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밤이와 안녕할 시간 스콜라 꼬마지식인 13
윤아해 지음, 조미자 그림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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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달 전쯤, 2년 넘게 키워오던 햄스터 '토리'가 죽었다. 사실, 나는 혼자이면서도 꽤나 활발하던 이 녀석이 언제부턴가 빌빌거리는 것이 곧 죽을 때가 되었구나 하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뻣뻣하게 죽은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이 좀 그랬다. 내가 우리집 아이보다 먼저 발견을 하였기 때문에 일단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집을 옮겨두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토리가 우리 곁을 떠났음을 알려주었다. 아이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리고 토리에게 쓰는 편지를 쓴 다음, 집 앞에 있는 작은 텃밭에 편지와 함께 묻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이 일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그림책을 보여줄 때, 나는 두어달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아이에게 큰 충격은 아닐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토리'를 떠올렸고, 그날 밤 꿈에서 '토리'를 만났고, 자면서 흐느끼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아이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실감을 하지 못했던 것이었을 수 있었다. 책을 보면서, 토리가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느낀 것이었다.

 

나는, 참 냉정한 편에 속한다. 집에서 키우는 동물에 대해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사실 귀찮아서 키우고싶어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아이도 나의 성격과 비슷하구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이 그림책은 밤밤이를 떠나보낸 후 죽음과 이별을 겪는 아이를 통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알려준다.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사람과의 이별 이전에 우리 아이들은 함께 지내던 동물들과의 이별을 먼저 겪게 된다. 예전에는 기르던 동물이 죽었을 때 가까운 곳에 묻어줄 곳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럴만한 장소도 거의 없다. 다행히 우리는 작은 텃밭에 묻을 수 있었고, 토리를 다시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생긴 셈이다.

 

밤밤이와 헤어진 후 겪게 되는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어루만져줄 수 있는지, 죽음과 이별을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아이들에게는 가족만큼이나 가까운 존재였던 반려동물들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한 번 성장할 수 있기도 하다.

 

나는 '밤밤이'가 죽어서 너무 슬프다. 나를 바라보는 '곰돌이'는 나에게 이별 방법을 가르쳐준다.

1. 충분히 슬퍼하기

2. 사실 받아들이기

3. 너무 오래 기운 빠져있지 않기

4. 잘 쉬기

5. 추억 정리하기

6. 안전하게 화내기

7. 새로운 사랑 받아들이기

8. 마음 단단해지기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충분히 슬퍼한 다음 마음을 다시 가다듬는 것이다. 슬플 때 참는 것은 의미가 없다. 충분히 슬퍼하고 가슴 속에 담긴 것을 뱉어내어야만 새로운 만남과 사랑을 준비할 수 있다. 이것이 비단 반려동물과의 헤어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모든 것은 언젠가는 이별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별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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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꽃이 펑! 사계절 아기그림책 9
황 K 글.그림 / 사계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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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보드북을  넘겨본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이후 보드북으로 된 그림책을 읽을 일이 크게 줄어들었는데,

붉은 얼굴을 가진 아기꽃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꽃이 필 때 어지간해선 '펑!' 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어려운 일인데,

이 책 제목은 [아기 꽃이 펑!]이다.

 

 

 


 

첫 장을 넘기자 새싹이 포로록! 나온다.

음...꽃이 피고 지는 이야기인가?

저 조그만 새싹에서 아기꽃이 나오겠지?


 

  

그리고 이 새싹에서는 예상을 했겠지만, 아기꽃이 펑!하고 나온다.

이 그림책을 볼 아이들 연령대가 3~4세라면,

저 새싹이 꽃이 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좋아할 것이고

4~5세라면, 새싹 다음에 꽃이 나올 거라는 예상을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새싹이 자라서 꽃이 피기까지의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을 하였는데,

이 책의 목적이 꽃의 생태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아기꽃은 피어난 후 친구들을 만난다.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아기꽃은 자기 곁에 와준 친구들을 환하게 맞아준다.

벌, 나비, 새들이 날아와 아기꽃 옆에서 논다.

 ​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닥친 시련은

모래바람!!!

