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사랑에 대한 꿈에서 깨어난 주인공에게 공지영은 `여성적 동지애`라는 답을 준다.즉 여성적 동지애만이 상처를 감싸고 보듬어줄 수 있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공지영의 이 결론은 주인공의 비상한 죽음으로 마감하는 비현실적,탐미적,순수문학적... [조선일보 전여옥(방송인) 1997-05-30]

`사랑을 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강하다`. 공지영이 쓴 소설의 주인공 「착한 여자」 정인은 이렇게 말한다. 다소 통속적인 이 대사는 여자들에게는 유행가 가사같은 무서운 설득력을 갖는다.시몬느 보봐르는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길러지는 것`이라고 말했다.여성은 사랑하라고 사랑 받으라고 외치고 강요하는 사회적 가족적 혹은 규범적인 요구 아래서 길러진다.공지영이 3년만에 발표한 소설 「착한 여자(한겨레신문사)」는 바로 그런 여성적 삶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과연 사랑이란 무엇인가, 남과 여의 사랑이 모든 사랑의 본보기인가 되묻는 「착한 여자」 정인은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난다.가족을 버린채 딴 여자와 살림을 차린 그 아버지는 가끔 나타나 어머니를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것으로 그의 존재를 과시한다.마침내 어머니가 자살을 선택할 때 정인은 자신을 떠난 어머니에게 외친다. `엄마 내 아버지만 바라보지 말고 제발 날 좀 사랑해줘, 날 버리지 말고 죽지말아줘`라고.어른이 된 정인은 남자를 만난다. 첫 남자는 그녀를 노리개로 삼았고, 두번째 남자는 그녀를 철저하게 이용한다.그러나 그 두남자를 만날 때 정인은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말한다. `내가 착할게, 날좀 사랑해줘, 내가 참을게, 내가 밥을 해주고, 내가 빨래를 해주고, 술국을 끓여주고, 뭐든지 다해줄게, 너희들이 나를 버리고 나를 때리고 나를 내팽개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벼랑까지 날 밀어버린다 해도 내가 이를 악물고 참을테니 날 사랑해줘`

남자에게 맞고 모욕당하고 배신당하면서도 정인은 그 남자에게 「상처를 공유한 이들」로서 동질감에 집요하게 매달린다.그것은 사랑에 대한 허구처럼 여성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모성에 대한 환각이라고 할 수 있다.마침내 세월이 주는 잔혹함을 자살로 마무리하려 했던 정인은 그 모든 착한 여자로서의 행실이나 행위가 「사랑받기 위한 거래」이며 「흥정」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착한 여자를 마감한다.남녀의 사랑에 대한 꿈에서 깨어난 주인공에게 공지영은 「여성적 동지애」라는 답을 준다.즉 일하는 여성을 위한 탁아시설,식사제공처의 일을 통해서 여성이 여성을 어떻게 돕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를 제시한다.즉 여성적 동지애만이 상처를 감싸고 보듬어줄 수 있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공지영의 이 결론은 주인공의 비상한 죽음으로 마감하는 비현실적, 탐미적, 순수문학적 결말보다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준다.공지영을 아끼는 사람이 그랬다고 했다.'좋은 글을 쓰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행복하라`고.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행복하지 않아도 좋으니 좋은 글을 쓰라`고. 고통받음으로써 성숙하고 상처받음으로써 이렇게 뿌리깊은 큰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우리 문학 한 가운데 고개 처들고 당당히 서있으라고 말이 다.

