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사라진 그녀>(소실적타) / 중국 / 121분 / 미스터리 / 2023년 6월 개봉 / 중국에서 8천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그해 중국 흥행 순위 4위).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인생은 한 편의 연극? 진실을 밝히는 거짓?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할 수도 있지만, 전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의 재미가 가득하다. ★ 8점/10점


2. 원작은 1960년 프랑스 연극 <Trap for a Lonely Man>. 이후 수많은 연극과 영화로 다시 만들어 졌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1990년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 여기에 더해 2019년에 태국에서 발생한 임신한 여자가 절벽에서 떨어진 사건도 영화 <사라진 그녀>의 모티브가 됐다고도 한다. 잘 짜여진 이야기는 장소와 시대를 초월한다.   


3. 허페이와 리무쯔는 결혼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동남아로 여행을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리무쯔가 사라졌다. 남편인 허페이는 경찰서로 찾아가 실종된 아내를 찾아달라고 애걸한다. 사라진지 보름이 지났고, 자신의 비자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절규한다. 하지만 경찰은 도대체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때 정청이라는 형사가 나타나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허페이가 무엇인가에 취해 잠에 빠지고 이튿날 아침 일어나보니 옆에는 생전 보지도 못한 여인이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리무쯔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허페이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국제 변호사 천마이를 찾아간다. 리무쯔는 진짜 부인일까, 가짜 부인일까. 리무쯔는 허페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간혹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리무쯔와 허페이의 휴대폰 사진은 물론, 그들이 들렀던 서점의 CCTV에도 허페이가 가짜라고 말한 리무쯔의 사진이 가득하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4. 영화는 진실찾기가 주된 테마다. 진짜 리무쯔는 누구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중으로 짜여진 진실찾기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진실에 가까이 다가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과연 그것이 정말 진실일지 의문을 갖게 만드는 매력적인 줄거리다. 반전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안성맞춤의 영화다. 


5. 중국 SF <삼체>에선 외계인이 인간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거짓말'이라는 단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봉준호 감독은 <미키17>에서 외계인도 뻥을 친다고 풍자한다.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서 거짓은 때로 유용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랑마저도 거짓으로 행할 수 있는 존재처럼 보여진다. 일종의 속임수인데, 동물의 위장술도 이런 속임수 중의 하나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거짓을 일삼는다면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그 존재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우리가 거짓을 '사기'라는 이름으로 단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거짓을 사기로 치부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거짓에도 색을 부여하는 이유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거짓은 용납될 수 있겠지만, 해를 끼치는 거짓은 절대 용서해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거짓이 난무하고 있다. 극악무도한 거짓은 밝혀지고, 단죄되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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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137분/ SF, 드라마/봉준호 감독, 로버트 패티슨 주연/ 원작 소설 애드워드 애슈턴 <미키7>/ 기대치를 살짝 낮추고 본다면 여전히 재미있는 봉준호 표 드라마. ★ 8점/10점


2. 마카롱 장사를 위해 사채 빚을 빌렸다 망한 미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정치인 마셜의 얼음개척 행성단의 우주선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특별한 재능이 없어 익스펜더블이라는 직책으로 지원하는데, 이 익스펜더블은 기억을 메모리칩에 옮기고, 몸뚱아리는 3D프린터로 만들어지는 실험체다. 익스펜더블은 목숨을 위협하는 각종 실험, 예를 들어 우주방사선을 쬔다든가, 행성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등의 일에 사용된다. 이로 인해 죽으면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영화의 주인공 미키17은 이렇게 4년 간의 우주비행을 끝내고 얼음행성 니플하임에 도착 후 이 행성의 생명체인 크리퍼와 마주치는 미키의 17번째 복사체다. 크리퍼는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알려져 있어 당연히 17번째 미키가 죽었을 것이라 판단, 18번째 미키가 만들어지는데, 다행히 17번째 미키는 목숨을 구한다. 하지만 미키 17과 18이 마주치는 멀티플 상황이 발생하고, 멀티플은 범죄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기에- 한 명은 범죄를 저지르고, 다른 한 명은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심지어 멀티플은 모두 죽음에 처해지고, 그의 메모리도 삭제된다. 과연 미키17과 18은 멀티플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까?


