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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ㅣ 비룡소 클래식 19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미하일 페도로프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06년 7월
평점 :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공녀'는 내 어린 시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이다. 사라의 다락방에서 벌어지던 마법같은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나길 바라며 잠들곤 했으니까.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나는 초등 3~4학년이었고, 그때 나온 계몽사 세계문학전집을 읽었다. 나를 책의 세계로
이끌었던 수많은 명작들이 그 전집 속에 있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던 그때의 나보다 나이가 많은 딸을 두고 있다. 소공녀의 이야기를 알고는 있지만, 아직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 딸아이에게 이 책을
권하였다. 비룡소에서 나온 클래식 시리즈가 페이지 수가 3~400 정도라서 글을 읽는 호흡이 짧은 아이들은 지레 겁을 먹을 수도 있다.
딸아이에게 '소공녀'를 권하면서, 나도 처음부터 새로 읽어본다. 어렸을 때 책을
읽었던 기억과 애니메이션을 보았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사라'는 현실에서는 없을 것 같은 주인공이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소공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의 캐릭터가 참 잘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첫번째 주인공인 사라는 예의 바르고, 어른스럽다. 어른스럽다는 것이 어린 소녀에게 칭찬이라고 해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주변 하인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자란 아이라면 으레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버릇없는 아이의 모습이 없다. 그것은 그녀가
'상상하는'것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만드는'것을 즐기는 아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라 주변 인물로는 하녀인 베키와 친구인 어먼가드, 동생인 로티를 빼놓을 수 없다.
베키는 신분이 미천하고 배운 것이 없는 아이지만 인성 하나만큼은 사라와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라가 캐리스포드씨네 집에서
살게 되었을 때 함께 가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사라와 베키를 보면서 사람이 처한 환경과 배경이 달라지더라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제대로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느꼈다. 어먼가드는 머리가 좋은 부모님 아래에서 강한 부담감을 갖고 사는 열등감이 있는 아이이다. 그런 어먼가드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라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한다. 로티는 엄마가 없다는 것을 무기 삼아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얻어내며 살아 온
응석받이이다. 그런 로티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이해해주는 사라는 로티의 엄마 역할을 하게
된다.
소공녀에는 돈 앞에서 교육자적 양심도 없는 민친선생님과 아멜리아도 나온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각각의 캐릭터가 분명하다. 그래서 사실은 결과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짐작이 가능하다. 현대 소설에서 보이는
복합적인 캐릭터는 안보인다. 나는, 이런 점이 오히려 아이들을 책 속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소공녀를 읽을 때, 사라의 생일파티나, 사라의 다락방이 마법처럼 변신하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 좁은 방 창문으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와 같은 생각은 어른인 나나 하는 생각이
아닐까?
물론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투리를 쓰는 신분이 미천하고 배우지 못한
베키라는 캐릭터, 식민지 인도에 대한 환상, 자신보다 약하거나 힘이 없는 사람을 무시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런 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 책을 읽으면서 '사라'의 상상이 '현실'처럼 변해가는 모습에 즐거워하고,
상상하는 재미에 한번쯤 푹 빠져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