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소 소설 대환장 웃음 시리즈 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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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 《왜소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웃음 소설에서 하나다. 예전에 웃음이 들어가는 소설 봤는데, 《괴소 소설》 《흑소 소설》 《독소 소설》  이렇게 세 가지다. 이런 소설 재미있게 본 것 같은데, 세 가지 다 안 보고 두 가지만 본 것 같다. 나중에 못 본 거 봐야지 생각하고 잊어버렸을 거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많이 봤지만, 못 본 것도 조금 있다. 이번에 본 ‘왜소 소설’은 출판사 이야기다. 왜소(歪笑)는 비틀린 웃음이라 하면 될까. 이런 것은 쓴웃음과 같은 것 같기도 한데. 여기에는 짧은 소설 열두편이 실렸고, 규에이 출판사 편집자와 여기서 책을 낸 작가 이야기가 담겼다.

 

 출판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지만, <전설의 편집자>는 웃겼다. 정말 편집자는 골프를 배워야 할까. 골프만이 아니었구나. 서적 편집부에서 일하게 된 아오야마는 골프를 배우고 작가와 골프를 쳐야 했다. ‘전설의 편집자’는 시시도리 편집장인데, 시시도리는 작가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원고를 받았다. 골프는 아주 적은 점수 차이로 작가한테 졌다. 작가 기분이 안 좋으면 슬라이딩 무릎꿇기를 하고, 작가가 하고 싶어하는 걸 하게 해주기도 했다. 잘 나가는 작가는 원고 받기 어렵기는 하겠다. <드라마는 나의 꿈>에서 편집자 고사카이는 아타미 게이스케 소설 《격철의 포엠》을 드라마로 만들고 싶어하는 곳이 있다면서 아타미한테 전화한다. 하지만 그건 원작과 아주 다른 거였다. 아타미는 싫었지만 타협한다. 얼마 뒤 이름이 잘 알려진 배우가 아타미 소설 영상물 저작권을 사려 했는데, 편집자 고사카이는 그 소설 영상물 저작권이 팔렸다고 한다. 고사카이는 전화한 사람이 누군지 몰랐고, 그 소설을 영상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곳은 없으리라고 여겼다. 편집하는 사람은 작품을 알아보기도 해야 할 텐데, 고사카이는 그런 거 잘 못하는 거 아닐까.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겠구나.

 

 앞에서 ‘전설의 편집자’가 시시도리 편집장이라 했는데, 시시도리는 아타미 다음 소설을 베스트셀러로 만들려고 한다(<베스트셀러 만들기>). 그것도 조금 억지스럽기는 했지만. 작가 이미지를 가짜로 만들고 인터뷰를 하고 사인회를 열었다. 그게 잘 됐느냐 하면 아주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아타미 소설에 빠져든 사람은 조금 있는 것 같았다. <허무승 탐정 조피>로 ‘제1회 규에이 신인상’을 받은 다다노 로쿠로, 필명은 가라카사 잔게 이야기도 여러 편 나온다. 선배 작가와 골프를 치러 갔다가 앞으로 선배 작가를 앞지르겠다고 마음먹는 <신출내기>. 사귀는 사람이 거의 가라카사 매니저가 되고 새로운 소설을 쓰게 하는 <천적>. 이 뒤에는 시시도리 편집장이 있었다. <소설가 사윗감>에서는 가라카사가 결혼하려는 모토코 아버지가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소설이라는 걸 조금 알게 된다. 가라카사가 쓴 소설을 보고 모토코한테 가라카사를 잘 도와주라고 한다. 소설가는 안정된 일이 아니어서 부모가 걱정도 하겠다.

 

