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시비돌이 > 하종강 소장 인터뷰(1)
많은 분들 읽어보시라고 올립니다. 이거 올려두면 책 안나가려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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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을 10월 8일 강남역 근처에 있는 한울법률사무소 내에 있는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20년을 넘게 매년 300여 차례 이상 노동문제에 관해서 강연을 하고, 노동 문제에 관한 상담을 해온 하종강 소장은 다른 노동자들이나 조직 사업을 하는 동료들에게 부채감이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2001년 6월부터 2004년 2월까지 2년 8개월 동안 <휴먼포임>, <하종강의 진짜 노동자>를 연재했고, CBS 라디오에서 노동문제 칼럼을 방송하고 있는 하종강 소장은 그 오랜 시간동안 계속 한 길을 온 것에 대해 '사실 힘들었을때가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오늘 이 진정서를 붙들고 하루밤 고생하면 저 노동자가 따뜻한 밥 한그릇 먹게 된다, 이런 만족감이라고 할까, 그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항상 있었다. 초등학교 교과서 정도의 인도주의적인 원칙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일이 나를 구원했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하종강 소장은 자신의 강연에 대해서도 '20년 정도하면 누구나 다 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하고, 쉽게 설명하느냐'고 말하는 노동자에게 '20년 하면 그렇게 됩니다'라고 했더니 그 노동자는 '맞아. 나도 눈감고도 기계를 돌리지'(웃음)라고 했다는 말도 전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하종강의 강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종강의 강연을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의 강연엔 늘 그가 직접 겪은 그 생생한 '현실'과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들어간다. 강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파업현장에서, 집회에서, 평범한 일상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겪은 고통, 울분, 저항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여러 감동들이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달된다. 하종강의 강연이 '살아 있다'는 평을 듣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머리에 담긴 게 많아도 결코 하종강이 노동자들과 함께 해온 그 20년 세월을 따라올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강의교재는 어떤 체계적인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바로 하종강 그 자신인 셈이다"
그 '살아 있음'은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느낄 수 있었다. 하종강 소장은 언젠가 '권력과 자본에 대한 입장'이라는 글에서 "이웃의 정당한 몫을 빼앗아 가는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대해 저항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우리 사회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그가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대해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때 '그가 80년 5월 '광주'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됐던 것처럼..."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는 아직 같이 운동을 했던 동료들과, 광주의 기억에 대한 부채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지만 내가 그 부채감 때문에 자살할만큼 도덕적이지는 못하다'고 씁쓸하게 말하고 있다.
하종강 소장은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내 생각에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조선일보 생각을 얘기하는 노동자들이 많다"고 얘기하면서 그것이 "아주 비틀리고 왜곡된 근대화 과정 100년의 역사때문인게 가장 크다. 그들 개인의 탓이 아니고, 인격의 탓이 아니고, 결국 사회 구조 탓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그 계급성 때문에 올바른 길을 결국은 찾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 개인의 인격과 교양의 문제보다도 그 사람이 어느 구조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느냐가 우리 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되는지,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는지를 결정한다'고 강조하는 하종강 소장은 안티조선운동에 대해서 '이해득실을 따져가면서 하는 과학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지식인들의 양심적인, 지사적인 운동'이라고 말했다.
하종강 소장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한국노동교육원 객원교수, 노동자교육센터 교육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실무자(19 80-1985), 일꾼노동문제연구실 실장(1982-1985), 한국기독교산업개발원연구원(1985-1988), 한울합동법률사무소 노동상담실장(1988-1993), 사단법인 한국산업안전보건교육연구센타 소장(1998-2002), 한겨레노동교육연구소 연구원(1998-2002) 등을 역임했다.
(인터뷰어 註) 사실 이 인터뷰를 빨리 공개하기를 얼마나 원했는지 모릅니다. 노동문제에 관해서 이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텍스트는 흔치 않을거라는 생각도 했고, 물론 더 치열하게 살아온 분들도 있겠지만, 노동문제에 대해 실제와 이론을 접합시키기 위해 고민해온 사람으로는 하종강 소장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원래 이 원고는 격월간 아웃사이더의 종간호(출판사에서는 휴간이라고 말하지만)의 청탁을 받고 한 원고입니다. 제가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 출판사죠. 그래서 많이 기다렸는데, 출판사 사정의 여의치 않아서 종간호를 찍는 것마저 계속 연기되어 왔고, 그래서 혹시 찍게되면 다른 원고를 넣자고 양해를 구해서 서프에 올립니다. 너무 길어 둘로 나눠서 올리는데, 정말 시간 내서 한 번쯤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은 인터뷰입니다.
- 다음은 인터뷰 전문입니다.
지승호(이하 지) - 2001년 6월부터 2004년 2월까지 2년 8개월 동안 <한겨레21>에 노동자 인터뷰 기사를 연재하셨는데요. 처음에는 <휴먼포임>이었고, 나중에 <하종강의 진짜 노동자>로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은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하종강(이하 하) - 제가 마지막회 쓸 때 썼는데요. 주변에 보면 사연을 간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제가 전태일 문학상 받았을 때 주변의 반응이 '다들 소설책 몇권쯤 쓸 만큼의 이야기는 있는 사람이야'라는 반응이었어요. 제가 볼때는 그런 경험들 중에서 자신이나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겪었던 일들, 그런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우선 선정대상이었구요. 그 중에서 아주 유명하거나, 출세하지 않은 사람들, 운동권내에서조차 중심에 우뚝 서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했죠.
