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지상주의자요? 약자에 대한 배려죠




[한겨레] 한국의 글쟁이들/⑪ 자기계발 저술가 공병호씨

이 시대 자기계발 및 경영 전문 저술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글쟁이가 ‘공병호’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실용서 시장에서 공병호(46·공병호경영연구소장)의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다. 대표적인 보수 자유주의자, 그리고 시장주의자로 등장했던 공씨는 이제 ‘성공학의 전도사’가 됐다. 그리고 성공을 권하는 책으로 그 역시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믿을 것은 자기자신뿐’인 시대가 낳은 스타가 바로 공씨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공씨가 저술가로 변신한 것은 불과 5년여 밖에 안된다. 자기 이름을 딴 개인연구소를 열고 곧이어 책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를 펴냈던 것이 2001년, 이후 공씨는 해마다 거의 여남은 종의 책을 쓰거나 번역해 선보이면서 순식간에 자신을 브랜드로 굳혔다. 책의 소재 역시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으로 넓어졌다. 아들을 조기유학 보낸 경험을 살려 책을 펴내기도 했고, 스케줄과 목표를 관리하는 <자기경영 다이어리>도 펴냈다. 프리랜서 선언 이후 지금까지 번역하거나 쓴 책은 모두 60여종. 5년만에!

공씨의 이런 다산성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 비결은 바로 다른 저술가들과 공씨의 차이에서 엿볼 수 있다. 우선 공씨는 가장 중요한 활동이 저술인 것은 분명해도 자신을 전업 저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스스로 규정짓는 자기 정체성은 ‘고객 성공을 위한 가치창조자’이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그가 추구하는 원칙은 ‘효율성’이다. ‘효율성’과 ‘고객’은 그를 지배하는 두가지 화두다.

효율성은 공씨가 자기를 둘러썬 환경과 작업과정을 구성하는 원칙이다. 거의 도서관 수준인 그의 연구실 겸 자택인 서울 가양동의 넓은 아파트는 모든 것을 공씨의 콘텐츠 생산에 맞춰 꾸몄다. 집안은 침실을 뺀 거실이며 모든 방을 책장으로 채웠고, 책은 ‘공병호식 분류법’에 따라 ‘자서전’ ‘자기계발’ ‘경영학’ 등으로 나눠 놓았다. 집필공간은 안방에 딸린 내실이다. 마치 고치속처럼 아늑한 골방풍인데, 넓은 집 넓은 방을 놔두고 가장 작은 방에서 글을 쓴다는 점이 독특하다.

집필도 효율성으로 극대화한다. 가장 생산성이 좋은 새벽 시간은 가장 중요한 활동인 책 쓰기에 배정한다. 이후 집중도가 떨어지는 곡선에 따라 하는 일의 중요도도 맞춰 낮춘다. 새벽 3시부터 8시까지 책을 쓰고, 낮에는 강연을 하거나 잡문을 쓰다가 피곤해지면 정신적 수동 모드로 가능한 작업인 독서를 한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오후 9시께. 좋아하는 간식은 이른 아침 뇌에 포도당을 빨리 제공해줘 머리가 돌아가게 도와주는 초콜릿이다.

글쓰기, 골프와 비슷…욕심은 금물

공씨는 글쓰기 자체에는 지나치게 높은 목표수준을 내걸지 않는다. 그래서 완성도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비난도 듣는다. “글쓰기는 골프와 비슷해요. 너무 잘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땅을 때리기 쉽습니다. 제 글쓰기 원칙이 있다면 대화하듯 편안하게 풀자는 거에요. 책이 무게가 떨어진다고 비난해도 상관없어요. 그런 비난을 두려워하는 순간 책은 나올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일단 완성한 원고는 미련을 두지 않고 편집자의 재량에 맡겨버린다. 이 역시 다른 저술가들에게선 좀처럼 찾기 힘든 태도다. 최대한 빨리 원고를 써서 넘겨 편집자들이 매만지게 하고 그 사이 바로 다른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 기회비용의 원칙과 전문성에 비춰볼 때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효율성으로 짜낸 모든 것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고객’이다. 공씨는 독자를 철두철미하게 ‘고객’으로 본다. “고객들이 책을 선택했을 때 반드시 지불하는 가격보다 더 많은 가치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것, 곧 값어치를 해주자는 것”이 저술 철학이다. “고객에게 확실히 가치를 제공하는 주제라면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쓸겁니다. 다음달에는 부모를 위한 영어에 대한 책이 나옵니다.” 자기 아이디어가 아닌 편집자들의 기획 제안에도 흔쾌히 응한다. 시장이 원하고 자신이 쓰고 싶다면 어떤 주제든 달려든다. “외연을 넓히는 게 좋아요. 제 아이덴티티를 확정하지 않고 만들고 허물고, 또 만들고 없애고… 평생 그럴것 같아요.”

이런 태도와 철학은 실은 일찌감치 그가 마련해놓고 오랫동안 가다듬은 것이었다. 90년대 초 연구소에 다니던 30대 초반에 공씨는 “박사학위가 끝이 아니고 시작이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는 곧 “지속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없으면 시장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겠다는 것”이란 깨달음이었다. “그 때는 너무나 절박했어요. 그래서 평생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남들과 뭔가 달라져야겠어서 향후 좌표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중간’을 골랐어요. 학자가 할 수 없고 기자가 할 수 없는 것, 그걸 하려고 한 거죠.” 이후 공씨는 주말에도 출근하면서 독서하고 글을 쓰는데 모든 시간을 투자한다. 그리고 그렇게 쓴 글을 언론에 기고하며 이름 알리기에 나섰다. 투고 기회는 자신이 언론들에 먼저 제안해서 따냈다. “주말마다 글을 썼는데 남들은 비웃었죠. 그거 돈 몇푼 하냐고.”