3. 영화 초반부는 위의 줄거리를 현재의 미키 모습과 과거의 미키 행적을 교차로 보여주며 설명을 해 간다. 언뜻 유튜브의 영화 줄거리 설명과도 비슷한 방식이다. 이런 방식의 이야기 전개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흥미진진하겠다. 하지만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멀티플 상황까지 다소 장황하기까지 하며 밑밥을 위해 구구절절 설명한다는 느낌도 든다. 또한 줄거리 요약같은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멀티플 상황까지의 짤막한 소강 상태가 있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4. 멀티플 상황부터 이야기는 갈등이 고조되며 집중력이 높아진다. 미키가 어떻게 생명을 부지할 것인지, 행성의 원주민이라 할 수 있는 크리퍼와 인간은 어떻게 관계를 맺을 지가 관심사다. 특히 크리퍼와 인간의 관계는 제국주의적 풍자로 가득 차 생각하는 재미도 준다. 더군다나 우주선의 선장 격인 정치인 마셜은 트럼프를 연상케 하는 제스처와 말투가 인상적이며, 그를 둘러싼 부인과 참모는 우리 정치인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이 연상은 영화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 


5. 이와 함께 생각할 부분은 익스펜더블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봉준호가 말하듯 언제든 대체가능한 노동자를 빗댄 모습으로 볼 수 있겠지만, 한 발 더 나아가 앞으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휴머노이드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일본 애니메이션 <아인>에서는 죽지 않는 육체를 지닌 초능력자를 사로잡은 정부가 기업과 정부의 이익을 위한 실험체로 아인을 사용한다. 아인과 미키가 겹쳐 보이는 부분이다. <아인>에서는 이 부당한 모습에 혁명을 꿈꾸는 단체가 등장하는데, 미키는 이 부분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반면 그간의 봉준호와 달리 다소 희망찬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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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스릴러 영화. 24.10.16 개봉, 91분. 넷플릭스 시청 가능. 2009년 발간된 다카노 가즈아키 동명 소설 원작. 이 소설에서는 5개의 단편이 묶여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영화화한 것이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2001년 <13계단>으로 에도가와 란포상, 2012년 <제노사이드>로 일본서점 대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개인적으로 <13계단> <제노사이드>를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 영화의 원작이 된 단편집은 아직 읽지 못했다. 운명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흥미로운 주제임에도 영화는 이렇다 할 감동을 주지 못해 아쉽다. 6시간 후 죽는다면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조차 힘을 잃고 만다. 5점/10점 ★★☆

 

2. 서른 살 생일을 하루 앞둔 정윤은 길에서 낯선 남자를 만난다. 준우라는 이 남자는 다짜고짜 "6시간 후 당신이 죽는다"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인다. 미친 사람의 소리라고 치부하고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이동하지만, 준우라는 남자의 또다른 예언처럼 약속은 어긋나고 만다. 다시 만나게 된 정윤에게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지에 대해 자초지종을 듣지만 쉽사리 믿지 못한다. 그래서 준우의 말처럼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사람을 찾아, 즉 범인이 될 사람을 찾아 운명에 적극적으로 맞서기로 한다. 과연 정윤은 예고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3. 예지력이라는 초능력과 살인이라는 범죄물의 만남. 초능력을 전제로 미래 예정된 사건의 범인을 쫓는 재미가 영화의 주된 초점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정된 등장 인물과 예초 범인이라 여겼던 인물의 또다른 모습이 영화 중반 보여지면서 범인과 사건에 대한 예상은 그리 어렵지 않다. 왜 이 사건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추측까지도 가능할 정도다. 원작에서조차 이렇게 사건이 전개되는지 궁금하다.