 문학상이 많다고 하는데 그걸 만들려고 힘쓰는 사람도 있을까. <문학상 신설 분투기>에는 그런 모습이 담겼다. 상을 받은 작품은 예상과 달랐다. 실제 그런 일도 있겠지. <대타를 찾아라!>는 문예지에 실을 소설이 하나 빠져서, 미스터리를 쓰지 않는 작가 아타미한테 의뢰한다. 아타미는 돈 때문에 그걸 받아들이는데, 얼마 뒤 다른 소설가한테 미스터리를 쓰게 했다면서 아타미한테는 쓰던대로 쓰라고 한다. 그건 아타미한테도 다행한 일었다. 아타미는 미스터리를 쓰지 못했으니 말이다. <작가 은퇴 기자 회견>은 그저 형식이었다. 기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자신이 소설을 그만 쓰겠다고 은퇴 기자 회견을 열어달라고 한 작가는 그 뒤에 소설을 쓴다. 그건 은퇴가 아니구나. 그래도 작가는 형식일 뿐인 은퇴 기자 회견을 하고 마음의 짐을 내리고, 이제 마음 편하게 소설을 쓰게 됐을지도. 작가는 달리 은퇴라는 게 없기는 하다. 글을 안 쓰면 그 작가 글을 보던 사람은 이제 글 안 쓰나 하고 시간이 가면 잊는다.

 

 일본에는 일이 잘 안 되면 작가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 있을까. 그런 이야기 몇 번 본 것 같다. 작가로 돈을 잘 버는 사람은 얼마 안 될 텐데. <최종 후보에 오르다>에서 이시바시 겐이치는 일터에서 안 좋은 자리로 밀려나고 소설을 쓰고 미스터리 신인상에 응모한다. 그게 마지막에 남았지만 상은 받지 못한다. 편집자가 다시 응모하라고 하지만, 이시바시는 하던 일 하기로 한다. 그렇게 소설가가 되겠다고 꿈을 가졌다가 그만둔 사람 많을 것 같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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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12 06: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 말고도 이런 책도 많이 썼군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책을 너무 많이 써서 다 본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 ㅎㅎ 저도 어느정도 봤다고 생각하는데 가끔 보면 이런책도 있었어? 한다는 ^^

희선 2021-10-13 02:01   좋아요 1 | URL
일본 추리작가에서 일찍 안 사람이 히가시노 게이고예요 소설이 많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개정판이 줄줄이 나오기도 하더군요 어떤 분은 읽었던 건데 다시 보고 제목이 바뀌었다는 걸 알았답니다 어쩌다 한번 일본에서 예전에 나온 것도 나오더군요


희선

프레이야 2021-10-12 0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 탐정소설만 몇 가지 읽어 보았네요. 그게 눈으로 읽은 게 아니라 낭독 녹음봉사 하면서 입으로 읽어서 대사까지 성우처럼 그랬는데 오래전입니다. 이런 책이 있는 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진짜 많이 쓰는 작가.
희선 님 오늘 여긴 날이 좀 흐리고 선선해요. 가을이 부쩍 다가온 모양입니다 ^^

희선 2021-10-13 02:09   좋아요 0 | URL
갈릴레오 탐정이라 하는 유가와가 나오는 소설이었을지... 그걸 녹음하셨군요 《용의자 X의 헌신》이었을지... 프레이야 님이 낭독하시는 걸 들으시는 분은 좋으시겠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 많이 쓰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바로 쓰는지 대단합니다 일본에는 그런 작가가 여럿 있어요 저는 그저께 어제 서늘해서 겨울이 빨리 올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가을 아직 다 안 갔는데...

프레이야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프레이야 2021-10-13 05:43   좋아요 1 | URL
스캇님이랑 희선님 일어로 읽으시다니 와우 부러워요. 비행기에서 세로줄 일본어책 읽던 어떤 신사가 기억나요. 오래되어 보이는 페이퍼북이었는데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이제 생각나는데 녹음했던 책이 방황하는 칼날, 명탐정의 저주, 생각납니다.

희선 2021-10-14 02:09   좋아요 0 | URL
명탐정이 들어가는 책 제목도 생각났는데... 방황하는 칼날은 지난 7월에 개정판이 나왔더군요 그건 한국에서도 영화로 만들었네요 일본에서는 2009년에 영화로 만들고 올해는 드라마 했던가 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은 영화나 드라마로 많이 만들었군요 일본말 아직도 잘 모릅니다 그래도 읽기는 하는데, 자주 못 보네요


희선

프레이야 2021-10-14 07:53   좋아요 1 | URL
네. 오래전 보았더랬어요. 배우 정재영 주연이었던 기억이. 개정판 나왔군요. 아주 슬픈 이야기였어요. ^^

희선 2021-10-15 00:29   좋아요 0 | URL
자식, 딸이 죽었으니 아버지 마음이 어떨지...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아주 안 좋게 죽었네요 그런 일은 없어야 할 텐데...