착한여자는 전투적 페미니즘 요소를 거의 배제하고... [한겨레21 이인우 기자 1997-05-15]

착한여자는 전투적 페미니즘 요소를 거의 배제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여성성의 사회화, 남성에게 종속되지 않는 진정한 힘으로서의 여성성에 대한 확인`을 시도하고 있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인용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괴테의 말은 곧 작가 자?/a> [한겨레21 이인우 기자 1997-05-15]
공지영은 88년 등단 이래 `80년대`와 `여성문제`라는 두 테마를 자기 문학의 주축으로 삼아왔다. 작가 자신의 학생운동 체험을 바탕으로 한 80년대 운동권의 열정과 고뇌가 온전히 녹아든 이 테마는 `후일담 문학`의 전형으로,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소외를 공격적으로 다룬 일련의 소설들은 전투적 페미니즘의 일단으로 각각 분류됐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착한 여자>는 이전의 그의 소설과 확연히 구분지어질 수 있는, 작가의 내면적 변화를 엿보게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착한 여자>도 여성의 사회·경제적 자립, 남녀의 동등한 인간적 관계 모색이란 공지영 문학의 큰 틀 속에 서 있다.

그러나 ##t<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t 등 이전의 작품들이 여성차별의 벽을 깨는 대안으로 은연중 여성의 남성화 내지 여성의 사회적 권력화- 남성중심의 사회제도에서 여성의 홀로서기는 결국 남성이 향유하는 권력의 균점이란 의미에서- 를 제시했다면, <착한 여자>는 여성성에 대한 긍정, 그리고 여성성 자체의 사회화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소설과 차별성을 갖는다. 또 문학적으로도 여성 내면의 심리를 꿰뚫는 묘사와 총체성을 확보해가는 인간과 삶에 대한 인식, 더욱 단련된 문체 등은 이 작가가 인간적으로 그리고 문학적으로 성숙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 자신도 이 작품을 `소설을 써온 이래 처음으로 내 자신에게 주고 싶은 소설`이라는 말로 만족감을 표시했다. <착한 여자>는 이런 점에서 공지영 문학 10년의 전후를 가늠하는 이정표로 자리매김해도 좋을 것 같다. <착한 여자>는 줄거리에서 보듯 전투적 페미니즘 요소를 거의 배제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여성성의 사회화, 남성에게 종속되지 않는 진정한 힘으로서의 여성성에 대한 확인`을 시도하고 있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인용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괴테의 말은 곧 작가 자신이 이 소설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함축한다. 작가는 지난 96년 한해 동안 이혼 등 개인적으로 많은 아픔을 겪었다. 그는 이때를 한 산문에서 `죽음 같은 순간들`이라고 고통스럽게 토로하고 있다. <착한 여자>라는 소설은 바로 그 `죽음 같은 순간들`과 싸우며 쓰였고, 결국은 작가 자신의 체험적 결론이 투영돼 있다. 작가는 소설을 끝낸 뒤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남자 대 여자라는 대립이나 차별이 아니라, 남녀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남성중심 사회는 지속적으로 개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만큼 원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조금씩이라도 진전되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이 소설의 계기를 `어머니로서 내 삶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다며 `여자답다는 것, 여성적인 부드러운 힘과 생명을 출산하는 창조성이라는 여성성의 본질이 진심으로 좋아졌다`고 말했다.

착한 여자가 있다. 말 잘 듣고 인내심 많... [문화일보 오애리 기자 1997-05-08]

