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보다 보면 콘텐츠는 정말 무궁무진한데 막상 무엇을 볼지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그냥 나오기가 일쑤다. 그래도 알고리즘이 어느 정도 작동을 하는 덕분에 취향에 가까운 작품들을 찾을 수 있는 경우도 가끔 있다. 


이번의 경우엔 최근 올라온 작품들을 둘러보다 눈길을 사로잡은 경우다. 애니메이션 시리즈 <리바이어던>.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림과 예고편에 끌렸다. 하지만 12세 관람가가 오히려 흥미를 잃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혹여 유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볼지 말지 망설였다. 일단 1회만 볼까? 


망설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단연코 번득이는 상상력에 12회까지 쉬지 않고 봤다. 물론 1회가 25분 정도여서 전체 러닝타임은 5시간 안팎으로 시리즈 치고는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겠다. 


시리즈 <리바이어던>을 다 보고 나서야 관련된 정보를 모아봤다. 그만큼 흥미진진하게 애니를 봤다고나 할까. <리바이어던>은 원작이 있다. SF작가 스콧 웨스터펠드의 리바이어던 시리즈 3권이다. 2009년 <리바이어던>, 2010년 <베헤모스>, 2011년 <골리앗>이라는 3부작을 12화의 애니메이션으로 다 담아낸 것이다. 알고보니 그의 작품 <어글리스>도 넷플릭스에서 제작해 공개됐다.  


<리바이어던>은 1차 세계대전의 대체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의 발단이 되었던 사라예보 사건을 토대로 전쟁을 벌였던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의 3국 동맹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3국 협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전제로, 과학 문명이 발전한 새로운 세계관으로 세계대전의 양상을 그려내고 있다. 3국 동맹국은 클랭커 국가로 기계공학을 발전시켜 대형 기계 병기와 워커라는 보행병기 등을 사용한다. 3국 협상국은 다윈족으로 생체공학을 기반으로 유전적으로 조작된 생체병기를 사용한다. 애니의 제목인 <리바이어던>은 영국의 생체병기로 고래를 유전 조작하여 탄생시킨 하늘을 나는 거대 비행체를 이른다. 


<리바이어던>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뒤를 이을 왕자 알렉산더가 부모님의 죽음으로 고국을 떠나 워커를 이용해 피난길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편에선 데린 샤프가 리바이어던에 탑승해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자 남자로 변장해 승무원이 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알렉산더와 데린 샤프는 플랭커와 다윈족 하에서 자랐기에 자신들이 최고라 여기고, 상대방은 적으로만 여기며 자란 소년, 소녀였다. 이들이 우연한 사고로 만나게 되고, 우정과 사랑 사이의 묘한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들의 성장 속에서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평화에 대한 갈망이 함께 자란다. 


플랭커와 다윈족이라는 상상력과 전쟁이 아닌 평화를 향한 여정, 절대적 권력의 위험성(미국의 과학자 테슬라로 상징되는데, 현 기업 테슬라의 수장 머스크까지 떠올리는 재미도 있다)을 담아내고 있는 <리바이어던>. SF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정말 강추한다. 9점/10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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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붓다 - 붓다의 시선으로, 그의 삶으로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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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아가는 이들 중 특히 젊은이들의 종교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종교를 믿는 이가 대한민국의 경우 40%가 채 되지 않는다. 그 중 20대와 30대는 20%도 안된다. 

이렇게 종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합리적, 이성적 사고방식을 중시한다는 점과 탈권위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진 성향을 그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휴식의 필요성, 개인적 성취의 중요성, 재미의 추구라는 측면에서 종교가 이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점도 그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에 최근 불교계에서는 '뉴진스님'과 같은 젊은 층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지만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경향을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를 종교적 측면이 아니라 수행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현대인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이 많아 보인다. 즉 기복적 관점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삶을 살아갈지에 대한 참고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참고서로서 붓다의 삶은 큰 도움이 된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도 붓다라는 한 인물의 여정은 경이롭고 흥미롭다.


