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옥> 시즌2 넷플릭스 시리즈 6부작. 시즌1이 죽음을 예고받은 사람의 해석을 중심으로 전개됐다면, 시즌2는 죽었던 자의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둘러싼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누가 부활하며 왜 부활했는가. 물음표만 쌓아가는 지옥. 별 셋(6점/10점).


2. 인간이라는 존재는 의미를 먹고 살아간다. 내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찾지 못하면 깊은 안개에 빠진 듯 삶은 주저주저하게 된다. <지옥> 시리즈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런 의미에 천착하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시즌1이 죽음을 예고받은 사람들에 대한 의미찾기였다면, 시즌2는 부활자들의 의미찾기라 할 수 있다. 


3. <지옥>시즌1에서 죽음을 예고받은 사람들은 죄를 지은 사람들로 정의되어졌다. 죄를 지은 자와 이 죄를 씻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대며, 종교가 힘을 발휘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이가 죽음을 예고 받으면서 죽음 예고=죄 라는 공식이 깨져 버린다. 지금까지 세상을 지탱해 온 이론이 무너지면서 삶은 혼란에 빠진다. 


4. 죽음 예고=죄 의 공식이 단 하나의 사건으로 완전히 산산조각나지는 않았다. 이 공식으로 세상을 움직였던 사람들은 예외적 사건처럼 보이는 것들을 어떻게 기존의 공식 안으로 끌어들여 해석할 지, 그리고 그 해석이 사람들을 얼마나 설득력있게 이해시킬지를 궁리하며 비틀거리듯 '교리'를 지켜낸다. 하지만 금이 간 교리는 언제든 곧 부서질 위기에 처할 지 모른다. 


5. 여기에 더해 이번엔 '부활자'가 나타났다. 왜 죄를 지은 자가 다시 태어나는가? 인간은 새로이 발생한 현상에 대한 해석을 통해 기존의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의미'를 획득하는 자가 세상을 획득할 수 있다. '부활자'의 해석은 권력에의 길이다. 


6. <지옥>시리즈에서 소도의 리더인 민혜진은 의미 찾기를 통한 권력싸움에서 비켜 나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모성애'처럼 보여진다. 시즌 1의 마지막, 죽음을 예고 받은 아이의 부모들이 헌신함으로써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즌2에선 민혜진은 부활한 엄마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데 집중한다. 그리고 시즌1에서 살아난 아이를 부모 없이 어떻게 키워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은 깊어진다. 


7. <지옥>은 시즌이 거듭될 수록 물음표만 늘어난다. 연상호 감독의 세계관은 주술과 밀접하게 관계된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 주술적 현상만 자꾸 보여주고 의미는 안개 속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다만 시즌2에서 죽음의 사자가 어떤 존재인지를 얼핏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나마 물음표 하나를 살짝 지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끈을 놓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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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폴란의 다큐 <COOKED 요리를 욕망하다> 첫 편의 '불'에 이어 '물' '공기' '흙' 2~4편을 모두 보았다. 


인류가 불을 이용해 음식을 먹게 됨으로써 뇌의 발달과 음식 소화시간을 절약해 문화생활에 쓰이게 되었다는 내용의 1편에 이어 2편에 등장한 것은 '물'이다.