프레이야 님 오늘만 지나면 주말이네요 이번주도 다 가다니...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stella.K 2021-10-12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 한 번 읽어 봐야겠습니다. 구미가 확당기는군요.ㅎ

희선 2021-10-13 02:09   좋아요 0 | URL
출판사 이야기로 재미있게 쓰기는 했는데, 실제로 비슷한 일도 있을 것 같아요


희선

서니데이 2021-10-12 1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 흑소소설 등 시리즈도 올해 다시 개정판이 나왔네요. 이전판보다 이 책의 표지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희선님, 좋은하루되세요.^^

희선 2021-10-13 02:12   좋아요 2 | URL
개정판이 나와서 새롭게 보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책은 개정판 자주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개정판은 열해 지나고 낸다고도 하던데... 개정판이 나오는 건 잘 나간다는 거기도 하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서니데이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scott 2021-10-13 01: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게이고의 이시리즈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한참 일본어 흥미를 붙일때 읽어서 인지
블랙 유머와 냉소가 가득한 단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ㅎㅎ
<흑소소설>에 스토커 입문 단편
욘사마의 광팬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합니다 ^ㅅ^

희선 2021-10-13 02:21   좋아요 2 | URL
scott 님은 일본말로 보셨군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일본말로 몇 권 보기는 했네요 한국말로 보면 빨리 읽히는데... 지금은 어떨지... 저는 일본 추리소설이 있다는 걸 안 것과 일본말에 관심을 가진 게 비슷한 때였어요 일본 추리소설을 조금 나중에 알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욘사마... 지금 일본 사람은 누구를 좋아할지... 일본 사람이 좋아하는 한국 배우나 가수 많겠습니다


희선
 

 

 

 

가까이 있어도

멀기만 한 마음

 

내가 한걸음 다가가면

넌 한걸음 물러서지

 

좁힐 수 없는

너와 내 마음의 거리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다가가면

네 마음과 가까워질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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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12 0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도 너무 좋네요~!! 천천히 가까워 졌으면 좋겠네요 ^^

희선 2021-10-13 01:56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 고맙습니다 가까워지는 사람도 있고 잘 안 되는 사람도 있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1-10-13 1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들이고 싶은 모든 일은 시간의 축적이 필요한 법이죠. 서두르지 않음이 필요한 이유예요.

희선 2021-10-14 01:55   좋아요 0 | URL
빨리 해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어떤 건 천천히 해 나가는 게 좋기도 하죠 그런 건 서두르면 더 안 되는 듯합니다


희선
 

 

 

 

어디든 마음대로 가는 바람

자유로울까

 

바람을 과학으로 생각하면

그저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도 바람한테 마음이 있었으면 해

 

바람아,

마음대로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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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0-11 23: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늘 시처럼...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름답습니다^^

희선 2021-10-12 02:04   좋아요 1 | URL
책읽는나무 님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기분 좋은 말씀해주셨네요


희선

바람돌이 2021-10-12 0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무님이랑 똑같이 생각해요. 희선님의 시를 보면 따뜻한 마음이 막막 생겨요.

희선 2021-10-12 02:05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도 고맙습니다 이렇게 댓글을 써주셔서 제 마음이 따듯해졌습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10-12 0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지가 딱 되고 싶은것이 바람이라지요. 어디든, 희선님도 가고 싶은 거죠.^^ 가을바람이 훅! 쌀쌀해졌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2021-10-12 02:07   좋아요 0 | URL
어제는 정말 쌀쌀했어요 지난주하고 아주 다르다니... 시월이니 그럴 때가 되기는 했네요 행복한책읽기 님은 바람이 되어 어머님을 자주 만나러 가고 싶으시겠습니다


희선

scott 2021-10-12 0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구름 처럼 뭉쳤다 커졌다 흩어졌다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이끄는데로 가야 겠죠 ㅎㅎ

희선 2021-10-12 02:09   좋아요 0 | URL
바람과 함께 구름처럼 뭉쳤다 커졌다 흩어지면 되죠 이렇게 제 마음대로 생각합니다 scott 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새파랑 2021-10-12 0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네요 ^^
희선님도 바람처럼 자유로운 시인 같아요~~!

