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자란 게 많아

떠나는구나


친구가 되지 못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가까이 있지 않아도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친구가 되기도 할 텐데


인연이 오래 이어지길 바라는 것도

욕심일지도

떠나는 사람은 떠나게 둬야지


잘 가,

언제나 잘 지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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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4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15 0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ch 2025-02-14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관계가 쉽지 않죠. 억지로 해서는 안될것같아요. 뭐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대로 두는 것이 좋을 것같아요. 조금은 씁쓸한 기분도 들지만요.

희선 2025-02-15 04:42   좋아요 0 | URL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기...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마음이 안 좋아지기도 하네요 시간이 더 가야 그런가 보다 할 듯합니다 놓으면 편할 텐데...


희선
 
밤과 꿈의 뉘앙스 민음의 시 268
박은정 지음 / 민음사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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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만난 시집에서 민음사에서 나온 시집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권도 안 본 건 아닌데, 많이 못 만난 듯합니다. 시인이 쓰는 시는 그리 다르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민음사에서 나오는 이 시집은 좀 어려운 느낌이 듭니다. 이 시집 《밤과 꿈의 뉘앙스》는 ‘민음의 시 268’입니다. 예전엔 이런 양장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집이 어디에서 나오든 상관없을 텐데, 민음사에 내는 이런 시집 어렵다고 말했네요. 박은정 시인 첫번째 시집은 문학동네에서 나왔을 겁니다. 그 시집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첫번째는 못 보고 두번째를 먼저 만났네요.


 처음엔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습니다. 한번 보고 두번째에는 느낌이 조금 달랐어요. 모르는 건 백번 보면 안다고 하던데, 시도 그럴까요. 그럴지도. 백번은 어려워도 열번 정도라도 봤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네요. 겨우 두번 보고 이런 걸 쓰다니. 여기 담긴 시 모르는 게 더 많지만, 쓸쓸하거나 슬픈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말은 다른 시집 보고도 했군요. 시가 다 쓸쓸하거나 슬프지는 않겠지만, 어쩐지 그런 시가 더 많은 듯합니다. 시에는 사람이 잘 안 보고 스쳐지나는 걸 담아설지도 모르겠네요. 잊지 않기를 바라는 일도.




검은 눈이 도시를 뒤덮자

아이들은 학교를 버리고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겁먹은 개들이 사납게 짖고

야윈 고양이들이 뒷걸음질 쳤다

대기를 떠도는 불운한 공기와 타락의 징조가

이 도시의 유일한 생명체였다

하천을 따라 달리던 아이들이

죽은 물고기를 꼬챙이에 꽂아

눈사람의 입에 쑤셔 넣자

입 가진 모든 것들은 침묵해야 한다는

신념이 눈사람의 입에 꽃피었다

저녁이면 기어이 찾아드는 아이들과

그들의 혓바닥이 파고드는 불빛 아래

감자와 묽은 스프를 차려 놓고

울먹이며 기도하는 사람들

몇 년째 겨울은 검고 탁했으므로

봄이 오지 않는 그들의 도시에

기도도 없이 전도사들이 하나둘 죽어 가자

술집은 사라지고 청탑의 종이 녹슬었다

각자 자신의 문을 굳게 잠근 채

어둠 속에서 검게 내리는

눈을 헤아려 보는 밤

도대체 이 무심한 장면은

어디서부터 발병한 것인지

구원은 요란한 고해성사처럼

마지막 남은 술병을 비우고

벌거벗은 관 속으로 들어간다

붉게 부어오른 혀를 말고

세상의 장례를 시작한다


-<검은 눈>, 70쪽~71쪽




 앞에 옮긴 시 <검은 눈>은 쓸쓸함이나 슬픔은 보이지 않는군요. 조금 쓸쓸한가. 어두운 느낌도 듭니다. 제목이 ‘검은 눈‘이어서 바로 그렇게 생각했군요. 이 시집에는 검은 색이 여러 번 나와요. 그게 어두운 것만 나타낼지. 검은 눈에 덮인 세상을 생각하니 세상이 죽은 듯하네요. 디스토피아 같은. 시인은 다른 생각으로 쓴 걸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의 장례라는 말이 나오는군요. 검정은 장례식 색깔이네요.




아직 갈 길이 먼 철새들이

긴 밤 지치지 않도록


아직 닿지 않은 마음이

저를 미워하지 않도록  (<목련>에서, 104쪽~105쪽)




담벼락에 숨어 앉아

머리카락을 뽑으며 놀았다


이것은 내가 처음 배운 위로


버찌나무 아래 누워

자신의 기이한 미래를

예감처럼 보는 아이들


오후에는 지하상가 계단에 앉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들었다


한줌의 흙을 입에 넣고 부르는 노래는

무덤처럼 따뜻할까


저녁의 한가운데

모르는 대문 앞에 머물다

저녁보다 먼저 저문 마음을 두고 왔다


몇 년 만에 눈이 내렸다

장갑을 버리고 귀를 막으면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아 괜찮았다


언 담벼락을 돌아가는 개가 있다


몸이 찬 사람들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개가 얼어 죽는데

아무도 울지 않았다


-<오후와 저녁>, 130쪽~131쪽




 시는 쉽지 않네요. 언제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언가 나타내는 게 있을 텐데, 바로 알지 못하는군요. 알아내는 것도 없고, 제가 생각하는 게 틀릴지도 모르겠네요. 시를 좀 더 자주 많이 만나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군요. 앞에 옮긴 시 <오후와 저녁>은 조금 쓸쓸한 느낌이 들지요. 이건 마지막 연 때문일 것 같네요. 시를 봐도 잘 모르지만 앞으로도 가끔 만나야겠어요. 마음 편하게.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괜찮으면 괜찮은 대로.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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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2-12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렵네요. 그리고 너무 암울해요. 시인이 민감하게 보는 세상의 모습일까요? 시인들의 감수성은 저같은 사람과는 많이 다른거 같아요.