불로 고기를 굽는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펴져 있는 가장 간단한 요리 양식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럼으로 인해 이 요리의 맛은 세계 어디에서나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어떤 고기를 어느 정도의 불의 세기로 얼마만큼 구웠느냐에 따라 맛은 다르겠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요리를 확장시키게 된 용기의 발달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요리'의 발달을 가져온다. 용기를 사용함으로써 요리에 사용되는 식자재 간의 섞임으로 전혀 새로운 맛이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같은 고기라 하더라도 그 고기에 어떤 향신료 또는 다른 고기 등등을 집어 넣는지에 따라 요리는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이런 식자재의 섞임에는 물이 큰 역할을 한다. 식자재를 조화롭게 섞도록 도와주는 요소로써 물이 작용하는 것이다. 요리란 섞임의 미학이며, 이 섞임이 가능토록 한 것은 바로 용기와 물인 셈이다. 하지만 현대인의 요리에서는 이 식자재의 섞임 이외에도 다양한 화학적 조미료와 화학제품 등이 뒤범벅되고 있다. 정말 전혀 알지 못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재료가 등장해 가공식품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 등장은 진정 요리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또한 인간의 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3편은 '공기'다. 요리에 공기라고? 3편을 보고나서도 고개가 약간 갸우뚱거리는 것은 4편의 '흙'과 혼동되어서다. 3편 공기라는 요소의 핵심 음식은 빵이다. 곡물을 갈아 물과 소금 정도만 섞어 두어도 공기 중의 박테리아 등에 의해 반죽은 부풀어 오른다. 이 반죽을 구우면 크기는 더욱 커지고, 그 안에는 기포, 즉 공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공기로 인해 빵의 맛은 다양해진다. 그 양 또한 증가한다. 공기가 가져오는 맛과 양의 풍부함은 절대 끊을 수 없는 빵의 매력이 된다. 하지만 이 빵의 매력을 최대화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반죽이 발효가 되어 공기가 차기 위한 시간 말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이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이스트를 빵에 넣는다. 또한 자연 그대로 주어지는 다양한 맛이 아니라 인위적인 맛을 위해 밀, 물, 소금 이외에 다른 식자재나 첨가물을 이것저것 집어넣기 시작했다. 현대적 빵은 전통적 빵의 건강함을 잃어버리고 효율이라는 이름 하에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로 인한 건강함의 상실을 글루텐에 뒤집어 씌우기까지 했다. 


4편은 '흙'이다. 흙 속에는 다양한 미생물이 살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의 세상이다. 이 미생물들이 음식을 발효시켜 완전히 다른 음식으로 만들어 준다. 저장할 방법이 없었던 과거에 음식을 오랫동안 먹을 수 있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발효는 영양성분의 풍부함과 맛의 다양성까지 가져왔다. 음식물의 미생물은 우리 사람의 몸 속 미생물과 어우러져 건강함을 유지시켜 준다. 하지만 잘 발효되지 않은 음식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현대의 가공식품이나 초가공식품들은 발효식품이라 하더라도 이런 독성을 없애기 위해 살균의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위험을 없앤 대신 천연의 발효가 가져다 준 깊은 맛과 풍부함을 상실했다. 

발효의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술이다. 인류가 곡물을 키운 것은 굶주리지 않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술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가설이 있는데, 점차 호응을 얻고 있다. 


마이클 폴란이 살펴본 진정한 요리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슬로푸드인 듯하다. 이것은 요리의 속성 차원이고, 요리를 하는 이유는 더불어 나누기 위한 것이라는 사회적 차원에도 큰 의미가 있다. 요리하지 않는 현대인, 부엌이 필요없는 집. 이는 요리가 노동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가 다른 이들과 더불어 나누는 즐거움을 회복한다면 요리는 더 이상 노동이 아니라 유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집집마다 요리하는 냄새와 시끌벅적한 사람 소리가 퍼져나오기를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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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예능 프로그램인 <흑백요리사>가 장안의 화제다. 요리라는 콘텐츠에 대한 인기는 시들지 몰라, 시기마다 그 형태를 달리하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레시피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먹방으로, 이어 여행의 주요 목적으로서의 맛집 탐방에 이어 이젠 경연의 모습으로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그나마 요리라고 해봤자 반조리가 된 간편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왜 요리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거운 것일까. 이런 똑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욕망하는 식물> 등의 책으로 유명한 마이클 폴란이다. 마이클 폴란의 이런 의문을 가지고, 요리의 기원과 문화, 역사를 찾아나섰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요리를 욕망하다>라는 책을 2014년에 냈고, 2년 후 다큐멘터리로 영상화하는 작업을 했다. 