4. 그럼에도 질문을 해 본다. 만약 6시간 후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라면 나는 어떻게 삶을 마무리 지을 것인가. '왜 나를 죽이는거야?'라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범인을 잡기 위한 행동에 나서기 보다는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이들에게 "사랑해" "고마워"를 전하는 길을 택하지 않을까. 그러니 죽음 앞에서 그러지 말고 평소 이런 말을 많이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영화적 재미는 희미하지만, 영화와 상관없이 한 번쯤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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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시리즈 <공각기동대SAC2045>. 2020년 시즌 1 12화, 2022년 시즌2 12화 완결. 3D 애니메이션. 1편의 애매한 액션을 참고 넘기면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보다 정교해진 액션이 23편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24편 마무리는 너무 무책임하다. 그럼에도 22개 편의 재미에 흠뻑 빠질만하다. SF의 주된 관점 중 하나는 이 세계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 인간 없는 세상은 평화로울까. 인간이 스스로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게 각성하기를 바라본다. 8점/10점 


2. 2002년 개봉한 <공각기동대> 애니메이션 원조(?)는 나라는 자아가 기억 덩어리라는 깨우침을 주었다. 어떤 철학적, 인문학적 책 보다도 강렬하게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었다. 나라는 것이 어떤 변하지 않는 정체성을 지닌 존재라기 보다는 쌓이고 쌓인 기억들의 총합임을 실감케 한 것이다. 조작된 기억을 갖게 된 A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는 실제 자신이 행했던 것들의 총합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기억의 총합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 A가 생각하는 A와 타인이 생각하는 A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하지만 아무리 타인이 A의 존재를 각인시키려 해도 자신이 갖고 있는 기억의 A를 저버릴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이 언제든 변형되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불변하는 나 A란 있을 수 없게 된다. <공각기동대>는 개인적으로 기억으로서의 나에 대한 벼락같은 꺠우침이었다.   


3.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은 사이보그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이다. 미래의 초고속 네트워크 사회에서 타인의 기억(생각)을 조작하고 변형시키는 해커 <인형사>를 제거하기 위해 공안 9과가 만들어지고, 임무에 뛰어든다. 

20년이 지나 새롭게 만들어진 <공각기동대SAC2045>는 해체되었던 공안 9과가 다시 만들어지고, '포스트 휴먼'이라는 존재를 찾아 범죄를 막는 이야기다. 인물은 동일하지만 이야기는 다르다. 


4. 미래 초고속 네트워크 사회에선 '전뇌화'가 가능하다. 나의 뇌를 정보화 시켜 전산시스템과 연결해서 초인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정신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몸뚱아리도 의체화가 가능하다. 쿠사나기 소령은 전뇌화 된 사이보그이자 의체화된 용병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전뇌화를 넘어서 슈퍼컴퓨터의 역량을 지닌 개체가 나타난다. 이들은 순식간에 총알의 궤적을 계산해서 피할 정도의 슈퍼맨들로 '포스트 휴먼'이라 불린다. 공안 9과는 '포스트 휴먼'의 존재를 파악하고 이들이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5.<공각기동대SAC2045>는 3D 애니메이션으로 1화에서는 다소 3D 웹 애니메이션이 어색해 보인다. 하지만 차음 이 작화에 익숙해지면 정밀한 액션신에 감탄하게 된다. 배경 또한 뭉뚱그려진 표현이 없이 세밀해서 그야말로 볼 맛이 난다. 총격신은 물론이거니와 오토바이와 차량 추격신 등 액션장면이 눈에 띈다. 핵잠수함을 비롯해 다양한 무기 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커다란 재미이다. 