그런 과정으로 공씨는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갔다. “개인브랜드는 알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제 능력과 이름을 적극적으로 세일즈하는 건데, 지식인 풍토에선 그런 사람이 드물었죠. 본래 성향이 저 자신을 드러내고 알리는 것을 좋아해요.” 2001년 전까지 그기 지금의 공병호란 브랜드를 위해 준비한 과정은 그렇게 예상 이상으로 길었고, 덕분에 독립하자마자 왕성하게 콘텐츠 생산에 나설 수 있었다고 공씨는 설명한다.

최근들어 공씨의 생산속도는 더 빨라졌고 시장에서 브랜드의 힘은 더 커졌다. 초기 ‘2만부 사이즈 작가’였던 공씨는 2004년 낸 <10년후 한국>이 40만부 넘게 팔리면서 ‘10만부 사이즈 작가’로 한단계 뛰어올랐다. 이런 상승세는 연간 300회 가까이 펼치는 강연에서 얻는 아이디어의 덕분이다. 강연에서 아이디어와 아이템을 얻고 이를 다시 강연 아이템으로 바꿔 가다듬어 책으로 낸다. 이런 과정에서 시장 예측력을이 강해지고 다시 책이 인기를 얻어 강연요청도 늘어나면서 공씨의 수입도 초기보다 몇배나 늘어났다.

동시에 다른 저술가들에는 많지 않은 ‘안티’들도 많아졌다. 이 역시 그가 다른 저술가들과는 다른 점이다. 지나치게 경제적 성공만을 부르짖는 차가운 성공지상주의자라는 비난이 그를 따라다닌다. “모든 성공의 요인을 개인의 노력 여부로 돌리고, 약자에 대한 사회적 맥락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공씨는 이에 대해 조금 달리 생각해달라고 부탁한다. “아무도 삶의 진실에 대해서는 교과서로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걸 강자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고 자기들끼리 이어갑니다. 저는 그걸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 같은 책으로 알려준는 것이고, 그게 애정일 수 있어요. 섭섭하게 보이겠지만 당신들 이거 알아야한다, 알아야 안당한다고 말하는거죠. 그게 제가 사회적으로 배려하는 방법으로 이해해주세요.”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공병호가 말하는 내 책은…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

21세기북스

대단히 실용적인 자기경영 방법을 다룬 책이다. 실제로 누구든지 적용가능한 방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10년 후, 한국>

해냄

10년 후의 한국을 전망한 시론 성격의 책이다.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10년 후 세계>

해냄

이 책은 앞으로 한국 사회, 조직 그리고 개인을 둘러싸고 전개될 미래의 모습을 전망했다. 다양한 관점과 현상은 실제로 미래 준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명품인생을 만드는 10년 법칙>

21세기북스

전문가로서 입신하는 방법을 서술하고자 했다. 누구나 지식근로자로서 한 분야에서 입신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다.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

해냄

세상에는 부자의 생각을 가진 사람과 빈자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 이들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고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성경을 자기 것 만들면 3천년을 산 것과 같죠”


[한겨레] 한국의 책쟁이들/⑪ ‘토라 연구가’ 이기대



책은 왜 읽는가? 답을 생각하게 하기보다는 물음 자체가 괘씸한 질문이다. ‘왜 사느냐’처럼…. 책이 있으니 그냥 읽을 뿐 무슨 이유가 있는가, 라고 일축하기에는 뒤끝이 찜찜하다. 한번이라는 삶의 무게가 너무 큰 까닭. 목적이 왜 없겠는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마른 들풀도 의미없는 존재가 아닐 터인데….

겉 모양만큼이나 속 생각이 다르나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왜’라고 자문할 수 있어 비인간과 다르다. 빈도와 깊이가 차이있겠지만. 이번 책쟁이는 그 ‘왜’를 새삼스럽게 돌아보게 한다.

이기대(49)씨. 서울 서대문구청 7급 공무원으로 관내 거주 외국인의 등록관리, 증명발급 등이 그의 업무다. 취업, 유학, 초청비자 등으로 90일 이상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은 주소지 변경 등 중대한 변동사항이 있을 경우 14일 이내에 관할구청 또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는 터. 그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70%가 연희동에 집단 거주하는 화교이고 나머지는 일본인, 미국인, 중국동포다.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하니 그한테 맞춤할 법하다. 그의 특이점은 제3 외국어 히브리어도 능통하다는 사실. ‘제3외국어 히브리어’에 그만의 ‘왜’가 숨어있다. 그는 자신을 토라연구가라고 소개했다.

“당신의 정의는 영원한 정의, 당신의 법은 언제나 진실됩니다.(시편 119편 142절) 여기서 ‘법’으로 번역된 히브리 원어는 ‘토라’입니다. 토라는 좁게는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넓게는 구약성서 전체를 말하죠. 그러니까 성경은 진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히브리어-한국어 대역성경을 펼쳐보이며 말문을 열었다.

“진리는 생명으로 가는 길잡이이자 생명 그 자체입니다. 성경에는 진리가 감춰져 있지요.” 그는 모든 종교 가운데 ‘민 하샤마임’, 즉 하늘로부터 온 것은 토라뿐이라고 믿는다. 그한테 토라를 읽고 행하는 삶이 곧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 “에무나(믿음)와 에메트(진리)의 어근은 ‘아만’(믿는다 라는 동사)입니다. 믿음과 진리가 분리되지 않는 거죠.”

그는 성서를 100번 이상 읽었다. 원래의 히브리어로도 줄줄 왼다. 어디에 무슨 구절이 있고, 그 구절이 무슨 뜻인가 원어로 꿰고 있다. 관련 자료도 구할 수 있는 한 다 보았다고 말했다. 기독교(신약), 이슬람교(코란)의 원전이나 관련 자료도 두루 섭렵했다.

