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천재작가라고 불리는 오츠이치의 단편모음집인 이 소설은 한마디로 죽음의 향연이다. 10편 단편 모두 죽음이라는 소재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 죽음의 색깔은 단편마다 모두 다르다.

절대적이고 압도적이고 부당하기 짝이 없는 죽음...(401쪽)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라는 단편에 나온 대화 중 한 대목이다. 10편의 소설이 말하는 죽음이 제각각이지만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이정도 일까.

아무튼 이 책에서 뿜어내는 상상력에 혀를 내두른다. 추리 소설과 호러, SF, 스플래쉬 등등 장르 불문에 영화 큐브나 식스센스, 올드보이, 또 고전에 가까운 소설 왕과 거지 등등을 연상시키며 종횡무진이다.

소설 속에 꼭 등장하는 죽음은 그것을 바라보는 독자에게 안타까움을 주기도 하고, 잘 됐다고 통쾌해하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쳐다보게 만들거나, 또는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등 묘한 느낌을 전한다. 도대체 작가는 이런 죽음들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냥 단순히 이야기의 한 소재로만 쓰였을 뿐 어떤 의미를 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이다가도 계속되는 죽음을 대하다보면 숨겨진 무엇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무엇인가? 죽음이란...

책의 표제이기도 한 [zoo]에는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이 살인자를 찾는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나는 생각한다. 빨리 편해지고 싶다. 모든 것을 남김없이 이야기하고 죄를 인정하고 싶다. 아니면 나는 언제까지고 계속 연기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수라는 하나의 선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무서워져서 문제에서 눈을 돌리고 거짓말하기를 선택하고 있었다. (113쪽)

zoo에서 보여지는 주인공의 심리가 아마도 전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듯하다. 자신이 직접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하지 못하고, 누군가가 그 일을 하도록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상태.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말하며 변명을 하고 싶어한다. 내 의지로 하지못하고 세상의 흐름이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그러한 어중이 떠중이 상태의 심리를 소설은 집요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명확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찬찬히 그 주인공들을 살펴보면 이런 심리와 맞닥뜨린다. 그런데 또하나 이런 심리를 가진 주인공들은 순간적 충동에 일을 저질러 버리는 성격도 지니고 있다.

충동과 억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들. 그래서 소설은 어두운 색채를 지닌 듯하면서도 밝은 모습을 찾아내곤 한다. 삶을 회피하려 하면서도 간혹 깊숙히 개입하기도 한다. 숲 속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지만 어느새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심정. 실은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에 태연해하는 소설을 읽다보면 과연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표현되지 않았던, 또는 감추어졌던 심층의 심리를 자극한다. 어둡고 음습한 세계와 밝고 화사로운 세계가 죽음을 앞두고 충돌한다. 자, 소설 속에서 너무나  쉽게 이루어지는 살인과 죽음이 당신의 어떤 마음을 자극할 것인지 한번 만나보라. 이토록 죽임과 죽음이 쉽다면... 죽이는 자의 입장과 죽는 자의 입장에서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소설은 그래서 흥미진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의 원작인 대유괴는 그야말로 명랑유쾌한 활극이다. 쫓고 쫓기는 자의 머리싸움과 어떻게 결론이 날지에 대한 궁금증이 시종일관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든다.

3인조의 무지개 동자는 억만장자 할머니를 납치할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납치하고 나니 오히려 할머니가 주도적으로 유괴에 대한 작전을 짠다. 경찰을 속이고 완벽하게 돈을 받는데까지 말이다.

소설이 주는 가장 큰 반전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특히 5천만엔의 몸값을 요구하던 이들에게 100억엔으로 몸값을 올려버리는 할머니의 배짱엔 두손 두발 다 들고 싶은 기분이다. 물론 할머니가 그렇게 한데는 이유가 있다.