이 책 법륜 스님의 <혁명가 붓다>는 부처의 실재 삶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기적을 행하는 성인으로서의 붓다가 아니라, 우리 삶의 고민을 해결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실천가로서의 붓다가 그려져 있다. 2000여 년 전의 성차별을 비롯해 계급제도 하에서도 그 역사적 맥락을 벗어나 인류 보편의 권익과 평등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붓다는 혁명가에 가깝다. 이 혁명가 붓다는 현대의 문명 속에서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반대로 지극히 괴로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현재의 나를 점검해 보게 한다. 우리가 붓다와 같은 혁명가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내가 괴로움에 갇혀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운다. 내가 홀로 '나' 인 것이 아니라, 세상 모두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모두가 함께 괴로움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더불어 삶에 대한 희망을 품게 만든다. 


혁명가 붓다를 친구로 둔다면 오늘 하루도 나는 괴롭지 않은 삶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른다. 더불어 현대가 갖고 있는 맹점에 대한 고민과 그 해결에 대한 실천의지를 불태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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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3>: 죽음 앞 선택의 딜레마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3》는 생존을 위한 잔혹한 게임 속에서 인간에게 끊임없이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삶과 죽음, 죽이는 자와 죽임을 당하는 자, 심지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까지. 마치 밸런스 게임처럼 양 극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 시리즈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라는 본능을 거스르고 '양심'이라는 허구의 가치를 좇아 기꺼이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존재만이 진정 '인간'이라 불릴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드라마는 삶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를 억제하고 타인을 위한 희생, 혹은 자기희생을 선택하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성의 숭고함을 역설한다. 이러한 선택은 분명 강렬한 감동을 유발하며, 시청자에게 '인간이란 그래야만 한다'는 정해진 답을 제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삶의 벼랑 끝에서 양심을 지키는 행위, 그것이 곧 인간다운 선택이라는 메시지는 강력한 울림을 준다.

 

인간적인 선택의 경계: 누구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오징어 게임 3》의 가장 큰 갈등과 동시에 현실과의 괴리가 발생한다. 과연 모든 사람이 삶이라는 가장 강력한 본능을 거부하고 양심을 따라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까? 드라마가 보여주는 희생과 순교에 가까운 '인간적인' 선택은 현실 속 대다수 사람에게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냉정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우리는 《오징어 게임 3》 속에서 생존을 위해 타인을 해치거나,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인물들을 보며 때로는 분노하고 욕을 퍼붓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내면에는 '과연 나라면 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불편한 질문이 떠오른다. 삶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 즉 생존 본능을 거부할 수 있는 의지는 타고나거나, 혹은 극한의 상황과 고통스러운 성찰을 통해서만 발현될 수 있는 특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에게는 그러한 삶에 대한 본능을 거부할 수 있는 의지가 기본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오징어 게임 3》에서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다 죽어간 이들을 쉽게 '악마화'하거나 '악당화'하기 어렵다. 그들은 단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에 충실했던 존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택은 비난받을지언정, 우리 또한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희생' '순교', 그리고 '인간적이라는 미명' 뒤에 숨겨진 현실적인 본성과는 너무나 큰 간극이 존재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 그럼에도 던지는 질문

결국 《오징어 게임 3》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과 숭고한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통해 극적인 재미를 선사하지만, '인간다운 선택'이라는 정의를 너무나도 극단적인 희생으로 몰아세우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가 되어버린 측면이 있다. 모든 사람이 양심을 위해 삶마저 내던질 수 있다는 전제는, 인간 본성의 복잡다단함을 단순화시킨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게임 3》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이 당신을 어떤 '인간'으로 규정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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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디어 5년 만에 <올드가드>가 돌아왔다. 불멸자 앤디(샤를리즈 테론)와 이를 따르는 불멸자 전사들이 중요 세계사적 사건에서 인류를 위해 힘써왔다는 이야기. 불멸자이기에 빠른 회복 능력(빠른 이라는 말로는 부족. 바로라는 말이 더 맞겠다)을 이용해 벌이는 액션이 돋보였다. 2020년 1편에 이어 2025년 2편이 7월 2일 넷플릭스에서 오픈됐다. 러닝타임 105분. 청불. 