@@@@ 스포일러 주의

6.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일례로 공상과학에서 등장하는 질문 중 하나. AI에게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행동을 취하라'고 명령하면 AI는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라는 상상. 만약 AI가 이런 행동에 나선다면 인류는 AI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공각기동대SAC2045>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23편까지 차곡차곡 쌓아간다. 23편 마지막 부분의 장면은 눈물이 나올 것 마냥 아련하고 슬플 정도다. 그런데 마지막 편에서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의 결말은 미궁으로 빠져든다. 개인적으로 이 애니메이션의 결말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열린 결말로 끝을 맺어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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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애니메이션 <아인>은 2016년 작품이다. 벌써 10년이 다 돼간다. 이제서야 작품을 접했지만, 방금 갓 방영된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작화가 뛰어나다. 특히 총격신을 비롯한 액션 장면은 정말 실감난다. 이 장면 그대로 실사로 옮긴다해도 될 만큼 사실적이면서도 흥분을 자아낸다. 다만 인물들이 걸어가는 모습은 다소 흐느적거리는 느낌이 있다. 9점/10점 


2. 고등학생인 나가이 케이는 의사가 되기 위해 열공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정하고, 감정적인 것을 멀리하고 차갑고 논리적인 사고를 중시한다. 그러다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하는데, 죽었다가 멀쩡하게 다시 살아난다. 항간에 알려진 죽지 않는 존재, 다시 부활하는 존재 아인이었다. 일본에서 발견된 세번째 사례다. 나가이는 자신이 실험실에 끌려가 실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고자 공권력으로부터 도망을 친다. 그의 도주는 어떤 결말에 이를까.


3. 애니메이션 <아인>에서는 아인이라는 존재를 상업적 도구로 사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 다시 살아난다는 성질을 이용해 각종 위험한 실험에 피험체로 쓰는 것이다. 생화학 무기나 살인 무기를 비롯해 의약품의 임상 실험 등등, 차마 인간에게는 하지 못하는 적용 실험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 댄다. 정부는 기업체와 함께 이 사실을 숨기고, 돈벌이에 혈안이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말은 아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아인을 인간으로 분류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4.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대부분 수단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또는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말 속엔 이미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즉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났을 때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이지 일(노동) 대 일(노동)로 만났을 때는 수단으로 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인이 이용되어지는 모습은 수단으로 대해지는 극단적인 모습일 것이다. 목적으로 대해지는 순간은 찰나조차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인권을 단순하게 수단과 목적으로 분류해 나눌 수는 없다. 다만 우리의 삶이 평생 수단으로서만 존재한다면 그 속에 인권은 없을 것이다. 한편으론 목적으로서 대해진다 하더라도 생명을 해하거나, 폭력이 동원되어진다면 그 속에도 인권은 없을 것이다. 목적을 잃지 않는 수단, 그 속에 인간이라는 가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5. 한편 사토라는 아인은 아인의 인권을 위해 테러라는 수단을 사용한다. 아인을 실험체로 사용해 왔던 것을 폭로하고 아인의 자치권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를 정부에 보낸다. 아인을 수단으로 여기로 함부로 대했던 정재계 고위 인물의 명단 15명을 공표, 이들을 죽이겠다고 선언하고, 실제 이를 실행에 옮긴다. 하지만 사토의 목적은 아인의 인권 수호가 아니라, 재미다. 죽고 죽이는 전투, 전쟁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반면 사토의 테러는 나가이가 그토록 원하는 평범한, 또는 조용한 삶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인간 대 아인의 대결은 사토 대 나가이의 대결로 바뀐다. 


6. 사토의 테러에 동참했던 아인들은 점차 사토의 테러가 도를 지나치고, 그 목적을 도외시한다는 것을 알아챈다. 이들은 사토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의 곁을 떠난다. 그 중 일부는 사토를 배반하는 것이 곧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을 알고도 반대편인 나가이를 돕는다. 이런 모습은 우리의 지금 현실과 겹쳐 보인다. 항상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고 캐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저 주어진 대로, 명령 받은 대로 맹목적으로 실행하다간 자칫 목적으로서의 삶이 아닌 수단으로서의 삶을 자처할 수 있다. 우리가 목적을 잃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맹목적이기 보다 항상 선택의 경우를 만들고,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이 목적으로서의 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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