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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진진 > 지루해진 청춘의 끝에 만난 구름같은 작가
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루하여 너덜해진 직장생활. 지친 나에게 마지막 탈출구는 언제나 책이었던것 같다. 마음이 가난해지고, 정신이 녹슬 무렵이면 글자에 눈을 박는 것이 내 오랜 습성이다. 요즘 또한 그러하다. 단순한 이유. 오래 반복하여 지루하다는 것. 직장과 일이 끔찍해졌다는 것.


외근중의 일탈. 오늘 오전 커피숍에서 홀로 ‘청춘의 문장들’을 읽어 내려갔다. 가끔 이렇게 폐쇄적인 모드로 들어설 때가 있다. 특이한 광경이 눈에 띄였다. 내눈엔 말이다. --; 나는 어느 커피숍 창가쪽을 지나가고 있었고 그 안엔 테이블 건너건너 대략 6명이 보였는데 다들 홀로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커피숍에서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이들이 독서하는 광경을 본적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강남의 영풍문고 앞에 있는 ‘Barnesso'라는 커피숍을 우연히 발견했다.


나는 그 곳으로 쑥 들어가 커피를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음악이 흐른다. 수다를 떨며 독서를 방해하는 자들은 없다. 다들 책에 심취(?)해 있다. 나는 김연수의 글을 읽는다. 음악이 흐른다. 나는 책에 심취해 있다. 나는 부드러운 김연수의 글구름 속에 두둥 떠있다. 작가는 시로 등단을 해서인지 긴 문장 하나하나가 한편의 시같은 느낌이다. 책한권을 온통 아름다운 문장으로 도배해 놓았으니 그것은 한권의 책이 아니라 여러편의 풍경화인 듯 하다. 귀를 간지럽히는 음악과 두눈에 속삭이는 그의 글 그리고 적당히 푹신한 소파에 앉아 나는 잠시 눈물을 글썽일만큼 감상에 젖게 되었다. 책과 함께한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해서. 글자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 곳에 흐르는 음악과 김연수가 고마웠다. 그리 아름다운 글을 써주어 고맙고, 그 글이 나를 충만하게 하여 고맙고, 지리한 일상에서 단 몇분이라도 날 행복하게 하여 고맙다 생각했다.


작가는 나와 같은 70년대에 태어났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없었다. 내가 친구들과 KFC에서 치킨을 뜯을 무렵 작가는 시장통 지하의 음악다방에서 DJ의 강의(?)를 들었다 하고, 내가 사회적 지위가 있지(지위는 무슨 지위 쿨럭) 아르바이트 따위를 해야 하냐며 투덜거릴 무렵 작가는 얼음장 같은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소설당선금으로 기름보일러가 있는 집으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작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다음날, 이삿짐 트럭을 타고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나는 그 언덕에서의 삶이 내겐 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된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그 부분에서 나의 치열했던 청춘을 떠올릴 수 있었다. 봄꽃처럼 흐드러졌으나 상처도 많았던 내 청춘.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물론 이 책의 허점을 발견했다. 작가는 여러번 “어쩌구 저쩌구, 라면 순 뻥일테고 이렇고 저렇다“식의 썰렁한 농담을 던진다. 정말 독자들을 웃기려던 것이었을까. 얼마나 썰렁했는지 나는 그런 부분이 나올때마다 마른 침을 삼키며 ‘제발, 김연수씨여. 당신의 아름다운 글에 찬물을 끼얹지 말아주소서..’라며 찬 농담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랬다. 어쩌면 작가의 의도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좋은 것도 자꾸 보면 물리는 법. 온통 뭉게구름 같은 자신의 글이 거침없이 읽혀지다 단물 빠진 껌처럼 밋밋해지는 것을 염려해 중간중간 맥을 탁 끊어버리는 고단수의 썰렁유머를 구사했음은 아닐런지..ㅎㅎㅎ..나..상상력 풍부..--;


김연수라는 작가가 궁금해질 것 같다. 그의 책을 모두 읽어보고 싶어질 것 같다. 이름하야 전작주의.