희선 2025-02-14 04:34   좋아요 0 | URL
검은 눈은 꽤 어두워 보이죠 잘 모르지만 그 시가 눈에 띄었네요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조금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그런 시는 얼마 없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5-02-13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집을 펼치면 시가 어려워서 반복해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오독하면 오독한 대로 읽는 것도 나빠지 않다고 봅니다. 오독하기 좋은 장르가 시, 예요.
최소한 낱말 공부, 표현 공부, 분위기 공부는 된다고 봐요.ㅋㅋ^^

희선 2025-02-14 04:36   좋아요 0 | URL
천천히 읽어야 할지도 모를 텐데, 시집도 다른 책과 다르지 않게 봅니다 그렇게 읽다가도 마음에 드는 게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 번 보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합니다 시를 읽는 답은 없겠지요 시인도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걸 다른 사람이 볼지도...


희선
 




밝은 날만 이어지길 바라도

뜻대로 되지 않아요


흐리고 비가 오는 날도 있네요


식물만 비를 반길까요

지구에 사는 생물체는

건조한 날이 이어지면

비가 오길 바랍니다


흐리고 비가 와도

우울해하지 마세요


하루나 이틀

길면 사나흘이 지나면

해가 나타날 거예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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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2-12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제 차가 내리는 비에 세차가 쫙 되서 좋았어요. ㅎㅎ

희선 2025-02-14 04:28   좋아요 0 | URL
세차한 뒤 눈이 오면 지저분해지겠지요 비가 와서 차를 씻어주었네요 비 오고 어제는 날씨 좋았어요


희선

페크pek0501 2025-02-13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비가 내리면 세상 먼지가 씻겨지는 것 같아 처음엔 반깁니다. 길어지면 싫지만요..

희선 2025-02-14 04:29   좋아요 0 | URL
한동안 비가 안 오네, 하면 다음날이나 며칠 지나지 않아 비가 오기도 해요 그럴 때 신기하기도 합니다 비가 적당히 올 때 오면 좋겠습니다


희선
 




너와 내 시간은 다르지


여우는 어린 왕자한테

같은 시간에 자신을 찾아오라 했지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이 다가오면

마음이 설렐 거야


다른 시간을 보내는

너와 난 같은 시간에 만나지 못해도

아주 못 만나는 건 아니야

네가 먼저 흔적을 남기면,

난 나중에 흔적을 남기지


만나는 시간은 어긋나도

마음은 어긋나지 않았으면 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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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2-11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흔적을 남긴다면 시간이 어긋나도 만난거겠죠. 마음이 따뜻해져요.

희선 2025-02-12 01:27   좋아요 1 | URL
시간 차이를 두고 만나는 거죠 그것도 괜찮지요 바람돌이 님하고도 오늘 만났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5-02-11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린왕자라는 책에서 오후 네 시에 오라는 구절을 읽은 듯합니다.
온다는 시간을 알게 되면 미리 기쁘겠지요.^^

희선 2025-02-12 01:29   좋아요 1 | URL
어린왕작 네 시에 오면 여우는 세 시부터 설렌다고 했군요 사람 관계는 시간을 들여서 쌓아가는 거네요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그런 사이가 오래 가면 좋을 텐데...


희선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

지구에서도 지구 끝을 보기는 어려워

우주에서 지구는 아주 작고,

지구에 사는 사람은 더 작지


문득 우주에는 소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주에서 소리는 전해지지 못해도

빛은 전해져


지구에서 보는 별빛은 오래전 거야

지금도 오래전 빛이 오겠지

빛은 쉬지 못하겠어

빛은 사라질 때 쉬겠군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

속이 보이지 않는 마음

둘 다 알기 어려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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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2-10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삼체 읽고 있는데 책이 온통 우주 우주 하고 있어요. 그러니 오늘 유달리 희선님 시가 확 들어오네요. ^^

희선 2025-02-11 03:02   좋아요 1 | URL
거기에 외계인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우주 먼 곳에서 지구로 온 걸지... 실제 외계인이 있을지, 있다 해도 소설에서 나온 것처럼 전쟁은 안 했으면 좋겠네요 그런 것보다 외계인은 벌써 지구 사람과 섞여 산다는 게 더 좋을 듯합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5-02-11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의 별빛을 보는 거라는 걸 저도 어디서 읽은 듯합니다.
점, 만한 지구에 사는 너무나 작은 인간이지요.^^

희선 2025-02-12 01:23   좋아요 0 | URL
예전 별빛이어서 지금은 없는 별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구는 우주에서 아주 작네요 사람은 그것보다 더 작다니, 그런 거 잊고 살기도 하네요 자신이 작다는 걸 기억해야 할 텐데...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