착한 여자가 있다. 말 잘 듣고 인내심 많고 저녁이면 따뜻한밥상을 가족과 나누는 것이 유일한 바람인 여자. 그러나 이 착한 여자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남편에겐 학대받으며,삶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연인으로부터 버림받는다. 착한여자는 왜 불행해지는 것일까, 착한 여자란 과연 어떤 여자일까.30대 작가군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공지영(34)씨가 ‘고등어’를 펴낸지 3년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착한 여자’(한겨레신문사 펴냄)는 이른바 ‘착한 여자 신드롬’에 대한 문학적 분석서 이기도 하다. `착한 여자란 제 인생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마침표를 찍은 때가 새순이 돋는 봄철이었는데 그동안 사랑과 결혼의 의미에 대해 얼마나 지긋지긋할 정도로 생각해왔는지가 느껴지더군요. 내가 착할게, 뭐든지 다 참고 잘해줄게 하는 것들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지요. 이땅에 사는 여자들의 착한 여자 콤플렉스를 한번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소설은 지방 소도시 출신인 주인공 정인의 신산스러운 삶을 조용히 뒤쫓는다. 어린시절 어머니의 자살이란 상처를 경험한 그는고등학교 졸업후 마을의 부잣집아들 현준과 결혼한다. 남편의 끝없는 도박벽과 구타에 허물어져가던 정인은 이혼후 친구의 출판사에 취직해 새 삶을 시작하지만, 나약한 소설가 지망생 호영에게 다시 버림받고 남루한 자취방에서 칼로 손목을 긋는다.고향 오빠인 의사 명준의 보살핌으로 살아난 정인에게 남은 것은 뱃속에 든 호영의 아이.딸 효빈은 결국 그를 절망속에서 구해낸다. `나 오늘 처음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좋았어요. 내말 이해하겠어요? 아이 업고 궁둥이 두드리면서 노래 부르는 거, 내가 한 생명의 엄마라는 거….`

정인이 아이를 통해 삶을 다시 시작하는 과정은 지난해 개인적으로 많은 아픔을 겪었던 공씨 자신의 경험으로도 읽힌다. 그는 한때 자신이 강하게 부정했던 ‘여성성’‘착함’의 힘을 되찾게해준 것도 바로 아홉살난 딸과 두살짜리 아들이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착하고 부드럽고 여성적인 것은 다 남성들이 만들어낸 신화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사는 게 장난이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사회를 구하는 것은 생명을 창조하는 여성의 부드러운 힘이고, 세상은 여자와 남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을 배운 셈이지요.`  세상에 대해 좀더 관대해진 공씨의 눈길은 마지막 5부 ‘사람이 사는 집’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지난해 신문연재 스케줄에 쫓겨 서둘러 마무리지었던 이 부분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며 새로 썼다. 

그는 `단순히 남자에 대립되는 의미로서의 여자가 아니라 가족의 일원이자,사회에 기여하는 여자의 의미를 말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소설 제목 에는 애초 말 잘듣는 딸,참고 살테니 제발 날 사랑해 달라고 남자에게 `사랑`이 아닌 `거래`를 하는 여성의 모습을 [한국일보 하종오 기자 1997-05-07]

30대 여성작가군 중 대표 주자의 한 사람인 소설가 공지영(34)씨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이후 3년만에 장편소설 「착한 여자」(한겨레신문사간)를 냈다. 공지영,하면 떠오르던 이른바 후일담·페미니즘소설 류와는 사뭇 다른 차원에서 여성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그로서는 첫 신문 연재소설이기도 하다.줄거리는 고졸의 여주인공 정인이 부잣집 아들, 운동권 대학생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이혼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여성성을 발견해간다는, 자칫 상투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평범한 이야기. 그러나 공씨는 `우리가 여자인 것들에 대해서, 나 예전에는 왜 그렇게 내가 여자인 거 싫었나 몰라. 하지만 이젠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부드럽고 따뜻하고 조용조용하고 그런 거, 그건 너무나 소중한 거야` 라고 주인공이 말하듯 여성성의 소중함에 새롭게 눈을 뜬듯하다.그는 `단순히 남자에 대립되는 의미로서의 여자가 아니라 가족의 일원이자, 사회에 기여하는 여자의 의미를 말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소설 제목 「착한 여자」에는 애초 말 잘듣는 딸, 참고 살테니 제발 날 사랑해 달라고 남자에게 「사랑」이 아닌
거래」를하는 여성의 모습을 비아냥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작가는 이「착한 여자」를 거부하고 소설의 결말을 혼자 남은 여주인공이 일자리를 가진 세상의 모든 여성을 위해 완전탁아를 목표로 한단체인 「가족을 생각하는 모임」을 만들어 나가는데서 맺는다.여성과 사회의 조화를 위한 구체적 방법에 대한 고민 어린 모색인 셈이다. `페미니즘에 관한 이런저런 논쟁보다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실천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한 공씨는 괴테의 「파우스트」의 마지막 구절로 말을 맺었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하도다`