누군가 나에게 그가 써 낸 책의 순위를 매겨 말해주면 좋을 듯 싶다. 그러면 나는 가장 저평가된 책부터 읽어나갈 것이다. 한계단한계단 오르며 감동받고 싶으니까. 그렇게 이 작가의 책들이 내 행복의 계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얀 생크림에 초록색을 뭉개면 나올듯한 색깔이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고 이름모를 꽃도 책속에 그려져 있다. 청춘을 담은듯한 색깔이다. 스무살이라는 싱그러운 청춘을 '시작'으로, 한해한해 갖가지 경험들을 하얀 분필로 슥슥 긋다보면, 어느새 그 처음의 싱그러움은 옅어지나 조금더 깊이있는 청춘의 '끝'에 다다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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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진진 > 하나의 질문이 바람되어 나를 흔들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내가 하고 있는것 사랑인가?’ 에 대한 강렬한 의문으로 이 책을 손에 들었다. 하루는 나의 연인.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만약 그의 부모님을 내가 만나게 되어 “너는 내 아들을 왜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어찌 대답할거냐 물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액면 그대로 “저기..잘 모르겠어요.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라고 한다면 결코 내 얕지 않은 사랑을 의심할테고, “마음이 따뜻하고, 저를 현명하게 만들며, 어쩌구..” 대답하기엔 다수의 연인들 모습에 나 또한 평범하게 묻힐 것 같아 괜히 싫었다. 이도저도 개운하지 않다 싶어 대답을 망설이던 기억이 난다.


그 질문의 대답이 스스로도 무척 궁색하던 차에, 특유의 향을 풍기는 책제목이 바람되어 나를 흔들었다. ‘왜 사랑하느냐?’ ‘사랑은 하느냐?’.. 그렇게 나를 흔들어댔다. 책 첫머리에 나오는 아래의 글을 접하며, 이것이 심상치 않은 책임을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삶에서 낭만적인 영역만큼 운명적 만남을 강하게 갈망하는 영역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잠자리를 함께하는 일을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언젠가 꿈 속에 그리던 남자나 여자와 마주치게 되는 것을 운명이라고 믿는다면 용서받을 수 없을까?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그리움을 해소해줄 존재에 대한 미신적인 믿음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일까? 우리의 기도는 절대로 응답받을 수 없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참한 순환에는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에 하나 하늘이 우리를 가엾게 여겨서 우리가 그리던 왕자나 공주를 만나게 해준다면, 그 만남을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한 번만이라도 이성의 검열에서 벗어나서 그 만남이 우리의 낭만적 운명에서 정해진 필연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을까?”


저자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사랑의 과정에 있는 인간의 심리를 얼음장처럼 차분하게, 타지는 않을만큼만 뜨겁게, 그렇게 부드럽게 잘도 묘사해나간다. 어릴적 색색깔 실을 가지고 놀다 몽땅 얽혀버린 기억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껌이 머리에 눌러붙어 울상을 지어본 적도 있을거다. 대부분의 경우 그저 실을 방구석에 던져두거나, 껌이 붙은 부분을 가위로 싹둑 자르고 말았을텐데. 이 저자는 ‘사물’과 ‘현상의 미세함’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삶’과 ‘시간의 흐름’에 대해 얼마나 진득한지, 밤이 새는줄도 모르고 한 자리에 앉아 그 멋대로 엉킨 실을 한올한올 정리해내고, 수백개의 머리카락을 껌과 분리해내고야 만다. 그런 태도로 사랑을 슥슥 찢어내어 한조각한조각 우리에게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있자면, 이제껏 정리되지 않고 엉켜 있던 나의 여럿 사랑놀음들이 한줄로 죽 늘어서 나에게 한들한들 손을 흔드는 것 같다. 켜켜이 먼지 쌓인 내 마음을 청소한 것 마냥 잔뜩 시원해지는 것이다.