희선 2021-10-13 01:58   좋아요 1 | URL
가끔 바람은 정말 자유로울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별 생각을 다합니다 바람은 쓸쓸하기도 할 듯, 늘 떠나야 하니...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를 봐서 이런 생각을 했나 봅니다


희선
 

 

 

 

별을 보고 이야기를 만드는 시대는

지나가 버린 지 오래

이젠 무얼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까

 

우주에 많은 별

지구에 많은 사람

별 하나 사람 하나

별 둘 사람 둘

 

별을 보고 사람을 보고

다시 별을 보고 사람을 보면

이야기가 될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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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09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밤,
어두워지면
별 하나라도 찾고 싶습니다

서울 밤은 별을 찾기 힘들어요.
희선님 주말, 별구경
☆٩(。•ω<。)و

희선 2021-10-11 23:44   좋아요 1 | URL
얼마전에 하늘을 보니 희미하게라도 별이 보이더군요 그런 일도 어쩌다 한번인 듯합니다 아니 오래 밤하늘을 보면 그렇게라도 별이 보일지... 예전에는 까만 밤하늘에 보석이 박힌 듯했는데, 그런 모습은 이제 못 보는군요 그런 거 볼 수 있는 곳도 있겠지만...


희선

서니데이 2021-10-10 2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비와서 별 보려면 우산 들다가 비 맞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하늘에 변함없이 별이 떠 있어서 다행이예요.
희선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희선 2021-10-11 23:45   좋아요 2 | URL
별은 언젠가 거기 있지요 낮에는 밝아서 보이지 않고 밤에는 다른 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아주 먼 옛날에서 지금도 오는 별빛...

오늘은 쌀쌀한 느낌이 좀 들었습니다


희선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잊지 않으려고 시작한 매일의 습관, 자기만의 방
김신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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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띄엄띄엄이라도 일기를 오랜 시간 썼습니다. 쓰기만 하고 그걸 다시 들춰보지 않았습니다. 봐도 지난해나 지지난해나 비슷한 말을 써서. 쓰면서도 그걸 알았습니다. 그래도 안 쓸 수 없었군요. 일기에 제 마음을 모두 쓰지 않지만, 뭔가를 쓰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다시 생각하지요. 내가 이러면 안 될 텐데,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할 거 아니야, 하는. 그런 생각은 아주 잠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분 안 좋은 것보다 좋은 걸 적는 게 나을 텐데. 예전에는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그걸 적어야겠다 했군요. 좋은 꿈을 꿔도. 좋은 꿈은 별거 아니고 누가 나왔다는 거예요. 안 좋은 꿈도 다르지 않다니. 몇해 전에는 꿈을 잘 적어두기도 했어요. 꿈속에서 있었던 일과 제가 한 말이나 들은 말을. 요새는 꿈에 별 말 안 하더군요. 생각나는 것도 없고, 그저 아는 사람이 나오면 그것만 기억해요. 왜 꿈 이야기를 했는지.

 

 이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김신지)에서는 기록하는 방법을 많이 알려주더군요. 다섯해 일기쓰기를 보니 지난해(2020)에 그 생각했던 게 떠올랐어요. 그때도 다른 사람이 말해서 나도 한번 해 볼까 했는데. 일기장만 찾아보고 그만뒀어요. 이번에 보고 또 찾아봤어요. 저는 다섯해보다 세해를 해 볼까 잠깐 생각했어요. 아직 마음 못 정했습니다. 김신지는 그날 좋았던 걸 쓰고 다음 해에 보고는 같은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더군요. 저는 늘 비슷한 날이어서 좋은 게 없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가끔 우울하고 안 좋다 하는군요. 비슷한 날이기는 한데 가끔 그걸 깨어버리는 일이 일어나서. 날마다 비슷한 날이어도 상관없으니 그걸 깨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끔 이런 것도 써요.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 밤에는 비가 많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렇게 쓰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요. 이건 기록이라기보다 그냥 마음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거네요.