아무튼 천만과 억대의 단위가 다른 개념은 사고의 폭까지도 다르게 만든다. 흔히들 꿈이나 야망을 크게 가지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는 "돈이 힘"이라고 말하면서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돈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그 단의 개념 또한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목표를 10으로 정한 사람은 기껏해야 1,2,3,4,5,6,7,8,9 안에서 노는 법이다. 목표가 1000이 되면 몇백 단위에서 노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이것은 망상과는 거리를 두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다음으로 소설을 이끌어가는 핵심은 무한한 신뢰이다. 할머니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신뢰가 없다면 이 소설은 애시당초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 신뢰의 바탕엔 할머니의 헌신이 놓여져 있다. 그런데 그 헌신도 실은 재력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에선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또 아무도 손해보는 사람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 큰 돈이 오가는 과정 중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가르침을 얻는다. 정말 소설같은 일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즐거울 수 있었다. 비록 내 수중엔 돈이 넉넉지 않더라도. 소설은 엉뚱하게도 돈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만들었다. 큰 돈을 얻고, 또 그것을 사용하는데에도 격이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 있기 좋은 날 - 제13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정유리 옮김 / 이레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때론 그 관계의 끈을 다 놓아버리고, 오직 혼자서 있고 싶다고 외쳐댈 때도 있겠지만, 잠시다. 외로움이라고 부르든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간에 그 고독 때문에 또다시 관계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관계의 소멸과 생성의 반복을 인생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소설은 이제 갓 스무살의 치즈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라는 무대로 들어가기 전의 두려움과 고독을 이야기한다. 그녀와 함께 생활하게 되는 사람은 먼 친척뻘의 할머니 깅코. 나이를 먹을 수록 지혜도 커지는 걸까. 아무튼 깅코의 삶이 치즈의 삶에 서서히 스며들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치즈에게 다가왔다 떠나가는 남자친구, 깅코의 남자친구 할아버지 등이 정말로 아주 잔잔하게 삶이란 관계의 연속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그 관계란 어떻게 형성이 될까.

그렇게 아는 사람들을 교체해간다. 낯선 사람들 속에 자신을 내던져본다.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그저 눈을 뜨면 닥쳐오는 그날그날을 혼자서 어떻게든 헤쳐 나간다. (188쪽)

치즈가 비로소 사회로 발을 내디디면서 느끼게 되는 관계의 정의다. 관계란 때론 희망으로 때론 절망으로 다가온다. 두근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때로는 딱딱하게 굳은 심장으로 하루하루가 지나갈 뿐이다. 누군가가 그 관계맺기의 방법을 가르쳐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해가는 관계 속에서의 수많은 순간들마다 정답이 있다면 또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누군가 옳다 그르다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불안한 것이다. 산처럼 쌓인 바나나들 속에서 한 송이를 골라내는 일에도 나는 이걸 고르길 잘한 걸까 하고 먹을 때까지도 끙끙 고민을 하겠지.(178쪽)

젠장. 정말 내가 잘 한 것일까. 고민도 하고 후회도 하고, 머뭇거리기도 하고, 체념하기도 한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인 사람들간의 관계맺기. 

나는 누군가를 나와 튼튼히 연결해두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다. 혼자서 살아보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한 번은 자신이 먼저 떠나보고 싶다. 나갈까? 깨끗하게 연을 끊고, 누구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또다시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겠지. 그리고 문득 깨닫고 보면, 파국을 맞이하고 있겠지. 그 의미 따윈 생각하지 않고 그저 되풀이하고 있다 보면 인생도 결국 끝이 나게 될까?(150쪽)

극도의 허무감이 밀려올 때 차라리 나이들었으면 하고 바란다. 사람들에 치이고, 혼자서도 치이고. 늙는다는 것은 이런 치임에 무뎌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노인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젊을 때가 정말 좋은 땔까요? 매사에 끙끙 앓고, 비관적이고, 피곤해요. 그런거, 이제 다 지겨워요. - 젊을 때는 다들 무턱대고 손을 뻗으니까... 나처럼 나이가 들면, 내밀 수 있는 손도 점점 줄어드는 법이야.(151쪽)

내밀 수 있는 손이 줄어드는 게 나이드는 것이라면, 그것은 점점 무덤덤해지는 삶일까.