2. 2편의 끝이 올드가드 영화의 끝이라면 대환장 파티다. 분명 3편이 나와야만 하는 결말. 그런데 이게 또 5년이 걸린다면 누가 이걸 기다릴지..... 2편을 본 입장에서 아무래도 3편도 함께 촬영되지 않았을까 추측될 정도. 차라리 이럴 거면 영화가 아니라 시리즈로 만드는 것이 나을 뻔했다. 솔직히 제작비 측면에서도 초반 액션 시퀀스 빼고는 그다지 큰 돈이 들어가 보이는 곳도 없다. 액션은 줄고 이야기는 길어졌다. 5점/10점 ★★☆      


3. 눈에 보이는 액션은 초반 총격신과 카레이싱 추격. 회복 능력이라는 초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장면들이 돋보인다. 특히 자동차 충돌 장면은 압권. 하지만 이번 <올드가드2>편은 초반 화려했던 이 카레이싱 추격으로 액션은 끝이라고 봐야 한다. 중간 중간 결투 장면이 나오지만, 다른 액션 영화들과 큰 차별점은 없다. 총을 쏘면 될 것을 굳이 도끼나 칼 같은 재래식 무기를 사용해 무술을 시전하고 있다는 인상. 그렇다고 그 무술들이 개성이 강한 것도 아니다. 액션 측면에서만 본다면 초반은 강렬, 중후반은 지리멸렬.


4. 하지만 이야기는 길어졌다. 구구절절 불멸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최초의 불멸의 존재자와 최후의 불멸의 존재자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마녀사냥을 최초의 불멸자 디스코드(우마 서먼)와 앤디의 동반자 꾸인이 인류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는 사건으로 그린다. 이 사건으로 극도의 분노와 인류 멸절이라는 목표를 갖는다는 게 와 닿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다소 얼개를 갖추기 시작했다. 


5. 불멸의 존재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시간의 소중함은 끝이 있음을 아는 이들에게만 느껴지는 걸까. 진시황 이래 인류는 불멸의 꿈을 꾸고 있지만, 정녕 불멸하게 된다면 인간은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 <올드가드>는 지금 이렇게 흐르고 있다고 느껴지는 시간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묻는다. 


6. <올드가드2>에서는 여러 나라의 도시들이 나온다. 특히 대한민국의 서울도 잠깐 등장해서 깜짝 놀라게 된다. 그런데 다른 도시들과 달리 서울의 랜드마크가 재래시장인지 아쉬움이 남는다. 이곳저곳의 한글 간판들만 보일 뿐 시장의 모습은 태국에서도 베트남에서도 중국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서울을 떠올리게 만드는 랜드마크가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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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 브레인 - AI 시대의 실용적 생존 가이드
이선 몰릭 지음, 신동숙 옮김 / 상상스퀘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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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머지않아 AI가 점령할 것 같은 분위기다. 생활 곳곳에 AI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어 보일 정도다. 두려운 것은 AI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음에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AI와 함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 이선 몰릭의 <듀얼 브레인>을 읽고 나면 AI를 맹목적으로 신뢰할 이유도, 반대로 거부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AI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런 생각은 특히 이 책에서'운전석에서 잠들기라는 비유로 나타난다. 한 비교 연구를 통해 성능 좋은 AI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오히려 인간의 노력과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켜 역량 저하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반면, 부족한 AI를 사용했던 이들이 더 주의 깊고 비판적으로 AI를 활용하며 스스로의 역량을 키웠다는 점은 AI 시대에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AI는 이제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사고를 강화하거나 대체하는 '공동 지능' 역할까지 맡고 있다. 이는 코딩부터 마케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고 있으며, 우리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범용 기술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AI는 인간의 윤리관이나 도덕관을 준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극단적인 위험도 내포한다. "클립을 최대화하는 AI" 사례(클립을 최대한 만들기 위해 장애물이 된 인간을 없애는)처럼, AI의 성능에만 매몰될 경우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는 AI를 무작정 두려워하거나 맹목적으로 의지할 것이 아니라, 운전석에서 잠들지 않는 현명한 운전자'가 되어야 한다. AI를 우리 삶과 역량을 향상시키는 파트너로 인식하고, 비판적인 사고와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AI와 상호작용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역량은 AI를 잘 활용하는 '운전 기술' '윤리적 나침반'이다. 이 둘 모두 개인은 물론 정부와 기업을 넘어 세계가 함께 정립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은 AI를 바라보는 이런 통합적인 시선과 함께 AI를 잘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롬프트 활용법에 대한 팁도 얻을 수 있다. 실제 이 팁을 잘 사용한다면 AI를 도구에서 파트너로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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