단병호 위원장 같은 분은 갈등의 대상이었는데, 그 분은 운동의 중심에 서 계신 분이고, 소문나지 않게 주변에서 활동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집회가 열리면 앞에서 그걸 지휘하는 훌륭한 활동가도 있지만, 거기 쏠려다니면서, 두려워 떨면서 이 골목 저 골목 쫓겨다니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 주로 그런 사람들이 대상이었는데, 실제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 중에 가장 못만난 사람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예요. 자신이 그런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이어서 굉장히 설득하기 어려웠어요.
끝내 가명으로 나간 분도 있구요. 사진 멀리서 찍어달라고 한 사람도 있었구요. '20년 친구들도 내가 이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친구 결혼식이다 이러면서 모임 있을때마다 핑계대기 바빴다'고 얘기하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소중한 사람들인데, 많이 만나지 못했어요.
지 - 하신 분 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 대상자는 누구였습니까?
하 - 많이 알려진 사람 중에는 홍준표 부위원장이 있었구요. 한국통신 비정규직 투쟁을 500일 넘게 했던... 그 양반은 전국 수백개 전화국에 두세명씩 또는 많아야 몇십명씩 흩어져 있는 비정규직을 모을때부터 같이 봤거든요. 같이 다니기도 했고. 인간의 의지로 어떻게 저렇게 500일이 넘도록 싸울 수 있을까? 그리고 상상속에서 가능한 투쟁은 모두 다 해봤잖아요. 한강 다리에도 올라가보고, 목동 사옥도 점거해보고, 영하 20도 넘는 길거리에서 노숙투쟁도 해보고, 상상으로 가능한 모든 투쟁을 500일 넘도록 할 수 있는 그런 분들을 보면 정말 고개 숙여지구요.
그 다음에 동일방직에서 해직된 노동자인데, 농사꾼과 결혼해서 음성에서 농사 짓는 여성이 있었는데요. 농민회 활동을 거기서 해요. 여성농민회 회장도 맡고 그랬는데, '어디가나 이러고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어' 라는 얘기를 하더라구요.(웃음) 그 사람을 제가 인터뷰하려고 10년만에 만났어요. 그런데 10년전의 그 모습과 그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더라구요. 제가 환대는 전혀 못받았어요. 인터뷰한다고 전화 했을때도 '우리가 주변 사람들하고 얘기해봤는데, 당신을 인터뷰하는게 좋겠다고 결정을 했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도대체 어떤 작자들하고 얘기해봤는데' 그러더라구요.(웃음)
인터뷰 다 끝나고 나서 제가 차에 올라타면서, 거기가 흙바닥이잖아요. 시골이니까. 차에 올라타면서 발을 차 앞에서 탁탁 털고 차를 탔더니, '야. 하종강. 저거 발 털고 차타는 꼴 좀 봐라' 그러더라구요.(웃음) 그럴 때 어떤 열등감 이런게 느껴지구요. 마지막회 쓰면서도 요즘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연락해봤더니, 그때 여의도에서 농산물 개방에 반대하는 데모가 매일 열리고 있을때였거든요. 올라와서 매일 물대포하고 싸우느라 정신없을때인데, '한번도 못찾아가서 미안하다'고 입에 발린 인사를 하니까 '아. 뭐. 누가 찾아오면 좋아한데. 젠장' 그러더라구요. 제가 전혀 따뜻한 말을 한번도 못들었지만, 상당히 인상깊은 사람입니다.
지 - 부채감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셨는데요. 아무래도 몸으로 투쟁하는 사람들을 많이 지켜보시니까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금 '열등감'이라는 표현도 하셨는데요.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소장님한테 부채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지 않겠습니까?
하 - 그럴까요?(웃음)
지 - 운동도 즐겁게 해야 더 효율적으로 오래할 수도 있을 거구요. 역할이 다른 것일수도 있구요. 안치환씨 같은 경우 예전에 '현장에 가끔 가보면 그 사람들의 우월의식 같은 것을 느낄때 불편한 생각이 들때도 있었다'고 표현하던데요.
하 - 안치환씨는 현장에 잘 안오잖아요.(웃음) 제가 그렇게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 '하종강을 보면 항상 2%가 부족한 것을 느낀다'고 얘기하는 후배가 있거든요. 그런 치열한 과학적인 이론이 필요없다는게 아니라 나이들면서 보니까 주변에 저 말고 다른 사람들도 깊은 곳에 그런 부채감이 있어요. 이소선 어머님 만났을때도 제가 두시간 넘게 얘기하고 느낀게 태일이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태일이가 꿈 속에서 '내가 죽으면서 캄캄한 하늘에 구멍 하나 뚫는건데, 어머니가 남은 평생 그 구멍 조금만 더 넓혀주세요. 꼭 그렇게 가세요'"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게 어머니한테 '내 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자'는 부채감이 가슴 깊이 있는 거라고 봤구요. 주변에 치열하게 산 사람들일수록 정서적인 부채감을 공유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게 저급한 차원의 정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송영수라는 후배를 만났을 때 그 후배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사상적인 교류를 나눌 수 있는 친구였는데, 자기가 20년 넘게 운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더라구요. 그 친구는 결국 최근에 간과 콩팥을 동시에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신부전증으로 하루에 네 번 투석하면서도 대한민국 최초의 지역일반노조를 만든 사람이거든요.