저자나이 스물다섯 즈음 이 책을 썼다 하니, 그 전에 최소한 한번의 불같은 사랑은 해봤으리라 추측해 본다. 그것이 아니라면 철학공부만으로 ‘사랑의 깊은 이해’를 얻어낸 저자에게 짝짝짝 박수쳐주고 싶다. 주인공이 클로이와 연애 전,중,후에 하는 생각들을 저자는 똑똑한 수다쟁이처럼 가지런히 한권의 책에 뿌려놓았다. 한두번 사랑해보고 나면 ‘사랑은 **다’라고 정의내리길 좋아하게 되고, 무언가 명확해지는 것 같지만, 사랑이 수어 번을 넘어서게 되면 오히려 정의내리길 꺼리고 그제서야 사랑의 애매함 속에서 헤멘다. 처음에는 ‘너? 잘생겨서. 너? 똑똑해서. 너? 착하잖아’ 이런 식으로 좋아하는 이유를 쉽게 들이댈 수 있지만, 막상 사랑의 깊은 의미를 알아가기 시작하면 사랑의 이유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여자에게 몸무게를 물어보는것, 대화상대에게 무턱대고 재산이 얼마냐 물어보는 것 실례이듯이, 연인에게 ‘왜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 실례가 되겠다. 그것이 궁금하다면 스스로에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질문을 쉽게 툭 던질수 없게 된다.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라는 것은 그저 마음으로 느끼면 되는 것이고, 사랑의 이유라면 결국 머리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사랑은 둘의 첫만남 자체로 우.연.히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우연’에 이유는 없는 것이다. 억지로 짜 낸다면 ‘너를 만나서 우연히’가 되겠다. 조금 씁쓸한가? ㅎㅎ 너가 태어났고 내 앞에 나타났고. 그렇게 우연히 나는 너를..


이 책은 새로 사랑을 시작할때는 에피타이저, 사랑을 끝낸후에는 디저트, 사랑진행중에는 메인요리에 뿌려진 금가루가 될 수 있을만큼, ‘사랑’의 의미를 절묘하게 요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에피타이저, 디저트, 금가루 없어도 배를 채울수 있지만 뭔가 허전하다. 사랑을 끝낸 사람들, 사랑 진행중인 사람들,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 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많이 허전할것 같다. '사랑이라면 나도 왠만큼 해봐서, 사랑 알것도 같다'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가슴 시리게 공감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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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진진 > ‘나는 작가 *이다’라는 드높고도 아름다운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강석경 외 지음 / 열화당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일흔한 명의 이야기가 있다. 나는 처음에 몇 편 몇 편 자꾸 끊어 읽으며 다른 책처럼 단숨에 읽지를 못하였다. 얼마나 재미나는지, 내 귀에 대고 소곤소곤 가려운 곳을 얼마나 잘도 긁어대는지 당장이라도 책 속에 빨려 들어갈것 같았다. 그럼에도 자꾸 방에서 기어나와 다른 일을 하고, 또 방으로 기어들어가 펼쳐보기를 반복하였다. 이 책은 너무 단단했다. 평범한 내 귀에도 익숙한 저자들이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종이 한두장에 넣었으니 얼마나 고심하고 썼을까. 하얗게 새벽이 밝아오는 가운데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왜’라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고, 뒤에서 덥썩 귀신이라도 나올것 같은 거뭇한 밤에 스탠드불 하나 켜두고 커피를 들이켰을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설가가 되고 나서도 처음으로, 일기장에 그렇게 썼다. '나는 작가 공지영이다. 그래서 고맙다, 지영아'라고."

소설가 공지영이 쓴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초등학교 일기장에서 굉장히 잘 어울릴만한 저 문구가 얼마나 치열한 글쓰기 후에나 다다를수 있는 높다란 경지인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내가 만약 '나는 작가 모해짐이다. 그래서 고맙다, 해짐아'라고 일기장에 써놓고는 코골며 흠냐흠냐 자고 있다면. 몰래 일기장을 훔쳐보던 나의 어머니 쿠쿡하고 끄응 웃으시고는 살포시 일기장을 내려놓으셨을 것이다. 내가 하면 비웃음, 진짜 작가가 하면 인정. 뭐 이런거. 그래서 저 문장은 부럽고도 드높고도 아름다운 것일지 모른다.