전, 젊을 때 허무감을 다 써버리고 싶어요. 노인이 됐을 때 허무하지 않게.-치즈 짱, 젊어서 그런 걸 다 써버리면 안돼. 좋은 것만 남겨두면 나중에 나이 먹어서 죽는 게 싫어져.-싫으세요, 죽는 거?-그럼. 당연히 싫지. 괴롭거나 아픈 건 몇 살을 먹어도 두려운 법이야.(60쪽)

아마, 그럴 것이다. 10대 때보다 20대 때보다 30대가 되면 세상을 좀더 잘 알고, 잘 대응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절대 아니었다. 다만 관계 속에서 터져나오는 감정의 일렁임을 표정에 드러내는 강도만 달라졌을 뿐이다. 마음 속에서의 일렁임은 큰 차이가 없지만 표정은 점점 무덤덤해진다. 그래서 오히려 더 슬퍼진다. 그런 자신의 표정을 바라볼 때면.

사람은 변한다는 것도요. 그것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이 말이에요. 변했으면 하는 부분은 안 변하고... 그 반대로 될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으면 좋은데.(176쪽)

그래서 세상은 그렇게 마음 먹은 것과 하등의 상관없이 흘러가고, 그 흘러가는 세월은 마음에 생채기를 남긴다. 때론 가벼운 긁힘 정도에서 끝나지만 때론 깊은 상처 자국을 남기기도 한다. 상처 위에 상처가 덧나기도 할 것이다. 아픔은 나이와 상관없이 전해져온다. 다만 펑펑 울거나 조용히 흐느끼는 정도의 차이일뿐. 또는 눈물을 집어 삼키기도 하고. 그래도 어쩔 것인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임을. 오늘도 아픈 가슴을 쥐어잡고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누군가가 깊게 패인 상처를 쓰다듬어주기만을 바라면서. 나 또한 누군가의 상처를 덧내기 보다 후시딘이라도 발라줄 수 있기를... 하지만 오늘도 난 스스로의 절망감에 누군가로부터 상처받았다고 혼자 슬퍼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피용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먼저 이 책을 거칠게 평가하자면, 흥미진진하지만 다소 투박하다라고 해야할 듯싶다. 기대되는 끝없는 상상력, 하지만 어딘가 모를 비약과 다급한 결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현재 지구처럼, 환경오염과 전쟁, 기아가 끊이지않고, 권력에 대한 투쟁과 자본에 대한 끝없는 탐욕 등으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지구를 탈출하고자, 파피용이라는 우주선을 만든다. 이 우주선은 새로운 인류를 시험하기 위해 14만 4천명을 선발해 태우고, 새로운 은하계의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행성으로 1200년을 넘게 항해한다. 세대가 거듭되면서 결국 마지막에 남은 세대 중 남녀 두명만이 새로운 행성에 도착하고, 인류의 역사는 다시 시작되려 한다.

소설의 재미는 과연 폭력적이지 않은 사람들로 구성된 파피용에 올라탄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사회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또 변해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꽤 흥미롭다. 이 과정에서 베르나르의 풍자가 돋보이기도 한다.

제 생각에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인, 군인, 목사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정부도 군대도 종교도 없는 최초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권력과 폭력, 신앙 이 세가지야말로 대표적인 의존 형태지요.(98쪽)

하지만 정작 우주선의 사회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이 세가지에 휩싸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기폭제가 된 원인은 바로 치정에 의한 살인이었다. 그전까지 범죄 한 건 발생하지 않으면서도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던 사회는 이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가 도입되면서 급격하게 지구의 현 모습을 닮아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는 노예 기질이 있으니까. 사람들은 자유를 요구하면서도 정말로 자유가 주어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어. 반대로 권위와 폭력 앞에서는 안도감을 느끼지.(중략) 그게 바로 인간이 지닌 역설이야. 더군다나 사람을 세뇌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공포라고.(216쪽)

지구와 닮은 사회로 나아가다 행성에 도착한 단 두명의 남녀. 과연 이들은 지구와는 다른 새로운 지구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들은 인간이라는 종족의 번식을 이루어내지 못한다. 물론 인공수정이라는 다른 방법으로 해내기는 하지만. 그것도 아담을 연상시키는 갈비뼈의 세포를 통해서 말이다. 이것은 순전히 창세기를 연상시키는 의도적인 장면들이다.