민주노총의 어떤 활동가도 고개가 숙여지는 후배인데, 그 후배가 저한테 마지막에 헤어지면서 '형이나 나나 비슷한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 형은 이십년 넘도록 그 일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뭐요?' 그래서 '나는 세계관이 바뀌지 않았거든' 이렇게 대답했어요. '나는 내 철학을 안바꿨거든' 했더니 후배가 픽 웃으면서 '그런거라면 저는 벌써 포기했을거예요. 저는 형에 대한 미안함때문이었어요' 그렇게 말하는데, 81년도에 그 후배가 잡혀가서 고문당하다가 내 이름을 말하는 바람에 잡혀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 후배는 자기 때문에 내가 고문을 당하고, 그때 내가 내 후배 이름을 하나 이야기하고, 그 후배가 그 놈 이야기하고 이렇게 엮였으니까 결국 그때 자기 때문에 고문당하고, 감옥에 갔던 사람들이 자기가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때마다 자꾸 생각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만났던 노동자들이 너무 불쌍해, 이런 인연을 끊고 사람들은 살지만, 나는 못끊은거야' 라고 그래요. 근데 그 사람은 굉장히 치열한 운동가이고, 사상가예요. 가는 조직마다 항상 운동이론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런 후배조차 마음 깊은 곳에 그런 부채감이 있다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런거 보면 그게 꼭 유치하다고 볼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도 요즘은 교육 끝나고 나면 토론하잖아요. 교육은 일방적으로 주입시키고, 전달하는거지만, 토론은 주고 받는 거잖아요. 그때 저한테 '너무 감상적인 태도로 운동하시는게 아니냐'고 지적하는 노동자들도 있어요. 그럴 때 저는 '오히려 저를 지켜주는게 그 감성일지도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죠.
지 - 그런 부분에 대해서 분명히 어떤 부채감을 느끼고, 자기보다 훨씬 더 철저한 사람들에 대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부채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사람을 지치게 만들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저 정도가 아니면 운동 못하는거 아니냐' 하는 좌절감이 들 수도 있구요.
하 - 어떤 사람들이 지치냐 하면요. 운동권내에서도 꼭 성공해야된다는 집념을 가진 사람들은 지쳐요. 그런데 제가 서울대학교 학생회 간부들을 만났을 때 '그 강의를 그 나이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라고 신기한 듯이 물어보는데, 두가지만 결심하면 된다고 얘기했어요. "'돈을 많이 벌지 않겠다, 운동권내에서 출세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정말 할 일은 세상에 널려있다"고 했더니, '그 두가지가 너무 어려운거네요' 그러더라구요.(웃음)
운동권내에서 성공해야된다는 집념을 가진 사람들은 지칠 겁니다. 우리가 예전에 전두환, 노태우하고 싸울 때 '우리의 쌓여진 인식체계와 투쟁을 통해 우리 후손들에게는 민주화된 조국을 보여주자'는 표현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 생각을 하면 우리가 지치려고 하는 사람들을 계속 채찍질하는 생각이 되죠. 우리 후배중에는 제가 그런 생각을 가지는게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열등감'이라고 예리하게 분석을 하는 친구도 있어요.
저는 조직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조직활동을 안해보지는 않았는데, 그걸 포기한 사람이거든요. '이건 누군가는 반드시 담당해야되는데, 저는 못하겠다'고 포기했는데, 노동조합활동 하던 사람들도 처음에는 저로부터 영향을 받고 시작하지만, 몇 년 활동하면 저보다 훨씬 더 훌륭한 스승들이 되거든요. 갈등을 한번은 다 겪어요.
'노동운동이 이런건지 몰랐습니다' 하고. 내부의 적과 싸워야될 때 특히 그런데, 저는 '원래 그런 겁니다. 저는 그걸 포기한거고, 당신은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내가 포기한 일을 당신은 계속 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제가 이런 공간에서, 사무실이 굉장히 번듯하고 좋은데, 제가 노동상담이라는 걸 법률사무소 구석에 책상을 하나 갖다놓고 시작했을 때 '너무 편하게 산다'고 굉장히 많은 비난을 받았어요. 심지어 '거기서 좀 기어나와라. 그만 편하게 살고 좀 기어나와라. 우리는 니가 그것밖에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기도 했어요.
조직운동에 복무하지 않는데 대한 비판은 많이 받았는데, 그래서 한동안 시달렸는데, 사람들이 이제는 거의 포기했죠. '내 배를 째든지.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하니까.(웃음)
지 - 어떤 면에서는 역할이 다른 것일 수도 있구요. 운동이라는게 사회가 복잡해지니까 소위 말하는 진정성보다 '그 역할을 얼마나 슬기롭게 잘할 수 있느냐'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우리 사회도 그렇고, 특히 운동진영에서조차 칭찬하는 문화가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장님조차도 2% 부족하다는 말씀을 듣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얘기하기보다는 '너무 너무 잘해왔다'고 먼저 말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 같은데요.