그런 ‘작가’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인생 마지막에 가서도 마무리짓지 못할 '문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읊었다면 그 글 하나로도 내 정신을 쏙 빼놓을 카페인 한 컵일진대, 몇십개라면 내가 ‘냠냠’하고 한번에 후다닥 해치울만한 책은 아닌 것이다.


설이어서 알라딘도 쉰다기에 더불어 내 책구매욕까지 쉴리는 만무했기에 사야할 책목록을 정해서 세종문고로 갔다. 처음에는 뒷짐을 지고 유유히 그곳을 거닐며 ‘오호! 이런 책도?’ ‘오호라, 이 책 참’ ‘어허 무슨 책이 이리 두꺼워’라며 거드름을 피워댔고. 신간의 표지들을 보며 책을 홀짝홀짝 들춰보는 것도 지루해질 무렵. 그러니까 서점에 들어선지 20분, 30분이 지나도 내 목록중의 단 한권도 보이지 않게 되자 콧등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냥 눈에 보이는 책 중 흥미로운 것을 사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그건 아니었단 말이다. 솔직히 사고 싶은 책이 아-주 많았기에 서점에 가기에 앞서 나는 일단 사고 싶은 책을 죽 적었다.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의 차액을 계산했다. 마지막으로 그나마 차액이 적은 목록 중에서 몇권을 골라간 것이기에(손해를 최소화하려는 무서운 본능). 참도 치열하게, 사실 퍽도 할일 없어, 나름대로 머리 굴린 노력을 없었던 것으로 돌릴수는 없었다.


콧등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나는 보물섬에서 보물찾기를 그만 포기하고 점원 몇명에게 내 목록을 하나씩 보여줬다. 신간인데도 어디 깊숙이 박혀 있어 단번에 찾지 못하는 책, 구간인데도 한번에 꺼내오는 책, 제목이 길어 말하기 민망했던 책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이 책은 없다고 했다. 핫. 아니 이런 대형서점에 이제 갓 나온 따끈한 신간이 없어? 뜨악해질 수밖에 없었고. 차분하고도 교양 있는(?) 나지만 “정말요? 정말 없어요? 이상하네.”라며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저기... 노란 표지 있잖아요. 노란 표지인데. 신간인데 없을리가요.” 나는 이 책과 아무런 친분관계도 없는데 왠지 모를 아쉬움에 자꾸 중얼거렸다. 그 점원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고민을 하더니 몇백권의 책이 꽂힌 책장 제일 아래 천사같은 하얀 문을 열더니 뭔가를 꺼내준다. 노-란. 얇은 비닐까지 씌워져 있다. 처음이다. 이런 느낌. 하. --; 아니아니. 참 힘겨운 책찾기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노란 보물을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나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본다. 누가 보면 내가 무슨 책에 목숨건 사람 같겠지만 사실 내가 읽은 책이 있어? 가진 책이 많아? 다 그 목록을 적은 종이쪼가리에 ‘직’하고 샀다는 빨간줄을 긋기 위함이었으리라. ^^V 결국 오프라인 서점은 참으로 비싸서, 할인되었을 것을 감안하면 책 4권에 내 돈 1만원은 거뜬히 먹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돈이면 책을 또 한권 살수 있었는데’ 라며 가슴을 딱한번 쓸어내려야 했다.


그리하여 일흔한 명의 문학하는 이유, 즉 존재의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가까스로 듣게 되었다. 어느 책보다 진솔하고 애절하다. 붉은 영혼들이 제각각의 색깔로 어우러져 한껏 넘실댄다.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고민하고 쓴 글이라 한자도 버릴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어여쁜 사연과 값진 이야기로 치장하여 그들끼리 한껏 춤사위를 벌이며 나에게 손짓한다. ‘이리로 와. 여기엔 하늘처럼 무한한, 바다처럼 깊은 세상이 있어. 이리와봐. 이리와.’ 그 춤이 어찌나 매혹적인지 나는 어느새 몸을 살짝살짝 흔들어보며 그곳에 다가서는데 '퍽'하고 단단한 유리문에 코부터 박고서 아프기만 하다. 그 곳은 ‘작가’들의 세상인 것이다. 오랜 습작의 고통 끝에 비로소 별빛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그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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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진진 > 유난스런 그녀의 식습관에 숨겨진 비밀
생로병사의 비밀 - 책으로 보는 KBS 생로병사의 비밀 시리즈 3
KBS 제작팀 엮음, 홍혜걸 감수 / 가치창조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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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죽음의 내음으로 가득차다

