근대사회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지 1쇄 한정으로 돌아보며 배우는 근대역사(근대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 찾기)가 증정되었다. 이 역시 서울 위주의 구성이라 살짝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부산근대역사관이나 들러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