하 - 2% 부족하다는 것은 나머지 98% 정도는 된다는 거니까.(웃음) 홈페이지에 어느 후배가 썼어요. '하선배를 보면 항상 2% 부족함이 느껴진다'고.
지 - 78년 동일방직 여공들의 소위 똥물사건과 나체시위를 보고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하 - 그때는 뛰어든게 아니고 관심을 가지게 된거죠. 동일방직에서 124명이 참여했는데, 절반 정도가 저와 동갑이었을거예요. 같은 나이의 여성들이 그런 일을 당하도록, 벌거벗고 싸워야 되고, 똥을 먹어야되는데도 그 사실을 몰랐다는게 굉장히 큰 충격이었죠. 그래서 혼자만 알아서는 안되겠고,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 - 그 당시 우리 노동자들과 여성의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던 것 같은데요.
하 - 7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죠.
지 - 그만큼 우리 노동자들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흔히들 우리 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의 계급을 배반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노동자 중에 한나라당의 지지하는 분들도 꽤 있지 않습니까?
하 - 많죠. '내 생각에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조선일보 생각을 얘기하는 노동자들이 많죠. 아주 비틀리고 왜곡된 근대화 과정 100년의 역사때문인게 가장 크구요. 그들 개인의 탓이 아니고, 인격의 탓이 아니고, 결국 사회 구조 탓이거든요.
하지만 노동자들은 그 계급성 때문에 올바른 길을 결국은 찾을 수 밖에 없어요. 노동자들이 결국은 자기가 한 푼 더 받기 위해서, 자기 아파트 집 한 평 더 늘이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우리 사회에 유익하게 영향을 미치거든요. 자본가, 사장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별장을 지으려고 생각하는 순간 사회 전체에 해롭거든요. 노동자들에게 인격과 교양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면, 제가 노동운동하는 사람들 편에 서 있을 필요가 없죠.
만나보면 솔직히 노동자 간부들보다 노동조합 탄압하는 인사노무 관리자들이 매너가 훨씬 좋아요. 그 사람들 교양 있고, 학력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거든요. 어느 구조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느냐가 우리 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되는지,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는지를 결정하거든요.
노동자들이 예전의 정치의식이나 사회의식이 전혀 없는 시절과 비교하면 얼마나 많이 달라졌습니까? 보수의 상징인 것 같은 공무원들조차 노동자의 깃발을 들고 있는걸 보면 우리 사회가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겁니다. 긴 역사 안목에서 보면 굉장히 빠른거죠. 그 사람들이 영원히 조선일보 생각을 자기 생각처럼 얘기하지는 않을 거구요. 예외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는 바뀔겁니다. 노동자라는 존재 자체가 올바른 선택을 강제받기 때문에 개인의 의지나 인격이나 교양의 영향은 별로 안받습니다.
지 -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을 해야한다고 보십니까?
하 - 조직, 홍보, 교육 같은 일상적인 활동이죠. 왕도가 없어요.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항상 위기를 타개하는 뾰족한 수는 없고, 오히려 수를 쓰다가는 망하는 경우는 있겠죠. 노동조합이 일상적으로 가져야하는 덕목이 있거든요. 노동조합 간부들이 일상적으로 가져야하는 자세 이런게 항상 중요하죠. 아주 지긋지긋할 정도로 끊임없는 조직, 홍보, 교육, 선전활동을 해야하는겁니다. 그런데 그게 역사의 진행방향과 나란히 가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고통속에서도 뿌듯한 성과를 반드시 이루는거죠. 실패할때가 많지만, 반드시 성공하거든요. 박준석씨 같은 사람이 노동운동을 '승리할때까지 패배하는 싸움'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런 뜻이죠.
지 - 우리가 아직은 노조 가입율도 상당히 낮은 편이고, 사회적으로 노동운동이 활발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하 - 많이 낮은 편이죠. 11% 밖에 안되니까. 노동운동을 올바로 이해하는 정서가 역사속에서 한번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어요. 우리는. 노동운동은 사회에 유익하다, 이것이 사회의 상식으로 건전하게 자리잡지 못했고, 역사속에서 그런 경험이 전혀 없거든요. 토대가 굉장히 취약한거죠. 그런데 그 토대가 취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역사발전과정이 정상적이지 못했기 때문이죠.
일제식민지라는 기형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화가 이룩되고, 우리나라에서 근대화 과정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다른 나라 기준으로 볼때는 거의 범죄적 집단이었거든요. 이렇게 식민지 시대에 동족을 배신하고, 점령자에게 협력했던 세력, 즉 민족반역세력들이 해방된 이후에도 근대화 과정을 계속 지배한 나라가 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월남하고, 대한민국 밖에 없다고 하거든요.
식민지 40년에 분단 60년을 겪으면서 그 와중에 군사독재가 30년이었거든요. 기형적인 역사발전 과정이 우리 한국사회의 노동운동을 기형적으로 탄압한 토대가 되는거죠. 노동자들의 임금인상투쟁이 범죄행위로 취급을 당하는 이런 정서를 가진 이상한 나라잖아요. 지금도 마치 노동자들이 대자본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양보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애국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런 정서가 아직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잘못된 토대가 있는거죠.
