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작품 [6번 칸]은 핀란드, 러시아, 독일, 에스토니아 등의 합작 영화다. 감독 유호 쿠오스마넨은 마치 박찬욱 감독처럼 칸이 사랑하는 감독인 듯하다. 2016년 데뷔작인 <올리 마키 생애 가장 행복한 날>로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수상한 이후 두번째 작품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으니 말이다. 영화 [6번 칸]은 핀란드의 여류작가 Rosa Liksom이 2011년에 발표한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6번 칸]은 마치 <비포 선라이즈>의 북유럽판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비포 선라이즈>가 사랑의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화사한 반면, <6번 칸>은 사랑일지 알 수 없는 따스한 감정과 한겨울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차가움이 교차하고 있어 닮은 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도 기차가 가지고 있는 낭만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 [6번 칸]은 러시아에서 학업을 마치게 된 핀란드 유학생 라우라가 자신의 동성 연인이자 룸메이트가 꿈꾸었던 무르만스크의 고대 암각화를 보러 떠나는 여행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원래 룸메이트와 함께 하려던 여행은 룸메이트가 갑자기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면서 라우라 혼자서 무르만스크행 기차를 타게 된다. 라우라는 자신의 연인을 사랑하기에 그 주위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싶어 하지만, 어쩐지 잘 섞이질 못한다. 실제 이번 여행은 암각화를 본다는 목적보다는 그의 연인과 함께라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암각화를 보는 게 목적이었던 연인은 여행을 취소하고, 라우라만이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무르만스크행 기차의 6번 칸에 동행을 하게 된 러시아 노동자 료하가 그녀와의 첫 대면에서 매춘녀 취급하자, 당장 여행을 취소하려 했다. 하지만 연인과의 통화에서 연인은 라우라에게 무심하고, 오직 암각화 여행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만을 말한다. 연인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모스크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무르만스크로 향하는 라우라. 연인과의 인연은 이미 끊어져가고 있는 것 같지만 라우라는 그 사실을 일부러 직시하지 않는 것 같다. 라우라는 료하와의 만남이 싫어 좌석을 바꿔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결국 료하와 무르만스키까지 동행하여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점차 라우라와 료하는 서로의 마음을 열고 순수한 끌림으로 다가간다. 라우라는 여행이 끝나갈 무렵 료하에게 키스를 하고, 주소를 교환하고 싶어하지만, 료하는 어쩐 일인지 키스도 주소 교환도 거부한 채 떠나버린다. 하지만 라우라가 날씨로 인해 암각화를 볼 수 없게 되자, 료하는 헌신적으로 암각화를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암각화 여행을 함께 한다. 암각화는 실제 보잘것 없었지만, 그 둘의 인연은 암각화보다 더 오래 지속될 듯하다. 암각화를 보고 난 후 거센 눈보라 속에서 둘이 함께 눈 속을 뒹구는 모습은 마치 영화 [러브 스토리]를 연상시킨다.

  

이 둘의 감정이 [비포 선라이즈]나 [러브 스토리]처럼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기차칸이 주는 좁은 공간에서 낯선 이와의 만남이 불편함에서 끌림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흥미롭다. 어찌보면 지적 허영심과 외로움에 갇혀 있던 라우라가 거칠지만 순박한 료하를 만나며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이 기분을 묘하게 푸근하게 만든다. 특히 료하의 헌신적인 순박함은 우리가 무엇에 끌리는지를 곰곰히 생각하도록 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현대인의 삶의 단편을 잘 보여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와 [나의 해방일지]가 끝났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현실과 밀착해 그림으로써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준 감동의 드라마였다. 


새롭게 시작된 드라마들은 대부분 현실 속 일상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물론 그런 배경과 사건들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상의 감동에 취했던 시기가 지나자 이번엔 극적 재미가 그리웠나 보다. 최근 시작한 드라마 중 [인사이더]와 [환혼]이 눈길을 끈다. 이 두 드라마는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던 플롯을 가져왔다. 



[인사이더]는 사법연수원생이 교도소로 잠입해 수사하던 중 일이 어긋나면서 할머니를 잃고 신분이 잊혀지는 신세가 된 후, 이 난관을 극복하면서 복수하는 과정을 그린 액션 서스펜스극이다. 이 이야기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떠올리게 한다. 억울한 감옥살이, 감옥 안에서 만나게 된 스승, 탈출 후 복수라는 플롯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환혼]은 영혼을 바꾸는 환혼술로 다른 사람의 몸을 빌린 살수와 기문이 막혀 무술을 익힐 수 없었던 주인공이 사제가 되면서 벌어지는 판타지 로맨스 활극이다. 20세기 무협소설의 대명사인 김용 작가의 플롯을 연상시킨다. [사조영웅전]을 비롯한 김용의 무협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무협 드라마에 반할 듯하다.  