공씨는 `남녀의 대립구도가 아닌,쌍방이 서로 인간적인 삶에 기여할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 애썼다`며
`한때는 강하게 부정했던 부드러움이라는 여성성의 큰 힘을 다시 껴안게 됐다`고 말한다.[세계일보 조룡호 기자 1997-05-06]

작가 공지영씨(34)가 새 장편 「착한 여자」를 펴냈다.(전2권,한겨레신문사간) 이 장편은 이 사회가 주입시킨 그릇된 여성상에 자신도 모르게 길들여져 독립된 인간으로 서지 못한 한 여성이 사랑과 상처를 극복하고 거듭나게 되는 과정에 바쳐진다.이전에 주로 다루었던 80년대 운동권 이야기나 전투적인 페미니즘에서 한 걸음 나와 여성성의 참 의미와 그 건강한 발양에 관심을 기울인 역작이다.주인공 정인은 고졸 출신의 평범한 여성. 어린 시절 어머니가아버지에게 매를 맞다가 저수지에 뛰어든 아픈 상처를 지녔다.그녀는 같은 동네의 부잣집 아들인 현준과 결혼하지만 술과 도 박과 구타로 날을 지새는 그와 결국 이혼한다.이혼 후 직장에서 만난 남자에게서 위안과 사랑을 느끼지만 그또한 정인을 버린다.마지막 절망을 이기지 못한 정인은 동맥을 긋는다. 우여곡절끝에 이웃에서 같이 자란 오빠 명수의 도움으로 새 삶을 얻은 정인은 왜 자신이 구타당하고 버림받는 처지에 이르렀는가에 대해 자각을 하게 된다.정인은 말한다.`한 남자를 만날 때마다 나는 거래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착할께,날 좀 사랑해줘,내가 노력할께… 그건 사랑이 아니 었어요` 길고 험한 우회로를 돌아 정인이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도록 이끌어간 작가는 이 소설의 말미에 여성들끼리 힘을 모아 진정한 여성성의 큰 힘을 키워가는 공동체 모임을 제시하기도 한다.

88년 「창작과 비평」에 단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온 공지영씨는 90년대 들어 장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등어」등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를 굳히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여왔다. 공씨는 `남녀의 대립구도가 아닌,쌍방이 서로 인간적인 삶에 기여할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 애썼다`며 `한때는 강하게 부정했던 부드러움이라는 여성성의 큰 힘을 다시 껴안게 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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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호] Farnsworth House _ 거들떠 보다. #2 (06.01.17 11:13)


 

Farnsworth House ( Mies van der Rohe, 1946 ~ 1950 )

 

Farnsworth House의 공간은 여느 주택들의 공간(방들로 이루어진)과 크게 다르다.

60평이 넘는 규모임에도 설비시설의 코어를 제외하면 전체의 공간이 하나로 통합되어있다. 미스는 어떤 생각으로 이런 주택을 계획한 것인지... 이 주택은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지... 이제부터 Farnsworth House의 독특한 공간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그는 Farnsworh House를 계획함에 있어 공간행위에 대해 주목하였고, 각각 행위에 대한 방(침실, 거실, 식당 등)이 있고 그러한 방들을 공간속에 배치하던 기존의 정형화 된 설계방법 속에서 ''의 불필요함을  깨닫는다. 

 수 많은 행위들이 공간 속에서 일어나고, 공간은 그러한 행위들을 수반하게 되는데, 이러한 양자간의 관계속에 '방'의 존재는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행위들과 공간의 흐름에 방해가 될 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의 아무것도 없는(Almost Nothing)'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며, 아무것도 규정해 놓지 않은 이 빈 공간은 어떠한 행위도 수반할 수 있는 절대적인 공간이 되고 미스는 이를 'Univercial Space'라 불렀다.