어느날 보니 내 근처에서 ‘죽음’의 내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가까운 사람이 갑상선 수술을 했고, 또 가까운 사람이 암으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이 늦은 나이에서야 죽음에 대한 자각으로 한참을 헤메었다. 아니 그렇게 떠도는 내 정신은 여전히 행방불명중이다. 처음에는 믿을수 없었고 그 후에는 공포스러웠다. 60을 반으로 꺾으면 그 후미진 ‘각’ 근처를 맴돌만한 내 나이. 이제 ‘생성’보다는 ‘소멸’에 가까운 때는 아닌가 하여 사는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아래로 아래로 향하다 결국엔 땅 속에 묻히는거야”

하루 열두번 얼굴을 씻으며 살을 아래로 쓸어내리고, 하루 열두번 붓질로 눈자위에 파란 아이섀도를 묻히다보니 하루하루 눈가의 살들이 처지는 느낌. 어느날 친척분께서 그러셨다. 사람은 처음엔 몸의 한부위가 처지고 그러다 전부위가 아래로 아래로 향하다 마지막에 땅속으로 들어가는거라고. 왠지 그럴듯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아래로 향하지 않는가. 섬뜩하리만큼 톡 쏘는 그 분의 말씀에 잠시 머리가 쭈뼛 섰던 것 같다. 그리고 두 눈으로 또렷하게 보며 '병'과 '죽음'에 강렬하게 묶여있던 나는 이 책을 흔쾌히 손에 잡았다.


아파요. 약 주세여. 플리즈. 

중고등학교때부터 한달에 한번 머리가 아팠다. 처음엔 죽을 병이 아닌가 했다. 오랜 후가 되어서야 그 통증에 일련의 규칙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하루 이틀을 극심한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나는 알약 하나 손에 대지 못했다. 어릴적부터 감기에 아파 쓰러져도 약은 못먹게 하시던 어머니. 파인애플 통조림과 과일을 안겨주며 이불 덮고 푹 쉬라고만 하셨다. “엄마 약 좀 약 으으으” 끙끙대도 “약은 몸에 안좋다.” 한마디로 무시하셨다. --;


이빨에 아작아작 닿는 생라면의 감촉 

초등학생. 피아노 의자안에 숨겨둔 생라면을 꺼내서 동생과 스프를 뿌려 야금야금 몰래몰래 먹었다. “참 맛있는데 왜 못먹게 하는거지?” 투덜대는 순간 초인종이 울린다. 입에 붙은 가루 급히 떼어내고 의자속에 라면을 던져넣고 후다다닥 문을 열러 뛰어나간다. 인스턴트 반대론자, 어머님이시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도시락을 원한다고요. 아우. 

고등학생. 도시락에 찬란하게 박힌 비엔나 소세지와 각족 햄들. 그리고 붉게 한 점 찍힌 토마토 케첩. 친구들에게 애정 받을수 있는 메뉴가 이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허나 가끔 각종 쌈과 맛깔난 양념장, 신기한 튀김멸치(볶음 멸치 아님) 등 독특하고 정성스런 반찬으로 눈길을 잡아볼 수는 있었지만 보편적인 애들의 먹거리가 내 도시락에 담길리는 없었다. 짜...짜...증스러웠다. 어머니 나름의 정성으로 유난을 떠는 것보다 그저 평범하게 그들의 도시락에 묻히고 싶었단 말이다. 햄, 참치... 먹고 싶다기보다 그들의 시선을 조용히 사로잡고 싶었다. --;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킁킁. 어디서 삼겹살의 내음이.