장마와 이후 이어질 무더위를 두 편의 재미있는 드라마로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요즘 주말엔 두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jtbc에서는 <나의 해방일지>가 tvN에서는 <우리들의 블루스>가 기다려진다. 



<나의 해방일지>는 단어가 머리 속에서 맴돈다. 

도대체 평상시에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정말 단 한 번이라도 써봤을까 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글로 표현됐을 때는 자연스럽지만 말로 드러날 때는 어색해지는 단어들이다. 소위 입말로 쓰지 않는 단어가 입말로 쓰이면서 뇌리에 박히며,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 첫 번째 단어는 '추앙'이다. 맨 처음 이 단어가 튀어나왔을 때는 정말 검색사이트를 찾아서 추앙이라는 단어를 치고 그 뜻을 되새김질했을 정도였다. 사랑이 아니라 추앙! 이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추앙받고 싶어진다.

두 번째 단어는 '해방'이다. 일본 치하에서 해방됐을 때의 그 해방 말고 일상적인 말로써 해방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낸 적이 있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어딘가에 묶여져 있다는 것을. 그래서 해방을 꿈꾼다는 것을.



<우리들의 블루스>는 노래가 입 안에서 흥얼거린다.

한수와 은희의 첫사랑과 돈에 얽힌 줄타기는 다소 힘이 약해 보였지만, 영주와 현의 임신으로 인한 인권과 호식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강렬하다. 사건으로 기억되는 <우리들의 블루스>의 이야기는 이 사건들 사이로 흐르는 노래가 감정을 출렁이게 만든다. 김연지의  '위스키 온 더 락' 부터 시작해 10센티의 '포 러브'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물결을 타고 흐르는 OST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 행복하라'는 슬로건이 노래를 통해 우리의 마음 속에 스며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전 정보없이 보게 된 jtbc주말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1회를 보고 있자니, 왠지 [나의 아저씨]가 자꾸 연상이 됐다. 조금은 우울한 듯 보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물론이거니와, <동네친구>들이 등장하는 모습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나의 해방일지]의 작가를 찾아보니 [나의 아저씨]를 쓴 작가(박해영)였다. 



[나의 아저씨]가 개인적으로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은 동네친구들의 찐한 우정 덕분이었다. 아이유가 분한 여주인공이 낭떠러지 앞에서 떨어지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힘을 얻은 것이 이 우정 덕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따듯한 감성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드라마였다. 최근 [나의 아저씨] 드라마 대본이 책으로 나오면서 또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의 해방일지]는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경기도 외곽의 산포시에 살고 있는 세 남매를 주요 인물로 그리고 있다. 청춘의 많은 시간을 출퇴근에 사용하고 있는 이 세 남매의 외로움과 우울함이 또 어떤 모습으로 치유가 될지 궁금해지는 드라마다. 특히 막내 염기정은 [나의 아저씨]의 아이유와 닮은 꼴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이유의 대담함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보자면 I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기정은 "인간관계가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정이 집에서 아버지 일을 봐주고 있는 외지인 구씨에게 자신을 추앙하라고 명령한다. <추앙>이라니.... 구 씨는 추앙의 말뜻을 찾아본다. 과연 추앙은 기정이 생각하는 노동의 인간관계를 해방시켜 줄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본 투 런 Born to Run - 인류가 경험한 가장 위대한 질주
크리스토퍼 맥두걸 지음, 민영진 옮김 / 여름언덕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책의 첫 장을 넘기고 나서 페이지를 더해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문체 탓인지, 번역 탓인지, 용어 탓인지, 문화적 차이 탓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지만, 아무튼 책을 읽는 속도는 떨어지고, 집중력은 약해졌다. 하지만 다행히 100페이지 정도를 넘기니 술술 읽혀진다. 책의 재미 또한 슬슬 가속이 붙는다. 


2. 책의 장르를 무엇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크게 논픽션이라 분류할 수 있겠지만, 마치 소설을 읽듯, 때로는 다큐멘터리를 보듯, 가끔은 논문을 읽는 것처럼, 책은 다양한 내용을 품고 있다. 물론 책은 결국 우리 인류는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내용으로 집약되지만.