 방을 없애고 행위와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가구를 용도에 맞게 배치함으로써 공간의 쓰임에 관하여 규정짓지 않고 공간에 융통성을 부여할 수 있다. 가구들은 사용자의 의도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자리를 옮길 수 있기 때문에 미스의 Univercial Space에서는 어떠한 행위들도 수용 될 수 있는 것이다.

 

 Univercial Space 속에서 적절한 가구의 배치만으로도 주거내에서의 행위들에 대한 요구를 충분히 충족시켜준다. 동쪽에 침대를 놓아주고 옷장으로 살짝 가려주어 침실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으며, 식탁 주변은 식당으로, 책상 주변은 서재로, 벽난로 옆쪽의 쇼파는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자 때로는 손님을 위한 응접실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해결해 주고 있다. 벽으로 둘러싸인 방의 형태가 아니고서도 얼마든지 주거 프로그램을 해결 해 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가구의 배치를 달리 할 수 있다는 것과, 공간이 때에 따라 얼마든지 그 쓰임을 달리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필요 이상의 가구 역시 자유로운 공간의 사용을 제한한다 믿었으며 가구를 배치함에 있어서도 '신중하게 선택된 소수의 가구'만을 배치하였다. 위 사진들은 현재 Farnsworth House에 배치되어있는 가구들인데, 과거의 사진에 의자와 작은 테이블 등은 보이지 않음을 미루어 보아 최초의 가구들에 Mies가 설계한 가구들이 추가적으로 배치되었다고 보여진다.

 

 벽난로와 화장실, 주택의 설비부분(배선,배수 등)은 밀폐된 공간을 필요로 하였고, 미스는 이들을 통합된 하나의 공간 가운데 코어로 배치함으로써 사방의 유리면을 확보할 수 있었다. 건물의 높이에 비해 코어의 높이를 낮추고 코어 윗부분의 공간은 트여줌으로써 전체가 하나의 공간임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Mies가 Farnsworth House를 통해 보여준 Univercial Space는 정말 흥미로운 개념이다. 하지만 Farnsworth House는 오직 한명을 위해 계획되어 졌기에 가족의 형태(두세명 이상으로 구성되는)로 이루어진 일반의 주거에 Univercial Space의 개념을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Univercial Space가 보다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개념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구성원들의 행위가 중첩될 때의 상황과, 행위들의 공과 사에 관한 부분들이 신중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paper.cyworld.com/Zi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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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호] Farnsworth House _ 거들떠 보다. #1 (05.12.29 13:14)  
 
 
Farnsworth House   ( Mies van der Roe , 1946~1950 )
 
 
Barcelona Pavilion과 더불어 미스의 또 다른 대표작이 바로 이 Farnswoth House이다.
 
Fansworth House는1950년 시카고 교외 폭스천 부근 나무숲 속에 독신의사 Edith Farnsworth를 위한 주말주택으로 세워졌다.

 

미스는 이 주택을 통해 그가 말해온 "Less is More"이란 문구를 건축적으로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Fansworth House 그 어디에서도 기능이 없는 장식적인 요소를 찾아 볼 수 없으며, 구조를 위한 부재들 또한 솔직하게 드러나있다.

 

Fansworth House는 77피트x29피트(23.5m x 8.8m)의 넓이에 9피트 6인치(2.9m)높이로 크지 않은 규모이고 그 구조와 형태 또한 매우 간결하다. 하지만 이 주택이 나오기 까지는 구상에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였고, 건설에도 2년이라는 기간이 걸렸다고 한다.

 

Fox River 주변 숲속에 위치한 Fansworth House


계절마다 자연의 다양한 색채에 Fansworth House의 흰색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건물의 외벽은 전부 유리로 처리되었고, 이로 인하여 거주자로 하여금 주거 안에서도 숲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Fansworth House는 장마가 졌을때 Fox River의 최대 수위를 고려하여 대지면에서 1.2m가량 들어올려진 형태로 계획되었다. 홍수를 감안하여 건물 전체를 들어올림으로써 내부의 시야와 디자인의 아름다움에서 보다 나은 효과를 얻게 되었다.