그런데 다른나라보다 노동운동의 성장이 뒤진만큼 역으로 87년 노동자 대투쟁 같은 커다란 역사가 가능했잖아요. 몇십년동안 후퇴된 상황을 한꺼번에 반전시키는 그런걸 보면서 희망을 갖는거죠. 왜냐하면 저는 제 생애가 끝날때까지 그런 장면을 못볼 줄 알았어요. 공무원 노동조합이 다른 나라에 다 만들어지는 걸 봤으니까 언젠가는 만들어질 줄 알았는데, 그 속도가 이렇게 빠를 줄 몰랐거든요.
전국 방방곡곡에 거의 안생긴데가 없거든요. 휴전선에서부터 남쪽 해남, 완도까지. 제가 이 모습을 환갑되기전에 보게 될거라는 생각을 불과 몇 년전까지도 못했거든요. 그래서 전교조 선생님들 만나면 이런 얘기를 해요. 저는 그 분들이 굉장히 부러워요. 저는 평생 그들을 돕는 주변 사람들에 불과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무리 작은 활동을 해도 자신이 그 운동의 주체잖아요.
전교조가 십만명의 조직을 갖추게되는 이런 날이 올 것을 제가 짐작했다면 아마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거라고, 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교사임용시험보고, 교육노동운동의 주체로 서지, 평생 노동자를 도와줘야하는 것을 내 직업으로 선택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얘기를 합니다. 만나면 그렇게 얘기해요.
지 - 역할의 차이라는....
하 - 그게 중요한 역할이고, 내가 그 역할을 맡아야겠다고 선택한 것도 아니구요. 솔직히 현실하고 30% 정도 타협하면서 여기 안주한겁니다.
지 - 사실 '노동운동은 이기적인 운동'이라고 소장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사실 남을 괴롭히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의 권리를 추구하는 것은 정당한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시민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욕심을 내서는 안되고, 당연히 희생을 해야되는 것처럼 얘기해왔지 않습니까? 가령 탄핵 사태가 벌어졌을 때 광화문에 앉아 있던 대중들은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옆에서 기록하거나 하는 사람의 역할 역시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부채감을 느끼거나 '내가 저 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열등감을 느끼는 수도 있는 것 같거든요.
하 - 그 사람들은 부채감을 안 느낄 것 같은데... 앉고 싶으면 거기 앉을 수 있잖아요. 자기가 두려워서 거기 앉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 - 비유가 좀 적절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하 - 자기가 바쁜 과업이 있었기 때문에 하지 않았던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내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게 옳은 일인지 알지만 포기한거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단병호 위원장님처럼 여섯 번씩 감옥에 갔다오고 그렇게 해야죠. 할려면. 그런데 전 그런 사람들한테 물 한잔 떠다주는 걸 선택한거죠. 제 능력이 그 정도 밖에 안된다고 생각한겁니다.
지 - 사실 한국 사회는 노조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김 - 최근에 더 부정적으로 됐죠. 특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공격당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개혁적인 대통령이 들어섰는데, 가장 보수적으로 퇴행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지 - 김두한은 자서전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생각하고, 죽인 것을 자랑스럽게 묘사하기도 했구요. 그 사람의 인생을 TV 드라마에서 미화시키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어머님께서도 노동 운동을 하신 걸 아버님에게 조차 40년간이나 숨겨왔다고 '정범구의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서 말씀하셨는데요.
하 - 어머니뿐만이 아니고 다 그랬어요. 다른 사람들도.
지 - 예전에 한국전쟁때 학살당한 분들이 그 사실을 얘기하는 것조차 불이익을 당할까봐 얘기하지 못하고 자식들한테까지 숨기고 살았던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하 - 요즘 조사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지금 처음 얘기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더라구요. 4.19 혁명 직후에 민간단체가 만들어져서 민간인 학살 신고를 받았는데, 그때 엄청나게 많이 신고를 했는데, 요즘 조사하는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까 그때 신고했다는 사람은 거의 못보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고한 사람들도 빙산의 일각인거죠.
지 - 아직도 그런 정서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요.
하 - 많이 남아있죠. 박근혜씨가 저렇게 차기 대통령 후보로 인기를 끄는 걸 보세요.
지 - 그런 걸 노리고 빨갱이 발언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운동을 하는데 심리적으로 걸림돌이 많이 되는 것 같거든요. 괜히 나서서 발언을 하는데 대한 공포감이 아직도 있는 것 같구요.
하 - 활동가들과 조직운동가들에게는 굉장히 큰 걸림돌인데요. 노동자대중운동 속에서 통일 문제는 큰 걸림돌이 아니예요. 그리고 빨갱이라는 색깔 논쟁이나 이런 것들이 노동조합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하는 대중활동 속에서는 아직은 큰 장벽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먹고 살자고 사회 전체에는 별로 유익하지 않은 투쟁을 하는구나' 하는 이런 정서가 큰 장벽이예요. 자신의 활동에 대한 정당성이나 철학을 가지기 상당히 어려운 조건들입니다.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을 하면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지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나를 위해서 한푼 더 받기 위해서 싸우는구나' 하는 이런 정서를 저 깊은 곳에서 떨쳐버리지 못하거든요.