3. 저자는 울트라 마라톤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한 부족 타라우마라 족을 만나려 한다. 극도의 체력을 요하는 오래달리기를 걷듯 춤추듯 즐기며 웃으며 달릴 수 있는게 가능한 일일까. 뛸 때마다 부상을 입는 저자로서는 지구상에 거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뛰는 원시 부족을 만나 그 비결을 묻고 싶었다. 그래서 타라우마라 족과 끈이 닿을 수 있는 카바요라고 알려진 사람을 찾아 나선다. 책은 카바요와 타라우마라 족을 찾는 추적극에 가깝다. 또한 이런 인연으로 인해 카바요가 새롭게 만든 역사적인 울트라 마라톤 첫 대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진행됐는지를 담아내는 기록지가 된다.


4. [본투런]은 달리기 예찬서라 할 수 있다. 인류는 달리는 것이 본능이라는 점을 인류학, 해부학의 등의 도움을 받아, 타라우마라 족을 통해 실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뜻하지 않은 세 가지 주장을 만난다. 


첫째는 운동화의 불필요성이다. 우리는 올림픽을 통해 운동선수들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첨단 도구들을 접하게 된다. 가끔은 그 기능이 지나쳐 기록이 계속 바뀌다 보니 장비에 제한을 둘 정도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라 생각할 수 있다. 첨단의 운동화는 기록을 좋게 하고 부상을 방지해 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본투런]에서는 운동화가 우리 몸을 망가뜨리고 달리기를 방해한다고 말한다. 그 대표적 주자로 나이키를 들고 있다. 나이키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운동화의 바람을 일으킨 원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치지 않고 잘 뛰기 위해선 신발을 벗어야 한다. 발바닥과 땅바닥이 직접 맞닿으며 진화해 온 우리 몸의 특성이 신발을 신음으로써 방해를 받아 자칫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두번째는 채식이다. 물론 우리 조상이 달리기를 한 이유는 사냥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냥을 통한 육식은 지금처럼 흔한 일상식은 아니었을터다. 아니, 오히려 사냥에 성공하기까지 주된 음식은 수렵, 채집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상 뛰어난 울트라 마라토너들은 대부분 채식을 했다. 우리 몸은 채식에 더 알맞게 진화해왔다는 것이 저자 맥두걸의 생각인 것처럼 보인다.


세번째는 현재 인류의 조상이 네안데르탈인 등 다른 종이 아닌 사피엔스인 것은 순전히 달리기 덕분이라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인류의 진화는 언어를 통한 이야기 만들기, 즉 허구의 신화 덕분이라고 말한다. 이 허구의 신화 덕분에 인류는 소집단에서 벗어나 수천명 수만명이 함께하는 대집단을 구성하고, 다른 동물보다 우위에 섰다고 말한다. 하지만 [본투런]은 사피엔스가 우리 조상이 된 것은 달리기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사피엔스와 같은 시기를 보냈던 네안데르탈인은 육식을 좋아한 덕분에 몸집도 크고 힘도 셌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점차 먹을 것을 얻지 못하면서 멸종이 됐다는 것이다. 반면 사피엔스라는 종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사자, 치타, 영양, 토끼 등등) 단 몇 분, 길게는 몇 십 분 아주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니라, 몇 시간이고 달릴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수렵, 채집과 함께 사냥도 가능해 유연한 식단을 구성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이런 장거리 달리기를 통한 사냥은 혼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집단을 통해야만 가능하다는 것도 생존의 장점으로 꼽힌다. 유발 하라리가 말한 언어, 신화 이전에 함께 달리기 위해 집단을 구성하고 힘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5. 그런데 달리기 위해 태어난 인류는 왜 달리는 것을 이토록 싫어하게 됐을까. 인류를 문명으로 이끈 뇌의 발달은 달리는 본능과 대척되는 또하나의 본능을 갖고 있다. 바로 쉴 수 있을 때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것. 저자는 우리 몸 중 가장 효율을 따지는 조직이 바로 뇌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몸무게의 2% 정도밖에 되지 않는 조직이 우리가 쓰는 에너지의 20% 이상을 쓰니 효율을 따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뇌는 에너지 효율에 얽매여, 우리 몸이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는 최대한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진화해왔다. 하지만 이런 진화는 현대인들에게 독이 되는 측면이 많다. 소파에서 뒹굴뒹굴하며 각종 성인병을 가져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건강하고 싶다면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 뛰어야 한다.   


6. [본투런]은 저자가 타라우마라 족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새롭게 펼쳐지는 울트라 마라톤 대회의 성사,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되는 다양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마라토너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다양한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한 뜻밖의 위 3가지 주장은 지적 충격을 주며 재미를 선사한다. 게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는 당장 뛰고싶은 마음이 솟아나니,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적극 추천한다. 그리고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도 추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