존셰퍼(John Sheaffer)는 그의 저서 "홍수에 견디기 위한 원리와 방법의 개론서" (Instroduction to flood proofing, an out line of principles and methods)에서 판스워드 주택이 폭스강이 범람한 홍수의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택의 바닥면을 높게 설정하였는데 그 구상은 후에 디자인에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늘 완벽에 가까운 시공수준으로 인해 급격히 늘어나게 된 공사비와, 강철과 유리로 처리되어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살 수 없다는 문제로 건축주 Edith Farnsworth는 미스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당시 미스 밑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던 필립 존슨(Philip Jhonson)은 구상에 3년 건설에 2년을 필요로 한 이 집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후에 뉴카낭의 자신의 부지에 Glass House을 설계할 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Farnsworthhouse는 공식 웹사이트(Farnsworthhouse.org)를 통하여 예약관람을 할 수 있다.
 
 
자료출처
o  서양건축사 Winand Klassen 대우출판사
o  Google.com & naver.com 검색

 

출처 사이트 : http://paper.cyworld.com/Zi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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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호] 몬트리올 괴APT (06.01.17 15:14)









Habitat 67은 건축가 모셰 사프디(Moshe Safdie)가 1967년에

몬트리올 엑스포의 테마인 '사람과 세상'(Man and his World)을 모티브로 설계한

아파트라고 합니다. 모두 354개의 조립식 큐브(일종의 컨테이너 박스)를

강철 케이블로 연결해 146개의 집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제멋대로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이는 건축양식 때문에 아래 층의 지붕을

위 층에서 테라스나 정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홈페이지에 강조되고 있는 Habitat 67의 특징은 쉽게 자연을

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3면에 창이 있어 밖의 아름다운 전경을 내다 볼 수 있고,

225 평방피트에서 1000 평방피트(1 평방피트 = 0.092904 평방미터)

넓이의 테라스가 있으며, 일조량이 많아 일광욕까지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집의 넓이는 624 평방피트에서 5000 평방피트까지 다양하다고 하며,

중앙난방과 에어컨, 완벽한 방음시설이 갖춰져 있고,

12층까지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6번 갈아 타야 한다고 합니다.

출처 : http://paper.cyworld.com/duds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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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리뷰] 재주소년에게서는 ‘제주 내음’이 난다 (06.01.18 12:25)
http://blog.naver.com/hanriver99/60021136727
  [리뷰] 재주소년에게서는 ‘제주 내음’이 난다.



예사롭지 않았던 첫 만남이 떠오른다.
2003년 ‘재주소년’이라는 이름이 적힌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 묘한 설레임에 한동안 심장이 멈추지를 않았다. 소년의 음악이라서 그럴까? 내 안에 숨겨진 “소녀심”을 솟아오르게 했던 첫 만남이었다.

 

20살의 재주소년은 제주가 좋아, 제주로 학교를 간 독특한 사내들이다.
그리고 ‘제주도를 닮은 그들의 음악’은 일산의 자취방에서 홈 메이드로 소박하게 시작했다. 당시의 유행이나 시장성과는 거리가 있는(?) 포크느낌의 그들의 음악은 처음 걱정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였으리라. 하지만 대담하리만큼 자신감 넘치는 그들의 음악은 결국 많은 ‘소녀심’을 휘어잡았다.

“한국 인디계의 아이돌” 이라는 특별한 애칭이 그들의 음악의 저력을 보여주는 대표 수식어가 될 정도로 말이다.

 

그들의 등장 이후,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제 그들은 소년이란 말보다 청년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나이이지만 또 한번 “소년, 소녀를 만나다 Part2”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무대가 마련되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그들은 여전히 여드름 자국이 채 가시지 않은 소년이고 관객석을 가득 채운 소녀와 만나는 ‘설레는’ 공연을 만들어 주는 것을.
조금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는 그들만의 농담과 재치로 관객들을 능숙하게 이끄는 자연스러움을 지니게 되었다는 정도일 뿐.