장면전환을 위해 사용한 장치겠지만,

솔직히 모래바람은 좀 의외였다.

움직일 수 없는 아기꽃만 빼고 다른 친구들은 자리를 떠난다.


 

 

 

 


 

홀로 남은 아기꽃의 표정처럼 주위도 어두워진다.

낮동안 함께 놀았던 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친구들은 떠나고 어두운 밤이 되었지만,

아기꽃에게는 달님이 나와서 혼자 두지 않는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날 엄마 아빠의 가족과 친구들이 아기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고,

1살, 2살 나이를 먹으면서 또래친구들도 생겨나고,

언제나 그렇듯이 아기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순간 혼자가 되었다고 느끼지만,

그때도 달님같은 푸근한 미소로 내려다보는 가족이 있을 것이다.

아기꽃에게는 달님은 엄마의 존재가 아닐까?


 


그런 아기꽃 옆에 낮에 만났던 친구들이 하나 둘 날아온다.

바람때문에 날아갔던 친구들이 아기꽃 곁으로 돌아와, 모두 잠든 모습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아기꽃은 태어날 땐 펑! 요란하게 태어났지만,

잠들때는 콜콜 조용하게 잠이 든다.


마치 엄마 얼굴처럼 푸근한 달님이 있어서

어두운 밤도 무섭지 않은 아기꽃이다. 

 

아기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는 그림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읽어주는 사람의 마음이 전해질 때 더 큰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내 품에 아이를 안고, 이 책을 함께 보면서, 빨간 아기꽃은 우리 아가네~!!

달님은 엄마일까요? 아빠일까요? 아니면 누구일까요?

어머나, 벌도 오고, 나비도 오네... 또 누가 오면 좋을까?

아이와 대화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오랫만에 만져 본 보드북이라서 손의 느낌이 좋았다.

아이가 크고 나면, 이렇게 들여다 볼 일이 없는 책들이 생겨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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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8-14 0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결은 `아이 그림 흉내를 낸 어른 그림`이지만
이야기가 보드랍고 재미있네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재미나게 읽을 만한
멋진 그림책이로구나 싶어요~
 
거짓말 경연대회
이지훈 지음, 송혜선 그림 / 거북이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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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경연대회가 있다면, 누가 1등을 할까?

굳이 거짓말 경연대회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는 엄청난 거짓말 투성이인데, 이런 건 왜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펼쳐보았다. 첫번째 에피소드인 한결이 이야기를 읽고 나니, 아, 탄식이 흘러나왔다.


다른 이야기들은 다 제목 속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야기인데, 첫번째 에피소드만 한결이 이야기이면서 힘찬이 이야기이다. 아마도, 힘찬이가 스스로 나서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제3자의 눈으로 힘찬이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민호도, 고운이도, 은수도, 우람이도 모두 기발한 거짓말을 한다. 아이들의 거짓말은 정말 다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일까? 거짓말 경연대회를 마친 후 각자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독자는 그들의 거짓말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매일 싸움을 하고 지각도 자주 하는 힘찬이네 아빠는 술만 마시고 엄마는 돌아가시고 없는데도 힘찬이는 착한 아빠와 상냥한 엄마가 자기를 예뻐해준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한결이는 힘찬이의 거짓말 속에 담긴 희망을 본다. 힘찬이의 첫번째 거짓말과 선물로 받고 싶은 우루사.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그만 코끝이 찡해졌다.


세상의 학원이 다 망했다는 민호, 아빠가 잠잘 때 코에서 음악에 흘러나온다는 고운이,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길 바랐던 은수, 자기 아빠는 가짜라서 진짜 아빠를 찾아갈거라는 우람이 이야기는 참 재미나게도 우리가 어렸을 때 한번 쯤 해봤던 상상이다. 요즘 아이들도 이런 상상을 하나? 싶어서 잠깐 생각을 해봤는데, 아니면 또 어때? 어차피 거짓말경연대회니까.