‘토라’가 진리라고 믿는 공무원

유월절에 해야 할 일을 규정한 출애굽기 12장 가운데 흠없는 수컷 양을 해질 무렵에 잡으라는 구절이 있는데, ‘해질 무렵’이라는 번역은 분명히 오역입니다. 원어에는 ‘베인 하알바임’ 즉 ‘두 저녁 가운데(between the evenings)’라고 되어 있어요. <탈무드>를 보면 첫 저녁이 오후 3시, 둘째 저녁이 오후 6시입니다. 그러니까 베인 하알바임은 오후 3~6시죠.”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숨지고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진 사건이 오후 3시에 일어났으므로 토라에서 말하는 유월절 희생양과 일치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만일 번역을 글자 그대로 믿는다면 기독교에서 예수를 희생양으로 믿는 근거가 사라진다!

“모세가 던진 지팡이가 변해서 뱀이 되었다고 하지요? 히브리어로 ‘탄닌’인데, 그 말은 경우에 따라 뱀, 악어, 개구리 등 다르게 번역돼 있어요. 유대교 회당의 랍비도 어느 것이 정확한지 모르더군요. 탄닌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런 것도 흥미로운 연구 대상입니다.”

그가 토라의 세계로 들어가기는 1986년. 구청 직원으로 공무원에 첫발을 디딘 이듬해다. 여러 가지 책을 보다가 삶의 궁극적인 목적에 눈이 머물고 결국 유불선과 기독교 등 종교를 거친 끝에 유대교로 귀착되었다. 당시 일본으로 철수한 이스라엘대사관 소개를 받아 미8군 영내 미군과 군속을 위한 유대교 회당과 끈이 닿았다. 당시 랍비 필립 실버스타인(현재 유대인목회자연합회장)의 호의로 매주 그곳을 출입하면서 유대교에 깊이 빠졌다.

100번 이상 읽었다는 성서는 너덜너덜해져 책등이 완전히 꺾였고 쪽쪽이 붉은 줄이 죽죽 그어져 있다.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베에트 하아레츠.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창세기 1장1절) 성서 첫 구절이 일곱 마디죠. 신이 천지와 안식일을 창조한 날수와 일치해요. ‘행운의 7’은 여기서 유래했어요. 그리고 ‘베레쉬트’를 거꾸로 문자치환해서 읽으면 ‘티슈리베알렙’ 즉 ‘티슈리월 1일’이 되지요. 유대 민간력 1월1일입니다.” 그의 달변은 계속됐다. 이스라엘인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행위의 옹호에 이르기까지.

그는 책과의 인연을 기적이라고 했다. “마음으로 원하는 책은 모두 얻어 보았어요.”

행자부 한국지방자치단체국제화재단의 중국 주재관으로 베이징에 32개월 동안 머물 때는 초면의 남경대 유대학연구소 쉬신 교수한테서 중국어본 유대백과사전을 받았다. 남경 중화기독교협회를 통해서는 보기 힘든 두 상자 분량의 기독교 자료를 구입했다. 신과 인간, 우주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긴 <유란시아>라는 책은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사업가한테서 소개받았다. 한참 도교에 빠졌던 20대에는 국립도서관 고문서실에서 본 필사본 <황정경> 말미 “정성을 다해 황정경 100독을 하면 <대동선경>을 만나리라”라는 메모를 통해 <대동선경>을 만났다. 그 책은 희귀한 도교경전으로 한국 첫 도교사찰인 ‘도관’을 연 박병극씨가 큰절을 하고 그한테서 복사본을 얻어갔다. 그가 이렇게 책을 말하는 것도 기적을 짓는 일이 아니겠는가. 언뜻 무협지 같은 얘기다.

한문 실력 뛰어나 무협지 200종 번역

1978~79년 그는 실제로 무협지 200여종을 번역했다. 신당동 쪽에 있던 대룡각이라는 출판사. 입사시험을 치러 서울대 출신자와 함께 합격했다. 고교 때 별종 취급 받을 정도로 한문을 잘했고 졸업 무렵엔 백화문을 줄줄 읽을 정도의 실력이 바탕이었다. 당시 대룡각은 쌍벽을 이루던 무협지 출판사 중 하나로 편집부 상근자가 10여명. 그는 한달 두 종꼴로 2년동안 번역했다. 주로 와룡생의 책이었다고 기억한다. 공무원 봉급이 10만원 안쪽일 때 그의 한달벌이는 40만원이었다. 책이 잘 나가면 전체 직원이 삼겹살 불고기로 회식을 하고 5만~10만원의 금일봉이 주어졌다. 번역자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근사한 도사이름을 썼다. 무협지는 유불선, 연애, 원수갚기가 세 축. 초식은 도가, 격식은 유가, 원수갚기의 출가는 불교와 관련돼 있다. 그는 세 가지 축과 뿌리를 알면 무협지 번역은 아주 부드럽다고 말했다.

“독서는 정보를 얻고 연구를 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죠. 그 다음은 명상과 기도로 이어집니다.” 만일 성경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하면 3천년의 지혜를 얻는 것이고 3천년을 산 것과 같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생활패턴만 바뀔 뿐 삶의 본질은 그대로라는 것. 요즘 연구논문들은 95%가 인용이고 자기얘기는 5%에 불과하다고도 말했다.

얼마나 책을 읽으면 이런 주장을 자신있게 펼치는가. 그가 가진 책은 두 평 베란다에 꼬깃꼬깃 300권이 전부다. 나머지, 아니 몸통은? 2000년 12월 중국주재관으로 떠나면서 4톤 짐차에 가득실어 충북 진천의 이삿짐 보관센터 창고로 보내고 6년째 보관료를 물고 있다. 형편이 나아지면 짐을 찾아와 풀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희망으로 그칠지도 모를 일. 한때 책들은 모이고 쌓여 베란다에서, 거실로, 안방으로 쳐들어왔다. 빨래를 널 수도 없고, 나중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아 집안이 어두침침했다. 아내는 이렇게는 못 살겠다며 이혼하자고 몇번을 을렀다. 결국 이삿짐센터로 간 책들은 무기한 유배에 처해졌고 그 이후의 책은 베란다에 유폐되었다. 이씨의 책은 이씨의 방문을 넘을 수 없도록 돼 있다. 만일 그곳을 벗어나면 책임 못진다는 무서운 아내의 엄포 탓이다. 그래서….