 

갈대가 바람에 흩날리고, 나뭇가지로 햇살이 살며시 비치는 공원으로 두 소년이 기타를 메고 성큼 걸어 나온다.
무대도 그렇고, 조명도 그렇고, 음향까지도 두 소년만을 위해 준비된, 아니 소년이 소녀를 만나기 위해 준비된 맞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잘 어울리는 그 공원에서 소년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1부의 테마는 겨울이다.
한 겨울의 귓불을 간질이는 햇살 같은 따뜻함으로, 온통 하얗게 세상을 채우는 눈꽃의 포근함으로, 소곤소곤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듯한 그들의 편안한 음악이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그들의 매력이 이어진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어색한 멘트, 그러면서도 “매끄럽죠?” 하는 순진무구함을 가장한 뻔뻔함. 기자는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소년들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원래 무대에서는 주로 경환이 멘트를 이어가는데, “경환이는 목을 아껴야 하니까, 오늘은 제가 진행을 하겠습니다.” 하며 상봉이 나선다. 예상외의 선전이다. 20분이상의 멘트도 아주(?) 매끄럽게 흘러갔으니, 재치와 유머러스함을 검증 받았다고나 할까? 솔직하게 말하면 그들의 음악만큼이나 매력적인 그들만의 대화방식엔, 의도 하지 않지만 숨을 죽이고 귀 기울이게 되는 마법이 숨겨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 또한 음악 못지않은 그들의 재주가 아닐까 싶다.

 

2부는 희망이다.
소년들이 아리따운 여성 3인조 밴드를 만났으니 자연스럽게 신나고 밝고 경쾌한 무대가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게다가, 델리스파이스의 윤준호의 톱 연주가 묘한 분위기를 이끌어 낸 ‘루시아나’나, 이소은과 함께 한 무대, 델리스파이스 김민규와 함께 부른 ‘섬’도 다양하고 풍성한 희망을 심어 주었다.
유난히 소년을 만나러온 게스트들이 풍성했던 무대였는데, 재주소년의 무대에 걸맞게 모두 편안한 차림이었다. 예솔이로 더욱 유명한 이자람, 그리고 오랜만에 솔로앨범으로 한창 활동 중인 이한철이 통기타 하나로 무대를 채웠다. 그들도 그 무대에서는 소년이 되고, 소녀가 되어 편안하고 따스한 희망을 전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앵콜 무대에서 확실하게 변신한 재주 소년의 모습이 압권이었다.
“저희 공연은, 1부와 2부 그리고 앵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라고 강조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그들의 노력에 절로 탄성이 새어 나오는 무대였다. 귤의 트롯버전 ‘굴’을 비롯해서, 나훈아 작사 작곡의 ‘땡벌’ 도 최고였지만, 역시나 압권은 비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었다. “재주소년 맞아?” 라고 할 정도로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하는 변신이었다.


경환이 조용히 쪼그려 앉아서 안경을 벗더니, 비의 보잉선글라스를 끼고 ‘음악 큐!’를 외친다. 꽤 자신감 있는 손놀림으로 하늘을 찌르지만, 관객들의 애써 웃음을 삼키며 그의 무대를 즐겨야만 했다. 게다가 갑자기 등장한 백 댄서의 허리를 잡고 능숙하게 돌리는 모습에서 이제 그들은 소년에서 청년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그 무대 뒤에 수줍은 소년의 웃음이 빠지지 않는 다는 것, 소년들이 소녀들을 위해 노력하여 준비한 것이라는 것을 객석을 가득 매운 관객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강남 한복판에서 만난 ‘제주’의 상큼한 내음.
한겨울에 만난 봄 볕 같은 따스함.
소년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소녀는 한없이 행복했다.
그리고 앞으로 또 3년, 아니 30년이 지나도 영원히 제주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소년을 만나러 다시 이곳을 찾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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