 

 하루에 하나 좋은 거 줍기. 이것도 멋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하려고 하면 힘들 것 같아요. 무언가 좋은 게 없나 하고 늘 보던 걸 다르게 보려고는 하겠지만. 하루하루는 잘 가요.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이다 하잖아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는 잡기 어렵습니다. 다는 아니어도 손을 꽉 쥐면 조금 잡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건 겨우 그 정도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시간이 가면 사라지겠지요. 김신지는 기록을 잘하는 사람이더군요. 이 책 보니 정말 대단합니다. 따라하기 어렵겠어요. 벌써부터 못하겠다 하다니. 김신지가 기록하는 건 한두가지가 아니예요. 기록도 부지런해야 잘 하겠습니다. 저는 아주 게을러요. 그래도 가끔 그냥 쓰는 거 있기는 해요. 김신지처럼 잘 하지는 못하지만 저도 조금 하더군요. 그건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였어요. 김신지가 기록은 앞날 자신한테 보내는 편지다 하던데, 그때는 난 내가 쓴 거 잘 안 보는데 했는데 가끔 보는 것도 있다는 거 알았습니다. 그건 자주 하지 않고 어쩌다 생각나는 거 쓰는 거예요.

 

 새해가 오면 이번에는 잘 살아야지 하지만, 한해가 끝날 때쯤에는 한 게 아무것도 없네 합니다. 기록을 하면 자신이 뭘 했는지 조금은 알겠더군요. 달마다 ‘나만의 베스트 가리기’ 괜찮아 보입니다. 그걸 하면 그때 자신이 뭘 좋아했는지 알 것 같더군요. 저는 좋았던 거 가리기 종류는 책밖에 없을지도. 책에서도 좋았던 거 잘 고르지 못합니다. 좋았던 거 고르면 나머지는 슬퍼하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제가 어딘가에 들어가는 적이 없어서, 뽑히지 못하는 마음을 생각했나 봅니다. 순위는 안 되겠어요. 모든 게 자신한테 작게든 크게든 도움될 테니. 처음에는 괜찮다 생각했으면서, 이렇게 쓰면서 다른 생각을 했네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건 먼저 말해야 했는데, 이렇게 쓰면서 다른 생각을 했네요. 글, 그림, 사진, 영상 여러 가지로 한다고 해요. 순간을 붙잡으려는 모든 일. 저는 글이나 사진으로 하고 싶네요. 예전에 사진 담고 싶기도 했는데, 요새는 별로 못 담는군요. 가는 곳이 비슷해서. 김신지는 날마다나 철마다 같은 곳을 사진으로 담았어요. 그런 거 나중에 보면 참 신기하겠지요. 폴 오스터 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도 날마다 같은 곳을 사진으로 담는 게 나오는군요. 어떤 사람이 그 사진 속에서 죽은 자기 아내를 봤던가요. 그 기록도 참 멋졌습니다. 날마다나 철마다 담을 곳 한번 찾아보고 싶네요. 저도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있군요. 한동안 한가지만 사진에 담기도 했어요. 우편함. 제가 편지쓰기를 좋아해서 별난 우편함을 보면 담았습니다. 그런 우편함에 편지를 받으면 어떤 느낌일지. 기쁘겠지요.

 

 지금 생각하니 김신지가 말한 건 누구나 한번쯤 해 볼까 생각한 거기도 하네요. 잠깐 생각하고 잊어버린. 김신지는 생각하면 바로 한 거지요. 자기 나름대로. 많은 사람은 생각하고 그걸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귀찮다 나도 모르겠다 하고 안 했겠지요. 저도 다르지 않습니다. 영감 모으기나 정리하기, 그런 건 진짜 못하겠습니다. 그런 걸 잘 모아두면 잘 써 먹을지. 하지도 않고 이런 생각을 하는군요. 하고 싶은 거 하나 있기는 합니다. 누군가 자신한테 해준 좋은 말(댓글)이나 책에서 본 좋은 글을 한곳에 모아두고 가끔 꺼내보면 힘이 되겠습니다. 저는 가끔 우울함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때 좋은 말을 보면 좀 낫겠습니다. 하면 좋을 텐데. 그런 게 늘어나면 어디 있는지 찾다가 못 찾을지도.