대학생. 그 집의 음식은 엄마의 식습관에 의해 결정된다. 대학교에 입학해 얼큰한 쏘주와 고소한 삽겹살을 처음 맛보던 그때를 잊을수가 없다. --; 나의 어머니는 육류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으셨던 탓에 그제껏 집에서 연례행사로 불고기 따위를 먹을수 있었고, 무슨 날이면 갈비집 외식. 뭐 그런게 다였던 것이다. 촌...촌시럽기도 하지. 또... 꼬마부터 여고생에 이르기까지 집에서 심심하면 노란 국물을 입에 묻히며 밥에 쓱싹 비벼먹곤 하던 카레. 우리 집에서 단한번도 구경한적이 없었다. 저 노리끼리한 것은 외계의 음식? 고로 맛도 잘 몰랐다. 카레는 인스턴트였...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게 되는 날이면 정말 신이 났고, 갈비집에서 시키는 한잔의 사이다(콜라 아니다. 사이다가 그나마 몸에 좋다고. 꺅.)에 부들부들 좋아했고, 쏘주와 넘어가는 삼겹살의 감칠맛을 스무살이 되어서야 진득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오래 살아 뭐하니?

그러던 어느날. 가정으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시작한 ‘꺾어진 오십’ 즈음부터 내 삶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정신적으로 독립했잖은가. 진짜 어른이 된 것이다. 먹는것도 내가 맘대로 골라 먹을거란 말이다. 건드리지 마셔. 콱! 인생의 맛도 어느정도 알겠고. 뭐 딱히 완전 늙어서까지 살고 싶지도 않고. 좋은것만 먹고 살아서 뭐하나 싶고. 괜히 센티멘탈해져서 몸에 쓴 것도 먹어보고 싶고. 짧고 굵게만 살다 가는거야. 크흥흥. 게다가 이 놈의 직장 스트레스가 오죽한가 말이다.


스트레스를 날릴 방법이란..

그때부터 달렸다. 건강을 위해 달린 것이 아니고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달렸다. 스트레스로 그렇게 숨막히다가는 가슴에 한이 멍울 되어 죽을것만 같았으니까. 내 생사를 쥐고있는 사람이 내 머리의 뚜껑을 열게 할라 치면 카페인과 설탕범벅인 인스턴트 커피를 쭉쭉 들이키는 방법밖에 없었고(그를 흠씬 두들겨 팰수는 없지 않은가), 확 회사를 폭파시키고 싶을때면 초콜렛과 과자의 달콤함에서 허우적댔다.(회사가 자폭하는 일은 없지 않겠는가) 바빠 죽겠으니 5분간편 라면을 달고 살았고, 아파 죽겠으니 게보린으로 행복을 찾아보았다. 아휴. 삶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그거 말도 못한다. 내 어찌 손톱만한 저 좋은 약을 두고 그 오래 끔찍한 두통속을 날았던가. 내 어찌 그 좋은 카페인을 멀리 하고 제정신으로 살 수 있었던가. 악마의 유혹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뭐가 좋은지는 알겠다구요. 허나 악마의 유혹이..

지금에 와서 “그래서? 니 건강 나빠졌니?”라고 물으면 딱히 할 말 없지만 이렇게나 건강 무시한채 살다가는 십년후 이십년후를 장담하지 못하지 않겠는가. 이왕 살거 개운하게, 건강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다. 내가 이제 더 이상 0살이던 탄생에 가까운 나이가 아니라 노년에 오히려 가까운 나이가 되어가는 것 같으니... 허나... 읽는내내 밑줄을 치고 그것도 모자라 이 책의 내용이 죄다 머릿속으로 꼼실꼼실 기어들어가는 상상을 했으면서도 식탁위에 얌전히 놓인 초콜렛과 빵을 입에 대고 말았다. 어느새보니 초콜렛 통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의 어머니께서 분명 숨겨두셨을 것이다. 유난스럽다고 해야하나. 먹고 싶어 슬퍼 미치겠다고 해야하나. 어딨냐 찾으면 그러실거다. “하루에 하나씩만 먹어.” 으어어어. 초등생이 된 이 새콤쌉싸름한 기분이여.