지 -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는 보수언론들의 보도 태도도 한 몫하는 것 같은데요. '이 가뭄에 파업이냐?'고 하기도 하구요. 고액연봉자들이 파업을 하느니, 노동귀족이니, 이기주의니 하고 매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실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닌데도 말이죠.
하 -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제가 오늘 저녁에 할 강의 때문에 뽑은 자료가 있는데, 그걸 가져올께요. 이 기사 제목들 좀 보세요. '노조 하나에 계파만 9개', '대안없는 반발 목소리, 파업 후에 남은 것은 분열 뿐', '대사업장도 외면하면 산별투쟁', '노조원 설득못한 투쟁노선' 이런 걸 보면요. 얼마나 웃기는지 몰라요. 얼마나 노동자들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하는지 알 수 있는데요.
'노조 하나에 계파만 9개'라는게 조합원 37,000명이었던 당시 현대자동차 얘기하는거예요. 그 정도의 조직원을 가지고, 전국 사업장의 영업소까지 수십, 수백개가 흩어져 있는 조직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나' 하고 고민하는 조직이 9개 정도 있는게 문제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아홉 개의 조직이 선거철만 되면 항상 세 개 정도로 통합이 됩니다.
굉장히 훌륭한 민주주의 훈련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거거든요. 근데 이 기사만 보면 '죽일놈들'이 되는거죠. 그 다음에 '대안없는 반발 목소리'라는 것은 철도노조나 발전노조에 대해 "민영화를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할 수 있나를 따지지 않고, 니네들은 왜 반대만 하냐?"고 하는건데요.
어차피 민영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을 해도 노동조합은 전술상 전면철회를 처음에는 요구할 수도 있어요. 전술의 하나거든요. 그런데 지금 현재 철도나 발전의 민영화가 경제에 유익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벌써 나오고 있구요. '파업후에 남는건 분열뿐'이라고 하는데, 파업 후에는 항상 분열이 남아요. 그게 정상입니다.
노동조합이 대중조직이기 때문에 파업을 통해서 얻은 것이 모든 조합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이 어려워요. 어떤 사람은 이익을 많이 보고, 어떤 사람은 적게 보고, 심지어는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건 당연한거거든요. 그 다음에 '대사업장도 외면하는 산별투쟁', 산별투쟁은 원래 대사업장은 외면하게 되어 있어요.
산별투쟁이 뭐냐하면 조합원이 37,000명인 현대자동차가 조합원이 50명인 다른 금속사업장과 똑같은 자격으로 싸우는게 산별투쟁이거든요. 끊임없이 대사업장 노동자를 설득하면서 하는 것은 산별투쟁입니다. 노조원 설득못한 투쟁노선, 원래 노동조합이라는 것은 노동조합 집행부가 의지를 가지고 노동자 대중을 끊임없이 설득하면서 하는게 투쟁이거든요.
51%가 찬성한 안을 가지고, 49%를 끊임없이 설득하면서 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거든요. 이게 근대화과정 100년 속에서 잘못된 역사로 인해 어렵게 가게된 거거든요. 한두해에 있었던게 아니기 때문에, 태어날때부터 이런 것에 완전히 찌들었는데, 오히려 이 정도의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된게 기적이죠. 이 잘못된 정보와 선전의 홍수 속에 살면서.
지 - 아까도 '노동조합은 원래 이기적인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우리는 수구기득권들의 잘못에는 그냥 싸잡아서 '저것들은 원래 나쁜 놈들이니까'라고 우리와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얘기하고, 진보진영에 있는 사람들의 정당한 요구는 이기심으로 매도하는 풍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보수 언론이나 이런 쪽 말고, 진보진영 스스로도 그런 프레임에 갖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당연히 이런 목소리를 내니까 더 깨끗하고 정당해야돼'라고 생각하는 건 옳은거지만, 지나칠 경우 이쪽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 - 내부에서 끊임없이 비판들을 해요. 그건 당연한거예요. 그걸 외부에 대고 노동운동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하니까 문제가 되는거지, 내부에서는 얼마나 치열하게 싸웁니까? 서로 비판을 하고. 저도 매일 노동자들 만나서 반성을 해야한다고 얘기합니다.
특히 대기업 노동자들 만나서 '당신들이 대자본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자기 스스로의 권리를 축소시키는 것은 반사회적이고, 반동적인 처사지만, 그 방법 외에는 비정규직을 끌어안을 수 없다면 전술적으로 그 방법을 선택해야 된다. 당신들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라고 얘기하죠. 그런데 노동문제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 조선일보쪽 생각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매체에서 주로 노동운동을 공격하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고 봅니다.
지 - 예전에 단병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께서도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셔 가지고 비판을 받은 적이 있지 않습니까? 노동운동에 대해 늘 부정적인 조선일보 같은 매체를 상대한 것은 철저하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는데요.
하 - 그러셨더라구요. 그런데 안그런 분들이 더 많죠. 문부식씨 같은 사람들이 문제가 되는거지, 만나면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어요. 어떤 논리와 어떤 심정으로 그 인터뷰에 응했는지. 단병호 위원장이 안티조선 운동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지 못해서 그랬다고 생각을 해요. 안티조선운동이라는 것은 지식인들의 양심적인, 지사적인 운동이거든요. 이해득실을 따져가면서 하는 과학적인 행동이라기 보다. 그런 걸 공유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 - 요즘 언론개혁운동이 열린우리당의 당파적인 운동으로 전락한게 아니냐는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의 비판이 많이 있는데요. 그렇게 볼 수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의 태도를 일정 정도 비판할 수 있지만, 여전히 언론개혁운동은 필요한 것 같은데요.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한다고 보십니까?