거짓말이라 하면 남을 속여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행위로 인식되기 쉬운데, 아이들이 거짓말에는 남을 해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보다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세상, 바라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가 학원에 보내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민호는 엄마 화장대의 물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엄마의 마음을 이해한다. 매일 늦게 들어오고 코를 골며 잠만 자는 아빠에 대한 불만이 많은 고운이도 아빠 콧속에 들어갔다가 아빠를 이해하게 된다.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나 아빠를 이해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세상이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였으면 좋겠다. 어린이 동화지만, 어른인 내가 읽어도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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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7-05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거짓말`이 아닌 `바람`이 아닐까 싶어요.
이러한 바람이 앞으로는 `꿈`이 되도록
곁에서 따스히 지켜보는 이웃 어른이 있어야 할 테고요..

하양물감 2015-07-05 09:45   좋아요 1 | URL
네. 현실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거짓말이라 한 것 같아요.
내가 바라는 것 경연대회였다면 또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구요.
 
너는 하늘을 그려, 나는 땅을 그릴게 - 김정호와 최한기의 지도 이야기 토토 역사 속의 만남
설흔 지음, 김홍모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토토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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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아픈 책을 읽다가, 잠깐 쉬어갈겸 이 책을 펼쳤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무슨 연애시 모음집인 줄 알았다. 거기에 부제인 김정호와 최한기의 지도 이야기를 보고서야 아, 지도에 관한 책이구나. 했다. 설흔 작가가 쓴 책들이 역사를 바탕으로 한 재미난 이야기가 많았던 기억이 있어 잠깐 펼쳐들었는데, 끝까지 쭉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오주 이규경, 혜강 최한기, 고산자 김정호이다. 아, 미안하다. 친절한 작가님도 종종 등장한다. 세 분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인물이었는데,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 구조 속에서 만나니 그들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오주 선생이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가끔 친절한 작가가 끼어들기도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주선생은 이규경으로 1788년에 태어났다. 그는 유명한 이득무의 손자이기도 하다.


 

 


오주선생은 책방에 갔다가 김정호와 최한기를 만난다. 이규경과 최한기, 김정호가 서로 교류를 하였고,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나 그들이 이렇게 처음 만났다는 것은 이야기로 지어낸 것이라 생각된다. (역사소설을 읽을 때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로서의 허구를 구분해야 하는데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오주선생은 한기와 정호에게 가르침을 주는데 그 내용들이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듯하다. '걸어다니는 책'이라 불리는 오주선생도 서얼출신이라 관직에 나서지 못하고 재야에서 학문을 하며 지낸다.


"그것 또한 이 나라의 문제요. 책은 돌고 돌아 여러 사람의 손때가 묻어야 가치를 발휘하는 법이라오. 그런데도 모두들 제 책장에 꽂아 놓고 야지중지하는 것만 미덕으로 알고 있으니. 책은 양반만 읽는 물건 또한 아니라오. 양반이건, 농민이건, 상인이건, 노비이건 간에 손에서 결코 놓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책이라오. 책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 방법을 얻을 수 있다오. 그러려면 책방이 잘 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원..." (p.53)


예나 지금이나 ^^


오주선생은 한기와 정호를 불러다 앉히고 이렇게 당부한다.

"내가 당부하고픈 건 세가지다. 첫째는 호기심이다. 매사에 호기심을 가지라는 거다. 궁금하지 않은 사람은 배울 필요가 없다."

"둘째는 열린 마음이다.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받아들일 줄 알라는 말이다."

"마지막은 이 서재에서 공부하는 시간만큼은 양반도 평민도 없다는 거다. 그저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 즉 동학일 뿐인 거다." (p.77~78)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억지로 하는 공부만큼 재미없고 지루한 것도 없다. 그러나 매사에 호기심을 갖고 궁금한 것을 알고자 한다면 학교 공부도 신나고 재미난 공부가 될 것이다. 열린 마음을 갖는 것 또한 중요하다. 현대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하여,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하여 폄하하는 일이 잦다. 그리고 배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평한 기회가 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당연히 지도에 관한 설명이 많다. 김정호가 최한기의 집에서 지도작업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있다. 이 두 사람은 지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성격도 다르고 신분도 다르지만, 서로 통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지도이다.


글 속에 가끔 등장하는 친절한 작가는 지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때로는 오주선생에 대한 정보를, 때로는 주인공들이 모르는 뒷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한다.