으어어어. 책 속에 어머니가 계셨어요. 무서워 죽겠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책 속에서 눈을 껌뻑껌뻑하고 계신 어머니가 보이는 것 같아 깜짝깜짝 놀랐다. 그녀의 장바구니엔 항상 과일이 많고, 특히나 요즘엔 한무더기의 토마토와 생선, 요구르트가 담겨오곤 한다.(‘이오’와 ‘에이스’ 사이에서 방황하시길래 ‘이오’가 끝맛이 좋다고 했다. 이게 무슨 소준가...쩝. 어쨌든 '이오'가 깔끔하다.) 식탁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반찬은 콩에서 비롯된 두부, 콩나물이며 현미잡곡밥을 우적우적 씹어야 한다. 우리 가족은 고작 2~3가지의 반찬이라고 투덜대지만 개선되지 않는다. 정작 그녀는 우리가 주말오전 그르렁 잠에 골아 떨어진 사이 찐 감자, 요구르트와 인삼 간 것, 생선, 나물, 토마토, 두부 찌개에 마늘을 팍팍 넣어서 냠냠 좋은 것 조금씩 다 챙겨드시니 부족할게 없겠지. 룰루랄라 친구분들과 부지런히 공원을 걷거나 또 가끔 산에 가시니 스트레스 딱히 없으시겠지.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아니 이거 뭐야? 혹시 이 책 어머니 벌써 읽으신거 아니야?” 할 정도로 나의 어머니는 이상적인 생활습관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엇... 바른생활 어머니?


토마토, 마늘, 녹차, 적포도주, 콩, 생선, 토마토, 마늘, 녹차, 적포도주, 콩, 생선

내가 잘한건 하나정도였던 것 같다. 녹차를 우려낸 물을 마시곤 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인체의 파수꾼이 녹차라 한다. 머릿속에 꼭꼭 눌러담고 싶은 책이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토마토, 마늘, 녹차, 적포도주, 콩, 생선, 걷기 정도만 기억이 나고 아 뭐가 이렇게 가물가물... 마늘을 어떻게 먹는게 가장 좋다고 했더라? 아... 마늘장아찌... 토마토는? 가열한게 제일 좋다고 했나? 아 가물가물... ‘항산화물질’을 많이 섭취하여 나의 이 기억력감퇴라는 치명적인 노화현상을 더디게  좀 해볼까? 나의 뇌 속에 건강을 세심하게 챙겨담아준 이 책은 시간이 나면 다시 한번 읽고 암기 정도는 기본으로 해야할 것 같다. 아... 상쾌하게 건강해진것만 같은 이 기분이여. 아... 그... 그런데... 벌써부터 커피의 유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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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진진 > ‘애인이 알고 보니 1급사기꾼이었다’ 만큼이나 쇼킹한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안병수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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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게 없다는 말은 ‘사실’일지 모른다는 기막힌 공포

최근 들어 충격적인 책들을 많이 읽은 탓인지 머리가 흔들흔들 가슴이 오돌토돌해진다. ‘1984’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눈먼 자들의 도시’는 내 눈이 먼 것처럼 허공에 손을 내젓게 했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은 곳곳에 뾰족한 송곳을 숨겨놓아 긴장이 풀어질라치면 툭툭 나를 찔러댔고 ‘한국의 연쇄살인’은 살인범의 사진까지 실어놓아 내 머릿속에 그 끔찍한 人들이 즐거이(?) 놀게 했다. ‘모래의 여자’는 현실에 갇혀 버둥대는 나를 돌아보게 했다. 왠지 모래가 미웠다. 퍽퍽퍽퍽. 그리고 그 외 유익한 여러 책들.


그 중에서 나를 순식간에 변화시킨 책은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이다. 얇아라. 내 귀. 아니 내 눈. 일주일째 과자, 음료, 커피, 설탕을 무시한 채 밥만 먹고 있다. 아... 심심해라. 금단현상에 눈 앞이 흐려지며 시력이 마비된건 아닌가 골똘히 생각해 볼 정도이다.