책과 다큐는 모두 불, 물, 공기, 흙이라는 4가지 주제를 챕터로 구성했다. 1부는 불로, 요리의 시작이 불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인간이 유인원과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요리하는 인간부터라는 리처드 랭엄의 '요리 가설'을 소개한다. 랭엄은 <요리 본능>이라는 책을 쓴 학자로, 인류가 음식을 불로 익혀 먹음으로써 먹고 소화하는 시간을 대폭 줄여 그 남은 에너지를 뇌로 보내어 뇌가 발달하고, 또 남는 시간에 문화 등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아무튼 불로 익혀 먹는 요리의 시작은 원재료를 그대로 굽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는 동물의 사체를 우리가 먹는 행위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해체된 고기가 아니라 통으로 된 사체를 구워서 나누는 과정을 통해 문화가 형성되어진다. 즉 고기를 굽는 동안 불 주위에 모여 앉은 이들이 사냥의 과정을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 익은 고기를 서로 나누어 먹음으로써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바비큐를 먹는 행위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함께 먹는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불멍을 통한 치유와 나눔을 통한 연대가 불로 구워 먹는다는 행위를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요리의 시초는 불과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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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SF영화, 102분. 스콧 웨스터펠드의 원작 소설 어글리 3부작이 있다. 소설은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성형, 획일적 아름다움 등을 주로 다루지만, 영화는 소설이 말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잘 보여지지 않고, 액션도 폭발적이지 못해 두루두루 어정쩡하다. 5점/10점 만점(별 2개 반)


2. 과거의 일류는 각자 다른 개성과 생각, 욕망으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 멸망의 길을 걸었다. 이들을 러스티라 부른다. 현재는 이런 차이들을 없애는 방식으로 16세가 되면 모두 성형수술을 받아 최고의 외모를 지닌다. 이들을 프리티라 부르고, 아작 성형수술을 받지 않은 아이들을 어글리라 칭한다. 모두 도시에 모여 산다. 하지만 이런 생활방식을 거부하고 자연과 접해 자급자족하는 무리들이 있다. 이들이 사는 곳을 모스크라 부른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참신한 설정이지만 다소 개연성이 부족해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3. 도시인의 획일화된 아름다움이 과연 유토피아일까. 16세에 받는 성형수술은 단지 외모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뇌에도 수술을 가해 주체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 아름답지만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들. 

그 반대편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자연과 벗 삼아 자급자족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외모보다는 내면의 모습이 중요하다. 이들 사이에는 자연을 죽여가며 동력을 만들어가는 꽃들이 존재한다. 이 꽃은 자연을 없애며 자신의 지역을 확장해가고, 이들이 만든 동력으로 도시는 생활이 가능하다. 


4. 그래서 아름다움과 추함, 또는 외면과 내면의 대립으로 보기보다는 차라리 도시와 시골, 기생과 자립의 문제로 영화를 바라보는 것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처럼 세상을 싹둑 잘라서 내면의 아름다움과 시골의 자립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영화는 힘을 잃고 어정쩡하게 진행된다. 액션의 재미라도 크다면 다행일텐데, 미래의 모습과 무기들이 그다지 눈길을 크게 사로잡지 못하다는 것도 감점. 아쉬움이 많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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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크리처>시즌 2는 일제시대에서 2024년 현재에까지 이어지는 태상과 채옥의 이루어질 듯 이루어지지 못하고,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사랑과 인연을 그리고 있다. 둘의 인연이 이토록 길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잔인한 생체실험 때문이다. 괴물같은 존재이지만 무시무시한 회복력으로 무한한 수명을 지닐 수 있는 새로운 생명체로의 탄생을 꿈꾸었던 일본군의 만행. 태상과 채옥은 이 실험의 피해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한 번 끝이 났던 그들의 인연이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 


일본의 패전으로 대한민국에서 쫓겨난 이들이 현재에도 제약 회사를 내걸고 서울 한복판에서 비밀리에 생체실험을 지속하고 있었다. 시리즈 중 아주 가끔 이런 일본의 모습을 비판하는 대사가 나오곤 하는데, 이 말에 날이 서 있는 이유는 실제 현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본의 편에 서 있는 것을 당연시하는 세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의 색깔은 태상과 채옥에 집중된 것으로 보여져 다소 힘이 빠져 보인다. 시리즈 내내 이 둘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만나고 싶어하는데, 이게 종반부로 가면서 점점 지겨워지는 것이 아쉽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바라보는 감정이 메말라서였을까. 게다가 시리즈의 활력을 불어 넣어 줄 액션마저도 새로움이 없어 비슷한 액션을 계속 보는 것도 지겨워진다. 그나마 승조라는 캐릭터가 회색빛을 띠며 극의 긴장감을 불러온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아무튼 만약 시즌 3가 나온다면 과연 이야기의 재미를 다시 불러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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