 

 

 

희선

 

 

 

 

☆―

 

 날마다 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훗날 돌아볼 기록이 과거를 반성하게 해주어서가 아니고 지금 나와 마주 앉는 시간을 꾸준히 보내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그 시간은 삶에서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쓸데없이 힘을 빼지 않도록, 반대로 내게 중요한 것들을 지키고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나라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46쪽)

 

 

 

 

 

 

 

예전에 사진으로 담은 우편함

https://blog.aladin.co.kr/798715133/8631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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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07 0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선 님 우편함 사진 보니 전자우편함 이메일함이 생각나요. 가끔 어떤 연유로 지난 이메일을 열어보곤 깜짝 놀라곤 합니다. 잊고 있었지만 간직하고자 서랍에 넣어둔 편지들. 마주하기도 맞지만 지난 글을 읽어볼 필요도 느껴요.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듯이요. 기록이 없었다면 그냥 사라져 버렸을 의미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뭔가는 조만간 페이퍼 쓸게요 ^^

희선 2021-10-08 23:25   좋아요 1 | URL
저는 반대로 전자편지는 잘 안 쓰는군요 컴퓨터 처음 쓸 때는 가끔 쓰기도 했는데... 그래도 예전 게 있기는 한데, 지금 생각하니 다른 데서 썼던 건 없어지기도 했네요 그 생각하니 조금 아쉽습니다 다른 데 저장해뒀다면 좋았을 텐데... 예전 전자편지를 읽으면 놀라는 일도 있겠습니다 그것도 기록이나 다름 없기도 하죠 자신이 쓴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쓴 것도...

프레이야 님 오랜만이네요


희선

새파랑 2021-10-07 08: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편함 사진 너무 멋지네요 ^^
매일매일 꾸준히 기록하는건 힘든거 같아요. 저의 다이어리도 6월에서 쓰기를 멈췄네요ㅜㅜ
내년에는 잘 기록하기로 다짐해봅니다 ^^

희선 2021-10-08 23:27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은 일기 대신 쓰는 거 있기도 하잖아요 책 읽고 쓰는 거... 그것도 일기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자주 못 쓰게 됐지만, 책을 읽고 쓰다보니 일기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희선

scott 2021-10-07 16: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말씀처럼 이거 하나는 실천 해야 겠습니다.

[하루에 하나 좋은 거 줍기]

저는 양손으로 타이핑 칠때는 글이 술술 써지는데
손에 펜을 쥐면 단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손으로 뭔가 끄적이는 것 만큼 하루 하나 좋은 생각 노트에 적어 보는 걸로 올 한해 마무리를 ^.~

희선 2021-10-08 23:32   좋아요 2 | URL
많은 것보다 하나라도 꾸준히 하면 좋겠지요 좋은 거 줍기, 그걸 하면 세상이 좋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안 해 봤으면서 이런 말을... 좋은 거니 뭐든 잘 볼 테니, 그러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그럴지도...

시월이 오니 2021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갈수록 그런 느낌이 더 들겠지만... 하루에 하나 좋은 생각 적기는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으니 할 수 있을 거예요 좋은 생각이네요


희선

stella.K 2021-10-07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선님의 글 소리로 들으니까 되게 좋네요.
희선님이 구어체로 쓰셔서리.ㅎ
저도 대부분 희선님과 같은 생각인데 저 마지막 구절이
꼼짝 못하게 만드는군요.ㅠ

희선 2021-10-08 23:38   좋아요 1 | URL
이걸 소리로 듣다니... 언젠가 stella.K 님이 엣지에 그런 게 있다고 하셔서 찾아보다가 못 찾았는데, 나중에 우연히 찾았어요 재미있는 게 있네 했습니다 일본말을 한국말로 읽게 하면 한자만 읽지만, 일본말로 했더니 제대로 읽더군요 신기했습니다 엣지 쓰면서 인터넷 익스플로러도 써요 아직 아주 못 쓰는 건 아니니...


희선

서니데이 2021-10-08 1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저녁시간 되세요.^^

희선 2021-10-08 23:39   좋아요 1 | URL
이번주 빨리 지나가는군요 벌써 주말이라니... 이번주에는 잠을 자도 자꾸 잠이 오기도 하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1-10-10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팟캐스트로 듣고 좋았었어요. 기발해요.
저는 기록을 잘하는 편이에요. 일기를 쓰기도 하고 신문이나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노트에 적습니다. 일종의 습관이에요. 훗날 들춰보면 좋더라고요. ^^

희선 2021-10-11 23:50   좋아요 0 | URL
나중에 써둬야지 하는 것보다 보면 바로 써두는 게 좋을 듯합니다 생각은 빨리 사라지니... 좋은 글은 다시 찾으면 되는군요 적어두기 좋은 버릇이네요 그때도 좋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에 보면 더 좋겠습니다


희선