집에는 300권만…창고 보관 6년째

그는 일단 구득한 책은 다 읽는다. 읽지 않을 책은 사지 않는다. 읽는 속도가 빠르니 어느 책이어도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잡식성. 그한테 책은 종이와 활자로 보관하는 물건이 아니다. 읽어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 책 이야기는 결국 종교, 인생으로 이어지고 묻는 자와 대답하는 자가 뒤섞었다. 못다한 얘기는 배웅길에도 이어졌고 쿵후의 발차기 시범까지 보여주었다. 오십 나이에 이런 자세가 나오는 사람이 있느냐면서. 그한테 책은 몸의 책이다. 어쩌면 무림의 비급처럼, 배우고 익히는….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년 직장살이 경험담이 독자 마음에 꽂히나 봐요”




[한겨레] 한국의 글쟁이들/⑩ 변화경영 저술가 구본형

1998년, 지은이 이름은 생소하지만 눈을 확 잡아끄는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지은이는 한국IBM의 경영혁신팀장인 회사원 구본형씨. 40대에 접어들면서 문득 자신은 누구인지, 지금까지 무엇을 해놓았는지 고민에 빠져 구씨 스스로 답을 찾고 삶을 바꿔보기로 결심해 쓴 책이었다. 일상 속에서 변화할 것을 역설한 이 책은 상당한 인기를 누렸고, 이후 20만부 넘게 팔리는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2000년, 구본형씨는 20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떠난다. 당시 나이 마흔여섯. 직장인 생활을 마치면서 구씨는 자기 자신과 세가지를 약속한다. 앞으로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기로, 자신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의 양의 늘리기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직업을 통해 누군가를 돕기로. 이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그가 고른 새 직업은 바로 ‘변화경영전문가’인 전업 저술가였다. 경영과 자기계발 두 분야를 대표하는 저술가 구본형(52)씨는 그렇게 등장했다.

2000년대 이후 출판 각 분야에 저술가들이 서서히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경영과 자기계발 분야에는 그 수가 매우 드물다. 구씨와 공병호(46·공병호경영연구소장)씨 정도만이 손꼽힌다. 대신 이 두 사람의 지위는 확고하다. 인터넷 서점들이 저술가 개인의 이름을 내걸어 따로 코너를 마련하는 필자는 구씨와 공씨뿐이다. 변화의 전도사로서 구씨 스스로 변화를 시도해 도전한 대가로 거둔 성과다. 전업 저술가가 된 지 올해로 만 6년. 예상보다 짧은 기간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구씨가 이미 첫 책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뒤 3년 뒤에 비로소 저술가로 나섰음을 알 수 있다. 10만부 넘게 팔린 두번째 책 <낯선 곳에서의 아침>과 세 번째 책 <월드클래스를 향하여>를 쓴 다음에야 사표를 내고 독립한 것이다. “과연 내가 책을 써서 살 수 있는가, 1년에 책 1권씩을 쓸 수 있는가를 시험한 거죠. 아내를 설득하는 기간이기도 했구요. 실제 1년에 1권씩 3년을 쓴 다음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경영컨설턴트는 많지만 ‘변화경영’ 전문은 적다는 점, 그리고 이를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더 적다는 점, 자신이 이미 14년 동안 변화경영을 담당한 전문성이 있다는 점, 이런 점들 때문에 후발 경쟁자들의 진입이 어려울 것으로 먼저 판단한 것은 물론이다.

저술가가 된 뒤 구씨는 정확히 2년에 3권꼴로 책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펴낸 책은 모두 12권.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와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나 구본형의 변화이야기> 등 개인들의 삶속에서의 변화를 다루는 책들이 주를 이루는 동시에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와 변화를 다루는 <공익을 경영하라> <코리아니티 경영> 등이 다른 한 축을 이룬다.

경영·자기계발서 시장에서 공병호씨가 세상 흐름을 기민하게 포착해 구체적 방법론을 내세워 보다 넓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면서 노골적일 정도로 실용성을 추구하는 트렌드를 대표한다면, 구씨는 보다 본질적인 분야를 다루면서 현실생활도 잘하면서 삶도 충만하고자 하는 성향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책 내는 스타일도 공씨가 일년에도 책을 몇 권씩 몰아서 내기도 하는 다작형인 반면 구씨는 규칙적이고 주기적으로 생산하는 형이다. 여기에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와 <아침형 인간>으로 대표되는 지나친 부자 열풍과 기능위주의 자기계발 일색의 흐름을 비판하는 등 자기 색깔과 지향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1년 한권씩 스스로 ‘저술가 테스트’

출판계에서 꼽는 구씨는 능력은 ‘새로운 주제를 끌어가는 힘’이다. 동시에 똑떨어지는 카피와 제목을 뽑아내는 감각까지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휴머니스트 한필훈 편집장은 “전하려는 메시지가 익히 잘 알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엄청난 독서로 얻어낸 근거로 정리하기 때문에 내용이 상투적이거나 뻔하지 않으면서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고 분석했다.

독자들은 구씨의 책에서 확실한 자극을 얻을 수 있다고 평한다. 이는 구씨가 설득하는 방법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에서 나오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구씨는 “내게 책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질문과도 같다”고 말한다. “남을 설득하려면 가장 간단한 질문부터 일단 자기가 증명해줄 수 있어야 해요. 그러니까 제 케이스로 설득하는게 제 스타일이죠. 처음 저술가로 나설 때에는 제가 박사도 아니고, 대단한 경력도 없고 그저 20년 직장인일뿐이란 사실이 핸디캡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마음이, 제 경력이 곧 독자란 것을 깨달았어요. 직장인들이 왜 좌절하고 왜 힘들어하며 무엇 때문에 즐거워하고 희망을 갖는지 잘 알 수 있는 훌륭한 배경이더란 거에요.”