하 - 올바르고 공정한 언론이 여기쯤 있다고 쳐요. 그럼 한나라당은 아주 오른쪽에 있어요. 민주노동당은 한참 왼편에 있구요. 열린우리당은 그 가운데 어디쯤 있겠죠. 지금은 언론이 적극적으로 열린우리당이 지향하는 쪽으로 따라오는 것이 진보의 방향입니다. 그런데 절대 여기서 머무르면 안돼죠. 민주노동당 정도의 수준까지 와야 공정한 언론이 되겠죠.
지금은 언론뿐 아니라 정치적인 정서도 마찬가지인데, 한나라당과 같은 정당은 세계정당사에 거의 없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한나라당이 미국의 공화당 정도의 성격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안그렇거든요. 열린우리당이 미국 공화당 정도되는 보수적인 정당이고, 미국의 민주당은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민주노동당과 가까울 정도의 진보성을 가지는 정당이거든요.
한나라당처럼 거의 범죄적 성격을 가진 세력이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정당은 역사 속에서 다른 나라에 별로 있은 적이 없어요. 정범구씨 같은 경우는 '한나라당은 역사속에서 소멸해야될 정당이다. 소멸할 것이다'고 하거든요. 앞으로 한국 정치는 열린우리당 같은 보수당,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적인 성격을 가진 정당들이 앞으로 정치 지형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볼때는 지금 언론개혁운동이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열린우리당쪽 방향인데, 지금까지는 그 방향이 민주노동당의 방향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명백히 있어요. 노동운동에 대해서 적대적인 입장을 가진다는 건데요. 열린우리당은 미국의 민주당보다 보수적이라고 평하는 이유가 최소한 미국의 민주당은 노동운동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아요.
미국에서는 항상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는 미국노총의 동의를 얻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미국노총의 동의를 얻지 않고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열린우리당은 최소한 노동운동에 대해서 적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론도 열린우리당과 함께 개혁작업을 추진하면서 거기에 머무르면 안되는거죠. 그때부터 보수반동이 되는 겁니다. 아마 거기서 머무르지 않을 겁니다.
지 - 그걸 개혁의 한계로 보시는 겁니까?
하 - 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 돌파력의 한계죠.
지 - 현 정부가 갈 수 있는게 이 정도라고 보고, 지지자들이 왼쪽으로 끌어오기 위해 비판을 많이 해줘야한다는 얘기들도 있는데요.
하 - 국민의 힘 이런데서 열심히 활동하는 후배들을 만나면 '우리도 그걸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드물게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총력을 기울여서 노무현 정부의 개혁이 가능하도록 해야되지 않느냐'고 하기도 하는데, 김영삼이 민자당에 들어 갔을때도 그런 논리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김문수씨가 거기 들어갔던거구요. 이번에 김문수씨가 10만명이 시청 앞에 모여서 집회했을 때 가서 한 얘기보세요. 그렇게 되면 안되지.
지 - 김문수 의원 같은 경우를 보면 '정치인도 소시민처럼 하나의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던데요.
하 - '저 사람도 한나라당내에서 소수파니까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천박한 보수세력이라도 끌어안아야 되는 절박한 처지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지 -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쪽에서는 지나치게 노동자의 편을 든다고 하고, 노동계에서는 기업의 편을 든다고 하고 있는데요.
하 - 평가하기 힘든데, 정책을 일관하는 철학이 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개인적인 면면도 제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역사 의식으로 무장된 조직활동 속에서 단련되었던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건데, 지금 현재 한국 사회의 구조는 노무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적 성향의 권리도 얻기가 상당히 힘든 구조인 것 같아요. 노무현 정부의 개혁성이 이 권력구조를 돌파할만큼의 힘과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권변호사 출신이 대통령도 하고, 장관도 하고, 청와대 곳곳에 포진하지 있는 정부에서 어떻게 이렇게 반인권적인 노동정책이 나올 수 있는가 하고 사람들이 의아해했는데, 그동안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표현의 '인권'에 사람들이 많이 주목했다면 이제는 이 사람들이 변호사들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거죠. 태생적인 한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구요.
처음에는 저도 헷갈렸어요. 노무현 정부가 처음에 친노동자적 정부라고 얼마나 욕을 먹었습니까? 그래서 보수세력을 끌어안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노동자를 공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보니까 실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고생하고 활동하는 후배들 만나봐도 저를 만나서 대기업노동자, 기득권을 공격하고, 구체적으로 '대기업 생산직이 1년에 5천만원 받는다잖아'하면서 정책 입안에 권한을 가진 후배까지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실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 - '헤게모니를 소위 중산층 노빠들이 장악을 했는데, 그 사람들이 원하는 수준의 개혁이 그 정도일 것이다'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하 -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중산층이 아니거든요.