조선 시대 지도 발달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하기도 하고, 조선에서 지도가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게 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규경과 최한기, 그리고 김정호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지도에 대한 지식 정보를 얻을 수도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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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6-22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시대를 함께 살던 사람들은
어떤 꿈으로 이 나라를 가꾸고 싶었을까 하고
생각에 잠겨 봅니다..
 
[나의 빨간머리 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의 빨간머리 앤
샤론 제닝스 지음, 김영선 옮김 / 소년한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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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모드 몽고메리의 <<그린게이블즈의 앤>>은 나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몇 개의 소설 중 하나이다.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니 그 시절 좋아했던 이야기들이 다시 떠오른다. 내가 처음 앤을 만난 건, 소설이 아니라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그 후로 빨간 머리 앤을 찾아서 읽었고, 내가 본 애니메이션이 앤 이야기의 극히 일부였다는 사실을 알고 꽤 놀란 기억이 있다.


이 책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이 아니다. 나처럼, 혹은 어린 시절 빨간 머리 앤을 좋아했던 수많은 나의 친구들처럼, 앤을 좋아하는 '리'의 이야기이고, '리'에게 빨간머리 앤은 이웃에 새로 온 '카산드라 조바노비치'이다. 리는 카산드라 조바노비치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내려간다. 즉 이 책은 '리'가 써내려간 자기성장소설이다.


내가 빨간 머리 앤을 읽었을 때 앤은 앤 특유의 화법을 가지고 있었는데 리도 그렇다. 앤 셜리라는 이름 대신 코델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원했던 것처럼 리는 리나라고 불리길 원한다. 그리고 앤처럼 쉴새없이 이야기를 한다. 세상 모든 것을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력으로 아름답게 보았던 그 앤과 리는 무척이나 닮아있다. 다만, 리는 자신이 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앤처럼 자신은 고아가 아니고 빨간 머리도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보통은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기 마련인데, 앤과 엄청난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앤이기 보다는 '앤'과 같은 친구를 사귀고자 하였다. 마릴라 같은 엄마와 매튜 같은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리. 리를 이해해주는 것은 엄마가 아니라 아빠인 것도 닮아있다. 아빠가 매튜처럼 먼저 하늘나라로 가 버리는 것도 그렇다.


리는 카산드라 조바노비치와 앤과 다이애나 같은 단짝친구가 되기를 원하였다. 사실 단짝 친구라는 건, 지금부터 너와 나는 단짝친구가 되는거야 라고 말로 정의내리고 지금부터 시작!!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리의 행동에 웃음이 났지만, 우리집 아이가 친구를 사귀는 모습을 보면 리와 똑같은 점이 보인다. 나도 어렸을 때 늘 같이 놀았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게 늘 3명이어서 문제가 되곤 했는데, 짝수가 홀수보다는 편리한 점이 많다.


카산드라는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드러내놓지 않는다. 카산드라는 여기저기 친척집을 떠돌며 생활을 했고, 어느 누구의 자식도, 어느 가정의 일원도 되지 못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리는 고아였던 앤의 삶을 동경하지만, 정작 '고아'로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가 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이 바로 그게 아닐까?


열두살의 리와 카산드라, 그리고 리의 단짝친구였다가 서로 으르렁 대는 사이가 되어버린 캐시. 캐시가 눈치 채 버린 리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 허허 웃어버렸다. 하지만 캐시에게 늘 여자들의 사진이나 그림을 보여주었던 그 아저씨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리는 상상의 앤이었고, 카산드라는 현실의 앤이었다. 글을 쓰면서 리는 자신이 되고 싶었던 앤이 되어가고, 카산드라를 만나 다른 이의 삶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고아가 아니지만 고아인 것처럼 살 수 밖에 없었던 카산드라는 리를 만나, 연극을 통해 자신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노력하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자라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앤의 이야기를 읽었거나 잘 알고 있다면, 리와 카산드라의 이야기가 훨씬 더 잘 이해가 될 것 같다. 앤의 이야기가 씌여진 지 100년이 넘었지만, 어쩌면 이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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