구씨는 저술가로서 자기관리에 철저한 편이다. 관련 분야가 아니면 글을 쓰지 않으며, 책을 낼 때도 지나치게 실용서 위주로 내는 출판사를 가리는 등 자기 브랜드를 훼손시키지 않는데 많은 신경을 쓴다. 원고도 매일 일정양을 규칙적으로 쓰고, 거의 완성이 된 다음에야 출판사를 정한다.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약속을 최소화하고, 강연 요청도 월 10회 정도로 제한한다. 주 7일 가운데 3일만 이런 ‘비즈니스’에 배분하며 남은 4일 중 2일은 완전히 자유롭게 활용하고, 또 다른 2일은 가족과 보낸다는 것이 생활의 원칙이다.

구씨는 “내 관련 영역에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중요한 작가라는 위상을 갖춰 변화경영이란 분야에서 적절한 조언이 가능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상업성으로 보면 당장 책이 많이 팔릴만한 주제는 아니지만 한국 사회의 변화 추이에 따라 그에 걸맞는 전문적 조언이 필요한 분야를 골라 책을 쓰는 작업을 병행한다. 공익부문의 변화경영 필요성을 다룬 <공익경영>이 대표적이다.

시류 편승하지 않는 한국형 계발서

최근들어 구씨의 책 판매량은 초기보다는 다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이는 “시장을 따르기보다는 시장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다”고 선택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구씨 책이 누적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그래서 극복해야할 과제이기도 하다. “시장 반응이 미지근하면 실망스럽기도 하고, 사람들이 이제 이런 것에 관심 없나하는 고민도 들지요. 그래서 콘텐츠를 어떻게 재조합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구체적인 것에 목말라 있으니 직장인들이 직장안에서 생계형 월급쟁이로 살지 않고 어떻게 하면 훌륭한 직업인이 될 수 있느냐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시장 흐름에 편승하지는 않되 실용적이면서 한국적 현실에 맞는, 그래서 번역서들이 가지지 못한 우리 문화적 요소를 고려한 책을 쓰는 것. 그가 요즘 세운 목표이자 차별화 방안이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익숙한 것과의 결별>

생각의나무·1998

1998년 어느 새벽, 아무 계획도 없이 새 하루를 맞는 자신에게 분노해 쓰기 시작한 책. 43살에 스스로를 구하고 다시는 남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지는 않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한 첫 시도가 바로 이 책이었다.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김영사·2001

나는 20년간 조직 개혁과 혁신의 현장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 노하우를 자신에 적용해 1인기업가로 제2의 인생을 살게됐다. 이 책은 직장인을 위한 자기 경영 방법론으로 ‘3년 안에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 스스로 고용하는 법’을 제시하려 했다.

<나-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휴머니스트·2004

개인의 역사도 기록되지 않으면 잊혀진다. 이 책은 40대 10년 동안의 ‘나에 대한 이야기’다. 죽을 때 한 번 쓰는 회고록이 아니라 10년마다 기록해 역사로 남기고, 앞으로 10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는 미래 경영의 모색이다.

<코리아니티 경영>

휴머니스트·2005

한국은 추격 모델로 선진국의 문턱에 서게 됐다. 그러나 모방과 추종으로는 문화적 프리미엄으로 무장한 선진국 내부로 진입할 수 없다. 한국의 문화적 DNA에 기초한 글로벌 보편 경영 모델을 ‘Coreanity 경영’이라 이름지었다.

<공익을 경영하라>

을유문화사·2006

한 사회의 삶의 질은 그 사회의 공익 서비스의 품질에 의존한다. 그동안 이 분야에서 ‘경영’ 이란 개념은 배제되어 왔다. 이 책은 공익분야의 경영혁신에 대한 사례연구이며, ‘방만은 공익에 대한 배반’이라는 인식으로 집필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생에 나무였지 싶어요



[한겨레]
한국의 책쟁이들/⑩ 목재상 김태석

관악구 봉천6동, 봉천중앙시장 건너편 ‘봉천목재’. 전면의 유리를 흰필름으로 바른 사무실 안은 정통으로 받은 오후 햇볕이 물 속에서처럼 적막한 밝음으로 치환돼 있다. 그 탓일까. 자신은 목재상일 뿐 기삿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장 김태식(42)씨의 표정과 말투가 착 가라앉았다.

“86년 ‘그 사건’을 당한 뒤로 열 받아서 공부했어요.” 고교 졸업 뒤 성남시에 있던 제과회사 고려당의 빵공장을 다니던 그는 어느 날 아침 경찰에 연행됐다. 당시 위장취업, 노조결성 등 노동운동이 활발했던 터, 그와 관련한 연행으로 추정하지만 그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 취조경관이 당시 노동운동가인 김문수를 아느냐고 물어왔을 때 “신문수요? 만화 그리고 있지 않아요?”라고 되물을 정도였으니…. 경관은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무식한 공돌이새끼라고 면박을 주었다. 풀려나서는 자괴감에 정관수술을 하려 했으나 병원에서 “젊은이가 왜 그러느냐”며 말렸다. 대학에 진학한 친구와 친절하게 금서목록을 실은 신문의 도움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전태일 평전>을 독파하고 <죽음을 넘어 시대를 넘어> <한국민중사> <세계철학사>를 거쳐 <자본론>으로 옮아갔다. ‘낮 장사, 밤 공부’ 몇 해가 지나자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잡히고 삶의 자세도 바뀌었다. 어떻게 사는 게 옳은지 정의와 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책들은 어디있지? 왼쪽 구석의 바퀴달린 빈 책꽂이를 밀어옮기자 비밀통로가 드러났다. 한발짝을 들여놓자 4천여권의 책이 잘 차려진 헌책방처럼 책꽂이에 빼곡했다. 정확히 4평인 사무실의 반. ‘낮장사 밤공부’ 겹살이 인생이 추리소설의 배경처럼 고스란히 구현돼 있다. 책들은 사회과학, 철학, 한국근대사, 시, 소설 등을 고루 망라돼 있어 콕 집어낼 만한 특징이 없다. 교양인이 되기 위한 고른 독서의 결과랄까.