어쨋든, 파피용이라는 우주선에서 최초의 범죄와 제도가 등장하게 된 계기가 치정이었던 것처럼, 새로운 지구의 첫 인류가 아이를 낳지 못한 이유도 그들의 사랑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때문이다. 거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거대함의 시발점을 남녀간의 사랑에 두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반면 거대담론에서 내비치는 인간에 대한 관점도 대비되고 있어 흥미롭다. 고통이야말로 인간을 진보시키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욕망이야말로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인줄 알면서도 억제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쉽게 긍정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아담과 이브, 야훼에 대한 창세기가 우주 어디에선가 계속 되풀이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정이다. 상상력에 놀랍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그는 인간이 개미와 쥐 사이에 놓여있는 사회라고 보고 있다. 이타적 혼연일체의 개미와 이기적 개인주의의 쥐는 지구에서 가장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그 둘 사이에 존재하면서도 스스로를 파멸시키려는 폭력적 유전자를 지닌 종족인가?

유토피아를 꿈꾸면서도 유토피아를 산산조각낸 파피용이라는 소설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세에서 계속 머물러야만 하는 종족이 바로 인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서글픈 생각이 든 것은 왜일까. 새까만 우주 속에 푸른 빛을 띠는 지구. 세상은 어둠 속에서 그렇게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왠지 지금과 같은 현실은 파피용을 어디에선가 만들어봐야 겠다는 상상을 자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밴드왜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소설의 역자가 전달하듯, 저자는 마치 TV 홈드라마의 각본을 쓰듯 소설을 써 나갔다. 홈드라마에 대한 오마쥬라고 해야할까.

4대가 함께 살고 있는 가족. 여든을 코앞에 둔 헌책방을 3대째 운영하고 있는 칸이치 영감과 그의 아들인 전설의 로커 가나토. 그리고 손주로 화가인 아이코, 그녀는 싱글맘으로 딸 카요가 있다. 손주인 콘은 돈을 썩 잘 벌지 못하는 프리라이터이고 그의 배다른 동생 아오는 투어가이드이면서 훈남이라고 해야할 듯싶다. 콘은 아미라는 아내와 사는데 콘과의 결혼을 반대한 친정집과는 여전히 절연 상태다. 이들 사이엔 아들 켄토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소설마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데 이 가족들은 열심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들은 문화와 문명에 관한 이런저런 문제라면 어떠한 일이든 만사 해결이라는 가훈을 철통같이 지키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추리물을 읽어나가는 듯한 재미까지 가세하면서 책은 재미를 더한다. 그리고 이 책의 내레이션은 칸이치 영감의 아내인 사치라는 할머니로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다. 객관적인듯하면서도 주관적인 시선과 함께, 귀신이라는 처지가 가지고 있는 이동의 편이성과 비밀에 대한 접근 가능성이라는 장점과 함께, 무엇인가 해주고 싶어도 행동을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함께 녹아있는 것도 책을 맛깔스럽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주는 재미는 명랑 홈드라마라는 것이다. 어찌됐든 해피엔딩이 될 것이라는 것이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을 밝게 만든다. 더군다나 가나토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는 책이 더 빛을 발하도록 만든다. 환갑의 나이에 엉뚱한 말을 하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내팽개친듯 하지만, 실제론 사랑이 가득 넘치는 로맨티스트이다. 자신의 배 다른 아이 아오의 탄생비밀이 벗겨지는 순간은 아찔하면서도 감동을 준다. 그가 주장하는 "러브다! 상처를 덮고 치유하는 건 말이지, 역시 러브라는 이름의 반창고라고"는 그야말로 명랑한 가족의 버팀목이 된다.

세상이 명랑 홈드라마처럼 살아가도록 놔두지 않겠지만, 그래도 "러브다"라고 한번 외치고 살았으면 싶다. 왠지 미소가 얼굴 가득 번질것 같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