지 - 아까도 "가장 개혁적인 대통령이 집권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퇴행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하 - 그건 피부로 느껴요. 대통령이 여러번 바뀌는 동안 지금처럼 힘든때가 없었어요. 노동자보다 훨씬 잘사는 사람들이 노동자 앞에서 이렇게 당당한 적이 없었어요. 한미은행 노동조합이 여주에 있는 노천교육원에서 파업을 며칠째 벌이고 있을 때 의사들 중에 양심적인 의사가 모인 단체가 있잖아요.
거기서 장기파업장 건강검진 봉사활동을 다녀요. 그런데 거기 갔다 왔다는 겁니다. 밤 12시 넘어서 의사 후배가 전화를 했는데, 갔다 와서 내부에서 굉장히 논란이 있었다는 거예요. 가니까 연봉 오천만원, 육천만원씩 받는 노동자들이 있다는데, 이런 사람들까지 지원을 해야 되느냐고 했답니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나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의사들 자기들 수익하고 비교해봤거든요.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잘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당당하게 노동자들을 꾸짖는 때가 그동안 없었어요.
제가 노동문제하고 관계없는 사람들을 만날때가 있는데, 고등학교 동창이나 교인들을 만나면 '노동자들이 1년에 5,000만원 받는다'고 비난하고, '청소부도 한달에 120만원도 받는답디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에쿠스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예요. 그런 사람들이 그동안 그렇게 기고만장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면서 태풍이 몰려왔다고, '태풍이 몰려와서 난리가 났는데, 파업해도 되나'라고 얘기합니다.
제가 한마디도 안했는데, 그렇게 먼저 대놓고 이렇게 얘기할때가 없었습니다. 그건 큰 착시현상이고, 퇴행하고 있는 겁니다. 노동자들의 권리가 존중되는 정서가 한번쯤 사회에 자리잡고, 그것이 도가 지나쳐서 사회발전에 해롭다고 하면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우린 거기까지 못갔거든요. 정상화된 상태에 한번도 오지 못한채 다시 퇴행하고 있는 겁니다.
한번쯤은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 정서로 역사속에서 자리를 잡고, 그리고 나서 '지나치게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다보니까 사회에 해롭다'는 얘기가 나오는게 정상인데, 우리는 거기까지 간게 아니거든요.
지 - '노동과 건강'과의 인터뷰에서 "인권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민정수석이 되고, 국정원장이 되고, 법무부 장관이 됐다. 근데 무슨 일이 벌어졌나. 집시법이 개악됐고, 테러방지법이 만들어졌다. 이건 한나라당이 밀어부친게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작품이다. 그래서 내가 노동자들에게 말한다. 아하, 그 사람들은 원래 인권에 초점을 맞춰 이해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변호사라는 게 중요하다. 변호사가 누구냐. 제도권이 부여하는 최고의 특권을 쥔 사람들이다. 개혁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거였다고 말한다"고 하셨는데요.
하 - 정확하게 그 표현은 아니지만, 그 취지의 얘기를 했어요. 제가 변호사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노동활동을 오래한 사람으로서 예의에 어긋나는 말인지 모르지만, 제가 창안해낸 표현이 아니고 누군가 방송에서 그렇게 표현하는 걸 들었어요. 그래서 참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노무현 정부와 같은 정부가 계속 집권을 한다고 해도 파병이 철회되거나 하기는 어려울거라는 겁니다.
그 정권의 성격의 한계라는 거죠. 집시법이 개정되고 이런 것은 집권세력 내부의 세력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경찰들의 주장이 10분 받아들여진거거든요. 안기부의 주장이 10분 받아들여진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걸 내부에서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한거죠. 노무현 정부가 그걸 옳다고 믿는다기 보다. 예를 들어서 천하의 세원테크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가 한명은 죽고, 한명은 가사상태에서 몇 개월간 신음하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그런 사업장의 관할 경찰서에 노사화합에 공헌한 공로로 경찰의 날에 대통령이 표창을 했거든요. 그런데 실상을 알고 그렇게 했을거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집권 세력내에 이런 것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저런 코미디가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노무현 대통령이 실상을 알고도 대통령 자신의 이름으로 그 경찰을 포상했을 것이라고 이렇게 믿고 싶지는 않은겁니다. 예전에 현대중공업 정문에 드러누웠던 그 모습을 아직도 사람들은 기억하니까요.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했던 그 모습을 사람들은 기억하니까요.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과 똑같지는 않을 겁니다.
지 - 예전에 파업현장에서 했던 얘기들 때문에 공격도 많이 받았지 않습니까?
하 - 보수세력들에게는 좋은 공격 수단이 되죠.
지 - 1년에 300회 이상 노동에 관한 강연을 다니신다고 알고 있는데, 요즘도 계속 그렇게 하십니까?
하 - 아마 그 정도 될 겁니다. 많이 줄이려고 애쓰고 있는데, 세어보지는 않았어요. 사람들은 항상 그런 걸 궁금해해요. '하루에 몇 명이나 만납니까? 강의를 몇 번이나 합니까?' 그러는데, 우리가 하는 일을 개량화하는걸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계산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지 - 저도 가끔 그런 질문을 받는데요. '몇명이나 인터뷰했냐?' 이런거.(웃음)
하 - 사람들은 꼭 그런 걸 궁금해하죠?(웃음) '민주노총에 있는 변호사는 얼마 받습니까?', 이런거. 그래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착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죠.
2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