저잣거리가 책이더라고요

그가 책쟁이인 동시에 목재상인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그가 동의하든 않든. 나무는 펄프의 원료이고, 책은 종이에 활자가 박힌 것뿐이니, 두 가지 모두 죽은나무인 점에서 일치한다. 그는 나무를 팔아 몸의 양식을 마련하고 책을 사들여 마음의 양식을 준비하니 팔고사는 게 모두 이익이다. 이보다 더 남은 장사가 어디 있는가. “전생에 나무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의 독백이다.

하지만 그가 목재상이 된 계기를 보면 우연과 필연이 동전의 양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988년 스물다섯 살, 빵공장을 그만두고 실업자였을 때 목재상을 하는 아버지가 사람을 구하는 동안 좀 도와달라고 하였다. 사람은 쉬이 구해지지 않았고 일년만 하겠다는 시한은 지금까지 18년 연장됐다. 아버지가 1990년 암으로 세상을 뜨지 않았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엉겁결에 사업을 맡았지만 정식으로 인수한 게 아무 것도 없다. 돈받을 게 있다는 사람들은 악착같았고 돈을 줄 게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한테 받아가라고 하라”고 했다. 자리잡기까지는 부도 등 몇 차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는 정확히 말해 건축업체, 인테리어업체에 목재를 공급하는 중간상인. 목재(원목, MDF, 몰딩) 외에, 합판, 건축자재(텍스, 석고보드)를 취급한다. 자재 주문량으로써 경기 동향을 알 수 있고 몇 해 앞을 내다보는 눈이 생겼다. 그가 백일 때부터 나무장사를 해온 아버지의 장부와 아들이 이어서 기록한 장부를 보면 우리나라 건축경기의 성쇠가 드러난다. 수출품이었던 합판은 중국에서의 수입품이 되었고 그 많던 수입원목도 집성목이 상당부분 차지한다. 국산 원목은 문화재 복원 등 특별한 경우 외에는 쓰이지 않는다. 채산이 안 맞기 때문. 그는 부동산 경기의 시한을 10년 정도로 보았다. 중국 동향 역시 주목 대상이다. 거품이 꺼질 때의 여파는 한국에 걷잡을 수 없는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 나무를 통해서 세상을 보게 되었으니 나무 역시 그한테는 책이 아니겠는가.

“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더군요. 저자거리가 책이고 사람들이 책이었어요.” 책에서보다 저자의 사람들한테 배운 게 더 많다고 했다. 사람들한테 받은 상처를 치유하거나 잊으려 책을 보았고, 그 상처는 곧 지혜로 전환되었다. 뾰족하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육체노동이 아닌 입으로 먹고사는 복덕방 사람들을 싫어했는데 이제는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싫어하던 것과의 화해는 결혼하면서부터.

하이텔 독서동아리인 ‘분서갱유’에서 지금은 아내가 된 선진(34)씨를 만났다. 1999년에 채팅을 시작으로 신촌에서의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나 2000년 11월 결혼했다. 주로 호남사람들한테 돈을 떼어 그들을 싫어했는데 전주사람인 선씨를 만나면서 ‘그들’과 화해했다. 부부의 공통점은 책을 좋아한다는 것. 아이를 낳기 전에는 생활비 대부분을 책을 사는데 쓸 정도로 공통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공통점은 거기까지.

독서동아리서 사랑 키워

남편은 사회과학, 철학, 역사에 관심이 많고 아내는 소설, 그 가운데 에스에프, 추리와 고전에 쏠려있다. 남편은 에스에프를 비현실적이고 소모적이라며 가치를 두지 않는다. 반면 근현대사 인물은 옆집 아저씨처럼 잘 안다. 목동 그의 집 거실 책꽂이는 헌책이 주류인 사무실과는 달리 새책들이 가득하다. 아래쪽은 페이버백의 소설, 위쪽은 사회과학, 역사, 철학 분야로 하드커버가 주다. 김씨는 박상륭 칸을 따로 둘 정도로 그의 팬이다. 소설을 싫어하지만 박상륭은 예외다. 부부의 접점은 박상륭 하나다. “서로 영역을 인정하는 거죠, 뭐.” 이들 부부는 ‘일치하는 부부’의 맞은편 ‘보완관계의 부부’다. 연애할 때 아내의 레포트 자료 조사와 구입은 남자 몫, 정리는 여자 몫이었다. <영국 노동계급의 역사>의 각주 자료를 찾아 읽을 정도라면서 남편자랑이다. 남편 역시 비슷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미인이 많다면서 자신은 책으로써 땡을 잡았다고 말했다. 책을 좋아하면 미인을 얻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쁜 점은 단 한가지. 책을 잡으면 밤 늦도록 보는 바람에 아침을 잘 안 해준단다.

싫어하지만 화해하려는 나머지 하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피’ 돈이다. 화해하려 한다고 해서 화해가 되는 게 아닌 만큼 그의 노력은 여느 사람처럼 짝사랑일 터. ‘네가 장사꾼이냐 학생이냐’는 친구들의 지청구로 책 공간을 막아두었지만 <현금의 지배>(니알 퍼거슨) 외에 몇 권의 책이 사무공간에 나와있다. 마흔 넘어 경영책을 읽기 시작했다. 피터 드러커의 저서, ‘세이 노’ ‘브라운 스톤’ 등의 글을 열심히 읽는다. 서른 여섯 늦장가가 완전히 사람을 바꿔놓았다. “이래도 되나 싶어요.” 그는 일요일마다 도서관에 간다. 아내한테는 비밀이지만 평일에도 시간 나면 그리로 간다. 경제·경영 분야를 파고 있다. 책한테 고민거리를 묻는다. 큰 업체가 가격으로 밀고 들어와 대형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현실. 투자를 해야 하나, 더 두고 봐야 하나? 근교에 땅도 알아보지만 아직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학력사회에서 그는 대학 진학하지 않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목재를 팔고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뿐더러 스스로 졸업장 못지 않는 자격을 갖췄다고 믿는다. 그러나 두 차례 씁쓸한 기억이 있다. 책을 보려고 국회도서관에 갔을 때 대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출입을 제지 당했다. 그곳과는 인연은 그것이 다다. 또 한차례 지금의 아내가 자신보다 학력이 높다며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을 때. 물론 인연은 이어졌고 고부 사이도 더할 나위 없다. 책이 많아서 좋았던 점? 한참만에 떠올린 기억은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옆 병상에 누우신 분이 낯익다 싶더니 책에서 사진으로 본 이숭녕 선생이더라는 것. 대국어학자시라고 간호사들한테 귀띔하자 그분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고 ‘눈밝은’ 그도 덩달아 덕을 보았다.