이 책은 강렬한 책이다. 나에게는 특히 그렇다. 왜냐. 나는 최소 10년을 스스로 ‘과자킬러’라 칭하며 살아 왔다. 그것이 꽤나 유아틱하고 귀엽고 깜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랍스터를 좋아해요’보다는 ‘떡볶이를 좋아해요’가 더 쌍큼발랄하게 느껴지듯. 내게 왠만한 영화는 다 재미있고 왠만한 책은 다 즐겁듯. 나 왠만한 모든 과자를 ‘신의 아름다운 창조물’이라며 사랑했다. 아작아작우적우적꺌꺌꺌꺌. 한끼 밥을 대신하여 과자 한 봉, 두끼 밥을 대신하여 커피 열 모금... 그러다보니 아싸 살도 빠지더라. 2~3키로 빠졌던 내게 여위었다던 친구들에게 찜질방에서 강의(?)도 했다. “녹차물을 마셔라.” “밥을 멀리하고 과자와 커피를 애인 삼아라.” 침이 튈 즈음 그들은 이미 다른 방으로 사라졌지만 나는 홀로 그렇게 신이 났었다. 으항항항 까까(과자) 까까. 까까 줘. 그런 내게 ‘꿈의 궁전’인듯한 과자회사에서 16년간 근무했다는 저자가 살이 바들바들 떨리는 공포를 선물했다. 연두리본으로 치장한 채. 옛다. 정신 차려..하며. 제과회사를 경영했던 (저자의) 일본인 친구. 그의 갑작스런 의문의 행동. 그 이야기로 시작되는 살짝 괴기스런 한국최초 공포수필.


저자는 내가 좋아하는 ‘배스킨 라빈스’를 이상한 아이스크림 회사라 칭한다. 그 이유는 차마 말 못하겠다. 슬퍼서. ㅋㅋㅋ. 그리고 국가적으로 전세계적으로 국민들이 조롱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눈을 게슴츠레 뜨고 한 번 걸러 쳐다보게 된다. ‘사실이야? 진실이야? 거짓이지? 거짓말이잖아!’ 거대한 기업들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어쩔수 없어.’라며 국민의 몸과 마음을 죽일지 모를 해괴한 것들을 제품에 슬쩍 넣고 판다. 그리고 광고한다. ‘천상의 맛이옵니다. 드시면 행복이 찾아갈겝니다.’ 책 중간 즈음 내가 모르는 어려운 용어들이 나온다. 어려운 건 모르겠다. 몰라몰라. 하지만 그..그것들이 우리의 몸만 망치는 게 아니라 정신까지도 망칠 수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리하여 갑자기 뚝 과자와 커피와 설탕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오늘 딱 한잔의 설탕프림범벅커피를 마셔보았다. 사약을 들이키듯 근엄하고 단아하게 그러나 꿀꺽꿀꺽. 거 기분이 묘하다. 무섭고도 맛있다. 아 어쩌랴. 그래도 대견하다. 일주일이었잖은가. 조금 더 노력하자.


X

과자. 아이스크림. 라면. 초코파이. 캔디. 껌. 설탕. 물엿. 패스트푸드. 가공치즈. 가공버터. 햄. 소시지. 바나나우유. 청량음료(콜라. 사이다. 드링크. 피로회복제) 마가린. 쇼트닝. 팝콘. 정제당. 화학물질. 트랜스지방산. 튀김(감자튀김. 포테이토칩. 돈까스. 탕수육. 치킨. 유부) 식품첨가물. 흰밀가루. 백미. 식용유. 비타민제. 철분제. 인산염(어묵)...


O

비타민. 미네랄. 자연음식. 섬유질(과일. 야채)


이쯤에서 멋지게 마무리를 해야하는데 모르겠다. 내가 먹은 수백 수천 봉 과자와 식품첨가물로 인해 내 정신은 저 곳 어딘가로 소풍간겐가... 그런겐가...


이 책을 읽고 나면 도통 먹을 게 없다. 시골에서 올라온 고추를 찍어 먹자니 판매된장고추장에 뭐가 들어갔는지 알수가 없고 찌개를 먹자니 호박은 싱싱해 보이나 판매간장에 무엇이 들었나 알수가 없고 굶자니 배고파 헤롱대느니. 그런데 어찌 내가 과자를 멀리 하고 푸른 고추에까지 손을 대고 있느뇨.. 이런 것이 바로! 책!의 힘이다. 어허.. 무엇을 먹고 살란 말이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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