아들과 대화하려 수학 정석 공부

그동안 세번 이사를 하고 보니 책짐이 여간 골치가 아니다. 앞으로 제대로 자리를 잡으며 오동나무 원목으로 책꽂이를 짤 생각이다. 거기다 500~1000권 정도만 꽂고 싶다. 만권서 삼대면 정승이 나온다고 아들한테 책을 물려줄까도 했지만 생각을 바꿨다. 좋은 책은 절판돼도 다시 나온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잘 보관해 주는데 굳이 개인이 짐을 싸안고 살 필요가 있느냐는 것. 그래서 그는 서초동 중앙도서관을 자주 간다. 그리고 <수학의 정석>을 읽는다. 아이가 크면 그게 대화의 창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디어들이 아우성을 쳐요, 글로 써달라고”




[한겨레] 한국의 글쟁이들/⑨ 동양철학 저술가 도올 김용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피아노였다. 도올의 집필공간인 통나무 출판사 1층 마루에는 피아노가 주인공처럼 정면에 놓여 있었다. “손을 자꾸 움직여야 노화를 막는다고 해서 취미로 배우는 거지 뭐.” 도올은 다소 쑥스러운듯 웃어넘겼다. 그러나 계속 묻자 관심사가 드러났다. “재즈를 공부하고 있거든. 방송 강의가 아니라 이젠 음악으로 강의를 하겠다는 거야. 가령 ‘도올 재즈콘서트’를 하면서 동학 같은 것을 강의하면 젊은 애들이 더 쉽게 들을 수 있지 않겠어?”

설명을 듣자 오히려 더욱 궁금해졌다. 학자가, 그것도 도올 김용옥이 재즈에 빠진 데에는 취미 이상의 학문적 관심이 있을 듯했다. 재즈에 심취했던 역사학자 홉스봄이 떠오른다고 운을 떼니 드디어 도올의 재즈론이 나온다. “나는 재즈의 역사가 20세기 미국사에서 가장 진실된 측면이라고 봐요. 그런데 흑인들이 인간의 존엄을 찾는 독립의 역사인 재즈의 역사가 우리 민족의 20세기 역사와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는 거지. 요즘 한류를 다시 점검해보려 하는데 한류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 재즈가 굉장한 가교가 되요.”

그러면 마당에 있는 평행봉은 또 뭘까? ‘건강관리’, 궁극적으로는 ‘자기 몸이 젊어지는 것’이야말로 프로 저술가의 기본이라고 도올은 설명했다. 쉰여덟 나이에도 그는 평행봉에 올라가 거꾸로 서더니 부담없이 여러차례 스윙을 해보였다.

피아노와 평행봉은 ‘저술가 김용옥’을 보여주는 두가지 상징과도 같다. 평행봉은 프로저술가로서 항상 몸을 단련하는 도올의 직업의식을 상징한다. 반면 피아노는 항상 새로운 것을 향하는 그의 관심을 보여준다. 도올은 분명 학자이면서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확실한 ‘저술가’다. 1986년 고려대를 그만두면서 아마도 교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지적인 행위로 먹고사는 ‘프로 지식인’이 된 뒤 올해로 꼭 20년째 프로 글쟁이로 확실한 위치를 지켜왔다.

무엇보다도 그가 다른 저술가들과 가장 구별되는 것은 자기만의 ‘저술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이다. 연구를 하고, 그 성과를 책으로 쓰고, 통나무란 전속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방송에서 강의한다. 특히 독특한 점이 전속 출판사인 통나무의 존재다. “세미나도 하고 공부를 하려면 지속적인 자금이 필요하더라고. 그래서 당대의 출판사들을 찾아가서 당시 돈으로 50만원을 달라, 앞으로 내 책이 많이 팔릴텐데 전속으로 책을 내겠다, 그렇게 제안을 했어. 그런데 아무도 그 구라를 안믿는거야(웃음). 모두 거절했어요. 그런 제안하는 이도 없었을테고 그런 발상도 생소했겠지.” 그래서 제자들과 함께 차린 출판사가 통나무다. 이후 그는 모든 책을 통나무에서 내고 있다.

인문학책 41종 내 250만부 넘겨




저술가로서 도올이 거둔 대중적 성과는 일반인들의 예상 이상이다. 지금까지 모두 41종 52권을 펴냈고, 총 판매부수는 250만부를 넘겼다. 80년대 그의 이름을 알린 <여자란 무엇인가>와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가 각각 40만부와 20만부, 방송강의로 화제가 된 <노자와 21세기>(전 3권)가 50만부 넘게 팔렸다. 이 밖에도 10만부를 넘긴 책이 여럿이다. 인문학자의 인문학책으로는 놀라운 수치다.

그러나 저술가로서 그가 대단한 점은 판매부수보다도 20년 동안 활동을 계속해 온 생명력, 그리고 꾸준히 변화해온 데에 있다. <여자란…> <동양학…> 등 도올의 초기 책들은 인기는 높았지만 일반 교양서 차원이었다. 하지만 이후 도올의 책은 점점 그만의 사유를 담으며 일관성을 갖고 진화해갔다. 그의 관심은 동양철학에서 시작해 조선사상사를 훑은 뒤 동학과 개화기 독립운동사를 거쳐 최근에는 현대사로 넘어왔다. 그리고 이런 과정속에서 민족주의를 매개로 한반도와 민족문제를 다루며 고유의 목소리로 비전을 찾아가고 있다.

그의 강점으로는 독자들의 반응이 크게 엇갈리는 ‘강력한 문체’가 꼽힌다. 단번에 써내려가는 집필 스타일이 더해져 흡인력이 더욱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도올의 글쓰기 스타일은 전형적인 ‘몰아쓰기’에 ‘일필휘지’형. 스스로 “나는 항상 글이 잘 써진다”며 “문장을 시작하면 글로 써달라고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에서 아우성을 쳐서 귀찮을 지경”이라고 말한다.

“나는 항상 글이 잘 써져요”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체상의 강점은 바로 대중성이다. 도올의 글은 어려운 용어를 쓰지만 소화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는 편이다. 이처럼 자기 사유를 알기 쉬운 대중적인 언어로 펼쳐보이는 학자는 무척 드물다. “저술의 기본 대상을 항상 25~35살로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에요. 어떻게 하면 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끈을 놓치지 않느냐는 것이 내 삶에서 끊임없이 벌여야만 하는 사투라고 할 수 있지요.”

저술가로서 도올의 최대 승부처는 바로 ‘시간과의 싸움’. 자신이 정말 중요한 기능을 하는 자리가 아니면 참석 요청에 응하지 않는다. “저술세계가 신이 되는 것, 원고를 쓰는 게 신에 대한 경배가 되는 것이 중요해요. 권력이나 명예도 저술을 위해서는 뭉개버릴 수 있다는 프라이드가 없으면 저술가가 못되.” 이는 동시에 학자로서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학자는 곧 저술가에요. 궁극적으로 학자의 사명은 책을 쓰는 데 있지 강의하는 게 아니야. 그 시대에 결국 남는 것은 강의가 아니라 책이에요. 강의는 사람의 마음속에 남겠지만, 그건 듣는 이들이에게 밑거름을 주는 것이지 내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도올은 그러나 “프로 지식인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해본 사람은 상상 못한다”고 강조한다. 요즘에는 인문학의 위기가 겹쳐 더욱 상황이 어렵게 느껴진다고 한다. “사립대 교수 연봉이 한 7000만원쯤 될거에요. 내가 그 정도 벌려면 1만원짜리 책을 7만권을 팔아야 해요. 요새는 책이 안나가서 일반 교수들 정도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뭔가 끊임없이 지적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래야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인거지. 그나마 나는 방송하고 연계하는 등 새로운 방식을 개척해왔는데도 요즘에는 불가항력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내가 저술만으로 먹고 살 수 있다면 방송은 안해도 되는 거에요.”

그토록 ‘튀던’ 그도 이제 환갑을 앞두면서 바뀌는 듯하다. 요즘에는 특유의 ‘잘난척’과 ‘오버’, 그리고 ‘공격성’이 많이 덜해졌다는 평을 듣는다. “내가 지금 내 책을 봐도 과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걸 수용해준 사회에 감사해요. 사실 내가 그렇게 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나를 까대고 뭉개려는 인간들에 대해 ‘너희들이 그래도 도올은 사라질 수 없다’는 생명력을 보여주려는 과시이자 생명력의 표출이었어요. 이젠 정갈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올 생명력 보여주려 ‘오버’했지

앞으로 그가 진화할 방향은 어느쪽일까? 분야로는 ‘현대사’, 구체적 주제로는 ‘재즈’와 ‘동학’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요즘 현대사를 다루는 것은 현대사에서 모든 학문이 출발해야겠다는 자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보고 이념을 만들어내야 되는데, 우리는 스스로를 우리가 관찰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특히 남북관계에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동학이란 주제도 급해요. 동학의 마지막 세대들과의 작업이 필요한데 이젠 워낙 나이 드신 분들이어서…, 시간이 부족해요.”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도올이 말하는 내 책은…

<논술과 철학강의>

리영희 선생이 책을 보시고 편지를 보내셨다. 현대사에 대해 당신이 하시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주어서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고 하셨다. 현대사를 논술과 폭력으로 대비시키고, 20세기가 폭력의 세기였다면 21세기를 논술의 세기로 규정해 앞으로 나올 세대들의 합리적 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논술이란 것을 말하고자 했다.





<금강경강해>

우리 민족의 불교는 금강경 불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금강경의 고판본 중에서도 최고본이 바로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금강경을 암송하면서도 정작 팔만대장경 고판본을 금강경으로 쓰지는 않아왔다. 그래서 내가 처음으로 팔만대장경에 있는 금강경 고판본을 가지고 언해로 낸 것이다.





<도올논어>(현재 3권까지 나옴)

지금까지 나온 논어에 대한 동서고금의 모든 주를 총망라해서 새로운 견해를 밝힌 창조적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대단한 책이라고 자부한다. 앞으로 10권은 가야 끝날텐데 이 일을 완성하는 것이 필생의 작업이 될 것 같다.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전3권)

달라이라마와 나와의 세계적인 만남이다. 팔리어 경전을 통해 원시 불교라고 하는 게 어떤 모습이었냐는 것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밝혔다. 그리고 이런 주제를 놓고 달라이라마와 직접 심도 있게 우주와 인생의 철리를 대화한 결과물이다.





<앙코르와트·월남가다>

흔히 앙코르와트를 막연하게 신비로운 유적으로만 알고 있는데, 13세기 말 원나라 사신이 생생하게 앙코르와트의 모습을 전하는 <진랍풍토기>란 책이 있다. 이 책을 가지고 앙코르와트를 직접 방문해 분석했다. 이 책을 낸 뒤 계속 이런 보다 학구적이고 깊이있고 쉬운 여행기를 써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